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45%
  • 리뷰 총점8 5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8.0
  • 30대 8.0
  • 40대 8.0
  • 50대 9.0

포토/동영상 (5)

리뷰 총점 종이책
디스토피아는 미래가 아니다. 현실의 울림이다. -『퓨어 1』
"디스토피아는 미래가 아니다. 현실의 울림이다. -『퓨어 1』" 내용보기
어렸을 때 디스토피아 영화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는 바코드가 없으면 구매할 수 없다는 내용을 부정적인 메세지를 담아 바코드로 인한 세상의 지배같은 내용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 영화를 떠올려보면 바코드가 일상이 된 작금의 현실이 그렇게 극한의 상황으로 다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를 하는 반면에 왜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는 미래가 아니다. 현실의 울림이다. -『퓨어 1』" 내용보기

 

 어렸을 때 디스토피아 영화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는 바코드가 없으면 구매할 수 없다는 내용을 부정적인 메세지를 담아 바코드로 인한 세상의 지배같은 내용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 영화를 떠올려보면 바코드가 일상이 된 작금의 현실이 그렇게 극한의 상황으로 다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를 하는 반면에 왜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보여주는 영화와 문학이 필요한지를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것도 같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자본주의의 이면에는 언제나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불평등 이념이 바탕이 되어 있고 급변하는 디지털 속도에 불안감을 감지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측정할 수 없는 미래는  말 그대로 "디스토피아" 를 느끼게 한다. 최근에 들어 급증하는 영화장르나 문학에서도 디스토피아를 주를 이루는 것 또한 그런 이유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의 불안을 그대로 투영해주고 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양분화된 사회, 엘리트 집단만이 살아남은 미래속에서 약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강자의 모습을 담은 디스토피아를 담은 소설 『퓨어 』는 기존의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를 닮아 있다. 최근 개봉된 영화 『헝거 게임』과 비교하자면, 『헝거 게임』에서는 지배측이 군림하고 있는 도시를 '판엠'이라고 불렀지만, 『퓨어 』에서는 '돔'이라고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퓨어의 세상은 조금 더 진보적이고 앞선 테크놀리지의 세계라는 차이를 보인다.

 

태양에 태양에 태양을 더한 것 같았던 밝디밝은 빛같았던 '대폭발'이 일어난 후의 세계이다. 

돔에 살고 있는 이들은 '퓨어'라 부른다.

대폭발이 있은 후, 사람들은 딱 두부류로 나누어지게 된다.

바로 '돔'에 있는 사람과 '돔'밖에 사는 천민들.

돔은 천민들을 언제나 주시하고 있으며, 언젠가 지구가 회복되는 날, 천민을 돌보며 새출발 할 것이라 믿는 이유는 , 대폭발이후 돔에서 날아온 종이(메세지)들 때문이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우리는 '돔'에서 나와 여러분과 평화롭게 공존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멀리서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그러나 돔 밖의 세계는 강력한 군사 정권으로 인간 사냥을 즐기는 군인들이 존재했고,

대폭발로 인해 하늘에서는 늘 검은 재가 내렸고, 불에 타고 뒤틀린 생존자들은 몸이 성한 사람이 없었다. 화상과 흉터, 아니면 주위의 사물이나 짐승들과 융합된 사람들, 기형의 아이들, 새로운 기형의 종들이 출현하는 곳이다. 반면에 대폭발에도 살아남은 지배층들은 밖의 세계와는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가지만 , 지배층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완벽한 신분사회이다. 철저하게 교육되고 철저하게 연구를 바탕으로 우성인자만 존재하는 곳이 바로 '돔' 이다. 

 

대폭발 시에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있던 할아버지는 선풍기가 그대로 목에 박혀 죽을 때까지 한 몸이 되었다. 그런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영특한 손녀 딸 '프레시아'는 이제 곧 열여섯이 된다. 혁명군은 무조건 열여섯이 되면 아이들을 잡아가는데 이번에 그 명단에 포함된 프레시아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감지한다.  장의사였던 할아버지는 이제는 산 사람의 살을 꿰매주는 일을 하고 프레시아는 근근히  작은 동물을 만들어 시장에 팔고 채소를 받아 근근히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나마 프레시아가 만드는 나비는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나비가 주는 생명의 몸짓이 희망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돔의 지도자층의 한 사람인 월럭스의 아들 '패트리지' 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호출을 받는다. 애정도 없고 살가움도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월럭스는 지배자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차가움, 오만함, 매정함의 화신이다. 돔으로 들어오는 날 , 천민들을 구하기 위해 나갔던 엄마를  기억하는 패트리지는 엄마의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또한 돔에 있는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는 패트리지가 행동 코딩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계속된 실험을 하는데 행동 코딩에 문제가 생긴 것이 '어머니 ' 탓이라는 말을 흘린다.  우연히 엄마의 유품을 발견한 패트리지는 그 유품들을 보자, 엄마가 돔 밖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돔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어렸을 때 늘 불러주던 엄마의 노래를 기억하며..

 

"항상 빛을 따라가렴. 네 영혼을 따라가렴.네 영혼에 날개가 있기를.

너는 내 길라잡이야."

 

 이후 펼쳐지는 세계는 숨막히도록  빠르게 전개되고 돔 밖으로 탈출한 패트리지가 프레시아와 만난 후의 행보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둘의 만남은  절망만 가득찬  세계에 희망을 주고 , 돔 안에서도 작은 변화가 꿈틀거린다. 혁명군에 의한  프레시아의 납치로 패트리지와 브래드웰은 또다른 진실에 접근하게 되는데, 브래드웰은  돔밖의 천민들 중에서도 지하세계를 조직하여 대폭발과 '돔'에 대한 환상과 통념에 반기를 든 인물이다.  이어 둘은  광활한 녹은 땅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힘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여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패트리지의 엄마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과정이 2권에 펼쳐질 예정이다.

 

소설에서 그리는 세계는 마치 핵 전쟁이후의 모습을 그린 느낌이다. 이런 상상속에  미래의 재앙은 현실이라는 화살을 겨냥한 것이다. 소설 속의 세계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은 기존의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그려진 익숙한 장면들이 떠오르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매력적인 등장인물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들을 억압하게 하는 것- 자유와 권력- 에 대항하여 싸우는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구원자로서 스토리에 생명력을 부여해줌과 동시에 부조리한 현실과 싸우는 전사의 모습이다. 디스토피아 문학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부조리를 극한 상황까지 끌어올려 상상하게 하여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데에 있다. 디스토피아는 먼 미래가 아닌 바로 현실의 울림인 것이다.

