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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름만 보고 책 집어 드는 건 수험용 학습지 이후로 없었는데, 요새 내가 재밌다고 읽은 책들의 교집합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니 그 이름, '휴머니스트.' 읽어 내려가다 보니, '휴머니스트' 출판사 책이 많네요. "팔리는, 팔릴 만한" 책 제목을 뽑아내는 편집자들의 능력이야 아서 클라크(였나요?)가 아부했다는 '신의 영역'에 속할 텐데요, 특히나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분야의 책 제목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좋은 뜻에서요.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지게 만들거든요. 『우리 모두는 2% 네안데르탈인이다』라는 데,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라는 데 읽지 않고 배겨 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후손이 있겠습니까? 동의하지 않으세요?
목차를 눈으로만 훑어도 이건, 안 읽고 못 배길 책이 맞습니다. 짝짓기(mating) 전략을, 인간의 자기 기만(self-deception) 본능을, 양가적 감정을 일으키는 여성의 유방을 이야기한다는데 읽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젯 밤 잠들기 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박한선 저자가, 마치 대학 교양강의를 전개하듯 쉽고 친절하게 신경인류학과 연관된 과거와 최신, 논문들을 정리하고 우리 삶과 연결지어 화두를 던져줍니다. 전중환 교수의 『오래된 연장통』과 함께 읽어 보기 추천합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원더박스," "협력의 진화," "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 "비맨" "이타적 인간의 출현," "타고난 반항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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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 합리적인 것 같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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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를 진화론으로 풀어낸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고 매우 흥미를 느꼈다. 몇 달 뒤 책 소개 기사에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라는 책이 발간된 것을 알게 되었고, 책제목도 제목이거니와 진화론과 관련된 심리학이라서 눈길이갔다. 정확히는 신경인류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살펴보는 심리학, 정신의학 도서이다. (*신경인류학: 신경생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정신의학, 집단유전학, 인간행동생태학, 인지과학, 민족지학 등 다양한 학문을 포괄하는 학문) [행복의 기원]이 진화론의 거시적인 관점이었다면,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는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진화론으로 인간의 성격과 심리를 더욱 더 자세히 파고들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했다. 우선 목차는 아래 사진과 같이 크게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인간의 성격을 주로 다루고 있고, 2장은 사랑과결혼에 대한 내용, 3장은 가족과 연관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장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은 인간의 뇌는 점차 진화했는데 우리의 마음은 왜 결함이 많은지에 대해서다. 우리는 왜그렇게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고, 사랑하면서도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인지, 또 어째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집단을 이루어 협력하고 속이고 갈등하는지를 살펴본다. 인간은 도대체 왜 이렇게 허약하게 진화하게 됐을까? 채집생활을 하던 때처럼 불안정한 생활을 하지 않고, 안정된 주거지에서 살면서도 불안을 느끼고, 할 수 있는 취미도 매우 다양한데 사소한 것에 매우 집착하게 된다. 들어가지 않는 옷을 입거나 혹은 삐져나온 살을 보며 당장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작심삼일이라 했던가. 그 결심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인류가 음식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p.45 인류가 지금처럼 풍족한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늘 굶주림에 시달리던 인류의 몸과 마음은 다음과 같이 진화했습니다. 첫째, 우리의 마음은 달고 기름진 것을 좋아하도록 적응했습니다. 둘째, 우리의 몸은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적응했습니다. 더불어 문화적 적응도 한 몫했습니다. 음식을 굽고, 삶고, 튀기고, 볶습니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은 불로 요리를 하면서 인류가 크게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부해져 과도하게 축적되는 에너지로인해 예전에는 없었던 대사성 증후군이 생기고, 식이장애로 인해 마음에도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이장애로는 거식증과 폭식증이 있는데 이 증세들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우리는 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주로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걸까? p.48 뇌 안의 쾌락 중추는 다양한 자극을 구분하지 않고 활성화됩니다.과장해서 말하면, 오랜 준비 끝에 시험에 합격할 때느끼는 '의미 있는' 쾌락과 딸게 케이크를 먹을 때 느끼는 '값싼' 쾌락은 동일합니다.최소한 쾌락 중추에서는 말이죠.사회적 성취나 인관관계에서 느끼는 행복과 슬픔도 본질은같습니다. 음식에 대한 집착은 보상성에 대한 행동이고, 스트레스를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한다. 