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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있어 영생이란 무엇인가? 영원한 삶이 약속된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챤들이 아닐까? 믿기만 하면 영원한 나라인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에 너무도 값싼 믿음에만 치중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가? 이 책은 시종일관 믿음으로 가는 천국이 아닌 행함으로 가는 천국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예 심판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심판자리에 가서 행함이 없음으로 인해 영원한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이란 말인가? 나 또한 믿음으로 인한 천국을 소망하는 한 사람으로 행함이 얼마나 모자랐고, 부족했는지 세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성경 어디에서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말이 없다는 말에 세삼 더 놀랐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거라는 나의 믿음에 바윗덩어리가 던져진 기분이랄까? 물론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말씀이 있을 지언정, 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천국잔치를 참여하기 위한 열처녀의 비유가 너무나도 무서운 말씀으로 다가옴은 비단 나 뿐일까?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마친 다섯처녀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입성할 수 있었지만, 다섯처녀는 미쳐준비 하지 못한 기름을 구하러 갔다가 천국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준비 되지 않은 자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일말의 희망도 없이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시면 문을 닫으신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 인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은 평생 마음 가운데 새기며 살고 있었는데, 구원은 첫번째 단계이고 그 이후 중생에 대한 부분을 반드시 생각 해야한다고 저자는 지속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중생하기 위한 길을 하나님의 뜻을 생활가운데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 뜻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얼마나 했던가? 하지만, 그것은 입술의 고백이었다. 후반절,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얼마나 깊이 새기며 실천하고 있었는가? 이제는 더 이상 구원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구원의 단계를 넘어 우리에게 약속하신 중생의 단계까지 이르기 위해 우리는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면 이 세상에서 보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구원에만 치중된 삶이 아닌 이미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영생의 길에 모두가 동참할수 있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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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가 될수록, 순종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아야한다. 구원의 길은 좁은 문이다. 단순히 ‘교회 다니니까 나는 구원받았다.’ 라고 생각하고, 삶에서 전혀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면, 그의 구원은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거듭나야 천국백성이 된다. 故 옥한흠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너무 값싼 은혜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이다’ 라고 지적했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믿음으로 구원받는 그 믿음은 과연 어떠한 믿음인지 그 중요성과 필요에 대해 성도들이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시작된다. 단순히 4영리를 읽어주고, 기도문을 따라 읽게 만든 후에,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마치 책 ‘천로역정’의 내용과 같이 성도는 하늘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이다. 예수님을 주인이자 구원자, 왕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순종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생명길은 오직 성경이 제시하는 길 밖에 없다. 다른 길로 가면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119:105) 한기돈 장로님이 영생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가지고 순종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운 점은, 구원과 영생을 구분 짓고, 영생의 취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상 구원의 탈락에 대해 말씀하시는 듯하다. 서평을 적는 나는 개혁주의적 신학에 기반하여, 동일하게 성화, 순종과 경건, 거룩의 중요성,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감 등에 필요성을 느끼며 동감하지만, 한기돈 장로님이 책에서 사용하신 표현들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거듭남에 대한 말씀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며,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지,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다,(요한복음 1장 12~13절)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다(요한복음3:3) 그러나, 한기돈 원장님이 사용하신 구원과 영생을 구분지으며, 영생의 취소라는 표현은 자칫, 거듭남의 취소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것은 옳은 표현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알곡과 가라지(마태복음 13장)가 있고, 양과 염소(마태복음 25장)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회 안에 모두가 알곡과 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보이는 교회(유형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무형교회)라는 표현을 한다. 교회 안에는 모두가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순종도 인간의 힘으로 노력을 하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순종을 할 수 없다. 노력하는 의지와 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것이다. 단순한 인간의 결단과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중생의 역사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진정한 신자의 삶에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면, 그 분께서 사람의 존재 바로 그 중심을 변화시키시며, 그 분께서 그 사람 가운데서 계속 일하셔서 성화와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의 열매를 내실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모두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다. 모태신앙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구원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며, 부모님이 목사이거나 직분자라하여 자신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종교인이 아니라, 거듭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죄와 심판, 참된 회개와 그리스도의 보혈, 십자가, 거듭남에 대한 설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반드시 지속적인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과 좌절, 분투가 있지만, 그리스도인 삶의 전체 여정을 통해, 그 사람이 변화하고 바뀌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 일을 완성시키실 것이다. 중생, 거듭남은 사람을 능히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사람이 능히 좁은 길로 걸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는 억지로 좁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을 얻기 위해 이루어야 할 어떤 무서운 의무로 좁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그가 좁은 길을 걷는 이유는 그의 마음이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좁은 길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좁은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일차적으로 발견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쁨이다. 육체적인 분투, 마귀에 대한 분투, 세상에 대한 분투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주 하나님을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이다. 오히려 절박함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길이시며, 유일한 소망이시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이시며 천국이 목적지이다. 세상의 허영의 도시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이유가 없다. 예수님을 자신의 삶에서 떼어놓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분의 말씀 또한 믿는 것이다. 믿으면 행하게 되어있다. 믿음이 약하다면, 애통함과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로 간구해야 한다. 자신이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영의 양식을 매일 풍성하게 섭취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삶이 구원의 유일한 증거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추천하기보다는,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영생과 구원, 거룩과 순종에 대한 기존의 양서들을 탐독하는 것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