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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근현대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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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 십 수 년 살았어도 이슬람에 대해서도 역사에 대해서도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고서도 십 수 년 이곳의 삶을 경험했으니 사우디에 대해 어지간히 안다고 착각하고 산다. 이제 떠날 날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이슬람’과 ‘아랍’과 ‘중동’의 차이를 어렴풋하게나마 구분하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동아일보 이세형 기자의 <중동 라이벌리즘>에서는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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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 십 수 년 살았어도 이슬람에 대해서도 역사에 대해서도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고서도 십 수 년 이곳의 삶을 경험했으니 사우디에 대해 어지간히 안다고 착각하고 산다. 이제 떠날 날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이슬람’과 ‘아랍’과 ‘중동’의 차이를 어렴풋하게나마 구분하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동아일보 이세형 기자의 <중동 라이벌리즘>에서는 중동 정세를 다섯 가지 대결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사우디와 이란의 대결구도가 아주 흥미로운데, 현 정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그것으로 역사적 배경을 포함한 전체 구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는 그런대로 자료도 있고 현지 언론에 가끔 역사적 배경이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우디와 다른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국가마다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배경에 대해서는 확인할 만한 자료를 얻기도 어렵고, 직접 그 나라 사람들에게 물어도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엔 배경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듣자하니 이라크와 요르단 왕실이 한 가문이라고도 하고,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가 요르단 왕실에는 유달리 깍듯하고, 바레인과 카타르가 아랍에미리트의 일원이 될 뻔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란과 전쟁을 치른 이라크가 이란의 숙적인 사우디와도 전쟁을 치렀고, 아랍국가의 일원인 레바논이 헌법에 따라 기독교도를 대통령으로 뽑는다. 무슬림형제단과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한 뿌리에서 분화된 조직이라는데 같은 나라에서 어떤 때는 환영하고 어떤 때는 추방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하기는 했어도 어디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었다. 물론 그 분야 연구자들이 있을 것이니 찾으면 어딘가 답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절박할 일은 아니어서 그저 궁금함과 아쉬움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에 나름대로 알고 있는 중동에 대한 이해를 정리할 겸해서 집중적으로 중동 관련 책을 읽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의 헌법인 통치기본법을 읽고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의 헌법과 비교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늘 문화방송 박정욱 피디의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읽기에 이르렀다. 이미 방송을 통해 중동에 대한 저자의 전문적인 식견을 접했던 터라서 어느 정도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서관 장서를 빌려보다가 곧 덮고 그 자리에서 책을 주문했다. 읽다 보니 눈으로 읽어서 될 책이 아니었다. 밑줄도 긋고 궁금증이나 생각을 메모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근무하고 있지만 알고 있는 건 업무와 관련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주제넘은 일일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중동 근현대사에 대한 책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권할 만하다. 교과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학술서적에 들어갈 내용을 일반교양서의 문장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슬람의 탄생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을 아우르는, 그리고 무슬림형제단으로부터 비롯되고 분화된 테러조직을 포함해 지금 중동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는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읽고 이해하는 데도 적지 않은 품이  들었는데 이 책을 쓰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었을까. 뒷장을 들쳐보니 무려 12쇄다. 5백 쪽에 가까운, 딱딱하기 그지없는 주제를 다룬 책으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럴만하다.

 

이 책은 중동의 현재 상황을 야기한 역사적 배경과 그 진행 과정을 21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그 중 내가 특히 관심을 두고 읽었던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내용을 정리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주의, 이슬람국가

 

저자는 “이슬람 근본주의(Islamic Fundamentalism)와 이슬람주의(Islamism)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국가운영 뿐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과 사고방식까지 꾸란과 하디스를 따라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만들어 국가 통치 원리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이념인데, 그래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속주의 세력이나 외세에 대한 무력투쟁도 정당하게 여긴다. 이슬람주의는 단순한 종교적 광신이 아니며, 그들에게 이슬람주의는 실패한 근대화 모델을 대신할 대안이다.” 나는 저자의 설명과 반대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슬람주의의 극단적인 변형쯤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단어만으로 보면 그런 느낌이지 않은가. (무지를 변명하기 위한 소심한 반항쯤으로 여기시라.)

 

저자는 종교 공동체인 움마가 존재했고 이후 종교가 주변 지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국가가 탄생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한 몸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이슬람 국가의 주권은 알라에게 있으며 꾸란으로 국가 운영의 기틀을 삼았기 때문에 이슬람국가에서는 근대유럽에서 등장한 인민 주권 개념이 들어서기 어려웠고, 그래서 20세기에 도입된 민주주의와 공화제가 중동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고 설명을 이어간다. 저자의 이런 설명은 최근 비교해가며 읽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헌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우디는 통치기본법 전체가 이슬람 수호를 위해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슬람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조문이 많다. 아랍에미리트는 이슬람을 ‘연방의 공식종교’이자 이슬람의 가르침을 ‘입법의 주요 원천’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카타르 또한 이슬람이 국교이고 모든 법률은 이슬람의 가르침인 샤리아에서 출발한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정도가 딱 그만큼 차이난다.

 

종교를 앞세운 정치투쟁

 

그동안 종교는 정치보다 힘이 세다고 생각해왔다.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은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을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이해해왔고, 그래서 해결이 요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포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종파간의 갈등이 종교적인 신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우디-이란 갈등의 명분으로 악용되었다는 것이니, 중동의 갈등은 실질적으로 종교 투쟁이 아닌 정치 투쟁인 셈이다. 비약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합의만 이룬다면 종교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16세기 일어난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는 주민들을 시아파로 강제 개종시킨다. 당시 페르시아에는 시아파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수니파가 더 많았다. 따라서 오스만제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사파비 왕조로서는 수니파 주민들이 수니파인 오스만제국의 편에 서지 않도록 내부결속이 필요했다. 게다가 사파비 왕조의 이스마일 1세는 당시 이슬람제국의 중심인 오스만제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 싶어 했고, 수니파로 있는 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스만제국이 수니파의 종주국이라면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의 종주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후 오스만제국에게 패배한 사파비 왕조는 추락한 권위를 회복하고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 수니파를 더욱 탄압한다.”

