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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문장은 질투가 날 지경이다. 읽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읽을수록 엄청나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자꾸 곱씹어보게 되고 읽게 된다. 아마 나는 우래도록 이렇게 읽을 듯 하다. 그래서 리뷰는 조금 더 많이 읽은 후에 써야겠다. 오늘은 이렇게 메모만 해두려 하낟. 다음 글이 기대되는 작가님. 다음 글이 궁금해지는 작가님 개인적으로는이 책이 제잃 좋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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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오래된 취미 생활이자 특기이다. 주로 누워서 읽는다. 그렇게 읽다가 잠드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지만 감기는 눈을 어찌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읽어야지 다짐하며 꿈나라로 들어간다. 눈을 뜨자마자 밀쳐 두었던 책을 가져온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문장과 줄거리를 따라간다. 대개 나는 비판하지 않는 독자로서 웬만한 책의 내용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한때 잠깐 쓰는 자의 편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이상한 고통과 불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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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진짜 문장 읽는 맛이 좋아요. 맛깔나는 작가님의 장문이 자꾸자꾸 읽고싶어진다니까요. 어휘도 대단하시고요. 그냥 특이한 단어나 생소한 단어를 갖다 쓰는 그런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꼽아둔 단어가 기똥차게 맞물려 돌아가는데.. ... 아 .. 게다가 이야기까지 재미있어.. ㅠㅠ 재미있어서 마구 파헤쳐 읽다보면 페이퍼컷처럼 오래 여운이 남는 쓰라림까지 동반하는.. 존재자체가 감사합니다. 신간 내셨더라고요. 신간도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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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여자들이 더 민감한가.는 생리적 특성이 아닌 사회적 특성일 확률이 높다. 애초에 조심하고 애써야 할 부분이 훨씬 훠얼씬 많은 것이다. 인류의 반이 여자라는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남자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 구병모 작가의 책을 권한다. 읽어라, 좀. 읽고 어디 한 번 얘기나 해보자. 너희의 사회적 감수성은 대체 어느 정도인지 너희는 모르지? 너희의 공감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너희는 모르지? 모르면 좀 알려고 해야하지 않냐? 말마따나 인류의 절반이 여자인데 그 절반을 이해하거나 할 마음은 십원어치도 없는 거냐? 나를 기준으로 나의 상황과 처지와 불편과 불만을 얘기할 마음은 없다. 그것은 그저 수십억 중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므로.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잘 정리하기 위해 혐오, 페미니즘, 정의, 평등, 철학, 심리학까지 몇년째 읽어대는 내가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것이 너무 작고 미미한 노력으로 여겨져서 좀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노력해야한다는 강박까지 느끼는 내가 너무도 구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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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님께서 집필하신 단 하나의 문장에 대한 리뷰입니다. 구병모 작가님을 한번 봽고 싶습니다. 그 분의 화술이 매우 궁금합니다. 읽을수록 대단하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번에도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감명받아 이번이 두번째 작품인데 역시나 이 작품도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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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구병모 작가님 작품 너무너무 좋아해요T-T 여러 작품 읽어 봤는데 전부 장편 소설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소설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했는데 책 소개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그냥 구병모 작가님이니까! 믿고 구매했습니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인데 작품들마다 새롭고 느끼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부록으로 들어있는 책갈피도 옛날 느낌나고 좋네요! |
| 늘 그렇듯 구병모 작가님의 글에 연신 감탄을 하며 읽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내용과 문장을 쓰시고 단어를 구사하시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단 하나의 문장”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이 당겨졌는데, 역시 작가님만이 가진 문장의 힘과 매력이 잘 드러나는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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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님의 단 하나의 문장 추천합니다! 책장에 작가님의 책이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온전히 작가님의 의도대로 다 이해할 수 있기를 항상 바라면서 다음번 작가님의 글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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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으로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입문했다. 일단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다른 책들도 빌려 읽다가 결국에는 하나씩 하게 되면서 책장에 '구병모 월드'가 마련되었다. 우선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악플에 대한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허울 좋은 구실로 기준 없이 판단하고 재단하며 배출하는 불쾌하고도 섣부른 문장들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타인의 시선인 양 담담하게 서술해 낸 문장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단편은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인데, 사실 이건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다가 결말 부분에서 내 표정이 ㅇㅅㅇ??? 이렇게 변했다. 결말이 너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상당히 오랫동안 아끼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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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파과』로 처음 접했다. 독특한 소재와 전개, 유려한 문장에 읽는 순간 반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었고 단편집인 이 책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모든 단편을 다 좋다고는 생각했던 것 같은데 사실 읽은지 꽤 시간이 지난 지금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 건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지속되는 호의』, 『미러리즘』,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정도이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나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에서는 '작가'라는 직업인의 고민이 담겨 있는데 더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작가의 작품이 '피씨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을 넘어서 비난을 하고 sns의 사진을 토대로 의도를 추측하거나 누구인지 알아보려 하는 누리꾼들의 모습이 새삼 소름돋게 다가왔달까(물론 소설에서의 서술이 사람들에게서 불편함을 자아낼 수 있다는 건 동의합니다만). '피씨함'에 대해서는 창작자 뿐만 아니라 그 컨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고민이 될 법한 문제다. 소비자의 피드백을 아예 배제할 수 있는 창작자는 거의 없고 그렇기에 우리가 소비하는 컨텐츠에는 그 피드백들이 반영이 될 테니까. 사실 이 단편을 읽고도 '피씨함'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 못 내렸고 앞으로도 못 내릴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와 『지속되는 호의』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또 여성 양육자로 산다는 건 어디에서든 불안한 삶이라는 것도. 임산부이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이 해주는 그 배려가 따뜻하게 느껴지면서도 그것은 곧 지나친 간섭이 되어 돌아온다. 정주는 그 가까운 거리감을 참지 못해 결국은 도시를 택하지만 그렇다고 정주가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까? 『지속되는 호의』에서는 특히 후반부가 인상 깊었는데, 서영과 그의 남편이 소리를 치며 아이를 찾자 사람들은 유난이라며 외면한다. 그 장면을 보고 정주가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대도시의 거리감이라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서로에게 간섭 하지 않는 그 적당한 배려.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를 지키고 침범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움도 주지 않는. 이것을 신샛별 평론가는 '이기적인 배려'라고 표현을 했는데 글쎄,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모르겠는 것 투성이였다. 그렇다면 '배려'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선을 침범하고 간섭하는 건 또 옳은 것일까? 적절한 거리감이라는 것이 이기적인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