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초에 '죄의식'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곳이 어디일까? 최초에 인류의 죄를 논한 것은 누구일까? 왜 그들은 '죄의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는 인간을 구속하기에 머뭇거리지 않았을까?
이 책은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성장 소설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작가의 나레이션이 조금 많이 가미된, 그런.
주인공은 열살 된 소녀 '조안'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빌면 조안은 1960년대 런던 남쪽에서 자라며 본 아이들과 비슷하다고 한다.
배경을 모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끝까지 모를 이야기도 있는데 이 책이 그러하다. 이야기는 '조안'이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폐차장'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폐차장은 그 시절에는 '갱'들의 주 활동 무대로 위험함과 비행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였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조안과 아이들의 부모는 그러한 장소에 가지 말 것을 늘 가르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자신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고 또 친구들과 공유하는 그들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부모의 제한을 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폐차장을 배경으로 어울리는 아이들 중 '조안', '사이먼' 나중에 새롭게 그들의 그룹에 들어오는 '웬디'의 세 아이의 이야기를 '조안'을 중심으로 풀어 담아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어른들이 이해하는 방식과 다르기는 해도 무엇인가 잘 못되었다거나 잘 되었다는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들이 아이들의 감정을 좌우한다.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죄의식이 정말 죄에 대한 의식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감정의 갈등인지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혼란과 갈등은 성장하고 살아가며 누구나 느끼게 되는 어쩌면 당연한 것임에도 왜 저자는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지적하는 것일까?
먼저 이 책의 저자가 영국이라는 카톨릭 국가에서 성장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자는 카톨릭 신자는 아니며, 오히려 불교도이다. 하지만 원죄 의식이 깊숙히 뿌리내린 사회에서 성장하다보면 자연히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또 하나는 경계하고 싶은 현대의 경향에 대한 것인데, 무엇이든 '병'으로 만들어버리기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웠던 것도, 현대에는 어떤 병이나, 신경증이 되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오죽했으면 세상에 치명적인 '질환'을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학습된 죄의식에 대한 것이다. 아이들은 혼란을 느낄 때면 부모나 주위의 어른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부모의 훈계, 경계, 금지와 처벌과 지시에 따라 점점 선악을 분류해간다. 여기서 문제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혼란에 대해 적절한 기준을 세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선악의 판단, 가혹한 처벌, 모호한 태도는 아이들의 혼란을 부추기게 된다.
책 속의 일화를 들어보면 '사이먼'은 소극적인 아이다. 외동아들이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에겐 조금 위축되어 있다. 어느날 사이먼은 아이들과 '폐차장'에서 놀다 새로 산 재킷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망설임 끝에 재킷을 잃어버린 사실을 부모님께 이야기 했을 때는 이미 절망의 끄트머리에 선 기분이 되어있었다. "난, 이제 끝이야. 엄마가 날 내쫓을지도 몰라" 뭐,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사이먼이 예상했던 엄마의 훈계도 처벌도 없었다. 엄마 또한 어린 시절에 비슷한 일탈을 경험했고 그 때 느꼈던 아픔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이것이 사이먼에게 큰 고뇌를 안겨준다. "내가 너무 엄청난 실수를 해버렸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혼낼 기운조차 잃어버린거야.", "내가 엄마를 망가뜨렸어." 이정도 기분일까?
위기에서 벗어났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그 순간이 지난 후에 더 큰 불안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나? 차라리 몇대 맞고나면 후련했던 기억은?
이렇게 또 하나의 죄의식이 태어나고 만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듯 여겼던 것도 곧 잊혀져 간다. 잊혀져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아이는 안정적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혼란과 다시 마주하면 아이의 평온한 마음은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작지만 깊이 남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히 풀어가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과 판단, 가족들간에 혹은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죄의식의 연쇄, 아이들의 심리, 무죄방면이라는 기대되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는 죄의식, 죄의식으로 인해 잊혀지기도 하는 기억, 자신이 겪어야 할 시련을 타인에게 전가했다는 죄의식, 후회를 닮은 죄책감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내겐 이 모든 것이 성장 과정에서의 필연적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모든 책임을 내게 지울 필요가 없다. 난 그렇게 되길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될 줄 몰랐을 뿐이다.
