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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란 말은 <역경>에 나오는 '개물성무(開物成務)'와 '화민성속(化民成俗)'의 합성어로서 개물성무는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개발하고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게 한다는 뜻이며,화민성속은 무지한 백성을 교화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만든다는 뜻이다.이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
기울어가는 구한말 19세기는 세기의 초입부터 다음 세기까지 왕조의 정권유지,외척의 세도,천주교인 탄압,외세의 개방압력 그리고 외세의 지배로 이어지는 힘없는 조선의 지난 궤적이 바꿀 수도 없는 엄연한 역사의 장이었다는 것을 통감한다.소수의 권세와 배부름,미래의 국가 대계를 위한 개혁과 혁신보다는 체제수호 및 일부 세력 유지로 인해 구한말 사회상과 관료들의 부패,민생도탄 등을 국론을 분열시키고 이웃 열강들에겐 조선을 삼키려는 좋은 구실을 안겨 주었다는 아픈 교훈을 얻게 된다.
18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실학사상과 서양선진문물에 대해 서울 북촌 양반집 엘리트들은 박규수 집 사랑채에 모여 오경석,유대치 등이 서양선진문물에 관한 서적과 불교의 인권 평등사상을 주제로 탐독하고 토의했는데 이것은 유교의 위계질서를 통치수단으로하는 조선 왕실 당국과 민비 측근 수구파에선 볼 때 개혁파들이 탐독하고 토의하는 것은 그들에겐 '불온서클'이고 '반체제집단'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고종의 부인 명성왕후는 순종(1874년생)을 낳으면서 시아버지 흥선 대원군을 시골로 쫓아 내고 민비 체제를 확고히 한다.1860년대 천주교인 탄압과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1875) 그리고 임오군란(1882년)은 기존 병사들에 대한 푸대접과 별기군의 창설로 조선에 대한 청국의 영향력이 거세지자 김옥균을 위시한 급진 개혁파는 일본에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게 된다.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 들이고 개화하는 방법을 놓고 각론적으로는 다른 견해와 자세를 보인다.김옥균,박영효,서상범,서재필들이 급진 개혁파라면 김홍집.어유중.김윤식 등은 개화사상의 본질은 동일하되 체제와 제도를 지키면서 서서히 개화하자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주창한다.특이한 점은 갑신정변을 앞두고 김오균은 환관 유재현과 궁녀 고대수(顧大嫂:되돌아보게 되는 통 큰 여자) 등을 포섭하여 궁궐 내의 주요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는 점이다.
김옥균의 정신적 스승격인 박규수,오경석,유대치 등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1884년 12월 4일 우정총국 앞에서 정강 14개 조항을 <갑신일록>에 남기고 있다.청에 볼모로 가 있는 대원군을 조속히 귀국케 하고 청국에 대한 조공허례(租貢虛禮)를 폐지하자는 것부터 6조(曹) 외에 불필요한 관청을 모두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들이 심의하여 처리토록 할 것까지 14개 조항이 개혁의 절실함을 보여 주고 있지만 왕조 수구 및 민비세력 등에 의해 갑신지변 세력들은 망명을 해야 하고 부침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김옥균은 김병기의 양아들로 그가 태어날 당시는 중국에선 홍슈취안의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고 영민함과 달변,해박한 지식과 진보적인 세계관,모험심과 추진력,그리고 정적의 자객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 러시아 10월 혁명의 주인공 트로츠키와 비슷하다.그는 국제 정세에서 국가와 지도자가 나아갈 방향을 쓴 기화근사(箕和近事)와 조선의 영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조선여지도(朝鮮輿地圖)를 만들기 했다.불미스러운 점은 문공사관으로 증광시(천연두에 걸린 왕세자의 회복을 바라기 위해 실시한 특별 과거시험)를 관장하게 되었는데 양반 자제들만 합격이 되어 불공정한 시험이라는 이유로 평안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조급하게 거사한 갑신정변은 실패가 예견되었고 그는 치토세마루선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그는 문명개화론자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그는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를 쓴 장본인이기도 하다)를 만나기도 하고 생명의 은인 치토세마루 선장 쓰지카쿠,치치시마에서 만난 와다는 그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동행이 되어 주고 김옥균의 도움으로 한성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게 된가이군지의 충정,홋카이도에서 만난 연인 스키타니 등은 망명시절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흠모했던 인물들이다.
조선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 홍종우는 귀국길에 일본에 당착하고 김옥균을 호시탐탐 죽이려 했던 이일직에 의해 돈으로 매수되면서 홍종우는 정변으로 출세길이 막혔다고 생각하던 참에 절호의 기회를 타게 된다.자신을 믿고 따라 주는 김옥균은 홍종우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조.중.일의 삼국평화의 염원을 담아 리홍짱을 만나러 상해에 몸을 맡긴다.그의 곁에는 홍종우,가이군지,와다,청국 통역관 등이 대동하게 된다.상해 동화양행(同和洋行)에 투숙을 하고 그의 조력자 와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김옥균은 <자치통감>을 읽고 있었던 사이 홍종우는 무방비 상태인 김옥균을 향해 세 발을 발사하게 되고 그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이 죽음은 고종친인척과 민비의 측근들에 의한 합작품이고 그의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암묵적인 방조라고 생각된다.
그의 시신은 몇 일이 지난 상태에서 인천을 거쳐 양화진에 내려지고 능지처사된 후에도 난도지을 다했는데 그의 죄목은 '모반대역부도율'에 해당하는 대역죄이다.또한 갑신정변을 일으킨 주역들의 가족과 친지들도 연좌제에 의한 심한 탄압과 자살 등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고 아관파천 직후 친러파인 이범진.이완용의 꼬임에 빠진 고종은 김홍집.김윤식.어윤중.정병하.장박 등도 포살령(捕殺令)이 내려지면서 안타깝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갑신정변의 실패는 갑오동학혁명,을미사변,을사늑약,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구한말은 스러져 가는 나약한 왕조와 무능으로 인해 주권을 빼앗기게 되는 통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또한 이 글을 읽고 있는 21세기 한반도는 김정일 사후로 남북관계의 재정립과 이웃 나라와의 관계개선과 실익을 도모하고 민생을 위해 위정자들은 돈과 명예,권력의 밥그릇 챙기기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문제이다.특히 남북한 통일문제에 있어서는'봉산개도(逢山開道),우수가교(遇水架橋):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듯이 난관을 차근차근 돌파해 간다)를 지난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인내력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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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김옥균이란 이름은 갑신정변을 이끌었던 인물이란 점보다는 나보다 한살 아래인 같은 이름의사촌동생이 있어 더욱 확실하게 각인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동생도 김옥균과 같은 나이에 죽었다. 물론 김옥균처럼 파란만장한 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지병으로 외롭게 죽었다. 사촌이지만 어린시절 친 남매처럼 자란 사이라 더 안타깝게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픔이다. 그리고 바둑이 취미인 나는 김옥균이 바둑의 고수라는 점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바둑과 관련된 그의 일화를 찾아보기도 했다.