*2권에 계속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2.05.05. 신고 공감 8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GRAVE NEW WORLD
"GRAVE NEW WORLD" 내용보기
유토피아가 결핍이 만들어낸 이상이라면 디스토피아는 삶의 어느 순간 문득 엄습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하는 불안이 결국은 보게 만드는 진실이다. 이렇게 유토피아가 인간의 힘과 이성으로 얼마든지 결핍을 메울 수 있다는 낙관론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디스토피아 역시 비관론의 소산이긴 하지만 그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은 '부재하는 것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고 결핍은
"GRAVE NEW WORLD" 내용보기

 

 

 유토피아가 결핍이 만들어낸 이상이라면 디스토피아는 삶의 어느 순간 문득 엄습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하는 불안이 결국은 보게 만드는 진실이다. 이렇게 유토피아가 인간의 힘과 이성으로 얼마든지 결핍을 메울 수 있다는 낙관론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디스토피아 역시 비관론의 소산이긴 하지만 그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은 '부재하는 것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고 결핍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것이니 우리의 힘과 이성의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가운데 출발하자'라는 일종의 겸허한 자기 긍정이다. 그렇게 유토피아가 다소 자기 능력의 과신에 자리잡는다고 한다면 디스토피아는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 자리잡는다. 즉 유토피아가 이카루스의 날개라면 디스토피아는 메두사에게로 다가가는 페르세우스의 거울인 것이다.

 

 

 

 새삼 이런 구별을 말하는 것은 이러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모습이 지금 말하는 이 소설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설은 대폭발로 인해 멸망해버린 지구의 모습을 그리는데 거기엔 그 대폭발로 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일단의 무리들이 모여사는 '돔'이라는 곳이 있다. 그 '돔'은 폐허와 굶주림 그리고 죽음만이 가득한 거기에다 사람들 또한 화상으로 인한 흉터와 기형 그리고 온갖 사물들과의 융합으로 기괴한 모습을 이룰 수 밖에 없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온전하고 안전한 세계가 된다. 제목인 '퓨어'는 바로 그 '돔'에 살고 있는 몸에 아무런 화상 자국도 흉터도 없으며 융합도 되지 않은 멀쩡한 신체를 가진 이들을 그 바깥의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마치 소설 속 재활원 처럼 순백으로 결빙된 구원이라 할만한 '돔' 자체에 대한 의미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돔'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것이 바로 주인공 패트리지의 아버지인 월럭스의 유토피아적 욕망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지독한 병에 걸려 죽어 가고 있었어. 요양원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감옥은 감염된 병자들을 위한 곳으로 변해갔어. (...) 게다가 도시는 탄약으로 넘쳐나고 민란이 들끓었어. 슬픔은 커지고 삶의 무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버거워졌어. (..) 굳이 대폭발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갈 데까지 가다가 결국은 서로를 죽이며 피바다를 만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어찌 보면 그들이 빨리 끝장을 내 준 셈이기도 해. 안 그래?"(2권 P. 18)   

 

 

 대폭발은 바로 월럭스가 일으킨 것이었고 그건 바로 위에서 잉거십이 말하는 바와 같은 그런 세상을 뜯어고쳐보겠다는 유토피아적 욕망에서 발현된 것이었다. 그렇게 이 소설엔 그 누군가의 유토피아적 욕망과 그 결과로서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일종의 댓구를 이룬다. 이러한 댓구의 모습은 무엇보다 두 가지 중요하지만 서로 대립되는 상징에서도 나타난다. 그 두 상징이 바로 불사조와 백조이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불사조는 대폭발을 가져온 계획에 붙여진 이름이고 백조는 패트리지와 프레시아 일행을 어머니에게로 인도하는 조각이다. 아니 백조 자체가 어머니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게 불사조는 유토피아를 백조는 디스토피아를 의미한다. 이제와 말하지만 여기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어떤 묘사된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세상에 대한 어떤 시선자체를 의미한다. 아시다시피 유토피아란 어디까지나 세계의 발전가능성과 인간의 완전가능성이란 개념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여기에는 단순히 현상의 서술이 아니라 그 서술 자체를 가져오는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 혹은 태도가 근원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불사조와 백조의 상징은 바로 그 각각에 자리잡은 그 근원적 시선에 대한 것이다.

 

  불사조란 언제 죽더라도 자기 의지로 온전히 부활할 수 있는 새다. 때문에 그것은 인간의 현재가 어떠한 모습이든 인간의 의지와 이성으로 언젠가 분명 완벽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욕망의 근원에 자리잡은 낙관적인 자기 확신과 닮아있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부활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불사조는 분명 그것의 제대로 된 상징이리라. 반면에 백조는 유아하지만 연약하다. 그는 부드러운 순응의 존재이다. 더구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스완송(swansong -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건 바로 귀에 큰 이상이 생겼을 때 들려오는 이명(耳鳴)이다. 그런데 그 이명이 끝나면 더 이상 듣게 되지 못한다고 한다.)'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배곳은 아마도 이 때문에 백조를 디스토피아적 자기 긍정의 상징으로 가져온 것일지 모른다. 그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비록 생애의 마지막 노래이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백조의 모습에서 주어진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지와 태도를 보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백조는 디스토피아 문학의 일종의 창세기라 할만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가 궁극적으로 주려했던 것이 인간의 이성과 의지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여 무모와 무지가 가져올 수 있는 비극을 경고하고 그것이 닥쳐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조심할 것을 종용하려했던 것임에 비추어 본다면 그야말로 적합한 상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말해 불사조가 유토피아적 욕망에 내재된 발전가능성과 완전가능성(사실 이것은 월럭스가 가지고 있는 생각 그대로이기도 하다.)에 대한 상징이라면 백조는 완전히 그 반대인 퇴보가능성과 불완전가능성(단적으로 어머니에게 있으리라 여겼던 치유약의 불완성성은 이러한 디스토피아가 가지는 시선상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단순히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소설이 아니라 그 시선에 있어서(그리고 태도에 있어서도) 디스토피아를 추구하는 소설인 것이다.(백조는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일종의 구원으로 인도하는 빛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이 소설의 디스토피아는 하나의 방법론임과 동시에 하나의 지향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배곳은 왜 하필이면 디스토피아 - 궁극적으로는 그 근원에 자리잡은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 를 지향하는 것일까?

 