죄의식은 무한히 증식하는 바이러스 같다. 한 사람이 느끼는 죄의식은 마치 감정을 타고 퍼져가듯 급속도로 확산된다. 죄의식에 어떤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저자가 의도한 것도 이런 깨달음 인지도 모른다. 독자들도 나름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그 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마주하고 또 죄의식도 느끼고 죄책감에 눈물 지어야 했던 날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타인의 감정을 알기란 쉽지 않다. 부모라고 해도 자식의 깊은 심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 책은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아이들의 혼란과 아픔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이 쓰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멀리 간 것이 될까?
어린 시절에 깊숙히 각인된 죄의식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고 자라난 후에도 어떤 심리적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히스테릭하거나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이들은 분명 어른들과 같이 현상과 이유를 분명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섬세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부모와 친구, 주변 사람들의 태도 하나에서도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것이 고통스러워 해야 할 죄의식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또 누구나 거쳐가는 일임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랑을 주고 배려해 나가야겠다.
어린 아이가 심각한 죄의식에 시달린다거나, 모든 것에 소극적이어서 천진함을 잃어버리고 너무 일찍 어른처럼 되어버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얻기에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ps) 이 책을 읽으며 괴로워 해야 했던 이유는 죄의식 때문이 아니었다. 활자가 가늘어 보인달까? 하여튼 평소에 읽던 크기보다 왜소해보여 가뜩이나 가볍지 않은 내용과 촘촘한 문자들 속을 헤쳐나오느라 제법 고생을 했다. 어이 없는 문제에 대한 지적인지 모르겠지만, 폰트 사이즈가 조금 크거나 글자가 조금 굵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적어본다.
[이 감상은 네이버 북카페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을 통해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정말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써 미성숙한 아이들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앞으로 받을 그 고통이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다. 나 스스로도 나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며 몇번이고 후회를 하고 가슴을 옥죄며 고통 받은 시간들이 많다. 죄의식이라는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하더라도 모든 인간들에게 가지고 있는 최후의 양심이자 짐이 아닐까 싶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시간을 돌리고 싶은 기억.. 내 스스로가 싫어지는 기억들이 나를 스스로 움츠리게하고 내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한적이 많다. 그래서 애써외면하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그 죄의식을 잘 씻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안도 마찬가지다. 어린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폐품하치장에서 우연이 본 성인잡지.. 그로 인해 느낀 죄의식.. 그러나 또다시 보고싶어하는 마음과 또 그에 대한 죄의식.. 호기심으로 친구들의 누드 모델이 되어준 조안.. 그뒤로 20년이 지나도 그 마을에 가도 그 친구들을 보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것 또한 청소년기를 지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느껴볼 죄의식이 아닐까? 친구들과 모여서 몰래 본 야한 비디오.. 그로 인해 그 장면이 떠오를때 마다 느낀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남들과 다른 가족 구성으로 인해 받는 죄의식.. 요즘과 같이 이혼률이 높은 사회에서는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화목하지 않은 가정으로 인해 아이들이 가지는 죄의식은 더군다나 더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한 죄의식이 열등감을 만들고 아이들의 올바른 자의식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다.
조안의 경우를 보며 우리는 죄의식이라는것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며 위로 받게 된다. 내 과거의 실수와 잘못들로 인해 내 마음속 내부에 있는 그 죄의식들을 필자는 씻어내라고 말한다. 그 모든것들이 우연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그것에 휩싸여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죄의식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정의 굴레이다. 이것을 없애는 것 또한 역시 내 스스로다. 내 스스로를 용서하고 내 스스로를 해방시켜 주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이아닐까?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모이건 교사이건 간에 아이들의 스스로의 죄를 마주하게 하고 그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던 우연과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게 한다면 그러한 죄의식으로 평생고통 받을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죄를 짓듯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이었다!
