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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기획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은 바로 <아르헨티나 단편집>. 보르헤스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의 작가들의 단편들을 소개하면서 작가는 물론 아르헨티나 문학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그의 의지와 애정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이 시리즈의 네 번재로 소개된 레오폴도 루고네스 역시 아르헨티나 출신이었으며, 심지어 이 책에서도 그의 단편이 중복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보르헤스의 욕심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첫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는 루고네스의 <이수르>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소금 기둥>에서 이미 소개된 작품이다. 왜 보르헤스가 이 작품을 중복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그 대답에 상관없이 어쨌든 이미 같은 시리즈를 통하여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불편한 대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래 이 시리즈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데, 그러한 상황에서 똑같은 작품을 중복으로 만나게 된다면 그 아쉬움을 지우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전에 읽었을 때에는 침팬지를 훈련시켜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려는 그 내용이 환상적으로 느껴졌지만,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고 난 이후에 이 작품을 다시금 만난 지금 시점에서는 환상이 걷히고, 인간의 탐욕에 의한 비극으로 다가오게 된다. 마지막에 침팬지가 죽으면서 주인에게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장면은 침팬지가 아닌 그 주인의 탐욕에 의한 환청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마리아 에스테르 바스케스의 <선택받은 자> 역시 나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예수에 의하여 부활한 나사로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 이 시리즈의 <러시아 단편집>에서 소개된 레오니드 안드레예프의 <라자로>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에 의하여 부활한 순간 선택받았다는 기쁨이 예수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상황을 버림받은 것으로 생각하며 허망한 외침을 부르짖는 그의 모습은 안드레예프의 라자로와 마찬가지로 부활이 새로운 출발이 아닌 또 다른 고통의 연속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이 시리즈에서 소개된 것은 보르헤스가 글을 통한 동질성과 보편성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이 작가들을 좀더 많이 소개하기 위한 그의 의도는 이 책에서 여러 작가의 짧은 단편들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이 시리즈의 카프카를 소개하는 책에서도 아주 짧은 분량의 단편들이 꽤 많이 소개가 되었지만, <아르헨티나 단편집>은 여러 작가를 한 권의 책에 소개하고 있기에 이들에 대한 소개에 주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분량으로 작품성을 운운하는 것은 아니다. 페데리코 펠체르의 <체스 선생>만 보더라도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체스를 가르치는 선생의 존재에 대한 반전과 이야기 내내 풍기는 분위기는 환상 문학의 요건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마누엘 무히카 라이네스의 <역마차>는 생소한 아르헨티나의 환상 문학의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역마차를 타고 도주중인 한 여자의 불안한 심리와 마치 그 불안함으로 인하여 빚어낸 듯한 모호한 존재의 등장으로 인하여 환상 속의 긴장감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의 비현실적인 마지막 결말을 있음직한 이야기로 탈바꿈하고 있기에 환상이 현실과 완전한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기에 보르헤스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아르투로 칸셀라, 필라르 데 루사레타의 <운명은 어리석다>는 한 마부의 삶을 통하여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마차와의 사고로 인하여 더이상 마부 일을 할 수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20세기에 진입하는 모습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라든지 또한 열차와의 사고로 3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한 마부의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삶으로 세기의 변화와 전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에 꽤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작품으로 느끼게 된다.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점거당한 집>과 실비나 오캄포의 <물건들>이라는 작품은 물질 만능주의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현대인의 관점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평온한 곳이라 생각되었던 집이 명확하지 않은 존재의 침입과 점거로 인하여 안전하다고 생각한 집에서 더이상 존재할 수 없어 쫓겨나는 인물들의 모습이라든지 물건에 깃들어 있는 정신이 마냥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생각에 따라 그것이 인간을 지옥의 불기둥으로 던져버릴 수 있다는 환상적인 내용은 단순히 환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오늘날의 현실과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자본주의의 불합리한 맹점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르헨티나 단편집>은 사실 다양한 작가의 글을 한 권으로 담아내고 있기에 조금은 버거운 느낌도 들었다. 