 

“사파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아프샤르 왕조는 사파비 왕조에 충성하는 세력을 제거할 뿐 아니라 수니파가 대부분인 이슬람 세계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서도 소수세력인 시아파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수니파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폭압정치를 일삼던 아프사르 왕조가 쫓겨나고 다시 시아파로 회귀한다.”

 

“이와 같이 이란이 시아파로 개종한 것이나 수니파에 우호적으로 돌아섰다가 다시 시아파로 회귀한 것 모두 오스만제국과 경쟁이나 이슬람 세계에서 패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다. 그러니 이란과 사우디의 갈등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아니다. 이란과 사우디의 정치적 갈등은 이란으로 대표되는 시아파와 사우디로 대표되는 수니파의 대결, 거슬러 올라가자면 오스만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정치적인 대결인 셈이다.”

 

페르시아제국에서 이란으로

 

사실 사우디에 부임하기 전까지 이란이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국가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지역적으로는 중동이지만 아랍국가와는 언어도 역사도 달랐다. 저자는 아랍과 이란은 무엇보다 정체성이 다르며 오랫동안 서로를 타자로 인식해왔다고 설명한다. 애초부터 서아시아 지역의 최강자는 페르시아였고, 아라비아 반도에 이슬람 세력이 크게 일어선 이후 200년 동안 아랍의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페르시아라는 정체성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서아시아 전역에서 이렇게 넓은 제국을 다스려본 경험은 페르시아가 유일해서 아랍 우마이야 왕조나 아바스 왕조가 페르시아를 지배할 때도 결국 역량 부족을 인정하고 페르시아 출신 관료를 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페르시아의 후신인 이란으로서는 그 자리에 들어선 사우드 왕가를 아랍의 맹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페르시아제국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영국은 현지 사령관 아이언사이드의 부관인 레자 칸을 페르시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철수한다.

 

“레자 칸은 페르시아의 수도 테헤란에 무혈입성하고 의회의 지지를 얻어 국왕의 자리에 오른다. 팔라비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1935년 국호를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꾼다. 이란 정부가 세속화 정책을 펼치자 시아파는 반정부 운동의 중심세력이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란 정부는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독일과는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에 따라 영국과 소련이 이란을 침공하지만 이란 국민들은 이란 정부에 등을 돌리고, 국왕은 망명하고, 그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다. 팔라비 왕가의 폭정에 시달린 이란 국민들은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반정부 혁명을 일으켜 팔라비 왕가를 축출한다. 그리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이슬람주의 공화정, 이슬람 법학자들이 국가 권력의 최상층에 존재하면서 통치하는 국가가 되었다. 종교가 사실상 국가기관이 된 것이다. 국민들 삶의 전반에도 이슬람 원리가 적용됐다.”

 

이슬람 종주국으로서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는 이슬람의 종주국답게 모든 체제가 꾸란과 하디스에 의해 운영된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통치 가문인 사우드 왕가에게 이슬람이란 그저 통치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1744년, 꾸란에 근거한 올바른 유일신교를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슬람 개혁운동의 지도자 와하브와 디리야를 벗어나 더 넓은 지역의 통치자가 되고 싶은 야심가 사우드가 만난다. 와하브는 사우드가 열정과 사명감이 큰 무리를 모을 수 있도록 종교적 이념과 명분을 제공하고 사우드는 와하브의 개혁운동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1902년, 파워게임에 밀려 쿠웨이트로 패퇴했던 사우드 가문은 라시드 가문이 지배하고 있는 리야드를 공격한다. 처음에는 라시드-오스만 연합군이 우세했지만 결국은 궤멸되고 사우드 가문에 계속 주변을 정복해간다.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오스만이 독일 편에 서자 영국은 사우드 가문과 샤리프 후세인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 오스만을 공격하도록 한다. 이후 사우드 가문은 샤리프 후세인을 물리치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다. 아라비아 반도의 지배자가 오스만에서 사우드 왕가로 교체된 것이다. 다른 아랍 국가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을 나누고 인위적으로 세운 것인데 반해 사우디는 스스로 영토를 정복해 국가를 세운 것이다.”

 

다른 국가는 타의에 의해 세워졌지만 자기들은 스스로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 사우디의 자부심이요 아랍의 맹주를 자임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사우디는 국가 수립 이후 최근 급격한 개방정책을 펼치기 전까지 일관되게 종교적 보수주의를 고수해 온 것은 아니다. 독립 이후 나름 개방화의 길을 걷다가 1979년 메카 점거사건 이후 급격하게 보수화한 것이다. 그런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메카 점거사건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에 의한 것이라면 왜 개방화를 가속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로 회귀한 것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차 세계대전 무렵 사우드 왕가가 라시드-오스만 연합군과 맞섰을 때 와하비즘을 따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이크완의 도움을 받는다. 사우드 왕가는 근본주의자가 아니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자신들의 결정에 반발해 이크완이 이라크를 공격하고 메디나의 이슬람 유적을 파괴하자 1929년 사빌라 전투에서 이크완을 궤멸시킨다. 이때 살아남은 이크완의 후예가 1979년 ‘사우드 왕가가 이슬람의 길을 벌이고 타락했다’고 비판하며 메카를 무력 점거하자 사우디 정부는 이를 진압한 후 와하비즘을 따르는 국민들의 비판이 확산될 경우 왕정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종교적 보수주의로 회귀한다.”

 

