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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가득 쌓인 책들을 볼 때마다 아내가 구박을 한다. 현재 책상을 둘러싸고 있는 책장의 윗면으로 삥 둘러 책이 놓여 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책상 위에도 옆으로 눕혀진 채 여섯 줄 가량의 책 탑이 쌓여 있다. 아내는 읽지 못할 책을, 놓을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계속 구매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나는 내년 초에 해치울 작은 계획을 하나 세운다. 칸 사이가 높지 않고 깊이가 깊지 않은 책장 몇 개를 구매하고, 벽에 걸어 고정시킬 수 있는 벽고정형 책장을 또 몇 개 만들 작정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내 책상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 난 이제 더 이상 의무감으로 책을 읽지 않아요. 뭔가를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도 않고요.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읽고 싶은 몇몇 책들이 있답니다.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를 말하긴 어렵군요. 읽지 않고 떠난다면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p.15) 그렇게 탈환된 책상, 그 책상을 둘러싸고 있는 책장의 윗면에 놓일, 그렇게 책상을 한 줄로 둘러쌀 책들을 상상하니 즐겁다. 제임스 설터는 문장의 스타일을 호시탐탐 들여다볼 작가들 중 하나로 버젓이 그 공간에 놓일 것이다 제임스 설터의 책들은 리처드 브라우티건, 찰스 부코스키, 엘리스 먼로, 파스칼 키냐르, 가즈오 이시구로, 줌파 라히리의 책들과 함께 할 것이다. 존 벤빌의 《바다》, 나보코프의 《롤리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 먼 올빼미》도 빼놓기는 싫다. 『모파상은 플로베르의 학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잘 알았고, 플로베르가 모파상에게 글을 어떻게 쓰는지, 어떻게 끝내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모파상은 플로베르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첫 단편소설을 플로베르에게 가지고 갔어요.(나는 이게 사실이라고 믿어요.) 「비곗덩어리」라는 작품이었지요. 모파상은 몹시 불안해했어요. 그는 스물아홉 살이었습니다. 괜찮은 작품인가요, 아닌가요? 플로베르는 작품을 읽은 뒤 돌려주면서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걸작이네.” 그런 다음 덧붙였습니다. “딱 두 단어만 밖고 싶네.” 물론 하나하나의 단어가 모두 다 완벽한 단어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방이 다 강이 바라보이는 방일 수는 없잖아요. 수많은 평범한 단어들이 한 권의 책을 만듭니다. 수많은 평범한 군인들 사이에 가끔씩 영웅들이 있는 군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단어들, 또는 문장이나 해당 페이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단어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한 감식력이 있어야 합니다. 글이 나빠졌을 때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요.』 (pp.29~30) 책은 제임스 설터가 사망하기 10개월 전, 그러니까 89세였던 2014년에 버지니아 대학에서 세 차례에 걸쳐 강연한 내용, 그리고 1993년에 <파리리뷰>와의 인터뷰 내용을 묶어 (<파리리뷰>는 1953년에 시작된 인터뷰 전문 잡지이다. 직전 읽은 《글쓰는 여자의 공간》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이 <파리리뷰>와 인터뷰를 했고, 작가는 그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그의 사후 출간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면밀히 관찰할 줄 아는 작가입니다. 디테일이 전부인 것입니다. 글쓰기에서 내가 지향하는 바는 플로베르가 지향하는 것, 즉 ‘사실주의’ ‘객관성’ ‘문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그렇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 문장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한때는 완벽한 페이지들로 이루어진 채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 억압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는 여전히 문체를 대단히 중시합니다. 오래 지속하는 것은 문체라고 나는 생각한답니다.” (pp.37~38) 제임스 설터는 이 강연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 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책에 실린 제목으로 보자면 ‘소설을 쓰고 싶다면’, ‘장편소설 쓰기’, ‘기교의 문제가 아니에요’가 이 세 갱의 강연 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가의 작가’라고 불리우며 대중적인 지지보다는 작가들의 지지를 좀더 받았다. 그리고 이 강연에서 제임스 설터가 ‘작가의 작가’로 꼽고 있는 작가들의 목록은 발자크, 플로베르, 바벨, 드라이저, 셀린, 나보코프, 포크너, 솔 벨로 등이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런 것 같아요. 그것들에도 시간의 흔적이 어리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최신 상태가 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지요. 그것들은 시간 바깥으로 나가서 존재하거나 아니면 소멸됩니다. 문학은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드러내 보여준 다음, 점차 그 시대와 장소가 됩니다.” (p.75) 책에 실린 강연과 인터뷰에서는 제임스 설터의 몇몇 장편소설 《사냥꾼들》,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 그리고 단편소설 <20분>, <아메리칸 급행열차> 등이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거론되고 있다. 작가의 소설을 꾸준히 빠지지 않고 읽었다면 이러한 거론을 놓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소설 장르의 성실한 독자 그리고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나 아직 자신의 문체를 갖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소설가 등에게 좋은 읽을거리이다. 