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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필요하고 유용한 조직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집단적일 때 가장 힘있기 때문이다. 많은 투사들이 우리 노동조합이 어떻게 하면 잘 투쟁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유용한 조직이라 해서 언제나 가장 효과적으로 투쟁하지는 않는다. 대의원대회나 활동 속에 벌어지는 수많은 논쟁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묻는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유회된 것도 문재인 정부에 맞서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는 투쟁에서 노동조합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논쟁한 최신 사례다. 비록 유예되었지만 그것은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고자 한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과 지난 주말, 6만이 모여 문재인 정부에 항의하며 행진한 노동자들 간의 갈등과 논쟁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노동조합이 잘 투쟁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저놈의 보기 싫은 지도부를 이번 선거에서 꼭 바꿔야 하지 않을까? 전투적인 지도부를 세우면 이번 투쟁에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너무 투쟁하면 언론에서 대중들에게 욕 먹는다며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을 자세시키는 지도부는 너무 보기 싫으니 노조 활동 바깥의 이런저런 정치 활동에 참여하며 활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온건한 이번 지도부로는 투쟁을 건설할 가망이 결코 없으니 현장에서 만나는 주변 조합원들과 자체적으로 파업 일정을 잡고 조직하는 것이 효과적이진 않을까? 정부와 사용자에 맞서 진정으로 강력한 투쟁을 건설하고자 하는 투사라면 위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고, 주변에서 토론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알게 모르게 많이 했던 정말 진지한 물음들이다. 그러나 물음을 제기한다고 곧바로 올바른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용자들이 온갖 거짓말과 함께 우리의 투쟁을 짓누르려 하고 노동조합 지도부가 (때로는 투쟁을 이끌지만) 때로는 우리 투쟁을 자제시키기 위해서 온갖 회유를 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실수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투사들의 투쟁 경험과 치열했던 고민,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하는 노동자 동지들과,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 동지들에게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을 권한다. 이 책은 3장으로 되어 있다. 1장 “노동조합속의 사회주의자들”은 20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때로는 국가 권력을 무너뜨리기 직전까지도 갔던) 대규모 노동조합 투쟁과 그 과정에서 노조 상층 지도자, 현장 조합원, 좌파 세력은 어떤 구실을 했는지 다룬다. 그러면서 그 대안인 현장 조합원 운동의 원리를 다룬다. [1990년대 영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이유는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도움을 받으려고(71.9%)”,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49%)”였다. 한국 노동자들도 별반 다를 리 없다. 이제는 실효성 없는 투쟁으로는 안되니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자는 한국 노동운동 일각의 주장과는 달리 노동자들은 오히려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요구를 위해 노조에 가입한다. 그럴 때 핵심은 어떻게 투쟁하냐다. 책은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에 대해서 분석한다.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자본주의를 마비시킬 수 있는 집단적 능력를 발휘하도록 하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두 가지 근본적 한계가 있다. “첫째, 노동조합은 일반적으로 노동계급 전체가 아니라 일부[-특정 직장, 업종의 노동조합]이다.” “둘째,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라는 현존 질서 안에서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헌신하는 기구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가장 잘 반영하는 방법은 혁명적 사회 변혁이 아니라 협상과 개혁”이라는 생각을 부추긴다. 바로 이 생각을 강화하며 협상을 담당하는 노동조합 지도부는 때로는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에 맞서서 투쟁을 건설하지만, 때로는 협상의 파트너로 정부와 사용자를 인정하며 조합원들의 불만과 투쟁을 자제시킨다. 1919년 영국 총리 로이드조지는 정부를 무너뜨릴 지도 몰랐던 노동자들의 투쟁을 잠재우기 위해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불러 말했다. “여러분의 행동이 낳을 결과를 따져 보셨습니까? 파업은 이 나라 정부에 도전하는 것이고 파업이 성공을 거둘 수록 헌정 위기도 심각해 질 것입니다. 국가 자체보다 더 강력한 세력이 국가 안에서 등장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기능을 떠맡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발 물러나 국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파업은 취소됐고, 노동자들은 패배했다. 따라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모순적 역할을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현장 조합원들의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현장 조합원 조직은 공식 노동조합의 상층 기구 지도자와 달리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현장 대표자들의 기구다. 노조 업무를 전임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그 고충과 불만을 함께 느낀다. 흔히 노조 공식 지침에 따른 것이 아닌 살쾡이 파업[현장 노동자들이 노조 지침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불만에 항의하면서 벌이는 소규모의 파업, 흔히 대의원이나 현장 위원 같은 현장 투사들이 적극 호소, 조직한다.]과 같은 것들을 조직한다. 1915년 11월 클라이드 노동자위원회는 바로 이 운동의 태도를 잘 요약했다. “노조 간부들이 노동자들을 올바로 대변하는 한 그들을 지지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곧바로 독자적 행동에 나설 것이다” 다시 말해, 노조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의 불만과 항의에 따른 제대로 된 투쟁 지침을 제시한다면 가장 앞장서서 굳건히 투쟁하지만, 노조 지도자들이 뜨뜻미지근하거나 투쟁을 배신하며 마무리하려 하면 이를 드러내 비판하고, 그를 거슬러 투쟁한다. 이 현장조합원 운동은 계급 투쟁이 대규모로 전진하는 시기에 등장하고 나아가서 노동자 권력의 맹아로도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은 높지만 지도부는 투쟁을 건설하기보다는 협상에 목을 매고, 현장 조합원들의 대규모 운동이 아직 분출하지는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한국 노동자 운동에서 고민할 법하다. 책 2장은 현장 조합원과 좌파적 노조 지도자를 일시적으로 한데 묶는 ‘혼성체 조직’을 활용해 현장 조합원의 사기와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지금 한국 상황에 적용할 만한 이 책의 핵심적 대안이 자세히 서술된 장이므로 마음 급한 독자라면 여기부터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우선 그럴 때 선택하기 쉬운 운동 방법부터 살펴보자. 