이슬람 큰집으로 대우받는 요르단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 대다수의 국가는 사우디에 기대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에 취업한 자국민들의 송금이 국가수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자국 상품을 사주는 큰손도 사우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 간에도 그렇고 정부 간에도 주종관계로 비칠만한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유독 요르단 왕실에 대해서만큼은 사우디 왕실이 지나치리만치 깍듯한 모습을 보여 의아했다. 왕가의 혈통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요르단 왕실과 사우디 왕실의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인 독일과 연합한 오스만제국을 해체하려 들자 오스만제국의 황제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성전을 벌이자는 메시지를 선포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영국은 메카를 다스리고 있던 하심 가문의 샤리프 후세인에게 손을 내민다. (맥마흔-후세인 서한) 하심 가문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와 그 남편 칼리파 알리의 후손, 즉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으로 아랍 사회에서 특별한 존경을 받아왔다. 샤리프 후세인은 영국에게 오스만제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대신 아랍독립왕국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 영국은 이를 수용했지만 아랍독립왕국의 범위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분할하는 별도의 비밀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이크스-피코 협약) 그 결과 영국은 이라크를 프랑스는 시리아를 차지하고 팔레스타인은 국제공동관리구역으로 남겨둔다. 영국은 동시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데 동의한다. (벨푸어 선언) 아랍 전 지역의 통치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샤리프 후세인은 아라비아 반도의 패권을 놓고 사우드 가문과 충돌하지만 궤멸 수준에 이를 만큼 타격을 입는다. 샤리프 후세인은 아랍독립왕국을 세우는데 동의한 영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강력하게 항의하는데, 이를 달래기 위해 영국은 샤리프 후세인의 둘째 아들 압둘라 후세인을 요르단 국왕으로 선포한다. 뒤이어 영국은 자기들에게 대항한 시아파 아랍인ㆍ수니파 아랍인ㆍ쿠르드인이 사는 지역을 묶어서 이라크왕국을 세우고 샤리프 후세인의 셋째 아들인 파이잘 후세인을 국왕으로 선포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요르단 왕실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말이겠다. 그건 그렇고, 괄호 안에 적어놓은 것은 영국이 주도한 사건인데, 그 결과로 오스만 영토가 시리아ㆍ요르단ㆍ레바논ㆍ이라크로 나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늘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여러 국가의 이익이 상충되는 세 사건이 영국 입맛에 맞도록 영국에 의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국가는 힘을 가져야 한다.

 

무슬림형제단에서 출발한 테러집단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기록을 공개한다고 했을 때 사우디 언론 대부분이 지나치리만치 촉각을 세우는 것이 낯설었다. 테러범 대다수가 사우디인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관련 보도에 지나치게 촉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것이 일부 국민의 일탈이 아니라 국민 정서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것이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무슬림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이슬람 가치와 충돌하는 일인 줄 알게 되었다. 9.11로 대표되는 이슬람 테러집단이 만들어진 계기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분화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하산 알 반나는 유럽보다 크게 뒤진 이집트의 현실에 개탄하면서 그 대안을 유럽식 근대화가 아닌 순수한 이슬람에서 찾으려 한다. 이집트가 뒤진 것이 서구 문물과 사상이 이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이슬람이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무슬림형제단을 세운다. 무슬림형제단은 온건한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이집트 왕정의 탄압과 대결하면서 점차 급진무장투쟁을 옹호하는 이슬람주의로 변한다. 1967년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벌인 6일 전쟁에서 패하자 후임인 사다트 대통령은 무슬림형제단을 회유한다. 무슬림형제단 소속 인물에게 고위 공직을 제안하고 헌법에 ‘샤리아는 입법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명시하기에 이른다. 사다트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큰 피해를 입히고 체면을 회복한 후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자 무슬림형제단은 사다트를 강력히 비판하고 급기야는 급진 이슬람주의 단체가 사다트를 암살한다. 후임인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을 강경하게 탄압한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이슬람주의 사상가를 받아들인 사우디는 이들이 제다에 있는 킹압둘아지즈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주선하는데, 이 학생들 중 하나가 오사마 빈라덴이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지하드(성전)에 참여하기 위해 이슬람주의자들이 아프간으로 몰려든다. 오사마 빈라덴은 이곳에서 전사를 키워내기 위한 훈련캠프를 세운다. 이 훈련캠프는 훗날 알카에다로 발전한다. 오사마 빈라덴은 아프간에서 시작된 지하드를 사우디나 이집트와 같은 주변 아랍국가에 적용하려 한다.”

 

“1990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 상황을 만회하고자 쿠웨이트를 침공한다. 사우드 왕가는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을 아랍 공화정이 아랍 왕정을 공격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라크의 다음 목표가 사우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사우디 정부는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자 이슬람주의 세력이 크게 반발한다. 이때 오사마 빈라덴은 알카에다를 투입해 이라크군을 물리치겠다고 제안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국에 파병을 요청한다. 전쟁은 미국과 사우디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만 이슬람주의 세력은 ‘이슬람 성지를 품은 땅에 십자군이 들어오도록 허락했다’며 비판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관점에서는 같은 무슬림인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미국이 진짜 적이기 때문이다. 알카에다를 양성하고 있던 오사마 빈라덴도 사우디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에 분노해 매섭게 성토하자 사우디 정부는 오사마 빈라덴의 국적을 박탈하고 계좌와 자산을 동결한 후 그를 가문에서 내쫓도록 종용한다.”

 

“1996년 알카에다는 미국에 대한 지하드를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소련이 아프간에서 물러나자 아프간은 내전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이 탈레반이 급성장한다. 탈레반은 1400년 전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던 방식대로 살아감으로써 그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아프간에 이슬람 원리를 극단적으로 적용한다. 알카에다는 2001년 9.11 테러를 저질러 3천 명이 죽고 6천 명 이상이 부상을 당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부만 폭격 이후 미국이 당한 최악의 공격이었으며 단일 테러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이다. 비행기를 공중 납치한 19명 가운데 15명이 사우디 출신의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였다.”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누가 이어야 하느냐를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나뉘었다. 혈족이 후계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 시아파의 주장이었고, 신에 대한 경건함을 지니고 무슬림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후계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 수니파의 주장이었다.

 

저자는 초기 무슬림들이 평등주의를 중시했다는 점으로 볼 때 무슬림 대다수가 혈통에 따른 권력 승계에 거부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그의 딸 파티마가 무함마드의 소유였던 파타크 오아시스의 소유권이 혈육인 자기에게 있다고 선언했지만 초대 칼리파인 아부바르크가 “알라의 예언자는 사유재산을 지니지 않았다”며 파티마의 주장을 일축하고 오아시스의 소유권을 모든 무슬림에게 돌린 사실을 서술한다.

 

사우디에서 십 수 년을 살아오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장례문화였다. 국왕이라도 사망한 다음날 장례를 치르고, 장식은커녕 그저 들것에 올려놓고 옷으로 둘둘 말아 운구하고, 땅에 묻고 난 다음 그저 돌멩이 몇 개로 눌러놓는 것이 전부였다. 상하가 분명하고 심지어 주종관계인데도 때로 엉뚱하다 싶을 만큼 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난감한 상황을 여러 번 맞기도 했다.