제임스 설터 James Salter / 서창렬 역 / 소설을 쓰고 싶다면 (The Art of Fiction) / 마음산책 / 208쪽 / 2018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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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작가로 평가받는 제임스 설터의 소설 쓰기에 관한 에세이. 제임스 설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 자신이 읽고 싶은 소설책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어떻게 소설을 쓸 것인가에 대해 알려준다. 이를 테면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에서 어떻게 인물과 배경을 묘사하고 시점을 이동했는지, 헤밍웨이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무기여 잘 있거라>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또 이렇게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잘 읽어내야' 함을 강조한다. 탄탄한 독서야말로 쓰기의 근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좋은 글쓰기를 위한 단련법으로도 유용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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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 낯선 이름이었다. 확실히 나의 문학과 문학사적 지식이 낮음을 까보이는 듯한 이름이다. 미국이 믿고 있는 작가이며, 작가의 작가라는데, 처음 듣고 당황했었다. 그러나 작가도 자신에 대한 인지도를 알고 있었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도 너무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미 작가는 90세를 살고 이미 2015년 고인이 되었다. 다행이 그의 작품들이 국내 번역되어져 나오고 있기에 곧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작가의 이력에 한국전때 비행조종사로 참전했었다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그는 비행 조종사였다. 그런 그가 비행조종사를 포기하고 작가가 되었다. 그리곤 기억할만한 작가가 되었다. 무언가를 포기할때 치러야 하는 비용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그의 용기가 대단함을 느껴본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그의 강연의 강의록을 사후 편집해 엮어논 것이다. 강의록에 추후 인터뷰한것을 더하여 놓았다. 강의를 통해 그가 느끼는 소설과 소설쓰기에 대한 느낌들을 알 수 있었다. 몹시도 현실적이었고 이상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인상이 깊다. 작가인 그도 보통의 사람들이 글을 쓰다 겪는 모든 것들을 겪고 공유하고 있음에 더 공감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과 기교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단순 나만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라 말한다. 그러면서 쓰고 또 쓰다보면 문체도 정리되고 글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게된다고 한다. 소설의 기술들이 정리되어져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설가가 되어간다고 한다.
책<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작가의 소설쓰기의 여정을 강의를 통해 담담하고도 세세한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다. 강의를 듣는 청중들은 성공담보단 실패담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실패담에서 공감력을 더 발휘한다고 한다. 작가의 경력뒤에 많은 씁쓸한 실패담을 통하여, 작가의 성장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일테다. 디테일이 있는 그의 강의가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설터는 말한다. 소설쓰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의 소산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다"라는 그의 말이 왠지 폐부 깊숙한 곳에서 저려온다.
그의 인터뷰한 내용들을 훑어보다보면 그의 의도대로 소설쓰기가 어떤 것이란걸 어슴프레나마 추측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면밀히 인생을 관찰하고 기억 해" 그것으로 소설의 주된 소스가 되며, 소설의 전부가 되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것"이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소설쓰기도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 말한다. "소설을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다시금 혀에 맴돈다. 하지만 계속해서 글을 써가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소설가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글쓰기에서 "뭔가를 얻어내려 아주 많은 것을 글쓰기에 바치"고,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결과가 고작 '아주 소소한 것' 뿐일지라도 말이다.
작가 제임스 설터는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 없다. 또한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있다. 아마도 제임스 설터도 그중 한명임에 틀림없다 생각된다. 비록 많은 사람에게 잘알려지진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이 책<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통해, 그의 생각과 바램처럼 많은 예비 작가들이 소설을 쓰려는 글쓰기를 통해, 소설의 기술을 그에게 배워보고자 한다면, 그 소설 속에 자신의 삶을 써내려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누군가가 써 논 한 편의 소설은 작가 자신을 투영해 각 작가 자신들의 삶의 기술해논 기록이 될 것이기에 말이다. 설터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 또한 나만의 기록물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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