  이것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는 동시대성의 추구 때문이다. 그러니까 배곳 스스로가 이 작품에다 최대한 동시대적 현실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는 최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유토피아의 반대인 디스토피아는 이 시대를 대변하는 용어다. 많은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대면한 우리에게 이제 유토피아는 사라졌다."라고. 이것은 비단 루비니 교수만의 입장은 아니다. 지금 세계의 경제분야의 석학들은 2012년을 한 마디로 디스토피아의 시대라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는 것일까? 그것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유로의 위기 거기다 여전히 높은 실업난 그리고 날로 악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리라 믿었던 유토피아적 전망이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음을 절절히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설 '퓨어' 그대로 유토피아적 욕망으로 충동되었던 자본주의가 결국은 디스토피아로 귀결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그 전까지 꾸준히 생산되던 십대들의 풋풋한 사랑을 다루는 하이틴 로멘틱 코미디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사라졌음을 보게된다. 이제 헐리우드 영화속 십대들은 더 이상 사랑의 달콤함을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데브릭 그레닉의 영화 '윈터스 본' 처럼 아버지가 떠넘긴 빚을 청산해야 하거나 잭 스나이더의 영화 '써커펀치' 처럼 자신의 존재를 압살하려 드는 아버지로 부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거나 게리 로스의 영화 '헝거게임' 처럼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상을 제대로 고쳐야 하는 짐을 떠 맡는다. 이렇게 보니 십대들에게 얹혀진 짐이 과부하가 걸릴 만큼 어마어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토록 세상을 치유할 책임을 십대들에게 지우는 까닭이 뭘까? 그건 아마도 십대들이 이제는 차츰 폐기물로 전락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에 그래도 어른들 보다는 조금이나마 덜 오염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덜 오염된 생각 바로 거기에 구원의 가능성 역시 자리잡고 있다고 여기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 '퓨어'의 주인공들도 모두 십대들이다. 그들 역시 앞서 인용한 영화들의 십대들처럼 어른들이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세상의 구원을 대신 이룩해야 하는 책임을 떠 맡는다. 어쩌면 이 것은 지금 예술가들이 바라보고 있는 십대들의 의미에 대하여 배곳 역시 공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렇게 소설이 디스토피아를 다루게 된 것은 단순한 소설적 설정이라기 보다는 무엇보다 배곳이 동시대성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시대성에 충실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단적으로 배곳 그녀 자신이 소설 '퓨어'를 그저 그런 암담한 미래를 그린 판타지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의 세상에 대해 말하는 소설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이 소설이 다만 재미를 위한 읽을거리로 그치지 않고 지금 처한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렇게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하면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 사유하게 만드는 그런 계기가 말이다. 그래서 배곳은 디스토피아적 시선을 담는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그러니까 하나가 동시대성의 추구를 통해 지금 처한 현실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작품에다 담고자 한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담겨진 현실을 가지고 그것을 극복할 대안을 독자들 스스로 생각할 때 참조할만한 것으로써 배곳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디스토피아적 시선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한계의 긍정과 그 안에서의 최선이다. 배곳은 이것을 무엇보다 아이들의 신체 묘사를 통해 드러낸다. 앞서도 '돔'을 제외한 바깥의 사람들은 흉터와 융합의 존재라고 말을 했는데 주요 인물 중 '퓨어'인 패트리지와 라이다를 제외하고는 프레시아, 브래드웰 그리고 엘 캐피턴 모두는 융합된 존재다. 프레시아는 한 쪽 손이 예전의 행복한 가정이었을 때의 프레시아를 암시하는 인형의 머리와 융합되어 있으며 브래드웰은 새들과 융합되어 있고 엘 캐피턴은 가장 아끼던 동생과 융합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융합된 존재들은 그저 단순한 사물이나 존재만은 아니다. 배곳은 주의깊게도 각 인물들이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것을 융합시켰다. 이를테면 프레시아는 옛날의 그 행복하고도 안전했던 자신으로 되돌아가기를 늘 꿈꾼다. 바로 인형의 머리는 바로 그 때의 상징이자 프레시아 욕망의 상징인 것이다.  브래드웰도 마찬가지다. 그는 늘 자유롭기를 꿈꾼다. 새는 언제나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브래들웰도 자신이 욕망하는 것의 상징과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엘 캐피턴은 어떠한가? 그는 융합되기전 동생을 무엇보다 아껴왔다. 또한 그들이 만나게 되는 선한 어머니들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그녀들 역시 그녀들이 무엇보다 아끼는 자녀들과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배곳은 융합된 존재들이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무엇보다 그들 욕망의 상징임을 밝힌다. 왜 배곳은 하필이면 그것들과 융합시켰던 것일까? 거기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융합된 존재들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반응에서 짐작된다. 프레시아, 브래드웰은 자기 욕망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숨긴다. 프레시아는 어떻게든 소매로 인형 머리의 손을 가리려 하고 브래드웰 또한 셔츠로 끝끝내 가리려 한다. 그것은 비단 그 모습의 흉물스러움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그것들을 가리는 진정한 이유는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상 그들의 욕망이 그대로 충족되어질 수 없음을 스스로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아는 인형이 상징하는 안전과 안락함을 가져다 줄 '돔'에 대한 염원을 스스로도 뻔한 욕망이라고 생각하며 부끄러워한다. 브래드웰은 홀로 자유롭게 되고 싶지만 아직도 그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럴 수 없다. 그는 그렇게 될 수 있을 때 조차 남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그 자유를 포기한다. 즉 그들의 숨김은 그들의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라는 마음의 간접적 표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에 대한 현실의 인식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한다.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좌초를 가져온 (특히나 현 금융권에서 보여지는) 무분별한 욕망 추구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이것이 덜 오염된들 자들에게서 보여지는 구원의 가능성이라면 어떻게 해서 이것들이 가능한지가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 그러한 자기 제어, 절제가 바로 세계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에서 나오는 것임을 본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존재라고 해서 세상이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냥 주어진 신체의 한계와 세계의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야말로 디스토피아적 태도 그대로다. 그런데 이러한 긍정 그리고 최선이 왜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그 긍정이 바로 공존을 위한 토대이며 포용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패트리지와 프레시아 그리고 브래드웰이 소설속에서 보여주는 한결같은 모습이 있다. 그것은 늘 타인의 반응을 신경쓰고 되도록 그 반응에 공감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건 자신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었다. 월럭스 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과신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과 능력의 한계를 순순히 인정한 가운데 타인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과 세계의 긍정은 곧 타인과의 연대로 나아가게 한다.

 

 배곳은 무엇보다도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오늘의 현실을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 연대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배곳은 '퓨어'의 주인공들을 일종의 '파티(party - RPG게임에서 흔히 보는 집단적 주체)' 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공존 그리고 연대의 추구는 무엇보다도 엘 케피턴의 신체가 보여준다. 엘 케피턴은 자신의 등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동생 헬머드가 융합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헬머드는 늘 한시라도 빨리 자유롭고 싶어지는 굴레이기도 하다. 특히나 케피턴에게 있어 헬머드의 꾸물럭거리는 두 손의 움직임은 그러한 분리 욕망을 더욱 부채질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배곳은 그 꾸물럭거림의 정체를 밝힌다.(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감탄한 부분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스포일러상 그 정체는 말하지 않겠다.) 결국 그들은 공존을 선택한다. 서로의 한계 지점에 존재하는 이들이지만 긍정하고 포용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독특한 모습이라고 할만한 융합 역시도 바로 이 공존과 연대를 전면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다. 융합이란 섞임이요 그렇게 나 아닌 것들을 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문제는 소설에서 그렇게 융합된 존재들이 모두 그것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융합된 존재들 중 그 누구도 자신에게 융합된 것에 대해 증오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수용하고 그것과 공존하는 가운데 최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융합은 연대의 기반이 타자의 긍정이요 자신과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포용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러한 융합의 상징성은 모든 악의 근원인 월럭스와 그의 중개자이자 또 하나의 가부장적 존재인 잉거십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과 대비해서 보면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월럭스와 잉거십, 그들은 절대 포용하는 자들이 아니다. '돔'은 철저하게 바깥의 사람들과 격리되어 있으며 더구나 그 안에서 시행되는 '코딩'의 비밀 역시 개인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월럭스는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패트리지의 어머니를 버리고 잉거십은 순종하지 않는 아내를 구타한다. 모두 일방적이고 거기다 강요적이다. 배곳이 유토피아적 욕망을 위험하다고 보는 것은 어쩌면 거기에 바로 이러한 타자를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시선 혹은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무절제한 욕망 추구를 보여주었던 자본주의 또한 바로 이러한 시선 혹은 태도를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디스토피아를 가져왔을지 모른다는 의심 역시 가능하다. 바로 그래서 배곳은 공존과 연대의 상징으로써 전면적으로 융합을 가져온 것이다.