 

이슬람에 대해 알아갈수록 평등이 이들에게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닌 줄 이 책을 읽어가면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혈족 승계를 주장하는 시아파보다는 평등한 상태에서 믿음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수니파가 이슬람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수니파가 시아파에 비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는 세계 거의 유일한 실질적인 왕국으로 남아 혈족 승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YES마니아 : 로얄 b*****3 2022.01.1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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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왜 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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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2021.11.9~11.24>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은 늘 내전 상태다. 아니면 미국과 싸우고 있거나. 그러면서도 막연히 ‘아 중동은 종교 때문에 분열상태구나’라고 생각했을 뿐 각 나라의 건국 이야기나 중교의 깊은 면까지 알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신기하고 생소했던 중동에 관한 의문점이나 궁금했던 점을 이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그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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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2021.11.9~11.24>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은 늘 내전 상태다. 아니면 미국과 싸우고 있거나그러면서도 막연히 아 중동은 종교 때문에 분열상태구나라고 생각했을 뿐 각 나라의 건국 이야기나 중교의 깊은 면까지 알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신기하고 생소했던 중동에 관한 의문점이나 궁금했던 점을 이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그 광대한 중동사를 하나하나 열거해 설명해주기 보다 21가지 특징적인 사건이나 장면을 통해 중동사 전체의 큰 맥을 연결하고 있다. 그래서 중동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중동은 현재 왜 이런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중동 정세를 좋아하는 내게 이 책은 소금과 같은 책이었는데, 첫 장의 마호테트를 설명하는 부분부터 매료되었다. 코란, 헤지라의 뜻을 알게 되어 좋았고 초기 이슬람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줘서 이해하기 좋았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각 국의 건국이야기였는데, 본인들의 힘으로 건국한 터키나 사우디아라비아그리고 이스라엘과 외세의 세력의 개입으로 독립을 이룬 이라크 및 시리아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현재 상황이 달라서 자력으로 건국을 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연합군의 승리로 독립을 맞이하면서 극도의 혼란기를 겪었는데, 그나마 한민족이었다는 점 그리고 외세의 개입이 더 이상 없었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안정적인(물론 군사 쿠테타가 있었지만, 내전은 없었다는 점에서) 국가 운영을 이뤄지게 해주는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종교 및 민족 문제, 그리고 이권문제로 갈등 중인 중동(정확한 용어는 서남아시라고 저자가 말해주고 있다). 이 땅에 평화 오기를, 그래서 다양한 유적과 문화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t*****2 2021.11.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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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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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태동부터 오스만제국과  현대 이스라엘등장으로 인한 1~4차중동전쟁   9.11사태와 IS까지,역사속에 등장하는 주요장면들을  재미있게  서술해주셨네요어려웠던 셉터는 6  아라비아에서 불어오는 근본주의 열풍다른 파트에 비해 등장인물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렸습니다.편집에 10점을 못주는 이유가  지도첨부가  조금 부족한듯합니다.중동지방은 왕조변천이 심해서  국경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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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태동부터 오스만제국과  현대 이스라엘등장으로 인한 1~4차중동전쟁   9.11사태와 IS까지,


역사속에 등장하는 주요장면들을  재미있게  서술해주셨네요


어려웠던 셉터는 6  아라비아에서 불어오는 근본주의 열풍


다른 파트에 비해 등장인물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렸습니다.


편집에 10점을 못주는 이유가  지도첨부가  조금 부족한듯합니다.


중동지방은 왕조변천이 심해서  국경이  너무 차이가 나죠


페르시아제국부터  오스만제국까지  유럽대륙에도 한때 영토를 확장했던 시절도 있기때문에


지도자료가  많이  첨부되는게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길잡이라 되었을거라 봅니다


나머지 내용전개부분은 10점을 주고 싶네요


혹시나 개정판을 계획중이시면  지도 사진자료를 많이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g********7 2020.03.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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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부분은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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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카톨릭성경 올해는 개신교 성경을 읽고서 성경의배경과 깊이 연관된 중동의역사와 이슬람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포함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지도를 읽는다 세계5대종교 역사도감의 책을 구매해 봤다. 중동지역 지도 자체도 복잡한 만큼 역사 또한 매우 복잡해서 몇권의책으로 다 알수는 없겠지만 나름 대충 윤곽은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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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카톨릭성경 올해는 개신교 성경을 읽고서 성경의배경과 깊이 연관된 중동의역사와 이슬람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포함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지도를 읽는다 세계5대종교 역사도감의 책을 구매해 봤다.
중동지역 지도 자체도 복잡한 만큼 역사 또한 매우 복잡해서 몇권의책으로 다 알수는 없겠지만 나름 대충 윤곽은 익힐수 있었다. 이 책은 492쪽의 두꺼운편에 속하는 책이다. 수많은 인명과연대기등 다소 세계사 교과서 볼때 느낄수 있는 지루한 부분도 많았지만 흥미로운 주제 예로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게 봤었다. 전체적인 중동지역 역사와 나중에 이집트에 관한 책도 주문해 볼건데 다수의책들을 보며 퍼즐을 맞춰나가야  전체적으로 흐름을 더 잘 파악할수 있을거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u*****i 2021.12.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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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왜 싸우는가? - 박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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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중동은 왜 싸우는가?저자 : 박정욱출판사 : 지식프레임정체성의 투쟁, 중동사 21장면중동에 관한 책을 쓴 저자라 당연히 전문가일줄 알았는데 라디오 연출을 하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역사 덕후로서 이정도 수준의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고 새삼 나도 언젠가는 책을 쓸 수 있겠다는 다짐을 더 공고히 하게 되었다. 전문가가 아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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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중동은 왜 싸우는가?
저자 : 박정욱
출판사 : 지식프레임

정체성의 투쟁, 중동사 21장면
중동에 관한 책을 쓴 저자라 당연히 전문가일줄 알았는데 라디오 연출을 하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역사 덕후로서 이정도 수준의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고 새삼 나도 언젠가는 책을 쓸 수 있겠다는 다짐을 더 공고히 하게 되었다. 전문가가 아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너무나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내가 중동에 대해 아는바가 거의 전무했던 관계로 읽는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내용이 어렵지는 않았고 내가 하나하나 이해하고 공부해가며 넘어가는 과정이 길었던 것  뿐이다.



