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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유독 시를 홀대했다. 사춘기 때 문학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고, 문학소년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그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춘기가 영원하지 않듯 시도 사춘기가 떠날 때 같이 떠나보냈던 것 같다.
게다가 알만한 소설가들도 그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전향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역시 시는 인생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인가 보다고 멋대로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시인이 그런 시구도 읊지 않았던가, 시 한 편이 300원이라고. 하찮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다시 생기는 것도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최근 내가 시인에 관한 책을 읽은 것만 해도 몇 권은 된다. 이 책도 어떤 면에선 시인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구순이 넘었는데 평생 시를 써 왔고 그때마다 썼던 서문을 모은 책이다. 얼마나 열심히 시를 썼으면 서문만을 모아 책을 냈을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나의 저 시에 대한 하찮다는 생각이 부끄러웠다.
시인은 시집만 38권, 산문과 편저가 5권, 공저를 5권 냈다. 그는 최근에도 시집을 냈다. 시인도 이렇게 자신이 써온 서문만으로 책을 내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인이라 그럴까? 아니면 살아 온 연륜 때문일까? 서문들인데도 아폴리즘 같으면서도 상당히 서정적이다. 글이 너무 좋아선지 아니면 시인의 구순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것인지 어느 순간 계속 밑줄을 긋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누구는 워낙에 많은 서문을 써 온 터라 한 권의 자서전을 보는 것 같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그 보단 왠지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는가에 대해 여기저기에 조금씩 흘려 놓은 것도 같다.
시인은 먼저 첫 시집 <산토끼> 서문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는 아니라고 했다. 사람 때문에 시를 희생할 수는 있어도 시 때문에 사람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없고 시만 있는 고독은 시와 함께 그 고독도 싫고, 그 고독도 시도 사람이 있는 고독이고 사람이 있는 시여야만 한다며 철학을 밝힌다. 과연 그렇다 싶다. 그 글이 아무리 명문이라 한들 사람 보다 앞서지 않는다. 읽어 줄 사람 있고 글이 있는 거지 글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글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볼 때 저자의 말은 새겨 둘만 하다.
<자기>라는 일곱 번째 시집 후기에선 이렇게 썼다. 살수록 허해지는 시간에 나의 시를 쓰며 남의 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읽는 일은 시에게서 버림받지 않으려는 일이다. 시에게서 버림받는 일 그 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니. 나에게서 시를 빼앗는 일 그 보다 더 큰 재앙이 어디 있겠니. 시야, 너는 참 고맙다. 너는 하늘이 만들어준 내 인생의 날개다. 너는 내 어머니가 만들어준 영원한 양식(37p)이라고 했다. 부지런히 쓰기 위해선 부지런히 읽어야 하는 것은 시도 예외는 아니다.
문득 이 구절을 읽는데 마음이 싸해지더라. 나는 내가 시를 버린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시가 나를 버린 거다. 지금이라도 끊임없이 찬미해 주고 사랑해 주면 시도 나를 사랑해 줄까? 하지만 그것이 어디 시만이랴.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내 인생의 날개며, 영원한 양식이라며 찬사를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도 나를 버리지 않는다.
시인은 사랑꾼이다. 시인은 평생을 두고 사랑에 열중하며, 시에 있어서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아름답고 했다(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시인의 사랑’ 서문에서). 그러면서 <일요일에 아름다운 여자> 후기에선, 시인은 편한 길만 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길도 다녀 봐야 시에 탄력이 생긴다고 했다. 시는 재사(才思)의 기술로서가 아니라 숙명적으로 떠돌며 얻어지는 마음의 도록(圖錄)이라고 했다.
또한 시인은 자연과 하나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사람이지만 악착같이 시를 써서 곤충이 될 거다 풀밭에서 찌르르 우는 곤충이 될 거다 -‘곤충기’에서 ...... 나를 확대하다 보면 어디서나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이 세상엔 내가 없다는 경지까지 축소해보자. 그때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곤충은 정말 희귀한 생존인 것이다(<개미와 베짱이>후기 61p).