어둠을 인정해야만... 다양한 색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
|
서양이 죄의식의 문화라면 동양은 수치심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칼로 베듯 그렇게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죄의식 혹은 죄책감이 수치심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심리학이나 비교문화 혹은 문화커뮤니케이션에서는 동양의 수치심 문화와 서양의 죄의식 문화를 일반적인 이론범주로 간주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비판적인 지성인들이 동서양문명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을 들려주었지만 수치심이나 죄의식 그 자체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를 제대로 접해본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었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는 프로이트의 초자아 이론으로 죄책감의 심리적 근원을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고 이드를 억누르는 문화적 기제인 초자아와 에고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시쳇말로 '내면의 목소리' 혹은 '양심의 소리'가 바로 도덕교과서를 고지식하게 고집하는 초자아의 기능이다. 반면에 동양의 연구에서는 체면이나 수치심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여전히 현학이고 한창이다. 우리에게 수치심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즉 금수와 구별되게 만드는 바람직한 심리적 코드였다. 가령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면목이 없다', 볼 낯이 없다' 등 이런 표현들은 우리 선조들이 옛부터 수치 혹은 부끄러움을 자신의 잘못을 뒤돌아볼 수 있는 성찰능력의 증거로 보았음을 말해 준다.
서양의 죄의식과 동양의 수치심은 어떤 식의 심리기제 혹은 문화기제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동양의 수치심에 대한 담론은 추천할만한 책이 그리 많지 않지만 최근에 서양의 죄의식에 대한 괜찮은 교양서적이 나왔기에 추천해본다. 저자는 불교 심리학의 권위자 캐럴라인 브레이지어인데, 20여년간 심리연구에 종사한 베테랑이다. 저자는 《인간은 왜 죄의식으로 고통받는가》(알마, 2012)에서 성장소설의 골격을 빌어 발달심리학과 죄의식의 연구를 결합하여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죄의식이 담당하는 기능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죄책감을 덜거나 줄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즉 이 책은 심리치료용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있어서 죄의식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죄의식을 갖게 된 원인은 단순히 우리가 속한 특정 집단이나 사회의 수용기준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일까? 죄의식은 특정 상황에서만 정당한 사회적인 압력과 판단으로 생기는 걸까? 아니면 죄를 측정할 수 있는 언제나 유효한 기준, 모든 상황에 다 들어맞는 기준이 있는 걸까? 죄의식이란 것은 감정일까 아니면 측정 가능한 상태일까?"(35쪽)
저자는 우선 죄의식의 대부분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대감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데서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한다면 우리의 죄의식은 평범함에 대한 거부와 혐오에서 기인한다. 평범함과 불완전함을 참을 수 없는 성향이 죄의식과 수치심의 온상이 되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오늘날 청소년들의 왕따나 자살문제가 크게 대두되는 그 배경이 무엇인지 감이 오게 된다. '엄친아'나 '엄친딸'과 같은 완벽주의와 완벽하고자 하는 강박주의가 죄의식과 수치심을 조장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저자는 완벽주의자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는데, 자신의 행동이 엄친아나 엄친딸처럼 모범적인 것에 미치지 못하면 불타오르는 분노 속에서 죄의식이 싹트는 것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열 살의 조안과 교사가 된 서른 한 살의 조안을 비교해가며 발달심리학의 특성과 죄의식의 관계를 한데 엮어넣는다. 그러나 이야기의 대부분은 당돌한 열 살짜리 여주인공 조안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모든 심리치료가 그렇듯이 저자는 죄의식의 형성이 자리를 잡는 유년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레이와 알프의 초대로 조안과 사이먼, 웬디 등 아이들은 폐품 하치장을 비밀스런 미니 요새로 삼아 어른들이 정해놓은 경계선을 넘어선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자신들만의 성장모험을 감행하곤 한다. 가령 조안이 처음 본 성인잡지책 <플레이보이>와 성적 호기심에 대한 경험이 대표적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은 경험과 인지를 만들어내고, 인성을 왜곡하거나 형성하면서 우리의 심리 구조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중에는 좋은 영향을 남기는 것도 있고, 나쁜 영향을 남기는 것도 있다. 나무가 바람을 맞으며 멋진 모습이 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역경을 이겨내면서 인품을 가진 존재로 성숙해간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세상을 탐색해가는 과정, 즉석에서 놀이 도구를 만들어내던 창의력, 놀이에 깃든 상상력, 우리가 만나는 많은 친구들 그리고 사람들과 맺는 관계 등은 어른이 되었을 때 더 흥미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역량을 키워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묘사할 수 있도록 색깔과 형상을 담아두는 그림물감통과 같다."(25쪽)