 

  더러 좋은 작품을 표현할 때 '의외의 보물'이라는 말이 있는데 '퓨어'는 그야말로 거기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융합된 존재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설정. 현실의 디스토피아적 의미와 그 극복을 위한 대안을 깊이있게 담아내면서도 절대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적 재미. 한 마디로 나같이 설정의 참신성에 많은 점수를 주는 사람으로서는 매혹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물론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은 자신의 주제를 온전히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꽤나 세부적으로 공을 들여 설정해 놓았고 또한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제대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은유와 상징의 정교한 건축물'이라는 표현은 이 작품의 또다른 닉네임이다. 이 책은 이것저것 건드려 볼 부분이 참으로 많은 작품이다. 총 3부작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두 작품이 나온다면 음미해 볼 부분은 더욱 쌓이게 될 것이다. 그 때 또 얼마나 이런 저런 말들을 내가 쏟아내게 될 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그 때의 보다 풍성한 수다를 기약하며 1부, '퓨어'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그치는게 좋겠다.

 

 리뷰의 제목으로 삼은 GRAVE NEW WORLD는 우리에게는 AUTUMN으로 유명한 그룹 STRAWB의 노래 제목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무덤을 뜻하는 GRAVE로 살짝 바꾼 제목의 이 노래는 아일랜드 출신인 그룹 STRAWBS가 종교적 갈등으로 일어난 아일랜드 유혈 사태를 보면서 만들었는데 모두들 빛나는 유토피아를 가져온다면서 시작했지만 결국 가져오는 것은 무덤과 같은 신세계일 뿐이지 않냐며 꼬집는 노래이다. '퓨어'를 읽으면서 많이 생각났고 많이 들었던 노래였다. 월럭스의 '돔'처럼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가 없는 유토피아란 결국 GRAVE NEW WORLD가 아닐까...

 

 

Grave New World - Strawbs

 

There's blood in the dust
Where the city's heart beats
The children play games
That they take from the streets
How can you teach when you've so much to learn
May you turn
In your grave
New world.

There is hate in your eyes
I have seen it before
Planning destruction
Behind the locked door
Were you the coward who fired the last shot
May you rot
In your grave
New world.

There is death in the air
With the lights growing dim
As those who survive
Sing a desperate hymn
Pray that God grants you one final request
May you rest
In your grave
New world.

     

  

 



l****1 2012.05.2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야기” 자체보다도 어둡고 끔찍한 디스토리아적 미래 이미지가 훨씬 여운이 남는 소설
"“이야기” 자체보다도 어둡고 끔찍한 디스토리아적 미래 이미지가 훨씬 여운이 남는 소설" 내용보기
2012년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WEF, 다포스 포럼)” 관련 기사를 읽다가 낯익은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이 포럼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된 5개 키워드 중 하나였다는 “디스토피아(Dystophia)"란 단어였다.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Utopia)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이야기” 자체보다도 어둡고 끔찍한 디스토리아적 미래 이미지가 훨씬 여운이 남는 소설" 내용보기

2012년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WEF, 다포스 포럼)” 관련 기사를 읽다가 낯익은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이 포럼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된 5개 키워드 중 하나였다는 “디스토피아(Dystophia)"란 단어였다.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Utopia)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네이버 발췌)을 가리킨다는 이 단어가 세계 지도자들이 모이는 이 포럼의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 사회의 위험과 모순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들어 종말론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미래를 그리고 있는 SF 소설이나 영화들도 하나같이 어둡고 암울한 미래 일색인 것이. 이번에 읽은 ”줄리애나 배곳“의 판타지 소설 <퓨어 1,2(원제 Pure/민음사/2012년 4월)>도 이처럼 어둡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시대를 알 수 없는 어느 미래,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폭발이 일어난다.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후 하늘은 겹겹이 싸인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고 하늘에서는 검은 비가 내려 검은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겨났으며 공기는 재와 먼지로 탁해진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온전히 가지고 있지 않은 기형(奇形)이 되어 버린다. 강력한 열기와 방사능에 의해 가까이에 있었던 각종 사물들과 짐승들, 심지어 자신의 동생이나 자녀들과 신체체가 융합(融合)해 버렸기 때문이다. 비단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동식물들도 오염된 물과 음식, 공기 때문에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게 된다. 생존자들은 이런 끔찍한 환경을 견디며 절망 뿐인 삶을 이어간다. 한편 이런 환경과 완벽하게 차단된 “돔(Doom)"에서 온전한 신체를 가졌기에 ”퓨어(Pure)"라 불리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대폭발 후 절망하는 외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온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우리는 ‘돔’에서 나와 여러분과 평화롭게 공존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멀리서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쪽지는 외부 생존자들에게 처음에는 화폐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후로 오랫동안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돔의 “바깥”세상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소녀 “프레시아”는 16세 생일을 얼마 앞두고 혁명군의 강제 징집을 피해 자신의 집의 낡은 캐비닛에서 숨어 살고 있다. 프레시아는 대폭발 당시 들고 있던 인형의 머리가 손에 융합되면서 인형 손이 되어 버렸다. 그 인형 손이 싫어 칼로 잘라 내려다가 결국 손에 상처만을 입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의 손을 조심스레 꿰매준다.

 

돔의 “안쪽” 세계에 살고 있는, 돔의 실력자의 아들인 18세 소년 “패트리지”는 일정 나이가 되면 시술받게 되는 “코딩”에 거부 반응이 생겨 아버지가 근무하는 의료센터에서 각종검사를 받다가 사무실 벽면에 걸려 있는 돔 설계도 원본을 보게 되고 설계도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사진을 찍게 된다. 그는 세계사 현장 수업날 방문하게 된 “유물 보관소”에서 대폭발 후 돔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가신 걸로 알려진 어머니의 유품을 살펴 보다가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생일 카드에서 메시지를 발견하고는 어머니께서 “바깥” 세상에서 살아 계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아버지 사무실에서 찍은 설계도 사진을 꼼꼼히 살펴본 그는 결국 환풍기를 통해 돔을 탈출해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혁명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던 프레시아는 자신이 살던 옛집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던 패트리지를 만나게 되고 그를 돕기 위해 비밀 모임에서 만났던 소년인 “브레드웰에게 데려간다. 패트리지의 옛 집이 위치했던 거리를 찾아 나선 세 명은 그 곳에서 패트리지 어머니의 존재를 알고 있던 할머니를 만나게 되지만 알 수 없는 소리만 들은 채 인간 사냥꾼들의 추적을 피해 다른 건물 지하로 숨게 된다. 얼마 후 소란이 잠잠해지자 바깥 동정을 살피고 할머니를 다시 만나러 밖으로 나온 프레시아는 그만 근처를 수색하던 혁명군에 의해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가게 된다. 프레시아가 자신 때문에 잡혀갔다고 자책하는 패트리지와 프레시아 할아버지 부탁 때문에 그녀를 돕는다는 브래드웰, 이 두사람은 프레시아와 패트리지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과연 인류를 멸종 위기까지 몰고 온 대폭발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패트리지에게 남긴 어머니의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는 어떤 의미일까?