유서를 쓰듯 쓴 시. 며칠을 살자고 울다가 떠난 매미처럼 벗어놓은 껍질이 이 시집이다. 그 껍질을 들고 매미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도 이 시집에 포함된 한 편의 시(하늘에 있는 섬 서문)라고 했다. 시란 이렇게 하찮은 것에 마음을 두고, 끊임없이 무위자연해지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그렇다면 시인의 마음은 어때야 할까? 도시의 높은 빌딩에서 악수를 하고 나오는 젊은 비즈니스맨도 알고 보면 불청객이고 외딴섬 풀밭에 앉아 땀을 씻는 불청객이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처럼 낯설다. 그런 낮으로 호박꽃을 본다. “호박꽃도 꽃이냐” 얼마나 섭섭한 말인가. 그래도 오늘 아침 호박꽃은 명랑하다. 외로운 데서 얻은 아름다움. 나는 그것으로 시를 썼다. 시집<섬마다 그리움이> 후기에 나오는 말이다. ... 남들은 모른다. 시심을 먹고사는 시인의 마음을 모른다. 조금은 가난하게 조금은 외롭게 조금은 춥게 살아야 시심이 생기는 시인의 마음을 모른다(‘거문도’ 후기)고 했다. 이 외로움이 아니면 하찮아 그냥 지나쳐 버릴 것도 다시보고 새롭게 보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시심에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시를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인가 서른여섯 번째 시집 <섬 사람들>에서, 정월 초하루 0시0분, 보신각종이 울리는 순간 어린 학생처럼 일기장을 꺼내 무엇인가 쓰고 싶다. 앞으로 365일, 이 많은 시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를 쓰겠다는 다짐. ...... 시 때문에 내가 살아나는 것이다. 시는 생존의 기록, 나를 만나게 하는 기록, 그것이 시를 쓰는 재미라고 썼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했다. 삶의 질곡까지 기쁨으로 맞아들이는 시가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시인은 평생 시와 함께 살아보고 이런 말을 남긴다.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나보다 이런 결말에 결론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거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90이 되어도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과 셋째 밥 먹듯이 시를 써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제정신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 그 사람이 시를 쓰며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믿지만 그렇게 살라는 강요는 아니다 시인은 언제나 부족한 자리에서 만족해왔으니까(‘무연고’ 서문에서)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으며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는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과연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외로움과 고독을 발견했고 그것을 천명으로 받아들이며 시를 썼겠구나 싶다. 그리고 저 문장을 만났을 때 뭔가 쓸쓸하지만 꽉 차 있고, 꽉 차 있지만 쓸쓸했다. 과연 뭔가에 뜻을 품은 사람은 저래야겠구나 싶다.
스물다섯이 되면 어떻게 사나 싶은 때가 있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너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자신은 빨리 늙고 싶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는 나 보다 3살 위였을 뿐이다. 생각해 봤더니 그때 내가 정말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나이든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스물다섯 그 나이 보다 훨씬 많은 인생을 살고 있다. 아이러니 한 건, 젊었을 때는 중년을 감히 가늠하지 못했다. 젊음이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이든 나를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덧 중년이 되고 보니 노년이 멀지 않다는 생각을 든다. 이 책은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상적인 노년의 삶을 보는 것도 같다. 노년은 인생의 저주가 아니다. 노년을 감사하게 살면 그건 오히려 선물이다. 시를 사랑해야지, 시인처럼 살아야지 싶다. 고독을 응시하며 순간순간 치밀어 오를지도 모르는 노욕을 지그시 누르며 시인처럼 늙어야지 한다.
