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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관한 책인지 모른 채, 단지 오은 시인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구입했다. 산문집 아니면 서평집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표지에 '오은의 색그림책'이라고 적혀 있다. 색그림책이 뭘까. 특이하네, 하고 뒷면을 봤더니 편집자 란에 정세랑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내가 아는 정세랑 작가? 그러고 보니 정세랑 작가 소설 중에 <재인 재욱 재훈>과 제목이 비슷하다. <너랑 나랑 노랑>과 <재인 재욱 재훈>. 그나저나 <재인 재욱 재훈>을 사놓고 안 읽었네. 언제 읽지... 이 책은 서양화 30점을 오로지 색을 기준으로 분류해 색에만 집중해 쓴 글을 엮었다. 저자는 레드, 블루, 화이트, 옐로, 그린, 블랙으로 그림을 분류하고, 각각의 그림의 형태나 상징, 기법이 아니라 색채에 관해서만 생각했다. 저자는 직접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되어보기도 하고, 화가와 멀찌감치 떨어진 관찰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화가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화가와 인터뷰를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글을 읽다 보면 앞에서 본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다양한 심상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게 참 색다른 체험이었다. 그림을 보고 쓴 글을 읽고 다시 그 그림을 떠올리다니. '우리가 색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는 우리의 눈을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가? 색의 경계는 칼로 무 자르듯 분명하고 명쾌할까?' 저자는 색에 대해 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한없이 투명한 블루와 네이비블루는 멀다. 내가 생각하는 레드와 상대가 생각하는 레드는 같은 색이 아닐 수 있다. 같은 지중해를 보고 나는 코발트블루 색이라고 말하고 상대는 아쿠아마린 색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해진다. 실컷 오해하고 오독해도 상관없다. 앙리 마티스가 누구인지, 어떤 파인지 모르는 사람도, <붉은 조화>라는 그림에 칠해진 붉은 색을 보면 다양한 심상을 떠올릴 것이다. 혹자는 붉은 벽지가 고급스럽다고 느낄 것이고, 혹자는 붉은 사과가 맛있어 보인다고 느낄 것이고, 혹자는 붉은 테이블이 매혹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방 전체의 붉은 기운이 따뜻해 보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 색에 대해 말하다 보면 작품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 생기고, 자기 자신의 감정이 보인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색에 집중해 그림을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이 책에는 오은 시인 특유의 언어유희(말장난)이 돋보이는 문장이 여럿 있다. "레드는 고도로 고고하고 도도하다.", "수련 옆에서 수련하기", "내일을 불러오는 게 내 일" 등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맥도널드의 맥이 빠지고 코카콜라의 코가 납작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이다. 문장 자체도 재미있지만 글 전체의 맥락을 알면 더욱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다. 어떤 글에 실려 있는 문장인지는 직접 책에서 확인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