 

1, 2권 7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이 책, 읽기가 꽤나 어려웠던 책이었음을 먼저 밝혀둬야겠다. 대폭발 이후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들을 너무 사실적이고 세세하게 묘사해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형, 새, 자동차 모터, 콘크리트, 인형, 총, 칼 등 각종 사물과 융합된 사람들, 자신의 동생과 몸이 융합된 형, 자신의 아이와 융합된 어머니, 괴물로 변해 버린 사람들 등 “바깥”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끔찍한 모습 일색으로 변형되어 버리고, 그들은 오염된 땅과 물, 공기를 마시며 하루하루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책이 "YA(Young-Adult)" 판타지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청소년들이 보기에는 너무 어둡고 끔찍한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암울한 미래 분위기 때문인지 작가에게 <로드(The Road)>의 작가인 “코맥 매카시에 비견될 작가”라는 평가가 붙는다고 하는데, <로드>가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간접적인 배경 묘사로 자연스럽게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이 책은 너무 사실적이고 세세한 직접적인 묘사로 연출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문학적인 성취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꽤나 탄탄하고 스릴과 재미, 모두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끔찍한 묘사들이 거북스럽기까지 했지만 남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패트리지”가 돔을 탈출하여 “바깥”의 소녀 “프레시아”를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자 어느새 그런 거북스러움도 익숙해져 버리고, 이야기도 슬슬 재미있어지면서 읽는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다. 특히 어떤 이유로 혁명군에 끌려갔던 프레시아가 패트리지 일행과 합류해서 계속되는 위험을 헤쳐 나가며 패트리지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와 재회하고 마침내 모든 음모와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휘몰아치듯 긴급하게 전개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이야기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돔을 향한 반란이라는 희망이라는 상반된 두가지 결말, 모두를 내포한 채 막을 내린다. 그래서 3부작 시리즈의 후속편들에서는 그런 희망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절로 하게 만드는 그런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서도 이 책의 어둡고 잔혹한 이미지가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이처럼 이 책, “이야기” 자체보다도 이런 어둡고 끔찍한 이미지가 훨씬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올해 들어 읽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SF, 판타지 소설들 중에서 이야기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런 이미지만큼은 가장 강렬하고 인상 깊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a*****7 2012.05.05. 신고 공감 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종말 이후 다시 시작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판타지
"종말 이후 다시 시작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판타지" 내용보기
올해 열여섯이 되는 프레시아는 생일이 오지 않기만을 바란다. 열여섯 살이 되면 무조건 이루어지는 혁명군의 강제 징집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전의 모든 것을 영원히 뒤바꾼 인류 최악의 재앙 ‘대폭발’이 일어난 후,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전의 문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퓨어’로서 살아가는 폐쇄 지구 ‘돔’과 그 외 모든 ‘배제된 자’들이 살아가는 ‘바깥’. 혁명군은 ‘
"종말 이후 다시 시작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판타지" 내용보기

올해 열여섯이 되는 프레시아는 생일이 오지 않기만을 바란다. 열여섯 살이 되면 무조건 이루어지는 혁명군의 강제 징집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전의 모든 것을 영원히 뒤바꾼 인류 최악의 재앙 ‘대폭발’이 일어난 후,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전의 문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퓨어’로서 살아가는 폐쇄 지구 ‘돔’과 그 외 모든 ‘배제된 자’들이 살아가는 ‘바깥’. 혁명군은 ‘바깥’에서 나타난 군벌 정권으로, 생존한 청소년들을 강제로 끌어가 ‘돔’의 전복을 위해 잔혹한 통치를 계속한다.
올해 열여덟 살이 되는 패트리지는 최종 시술을 두려워한다. ‘돔’에서 폐쇄된 사회 내에서의 질서 유지를 위해 성인이 되어 가는 소년들에게 강제적으로 가하는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코딩 시술. 더는 ‘자신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혹에 시달리던 패트리지는 ‘돔’ 역사상 전무후무한 탈출을 감행하게 한다.


그리고 혁명군의 인간 사냥으로 텅 빈 ‘바깥’의 거리에서, 흠 한 점 없는 크림색 피부에 밝은 회색 눈을 한 ‘퓨어’ 패트리지와 화상과 흉터로 얼룩진 몸에 손에는 인형의 머리가 융합된 ‘천민’ 프레시아는 운명적인 조우를 한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돔’과 혁명군의 추격. 그리고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옛 퍼즐 조각들이 발견되며 드러나는 전 지구적인 종말의 음모. 그날, 세계는 어째서 멸망했을까? 패트리지의 어머니가 전하려던 마지막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소년과 소녀는, 결국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모든 질문의 답이 지금 이 순간 책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의문의 대폭발로 모든 것이 망가지고 변하고 사라진 이후, 그러나 그 안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내일을 생각하고, 눈앞의 사랑을 꿈꾸고, 부조리에 저항한다. 세계의 멸망을 부른 거대 세력의 비밀을 둘러싸고 소년 ‘패트리지’와 소녀 ‘프레시아’가 인류와, 그리고 자신들의 ‘내일’을 걸고 벌이는 위험한 승부. 이 작품은 아찔한 속도감과 어둡지만 매력적인 인물, 그리고 마지막 순간 찾아오는 전율에 가까운 감동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놓아주지 않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대작이다.
‘종말’의 한가운데. 그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동화처럼 아름답고 악몽처럼 잔혹한 ‘이후 세계’의 이야기. 전 세계 13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는 이 화제작은 우리를 단숨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둡고도 매혹적인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8 2012.06.25.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퓨어1
"퓨어1" 내용보기
미래사회를 중심으로 한 소설들이 연이어 선을 보이고 있는데 소설속에서 보여지는 미래사회는 밝음보다는 어두움쪽으로 치우져서 표현이 되고 있는듯하다. 매치드가 그랬고 헝거게임이 그랬듯이 퓨어에서 그려지는 미래사회 또한 통제와 규제,혼란들이 뒤섞이며 미래사회의 절망을 그려내고 있다.   대폭발이 일어났다. 살아남은 자들은 둘로 나뉘어져 살아가게 된다. 선택받은자
"퓨어1" 내용보기

미래사회를 중심으로 한 소설들이 연이어 선을 보이고 있는데 소설속에서 보여지는

미래사회는 밝음보다는 어두움쪽으로 치우져서 표현이 되고 있는듯하다.

매치드가 그랬고 헝거게임이 그랬듯이 퓨어에서 그려지는 미래사회 또한 통제와

규제,혼란들이 뒤섞이며 미래사회의 절망을 그려내고 있다.

 

대폭발이 일어났다. 살아남은 자들은 둘로 나뉘어져 살아가게 된다.

