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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의하면 경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또한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서 보듯이 사회공유가치나 자원에 대한 무분별한 남용은 사회 전체의 이득과는 괴리되는 측면도 많다. 게다가 개별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족벌에 의해 유지되는 경영체계나 왜곡된 기업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것도 종종 사회 전체에 해를 낳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세금(법인세, 상속세 등)과 규제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이 더 넓은 집을 사고 특별한 행사에 더 많이 지출하기 때문에 그들도 덩달아 그렇게 하게 되었다. 이는 소득 증가의 패턴이 변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택이나 행사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한 지출 연쇄작용이 관찰된다.
당신은 어떤 상황을 선택하겠는가?
상황A: 이웃 사람들은 700제곱미터의 집에 살고 있는데 당신은 600제곱미터의 집에 산다. 상황B: 이웃 사람들은 400제곱미터의 집에 살고 있는데 당신은 500제곱미터의 집에 산다.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따르면 우리는 좀 더 큰집인 상황A를 선택해야 하지만 대다수는 상황B를 고른다. 선택 우위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선택하는 원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지위나 과시를 위해 더 넓은 주택을 고르듯이 더 크고 무거운 차를 선택하게 된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인간은 노동의 결실에 대한 자연권을 가진다'는 생각이 강력한 힘을 얻어왔다. 그리하여 1980년대 후반 하원세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빌 아처(Bill Archer)는 레이건의 뜻에 따라 고소득자들을 위한 감세인을 지지하면서 "이는 초과 과세액을 기업과 가정에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지 부시 대통령은 주로 부자들을 위해 1.3조 달러에 달하는 소득세 감세안을 지지하면서 "그 돈은 당신 돈이다. 당신이 그 돈을 납부한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오늘날 미국의 어떤 정치인이 특정 세제안을 상정한다면 많은 사람이 '워싱턴의 관료들은 자신들이 당신 돈을 당신보다 더 현명하게 사용할 줄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면서 그를 호되게 비난할 것이다.
부자들이여, 그 돈은 당신 돈인가?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인간은 자기가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자연권을 가진다'는 말에 담긴 허점이 금방 드러난다. 산업화된 현대 민주 사회에서 부자들의 높은 소득은 그들의 노력만으로 얻은 결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인프라, 교육, 재산권제도에 대한 현재와 과거의 공공투자에 상당 부분 빚진 것이다. 우리는 부자들이 이런 투자 덕분에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197~198쪽) 물론 누가 어떤 세금을 내야 하는가를 정하지 않고서 이런 문제를 논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공직자들 간의 세금에 관한 논의는 '그 돈은 당신 돈'이라는 우파들의 주문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가 이런 논의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 더욱 빈곤해질 뿐이다.(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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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그 후, 미래의 경제 질서를 말한다’라는 부제의 이 책은 이른바 ‘다윈주의 경제학’을 표방하고 있다. 원제 자체가 ‘다윈 경제(The Darwin Economy)’이기에, 저자의 주장은 경제의 전개도 자연스럽게 ‘진화의 논리’를 따를 것이라는 예측이라고 하겠다. ‘승자독식’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무한 경쟁이 당연시되었고, 지금도 그러한 주장은 널리 통용되고 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과를 독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여기에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더해지면서, 무한 경쟁의 승자독식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경제 현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과연 ‘무한 경쟁’이라는 것이 공정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며,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세금으로 마련된 사회 공공재의 도움을 받지 않는가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세금을 줄이고 이를 위해 정부의 규모도 줄여야 한다’는 이른바 ‘작은 정부론’에 집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당장의 지출을 줄인다면 얼마든지 세금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라고 하겠다. 하지만 저자는 세금이 줄어들면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공공재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현대의 경제 체제에서 이른바 부자들이 누리는 경제 효과는 사회 공공재의 바탕에서 이뤄진 것이기에, 저자는 마땅히 더 버는 만큼 세금도 더 내야한다는 ‘누진세’를 주장한다.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행위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사람의 이름을 딴 ‘피구세’에 대해서도 찬성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의 상당 부분에서 개인의 무한정한 자유를 보장하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이론적 근거가 박약하며,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공공재의 효과를 무시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결국 누구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떠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러한 전제에 동의한다면, 개인의 능력이 아닌 사회적 혜택에 따른 대가로써 마땅한 정도의 세금을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예컨대 과거 ‘담배세’의 인상이 흡연자들의 자유를 빼앗을 뿐 금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담배 가격의 인상이 흡연자의 비율을 크게 낮췄음은 하나의 사례로써 증명되고 있다. 더욱이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흡연을 허용하던 관습에서, 간접흡연의 위험성이 제기되면서 흡연 장소를 제한하는 정책에까지 이르렀다. 이로 인해서 흡연자의 비율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러한 정책이 ‘피구세’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될 수 있다. 무한 경쟁이 아닌 자연스러운 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저자 역시 경제가 그러한 방향으로 쉽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언젠가 경제 정책을 펴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저술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