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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인 정조의 치세에, 정약용은 왕의 총애를 받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약용은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과 함께, 당대의 집권 세력이었던 노론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게 되었다. 당시 조선에 유입되었던 서학(천주교)에 형제들이 포섭되었고, 이를 불온시하던 집권 세력은 정약용을 그에 얽어 끝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보냈던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지만, 만약 정조가 좀 더 오래 살고 정약용이 그를 보좌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을까?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방대한 정약용의 저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장 18년에 걸친 유배 기간에 지방관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를 비롯한 활발한 저술을 남겨, 정약용은 후세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정약용의 유배형이 개인으로서는 불행했다고 하겠지만, 한국의 지적 영토를 넓힌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는 정약용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30여 년 전에 번역했던 것을 더욱 세밀하게 검토하여 개정한 <역주 목민심서>는 한학자인 임형택 선생의 필생의 역작 가운데 하나라고 논할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전체 7권으로 구성된 역주본 가운데 4권은 예에 관한 절차를 기록한 ‘예전(禮典) 6조’ 중의 제3조에서부터 6조까지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수령으로서 ‘백성들을 가르침’(3조), ‘교육을 진흥함’(4조), ‘신분 구별’(5조)와 ‘과거공부를 힘쓰도록 함’(6조) 등의 방법과 절차에 관해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병사에 관한 항목으로 ‘병전(兵典) 6조’가 이어진다. ‘병전’의 내용은 그 제목을 보면 ‘병역 의무자 선정’(1조), ‘군사훈련’(2조), ‘병기 수선’(3조), ‘무예 권장’(4조), ‘변란에 대응하는 법’(5조), ‘외침을 막아내기’(6조) 등 지방관으로서의 역할을 기록하였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외침을 막아내기’는 과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정약용의 의지가 실린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방관의 재판과 형벌 규정에 대한 내용으로 ‘형전(刑典) 6조’가 잇는데, 4권에서는 이 가운데 제1조인 ‘송사를 심리하기 상/하’의 내용만이 수록되어 있다. 송사를 임하는데 있어 억울한 자가 없게 하고,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법과 절차를 규정해 놓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방대한 내용과 쉽지 않은 용어들에 대해서 꼼꼼한 주석과 일기 쉬운 문체로 다듬어 놓은 번역자의 노고를 새삼 인지하게 되었다. 한동안 다른 책들에 밀려 중도에 멈췄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읽어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음미하면서 정약용의 박학한 지적 영역을 체득하고, 번역자의 문장을 통해 한문 번역의 정도를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