김옥균과 젊은 그들이 주동했던 갑신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은 급히 일본에서온 우편선 치세도마루호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치세도마루호로 몸을 피해왔을때 그 배의 선장인 쓰지카쿠 사부로는 일본 공사관 다케조가 김옥균 일행을 배에서 내리라고한 명령을 어기고 목숨을 구해 준다. 그후 김옥균이 일본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여러 일본 명사뿐 아니라 신분의귀천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방면의 사람들, 오지사하라 섬에서는 와다 엔지로라는 소년과의 우정까지 아주 폭넓은 사람들과 교우한다. 이런 점을 보자면 김옥균의 인간성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박영효처럼 권위주의에 빠져서 고고한척하는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인의 풍모를 갖추었던 인물이었다. 이책에서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급진개화파의 인물들과 그후 갑오개혁에서 을사늑약까지 활약했던 온건 개화파의 주요인물들까지 그들의 생애와 사상을 짧게 남아 되집어 보고 거기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준 책이었다. 그 때 활약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진정 나라를 걱정했고 외세에 대항해서 조선이 어떻게 해야하느지를 치열하게 고민했으며, 나름대로 행동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었다. 을사늑약이후까지 살았던 사람들은 일부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조선 독립을 위해 일했다. 박영효가 일제강점이후 철저하게 친일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그의 김옥균에 대한 평가를 보면 아주 치졸한 인간성을 잘 보여준다. 어려서 부마가 되어 주위사람들에게 대감소리를 들으며 받기만 해보아서 남을 포용하거나 배려할 줄 모르는 심성을 가지게 되지않았나 생각된다. 서재필 박사에 대해서는 존경하던 마음이 많이 감해졌다. 조선인이길 거부하고 미국 유학이후에는 영어로만 말하고 일기까지 영어로 썼다니 철저히 미국인으로살아간 이기주의자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조선 독립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니 조금의 위로는 된다. 그리고 서광범과 김홍집 편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진정한 선비가 아니었나 싶다. 철저한 준비없이 정변을 읽으켜서 화를 자초했던 급진개화파들에 비해 김홍집을 비롯한 어윤중, 김윤식등의 생각이 오히려 합리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왜 이시대에 다시 김옥균과 젊은 그들에 다시 논하는가라는 마무리 발언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그들의 모험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결론짓고 있다. 참 알차게 잘 엮었다. 나는 이책에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그러나 안타깝게 생각 되는 점도 있었다. 고종이 철저히 무능하고 마누라의 치마 폭에 쌓여 줏대없이 처신했다고 되어있다.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기만 했을까? 그리고 명성황후 민씨를 처음부터 끝까지 민비라고 칭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친정세력을 동원해 정치에 깊숙히 관여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식민지 왜곡 역사에서 자신들의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기위해 고종을 무능한 왕으로, 명성황후 민씨를 치맛바람을 일으켜 나라를 말아먹은 왕비로 서술했다. 그리고 그들은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격하시켰다. 한마디로 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을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일본의 그런 시각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무척 안타깝다. 어느 대의 왕비도 그냥 성만 붙여서 부르지는 않는다. 이 점 외에는 참 유익한 책이었다. 다음 쇄를 찍을 땐 이 점을 고쳐서 인쇄한다면 훨씬 좋은 책이란 평을 들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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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후벼파는 절절한 사연들 조선이 낳은 비운의 혁명가 김옥균 . 간만에좋은 책 많이 소개시켜놓은 서적 만나서 나도 돌려드린다. 책 - 광해군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 일본우익의 어제와 오늘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약간비겨가서 - 베이징올림픽때 일본해라 표기하고 요즘은 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짓는다고 난리다 진화된 이이제이의 하나일뿐인데 같은 민족인 한일은 중국의 의도대로 싸우기만한다.
암살자의 말로는 너무 초라하고 비참햇다. - 우범술, 안두희 김옥균에게는 사람을 끄는 흡인력과 카리스마가 있어 한 번 그를 사귄 사람은 그와의 우정을 오래오래 간직하였다 -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호치민이 생각났다. 김옥균에게는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였지, 일신의 영화,영달이나 닥쳐오는 죽음은 부차적인 사안이었다. 페이지 142-3 갑신정변실패의 근본적배경 한번 곱씹을만하다. 페이지 302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 갑신정변을 비교분석했다 이것도 좋은 대목이니 여러번 곱씹어도 좋다.
글쎄 꼭 그들에게 디테일이 없어서 그렇게 실패하고 이용만 당했을까 우리에게 그 시대를 품어안을 정신이 부족해서일까 혹시 시간이 없어서 아니었을까 국제정세는 그렇게 냉혹하기만할까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양만춘이나 을지문덕등을 놓고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축구경기이기면 수없이 리바이벌하듯 그 자랑스러운 역사 리바이벌한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수천년동안 벌벌기던 그나라를 그리고 신흥 러시아를 이겼다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윤관이 만주의 갈라전까지 진출한게 자랑스럽다 일본도 우리가 원흉이라 불렀던 이토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황족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토 원흉과 원훈의 두얼굴'참조
우선 글 두개만 쓴다.
내가 너라면
부제 - 분단의 원인및 통일전 화합과 통일후 화합에 관한 담론 어려웠던시절 5개월 공짜신문에 5만원까지 준다고해 조선일보
를 1년간 구독한 적이 있다.
이시절 신문에서 추천해준 좋은 책이 많아 나의 독서에 상당히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보수신문들이 비숫하겠지만 그 당시 논설에선 북한수용소에서
의 잔학행위를 예로 들면서 임산부에 대한 널뛰기, 탈출자에 대
한 공개총살등 강철환씨의 수용소의 눈물에도 일부 소개되었던
무자비한 만행에 대해 통일후 반드시 처벌해야한다 강하게 주
장하고 있는 느낌을 많이받았다.
맞는 말이지만 과연 우리에게 그럴 명분이 있을까
시험이 2달후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신후 한 학생은 죽어라 공부
해 우등생이 되고 한 학생은 빈둥거리며 놀다 낙제를 맞았다면
어떨까
인조반정이후 조선은 300년 가까이 철저히 나라문을 닫고 쇄
국의 길을 추구했으며 일본은 1543년 다네가시마에 표착한 포
루투갈배 트럼앨타호를 시작으로 개방정책을 추가한다.
에도막부초기(광해군시절쯤) 개화파와 척화파의 갈등이 그들에
게도 있었지만, 나가사끼앞바다의 조그만섬 데지마만 개방하는
데서 합의점을 찾아내 1868년 메이지유신의 기틀의 계기를 만
들며 근대강국으로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초석이된다.
물론 일제의 침탈은 100% 나쁜 행동이었지만 이 글에서 한일
의 비교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토인비가 그랬다. 역사는 타원형으로 반복해서 돌아간다고
700년전 몽고의 일본정벌떄 고려의 국무총리격인 문하시중 이
장곤등은 칸에게 정벌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끝까지 노력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을 택한다.
우리는 생각하길 그 때 여몽연합군의 원정이 성공하여 일본을
싹쓸었어야 되었는데 임진왜란은 지옥의 전쟁이었고 36년은
지울 수 없는 상처이상이며 명성황후시해, 왜구의 잦은 약탈들
어찌 우리 잊으리 이 민족의 마지막까지라도... 하지만 그때 일
본은 가마쿠라막부정권이 실권을 잡고 있었으며 그들 열도인들
은 극한의 공포를 느끼며 자자손손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새긴다.
여.몽연합군의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여파로 일본의 막
부정권(무신정권)은 붕괴된다.
임진왜란은 풍신수길의 반대파와 이웃나라와 싸움을 붙인 침략
전쟁이며 막대한 자원을 수탈해간 수탈전쟁이었고 우리역사에
서 임진왜란은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역사책의 상당부분을 할
애하지만 일본 역사에선 몇 장도 할애안되는 소소한 부분일 뿐
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군사들 중 일부가 바다를 건너 싸우고 전
리품을 좀 많이 가지고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정도쯤으로 기
억할 것이다.
3공시절 월남파병때 우리는 국군중 일부만 해외로 보냈고 월남
인들은 수없이 유린당했지만 우린 단지 월남특수만을 기억할
뿐이다.
왜가 여.몽연합군의 국가적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때 우
리는 100년간의 몽고지배기와 공민왕시절의 내우외란으로 정
신이 없다가 1392년 이성계장군의 위화도쿠데타로 모든걸 잊
어버렸지만 돌을 던진 사람은 잊어도 맞은 개구리는 기억한다
고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될때 일본인들은 여.몽연합군을 떠
올렸다한다.
또하나 700년전 친원파문제를 해결못하고 토인비의 타원형의
역사는 지금의 친일파로 다시 나타나지만 우리는 그 문제의 근
본을 잊은채 단죄하기에만 급급해 보수신문들 특히 조선일보의
공감대를 못얻고 있는거라 생각한다.
고려시대 친원파는 친아무개파를 배태할 가능성을 남긴채 민중
속으로 사라져갔다.
지금 친일파도 그 전철을 밟고 있으나 아직 우리에겐 이 문제를
양자 모두에게 납득하게할 희망은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
해본다.
일부에선 통일후 북한수괴의실핏줄세력들까지 단죄하는 것처
럼 친일파도 단죄해야된다하지만 친일파를 단죄할 힘은 이미
대한민국은 상실한지오래다. 통일후 북한정권의 현장하수인들
에 대한 처벌도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한 일종의 물타기일
뿐이라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전조가 있다. 조선말 러시아의 남하와 영국의 거문
도 점령은 전조이며 아랍. 인도, 중국. 일본까지 세력을 형성한
앵글로색슨과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러시아의 2차전이 바로
6.25다 이미 일본이 항복할걸 암호문 해독을 통해 파악한 미국
이 만일 독일 같이 4개국이 일본을 분할한다면 북해도를 차지
할게 뻔한 러시아에 의해 태평양이 뚫리게 되니 천문학적 개발
비용을 투자한 맨해턴프로젝트(원자탄개발)를 사장시킬순 없기
에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고 연합국이지만 경쟁국인 소련으로
하여금 일본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무력행사였기에 소련은
미국의 의도대로 38선 이북에서 만족해야했으니 원폭이 어찌
보면 일본에겐 행운이요 한국에겐 재앙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
을까 생각해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친원파, 친일파청산은 이미 물 건너갔
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시는 친아무개파가 만들어질 분위
기가 조성되어도 그런 세력이 다시는 싹틀 수 없도록 조치를
미리 취하는게 지금으로선 최선책이라 난 믿는다.