|
|
마음이 복잡해지는 책이다. 어찌 보면 조금은 지루한 전개와 의식의 흐름이 지나칠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책 뒤편의 반전 역시 씁쓸함을 남기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이 책의 주제가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힘든 현대의 금기이며, 우리의 정의감을 심리적인 것과 얽히게 하면서 파괴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죄의식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불교도이자 심리치료사로 20년의 경력이 있다는 이 책의 저자는 설명조의 글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우리의 삶과 죄의식의 단면을 성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안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 모두 상상의 주인공이라 소개되고 있는데, 1960년대 런던 남쪽 후미진 도시 외곽의 풍경과 열 살 무렵 아이들의 세계를 이렇게 심도 깊게 성찰하고 있는 책은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짜 영화로 각색하기에 좋은 시나리오란 말이다.
큰 키에 마른편이며 도시 외곽 빈 공터에서 거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 줄 아는 조안과 그의 친구들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죄의식을 들여다본 이유는 아마 우리의 도덕의식이 유아기 때 생겨나기 때문이리라. 또한 죄의식을 정직하게 탐색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야 하기에 순수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죄의식은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일화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어떤 아이들은 나쁜 짓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대담하게 잘못을 저지르면서 짜릿함을 느끼는데, 어른들에게 잘못을 들키지 않은 아이는 승리감을 즐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두려움이나 죄의식을 키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말로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아이에게 전달한다고 언급한다. 부모가 정한 행동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그에 쫒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는 말이다. 또한 사춘기의 시작 시점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때문에, 그리고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성에 대한 이야기와 성에 대한 호기심은 일종의 수치심과 죄의식으로 다가온다고 강조한다. 사실 이 책 뒤편에 등장하는 반전은 어느 날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우연히 보게 된 "플레이보이" 잡지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 조안이 서른 한 살의 어른이 되어 고향으로 귀향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어린 시절 날마다 사고를 치고 다녔던 기억조차 자긍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 친한 친구 웬디를 다시 만나고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혼란과 죄의식에 빠지게 된다. 그 어린 시절 남자 아이들의 아지트에서 "플레이보이" 잡지의 모델처럼 옷을 벗고 모델이 되어보라는 제안을 거절한 조안의 이야기를 들은 웬디가 결국 자신을 대신해 그런 일을 하게 되었고, 결국 어린 나이에 성폭력에 시달리게 되어 결국 거식증과 강박증, 성폭력 관련 상담치료 등을 통해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에 조안은 큰 죄의식에 빠지게 된다. 사실 이 책의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면서 저자는 그 무엇도 죄의식을 없앨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어둠을 받아들여야만 우리를 둘러싼 빛을 느낄 수 있다는 말로 이 책을 끝맺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어린 시절의 향수, 금기를 넘나드는 십대의 모험, 그리고 누구나 마음속에 자리한 죄의식을 거부할 수 없다는 미묘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
|
밤새 뒤척이며 긴긴밤을 하얗게 지새우거나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며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를 해 본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행동들이 사회문제시 되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 지나친 죄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어할 때다. 저자는 우리가 죄의식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대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죄의식이란 일을 망치고 난 후 그 결과를 후회하는 것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타인이 알게될 때