최근 역사에 대해 공부를 깊게 하고 싶어 여러 책을 찾아 읽고 있는 중이다. 사실 깊게 공부해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것도 고민해보았는데 노력 대비 결과물이 너무 적을 것 같아 반쯤 포기한 상태이지만 깊게 공부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은 상태이다. 약 1년 가량 미국 역사를 깊이 공부해보았다. 미국을 처음으로 잡은 것은 상대적으로 주변 국가들과 간섭이 적어 다른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어떤 역사를 공부해볼까 고민하던 중 유튜브 채널 덕분에 다음 타겟을 정할 수 있었다. 최근 유튜브 채널 '보다'에서 '역사를 보다'를 자주 챙겨서 보고 있다. 거기 고정 출연진은 주변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럽사나 한국사, 중국사 전문가들이 아니라 MC 허준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을 주로 연구하는 유라시아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 이집트 역사를 공부하는 곽민수 이집트학연구소 소장, 중동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박현도 교수가 함께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선 소외된 부분의 나라들이 많다보니 어떤 곳을 공부할까 하다 인류의 문명이 가장 오래 된 중동 지역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시작해 페르시아와 동로마의 지배를 거쳐 오스만 제국까지 당대 최고의 나라들이 자리잡은 공간이기에 궁금해졌다.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현재는 모르겠지만 내가 학창시절에 중동에 대해서는 거의 배운 것이 없다. 기억나는 중동 관련 내용은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알 카에다'가 테러를 저지른 일이나 IS가 포로를 처형, 참수하는 것에 대한 기억이 다이다. 최근 들어서도 시리아를 비롯한 난민 문제 정도이다. 그나마 조금 아는 것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인데 이것도 사실은 수박 겉핥기 수준이고 일반인들이 아는 정도가 다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중동의 역사를 많이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이 담고 있다. 부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역사를 전반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보다는 가장 특징적인 21장면을 배경 지식과 함께 짤막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이슬람의 기본적인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대부분의 내용은 중동의 근현대사를 그려내고 있다. 중동의 여러 국가들의 탄생과 갈등의 원인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슬람을 이야기할 때 수니파와 시아파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610년 무함마드가 40세가 되었을 때 신의 계시를 처음 받는다. 이때를 기려 이슬람력으로 9월(음력) 한 달을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하는 라마단 기간으로 삼는다. 이슬람에서 무함마드는 마지막 예언자로 불린다. 과거 예언자는 모세, 예수 등이 있고 무함마드가 그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계시를 받은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세력이 점차 커졌고 기존 기득권들의 견제가 심해졌다. 메카에 있던 이들 공동체는 622년 북쪽  메디나로 이동한다. 이 시기를 헤지나라 하여 이슬람역 원년으로 삼는다. 메디나에서 세력을 키운 무함마드와 무리들은 메카를 지배하는 꾸라이시족의 침입을 막아낸다. 이후 정치적 입지가 높아지며 메카에는 무혈입성하게 되고 메카, 메디나를 포함한 히자즈 지역의 지배자로 성장한다. 

무함마드는 메카에 입성하고 2년 뒤인 632년 사망한다. 문제는 그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유력한 후계자는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한 알리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아부 바크르라는 인물로 무함마드의 직계 가족을 제외하고 최초의 무슬림 개종자로 자신의 어린 딸 '아이샤'를 무함마드와 결혼시킨 인물이다. 

당시 무슬림들은 알리보다 아부 바크르를 선호했다. 연장자이기도 했고 권력이 혈통으로 승계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무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부 바크르가 1대 칼리파에 오른다. 그가 칼리파로 있던 시기 아라비아 정복을 완료한다. 그도 약 2년 뒤 사망하고 2대 칼리파로 우마르 알카타브가 즉위한다. 그는 이슬람 제국의 기초를 닦은 사람으로 평가되는데 영토도 레반트, 이집트, 리비아, 페르시아 전역을 차지하며 크게 넓혔고 '꾸란'을 집대성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644년 알카타브가 페르시아 출신 노예에게 암살당하고 3대 칼리프로 우스만 이븐 아판이 즉위한다. 

이 시기부터 조금씩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슬람이 초반에 확장이 쉬웠던 이유는 평등주의와 능력에 따른 인사 시스템에 있었다. 게다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박해하지 않고 조금의 세금만 더 내면 인정을 해줬다. 하지만 우스만은 평등과 능력을 바탕으로 한 칼리파라 불리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이전 지도자들과 달리 큰 부자였고 뛰어난 전사도 아니었다. 메카의 지배 세력 중 최상층인 우마이야 가문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여럴 지역의 총독들을 해임하고 우마이야 가문의 사람들로 바꾸며 불만이 많이 제기되었다.

이 불만의 결과 우스만이 사망하게 된다. 총독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이집트인들이 우스만을 찾아간다. 우스만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겠다고 하며 서신을 총독에게 전달해달라고 한다. 이집트인들이 돌아가던 중 서신을 확인해보니 항의한 대표단이 도착하는 즉시 죽이라는 명령이 적혀있었다. 이에 분노한 이집트인들은 우스만의 집을 포위하고 결국 우스만을 살해한다. 역사가들은 대개 기록 조작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대표단을 죽이라고 한 사람은 우스만이 아니라 그 가문의 사람인 마르완이라는 것이다. 

우스만이 죽고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가 4대 칼리파로 즉위한다. 이때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알리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무함마드의 마지막 아내인 아이샤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갈등을 보인다. 아이샤를 중심으로 탈라하, 주바이르 등 원로들이 세력을 이뤄 칼리파에 대적하기 시작한다. 이와 별개로 3대 칼리파 우스만의 친척이자 시리아와 다마스쿠스의 총독 무아위야를 중심으로 반란 세력이 일어난다. 무아위야는 우스만의 사촌 마르완과 연합해 알리를 칼리파로 인정하지 않으며 대항한다. 