심지어 작품들이 생소한 아르헨티나의 문학이라는 점이 한 몫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동안 읽어온 보르헤스의 이 시리즈의 내용을 떠올려본다면 이 책에 대한 보르헤스의 의도가 눈에 선하여 외면하기란 쉽지가 않다. 몇 번 더 읽는다면 왜 이 작품들이 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지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전혀 접해보지 못하였던 아르헨티나의 문학이 환상에서 현실로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읽었을 때의 아쉬움을 달래볼 수 있을 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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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로 묶여 나온 아르헨티나의 단편 소설 모음 "아르헨티나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제목에 걸맞게 아르헨티나 향토색이 뚜렷한 소설도 꽤 있는 편이고, 그런데 비해서 반면에 정통 SF물스러운 이야기, 환상소설 다운 철학적인 문제 제시가 뚜렷한 이야기도 같이 나와서 신기하고 재밌어지는 맛을 더하는 책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서는 간략히 줄거리만 돌아 보겠습니다. 줄거리는 처음부터 결말까지 모두 소개해 드립니다. 혹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어서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싶은 것 발견하시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비슷한 이야기, 생각나는 영화, TV극 있으시면 그에 대해 덧글 달아 주셔도 즐거이 읽겠습니다. 1. 이수르 (레오폴도 루고네스) 원숭이에게 말을 가르치려는 이야기로, 레오폴도 루고네스 단편집인 바벨의 도서관 4, "소금기둥"에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2.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주인공은 한 시골마을의 교사인데, 한가롭게 시골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뿌리는 기계가 눈에 안보이게 된 것을 시작으로 마을에 역사상 가장 큰 소동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시작 합니다. 물뿌리는 기계 주인이 이후, 초등학교 교과서를 하나씩 빌려달라고 하더니, 중학교 교과서와 신문을 빌려달라고도 합니다. 주인공은 그 사람이 책을 볼 사람이 아니라서 의아하게 생각 합니다. 그러다 주인공은 어떤 손님이 그 사람을 찾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알고보니 그 손님은 외계인으로 고향 행성과 다른 건조한 지구 공기를 견디지 못해 물뿌리는 기계가 필요했고 외계인이 지구의 문명을 알기 위해 책들을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외계인은 지구인들이 핵전쟁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인공은 외계인에게 새로운 지식을 얻고 문명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으려 하는데, 아쉽게도 외계인은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3. 운명은 어리석다 (아르투로 칸셀라 필라르 데 루사레타) 주인공은 구닥다리 영감으로 마차를 몰다가 구식 우마차와 충돌해서 다쳐서 정신을 잃었다가 한쪽 다리를 절게 된 사람입니다. 그 후 20세기가 시작되고 주인공은 시대에 뒤쳐진 마부가 되는데, 30년 후 전차와 부딛히는 사고로 정신을 잃게 됩니다. 주인공은 그러자 30년전 사고에서 정신을 잃은 순간과 겹쳐지면서 마치 30년전 정신을 잃은 후 한 순간에 30년 세월이 지나가고 깨어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나머지 한 쪽 다리도 절게 되는데, 주인공은 나중에 이것이 1890년 혁명 당시 총알을 겨우 피했던 운명이 다시 찾아 온 것 같다고 말합니다. 4. 점거당한 집 (훌리오 코르타사르) 주인공은 아내와 함께 큰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어느날 알 수 없는 존재인 "그들"이 집의 한쪽을 차지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구역을 버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만 살자고 합니다. 날이 갈 수록 "그들"은 집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 간다고 주인공과 아내는 느낍니다. 마침내 "그들"이 집 전체를 차지했다고 느끼게 되자, 주인공은 집을 버리고 아내와 함께 나오고 열쇠를 버립니다. 5. 역마차 (마누엘 무히카 라이네스) 주인공은 역마차를 타고 대평원을 가로질러 길고 피곤한 여행을 지긋지긋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여행 묘사 사이에 주인공의 사연이 밝혀지는데, 주인공은 자신의 언니를 암살하고 그 유산을 받아 부자가 되어 대도시로 떠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그러다 문득 언니의 유령이 역마차에 탔다고 생각하는데, 그 순간 마차 사고로 주인공은 정신을 잃습니다. 그후, 주인공은 평원에 남고, 이제 주인공인척 하는 언니의 유령이 대신 역마차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 이것은 언니의 유령이 나타나 주인공과 영혼을 바꿔치기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주인공이 죄책감 때문에 정신병을 얻어 정신을 잃은 순간 발작해서 주인공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어버리고 자신이 언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6. 물건들 (실비나 오캄포) 주인공 카밀라 에르스키는 갖고 있는 물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람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잃어버렸던 팔찌하나를 도무지 찾을 수 없던 곳에서 찾게 됩니다. 그 순간주인공은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 갖고자 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집착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카밀라 에르스키는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 결국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7. 