언제까지 우리끼리 싸우며 국력을 소진시키며 언제까지 내 것
만 챙기다 같은 배에탄 사람을 외면할 것인가
그럼 어떻게했으면 좋을까 나보다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그 땐
내 의견을 언제든지 접을 의향이 있다.
내 생각엔 '한수를 건넌 침략자의 우두머리는 반드시 죽는다'가
해법이 아닐까
풀어말하면 이건 법이 아니라 관습법처럼 내려오는 일종의 백
성적인 약속인 셈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인정할 민족대표 몇 분이 모여 3개조 정
도로하면 어떨까 심플할수록 이해도 쉽고 전승되기도 쉬우며
그속에 내재되는 힘도 굉장해진다.
1조는 지금법을 만드는 순간부터 영원히 이 법은 존속될 것이
다고 2,3조는 친아무개파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런저런 규약을
두자는등등 물론, 이 법을 만들기전에 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후에 말이다.
우리는 북한 수뇌부나 실핏줄실행 세력까지에 대해서 처벌하길
원한다. 그럼 우린 깨끗한가 이승만시절 무수한 권력이 남용되
었지만 처벌된 사람이 1%라도 되었던가 군사정권시절 경제부
흥은 치적으로 치더라도 학원탄압,인권탄압한 사람들 누가 그
리도 많이 처벌했던가 그렇다고 지금 처벌하자는 이야기는 절
대아니다.
하나만 예로들겠다 1959년 자유당시절 여수여고에 다니던 (아
메리카 타운 왕언니)김연자학생은 친구형부가 일하던 민주당사
를 찾아갔다 나오던길에 그들을 배웅해주러 나왔다 헤어지고
당사 계단을 오른던 형부를 정치깡패들이 몽둥이로 때려 계단
에서 즉사시키는걸 본다.
마산의 김주열군과 경찰이 데모대에게 발포해 신문에 난 학생
들의 이름은 그래도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한 소소한 부분이고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이 정권의 실핏줄세력에 희생되어
생이 망가지고 운명을 달리했던가
그럼 민주화된 지금은 어떤가 사람이름 하나만 거론하겠다. 장
자 연
우리 앞가림도 못하면서 1950년 앵글로색슨의 대리인으로 북
으로간 우리 남한세력과 러시아의 남하세력의 앞잡이가된 북한
세력이 무어가 다른가
인조반정이후 300년동안 쇄국한 열등생에게 가해지는 선생님
의 체벌에 서러워만할게 아니라 어떻게하면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게 나는 순서라 생각
하며 남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최하층으로
전락해가는 새터민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만 지금 나에겐 남아
있다. 이들에게 손을 못내미는 사회보다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내가 미울뿐이다.
조상이 이룩한 과실을 자손이 수확할 권리가 있듯 조상이 저지
른 과실도 자손들이 책임질 의무가 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잠재되어 있는 모든 역량을 한데모아 먼
옛날부터 꿈꾸어오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무려
주는게 최선이 아닐까.
김연아와 이성계
--한 겨울의 얼음 석자가 하루 사이에 굳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월드컵과 양대올림픽에서 뜨거운 환희와 함께 우리의 저력을 확인했다. 운동뿐 아니라 경제, 학문, 하다못해 세계요리대회 마술대회등 소소한 것까지 우리는 세계를 상대로 우리의 저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ODA 받던 나라에서 베푸는 나라가 지구상에 유일하다는게 괜한 소리는 아닌듯 싶다. 이렇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우리가 근세에 왜 그런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진 역사를 가지게 된걸까 나부터도 우리역사가 부끄러웠고 그걸 극복하는데 이십년 가까이 걸렸다 생각하지만 우리민족 대다수 특히 역동성 있는 88세대 조차도 마음한구석엔 근세 우리역사에 대한 부끄러운 얼룩들이 지워지지 못한채 남아있을 것이다. 이걸해소하는게 나는 우리역사의 당면과제중 가장 시급한거라 생각한다. 역사의 과오로부터 배우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했던가 흔히 우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나라가 이꼴이 났다고 말을하며 배워왔다 과연그럴까 만일 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며 쇄국을 나라의 방향으로 잡던 그날 반대로 나라의 문호를 활짝열고 외부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유연성을 발휘했다면 그런 근세의 비참한 역사를 피할 수 있었을까 하나더해 그시절 왕이 고종이 아닌 세종이고 병부를 이순신장군이 관장하고 있었다해도 역사는 달랐을까 나는 우리가 배웠듯 단 한차례의 싸움도 없이 국권을 넘긴 현실에 더해 장렬히 싸우다 국권을 잃었다는 역사의 한페이지만 추가할뿐 모든 역사의 수레바퀴는 같은 위치를 굴러갔을거라 생각한다. 조선의 국시는 사농공상으로 정해졌다 또 외국에선 우리를 조선이 아닌 코리아로 부른다 왜일까 천하최고의 약수라해도 한그릇에만 담겨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썩어서 아무것에도 못쓰는 물이되고만다. 고려는 상업을 귀히여기고 장인을 우대하며 자주성이 강해 금속활자 고려청자 북진정책 여러대장경 코리아란이름과 불교예술 황제의 칭호까지 조선의 김치 불고기 누룩(여진어) 거북선등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조선의개혁정책은 그들이 요승이라 말한 신돈이 만든것을 패러디한 것이며 불교예술 자기 그외 문화 공예품 어느것하나 독창적인 것은 없다. 한글은 두가지 의견이 팽팽하니 접어두고라도 세종이 아니었으면 조선은 있어선 안될나라라 난 생각한다. 몽고의 말발굽이 지나간 수에즈 오스트리아의 노이슈타트 무굴 베트남서북쪽 운남까지의 나라중 그 나라의 국명이 제대로 보존된 나라는 지구상에 단하나 고려뿐이었다. 외세의 침략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말기 바란다. 고려는 군부가 여러개고 지금의 대한민국도 정당이 여러개다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군벌중 잘난사람이 실권을 잡다가 또 잘못하면 다른군벌이나 왕이 실권을 잡는것이 대한민국의 다수당제를 보는것같다. 조선은 어떤가 우선 탄생부터 사대다 자주성이 강한 고려인을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중국에 머리조아리는게 국시다. 조선 군벌들이 난립하면 왕권이 위험할 수 있다하여 모든 군권은 왕에게 집중된다. 북한도 수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한다 그러니 오랜가도 마지막엔 비실거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과 고려는 외부에 대해 모든 문호를 개방했지만 조선과 북한은 특정국가 한둘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문호를 열었을뿐 모든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했으니 지금은 북한도 대원군시절의 조선도 오랜세월 바가지의 묵혀놓은 최고의 약수 신세가 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본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란 영화를 안보신 분이라도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장수이야기를 안들어본 분은 별로 없으실것이다. 왜 될 성부른 사람은 싹부터 잘라버리는게 조선의 관행이었다. 그 사람이 커서 왕권을 위협한다면 그보다 악한 상황은 없기에 이순신이 그렇게 잡혀갔나보다. 왜 우리는 위화도회군에 대해 관대하게 대하는걸까 오로지 내 생각엔 왕십리 같은 스토리텔링과 일부 내러티브적인 면이 사람들이 흥미를 유발했시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웃민족의 뇌리에 중화사상을 주입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삼국지 하지만 그 속엔 무한한 스토리텔링과 얼마간의 내러티브도 포함되었기에 중국을 적대시하는 나라에서도 중화민족주의를 은연중 심어놓는 삼국지를 널리 권장하는건 아닌지 의심해본다. 대장금을 중국국민뿐 아니라 지도부까지 열렬히 환영한다. 왜 을지문던 강감찬 같은 역사를 가진 민족이 별볼일 없는 벼슬을 하던 명나라의 사신에게 최고의 실권을 가진 조선의 정승이 벌벌기니 이미 우리 스스로가 중국의 속국임을 증명했다. 더이상 동북공정이 아니라 한반도공정을 해도 우리가 대장금에서 모든 명분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중국지도부가 좋아라할 수밖에 이제는 대장금을 중국에 수출해서 외화를 많이 벌고 한류가 뻗어나가겠구나란 생각은 버리자 조선시대에도 중국에 조공하는 물품보다 받아오는 물품이 더 많았다. 