선택받은자들과 선택받지못한 자들, 돔의 안과 밖은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세계,

폭발이 일어나면서 주위에 있던 물건들과 융합된 돔의 바깥사람들은 새의 날개와 함께

살아가기도 하고 인형의 머리와 손이 결합된채 살아가기도 하며 형제의 몸이 융합되어

살아가기도 한다. 여러가지 생각할수있는 이상의 변종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해서 한시도 경계를 늦출수없는 돔의 바깥의 세계에 프레시아가 있다.

아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열여섯살의 생일을 눈앞에 둔 소녀, 프레시아.

 

선택받은 사람들중에서도 특별한 무리가 있다. 월럭스의 아들인 패트리지역시 특별하게

선택받은 사람들중의 한명이지만 아버지와의 유대관계가 특별했던 형과는 달리

아버지와 별다른 교류가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패트리지에게 어머니의 유품을

확인할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다른이들의 눈을 피해 어머니의 유품을 빼돌린

패트리지는 아버지의 방에서 본 설계도를 기초삼아 돔의 바깥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안에서 배운것과 밖에서 보는것은 전혀 다르다. 돔의 안에서는 월럭스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이유없이 많은 혜택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돔의 바깥에서는

'퓨어'라는 이유와 월럭스의 아들이라는것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된다.

바깥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 퓨어인 패트리지의 등장은 사람들의 입에

떠올려지고 돔의 세계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동요하는데..

위기에 처한 패트리지를 구한 사람은 바로 혁명군에게 쫓기는 프레시아.

 

엄마가 살아있을것이라고 믿는다는 패트리지를 데리고 프레시아가 향한곳은

브래드웰의 은신처였다. 혁명군과 많은 위험들을 피해 요행히 잘 버티고 있는

브래드웰이라면 패트리지가 찾고자하는 장소를 찾아줄수있을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어느순간 브래드웰은 모든것이 지나치게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로하면 눈앞에 그것이 나타나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모든것이

잘짜여진 함정같다는 느낌이 들고 그것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는데..

혁명군에게 잡혀버린 프레시아를 구하기위해서 일단은 힘을 모으기로 하는 두소년.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이책에서 묘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돔의 형태등, 실존하지않는 것들을 실재하는것처럼 묘사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상상력이 동원되어야하는것일까 하는 마음도 들고 그 상상력의 근원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브래드웰과 패트리지사이에

프레시아를 구하기위한 여정이 시작되면서 우정이란 감정이 싹틀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패트리지는 단순히 이용하기위해서 리디아를 이용했다지만 리디아에게 패트리지는

단순한 감정이 아닌듯하고 리디아에게 등장한 빨강머리는 또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브래드웰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모든것은 정해져있었다는것인데

왜 위험을 안아가며 패트리지와 프레시아를 움직이려는지 다음권이 기대된다.

j******3 2012.05.23. 신고 공감 1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퓨어
"퓨어" 내용보기
먼저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가오는 미래사회는 인간미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냉랭하기 그지 없고, 모든것이 폐허가 된 공허로움과 몇 선택받은 자들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사회가 올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나같이 밝은 미래를 예견하는 소설은 없었다. 항상 음산하고, 잘사는 사람과 아웃사이더로 구분되어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
"퓨어" 내용보기

먼저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가오는 미래사회는 인간미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냉랭하기 그지 없고, 모든것이 폐허가 된 공허로움과 몇 선택받은 자들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사회가 올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나같이 밝은 미래를 예견하는 소설은 없었다. 항상 음산하고, 잘사는 사람과 아웃사이더로 구분되어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태반이었다.

역시나 이 책 역시 그런 배경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 책은 3부작중 1부일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마다 한부씩 새롭게 발간된다고 하니, 내년에 나올 퓨즈를 손꼽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대폭발이 일어난 지구에 남은 것이라고는 선택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로 구분되어 있는 상황이다. 선택받은 자들은 외부와 차단된 돔이라는 곳에서, 그리고 변형된 자들은 그들을 향해 날라오는 숱한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가야 하고, 숱하게 싸우며 생존해야 하는 바깥에 나뉘어 살고 있다.

그둘의 중립적인 지대는 없다. 서로에게 휩쓸리지 않아야 하고, 파고들지 않게 견고하게 앞가림을 하는 수 밖에는.

16살이 되는 바깥세상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프레시아는 자신의 생일이 오지 않기만을 바란다. 생사를 알수 없고, 무조건적으로 행해지는 강제징집을 피할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또다른 주인공인 패트리지는 18살이 됨으로써 행해지는 시술을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을 잃어버린채 뭔가에 제어되는 시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혹으로 남아있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시술을 받기 전,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안전지대로 여겨지는 돔을 벗어난다.

돔에서 살던 패트리지는 바깥세상에 숨겨져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하고, 인형의 머리가 손에 융합되어 있는 프레시아와 함께 봉인되어 있는 비밀을 찾아나선다.

비밀이 있다면, 그 비밀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키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프레시아와 패트리지의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수 있는 일이다.

또 그러한 위기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피어오르기 마련이고, 과연 이둘의 여정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출간됨과 동시에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바깥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상상하려니 섬뜩하다.

돔안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처나 흉터 없이 완전히 깨끗한 몸을 가지고 있고, 반면 바깥세상에서 험난하게 인생역정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몸에 흉터와 상처가 남아있다. 프레시아는 폭발전 가지고 있던인형이 붙어 있는 정도니 차라리 그것은 애교로 봐줄수 있지만 선풍기나 새가 융합되어 있는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될지. 정말 이런 세상이 올까 겁나고 무섭기도 하다.

내가 만약 이 책이 3부작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선택했을까 하는 물음을 나자신에게 던져본다. 개인적으로 난 항상 결말이 있는 소설과 만화를 읽는다. 그렇기에 이제껏 계속되는 시리즈물을 봐 본적이 없다. 이왕 시작한 책이니, 끝을 봐야겠으나, 참 기다리기가 힘들겠구나 싶은 책이었다.

s*****y 2012.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퓨어1, 2
"퓨어1, 2" 내용보기
미래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다룬 이야기를 만나면 대체로 미래의 암흑세계를 픽션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가장 최근한 개봉한 영화 '헝거게임' 역시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이처럼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는 SF소설이나 영화들은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인 과학의 지나친 발전과 전쟁이나 지구온난화 등의 이유로 미래의 세계는
"퓨어1, 2" 내용보기
미래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다룬 이야기를 만나면 대체로 미래의 암흑세계를 픽션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가장 최근한 개봉한 영화 '헝거게임' 역시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이처럼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는 SF소설이나 영화들은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인 과학의 지나친 발전과 전쟁이나 지구온난화 등의 이유로 미래의 세계는 이렇게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퓨어' 역시 지구가 대폭발이 일어난 인류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대폭발때 아무런 외적인 변화 없이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돔'안의 사람들과 기계나 동물 등과 결합해 변형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돔' 밖의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교적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돔 안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을 없애야 한다고 믿고 있고 밖의 사람들은 돔 안의 사람들로 인해 자신들이 힘든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밖의 세계에서 대폭발 이전에 장의사 일을 한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소녀 프레시아는 열 여섯살 생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열 여섯살을 기점으로 혁명군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그 이후의 소식을 알 수 없기에 혁명군에게 끌려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프레시아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프레시아는 갑자기 들이닥친 혁명군을 피해 도망친다. 

