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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그가 영세를 받고 감형을 신청하는 행위가 진짜 죄를 뉘우치는 것일까? 외동딸을 잃고 그 아픔에 이혼까지 한 엄마의 심정이 가해자의 생활보다 즐거울까?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더 우선되는 상황이 정당할까? 이 영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거친 표현없이 사람들의 말 자체만으로. 조용하기 때문에 잠들 수도 있다. 비록 보다가 잠든다 하더라도 정신 맑은 날, 그 날이 아침이어서 영화보는 시간이 조금은 아깝다 생각이 들더라도 이 영화는 꼭! 봤으면 좋겠다. 대사 하나하나가 버릴 게 없다. 좋게 넘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가정 폭력과 사회문제인 사형제 폐지라는 양 측면에서 나온다. 겉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서 딸의 마음은 아무것도 아닌 집, 용서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고 미화하는 사례만 고려하는 종교적 입장. 정작 가해자인 아버지와 살인을 저지른 그 많은 교도소 수감자들은 다른 사람을 살피지 못한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 예쁜 배우 송혜교 씨가 있다. 연기 잘 하는 청소년 배우 남지현 양도 있다. 상영관 일수가 길지 않아서 못 봤는지...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스코어 1이라도 올려야 하는 영화인데.^^ 1년 전 약혼자를 의도적인 오토바이 사고로 잃어버린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은 방송국을 나와 다큐영상을 취재하러 다닌다. 그 소년에게 탄원서를 써 준채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을 거라 믿으며. 처음에 그 만남으로 채워지는 시간들이 있다. 러닝타임 40여 분 정도. 그런데, 이 대화에서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 던진다. 과연 가해자를 용서한 것이 옳은 것인가? 힘들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모범수라고 형량도 마치지 않고 나와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더 잘 사는 게 옳은 것인가? 찢어죽인다는 말이 그녀들의 얼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이미 해체된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지 못하고 버텨간다. 특히, 소피아(피해자의 어머니), 마리아(다른 가해자의 어머니), 클라라(여인), 수녀 4인의 대화, 사제와 수녀, 클라라 3인의 대화는 종교인에 대한 그럴 듯한 말에 대한 근원적인 분노도 일어난다. 아예 처음부터 사형제는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형이상학적인 말만 하는 것. 그것은 아버지에게 맞고 지내는 지민에게 그 폭력을 가족이므로 사랑과 이해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다혜의 말과 겹친다. 용서를 감동으로 만들어야 꼭!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제 용서가 사람을 죽였어요.” “그럼, 그에게 죽임을 당한 제 약혼자와 소년은 덜 불쌍한 건가요?” 정작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까지 끝내고자 한 여인, 그렇기에 또 다른 소년의 죽음과 가해자인 소년의 모습은 더 절망이 된다. 부모에 대한 섭섭함과 미안함, 용서해달라는 가해자 소년의 부모 심정과 자신의 아픔의 균형을 잡을 수 없어 활짝 웃는 사람들과 인생을 바꾸고 싶은 여인. 그 여인이 현실 속 용서를 이해하는 과정이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래. 그런 마음이 없다면 괴롭지도 않을 거라네.”
영화 중간에 나오는 지민의 말. 용서에 대한 근본바탕과 용서의 주체와 범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소피아의 말처럼 용서는 미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것,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한, 그 시간마저 자신만이 아는. 이 영화는 스틸 컷으로 표현된 정물들의 놓임과 그 그림자, 이 때 들리는 음악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사만큼이나. 비오는 편의점 밖이 비가 그친 채로 끝나는 것은 어쩌면 피상적인 용서에 자신을 가두어 놓던 다혜가 조금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첫걸음을 떼지 않았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