우리가 위화도쿠데타란 역사로 인해 우리민족에게 씻지못할 오류를 저지르고 있으때 명나라의 침략을 받은 월남은 항복한 명군을 선처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아량까지 베풀었다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는 오피러스를 타는데 그들은 자전거밖에 못갖는 처지라고 으스대지말자 김연아의 재능을 가진 우리겨레가 지난600년 동안 이성계가 자기일족의 영화를 위해 우리민족에게 굴레를 씌웠던 사농공상의 허상에서 이제는 빨리 벗어나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는 일을 만들지 않는 각성이 온 국민적으로 인식될때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조금은 우월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고려에는 벌리사란 직업이 있었다 한강이북에 왕기가 있다하여 오얏나무를 심었다 기른후 자르는 직업이었다. 그 오얏나무를 심은 곳이 바로 강북구 번동이다. 제발 대한민국엔 벌리사란 직업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그들에겐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이론은 실제를 실현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사마천 사기의 자객열전편에 "사나이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 마음에 새겨진다. 김옥균에 대한 황현과 주시경선생의 평가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영웅이 없는 나라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영웅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불행하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있다. 사후 약방문격이라도 분석은 분석으로서 필요하다는 말씀 좋은 말이었고 임진왜란후 일본은 근본적으로 왜 우리가 조선과의 전투에서 고전했는가를 연구했지만 우리는 광해군의 개혁정책을 인조반정이란 수구세력이 제압함으로 계속 울타리속에서만 안주하려는 우를 범했고 그게 오늘날의 FTA나 소고기 협상으로 다시 재현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책속에 "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죽음에 처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마천의 글귀 인간은 어차피 한번은 죽는다. 그러나 죽음에 처했을때 어떻게 대처하고 처신하느냐가 더 어렵고 중요하다. 페이지281어윤중의 올곧은 성품 페이지 136의 김옥균의 인간성에 대하여나왔고 그와 한번 연을 맺은 사람은 결코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페이지278 김홍집의 인간미와 절개 페이지279 황현의 김홍집에 대한 평가 그와 반대로 민영익의 한심한 행각과 안중근평전에서 상해로간 안중근이 도움을 요청하자 니나노하던 그의 모습에서 참 비애를 느낀다. 페이지270어리석은 고종 - 줏대없는 고종은 위기상황에서 끔찍이 신임하고 의지했던 총리대신 김홍집을 헌신짝처럼 매정하게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포살령까지 내렸다. 마지막으로 페이지 157의 글귀가 눈에 들어와 옮겨적고 내가 쓴 글 두개만 끼워넣고 마치려한다. '역사에서 모순에 찬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분연히 일서는 젊은 그들이 있었기에 그 나라 그 역사는 그래도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갑신정변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의 모순을 혁파하려는 젊은 엘리트들의 행동하는 양심,행동하는 지성의 선례를 보여줌으로써 특히 후세의 젊은 세대에 대한 민족적 자각의식과 조국의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었고, 방법론에서의 잘못은 하나의 반면교사역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아사다마오와 안톤오노 한일어는 의태어 의성어가 발달했다. 우리가 잊은 것들 내 글에서 항상 일회용종이컵과 일회용나무젓가락이야기
가 등장해 얼마나 해로운지 여기서 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글을 마치려한다.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고 있지만 일본대지진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었다. 그 때 가장 이슈가 된 문제가 방사능
피폭이다. 일본정부에선 별문제 아니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가 되는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생선회
문제, 사고 이후 방사능이 섞인 물을 바다로 방류해 어민
들의 항의가 무수했지만 그 피해는 어떨까 플랑크톤, 작
은물고기, 큰물고기 대충 이렇게 피폭은 골고루 된다. 피
폭된 플랑크톤을 먹은 피폭된 작은 물고기는 피폭된 큰물 고기에게 잡혀먹히고 이런 먹이사슬은 영원히 반복되며
몸속에 계속 쌓여간다 중금속처럼 그 큰 물고기가 횟감용
물고기인 광어나 우럭 종류다.
새마을운동때 전국에 쥐약을 뿌렸다. 여우나 늑대는 1년
에 쥐를 수도 없이 잡아먹는다는데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우리는 쥐약을 뿌려댔고 여우,늑대는 이런 죽은 쥐들을
잡아먹었다. 처음 두세마리는 먹어도 끄떡없었지
만 10마리를 넘기자 이 쥐약이 몸에 축적이 되고 결국
세계모든곳에 골고루 분포하던 여우는 남한땅에서만 자취
를 감추었다 한다.
생나무로 1회용 나무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가공
하고 약품처리를 해야할까 어느집에서는 모아놨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걸 무수히 본다. 어항에 넣어도 금붕어
가 다 떠오르지만 인체엔 전혀 이상이 없다 쥐는 먹고 죽
을 양이지만 여우는 살듯이 인간도 금붕어보단 훨씬 크
니까 하지만 몸속에 미량씩 축적이 된다는걸 왜 모를까
또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지구의 허파인 숲
은 또 얼마나 황폐화 되어지고 있을까 그런 사람들도 우
리집 정원에 조그만 나무하나 누가 잘랐다면 기절하며 싸
울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1회용 무엇무엇을 위해 잘려져나가는 큰 나무엔 관심도 없 어하면서...
난 중앙청이 옛총독부건물이란걸 안 후부터 저 건물언제
없애냐만 관심거리였다 5공시절 논의 끝에 국립중앙박물
관으로 승격시켜 건물을 운영했다. 또 대학시절 교수님께
등떠밀려 할 수 없이 간 기억이 나는데 안 건물 중앙홀
윗부분벽에 서양화가 그려져있다 게으른 사학자와 공무원
들 뜻있는 사학자들이 왜 우리 귀한 유물을 일본인이 지
은 건물에 전시하냐고 따질만했다. 그 그림은 금강산에서
전해지는 선녀와나뭇꾼 이야기와 후지산에서 전해지는 하
고로고우의신화가 비슷한 점이 있어 내선일체를 외치던
사람들에겐 구미에 맞는 내용인지라 이걸 서양화로 어슴 푸레하게 희석시켜 눈치못채게 만들어 그려놓은 것인데
그런것하나 손도 못대고 내부수리를 끝마쳤다고 큰소릴치
니 사학계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
북한산은 예로부터 大자 형상이고 총독부는 日자 형상이
며 옛날시청은 本자 형상으로 지어 대일본을 나타내는 뜻
으로 삼았다.
김영상정부시절 이 중앙청을 놓고 국민들의 의견이 둘로
갈린다. 하나는 보존해야 한다는 쪽 하나는 허물어야 한
다는쪽 나도 물론 허물어야한다는 쪽에 있었다.
중앙청이란 말도 미군이 주둔하면서 총독부건물의 명칭을 캐피털 홀이라 명 명한 것을 우리는 그 영어뜻 그대로 옮
겨 중앙청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런 중앙청이란 이름처럼 우리의 역사의식은 그 당시 표
류하고 있었다. 그시절 KBS토론에 이현희 성신여대사학
과 교수와 이태리에서 고건축학을 연구한 젊은교수간에
논쟁이 공개적으로 있었다. 이현희교수는 철거 그 젊은교
수는 보존쪽편에서 설전을 했는데 그 젊은교수왈 ‘왕조의
부활입니까’란 말이 참 인상적이었고 국민투표결과 오차
범위안이었지만 이현희교수쪽이 조금 우세했다. 젊은 교
수는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이현희교수는 득의만만한
표정이었다 누가KBS는 각성하라는 긴 글을 인터넷에 올 리는걸 아주 가끔 본다.
뭔 소린진 모르겠지만 난 지금 그 당시 KBS에 ‘KBS는
각성하라’말하고 싶다.
한국의 역사 전집을 난 여렷 읽었다 계몽사부터 이이화선
생님이 쓴 것까지 헌데 이현희교수가 쓴 ‘한국의 역사’는
한심하기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일제시대 우리는 살
기 더 좋아졌고 군사정권시절 지도자들은 큰 업적을 이루
었다는둥 비판은 없고 찬양일색이었다.
언제 솔로몬의 선택에 나왔던 변호사 한 명이 사기를 쳤
다는 뉴스를 들었고 그 피해자는 검증도 안 된 사람을 방 송에 나오게하면 어떻게하냐 욕하는걸 본다 KBS는 검증
도 안된 사학자를 방송에 왜 나오게했을까 한심한PD 한
심한 작가...