알리는 무아위야를 공격하고자 하고 아이샤는 무아위야보다 우스만 살해범을 처치하는게 우선이라 주장한다. 알리는 이를 거부하고 그 두 세력간 처음으로 내전(피트나)가 일어난다. 656년 일어난 내전으로 칼리파 알리가 승리하며 주바이르, 탈라하 등이 처형되고 아이샤는 가택 연금되게 된다. 657년 알리와 무아위야의 두번째 내전이 일어난다. 알리가 승기를 잡았으나 확실하게 마무리짓지 못하고 섬멸 대신 협상을 지리멸렬하게 끌고 간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알리측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고 무아위야측 사람들은 무아위야가 칼리파와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듬해인 658년 무아위야는 다마스쿠스에서 스스로 칼리파 선언하고 알리 진영에서는 실망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때 떠나는 세력을 알리가 공격해 궤멸시키지만 생존 세력에 의해 661년 알리는 암살당한다. 알리의 아들인 하산 이븐 알리가 칼리파로 추대되지만 세력이 점차 줄어들며 퇴위하고 무아위야를 칼리파로 인정하게 된다. 

이 때 알리를 지지하는 세력은 시아트 알리(알리의 무리)라고 하여 이 이름이 시아파의 유래이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언행 '순나'를 따르는 자들로 예언자의 혈통이 아닌 능력에 따라 후계자 지목을 지지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무아위야 칼리파부터 세습되는 우마이야 왕조를 인정한 이들이다. 

하지만 시아파는 이대로 마냥 물러나지는 않았다. 하산과 달리 동생 후세인 이븐 알리는 무아위야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인 야지드 1세를 칼리파로 인정하지 않았다. 알리와 무아위야의 내전을 끝내기 위한 조약에서는 우마이야 가문 인물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것을 금지했기에 야지드 1세를 칼리파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세인은 지지세력을 메카로 집결시키고 시아파의 본거지인 쿠파로 이동한다. 야지드는 이를 알고 쿠파로 군대를 파견하여 이동중이던 후세인을 살해한다. 이 사건이 680년 일어난 카르발라의 비극이다.

시아파와 수니파는 이제 정말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다. 시아파는 스스로 지도자를 이맘이라 칭한다. 1대 이맘은 알리이며 2대 이맘은 아들인 하산, 3대 이맘은 680년 사망한 후세인이다. 4대 이맘인 알리 이븐 후세인은 714년 사망했는데 시아파는 수니파의 독살을 주장한다. 이후 5, 6대 이맘도 칼리파에게 독살당한다. 

이후 6대 이맘의 장남 이스마일은 술을 마시다 들켜 후계자에서 탈락하고 삼남 무사가 이맘의 자리에 오른다. 여기서 시아파가 또 둘로 갈라진다. 12이맘파는 삼남 무사 이후 지속적으로 우마이야, 아바스 왕조를 피해 은둔 생활을 계속한다. 마지막 이맘인 12대 무함마드 알 문타자르는 5세에 이맘에 올랐지만 세상에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4명의 대변인을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한 인물이다. 이런 지배는 마지막 대변인이 죽을 때까지 70년간 지속되었다. 그 이후 '알라가 나를 세상으로부터 숨길 것이며 알라가 결정하는 때가 되면 세상의 시아 무슬림들을 돕기 위해 다시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 한 후 몸을 숨겼다고 여긴다. 시아파는 이 시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그 이후 정신적, 정치적 중심이 부재되었고 정치 권력과 거리를 두게 된다.

반면 음주를 하다 후계자에서 탈락한 이스마일을 인정하며 따르는 계파가 있다. 이들은 7이맘파 혹은 이스마일파라 불리는데 이스마일은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하였는데 사실은 사망이 아니라 아바스 왕조의 탄압을 피해 숨은 것이라 주장하는 계파이다. 이들은 12이맘파보다 권력 지향적이며 이들을 이은 11대 이맘 압둘라 알 마흐디는 909년 파티마 왕조를 설립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지금 무슬림 내에서 가장 큰 갈등을 빚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설명할 순 없으니 각각의 나라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현재 중동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아니라 나라의 탄생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몰상식한 행동들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때까지 오스만 제국은 실존했었고 현재의 중동의 모든 국가, 사우디 아라비아, 예멘, 오만,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터키 등 국가와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지역이 오스만 제국 영역 하게 있었다. 그들은 언어도 다르고 종족도 서로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공존하고 있던 이들이 지금의 나라로 나뉘며 서로 다투게 된 것이다. 지금의 중동과 중동에서 시작된 갈등의 원인은 영국, 프랑스 등 당시 제국주의 나라들이다. 역사 공부를 할수록 얼마나 한심하고 대책 없는 일을 벌였는지 생각한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다. 



오스만 제국 밑에서 불만이 없진 않았겠지만 큰 문제 없이 지내던 민족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가지고 나라를 나눈 것이 아니라 서구 세력에 의해 강제로 그어진 국경을 가지고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부터 각각 나라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18세기 중반 수니파에서 가장 보수적인 학파를 공부하던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가 있었다. 그는 14세기에 활동했던 이븐 타이미야의 이론에 심취했다. 타이미야는 이슬람이 몽골의 지배를 받은 이유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타락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아랍인은 몽골의 지배에 대항해 지하드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하브는 이 주장을 자신이 살던 시대에 적용했다. 와하브가 보기에 현재 이슬람은 오스만 제국의 튀르크인들에 의해 타락된 상태였다.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 '꾸란'과 '하디스'의 가르침에 때라 세상을 바꿔야 아랍인에게 다시 영광이 찾아올 것이다. 이 주장을 그의 이름을 따 '와하비즘'이라 불렀다. 주장을 따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저항도 심했다. 울라마(이슬람 율법 학자)들은 자신들을 무시한다며 싫어했고 일반 백성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원칙에 따른다는 명목 하에 너무나 거칠고 지나친 처벌에 거부감이 있었다. 

와하브는 결국 마을에서 쫒겨나 남쪽으로 향하게 된다. 1774년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는 와하브와 일행을 수용하게 된다. 사우드는 자기 부족부터 와하비즘 사상으로 교육하고, 와하비즘으로 교육 받은 전사들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게 되었다. 이후 점차 세력이 커지던 사우드 세력은 메카와 메디나까지 점령한다. 세력이 커지고 와하비즘 원칙에 따라 기존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은 저지른다. 1801년 이단으로 생각하는 시아파를 학살하고 시아파에서 순교자로 추앙받는 이맘 후세인의 무덤을 파괴한다. 심지어 메카, 메디나는 점령한 후에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무덤도 우상 숭배로 생각해 훼손하고 기존 울라마들을 추방한다. 게다가 그 시기 성지 순례는 최대한 화려한 행렬에 음악대를 동행하는 등의 관행이 있었으나 경건한 옷차림으로 참여하도록 바꾼다.

