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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학생운동 하면 으레 1989년 6·4천안문사태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1957년 반우파시기 북경대 학생운동이 있었다. 이들 학생운동의 주장은 반당, 반사회주의의 '우파언론'으로 치부되어 탄압을 받았었다. 그런데 첸리췬은 1957년 역사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중국 현실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면서 이른바 '1957년학'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첸이 말한 '1957년학'이란 바로 반우파운동 시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비판적 지식인들의 주장을 연구하는 것이다. 북경대 학생들의 주장은 '사회주의적 민주'라는 쟁점과 맞닿아 있는 사회주의 민주운동이었다. 당시의 핵심적 문제는 '세 가지 해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료주의, 종파주의, 주관주의를 척결하는 문제였다.
첸에 따르면 1957년 '우파학생'이라고 불렸던 지식인들의 운동은 과거로는 1919년 5·4운동의 전통과 연결되고, 이후로는 문화대혁명의 조반파와 이단사조들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상해방운동으로 이어지는 주요한 역사적 고리에 해당한다. 저자가 1957년학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일관된 비판적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 첸리췬은 시장의 환상에 굴종하고 대중들의 고난에 눈을 감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비판을 늦춘 적이 없으며, 반면 중국특색과 시대의 특성을 빌미로 중국의 이례성과 결합한 강한 국가주의에 투항한 신좌파에 대해서도 질책을 아끼지 않았다. 첸의 이러한 입장이 '1957년학 연구기록'에 반영되어 있다고 봐도 된다.
1957년은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의 방침에 따른 대대적인 사상해방의 분위기가 대대적인 반우파투쟁으로 급반전되던 시기다. 저자는 이 시기를 현대 정치사, 사상문화사, 지식인 영혼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당시 북경대 학생운동의 선구자들은 탄톈룽, 물리학과 학생인 류치디, 장징중, 첸루핑, 왕수야오, 천차오난, 장싱런, 쉬커쉐, 천아이원, 장원, 룽잉화, 야오런제, 팡줘헝, 주칭치, 두자친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