그래도 서울시청은 큰 돈을 들여 제모습을 유지한다니 우
리의 역사의식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옥에 티라면 시
청을 수리할 때 일본인이 패전후 시청안에 있던 신사를
다락방 같은 곳에 숨겨두고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을 우리는 발견하자마자 바로 부숴버렸다는 신문기사를
본다 속이 아주 시원했다.
마산에 몽고정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게 몽고간장이다.
합포라 불리웠던 마산은 태풍이와도 피해가 전혀없는 천
혜의 항구고 여기서 여몽연합군은 원정부대를 편성했는데
몽고군도 사람인지라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간장을 담아
먹었다는데서 몽고간장이 유래했다.
몽고에게 우린 많은걸 빼앗겼지만 우리 조상들은 나같이
어리석은 세대완 달리 몽고정을 원형 그대로 남겨두는 문
화인들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청속 신사도 원형 그대로 놔두었어
야되는데 아쉬움만 남는다.
일제시대 야나기 무네요시등 생각있는 일본인들은 아름다
운 자태의 광화문철거를 반대했지만 그 문은 부수어졌고
3공화국시절 다시 건립이 되었지만 풍수에 맞지않게 6도
비틀어지게 지었다 영친왕이 이승만시절 귀국을 거부당했
던 것처럼 왕조의 부활이 두려웠던 것일까 .....
11월이되면 교회마다 추수감사절을 지낸다. 어디가 기원
일까 왜 성탄절엔 칠면조 요리를 해서 먹을까 간단히 말
하면 추수감사절은 아메리카로 온 이주민들이 식량난에
허덕이다. 인디언들이 가르쳐준 농사법에 의해 추수를 한
후 살길이 열리자 하느님께 예배를 躍같효시이고 칠면조
는 플로리다를 포함한 동남부지역에 사는 토착동물이 칠면조이고 그 기원이 콜롬부스라고 얼핏 알고 있다.
두 번째 항해를 떠나는 콜롬부스에게 이사벨여왕은 돼지
를 가져가라했는데 돼지는 걸어다니는 식품저장고였고 매
독이 인디언들의 보복이라하지만 더 큰 피해를 입은건 인
디언이고 인디언을 멸종시킨건 유럽 농업의 대들보인 돼
지가 옮긴 탄저병, 브루셀라증, 렙토스피라병,선모충병,결
핵등 돼지는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고 사슴과 칠면조에게
병을 옮겼고 사슴과 칠면조는 다시 인디언에게 병을 전염
시켜 돼지 몇 마리만 숲을 어슬렁거려도 숲 전체가 병에
걸렸다한다.
그렇게 인디언들은 죽어갔고 겨우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뒤에 도착한 프로테스탄트들의 총에 멸절하고 그 위에서
주님에 대한 찬양을하며 추수감사절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오리너구리일 뿐이다. 진화의 중간단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물이니까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북방계가 78% 남방즉 인도남부 타밀족
이 아리안인들의 침입에 쫓겨 인도남부와 스리랑카 일부
는 배를 타고 동아시아쪽으로 오는데 이들은 주로 한반도
해안가와 강가에 살았다. 해안가 주민들이 유독 얼굴이
둥글고 쌍커플이 많으며 귓볼이 크고 키가 작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채석장에서 발견된 익룡의 화석은 새와 파충류의 중간단계를 보여주고 사슴이나 토끼는 맹장이
발달했지만 사람은 불을 사용한 이후 맹장이 점점 퇴화했
을뿐이다. 꼬리뼈 같이 사람의 이빨도 28개에 서 24개로
줄어들었다 음식이 연해지니까
하워드진의 미국민중사를 읽고 느낀다. 씨족,부족,율령국
가,국가 순으로 가는건 나의 착각이었다고 그시대 그환경
그들의 생활에 맞으면 영원히 씨족으로 사는 것이고 그
곳 환경이 그들에게 맞으면 부족으로 영원히 남는 것이지
그들이 21세기까지 아직도 씨족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
다고해서 야만인이라 볼 수는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부인만 존재할 뿐 이 세상엔 야만인은 없다. 총알이 빠른 건 알지만 인간의 눈에 보이진 않는다 아이
가 크는건 알지만 인간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진화도 진
행되지만 백만년 단위로 진행되는데 인간의 눈에 보이겠
는가 그저 우리는 세상사물을 우리눈에 맞게 편집해서 보
고 있을 뿐이다.
아까 타밀이야기를 하다말았는데 우리나라의 농사, 기후
는 모두 타밀어인 드라비다어이다. 배에 땅을 실을 순 없
지만 말은 실어올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 정변이 일어나면
대거 일본으로 이주해갔듯이 중국에 변란이 일어나면 대
거 한반도로 이주해와 남방인은 22%! 가 타말인에 화남
인이 섞인 것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주민인 유목민에 의해 정복당한다 근세 인디언이 백인들에게 정복당했듯이
세계의 역사는 다 똑같다.
올림푸스신도 선주민인 피지배족이 가지고 있던 여신위에
이주민의 신인 남신이 우위를 차지해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면 남신이 여신을 항상 지배한다
예맥의 맥족의 신이 신농씨가 되어 농사의 신으로 전락했
듯이.....
고대 나라의 이름은 다 뜻이 있다 부여는 사슴뿔 가야는
코끼리 즉 남방불교를 뜻하며 신라는 철 고려는 사슴뿔과
양 백제는 백가지성 요약하자면 조선은 아침에 신선한 것 발해, 일본도 마찬가지다 즉 태양을 상징한다.
단군설화는 구전설화이다 즉 민족서사시이지 하나님이 천
지를 창조하사가 아니다.
민족서사시이다. 예를들자면 여인은 진짜 여자가 아닌 여
국 즉 여진을 의미한다. 맥족이 중원에서 화하족(중국)에
게 밀려나 요동으로 왔을 때 거기사는 예족과 만나면서
단군설화가 생긴 것뿐이다. 나무는 가만있는데 어떤 사람
들이 와서 줄을 감고 그 앞에서 빌며 춤을 춘다고 나무에
게 잘못을 씌운다는건 말이 안되지 않는가.
한양엔 여러문이 있다 동서남북 그 중간중간방향에 하나씩과 물과 시체 나가 는문등 그 이름엔 5행인 인의예지신
이 각각 들어간다 정문인 숭례문으로 중국사신이 들어온
다. 동대문인 흥인지문에 지자가 붙는다 왜 之자를 붙였
을까 地와 발음이 같기 때문인데 좌청룡인 대학로뒷편 낙
산이 기세가 작기 때문에 땅기운을 불어넣기위해 문에 之
자를 넣었다한다. 일제는 도성기운의 균형을 깨기위해 낙
산을 깎아 그 돌로 총독부건물을 만들었는데 그 아까운걸
왜 헐었는지
또 동북쪽문으로는 여진의 사신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새
가 그려진 혜화문만 남고 여진은 없어졌으니 참 아쉽다.
요즘 대기업에 의해 정겹던 골목이 많이 파괴된다 한화,삼성,LH등 하지만 이 들도 사직단,선농단,선잠단 주변은
안건드린다. 건설회사도 땅기운을 무시 못하나보다 이 곳
뒤에는 모두 고래등 같은 집들이 약속한 것처럼 있다. 조
상들은 땅기운을 보는 마력이 있었나보다 우리는 일제잔
재를 없앤다고 난리다, ,마우라,다꽝,와리바시 이게 다일
까 동기나 국민도 일본식이고 일본의 헤이안시대(발해시
대쯤)후 미나모토씨와 다이라씨가 한 판 붙는다 한쪽은
등에 홍기를 한쪽은 등에 청기를 여기서 유래한게 청백전
이고 우리는 공양미 300섬하는데 이젠 1가마니다 1섬은
15말인 우리단위이고 1가마는 10말인 일본단위다 99칸
은 이야기속 집이고 요즘은 일본식인 몇평대 아파트집만
남는다. 수우미양가도 에도시대(조선말기쯤) 식 평가다 수
는 수려하지 않은가 우는 우수하지 않은가 미는 아름답지
않은가가 그 원조다 언젠가 TV에서 의학박사가 이야기한
다 결핵이 원래는 두창이었다고 하지만 좋은건 받아들여
야지 않겠냐고 문화는! 섞인다 라틴어 파니스가 포루트갈
에선 팡이 되고 일본에 와선 빵이되지 않 았는가 일본고
대어 사전에 보면 와다도 우리말 바다가 넘어와 와다가
된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중국도 나라이름지을때 고민고민했다한다 중화민주주의인
민공화국중 중화 빼고는 모두 일본식 표현이라 주체성이
없어보인데나....