덧붙이자면, 시인이 처음 시집을 내기 시작한 건 1955년부터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어도 우리가 시인의 책을 접할 수 있는 건 반도 채되지 않는다. 이 기회에 절판된 책들이 다시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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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한테 “너도 미쳐라”라는 말을 듣고 싶다 [리뷰] 『시와 살다 (이생진 구순 특별 서문집)』(작가정신, 2018. 11.20)
고양이를 가만히 보자니 시인과 닮았다. 고양이는 어미 품을 떠나고부터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간다. 망중하게 앉아 먼 곳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시간이 생의 대부분이다. 인간은 행여 심심할까봐 온갖 장난감을 눈앞에 대보지만 몇 분안가 흥미를 보이던 고양이는 고독 속으로 떠나버린다. 『시와 살다』의 시인 이생진은 섬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고독하려는’ 시인이다. 고독한 시인이 되고 싶어 지금도 고뇌하는 시인. 그건 이생진 시인의 생애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시집만 38권. 산문집과 편저가 5권. 사진작가 혹은 화가와의 공저가 5권. 모두 48권을 펴낸 이생진 시인은 그의 모든 삶을 책에 적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 순간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이 담긴 책은 그의 자서전이 되었다. 나이 아흔에 가까운 시간동안 쉴 새 없이 시간과 함께 달렸다. 그 중 최근작인『시와 살다』는 그가 쓴 모든 책의 서문과 후기가 짤막하게 소개된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 삶에 대한 철학이 담긴 시집들
시인은 아버지로부터 시집을 선물 받고 성인이 된 어느 날 시집의 내용을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살아가며 깨우친 삶의 철학을 책 한 권마다 담았다.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쓸 적에 약혼을 했다. 희한하게도 이후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시집에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언급한 내용은 주로 ‘시란 무엇인가.’와 ‘고독 하는 법’이었다. 세 번째 시집 때인 1957년 11월 말 시인은 불안해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편저를 쓸 때인 1962년 12월 시인은 예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도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아야 하느냐”고, 더욱이 “인생은 자살이라도 해서 예술을 키워야 하느냐”고,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 했다. 천재의 생애는 거북처럼 길어야 하고 건강은 동백 잎처럼 겨울에도 윤이 있으라 했다…….’
두 번째 편저를 쓸 때인 1963년 11월 시인은 죽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남겼다. 일곱 번째 시집을 쓸 때인 1975년 2월 시인은 시 쓰기에 환멸을 느꼈던 듯하다. 열세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풀벌레로부터 시를 배우며 다시금 시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자유로워야 하는 예술가에 대한 철학이 담겼으며 특히 자신을 벌레 출신이라 비유하다가도 고독에 대한 본능이 오염되는 것을 아쉬워했다.
열여덟 번째 시집을 쓰던 1995년 시인은 호주 바다, 대마도, 사쿠라지마, 사해, 제주도, 거문도, 우도, 백령도 등 거의 모든 섬과 해안을 떠돌았다. 열아홉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다시 한 번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시를 알기 위해 시끄러운 소리를 질색하면서 피해 다녔다. 또 시인은 이 시기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눈물을 감당하기 어려워 코까지 거들어주던 슬픔……. 웃음은 표정의 끝이요 울음은 표정의 시작이다. 울고 싶거든 실컷 울어라.’ 그러던 1999년 시인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고, 누군가 자신의 집을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시를 엮는다. 스물여섯 번째 시집을 낼 때인 2003년 6월 시인은 고독에 대한 철학을 깨우치기 시작한다.
고독한 화가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서
‘고독이 얼마나 많은 시를 불러오는지, 외딴섬을 혼자 걸어본 사람이면 알 거다……. 나는 섬에 발붙이며 고독을 알았고 고독을 알면서 시를 시작했다.’
스물일곱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떠남의 철학을 깨우치고, 스물여덟 번째 시집에서는 도시와 섬을 오가며 변해가는 세상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사람이 그리워 인사동에 시 읽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부분은 오래도록 고독 속에서 시를 쓰던 시인이 왜 일흔을 넘겨서야 사람이 그리워 사람의 공간으로 나왔는지에 대한 독특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도시를 떠돌다가도 시인은 마음이 허전해지면 다시금 섬으로 떠나가곤 했다.
서른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빈센트 반 고흐를 기렸다. 당시 시인의 나이는 여든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삶에 회의적이었다.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열정이 샘솟던 순간 시인은 누군가의 삶에 흠뻑 젖고 싶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흐라고 했다. 시인이 생각한 고흐는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예술가다. 또 책을 읽으며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며 그림을 그리고,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으며, 걸어 다니면서도 그림을 그린 고독한 화가였다. 예술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고흐로부터 ‘너도 미쳐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적었다.
서른여덟 번째 시집은 2018년 11월 20일로 비교적 최근에 발행됐다. 시인 나이 거의 아흔이 되었을 때다. 시인은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철이 드는 것을 느낀다고 책에 적었다.