이집트와 세력 다툼을 하던 중 1814년 3대 군주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가 사망하고 사우드 세력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결국 1818년 압둘라 빈 무함마드가 이집트의 이브라힘에게 항복하고 첫번째 사우디 왕국은 멸망한다.

시간이 지나 이집트 세력에 대항해 아랍인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의 손자이자 압둘라 빈 무함마드의 아들인 투르키 빈 압둘라 빈 무함마드가 등장한다. 그는 아랍 부족들과 연합해 이집트 세력을 몰아내고 1823년 다시 사우디 국가를 세운다. 이때의 사우디 국가는 과거처럼 과격한 방법으로 성지를 파괴하거나 주민들을 압박하지 않았다. 1834년 투르키가 쿠데타 세력에세 살해당하지만 다행히 아들 파이잘 이븐 투르키 알 사우드가 쿠데타를 진압하고 다시 정권을 안정시킨다. 하지만 이집트에 있던 칼리드 이븐 사우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우디 왕국을 세운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의 아들이었다. 이집트는 사우디의 힘이 다시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칼리드를 리야드의 통치자로 임명해 군대를 주고 아라비아 반도로 파견했다. 

과거 이집트 군대의 힘을 알고 있던 네지드 지역의 부족들은 그에 대항하지 않았다. 칼리드는 손쉽게 권좌를 차지하지만 1841년 압둘라 이븐 투나이얀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차지한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벌어진다. 이집트에 잡혀 있던 파이잘이 1843년 탈출하고 리야드 북부 하일 지역 통치자 라시드 가문의 도움으로 리야드를 탈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왕국도 1865년 파이잘의 사망 후 내전이 벌어지게 되고 11년간 통치자가 8번이나 바뀌며 혼란해진다. 과거 파이잘을 도왔던 라시드 가문은 1890년 사우디 가문믈 몰아내고 하일, 카심, 네지드 지역을 통할하는 지배자가 된다. 당시 사우드 가문의 지도자인 압둘 라흐만은 쿠웨이트로 달아난다.

앞서 두 번의 사우드 국가가 망했지만 쿠웨이트로 도망갔던 압둘 라흐만의 아들에 의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건국된다.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 줄여서 이븐 사우드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1902년 사우드 가문을 따르는 무리를 규합하였고 사우드가 쳐들어온다는 얘기를 들은 라시드 가문은 오스만에 지원 요청을 한다. 이에 사우드 무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해체되고 단 40명만이 남는다. 하지만 이븐 사우드는 이 40명으로 리야드를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라마단 기간 동안 리야드를 공격해 장악하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지지 세력은 다시 모이게 된다.

1904년 라시드는 오스만과 합동 공격을 하고 세력이 열세였던 이븐 사우드는 게릴라 항전을 한다. 오스만은 전장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퇴각하고 라시드 가문은 사우드 가문에 의해 궤멸되고 만다. 이븐 사우드는 이 기세를 몰아 주변 지역을 평정하고 네지드와 알 핫사 지역을 완전히 평졍한다.

이 즈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영국은 이븐 사우드에게 무기와 자금 등을 지원하여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도록 한다. 그 조건으로 전쟁 이후 독립 아랍 왕국을 약속받는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 왕국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비슷한 약속을 히자즈 지역의 유력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에게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랍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사우디와 후세인은 전쟁을 하게 되고 1924년 전쟁에 승리하여 히자즈 지역도 정복하게 된다. 이후 우리가 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탄생하게 되고 이들은 정치를 맡은 사우드 왕가와 종교를 맡은 와하비 울라마로 구성된다.
이라크, 요르단의 탄생

다음은 사우디와 대결한 하심 가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은 삼국동맹의 편에 섰다. 오스만은 1차 세계 대전 이전 이미 러시아와 지속적으로 갈등중이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슬라브 민족주의 열품이 발칸반도를 자극해 독립을 추진했고 1912, 1913년 두 차례 발칸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 때 오스만은 발칸 반도를 비롯한 유럽 영토 대부분을 잃었고 러시아는 정교회 교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넘보았다. 오스만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은 영국, 프랑스보다 신흥 강국 독일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무찌르기로 결정한다.

오스만은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전쟁 초기 큰 성과들을 낸다. 수에즈 운하의 영국군을 공격해 성과를 내기도 하고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무찌른다.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서 러시아도 무찌른다. 많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러시아가 혁명이 일어나 물러날 때까지 동부 전선을 수호해낸 것이다.

오스만은 이 때 '칼리파'의 지위를 꺼내든다. 이슬람의 최고 지도자 자격으로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삼국협상에 맞서 지하드를 벌이자고 선포한다. 영국은 이 메세지가 중동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 인도의 무슬림에게도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영국은 이에 맞서 아랍 민족주의를 이용했다. 상징적인 인물을 앞세워 '칼리파'보다 아랍 민족을 우선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영국이 선택한 사람은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 이븐 알리였다. 샤리프는 4대 칼리파 알리와 파티마 사이에 태어난 후손들을 뜻한다. 그들은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으로 아랍 사회에선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후세인 이븐 알리는 참전의 조건으로 영국의 외교관 맥마흔에게 연락한다. 전쟁 이후 아랍어 사용 지역에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다면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반란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때 아랍 왕국의 영토에 대한 뚜렷한 협상 없이 아랍 반란을 준비하게 된다.

샤리프 후세인의 생각은 아라비아 반도, 레바논, 팔레스타인 포함한 대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을 아랍 왕국의 영토로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은 프랑스와 사이크스-피코 협약이라는 비밀 협상을 맺는다. 전쟁 후 오스만 영토를 분할하기 위한 협상이다. 이 협상에서 터키는 프랑스령, 시리아 북부와 이라크 북부는 프랑스 세력 범위로 한다. 이라크 동부는 영국령, 이라크와 요르단 지역은 영국 세력 범위로 하고 팔레스타인은 국제 공동 관리 구역으로 정한다는 협상이었다. 같은 시기 영국의 외무 장관 벨푸어는 벨푸어 선언을 한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한다고 밝힌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영국은 중동 지역을 놓고 이중 계약도 아닌  삼중 계약을 하게 된다. 시리아는 프랑스와 하심 가문에게, 이라크는 하심 가문에게 약속했지만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했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하심 가문과 유대인, 프랑스와 협상까지 중복되어 있었다. 앞서 얘기했지만 사우드 가문과도 독립된 아랍 왕국을 약속한 상태였다.