영국이 인도를 침략할시 인도인에게 진심을 준 나라가 있
었다 독일, 인도의 고대신의 이름과 독일의 신의 이름은
어근이 같다 즉 같은 핏줄이란 이야기이다. 고대엔 종족
의 명칭을 개인의 이름으로 썼다 주몽이 오이,마리,협부
를 데리고 간 건 3부족을 데려갔다는 의미다 공자의 부
친도 올량합 즉 동이족이란 뜻이다 아틸라의 부모의 이름
도 해석하면 동이족이다.(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
이었다,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 -참조) 한국
-흉노-훈족-헝가리 , 돌권-투르크-터키 돌궐,흉노가 동
진해서 세운 나라가 신라고 서진해서 세운 나라가 터키이 기에 터키는 우리를 보고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것일까
헝가리도 돌궐(지금의 신장위구르)과 같이 5음계를 쓰는
아틸라가 세운 우리민족국가다.
그런데 왜 우리는 터키가 큰 형으로 있는 이슬람을 욕하
고 돌궐,흉노,여진을 오랑캐라 하며 일본과는 무조건 적
대적인 감정싸움만 하려하는지 일본학을 연구하는 분들의
결론이 일본과 싸우는건 쌍둥이 때리기라고....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고 월성대군의 집이다 선조가
몽진후 거처한 곳이기도하다 원래 궁전은 암투가 많은 곳
이라 문마다 化자를 넣었다고한다.
대한문은 仁化門 하지만 헤이그밀사이후 고종은 폐위되어
큰 도둑이라는 뜻의 대한문으로 바뀐 덕수궁에 살게된다
漢에 사람인변을 더하면 일본에서 가장 전설적인 도둑이
야기가 나온다.
이런건 바꿀 생각은 안하고 600년 이어내려온 피맛골을
밀어버리고 대통령후보만 넘보다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
난다 600년 서민의 애환이 담긴 한쪽만 남은 피맛골도
기형이 되었다 올림픽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김수
근씨의 집도 밀어버리는 진취성 대단하다.
외국에선 베르디.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창경궁과 종묘 사이엔 안국동쪽으로 도
로가 나있다 북악산에서 내려온 가장 깨끗한 물을 떠서
조상의 영전에 바치는 의미인데 일본은 그 물길을 고의로
끊어놨다, 차마 이 길은 아니더라도 덕수궁현판 정도는
바꿀 수 있지않을까 왜 사람이 살지 않는 죽은 문화재인
숭례문엔 목숨을 걸면서 사람이 살고있는 살아있는 문화
재는 자꾸만 파괴하! 는 것일까....
히데요시는 조선의 내정을 알아보고자 야스히로를 사신으
로 파견한다 보초들이 지키는 가운데 무희들이 춤추며 연
회가 무르익어가는데 야스히로가 후추를 뿌리자 춤추던
무희들과 보초들이서로 후추를 주우려고 난리가 났다한 다. 또한 접대나온 장수에게 ‘나는 전장에서 싸우느라 백
발이 되었소만 나리는 계집질하느라 백발이 되었구려’라
며 농을 걸었다 얼마나 나라 기강이 헤이해졌으면 이런
수모를 당해도 알아듣지도 못할까.
그는 조선이 측은해 본국으로 돌아가 히데요시에게 좀 조
선을 추켜서 말했더니 이를 괴씸히 여긴 풍신수길에게 죽
음을 당했다한다,
일제시대 왕궁리고분을 싹쓸이해간 가루베 지온 같은 사
람도 있었지만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의 흙이 되었다 그
가 죽었을 때 조선사람들 중 그의 운구를 메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 응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비가 오는데도, 다
쿠미는 자신이 사랑한 조선옷을 입은 채 조선인 공동묘지
에 묻혔다.
다쿠미의 무덤은 망우리 유일의 일본인 묘이다. 다쿠미의
비는 다쿠미가 일했던 임업시험장의 후신인 한국임업연구
원의 직원들이 모금하여 세웠다 진심과 진정을 담아 대할
때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정말 보기 드물게 풍부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러한 마음은 특히 조선인을 향해 나타났다.
다쿠미의 생애는 “인간의 가치는 실로 인간 그 자체이며, 그보다 많지도 적 지도 않다”는 칸트의 말을 실제로 증명
했다. 재미난 이야기 두가지만 하고 마치려한다.
황정민의 FM대행진을 자주 듣는다. 거기 게스트로 나온
두 남자가 여자친구를 좋은 음식점에 데려가도 시큰둥해
한다고하자 가르쳐준다고해 간절히 두남자가 빈다 가르쳐
달라고 황정민왈 ‘“ 그러자 ’아하‘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
다.
여자는 꽃을 좋아한다 왜일까 꽃 다음에 나오는건 열매다
수렵채집기간중 여자는 모여 수다를 떨고 아이를 보며 채 집을 해 일을 해도 멀티로 할 수 있지만 남자는 사냥을
할 때 집중을 해야하기 때문에 한가지 일만 할 수 있다.
백화점에 가도 남자는 사냥하듯 원하는 물건만 사고 바로
나오고 남자아이들도 욱, 웩하는 소리만 내며 논다 여자
아이들은 논리적으로 재잘거리며 논다 수렵채집하던 습관
이 아직 남아서! 다 근대전까지 여자는 긴생머리만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남자는 그런 여자만 보는 습관이 남아
있어서 아직도 남자는 긴생머리 여자를 좋아한다. 구미호는 고조선 9부족을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그 중 6
부족이 경북에 자리잡고 세운 나라가 사로국이다. 그리고
구미호는 고조선이 망한 순간을 나타낸 구전설화이다 그
후 스키타이가 내려와 신라를 세운다 (김씨,박씨) 이사금
이 니사금이되고 니사금이 님금이 되고 님금이 임금이 된
다.
퉁구스는 9부족을 상징하며 여자를 거차라 했다 거차는
이니셜이 같은 기집이 된다.
물귀신은 서해안에 분포한 귀신이다. 백제가 인도북부 구
자라트까지 항해했던 해양대국이었기에 정릉사능 한양의 좌청룡인 낙산에 대해서 잘아시겠네요 거기 청룡사가 있고 단종의 비가 생계를 잇던 자주동천이 있고 동망봉이 있지요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우선 청룡사는 도선이 왕건에게 이곳에 청룡사를 지어달라 유언을 했다고합니다. 여기에 고려 공민왕의 혜비가 비구니로 들어오고 정릉에 묻혀있는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소생 경순공주도 비구니로 들어오지요 둘은 눈물을 흘리며 여생을 같이 보냈다합니다 후사가 없이.. 이명박씨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747공약 글쎄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악습을 만든 자는 자손이 끊기고 선행을 한 사람은 자손이 번창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관왕묘가 신설동에 있고 그 바로 옆 청개천에 영이별다리라 불리던 영도교가 있습니다. 선조때 명나라장군 이여송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관운장을 모신 무당집같은 동묘가 있던 자리는 원래 단종비 정순왕후를 위해 여인들이 푸성귀를 팔던 정순왕후의 부엌 구실을하던 여인시장이 있던 자리인데 즉 수절과부의 집안에 낯선 이국남자를 눕힌 격이지요 그래서 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은 불에 타 죽고 경복궁 복원공사의 석재가 필요하다해 단종과 이별한 다리인 영도교를 헐어 그 석재를 경복궁을 복원하는데 썼기에 며느리는 칼에 맞아 죽고 영친왕 이은은 귀국을 허가 못받고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다 우연히 영도교를 다시 지은 이명박씨는 대통령이 되지요 다시 정릉의 신덕왕후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성계는 위화도쿠데타란 악습을 만들어 500년내내 중국에 굴종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이 만들어진 건 아닌지요 전두환의 전 노태우의 노 전씨는 왕씨가 변한성이고 노씨는 이성계에게 굴복한 왕씨들에게 이성계가 하사한 성이 노씨지요 제 생각엔 전씨 노씨 둘다 왕씨의 피가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개국공신들은 방번이 똑똑해 자기들이 기를 못 필 것을 염려해 동생 방석을 세자로 옹립하지만 쿠데타의 주역인 이방원이 들고일어나 둘 다 죽이지요 첫째 방번 둘째 방석 셋째 경순공주 모두 후사가 없었고 방번의 양자 세종의 다섯째아들 광평대군은 20살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방석의 양자로 들어간 세종대왕의 막내 금성대군은 계유정난에 대항해 무사를 키우다 발각되어 수양대군에게 무참히 죽습니다. 모두 후사가 끊기지요 서울엔 재동이 있고 한명회에겐 두 딸이 있습니다. 사육신을 태워 재를 만든 곳이 재동이고 두 딸이 왕후로 들어가지만 젊어 요절해 공릉과 순릉에 묻힙니다. 그리고 후사가 끊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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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위기속에 활동하였던 김옥균의 삶과 철학 등이 남긴 책이다. 시대적인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김옥균과 이 시대의 지성인들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주권을 가진 국가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일제치하에 아픔과 고통을 안고 태생한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두웠던 시기에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그 변화를 주도하였던 김옥균, 저자는 이 책에서 김옥균과 함께 했던 지성인들의 활동과 역활 등을 심층분석하고 있다. 조선후기에 여러 정변의 현장속에서 김옥균은 새로운 개화를 주도하고자 했다. 조선의 암흑기에 김옥균의 역할이 시대적 정당성을 갖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책은 김옥균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김옥균의 활동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요청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 책이 왜 세상에서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를 함께 했으면 한다. 독도는 우리땅이라 외치는 국민 뒤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시대를 분별하고 읽지 못한 조선후기에 수많은 관료와 국민들은 결국 국가를 잃은 참담함속에 36년을 살아간다. 주권이 없는 국민들은 허수아비요 노예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흐름과 정세에 따른 변화를 주도록하고자 했던 김옥균은 조선의 앞날에 득이 되었을까 실이 되었을까. 득과 실앞에 모두는 자유롭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적 요구에 따른 변화였다. 개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다. 조선왕조의 총체적인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개화사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많은 서적을 탐독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신세계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세계와 동떨어졌다. 결국은 김옥균은 3일 천하의 실패와 망령 등으로 개화의 꿈을 접어야 할 중대 위기앞에 섰다. 그는 실패에 대한 망령 생활은 포기한 삶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개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조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그의 삶에 묻어나왔다. 많은 이들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망명의 길에 들어섰다. 망명한 이들은 하나의 목표였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뜻을 모아 의기투합하는 과정에서 김옥균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긴밀한 교제를 나누게 됨으로 김옥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시대에 낳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옥균은 실패자이다. 