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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던 끈적한 미련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쓰고 있는 색안경을 벗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니만큼 내용을 적을 순 없지만, 잘 생각해보라. 당신이 쓰고 있는 색안경은 어떤 것인지. 이 소설의 주인공인 기자는 어쩌면 흑인에 대한 편견을 부숴버리려는 목적보다 자신의 명예에 목을 맨 가장 속물적인 인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경계에 서 있는가? 존 카첸바크만의 소설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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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하트의 전쟁>과 <애널리스트>에 열광했던 나에게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 불리는 이 책의 출간소식은 그야말로 쌍수 들고 반길만한 빅 뉴스였다. 그것도 내 생애 최초의 스릴러 분권 구입예정으로 염두에 두었다면 말이다. 근데 다 읽고 나면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는 문구가 출간을 앞둔 마이클 코넬리의 <The Brass Verdict>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란 사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존 박의 신간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에 소재해 있는 <마이애미 저널>의 기자 매슈 코워트는 주립 교도소의 한 죄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열한 살 된 여자아이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흑인 대학생 로버트 얼 퍼거슨의 편지로 자신이 흑인이라는 인종차별적 시각과 강요된 자백에 의한 엉터리 재판에 의하여 누명을 썼다는 주장이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코워트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퍼거슨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기려다 맘을 바꿔 교도소로 그를 만나러 간다.
퍼거슨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결백을 호소하는 그의 논리에 점점 설득되어 가는 코워트, 결정적으로 같은 교도소 내에 수감 중인 또 다른 사형수가 본인이 저지른 범행이었음을 실토했다는 말을 듣고 당사자를 만나 취재한 끝에 퍼거슨의 무죄와 진범을 밝혀낸다. 그것을 기사로 써서 퓰리처상까지 받게 되는 코워트. 그로 인해 정의는 실현되고 언론인으로서 성공이라는 장밋빛 미래에 취해 있을 그때, 진범의 부모가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제 그동안 믿었던 진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코워트는 경악하게 된다.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하여 코워트는 태니 브라운 반장과 여형사 셰퍼와 함께 석방된 퍼거슨을 재조사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이 소설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진범여부와 결백을 둘러싼 진실게임을 통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끊임없는 혼선으로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말을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언론은 끈질긴 취재로 무고한 목숨을 구명하고 진실을 밝혀냈다는 명예로움이 거짓과 기만에 의해 역공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경찰은 오로지 직감만 믿고 얻어낸 자백이 오류일 리가 없다는 완고함 때문에 세상에 떳떳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 피해자는 미국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폐해와 미국 형사 사법제도의 구조적 결함을 조롱하며, 결백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며 세상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상반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누군가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세상에 까발려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폭풍을 맞게 되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에 일용한 양식을 제공하는 게 흑인이긴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란 말이죠. 그리고 사법제도는 통계와 범주에 부합하지 않는 일들을 잘 처리하지 못해요" - 269p -
이렇듯 우리가 평소 무의식적로 신봉하는 고정관념이 진실이 될 수도, 거짓도 될 수 있고 선과 악은 처음부터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믿음에 대한 미세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백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간 피해자를 망치로 깨어질 때까지 줄기차게 두드리는 코워트와 브라운 반장, 셰퍼 형사의 시도는 이제 창과 방패로 대변되기 시작한다. 정교한 심리묘사와 두뇌게임, 논리와 심증이 상호 충돌하는 대화를 통해 진실에 대한 공방전이 흡입력 있게 전개되면서 과연 결백이란 껍질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과연 그 속은 깨끗하게 비어있을 것인가? 아니면 함정이라는 노른자가 들어 있을까? 마지막까지 가서야 진실은 공개된다.
하지만 과연 존 박! 이라며 감탄을 하다가도 서술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엉성하고 진부한 느낌도 들고, 흡입력 있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골인지점에 가까워질수록 명쾌함 대신 논리의 비약과 감정을 앞세운 치기로 건너뛰며 성급하게 마무리되는 결말 또한 공든 탑의 한축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읽는 동안 방대한 페이지를 전혀 의식할 수 없었던 <하트의 전쟁>의 그 짜릿한 재미를 생각하면 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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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25페이지, 26줄, 26자.
<마이애미 저널>의 매슈 코워트는 한 사형수(로버트 얼 퍼거슨)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당연히(?)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퍼거슨이 새로 선임한 변호사 로이 블랙을 만나니 이렇게 말합니다.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죄가 없다는 것과 같지는 않다. 사실 둘은 다르죠. 법원은 주어진 절차에 따라 주어진 증거가 적절하고 법률에 부합하면 유죄를 내리고, 아니면 무죄를 내려야 하는 것이지요. 심증으로 치죄할 수는 없으니. 그러므로 범죄자가 풀려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코워트가 들쑤시고 다녀 보니 당시의 판결에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경우가 생기죠. 무죄인 사람을 풀어주거나, 진범을 풀어주거나.