느끼게 되는 수치스러운 감정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죄의식은 사회적인 규범에 반하는 행동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주장은 죄의식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죄의식에 접근하는 방법도 독
특하다. 보통의 심리학 저서들이 풍부한 사례를 예시로 보여주고 내용 정리와 결론을 내는 것과 다르게 이 책에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는 가상의 인물인 조안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비교적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과는 거리가 먼 어린아이의 행동을
통해 죄의식에 접근한다. 많 은 심리학 저서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을 저자도 언급하는 데, 바로 인간의 심리적 문제들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어린시절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돌출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아이의 성장과정을 통해 어린시절부터 습득되는 죄의식에 접근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평범함으로 돌아가 현실을 직시하라. 저
자가 제시하는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올바른 현실직시다. 그리고 평범함을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평범함이란 우리모두는 나름의
결점들을 가진 모두가 평범한 존재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우월성을 드러내거나 타인을 조정하기 위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때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이므로,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죄의식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조언이다. 책의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내용은 학습된 죄의식에 대한 부분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의 작은 행동 하나가 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며 아이들은 부모나 주위 어른들을 통해 행동의 기준을 세우기 때문에 부모 스스로 자신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적절한 가치기준을 세워주고 있는 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른의 죄책감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각인된다는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
|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또래와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휩쓸려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호기심에서 장난 삼아 한 일이 먼훗날 자신을 되돌아 보면 씻을 수 없고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도 한다.종교인은 자신이 갖고 있는 죄의식을 회개 내지 고백성사를 통해 거듭나는 삶을 추구하기도 한다.어찌되었든 죄의식이란 내 몸과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기에 탁 터놓고 누군가에게 고백 내지 허심탄회하게 밝힘으로써 이 글의 표지마냥 맑고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거 같은 바른 인생을 살아갔으면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모 및 조상의 DNA 내지 기질,습관을 알게 모르게 물려 받는다.나의 경우는 말 수가 없는 할아버지의 면모와 꾸준하고도 생활력 있는 자세로 나아가려는 삶의 자세를 닮은거 같고 부모님으로부터는 장사 수완이 좀 닮은거 같다.그렇다고 현재 장사를 하지는 않지만 약간 이해타산적이고 계수관념이 강한 편이다.꼼꼼하면서도 이치 및 계산상 맞지 않으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될때까지 파고 드는 성격이 아버지를 닮은거 같다.또한 어머니의 경우에는 잔치집에 다녀 오면 꼭 음식을 챙겨오는데 나 또한 남살스럽게도 집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것 저것 테이크아웃 하기도 한다.물론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 마음이기에 좋게 봐주길 바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불현듯 나도 어린 시절(6~7살 무렵) 부끄러운 일이 떠오른다.동네에서 누나뻘 되는 누나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부엌으로 데리고 가 내 성기를 보여 달라고 하면서 성행위를 시도하려다 '크크'하는 누나의 엄마 목소리를 듣고 얼굴이 붉어지고 그냥 도망쳐 나온 일이 있다.그때 성적자극에 놀라 당황스럽던 기억이 몇 십년 전의 일임에도 잊혀지지 않는다.동네 누나의 엄마가 오지 않고 그대로 누나에게 내맡겼더라면 나 자신은 어린 나이에 죄책감으로 상당 기간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속으로만 삭혀야 했을거 같다.일종의 어린이들의 어른들 흉내를 내려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잣대로 자신을 죄의식의 늪으로 빠뜨리며 성행위가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난잡하고 불결한 쪽으로 치우칠 뻔했는데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의식은 학습을 통해 우리의 뇌에 각인되고 잊을만 하면 다른 사물과 사건들과 연계되어 연상이 되기도 하고 때론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수치심으로 휩싸일 경우도 있다.