그러나 김옥균의 마음까지 실패자였을까 생각해본다. 저자는 다시금 김옥균을 통해 시대에 아픔을 말하고자 한다. 분별력이 없는 관료와 백성들이 결국 나라를 잃게 했던 것처럼 이 시대 지성인들이 하나가 되어 나라의 흥망을 조명하게 하는 목적이 이책에 담겨있다. 시대를 읽도록 하는 저자는 김옥균을 선택했다. 지성의 아픔을 안고 살았던 김옥균을 다시금 바라보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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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이해하고 싶으면 앞을 내다보는 것보다 적어도 2배는 더 멀리 뒤를 돌아봐야 한다.” 최근 읽은 책에 있는 구절로 이 통찰은 꽤 마음을 잡아 끈다. 누군가는 역사를 통해 미래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백미러를 보면서 운전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백미러를 보는 것도 조금쯤은 도움이 될 것이다. 갑신정변으로부터 130여년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새삼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일으킨 그들이 새롭게 조명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언뜻 전혀 다른 세상인 것처럼 보이는 조선 말기와 한국의 현재 모습에서 어떤 기시감(데자뷰)을 느꼈던 건 아닐까. 조선은 500여년 역사를 중국과 사대 관계를 맺고 조공국의 지위를 얻어 대외적으로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중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일본이 근대화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동안 조선은 국제정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나마 예외적으로 실사구시를 주장한 실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박규수와 역관 출신인 오경석, 유대치 등이 이 새로운 신문물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로 이 박규수의 문하생들이 김옥균과 젊은 그들이었던 것인데 이들이 과거를 통해 정계에 진출하고 시대 변화와 함께 등용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직시할만한 식견과 용기는 갖추었지만 과거를 통해 등용되었고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던 만큼 전혀 새로운 집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한계가 분명했는지 모른다. 이들이 일으킨 쿠데타는 민심도 얻지 못했고 이해받지도 못했고 적절한 때를 얻지도 못했으며 하물며 외세의 도움을 얻으려다 다른 외세의 힘에 의해 붕괴되는 등 명분도 운도 좋지 않았다. 너무도 서둘렀던 그래서 세부적으로 너무 준비가 부족했던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 왜 그토록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되고 있을까. 모든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김옥균과 젊은 그들,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홍영식 등에 의해 3일 천하로 끝난 실패한 쿠데타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봤을 때 그 시도에서 방향만큼은 옳았다는 점이 분명하다. 국제 정세에 거의 무지한 민중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대부들조차 이런 통찰에 이르지 못했다는 게 어쩌면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을지 모른다. 이들의 비극은 김옥균과 그 일행이 거사 실패 후 망명으로 이어지고 이후 김옥균의 망명생활과 암살, 이후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의 국내 정계로의 복귀와 개혁시도, 좌절, 김홍집과 어윤중 등이 피살되면서 조선의 개혁의지가 실질적으로 막을 내리는 과정까지, 그리고 김옥균 암살 이후 살아남은 젊은 그들의 이후 행적까지를 담담하게 담고 있다. 갑신정변과 김옥균, 그리고 젊은 그들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다소 긍정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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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을 읽고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한 국가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제대로의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국사라는 교과목을 통해서 의무적으로 공부를 하게 한다. 그러나 솔직히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대개 겉핥기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로 이런 역사 관련 책을 보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을 되새기면서 공부하게 된다. 명확한 개념 정리와 함께 많은 교훈을 통해서 더 나은 발전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사의 흐름이나 사건 등을 통해서 확실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진정한 국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주 흥미 있게 읽었다. 역사 속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당시 시대 분위기 안에서 느끼고 보아야만 제대로 조명할 수가 있다고 한다. 단편적으로 인물 이야기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서 훨씬 더 가깝게 만들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당시 김옥균을 포함한 젊은 엘리트 지식인들 이야기는 물론이고 당시 시대적인 상황까지 자세히 알 수가 있어 우리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도 되었다. 조선말과 개화기 시대의 모습을 상세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의 사진은 물론이고, 필요한 자료와 이해하기 쉬운 어투로 쓰여져 있어서 읽는데 잘 넘어갔다. 역시 관심과 함께 참여하였을 때 얻어지는 기쁨이라 생각하였다. 어떤 사안을 처리할 때 바로 이런 긍정적인 사고와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기도 하였다. 기울어가는 조선 말기에 여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소수의 권세와 배부른 독재를 위한 활동으로 관료들의 부패와 민생도탄 등으로 국가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었다.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서양 선진 문물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박규수 사랑방에 오경석, 유대치 등이 모여서 개방과 개혁에 대한 논의를 하였던바 이것은 왕실과 특히 수구파인 민비 측근에게는 반체제집단으로 몰면서 학대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 탄압,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등으로 청나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상범, 서재필 등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혁파가 일복 쪽으로 접근하면서 드디어 갑신정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추진하면서 기본적인 내용조차 무시했기 때문에 3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을 가게 되고, 결국 청나라 상하이에서 자객인 홍종우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비록 개혁을 통해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혁파하고 단행한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적인 도전정신에 대해서는 개혁이 비록 실패에 끝났다 할지라도 올바른 역사의 길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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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에게 김옥균을 다르게 보는 관점을 제시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로 끝난 사건의 주역이다.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굴욕적으로 한성조약을 맺게 하여 훗날 일본으로 통합되는 과정의 시초였다 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나라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일본에게 제공했다 라고 생각했다. 한나라를 개혁하겠다는 사람이 똑똑한 명성도 부족하여 천재소리까지 들었던 사람이 일본공사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150명이라는 소수의 인원만 믿고 정변을 일으키려 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완전 본인 자신이랑 일본만 믿은 형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양반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엘리트이다. 민씨 세력에 의해서 힘들긴 하지만 벼슬도 할 수 있다. 그동안 부리는 사람으로서 모든것을 누리고 산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든 이의 신분이 평등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똑같이 모든것을 보고 듣고 온 '민영익'은 더 눈과 귀를 닫고 개화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25세라는 나이가 결코 많지도 않지만 전혀 다른 세상 미국에 가서도 논어와 유교경전만 읽고 있었다니 우리나라 양반들이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완전 다른 세상을 보고 있어도 보는 눈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본인의 영달만 안이하게 생각했다는것을 알려준다.
그 가운데 앞으로도 크게 될 사람 김옥균과 철종의 부마였던 박영효..서재필, 서광범 등은 깨인 생각을 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다만 개혁할 시기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아전인수격으로 치뤄버렸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더군다나 임오군란 전후로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 일본을 등에 업고 개혁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심은 개혁을 했다기 보다는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사실로 더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들손으로 던진 돌이나 총에 맞아 다치기까지 하였다. 얼마나 민심을 가지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 서둘러서 아까운 재목들만 죽어야 했는지가 아쉬울 따름이다.
