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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론, '능력 없음이 곧 능력 있음'(無能之人)이거늘
"동무론, '능력 없음이 곧 능력 있음'(無能之人)이거늘" 내용보기
"만일 철학이 후대에도 살아남는다면 단언컨대 철학사가들은 21세기 한국 철학의 벽두를 김영민, 이 이름으로 장식할 것이다."  - 이왕주 「어느 지방 철학자의 足脫不及」에서 내가 김영민 철학자(이하 '철학자')와 책으로 첫 인연이 닿은 것은 20년 전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1998)를 통해서였다. 당시 내가 가졌던 인상은 주체적인 글쓰기에 관한 당찬 지론이
"동무론, '능력 없음이 곧 능력 있음'(無能之人)이거늘" 내용보기

 

"만일 철학이 후대에도 살아남는다면 단언컨대 철학사가들은 21세기 한국 철학의 벽두를 김영민, 이 이름으로 장식할 것이다."  - 이왕주 「어느 지방 철학자의 足脫不及」에서

 

내가 김영민 철학자(이하 '철학자')와 책으로 첫 인연이 닿은 것은 20년 전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1998)를 통해서였다. 당시 내가 가졌던 인상은 주체적인 글쓰기에 관한 당찬 지론이었다. 문체 역시 힘과 개성을 잔뜩 품었다.

철학자가가 『공부론』(샘터, 2010)에서 언급한 화두가 기억난다. 인이불발(引而不發), 당기되 쏘지 않는다. ‘김치는 손맛’이라고 했다. 정작 김치의 맛은 그 손이 김치를 잊고 있는 동안 혼자서 숙성된다. 김치를 담근 그 손길들이 자신의 노고를 ‘알면서 모른 체하는’ 사이, 김치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익명의 무의식(=김치 항아리) 속에서 익어가는 것. ‘인이불발(引而不發)’이라 함은 ‘알면서도 모른 체하기’처럼 그저 알기도 아니며 그냥 모르기도 아닌 것이다.

근데 철학자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에 글을 연재하다가 독자들이 어렵다는 하소연에 중도하차하기도 했으니 오죽 하겠는가. 개중에 《동무론_인문연대의 미래형식》(한겨레출판, 2008)에 실린 글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최측의농간에서 첫 번째 철학서로 《동무론》의 신판을 냈다. 초판의 일부 오기와 구성을 바로잡고 초판에 대한 비판적 후기를 겸한 새로운 서문과 함께 초판 이후 확장되고, 심화된 사유의 한 기록으로서 ‘보론’에 해당하는 ‘존재의 개입과 신생의 윤리’를 수록했다. 참 반가운 일이다.

《동무론》은 철학자가 1990년대 초부터 〈장미와 주판〉을 중심으로 인문학 공동체 운동을 꾸려오면서 공부하고 사색한 것들을 쓴 것이다. 이 책은 인문(人文)의 무능을 인문(人紋)의 축복으로 전복하는, 인문좌파적 실천 연대를 꿈꾸는 책이라는 평을 받는다. 현재 그는 밀양에 머물며 사색과 집필 그리고 강연에 힘을 쏟고 있다. 

 

내게 있어 결국 철학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학술, 그리고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제반 수행적 실천이 인문공동체라는 형식을 통해 만나게 될 것은 이 노력의 성격상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노력을 믿었고, 이 공부길의 다짐을 전파하였으며, 부족한 재능과 인끔으로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의 꿈을 구체화하고자 애썼다.” - 신판 서문에서

 

철학자는 “인문학이 삶을 대하는 부실한 자세 하나 바로 잡지 못하고 단지 가성비 좋은 지식상품으로 소비되고 마는 세태를 치열하게 비판”한다. 자본의 위세에 눌린 인간들이 본성을 잃고 길을 헤매는 이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같은 근원적인 물음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좋은 물음은 새 문을 열어내고, 절실한 물음은 내 삶을” 새로 여미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진정 가까이 만나야 할 대상은 ‘동무’다. 서로를 벼리고 비추는 존재, 때로 어긋 내고 때로 어우러지는 존재다. 부족한 재능과 인끔(인간의 됨됨이)을 서로 보충해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이다.