다만 이러한 죄의식과 관련된 문제는 누구나 있을 법한 문제이기에 자신을 진실로 알아주는 지음(知音)에게 비밀 털어놓기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평상심을 되찾아 떳떳하고도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처세와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조안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이먼,웬디,알프와 레이 등이 어린 시절 폐지 하치장에 놀러 가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남학생은 여학생을 홀랑 벗겨놓고 모델화 시키는데 조안에게는 성인들이 보는 '플레이 보이'와 같은 잡지책을 우연히 손에 넣고 읽던 중 성인들이 누드모습과 성행위가 뇌리에 계속 연상되며 폐지 하치장에서의 모델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가중되어 어른이 될때까지도 잊혀지지 않은 채 죄의식으로 남게 된다.요즘에야 매체가 발달되고 야동에 관련된 글자만 치면 언제라도 보고 수음,자위행위를 하는 등 시대는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의 말초신경을 사정없이 건드린다.과연 이러한 상황과 환경하에서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선악의 판단,이로인한 정신적 폐해 및 처벌 등에 관해 아이가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대화의 실마리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조안과 웬디 등이 성장하고 어른이 되면서 함께 놀고 지저귀던 어린 시절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되지만 조안의 경우에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의 삶 속에서도 내내 성인 잡지 및 폐지 하치장에서의 그늘지고 음습하며 수치스럽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오래도록 그녀의 마음을 옥죄고,그녀가 고향 마을 근처로 돌아와서도 마음 한구석에 그녀를 누드모델쯤으로 생각할까봐 전전긍긍한다.마침 웬디를 만나게 되면서 안부와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지만 시간과 공간의 격세지감은 순수했던 어린시절 만큼의 두터운 우정은 희석되어 가고 조안 자신이 안고 있는 죄의식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들이 배운 중요한 교훈을 연습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며 친밀감을 불러온다. - 본문에서 -
또한 우리가 안고 있는 비밀과 죄의식은 반드시 비밀을 털어 놓음으로써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가끔은 비밀로 죄의식을 감추기도 하며 거짓으로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려고 하는 것도 인간의 나약하고도 본능적인 행위일 것이다.어떠한 사건과 사실을 꾸미거나 취소하거나 철회하려고 애쓰는 행위는 인간의 마음을 고문하는 일이며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안도감과 자존감을 높히기 위해 진실을 감추려는 행위를 초월하는 것이 가장 고결(高潔)한 길이라고 판단된다.가장 솔직하고 담담하고 죄의식을 떨쳐 내려고 노력하는 의지만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이끄는 길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
|
죄의식의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 같다. 사실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모습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죄의식이라는 말을 또다른 의미에서 후회라든지, 뼈저린 후회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감이 없이 잠들 수 있는 사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
제목만으로 책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는 죄의식과 관련된 논문 스타일의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뒤엎고 조안이라는 아이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죄의식에 대해 보다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조안에 대한 이야기는 겨우 몇 마디만 쓸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조안이라는 아이는 저자의 마음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결국엔 이 책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저자의 고백때문에 조안이 실제 인물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다.
저자는 조안과 그녀의 친구들이 겪었던 죄의식을 하나씩 풀어가는데, 그런 죄책감들이 흔히 사춘기 아이들이 한 번 쯤은 고민하고 겪었을 내용이라는 것때문에 쉽게 공감이 되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열 살인 조안은 동네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당찬 여자애다. 어느 날 조안은 우연히 폐품 하치장 근처에서 놀다가 폐품 하치장의 주인인 레이와 알프를 알게 된다.
그 날 이후 조안과 그 무리들은 폐품 하치장에서 노는 것이 일상이 된다. 처음엔 부모님이 싫어하실거란 생각에 약간의 죄의식이 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죄의식은 사라지고 일상적인 생활이 되어 버린다.