첫 번째는 범좌파 연합이다. 범좌파 연합은 노조 내의 좌우파의 구분이 가장 핵심적 갈등이라 여겨 ‘범좌파’ 활동가를 노조 주요 공식 직책에 당선시키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조합원들이 [투쟁을 회피하는] 노조 관료에게 갈수록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징후인 동시에 노조 [지도부]가 사용자와 사용자와 정부에 나약하게 대처하는 것에 최상의 활동가 일부가 조직적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신호”다. 그러므로 이런 경향이 등장하는 것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종파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범좌파 연합 전략에는 약점이 있다. “[현장 조합원이 아니라] 노조 관료를 중시하고 좌파의 공식 노조 기구 통제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집중하다 보면 지도부가 조합원들을 관료적으로 통제하는 보수적 압력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에 찬 현장 조합원 조직이 핵심이라는 점을 잊게 될 수 있다. 좌파든 우파든 노조 지도부는 투쟁을 건설하는 언사와 노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차이는 ‘모든’ 노조가 사용자와 투쟁 끝에 결국 협상해야 하고, 노동자 투쟁을 국가 권력을 쟁취하는 곳으로까지는 결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장 조합원과 노조 지도부 사이의 차이보다 부차적이다. 현장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경계를 넘어 국가 권력을 쟁취하는 것에 계급적 이해가 있으나, 지도부에게 투쟁을 거기까지 밀어부치는 것은 노동조합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으로 투쟁코자 했던] 국민파도 [노조 지도부로] 올라가면 [투쟁을 자제시키는]국민파’된다는 노동 운동의 속담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분리 노조 운동이다. 이는 “온건한 노조 간부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일을 체념한 활동가들과 투사들이 [기존 노조에서] 떨어져 나와 더 급진적인 노조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의 핵심적 공통점은 “현장 조합원들에게 지도부의 부정적 영향력을 극복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좌절한 전투적 활동가가 앞장서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흔히 전투적인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호소할 기회를 잃게 하고, 노동조합 지도부가 좌파적인 비판으로부터 해방되도록 만들어버린다. 현장 조합원들의 변화 가능성이 없다고 좌절하는 순간 가장 비판적인 방법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노조 관료와 사용자들을 돕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혼성체 조직이다. 노동조합 관료의 근본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좌파 관료들 일부는 적극 투쟁을 건설한다. “투쟁하고자 하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빗발쳐서[라도] 노조 관료의 일부는 자신들의 지도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투쟁을 선언해야 한다.” 그런 좌파 지도부, 좌파 활동가, 투쟁을 바라는 현장 조합원들의 ‘일시적’ 동맹은 또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견제해 투쟁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도 높인다. 만일 현재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경사노위를 탈퇴하고 정부와 대대적 투쟁을 건설하겠다는 좌파적 언행을 보인다면 [보수적인] 한국 노총의 지도자들 역시 경사노위에서 들어가 있지 말고 투쟁하자는 조합원들의 더 큰 불만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현장 조합원 활동가와 좌파 간부들을 한데 결집하는 공동전선의 기초를 놓으려는 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노동조합원 대중의 불만이 클 수록, 또 혼성체 조직을 활용해 투쟁을 조직하려는 활동가들의 구심이 강력할 수록 그런 시도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거꾸로 “그 결과 현장 조합원들은 공식적 투쟁 호소를 이용해 노조 지도부의 계획과 예상을 뛰어넘어 투쟁을 발전시키고 독립적 현장 조합원 조직 건설의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함께 투쟁하고 있을 때조차 노동조합 지도자와 현장 조합원들의 근본적 이해는 다르다. 그러므로 “현장 조합원들이 좌파 노동조합 관료를 신뢰하거나 급진적 미사여구에 속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과 협력하기도 하지만 독립적으로 [그들을 비판하거나, 투쟁을 잠재우려는 것을 거슬러] 행동하기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간부에게 순응하거나 아니면 그들을 단순히 건너뛰거나 무시할 두 가지 위험을 모두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3장은 노동조합 관료에 대한 영국 공산당과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공산당은 좌파 지도부 세우기에 집중하면서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현장 조합원의 중요성만을 거칠게 내세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현장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곧 좌파 지도부 세우기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장에 잘 다루었듯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투쟁과 투쟁 자제 사이에서 갈팡질팡 이중적 구실을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노동조합 간부는 많은 노동자, 특히 투쟁의 가장자리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좌파 간부 세우기의 중요성은 무시해선 안 된다. 한편 3장의 첫머리에서 잘 주장하고 있듯이 사회주의자들은 “정부의 반동적 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노동조합 지도부에 맞선 투쟁에서 단결해 싸우는 것”을 중시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좌파 관료를 비롯해] 투쟁할 의사가 있는 노동운동 내 모든 세력과 함께 싸워야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좌파 지도자와의 일시적 협력이 그들에게 의존하는 것과 완전히 다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이려 한다. 역사상 아래로부터의 현장 조합원 운동, 그리고 현장 조합원 운동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활동을 주도한 핵심 활동가들은 흔히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사용자와 노동조합 관료에 독립적인 정치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문의 투쟁에 그치고, 진정한 노동계급 투쟁을 건설해 새 세계를 건설할 수는 없는 노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혁명적 정당을 건설에도 힘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조합을 활용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화하는 길이다. 지금까지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책을 잘 이해하는 것은 책을 직접 읽어 보는 것이다. 이 글에서 부득이 다룰 수 없었던 더 자세한 설명들과 함께 노동자 투쟁에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은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큰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