 

안전한 '돔'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패트리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항상 떠올리며 살고있다. 패트리지는 아버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시술로 인해 진실을 알지 못할까봐 서둘러 어머니를 찾기 위해 돔 바깥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도중에 우연히 그를 도와주는 페르시아와 만나게 되며 인형의 머리가 손에 붙어 있는 소녀 페르시아는 퓨어인 패트리지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게 된다.

 

페르시아와 패트리지는 서로가 누구인지 이어주는 인물이 있다. 한사람의 커다란 야망이 불러온 대폭발이란 불행의 시작...  불행을 막고 싶었던 패트리지의 어머니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적이였다. 돔에서 살아가기 위해 취했던 행동이 결국 중독증세로 나타나고 이를 멈추기 위해서는 패트리지의 어머니가 필요하다. 쫓는 남편과 도망치는 아내, 변형된 인간의 모습이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과 돔 안에서 안전한 퓨어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패트리지를 찾아 기꺼이 위험 속으로 몸을 던지는 라이다까지...

 

이미 '퓨어'는 출간 즉시 폭스사와 영화화 계약되었다고 한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 소재부터 독특하고 기존의 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완전한 인간의 모습인 퓨어와 인간과 동물과 합쳐진 비스트, 인간과 물체가 합쳐진 더스트, 인간과 인간이 합성된 그루피까지 특수효과가 돋보이는 작품이 될거라 생각하고 섬뜩하면서도 암울한 미래의 모습으로 탄탄한 구성에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다. 영화와 함께 내년에 나올 2부, 3부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q******5 2012.04.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디스토피아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다
"디스토피아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다" 내용보기
요즘드러 부쩍 디스토피아장르 소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작가에서 부터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나이 먹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국,캐나다,일본작가들 전반에 이르듯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세말에서 20세기초 까지만 하더라도 유토피아장르가 대세를 이루었다면 산업혁명의 절정기를 지나 디지털혁명기에 접어든 20세말에서 21
"디스토피아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다" 내용보기

요즘드러 부쩍 디스토피아장르 소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작가에서 부터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나이 먹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국,캐나다,일본작가들 전반에 이르듯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세말에서 20세기초 까지만 하더라도 유토피아장르가 대세를 이루었다면 산업혁명의 절정기를 지나 디지털혁명기에 접어든 20세말에서 21세기는 희망섞인 미래보다는 암울한 미래상에 대해서 작가들이나 독자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을 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자는 의미의 발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고게 한다. 여하튼 불확실성이 극도로 증폭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들은 단순한 흥미위주의 가십거리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소설속의 스토리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독자들에게 다소 알려지지 않은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전형적인 스트럭쳐를 갖춘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이지만 대게의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비슷비슷한 플롯을 상호 공유하도 있기도 하다. 이번 작품인 <퓨어>역시 핵전쟁을 지칭하는 대폭발을 시발점으로 삼아 '돔'과 '돔' 밖의 삶을 대립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홍수>에서 홍수라는 대폭발,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에서 세균폭발, 아사노 이츠고의<무한도시no.6>에서 핵전쟁등 일대의 사건을 시작하는 시점이 앞선 세대와 선을 긋는 단절적인 시발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퓨어>에서의 '돔'이라는 존재는 <홍수>에서 선택받은 이들의 보호처는 건강현인단지 <무한도시 no.6> 나 <스타터스>에서 특별자치보호구역과 일맥상통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세균폭발로 살아 남은 아이들을 지칭하는 스타터라는 개념과 '돔'에서 선택받은 융합되지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퓨어라는 개념은 상호 모순적인 현상을 표현하는듯 하지만 실상 아주 유사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이 계통의 작품을 대하면서 많은 유사점과 더불어 약간의 특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퓨어>에서 대폭발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재앙이자 종말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이면엔 새로운 시작 즉 다른 순수한 탄생을 의미한다는 차원(지적설례론이나 창조론적 견지에서 다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한다는)에서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의 스타터와 <퓨어>는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순수한 탄생의 시작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인위적인 리모델링으로 시작하지만 또 다른 자연선택의 발휘로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그래서 비슷비슷한 플롯을 가지면서도 이번 작품만의 유니크한 묘미는 이러한 유사상충된 구도를 바탕으로 내러티브의 현실성을 높여 주는 역활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듯이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블록버스트 영화를 보는 듯한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내러티브의 스피드에서 부터 스트럭쳐의 짜임새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창작성등 다양한 뷰주얼을 보여줌으로써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상당한 반향을 불러 오리라 보여진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합성인 구루피, 인간과 물체가 융합된 더스트, 인간과 동물의 융합인 비스트등 화려한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를 120%만끽할만한 눈요기 꺼리가 산재하고 있어 스팩타컬 블록버스트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보인다. 여기에 내러티브 자체가 전형적인 대립구도와 탄탄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효과를 배가 시킬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인 감흥이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지나간 영상에 그치지 않고 작품 전반에 걸쳐 잔잔한 감흥을 일으키는 오버랩으로 남을 만큼 묘한 인간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묘미을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퓨어>는 플롯자체의 한계성으로 기존에 출간된 디스토피아장르의 작품들과 소재의 유사성과 더불어 많은 연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작중 잉거십이 정의한 순수라는 개념 자체가 섬뜩하리 만큼 나치즘의 논거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왜곡된 인종우월주의, 민족주의(나아가 인간 지상주의),이기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대폭발이후 변형되고 기형화된 그루피,더스트,비스트,퓨어(돔이란 특수환경에 적응해 살아가야 하는 지엽적인 존재라는 점에서)들 삶을 통해서 대폭발을 야기한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이면과 이를 극복하고 적응하며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순수의 의미를 체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새로운 희망의 단초로 만들어가는 작가의 천재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래서 후속편이 더 기대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할아버지 역에는 모건 프리먼, 패트리지 아버지역에 게리 올드만 이라는 식의 연상을 하면서 읽는다면 한층 독자들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리라 여겨 진다.