어느 날 폐품 하치장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플레이보이 잡지. 그것이 조안이 죄의식을 갖게 된 시발점이었다.
조안의 친구인 사이먼은 엄마가 사주신 비싼 새 옷을 폐품 하치장에서 실수로 불태우게 된다. 그 때문에 야단을 맞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사이먼은 뜻밖에도 엄마의 이해를 얻게 된다.
조안을 따라 그녀의 친구인 웬디도 폐품 하치장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조안이 서른 한 살이 되던 해 이야기가 나온다.
평범한 사람들이 죄의식을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로 풀어놓았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사람들의 죄의식의 대부분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대감에서 나온다고 한다. 자신이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 후에 느낄 모욕감을 견딜 수 없어 하며, 분노와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도 좋은 사람이라는 신기루 밑으로 숨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며 그것을 인정하게 될 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
|
다른 동물들에게도 죄의식 이란 것이 존재할까? 먹이 사슬 아래 생존을 위한 잡고 잡히는 관계 속에서 동물들에게 죄의식이란 필요한 것일까? 없다면 왜 인간에게만 이러한 죄의식이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죄의식이란 당초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사실 책을 보는 순간 압도되었다. 작은 글씨체부터 시작해서 20페이지 남짓 읽기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심도 있는 내용에 버겁기도 하였지만, 조안을 따라가다 보며 어느 새 죄의식에 대한 문제에 대해 점차 다가갈 수 있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기에 우리는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죄의식의 의미에서 보았을 때 이는 아주 일부일 뿐이다. 죄의식이 있기에 자긍심을 느낄 수도 있으나 자기 혼자서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치심이나 개인적인 의식의 딜레마로 인해 자신에게 되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생채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지만 정신적으로 각인된 흉터는 성숙해가며 경험으로 인지되거나 혹은 인성을 왜곡하게 하는 심리적인 흔적을 남기게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묘사할 수 있도록 색깔과 형상을 담아두는 그림물감통과 같다.-본문 아이들에게 죄의식이란 스스로 인식하기 보다는 주변에 의해서 만들어진 굴레 속에서 판단 되어진다. 이전 세대들 보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부모 혹은 사회의 더 많은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그로 인해 어른들이 가기 원하는 길로 향하도록 지도 받는다.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기에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지도 속에서는 부모의 염원이 담겨 있기에 또 다른 왜곡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조안은 어린 시절 폐 하치장을 그들의 본거지 삼아 자주 드나들게 되고 그 안에서 남학생들로부터 누드 모델의 제안을 받는다. 누드 모델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를 나이지만 조안은 우연치 않게 얻게 된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고서는 누드를 한 모델과 성행위에 대한 생각들로 인해 호기심이 발동되기는 하나 그는 그것을 뒤로하고 유학을 가게 된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후 그녀의 삶 속에는 이 어두운 과거가 마치 늪지대 마냥 그녀를 질퍽거리며 잡아당긴다. 마을로 돌아오고 나서도 조안의 마음속에는 그 하치장의 사건들이 자신의 꼬리표처럼 남을까 하는 두려움이 남아있다. 한참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 속에는 아직도 그날이 지금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웬디를 만나고 나서 그녀는 더 큰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대신하여 웬디가 그 자리를 대신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조안은 자신이 그녀의 삶을 통째로 그 구렁텅이에 떠 넘긴 듯한 자괴감에 빠진다. 죄의식으로 인한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그 문제에 대해 즉시 하여 본질을 탐색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아무 감정 없이 들여다 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자랄 수 있다. 누구나 정상적으로 후회하고 살고 있음에 죄의식을 갖는 것도 보통 인간으로서의 한 가지 영역일 것이다. 그 누구도 죄의식을 없앨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어둠을 받아들여야 우리 곁에 또 다른 빛을 느낄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다만 이러한 죄의식이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여 나의 판단 하에 그를 가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