일본에 망명가서도.. 일본에서 쫓겨 미국과 상하이를 헤메이면서도 자신들의 생각과 정신은 한치의 거짓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고 어떻게 하면 대내외적으로 알려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하지만 자신의 나라에서 쫓기는 사람이 정당화 될 수 없고 대내외적으로 인정은 더더욱 받지 못한다. 갑신정변은 실패했어도 수구파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죽일 것인가를 계속 궁리하고 궁극적으론 성공한다. 그들을 죽이기 보다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좀더 개화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빨랐을 것을...
단순히 갑신정변을 삼일천하로 만든 그들을 좋지 않게 생각했던 관점을 돌릴 수 있어 나에게는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책이다. 민비의 세력을 안좋게 적은 듯 하지만 그것도 어찌보면 우리가 본 영화에서 그려진 모습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야기일 것이다. 수구파나 개화파나 서로가 나라를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일진데 어찌 본인의 파벌만 맞는 것인지.. 지금의 정계에도 같은 것을 되풀이 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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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보다도 격변기였고 풍전등화처럼 앞날이 위태로웠던 조선말, 개화기 시대를 살았던 엘리트들의 삶. 제목에서처럼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는 단 몇 줄의 설명과 사진 한장, 그것도 허름한 한복으로 보이는 당시 옷을 입은 사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저 그렇게 간단하게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문헌을 통해 연구되어 한 권으로 당당하게 묶여졌다.
저자는 자유기고가이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존재의 이유', '존재의 목적'에 관심이 많고 끊임없이 성찰해왔다고. 역시나 다른 저서를 봐도 이 책과 비슷한 분위기의 관점이다. 매우 흥미롭다.
영웅이 없는 나라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영웅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불행하다 p53
브레히트(1898-1956, 독일시인, 극작가)의 말이라고 한다.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조선말, 영국, 러시아, 청나라, 일본 등 열강들의 이권다툼, 제국주의,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던 야욕의 눈빛은 조선땅에 집중되어 그야말로 우리 선조들의 삶은 처참하게 짓밟히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미리 읽고 조선의 형세가 크게 위태롭다고 우려하며 내다본 지식인들 역시 있었다. 그러한 자세한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개화'라는 단어의 의미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하면서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중국 고전에서 차용한 말이라고 한다.(p19) '개화'란 <역경>에 나오는 '개물성무'와 '화민성속'의 합성어로 '개물성무'는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개발하고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게 한다는 뜻, '화민성속'은 무지한 백성을 교화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만든다는 뜻이라고 한다.(p19) 두 말의 첫글자를 붙여 '개화'. 이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 된다. 개화 선각자 3인으로는 오경석, 유대치, 박규수로 꼽았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당시 시대상 안에서 보아야만 제대로 조명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당시 엘리트 지식인들 이야기 뿐 아니라 시대상까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조선말, 개화기 시대 역사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여러 인물들 중 제목에서 명시된 것 처럼 김옥균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매우 새로웠다. 곳곳에 인물들의 사진도 있고 이해하기 쉬운 어투로 쓰여 있어 역사에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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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이 젊기에 이상을 추구하는데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지만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야비할 정도의 정치기술이 부족한 점이 안타까운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개화파에 대해선 국사 시간에 몇 번 이름만 듣고 넘어가버려 그 시대와 정신을 온전히 이해해보지 못 했는데 연암서가는 이번에도 여러 가지로 큰 공부를 시켜주었다.
나만 이런 것인지...대체 알고 있어야 할 당연한 상식들의 끝은 어디인지 모르겠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지만 각종 교양서적들이 잘 편집되어 출간되고 있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래를 상상하는 습관이 있는 나에겐 북카페 같이 꾸민 거실에 꽂을 책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벌써 긴 책상 위에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국사를 공부의 딱딱한 개념이 아닌 흥미로운 감정으로 접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위인전에서 접했을 때만 해도 어떻게 기득권층이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을 위해서 누릴 수 있는 충분한 권리들을 쉽사리 던질 수 있는지 의아해하며 위인전기의 상습적인 포장기술이라는 의심을 하는 괘씸한 꼬마였던 나 이지만 작가의 시선 뒤에서 개인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 모습을 더욱 위선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순수함이 느껴졌다.
나 같은 일반인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은 지금의 무사안일주의에 따끔한 호통을 치는 듯 하다.
젊기에 뜨겁게 가동될 수 있었던 것일까?
나고 자란 환경이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애초에 타고나기를 특별하게 태어난 듯 한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의 혈기를 보다 보면 무모한 프로젝트라도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다.
김옥균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통틀어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희생에 주저함이 없는 모습에는 박수를 쳐 주고 싶으나 운이 따라주지 못한 상황에서 좌절을 능숙하게 견디는 노련함이 없는 모습에는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사람인데...'라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적용되지만 역시 정치에 기반해서는 늘 존재의 의무에 대해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조선 진보주의자들의 열정과 선견지명은 그들이 얼마나 현명하고 리더십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열세한 상황임을 인지하는 만큼 좀 더 정치인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너무도 인간적이기까지 한 그 리더십에 나 조차도 의리를 느껴 훌륭한 사상만큼 그 기량을 펼치지 못한 상황과 좌절하고 방황하는 그 모습에는 가족과 같은 아쉬운 마음으로 한탄했다.
어릴 때는 그저 바른 이상과 함께 할 동지들이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러운 곳에 들어가면서 깨끗함을 유지하려는 젊은이의 아집을 유지해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실패로 끝나 안타깝지만 지금의 진보를 이룬 초석을 제공하는데 충분한 그들의 희생에 대해선 충분히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수박 겉 핥듯이 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이 조금씩 걸음을 옮겨왔듯이 근대에 대한 교육계의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길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언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지금이 오기 위해 불과 몇 세대 전에는 상상도 못할 정책으로 묶인 대중매체를 위한 그 시대의 젊은 세력들의 투쟁을 통해 당장의 결과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지금의 결과는 실패로 끝나더라도, 지금은 당장 미약한 힘이라도 앞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면 언젠가는 큰 벽을 넘을 수 있구나...힘들어도 이상에 대한 추구는 무의미한 일이 아니기에 실패를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구나 싶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책임감 있는 행동인지 인식하고 있다.
요즘 들어 김옥균 같은 조선의 진보적 인텔리들에 대해 다시금 공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그들의 이상과 행동력, 애국심을 느끼기 위함도 있지만 평범한 시민으로서 어떤 시선으로 정치를 바라봐야 할지 그 태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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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우리 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쇄국정책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여 새로운 문화 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선진문물의 조속한 수용, 국토개발과 수산업 육성, 국가재정의 건전화 등 각종 혁신적인 개혁방안을 국왕에게 직간접적으로 건의하였으나, 그때마다 수구파의 강력한 견제로 어느것 하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김옥균은 이런 퇴행적인 정치풍토에서 더 이상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뜻을 같이하는 급진 개화파 동료들과 함께 쿠테타적인 방법으로 정치판을 새롭게 짜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김옥균이 일으킨 갑신정변은 청나라의 지나친 내정 간섭과 이들을 무턱대고 지지하던 민씨 일파의 사대당을 꺾어 버리고 우리 나라가 자주 독립 국가라는 것을 온 세계가 알리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행동프로그램의 미약으로 3일 만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초기부터 겪어야 했던 일본 정부의 냉대와 자객들의 암살위협, 현실 도피적인 문란한 사생활과 이로 인한 동지들의 비난과 불화로 인해 김옥균의 정채성과 자긍심을 실추시켰으며 그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인간 김옥균은 우국지사라는 고고한 이미지를 벗어나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낭인의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의 10년 동안의 일본 망명생활은 어찌보면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볼 수 도 있다. 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의 위험한 길을 택하게된 김옥균은 수구파가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이 책은 김옥균의 어린시절부터 역사의 전환기에 과거 급제, 조선의 근대를 설계하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과정, 일본으로 추방되면서 김옥균의 죽음까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양육강식의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드는 역사적 전환기, 전통과 근대라는 이중의 부조리와 모순이 조선사회를 짓누르던 시대에, 매국적 반역자에서 애국적 혁명가에 이르기까지 양극단에 서있던 김옥균의 삶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무거운 시대의 무거운 주제인, 김옥균 그 시대, 그 아픔이 그대로 담고 있다. 읽다 보면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흥미롭고 유려한 흐름과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김옥균애 대한 새로운 내용으로 인해 후회없이 읽어 볼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