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권짜리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누가 봐도 열다섯 살이 넘지 않은 어린 캐나다 소년은 너무 오래 주춤거렸다.’라는 문장이 있다. 소설에서 대니얼 배시아갈루포는 육십 대의 소설가인데,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집필하고자 하는 소설의 첫 번째 문장을 생각해낸다. 그리고 그 문장은 소설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에서를 시작하는 첫 번째 문장이 되었다.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하고 우로보로스 같기도 하다. “강 이야기를 해보면 다른 강이 그렇듯이 이 강도 그저 계속 흘러갈 것이다. 다른 강이 계속 흘러가듯이, 통나무 아래로 떠내려간 캐나다 소년의 몸은 강물과 함께 흘러갔고 강물은 소년의 몸을 이리 밀고 저리 떠밀면서 제 갈 길을 갔다. 이리 밀고 저리 떠밀면서, 또한 이 순간 트위스티드 강이 불안해 보이고 심지어는 조바심을 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아마 강물만은 소년의 몸이 계속 떠내려가기를 바랄 것이다. 계속 떠내려가기를.” (p.50, 1권) 엔젤이라는 소년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되고, 소년의 죽음은 멈추지 않는 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리고 자제를 모르는 이야기꾼인 존 어빙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단 한 순간의 주춤하는 기색도 없이 소년 대니 배시아갈루포 혹은 작가 대니 엔젤의 삶을 풀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니 배시아갈루포 혹은 대니 엔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아버지인 요리사 도미니크 그리고 벌목꾼인 케첨이 존재하였다. “당신 둘 사이에 또 다시 어떤 폭력이 벌어질 경우 난 두 사람 모두에게서 떠날 거예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절대로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나는 어느 누구 곁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죽는 날까지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두 사람은 사이좋은 형제처럼 항상 서로를 보살펴 줘야 해요. 두 사람은 각각 내 반쪽을 가질 수 있어요. 그렇지 않을 경우 두 사람은 내게서 아무것도 갖지 못할 거예요. 만일 두 번째 경우가 된다면 난 대니를 데리고 가버릴 거예요...” (p.282, 1권) 도미니크와 케첨은 또한 대니를 낳은 로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두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니가 어렸을 때 로지는 죽었다. 엔젤과 같은 방식으로 강에서 실족하였고 그대로 사라졌다. 소설의 전반부에 대니는 자신을 낳은 로지를 둘러싼 도미니크와 케첨의 존재 방식에 의구심을 품고, 소설이 진행되면서 해소된다. 로지가 없는 동안 두 사람은 사이 좋게 지냈으며 죽을 때까지 대니를 아꼈다. “대니 엔젤이 상당히 풍부한 상상력을 지녔음에도 아버지의 논리를 헤아릴 수 없었다. 서로 겹쳐진 스냅 사진들은 어떤 역사적인 해석도, 시각적인 해석도 거부했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놀랄 만큼 젊어 보이는 케첨이 대니의 기억에 분명히 트위스티드리버의 취사장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인준 제인과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오래된 사진 옆에 조(아장아장 걷는 아기 때)와 함께 찍은 대니의 컬러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는 이유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다만 대니가 기억하기로는 이 사진 속에 케티가 함께 있었는데, 요리사다 비치노 디 나폴리의 피자 오븐 앞에 파울 폴카리와 함께 서 있는 카르멜라 사진으로 교묘하게 케티의 모습을 완전히 가려 놓은 이유만은 알 것 같았다. 이 사진은 아마 토니 몰리나리나 나이든 주세 폴카리가 찍어 주었을 것이다.” (p.184, 2권) 소설에서는 1954년에서 2005년까지 오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 사이 도미니크와 대니 부자는 뉴햄프셔에서 보스턴으로 버몬트 주 윈덤 카운티로 그리고 토론토로 움직인다. 이 여정은 대니가 어린 시절 일으킨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트위스티드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을 때 벌어진 사건은 칼이 은퇴한 보안관 대리가 되었을 때까지 이어지고, 소설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죽음 중 하나의 죽음 혹은 두 개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게 우리 사이의 첫 번째 규칙이었지. 난 그녀에게 왼손잡이 애인이었어. 우리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내 왼손은 그녀의 것이었어. 왼손은 로지를 위한 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겐 가장 중요한 손이고, 좋아하는 손이었던 거지. 이 손은 좀더 친절한 손이었고 나를 가장 닮지 않은 손이었어.” (P.312, 2권) 해설에 따르면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은 작가 존 어빙의 경력이 가장 많이 겹쳐진 작품이다. 존 어빙의 실제 학력란에 기재되어 있는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아이오와 대학이 소설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존 어빙을 가르친 커트 보네거트까지 잠시 등장한다. 소설가라는 주인공의 직업이나 레슬링이라는 스포츠의 등장 또한 작가와 겹치는데, 이는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도 그러했다. 존 어빙 John Irving / 하윤숙 역 /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 (Last Night In Twisted River) / 올 / 전2권 (1권 438쪽, 2권 447쪽) / 2012 (2009) |
