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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청교도의 책을 읽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물음을 받는다면, 개인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동시에, 실용적이지는 않다고 함께 대답한다.
청교도들의 관점은 정직하고, 순결하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소위 청교도라는 이들에 의한 범죄행위들은 일단 차치하자.) 그렇기 때문에 청교도의 글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 가운데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는 가는 면밀하게 전달하는 반면에 그들의 상황에 맞춰져 있는 이유 때문에 오늘 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환경과 다른 문제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청교도의 책은 개인을 위한 유익은 있되, 적용을 위한 유익은 같은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 이기에 개인의 신앙적 유익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개인이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 자체로도 이 책은 오랫동안 고전의 반열에 오를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오웬은 배교의 원인을 상황과 현실과의 타협에서 찾고 있기에, 본질적으로 죄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배교하는 인간의 처량함을 목격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영광을 함께 살펴보는 책이라, 큰 도움이 된다.
- 그리고 도서 분류가 잘못 되어 잇는데 어서 수정해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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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는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믿음을 저버리고 변절함을 뜻한다. 헬라어 ‘아포스타시아’는 ‘떠나다’(go away), ‘버리고 가다’(desert)는 뜻의 ‘아피스테미’에서 파생된 말로, 고전 헬라어에서는 ‘군대를 일으켜 왕에게 도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포기라는 의미로 배교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테르툴리아누스였는데, 그는 유대인들을 ‘배교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다. 배교자라는 명칭은, 온갖 수단을 다하여 교회를 박해하였던 로마 제국의 황제 율리아누스에게 붙여지면서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중세에 와서 토마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도 생활 혹은 성직 생활을 포기하는 것’도 배교의 개념에 첨가하였다. 또한 그는 “배교는 모든 죄의 근본으로 보여진다.”라고 하였다. 배교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과 일치하면서 존재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것, 하나님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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