심리적인 이유로 음식을 마구 먹는 것은 불안한 마음과 스트레스를 더욱 더 부채질할 뿐이다. p.48-49 진짜 가치있는 것은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가급적직접 음식을 해 먹으면서, 조금은 지루한 준비의 과정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먹방과 쿡방도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그 멋진음식은 사실 여러분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요즘들어 티비를 볼 때 마다 먹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예전에는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몇있었던 듯 한데 근래들어 만들어 먹는 방법보다는 연예인들이 맛집을 찾아가거나 해외에 가서 먹는 장면이 더 많이나와서 눈쌀이 찌푸려졌었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을 보는것도 우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니 우리도 자제를 해야겠지만 의미없는 먹방도 좀 자제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례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다양한 연구 인용과 함께 해결방안이 같이 언급된것이었다. 저자님이 신경정신과 전문의여서 그러한 성격들과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방이 있어 내 성격과 비슷한 부분이 나올 때면 마치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복잡한 사회일수록 마음의 병은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우리 사회도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가오는 2019년에는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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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간혹 발생한다. 저토록 이성적인 사람이 왜 저 순간에 저와 같은 판단을? 그땐 왠지 그랬어야만 했을 거 같다는 식의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행동의 주체도 실상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난해하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본능’. 타고난 본능은 매우 강렬한지라 아무리 노력해도 억누르는 게 힘들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바람직하진 않으나 그 말 하나면 폭력이 자연스러움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어떠한 교육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무언가라. 그런 게 부디 없었으면 싶지만, 우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느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가 않다. 제목을 접하기가 무섭게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내 우울증의 상관관계라. 당장 내 조부모도 한 번을 본 적이 없는데,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어쩌면 억겁 이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만나지 못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모든 죄(?)를 묻는 건 좀 아니지 싶었다. 듣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또한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한다. 진즉에 멸종했건만 왜 현생인류는 아직도 자신을 물고 늘어지냐면서 땅속에서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언급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정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진화의 뿌리 즈음으로 이 종을 언급했다. 즉, 오늘날 인류가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성향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과정에서 발현되었는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모든 발현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례가 여럿 책에 등장했다. 우리가 흔히 손도끼 즈음으로 알고 있는 원시인의 도구는 실상 손도끼로 사용하기엔 부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리어 날카로운 면에 손을 베기 일쑤였을 터인데 대체 이리 생긴 도구를 왜 만들었는지, 호기심 강한 혹자는 연구에 나섰다.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드러내기 위한 결과물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는 그렇게 등장했다. 남이 만든 게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들었음을 여성 앞에서 보여야 했기에 한 곳에서 손도끼가 무더기로 나오게 됐다나. 믿거나 말거나다. 이보다 더 사람이 똑똑했던 시절도 없으리라. 오늘날 대다수는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심지어 대학원 석, 박사 과정을 밟은 이도 상당수다. 그런 똑똑한 이들이 알고 보면 합리적이기보다는 ‘허당’에 가까운 판단력을 과시할 때가 잦다. 확률적으로는 동일한데 왠지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월등해 보인다. 생각하는 건 대개가 비슷한지라 모두가 오답을 골라놓고도 정답을 맞추었다며 오리발을 내민다. 어쩌면 그래야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최악의 배우자를 내치지 않고 견디는 힘은 슬프게도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그릇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듯했다. 남성이 나이 어리고 미모가 뛰어난 여성을 선호하는 것과 여성이 경제력 뛰어난 남성을 택하는 것 등을 설명하는 가설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본능보다는 사회문화의 영향이 더욱 큰 듯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본능과 양육 간의 끝나지 아니 한 논쟁이 떠오르기도 했다. 현 가정을 지키는 것과 배우자 몰래 외도를 함으로써 내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는 시도를 하는 것을 두고 나도 모르게 벌이는 다툼 또한 흥미로웠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일 테지만 그 마음이라 하는 것조차도 셈에 능할 줄은 진정 몰랐다. 과연 이번 독서로 인해 나는 좀더 나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가. ‘쓸데없이 걱정하고 괜히 불안하고 맨날 후회하고... 서투르고 허약한 내 마음, 도대체 왜 이럴까?’라는 저자가 던진 질문은 실상 내 자신이 던지고픈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이를 알기 위해 굳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련다. 나는 나일뿐이다. 나라 하여 나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알든 모르든 그 또한 내 일부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