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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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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 차 이야기》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스님을 따라간 곳은 섬진강 물줄기 끝쪽의 백운산 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대평마을이었다. 이 식당을 찾아갈 때 기분 좋게 따라오는 한 가지 덤은, 주변 마을이 아주 아늑하고 정겨운 곳이라 옛날 동네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양철이나 슬레이트로 된 지붕을 잘 간수한 정갈한 옛날 흙집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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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 차 이야기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스님을 따라간 곳은 섬진강 물줄기 끝쪽의 백운산 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대평마을이었다. 이 식당을 찾아갈 때 기분 좋게 따라오는 한 가지 덤은, 주변 마을이 아주 아늑하고 정겨운 곳이라 옛날 동네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양철이나 슬레이트로 된 지붕을 잘 간수한 정갈한 옛날 흙집이 아직도 몇 채 남아 있다. 자장면집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당 넓은 돌담집이 있다.

 

마당에서는 몇십 년은 좋이 묵은 듯한 나무 여남은 그루에다 난초, 창포, 나리꽃이 돌담을 따라 심어져 있었다. 손이 많이 간 태가 역력했다. 돌 하나 튀어나온 데 없이 마당을 다듬어 반질반질했다. 대빗자루로 쓸어낸 큰 절의 마당이 연상되었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인데도 불구하고 밖에 나와서 뒹구는 농기구 하나 없다면 말 다한 거 아닌가. 근처의 번듯하게 지은 양옥을 여기에 댈까. 노인은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기름 낭비할 수 있냐며 마당 한구석에 말끔히 갈무리해서 수북하게 쌓아놓은 나뭇짐을 가리켰다. 집 뒤로는 해당화가 탐스럽게 피어 화려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설문조사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취미가 뭐냐고 묻는 항목에 가장 많은 사람이 대답한 것이 산책이었다. 산책이라는 말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남은 열량을 태워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명상과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귀농인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아주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악양 미서마을로 귀농한 오윤수, 이오생 부부 얘기다. 자연 안에서 건강을 지키며 살겠다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되면서 하지 않게 된 것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뭐냐고 묻자 돌안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산책입니다. 예전엔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매일 집 근처를 산책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그런 욕구가 별로 일어나지 않아요."

 

 

차를 또 한 번 우려내기 위해 다관에 물을 따르는 선정 스님의 손에 문득 눈길이 같다. 손마디가 굵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손가락 끝이 갈라지고 굳은살이 닥지닥지 앉아 있었다. 나는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솥에 차를 넣고 덖다 생긴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생겨 아예 굳은살이 된 것이다.

 

"나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언젠가 내가 차를 제대로 만드는 법을 찾다가 중국 용정에 간 적이 있었거든. 허드렛일 거들며 제다법을 배우려고 막일하는 사람으로 변장하고 차 만드는 집에 들어 갔어. 그런데 글쎄 마당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한 후 하얀 천을 깔고 그 위에서 작업하는 거야. 찻잎을 만지는 손길 하나하나가 그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었어. 그 사람들한테는 차가 곧 부처야. 부처님 모시듯 차를 만드는 걸 보고 내가 여태 만든 건 차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거기서 한 달 공부하고 오니까 무엇을 해도 불평이 안 나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만 자꾸 들고……."

 

 

지리산 주변 마을에 빈집이 생기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알려온다. 그는 한곳에서 그리 오래 정착하지 못한다. 짐도 단출해서 언제든 가방 하나 챙겨들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자신의 시에서 스스로를 '바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는 정말 바람처럼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 지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이다.

 

언제가 이원규 시인이 관음사 주지인 지인 스님과 함께 들른 적이 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찻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지리산 자락의 소식을 전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지리산 풍광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때로는 어처구니없이 훼손된 자연에 대해서도 함께 개탄하나. 시인은 반야봉 근처에 백작양 군락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섬진강변 작은 마을에 대목이 한 사람 살고 있다. 그는 못과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추는 방법으로 집을 짓는다. 산자락에는 시멘트나 벽돌로 지은 집보다 나무와 돌과 흙으로 지은 집이 더 잘 어울린다. 그 목수는 남의 집은 잘도 지어주면서 정작 자신은 집이 없다. 차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동네에서 일손이 필요한 집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 거든다.

 

남 아쉬운 것 가만히 못 보고 자기 것 퍼주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은 애초에 공부를 하러 지리산에 내려왔다고 한다. 유불선을 망라한 공부가 깊어 동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를 찾아간다는 말도 들린다. 원래 전공은 사학인 사람이 무슨 깊은 뜻이 있어 지리산에 내려와 혼자 살면서 공부에 전념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 자신보다 남의 입장을 돌보고 한 걸음 앞서서 사태를 바라보는 넓은 눈을 통해 그의 공부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만을 짐작할 뿐이다.

 

 

현대의 농업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본래의 기능에서 멀어져 돈을 창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농산물의 최종 소비자인 인간을 잊었다. 먹는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행하는 일상적인 행위다. 제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결국 그 인간을 만드는 원천인 것이다.

 

먹을거리를 통해 인간은 자연과 관계하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농업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자연을 존중할 줄 알고, 자연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농업의 중요성을 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0.10.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