고독을 승화해 예술을 만드는 이들 사람들은 “호박꽃도 꽃이냐.”며 비웃는다. 그러나 이생진 시인은 이 꽃으로부터 시를 알고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다시 태어나도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자신을 외면할 적에 시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인은 고독을 일부러 찾아 섬을 떠돌았다. 아마 천 개는 넘게 찾아다녔을 것이다. 시인의 작품『먼 섬에 가고 싶다』서문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먼 섬 마라도는 가본 사람만이 다시 가고 싶은 섬이다.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한없이 편한 섬이지만 하루를 못 참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먼 훗날 추억의 일번지로 꼽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시인 말대로 고독은 삶에 중요한 면이다. 서로를 싫어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다. 이들은 토닥이는 와중에도 서로를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홀로가 될 고독과 외로움이 다툼과 미움보다 더 두려워서다. 그만큼 고독은 인간사에 아이러니를 남기기도 한다. 나는 ‘고독’하면 부산이 떠오른다. 교수 발표를 보러 전날 밤 미리 도착해 아무도 없는 학교 기숙사에서 숙박을 했었다. 추웠고 대학가였지만 사람이 없어 가게들은 장사를 하지 않아 컴컴했다. 배가 고파 근처를 돌다가 허름한 치킨 집 하나를 겨우 찾았다. 내부 천장이 거의 내 키 높이로 낮았다. 테이블은 두 개 놓여 있었다. 그런데 치킨은 너무도 맛있었다. 아마 허전했던 마음에 따스함이 채워져 강렬한 기억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직장인들이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닌 포장마차의 어묵국물로 마음에 위로를 받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아직도 부산하면 스산했던 겨울밤과 치킨집이 생각난다. 자갈치 시장도 서면도 해운대도 아닌 스산했던 대학로의 골목이 기억 속에 강하다. 호수 가장자리에 낙엽이 축축하게 젖은 땅을 밟다가 벤치에 앉았을 때 느껴지는 그러한 고독들은 외로움이 아니다. 삶에는 행복 가운데서도 눈물 나는 상황이 곳곳에 블랙홀처럼 내재해 있다. 불과 1분 전에 행복으로 가슴이 부풀었다가도 몇 발자국 안가 심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예술가란 이러한 감정을 고독 속에서 익히는 자들이다. 감정의 저변을 훑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웬만해선 그런 고통스런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 감정을 지배하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감정을 잘못 건드려 자칫 어떤 것으로도 승화시키지 못할 경우 잘못된 방향으로 폭발할 수가 있다. 예술가는 감정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 더 깊은 내면으로 파고드는 이들이다. 그리고 승화시킨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 간접적으로 세상을 느끼게 한다. 특히 시인은 그러한 감정을 함축한 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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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버려도 시 쓰는 사람에게는 시가 있어 좋다. 그것만으로도 시인의 현실은 한 가닥 해결이 되는 셈이다. 살수록 허해지는 시간에 나의 시를 쓰며 나의 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읽는 일은 시에게서 버림받지 않으려는 일이다. 시에게서 버림받는 일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어디 있겠니. 시야, 너는 참 고맙다. 너는 하늘이 마들어준 내 평생의 날개다. 너는 내 어머니가 만들어준 영원한 양식이다. (p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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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이라는 나이가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데, 이생진 시인께서 이미
구순을 맞이하셨네요.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시집으로 만났던 이생진 시인님의 시를 통해서 제주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게 얹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시인의 삶이나 주제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섬 시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시를 통해 많은
섬을 소개해 준 이생진 시인님의 구순을 축하드리며, 이 책을 맞이했습니다.
첫번째
시집인 산토끼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여섯 번째 시집인 바다에 오는
이유를 통해, 그가 시를 쓰고, 왜 바다에 오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왜 시를 통해서 섬을 노래하고, 자연을 이야기하는지 또한 말입니다. 그렇게 많은 함축적인 글이 아니지만, 그의 시는 무언가 가슴을 청량하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아마도, 구순의 필력과 감성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서 글이 그렇게 완성되어서 우리들에게 시로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시인의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듯 엮은 이 문집은 정말 그 어느 책과는 또 다른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언젠가
나도 책을 출간하고, 몇 권의 책을 내게 된다면, 구순에
접어든 어느 날, 삶을 되돌아보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 이러한
문집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의 시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휘감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리라. 그리고, 구순이라는 나이까지 시를
놓지 않고,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에게 존경의 마음이리라.
서른여덟 번째
시집인 <무연고>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만나게
되는 다음의 글이 아마도 이 책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나 보다 <하략>
이
책을 통해 시인의 삶과 그리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정말 가슴에서 불러온 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좋은 시로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들의 곁에 계신 시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다시 드리고 싶다.