|
[리뷰] 존 어빙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
900 페이지 가까운 소설을 한 편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꼭 범죄소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 작품 안에서 범죄가 발생한다.
그럼 그 범죄가 어떤 형식으로건 해결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적당할까. 다시 말하면 900 페이지의 소설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작품 안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것이 적당할까.
사실 이건 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인물들이 스스로 행동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작가 자신도 모른다.
호흡이 빠른 소설의 경우 단 하루 또는 일주일 만에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소설은 무척 템포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들도 거기에 맞춰서 숨가쁘게 읽어나가야 한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몇 년 또는 몇 십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려면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결말을 알기 위해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을 죽이고 도망다니는 부자
존 어빙이 2009년에 발표한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대략 900페이지 정도되는 이 작품 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약 50년이다. 50년의 세월을 900페이지에 담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존 어빙은 그 일을 해냈다.
작품은 1954년 미국의 뉴햄프셔주에서 시작한다. ‘트위스티드리버’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는 작은 마을이다. 많은 벌목꾼들이 나무를 베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다. 그렇게 베어낸 나무를 강물에 띄워서 하류로 내려보낸다. 많은 벌목꾼들이 있기에 그들을 상대로하는 음식점이나 술집도 있기 마련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벌목꾼들을 상대로 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아들이다. 그 요리사의 아들인 12살 소년 대니는 어느날 착각과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사람을 죽였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대신에 대니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아들과 함께 야반도주를 한다. 대니의 아버지와 ‘절친’이었던, 케첨이라는 이름의 벌목꾼이 이들의 도주를 돕는다. 대니와 그의 아버지는 뉴햄프셔를 떠나서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50년 동안 보스턴, 버몬트주를 거쳐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의 토론토에 머물기도 한다.
이들 부자를 뒤쫓는 사람도 있다. 당시 트위스티드리버 지역의 보안관이다. 그는 의문의 살인사건에 이들 부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수십년 동안 대니 부자를 추적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건, 보안관과 대니 부자가 만나면 과연 어떤 장면이 만들어질까?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보낸 시간들
대니 부자를 쫓는 보안관의 추적은 50년 동안 이어진다. 그 세월동안 누군가를 쫓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동안 도피생활을 한다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뭔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람을 죽이고 도망다닌다면 그 심정이 어떨지는 말할 것도 없다.
대니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도피 중이기 때문에 자신의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한다. 대니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긴 도피생활을 하다보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처음보는 사람들 앞에서 숨겨야 할 것이다. 본명을 숨기고 과거를 감추고 태어난 곳을 속여야 한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에서 12살로 등장한 대니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환갑이 넘는 나이로 글을 쓴다. 누군가를 추적하고, 또는 누군가에게서 달아나는 데에는 50년의 세월도 부족할지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인생을 살면서 도망다니는 일 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일도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