 

저자 김영민 철학자

 

인문적 삶과 실천의 기본양식, 그 세세한 버릇의 양태를 바꾸지 않고서는, 혹은 간단히, 친구라는 그 명사를 ‘동무’라는 그 부사, 혹은 동사로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고서는, 우리 시대의 모든 진보는 헛손질이며 헛힘이며 헛구역질이다. 자본과 권력사이를 줄달음치는 속물적 인정투쟁은 물론이거니와 그 한시적 반(反)문화로서의 냉소(주의)를 경계하는 이유도 필경 그 제스처들이 인문적 삶의 양식으로, 그 무늬로, ‘산책’으로 내려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9쪽)


자본이 체제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 관계는 왜곡되고 뒤틀리기 쉽다. 살아남기 바쁜 우리들은 분노하고 저항하기보다 애써 침묵하고 방관한다. 그렇기에 철학자의 ‘동무’는 시대(의 요구)와 과감히 불화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발견한다. ‘동무’는 친밀함보다는 서늘함을 그리고 끈끈함보다는 (빈)틈을 동력으로 삼는다. ‘동무’는 친구들의 외부성과 타자성에 귀기울이며, 변화한 시숙(時熟)의 무늬와 그 가파름에 관심을 기울인다. 철학자는 여전히 서늘한 인문학적 연대와 공동체의 부활을 꿈꾼다.

철학자에 따르면 ‘인문’은 ‘무능’을 그 본질적 속성으로 내포하는, 자본제적 삶의 양식 속에서는 보다 철저히 ‘무능’한 것으로 배척당하는 것으로서의 인문이다. 무척 흥미로운 관점이 아닐 수 없다. 난 여기서 장자의 무용지물(無用之物)을 떠올린다.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그렇다면 ‘무능지인(無能之人)’은 어떤가? 능력 없음의 능력 있음이라.

인문(人文)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능력 없음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 능력 없음을 찬찬히 살펴 이를 극복하고 이겨낼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는 이것이 ‘인문(人紋)’이라고 했다. 사람의 무늬를 재발견하는 것은 ‘무능’한 것으로서의 인문의 ‘유능’이요, 이는 곧 ‘동무’들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동력이다.

책은 사유의 즐거움과 독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비록 읽어내기는 녹록지 않지만, 애써 읽다보면 익명의 무의식 속에서 온전히 세상과 맞설 힘이 익어가지 않을까 싶다.

 

"글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 때, 그것은 글의 문제이기 이전에 보다 중요한 뜻에서 세속이 구비하고 있는 응답의 가능성과 그 한계의 문제다. 세속과 읽히는 책의 공모는 그 응답의 가능성과 한계를 규제하고 조작함으로써 계속된다. 그리고, 글쓰기의 신뢰는 바로 이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열어주는 공간 속에서 낯설고 힘들게 건설되는 것이다. 내 글이 나의 타자가 되는 그 어려운 응답 속에서 내 글은 길게 돌아오는 나의 손님이 된다." (109~110쪽)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상처는 예감되지만, 그 상처의 길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깨달은 것을 밝은 길 위에서 놓치듯, 말이다. 구조와 패턴의 인과성은 환하게 보이더라도, 개인의 이치를 설명하는 인과율은 어디에도 없는 것. 아, 개인은 영원히 어리석다.
실은, 너를 만나는 일이 재난인 줄 알고 만난다. 그리고 그 재난이 어떤 종류의 반복인 사실도 환하게 안다. 정작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재난을 회피할 정도로 내가 내게 행복을 허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18쪽)

"프랜시스 베이컨에 따르면, 좋은 말(馬)은 무엇보다도 질주하는 도중에 급히 설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가늠하고, 좋은 말(言)의 특징 역시 미끄러지는 자신의 말을 중단할 줄 아는 지혜 속에서 측정한다. 공원(公園)이 공원(空圓)이어야 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그 텅 빈 원 속에서, 자본과 욕망의 계선을 쫓아 질주하던 자신의 삶을 중단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 삶의 계선과 방향을 다시 음미하고 조정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공원(空圓)으로서의 공원(公園) 말이다. 어느 사상가의 말을 원용해서 정리하자면, 공원의 뜻은 '이성의 빛'에서 물러나와 '존재의 빈터'를 체험하는 시공간의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322쪽)