체스 선생 (페데리코 펠체르) 주인공은 어느 마을에서 한 사람을 만나 체스를 배우게 됩니다. 주인공은 체스 실력이 점점 늡니다. 그 사람은 주인공에게 정식으로 체스를 겨루자고 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꼭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도전에 응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꼼짝할 수 없는 수에 걸려 패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상대방이 누구인지 묻자 상대방은 "신(神)"이라고 대답합니다. 8.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마누엘 페이로우) 주인공은 어느날 한 사람을 발견하는데,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다른 시간대에 있는 듯한 모습도 발견합니다. 주인공은 그 사람의 여러 모습을 어떤 조건에서는 항상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이러한 현상을 이용해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찾아 갑니다. 하지만 미친 소리 취급을 당하고, 이후로 그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 9. 선택 받은 자 (마리아 에스테르 바스케스) 주인공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여러 상황을 묘사합니다. 그러다가 주인공이 굉장히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알고 있고 긴 시간 세계 각지를 돌아 다닌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죽었다가 깨어난 경험이 있다는 것도 나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인생에 매우 깊은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나옵니다. 주인공은 죽지 않는 존재인듯 합니다. 마침내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죽었다 깨어난 사연을 이야기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성경에 등장하는 "나사로"로, 죽었을 때 예수가 찾아와 다시 살아나게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마지막에, 주인공은 "빛의 왕이여! 도대체 왜 나를 선택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해서는 이렇게 영원히 계속 남아 있게 했냐"고 알 수 없어 하며 울부짖습니다.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는 50년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정통 SF물 입니다. 생생하기 그지 없는 토속적인 풍경 묘사가 현대적이고 날카로운 SF물로 연결될 것을 숨기고 있어서 의외의 전개가 매우 즐겁게 보이고, 그러면서도 앞뒤 이야기가 잘 맞아들게 세세한 묘사를 숨긴 것들이 적중해서 간단한 내용이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운명은 어리석다"와 "역마차"는 시간을 초월하고, 의식이나 자아 개념을 초월하는 모습을 그럴듯한 상황을 정해서 제시해 주는 철학적인 상황이 그럴듯한 것이었습니다. "운명은 어리석다"는 20세기 산업사회의 변화를 묘사하는 활력에 개성 넘치는 유머 감각이 매우 멋졌고, "역마차"는 그에 비해서는 약간 싱겁게 서술되어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평원을 가로지르는 역마차 여행을 소재로 도입한 것이 이야기에 잘 맞고 향토색도 와닿았습니다. "선택 받은 자"는 이제는 SF물의 한 부류로 잡아도 될만한 성경 속의 거창한 이야기를 생생하고 현실적인 이야기에 결합해서 신학적이거나, 인생론적인 의문을 제시하는 이야기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의 효과가 극대화 되는 수법대로, 이야기가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결론으로 가는 이야기인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이 수수께끼 처럼 시작했다가 점차 차근차근 자연스럽게 장중한 신학적인 결론으로 몰아 가는 것이 솜씨가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훨씬 먼저 나온 소설이지만 아서 클라크의 "별"의 이야기 구조도 생각나고, 영화 "하이랜더"도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결론도,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더 와닿을 수 있도록, "도대체 세상에 왜 인간이 이렇게 살아가게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의 절박함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대체로 우화적인 이야기나, 하나의 특이한 상황만을 제시하는 짧은 이야기들인데, 그 중에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듀나의 소설 "얼어붙은 삶"과 상당히 비슷한 소재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소재만 제시하고 그냥 꿈처럼 끝내고마는 이 이야기에 비해, 듀나의 "얼어붙은 삶"은 훨씬 극적이고 상세하게 뒷 이야기도 주욱 묘사하고, 더 장중하게 결말까지 선명히 짓고 있어서 더 재밌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 2012/08/17에 작성했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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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보르헤스는 자신이 꾸리는 선집의 마지막 권으로 자국의 작가들을 포함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몇 가지 분명한 이유 때문에’ 편파적인 시각으로 골랐다고 하는데, 그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못내 궁금하다. (네이버에 바다출판사 블로그가 있던데, 확 물어버릴까...) 남미 작가들 중에서도, 아르헨티나로 특정 지은 작가 열 명을 골라서 묶어 놓았는데, 나의 구미에 썩 들아맞는 편은 아니다. 그저 보르헤스가 자국의 작가들에 보내는 일종의 애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우주적인 비범함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보르헤스이지만 아르헨티나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 수 없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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