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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일로 정형화된 삶의 리듬이 깨어질 때 갖는 삶의 무의미와 덧없음은 고통을 가중시킨다.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마음의 구멍은 커지고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상처는 참혹한 삶을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이끌기도 한다. 오염물로 가득한 옷가지들이 던져진 세탁실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가 일상 깊숙이 배어 삶의 용기까지 앗아갈 때 존재의 이유를 생각지 못할 때가 있다. 가족이라는 사회를 돌게 하였던 톱니바퀴가 다 무너져회복 불능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요나스는 죽음을 결심하였다. 49세 남성 요나스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우리 딸은 사실 당신 자식이 아니다.’ 라는 황당한 고백과 함께 일방적인 이혼 통보를 받는다. 지금껏 님페아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생각은 떠올려 본 적도 없었기에 그가 받은 상처는 삶의 회의로 이어졌을 것이다. 정신을 앗아 생물학적인 기능까지 마비시켜 죽음을 부추기는 치매에 걸린 노모는 요양원에서 지내며 아들에게 엉뚱한 말들만 반복하여 아들의 마음을 짓누른다. 부정적인 상황들이 야기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잃은 요나스는 자살 여행길에 올랐다.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과 끝자리가 같은 날에 이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요나스는 남루하고 불행한 삶에 마침표를 찍으려 했다. 자살 방법을 강구하던 그는 스바누르에게 사냥총을 빌리기도 하고, 목을 맬 생각 등을 하다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의 죽음은 흔한 일로 주검을 거두는 일도 간단한 편이라 전쟁 와중에도 운영하고 있는 ‘호텔 사일런스’로 숙박 지를 정했다. 평소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하고, 필요한 것을 잘 만들어 쓰는 이력이 뛰어난 그는 공구함을 든 채 익명의 공간에 나타났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기능 수행이 어렵고 필요한 물자 조달도 어려운 때 요나스는 자살 계획을 미뤄야 했다. 온갖 사물들이 뒤죽박죽 섞여 용도를 분간하기 어려운 광경을 목도하며 평화가 깨진 우리 삶의 이지러진 형상을 떠올린다. 자기방의 수도관을 손보게 된 계기로 호텔의 여러 곳을 손보게 되고 마을의 일을 돕게 된 그는 공동의 선을 실현하는 이로 자리해 간다. 원하지도 않는 전쟁을 겪으며 많은 것들을 잃고 황폐화된 땅에서 일어서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은 전쟁 와중에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았다. 가업인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피피와 메이 남매는 공구함을 든 투숙객에게 고장 난 곳 수리를 부탁하는 대신 숙식을 제공하는데 뜻을 같이했다. 막힌 배수관이 뚫리고 흩어진 파편들을 붙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는 '미스터 다 고쳐'로 통하며 인근 동네에까지 소문이 자자해졌다. 호텔 구석구석을 돌며 망가진 것들을 고치며 인정받은 그는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삶의 이유를 서서히 찾아갔다. 호텔 사일런스를 운영하는 남매는 그동안 방치되어 노후화된 시설들을 고쳐 정비해 사람들이 머무르고 싶은 숙소로 변모시키려는 꿈을 조금씩 이뤄갔다. 자신의 불행이 제일 크다고만 여겼던 이들이 자신의 경험보다 불가항력적인 극한 삶의 붕괴를 경험한 이들 앞에서는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전쟁 와중에 여자들이 온전하게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음을 망국의 아픔을 담은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의 고통 속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이들이 서로 마음 한자리 내어 잔상들을 침묵 속에 어루만지며 함께하는 생활은 공동체적 삶을 구현하는 수행공간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확실한 건 누구나 혼자 죽는다는 거네.’ 요나스의 말벗 스바누르 역시 죽음을 떠올리며 지냈는지도 모른다. 미답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트레일러까지 꼼꼼하게 손보던 스바누르가 바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또 다른 삶을 침묵한 이유가 무엇인지 떠올리게 한다. 남들처럼 사랑도 하고 사랑의 아픔으로 울기도 하며 괴로움에 떨다가도 주어진 삶의 몫을 주도적으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총상으로 청각을 잃은 아담, 전쟁 중에 불구가 된 이들, 가정 폭력으로 상처 난 가슴을 침묵으로 덧칠하며 사는 이들이 흔한 곳에서 인간의 위해성을 떠올린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가슴에 난 상처를 연꽃잎으로 가려 자기 정화를 꾀하며 요나스는 미스터 기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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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생각하던 스바누르와 요나스가 ‘인간이 우는 존재’라는 것에 더 집중했다면, 요나스의 딸 님페아는 ‘인간이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란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 틀렸다. 울고 웃는 건 인간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인간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일기를 쓰는 동물이라고. 이혼할 때 딸 님페아조차 진짜 혈육이 아님을 알게 된 요나스는 더 이상 놀라울 일도 없고 살아야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마흔아홉 생일 즈음에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가족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쟁 중인 나라로 마지막 편도 여행을 떠나는데, 자기 이름이 적힌 일기장을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외국에서 버리려고 챙긴 일기장과 자살할 때 쓰려고 했던 공구함은 전혀 다르게 쓰인다. 일주일 뒤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 예상했지만 보기좋게 예상에서 빗나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 도착한 요나스는 도착한 직후부터 자신이 가진 것, 부족의 다른 면을 생각하게 된다. 지뢰에 한쪽 팔을 잃고도 유머 넘치게 택시를 모는 택시 기사부터 그의 편견을 깨부순다. 편안하게 묵을 줄 알았던 호텔 사일런스에 도착하자마자 요나스는 공구로 세면대 수도꼭지를 수리한다. 그런데 삶은 대체로 이렇지 않던가.