YES마니아 : 로얄 h*******c 2018.12.13.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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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60 동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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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60《동무론》 김영민 최측의농간 2018.11.15.공부하고 사랑하는 이들이여, 진지하고 성실하게 의도하여라. 네 꽁지 뒤로 상처와 어리석음이 는개처럼 피어오르리라. (21쪽)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왜, 약속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일까? (119쪽)동무의 길은 군주와 나비의 길, 강자와 약자의 길이 알지 못하는 새 길이다. (160쪽)반복되지 않는 행동을 일러 용서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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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60


《동무론》

 김영민

 최측의농간

 2018.11.15.



공부하고 사랑하는 이들이여, 진지하고 성실하게 의도하여라. 네 꽁지 뒤로 상처와 어리석음이 는개처럼 피어오르리라. (21쪽)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왜, 약속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일까? (119쪽)


동무의 길은 군주와 나비의 길, 강자와 약자의 길이 알지 못하는 새 길이다. (160쪽)


반복되지 않는 행동을 일러 용서할 수 있는 실수라고 하는데, 반복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고장난 기계를 용서하지 않고 수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188쪽)


누구든, 김현을 말할라치면 곧 술(酒)을 말했다. 내가 모르는 그 술자리들은 오직 실없는 추정 속에서야 가능해지는 잉여의 빛을 발했고, 주정(酒精)으로 빚은 듯한 그 소문 속의 낭만주의는 김현의 인간미에 겹의 아우라를 보탰다. (378쪽)


교환의 중요한 배경은 시선(視線)이다. 시선과 교환은 조용하거나 마찰하며 공생하거나 갈등한다. (529쪽)



  우리는 모두 배우는 사람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말을 배우고, 어른은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웁니다. 하루하루 말을 배우면서 생각을 어떻게 펴면 좋은가 하는 길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사랑을 배우면서 살림을 어떻게 지으면 아름다운가 하는 길을 깨우칩니다.


  학교라는 곳에 다녀도 배우고, 집이나 마을에서 살아도 배웁니다. 바라보는 모든 것을 배우고, 손에 쥐거나 만지는 모든 것도 배워요. 바람 한 줄기를 배우고, 꽃 한 송이를 배우며, 밥 한 그릇을 배웁니다.


  때로는 책을 펴서 배워요. 이웃이 온삶을 바쳐 지은 책을 두 손에 펼쳐서 차근차근 읽으며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새롭게 책을 지어서 더 배울 뿐 아니라, 이웃이 배울 수 있는 길도 틉니다.


  《동무론》(김영민, 최측의농간, 2018)이라는 책은 글쓴이 스스로 배움길을 걷는 하루를 갈무리합니다. 학자라는 자리에서 어떻게 배우는가를 가만히 들려줍니다. 이렇게도 생각하다가 저렇게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이 사람을 만나다가 저 사람하고 부대끼면서 배웁니다. 어른하고 술자리를 하다가 동무하고 술잔을 부딪히면서 배웁니다.


  모든 배움자리는 삶자리예요. 배우는 곳이 스스로 살아가는 곳이에요. 배우기에 살아갈 수 있고, 배우는 나눔길을 함께 가꾸지요. 그런데 이 책 《동무론》은 꽤 어수선합니다. 마땅히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데, 배우는 길이거든요. 배우기에 이리 치이고 저리 넘어져요. 이렇게도 살피고 저렇게도 파니까 어수선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배움길을 지나 어느 만큼 생각을 다스리는 때에는 한결 부드러우면서 정갈하고 쉬운 말씨로, 참말로 삶에서 비롯하는 사랑이 샘솟는 말씨로 이야기를 펴리라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h*******e 2018.1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