 

전반적으로 '백조의 아내'라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화 같은 프레임이 뷰주얼만을 강조한 SF적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소지를 방지해 주고 있어 멋있는 앙상블을 연출하고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여하튼 모든 곁가지 같은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독자들 뇌리속에 깊이 각인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l******e 2012.04.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퓨어 1
"퓨어 1" 내용보기
다른 때보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어 재미있는 소설임에도 너무 오래 손에 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퓨어 1>은 대폭발 이후 모든 것이 사라진 지구에서 살아남은 두 부류의 생명체가 겪는 디스토피아 판타지 소설 입니다. 3부작으로 아직 2편과 3편을 만나보아야겠지만, 과연 '희망'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그렇기에 희망이 있었야 하고, 있을 수 밖에
"퓨어 1" 내용보기

 

 

 

다른 때보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어 재미있는 소설임에도 너무 오래 손에 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퓨어 1>은 대폭발 이후 모든 것이 사라진 지구에서 살아남은 두 부류의 생명체가 겪는 디스토피아 판타지 소설 입니다. 3부작으로 아직 2편과 3편을 만나보아야겠지만, 과연 '희망'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그렇기에 희망이 있었야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무엇이 희망이고, 절망인지 알기 위해서는 '돔'에 대한 진실과 대폭발과 관련된 것들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돔'은 폭발과 바이러스의 공격, 환경 재앙에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곳입니다. 선택받은자 혹은 스스로 선택한 자 또는 '돔'에 사는 사람들을 '퓨어'라고 합니다. 그에 반해 '돔' 바깥에서의 살아가는 자들은 '천민'으로 불리우며, 희망이 무엇인지 조차 기억하기 힘든 나날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돔'에서는 코딩이라는 시술을 받습니다. 진화의 과정일까요? 아니면 진화 속에 가려진 진실의 한 부분일까요? 이 코딩에 대한 진실은 직접적 설명보다는 후반으로 가면서 간접적인 접근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돔' 바깥의 돌연변이와 인간과 동물과 땅과 사물 간에 혼합체의 과정은 대폭발로 인한 생명체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듯 합니다.

 

독자들은 '돔'에 있던 한 소년 과 '돔' 밖의 한 소녀의 만남에서 희망 혹은 진실을 함께 찾아 나설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그것이 희망이거나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희망마저 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두근 거리기까지 합니다. 그 희망, 진실이 어쩌면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새장의 비유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브래드 웰이 말했다.

 "이 새장 안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건 사라졌네."

 "오히려 더 잘된 걸 수도 있지. 풀려났으니까. 자유롭게."

 "그럴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트리지는 어느 쪽이 더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새장 안에 남을 것인가, 새장 밖 세상으로 나올 것인가? 이것은 그 역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마음 한편에 '돔'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지 않을까? - p. 341 ~342

 

 

 

 

<퓨어 1>을 읽고서 책장을 덮은 후 앞표지를 보니 '퓨어', '새', '새장', '나비' 그리고 '돌연변이' 라는 단어들이 지나갑니다. 대폭발 이후 그들이 말하는 진실이, 그들이 찾고자 하는 희망과 진실의 서막이 열리는듯 합니다.

 

 

 

 

 

h******w 2012.05.3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운 미래는 숨겨진 진실을 함께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미래는 숨겨진 진실을 함께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용보기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현재의 삶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미래 세계는 대부분 밝지 않다.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대폭발 이후 ‘돔’ 안의 세계와 ‘돔’ 바깥의 세계로 분리된, 암흑의 미래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퓨어(pure)’는 ‘돔’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돔’ 바깥 세계의 사람들은 대폭발의 후유증으로
"아름다운 미래는 숨겨진 진실을 함께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용보기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현재의 삶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미래 세계는 대부분 밝지 않다.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대폭발 이후 ‘돔’ 안의 세계와 ‘돔’ 바깥의 세계로 분리된, 암흑의 미래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퓨어(pure)’는 ‘돔’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돔’ 바깥 세계의 사람들은 대폭발의 후유증으로 땅, 동물, 플라스틱 그리고 가족과 융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 프레시아 역시 한 손이 인형과 융합되어 있다. 그녀는 현재 열여섯 살로 길러준 할아버지와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살고 있다. ‘돔’ 바깥 세계에선 열여섯 살이 되면 혁명군에게 끌려가 살인을 배우거나 새와 융합된 브래드웰처럼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다.

 

‘돔’의 바깥 세계에서 보면 선택받은 자들만이 사는 ‘돔’ 안의 세계는 완벽한 세계지만, ‘돔’ 안의 세계에도 문제는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없는 것이 ‘돔’의 세계였다. 아이를 낳은 것조차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패트리지를 비롯한 ‘돔’ 안 세계의 아이들은 허락받은 내용만 교육받았고, 통제를 잘 받기 위해 코딩시술을 받아야 했다. 프레시아에게 부모와 가족은 미지의 존재였고 어머니와 연락이 끊긴 패트리지에게 아버지는 권력자일 뿐이었다. 패트리지의 완벽한 형이었던 세지는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빈부의 차로 인해 공립학교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하늘 가까이 치솟은 최첨단 고층건물이 존재하는가 하면 재개발이 중단된 이후 폐허로 변한, 아예 재개발 논의에서 배제되어 버려진 마을도 존재한다. ‘돔’ 안의 세계는 고층건물로 대표되는 건설과 첨단과학의 세계와 연결되었고, ‘돔’ 바깥의 세계는 현실의 최소한의 인권조차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와 연결되었다. 아름다움과 편리함이라는 가면 뒤에 몇몇 특정인들의 욕망이 숨겨져 있음을, 갖지 못한 자들의 인권이 무시되는 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기에 『퓨어』의 세계가 소설 속 허구의 세계로만 읽히지 않았다.

 

브래드웰은 대폭발이 조작됐다고 생각했다. 진실이 조작됐음을 알면서도 현실의 버거움은 침묵하게 한다. 하지만 브래드웰의 말처럼 ‘잊고 싶은 일들이라고 해도, 기억해야’ 하고 ‘우리의 후대에 전해야’만 한다. 진실만이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 있기에. 다만 보이는 것 모두를 진실이라고 믿는 착각은 위험하다.

 

『퓨어』의 ‘돔’ 안의 세계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의 세계로, 대폭발 이전의 세계는 땅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세계이자 어머니의 세계로 읽혔다. 패트리지는 어머니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돔’ 밖의 세계로 탈출했다. 그 계획은 어머니가 필요했던 아버지 윌럭스가 세운 함정이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가진 건 우리의 이야기뿐이야.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지켜주지.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해. 우리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으니까, 알겠니?”(111쪽)

 

아버지의 세계에 살았으나 어머니의 세계를 기억하는 패트리지와 어머니의 세계를 온전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어머니가 숨겨둔 단서들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었던 프레시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레시아를 사랑하게 된 브래드웰의 협심은 현실은 어두울지라도 다가올 미래는 밝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들’에게 허락받지 못해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프레시아를 도왔던 잉거십의 아내 일리아 역시 ‘어머니’였다.

 

동생 헬머트와 융합된 앨 캐피턴은 자신은 동생의 대장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했다. 그는 때때로 동생을 죽여 버리고 싶지만, 가족이니까 참는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이 존재했기에 살아갈 힘도 얻었을 것이다. 참혹한 현실이지만 아이들을 믿었던 ‘어머니’와 서로 도와주며 스스로 삶을 결정했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미래는 숨겨진 진실을 함께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인간은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모순을 저질렀다. 과거를 지우고, 본성을 버리고 사는 삶은 ‘그들’의 삶이지 나의 삶이 아니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나’의 유토피아였지 ‘우리’의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어머니’ 애리밸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254쪽)'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살아남아야 미래를 꿈꾸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퓨어』는 『퓨즈』와 『번』으로 이어질 3부작 중 첫 번째라고 한다. 아이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분명 잘 이겨낼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 『퓨어』1,2 권 통합 리뷰

 

 

 

 

YES마니아 : 로얄 m****6 2012.05.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