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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의 고전 사회학자들 가운데 에밀 뒤르켐을 가장 존경한다. 1990년대 중반, 나 스스로를 주변의 몇몇 '베버파'에 대항해서 뒤르켐파라고 인식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종교나 성스러운 것에는 무관심했고, 대신 위계질서나 폭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가 뒤르켐과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의 창시자이면서 사회심리학과 형사범죄학에 남다른 영향을 끼친 가브리엘 타르드(1843-1904)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2005년도나 되어서였다. 프랑스 여론 연구의 선구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인데 너무 뒤늦게 알게 되었다. 뒤르켐의 작품을 읽은지 10여년이 지나서야 타르드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제일 먼저 읽은 타르드의 저작물은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적 영향]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 [여론과 군중](지도리, 2012)은 두번째로 접하는 책인데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학]과 더불어 대중심리학의 고전에 해당한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매스 미디어의 확대와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군중의 공중화 현상에 주목한 선구적인 사회학자다. 타르드는 이제는 군중심리학이 아니라 공중심리학을 얘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나는 우리 시대가 군중의 시대라는 르 봉 박사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시대는 공중의 시대다.” 타르드는 책에서 군중에서 공중으로의 전환이 단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일종의 질적인 변화라고 주장한다. 가령 군중은 수동적인 개념이고 물질적인 개념인데 반해, 공중은 능동적인 개념이고 꽤나 정신적인 개념이다. 타르드는 친절하게도 시기상의 구분까지 해버렸다. 공중은 15세기 인쇄술 발명에 의한 신문의 등장과 함께 성장했다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인쇄술 발명 이전에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군중이었다면, 인쇄술 발명 이후에는 지리적인 한계없이 정신적으로 함께 하는 공중이 태어났다는 얘기다. 문제는 타르드가 '진정한' 공중의 출현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때부터라고 다시금 시간상 제한된 울타리를 가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인쇄술의 발명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300여년 동안 '미숙한' 공중은 어떻게 간주해야 할 것인가? 이 때의 역사적 격변기의 공중은 군중과는 어떤 질적 차이가 있었던 것인가?
아마도 정답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타르드의 눈에 군중이 '과거'의 사회집단이었다면, 공중은 '미래'의 사회집단이었다고. 타르드는 공중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집합체이고, 육체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그 결합이 완전히 정신적인 개인들의 분산으로 이해한다. 동물의 군집에 가까운 물질적 집합체로서의 군중은 육체접촉에 의한 심리적 전염의 기제로 작동하는 집단이다. 그러나 공중은 육체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합되어 있는 집합체다. 이런 정신적인 존재들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가진 터라, 타르드는 '집합심리학' 혹은 '사회심리학'이라는 표현 대신에 '간(間)정신 심리학'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정신과 외부의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바로 정신들간의 상호관계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당신에게 한가지 묻고 싶다. 오늘날의 SNS는 군중의 세계인가 공중의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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