같은 시기에 연쇄살인범이 하나 있습니다. 블레어 설리번이라고 하는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조니 슈라이버에 대한 정황증거를 흘리는 것이지요. 퍼거슨의 주장에 의하면 설리번이 범인입니다. 설리번은 마지막 면회에서 코워트에게 자신의 짓이 아니라 퍼거슨과 거래를 한 거라고 말하고 사형집행 당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사형수의 마지막 말이 진실이라고 보통 믿는데 정말이냐는 의미의 말도 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기 직전, 마지막에는 진실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사이코 패스라면, 마지막 말도 믿기 어렵지요.
아무튼 1권은 약간의 허술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읽을 만합니다. 2권을 기대해 봅니다. 허술하다고 하는 건, 조금만 읽으면 이런 전개가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개는 몇 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인데 너무 빤히 보이는 게 그대로 진행되면 허술하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150306-150306/15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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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홀로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던 기자 코워트는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한 사형수의 편지를 받고는 호기심이 동한다. 허실삼아 교도소에 들른 그는 한 소녀의 강간 살해범으로 복역중인 로버트 얼 퍼거슨을 만나게 된다. 그마나 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형수로 교도관들에게 나름 신임을 받고 있던 그는 코워트에게 자신이 죄수가 된 것은 형사들의 고문에 의한 것이었으며, 전적으로 인종차별에 의한 편견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신빙성 있다고 생각한 코워트는 퍼거슨을 취조한 두 형사를 만나보고, 그의 무고에 대한 심증을 굳힌다. 더군다나 우연인지 기적인지 그의 말을 뒷받침 해주는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교도소 내에서 미쳤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형수 블레어 설리반이었다. 그는 모호한 말투로 자신이 그 소녀를 강간 살해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하며 형편없는 사법기관을 비웃는다. 어렵사리 시작된 재심은 결국 퍼거슨의 무죄 방면으로 끝이 나고, 그 일을 계기로 코워트는 플리쳐 상을 수상하게 된다. 설리반의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자 모두들 그 사건은 이제 그것으로 일단락 되었다고 생각한다. 설리반이 코워트를 불러내 새로운 사실을 말하기 전까진 말이다. 설리반의 지시대로 그가 설명한 장소에 간 코워트는 노부부 두 사람이 살해당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설리반이 어렸을 때에 학대를 일삼던 계부와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코워트는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들을 누구보다 죽이고 싶어했던 설리반이 감옥에 갇혀 있는 판국이니, 그가 그들을 살해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그들은 누가 살해한 것이며, 설리반은 어떻게 그 둘이 살해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코워트는 그것이 퍼거슨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데... 꼼꼼하게 완성도 높게 쓰려 애쓴 티가 나는 소설이긴 했다. 다만 문제는 지나치게 떡밥을 여기 저기 뿌려 대느라 본문에 들어가기 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린다는 점, 해서 예기치 않게 독자로 하여금 치명적인 지루함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있었다. 아마 작가로썬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었을 듯... 이 책을 정말 재밌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2권이 아니라 한 권 분량 정도로 압축했어야 했지 않았나 싶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많고, 별로 개성적이지 않은 그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 역사와 성격을 만들어 주느라 페이지를 할해하다보니,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살리는 문장을 썼었어야 했는데, 줄창 설명만 하는 문장들만 나열하다 보니, 산만하다 못해 지루해져 버렸다. 어떻게 전개 되는 것일까? 내진 과연 그 사형수는 무고한 녀석일까? 아니면 진짜로 못된 놈일까 라는궁금증에 끝까지 보긴 했지만 심각하게 집중해서 보게 되진 않더라. 흡인력 한 20% 정도? 읽다 말다 하기에 딱 좋은 그런 문장들, 그나마 호기심이 아니라면 끝까지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 굳이 이렇게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필요했고, 그들에 대한 설명을 꼼꼼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래 이 작가, 속도감 하나는 괜찮았는데 말이다. 하여간 처음으로 이 작가에게 실망한 그런 책이 되겠다. 그외에도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점도 별로였다. 이 책 저책에서 짜집기를 해서 만들어 낸 그런 책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짜집기를 하면 참신해 보일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글쎄...무고하게 잡혀간 흑인 범인, 그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인종 차별을 주장하고, 거기에 등장하는 정의감 넘치는 기자의 출현, 처음엔 반신반의하다 결국 정의를 확신하며 사건에 뛰어 드는 사명감 넘쳐주는 기자는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 치도 하지 못한다. 거기에 범인을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흑인 경찰관이 등장하고, 기자는 그를 백인이 되고 싶어 환장한 흑인으로 여기고, 그 형사 역시 딱히 그런 기자의 편견에 딴지를 걸지 않는다.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 하지 않으신지? 데자뷰처럼 말이다. 이런 것들을 그래도 하나로 묶어서 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대단하다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누구도 작가에게 여기 저기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다고 말 해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마도 반전이 특이해서 그나마 이야깃 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물론 그것이 흥미롭긴 했지만서도, 그걸로 지루함과 식상함을 메우기는 부족해 보인다. 반전으로 먹여 살리기엔 너무 길게 늘어져서 말이다. 그나저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 작가는 왜 인종 차별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일까? 이름을 들어보면 유대인이 아닐까 싶던데, 왜 흑인의 차별에 그렇게 민감하게 촉각을 세우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진짜 인종차별주의자라서? 진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