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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선거에선 몇몇 청년들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물리적 연령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직접 꾸린 당 이름을 들고 선거판에 뛰어들었고,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한 정책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거대 정당들 틈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정치를 하기엔 “너무 젊다”며 그들을 외면했다. 혹 관심을 보인 이들도 막상 기표소 안에 들어가서는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측에 표를 던졌다.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한 정당. 하지만 이를 실패로 규정하고 싶진 않다. 그들은 이제 막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던 ‘새 정치’를 스스로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채. 국민을 대표하는, 과연 이 수식어가 옳을까. 국회의원이 하나의 기득권 행사 주체가 된 지 오래인 우리 사회다. 많은 인구가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고 국회에 출석하는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기란 버거우므로 간접 민주주의 시스템은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우리가 지닌 생각,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선거철이면 머리를 조아리며 한 표를 행사해 줄 것을 부탁하는 사람들. 당선 후에는 180도 사람이 달라진다. 다음 선거 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쥔 듯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회의원. 그들이 국민을 대변하리라는 건 헛된 기대에 불과하다. 모든 이가 자신이 속한 계층, 계급에 충실한 입장을 보이지는 않는다지만, 오늘날 국회의 성별, 연령대별 구성을 보면 더더욱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올드 보이’ 소리를 들을 이들이 널렸다. 50-60대의 연륜을 무시하고자 함은 아니다. 청년 실업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건 청년 자신인데, 국회에서 청년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이상으로 힘들다. 운 좋게 국회에 입성한 30대가 있을 경우에도 이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제 소속 정당의 입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므로 침묵하기 일쑤다. 때론 이슈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는지라 당혹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기도 한다. 나이만을 놓고 보면 청년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삶이 청년의 그것과 맞아 떨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금수저에게 흙수저는 열심히 문질러가며 광을 내야 할 대상일 따름이다. 왜 흙수저의 삶이 고달픈지 금수저로서는 결코 이해치 못한다. 저자는 청년 정당 우리미래 소속이다. 책 제목처럼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라는 생각에서 뜻을 모았다. 그는 오늘날 입시에서 수시/정시 모집 비율을 바꾸고, 자사고 특목고를 폐지하느냐 존속시키느냐 등의 문제는 다분히 소모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아예 입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다음에야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중간에 일종의 안식년과도 같은 시간을 학생들에게 부여한다. 아이들은 그 시간동안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진지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우리는 잠깐만 쉬어가려 해도 이내 채찍질 받는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잠시가 너의 경쟁력을 뒤처지게 만든다는 게 그 이유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각각 3년, 거기에 대학 4년. 여기까지만 따져도 16년인데, 경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기간, 취업 후 승진, 아니 살아남기 위한 투자의 시간 등까지 고려하면 언제 끝날지 기약 불가다.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정해진 길만을 바라보고 달릴 걸 요구받아 온 오늘날의 청년들에게서 창조적인 생각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한글을 깨치기도 전에 영어 유치원을 가야만 했고, 무조건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결정하고 학과는 아무데나, 직업은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교사를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게 정답이라며 독려 받아온 세대가 청년 세대다. 미래에는 적잖은 일을 사람 아닌 기계가 대신한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지를 고민하는 편이 수능에서 몇 문제 더 맞추는지 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람들의 시선 못지않게 제도 또한 청년의 정치 참여를 제약한다. 25세는 넘어야 생기는 피선거권, 유수의 정당이 아니고서는 보전을 기대조차 할 수 없을 선거자금 등이 부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정치에 뛰어들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달라질 것이다. 오래 전 민주주의의 쟁취에 나선 이들이 청년이었던 것처럼, 새 시대를 여는 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몫이라는 것이다. 더딘 변화도 변화다. 썩 내키진 않는 속도지만 분명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청년의, 더 나아가 모든 이들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미래를 꿈꾼다. 모든 걸 포기하고 제 자신조차도 내려놓아야 하는 게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해법이어서는 곤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