“너의 실존에 종말을 고하는 대신 차라리 너 자신이기를 멈추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떠냐”(p139)는 꿈속 어머니의 말처럼 이 폐허의 공간에서 요나스는 뜻하지 않게 다른 사람이 된다. 아이슬란드에서 무력하고 쓸모없게 느껴지던 그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그를 필요로 한다. 새들마저 다시 날아오르려 할 때 도움닫기 하는 데 애를 먹는 불구이고,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먼지와 폐허뿐인 상황에서, 나의 불행은 아무리 후하게 봐주어도 하찮기만 하다.”(p177) 전쟁으로 쓰레기장이 되어서 쓰레기통도 없어 요나스는 버리지 못한 일기장을 읽으며 니체와 하이데거에 심취했던 젊었을 때의 그도, 지금의 그도 자신을 잘 모르면서 삶을 살았다는 걸 절감한다. 그가 알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엘리자베스 비숍의 문장 “상실의 기술을 제어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것이 상실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p191)처럼 죽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겐 모든 것이 죽음과 관련되게만 보일 것이고, 살아야 될 이유를 발견한다면 삶 또한 그렇게 보일 것이다. 죽는 것보다 적군의 손에 잡히는 게 더 두려웠던 곳, 전쟁 중엔 잠에서 깨어나는 1~2분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었던 이곳은 총 한 번 잡아본 적 없이 살아온 요나스에게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작가는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것은 이 세상의 혼란을 정돈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주고 싶다는 욕망”이었다고 했듯이 소설 속에서도 “욕망은 고통보다 힘이 세다”(p195)고 말한다. 하찮은 인생이 꾸역꾸역 이어져나가는 걸 참을 수 없어 그 모든 걸 끝장내고 싶어 한 요나스였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그는 고통보다 욕망을 더 느낀다. 고칠 것이 더 눈에 띄고 있어야 될 것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분서주하며 사실 자살할 여유도 없다. 목수도 배관공도 전기공도 아니지만 이 폐허의 도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사람도 없다. 그는 망가진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의욕을 얻고 호모 하빌리스 인간으로 다시 삶에 뛰어든다. 왜냐하면 ‘모든 고통은 서로 다르고 각기 다른 고통들은 비교하기 불가능하지만 행복은 누구에게나 똑같’(p248)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 몸의 세포들은 7년마다 완전히 새로 바뀌지만 요나스의 이 일주일은 그의 이후 삶 전체를 바꾼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호칭도 생긴다. “미스터 다 고쳐”, “미스터 기적”.
전쟁 속에서 상처받은 여성들이 그랬듯, 도시 속에서 죽고 싶은 생각으로 지낸 요나스가 그랬듯, 우리가 지금 각자의 삶에서 그렇듯,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며 산다. 요나스가 이 폐허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했을 때 그가 예전에 자살하기 위해 사냥총을 빌렸던 이웃 스바누르가 정작 자살하리라고는 짐작 못했다. 요나스가 스바누르 곁에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으로 다른 곳에 있다면 어떠할지를 생각하는 건 늘 우리의 상상 속에 있다.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까?”라고 한 스바누르의 자문에 지금의 나는 이런 답을 한다. 매일의 삶이 극복의 순간 아니겠냐고. 세상은 Mayday 조난 신호로 가득하고 사람들이 전쟁의 야만적 상태에서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이 지구의 삶은 참 이상하지만, 오래된 모자이크 벽화를 지키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접촉하고 사랑하고 헌신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고. 모든 것이 참을 수없이 멀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꺼지지 않는 별빛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않느냐고. 우리는 ‘바로 그날 아니면 그다음 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사랑을 멈추지 않’(p250)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ps) 요나스가 스스로 상처를 내는 문신으로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새긴 행위나, 죽음의 도시에서 자살로 끝내려 한 그가 자신의 탄생 달과 같은 메이(may:5월)라는 여성을 만난 것 등등 작가의 작위적인 설정이 눈에 띄지만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침묵이 필요하듯이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목소리 없이 사라져간 무명씨들을 위해 작가가 그런 것들을 간절히 필요로 한 마음을 더 이해하기로 했다. 자살을 생각한다면 요나스처럼 아홉 가지 물건만 챙겨 낯선 곳으로 떠나보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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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가 생각났다 자살이라는 소재 당장 자살하지 않는 부분 이 똑같았다 그런데 서론이 넘 긴 느낌이랄까 책 중간까지 조금 진행이 더디고 지루했다 중반이후에는 재미있어졌다 하지만... 메이와 요나스가 이루어지지 않은건 안타깝다 너무 스포성 내용인가... 헐리웃영화의 해피엔딩에 익숙해져서인지 조금만 더 해피한 결말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생각보다 그렇게 힐링되는건 모르겠다 그렇게 재밌지도 재미없지도 않은책 한번 읽어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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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맘에 들었던 힐링도서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죽고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거 같은데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가 점점 치유되는 이야기인데 너무 좋았어요. 누군가에게 불행한 시절은 오기 마련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울할때 읽었는데 요양온 기분 들었어요. 우울할때 밀크티와 함께 읽기 좋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