추워지는 겨울, 어느 밤에 골목길에 들려오는 정다운 ‘찹쌀떡, 메밀묵’을 아련히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아날로그 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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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시인'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이생진 시인이 '구순'을 기념하여 그간 써냈던 시집들의 서문을 모은 서문집을 펴냈다.1955년부터 시작된 그의 시 인생을 이 서문들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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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맞은 시인에게 시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니다. 기쁠때나 어려울때나 즐거울때나 슬플때도 언제나 시인 곁에서 조용히 삶의 모습을 비추는 존재가 아니었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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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생진의 작품으로썬 산문집 이후에 접한 책 " 시와 살다 " 산문집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시절 수험 공부를 위해 시공부했던 그때, 그 추억 이후로 어른이 되어서 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였다. 저자 이생진은 195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보를 망라한 책 " 시와 살다 " 구순 특별 서문집을 출판하게 되었고 그의 삶과 인생이 책 한권에 담겨져 있게 만들었다. 1955년 첫 시집 " 산토끼 "를 펴내기 시작하여 시집 38편, 시선집 3편, 시화집 4편, 산문집 2편의 내용이나 생각을 책 한권으로 흝어볼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하게 만들었다. 각 책마다 서문이나 후기가 나와 있어 비록 저자의 작품을 읽지 못해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다양한 시집을 만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 그러나 여분의 시집을 나와 같은 심정으로 시를 이야기하고 서로 아껴오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나는 이 시집을 그들의 인정처럼 따뜻이 간직하겠다. p34" 저자 이생진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 볼 수 있는 문장이였다. 과연,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작품을 쓰면서 베풂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것은 나를 보기 위한 나만의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 고맙다는 생각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p111" 기회가 된다면 나의 생각과 느낌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이생진의 삶처럼, 글을 즐겨하며 실제로 글을 작성해보면서 내 삶을 뒤돌아 보며 살펴보고 싶어졌다. 책 속에서는 그의 생각과 느낌이 곳곳에 있으며 과거의 이생진, 현재의 이생진, 그리고 미래의 이생진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많은 작품을 출판하면서 베스트셀러 10위권에까지 올라가게한 시집도 있으며 스테디셀러에도 있었던 시집도 있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 그가 말했던 문장들이 생각이 난다. 그의 생각이.. " 책과 콩나무 카페"를 통해 작가정신에서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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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맞은 시인에게 시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니다. 기쁠때나 어려울때나 즐거울때나 슬플때도 언제나 시인 곁에서 조용히 삶의 모습을 비추는 존재가 아니었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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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셨다면 시인보다 두 살이 많은 상태로 나의 곁에 존재하고 계실 아버지 였지만 이 책 "시와 살다"는 이생진 시인의 구순을 기념하는 특별 서문집으로 1955년 첫시집 70~80년대 태생의 사람들에게는 100세 라는 수명이 적절한 수명이라고 한다. 그의 시에 드러나는 고독감은 어쩌면 섬여행이 가져다 준 일상의 모습이겠지만 시인으로 시와 살았던 시인의 구순을 기념하는 서문집을 마주하며 술과 살았던 내 아버지의 기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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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시인’이라는 생소한 타이틀에 이끌려 이생진 선생님의 산문집과 함께 서문집까지 읽게 되었다. 섬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를 대표하는 이름까지 섬시인일까?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보면 90년평생 전국팔도의 섬이라는 섬은 다 찾아다니실 정도로 다양한 섬을 만나신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섬이야기도 등장하였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써주셔서 감동했다. 이것만 봐도 선생님이 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름 안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선생님의 시를 보고 있으면 나 스스로가 겸손해지는것 같아 좋다. 이 서문집은 구순 특별 서문집이라는데 구순까지 정정하신걸 보니 내마음까지 다 훈훈해진다. 섬과 바다를 사랑하며 자연과 친하게 지내오신 삶이 건강의 비결일까? 나도 삭막한 도시생활보단 자연친화적인 삶을 찬양하기에 이생진 선생님의 건강은 내 미래의 행복과도 직결된다. 어쨌든 자연친화적인 삶을 지향하시는 영향탓일까 선생님의 시는 화려하지 않고 소소하고 간결하다. 요즘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만날 수 있었다.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섬을 찾아다니는 시인. 고독을 찾아다닌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 것 같다. 고독은 각계각층의 문학인, 예술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중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고독을 찾아다니는 이생진 시인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참된 문학인, 진정한 나그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