샤리프 후세인은 1916년 메카를 공격하며 오스만에 대한 반란을 하고 히자즈 지역을 점령한다. 1918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시리아 의회는 1920년 샤리프 후세인의 아들 파이잘을 국왕으로 선언한다. 하지만 오스만 영토 분할을 결정한 산레모 협정에서 시리아는 프랑스의 위임 통치가 결정된다. 프랑스는 이에 반발하는 시리아에 최후 통첩을 하고 파이잘은 항복하여 영국으로 망명가게 된다. 

한편 샤리프 후세인은 자신의 아들이 시리아에서 추방된 후에도 자신의 본거지 히자즈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애초에 아랍 전 지역의 국왕을 꿈꿨던 것이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가장 큰 적이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네지드 지역의 사우드 가문이었다. 이 두 가문은 전투를 벌이게 되고 사우드 가문이 승리하고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발전한다. 

샤리프 후세인과 아랍인들은 영국과 했던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아 크게 반발하게 된다. 그러자 영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을 떼어 하심 왕국을 건설한다. 그 지역은 트란스요르단 지역으로 현재의 요르단이다. 하지만 요르단 지역은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과 한 지역으로 여겨졌지만 영국은 크게 개의치않고 하심 왕국을 세위 샤리프 후세인의 둘째 아들 압둘라 이븐 후세인을 국왕으로 임명한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라크 지역은 지속적으로 직접 지배를 원했다. 그 이유는 팔레스타인-이라크-페르시아만으로 이어진 경로가 인도와 가장 가까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의 위임 통치가 결정되자 강력한 저항 운동과 무장 반란 등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영국은 이 반란들을 이기지 못하고 아랍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1921년 망명와있던 파이잘을 이라크 국왕으로 임명한다. 

국왕 파이잘은 수니파이지만 이라크 국민은 시아파가 다수이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갈등과 내전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심지어 이라크 북부에는 쿠르드족 거주 지역도 있어 그 또한 미래 갈등의 씨앗이 된다.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의 직계 후손이다. 인종도 튀르키예인이고 아랍 민족들과 달리 튀르키예어를 쓴다. 앞서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분할되었다고 했는데, 튀르키예의 건국은 그 이후 튀르키예인들의 독립 과정이다. 1차 세계대전 후 발칸반도는 독립했고 나머지 유럽 영토는 그리스가 북아프리카와 아랍 지역은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열강들이 관할했다. 이스탄불은 승전국이 공동 관리했고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은 그리스가 점유하게 된다. 아르메니아도 독립하고 남부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쿠르드 자치를 허용했다. 튀르키예인에게 남은 영토는 아나톨리아 중북부 지역뿐이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반발했고 특히 지식인들의 반발이 심했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해산했지만 장교와 병사들은 무기, 군수품들을 빼돌리며 저항했고 이들은 국민군으로 재탄생했다. 튀르키예의 독립 운동의 거점은 아나톨리아 내륙 지역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조직된 단체로 행동하기보다는 지역별로 민족권리수호협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이들은 자연스레 1차대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장군 무스타파 케말 주위로 몰려들게 된다.

무스타파 케말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술탄 정부에게 감찰관으로 임명 받아 오스만 군대의 잔여 병력을 해산시키고 치안을 확보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즉시 술탄의 명령을 어기고 감찰 지역 내 독립운동 단체들과 접촉했다. 당연히 그를 체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내륙으로 도망갔다. 1919년 각 지역의 민족주의 운동 대표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을 통일하고 이름은 '아나톨리아 및 루멜리아 민족권리수호협회(수호협회)'로 명명한다. 

1920년 세브르 조약 이후 그리스군은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동진한다. 계속해서 동진하던 그리스와 독립군은 1921년 임시 수도 앙카라 주변에서 사카리아 전투가 벌어진다. 무스타파 케말이 사령관으로 전투를 지휘했고 양측 합계 사상자가 2만명 정도 나왔지만 이 전투를 기점으로 튀르키예의 우세가 시작되고 결국 그리스를 아나톨리아에서 몰아내게 된다. 결국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선포하고 무스타파 케말이 초대 대통령직에 오른다. 터키공화국은 과거 오스만 제국이나 다른 아랍 국가들과 달리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였고 유럽식 법정을 도입하는 등 유럽식 선진화에 힘쓴다.
이란의 건국과 정체성
이란은 아랍인이 아니다. 이란 사람에게 아랍인이라 하면 매우 불쾌해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타자로 인식한다. 이란의 조상은 페르시아이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이 급격히 성장하여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한 후 약 200년간 이란은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다. 

이란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켜가던 중 힘을 키원 932년 부와이흐 왕조를 세운다. 그들은 칼리파가 머무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기까지 했고 약 100년간 실권 없는 칼리파를 내세워 아바스 왕조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 이후 튀르크, 몽골, 티무르 등의 이민족의 지배를 지속적으로 받는다.

400년여가 지나고 15c 말 지금의 이란 서북부,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은 황폐해졌고 지배 세력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 때 아제르바이잔의 아르다빌에서 수피즘과 수니 이슬람이 혼합된 전사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과거 부족을 이끌었던 족장 셰이크 사피의 이름을 따 사파비 부족이라 불렸다. 이들은 쿠르드인과 아제르바이잔 게 튀르크인이 혼합되었고 언어도 페르시아어와 아제리어를 사용했다. 그들을 특정 정체성으로 부를 수는 없지만 '페르시아'의 정체성을 지향했다.

16세기 사파비 부족의 지도자는 이스마일이었다. 사파비 부족의 주요 전투 집단은 키질바시라는 집단이었고 이들은 시아 이슬람을 따르는 무리였다. 그들은 시아파였기에 수니 이슬람인 오스만에 적대적이었고 사파비 부족의 이스마일을 따르게 된다. 이스마일이 14세이던 1501년 이란 북서부 타브리즈를 점령하고 스스로를 '샤'라 칭한다. 

이스마일 샤는 12이맘파(시아파)를 정식 종교로 포고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개종한다. 이는 사실 종교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미 수니파의 수장으로 있는 오스만과 자리를 다투기보다는 비어있는 시아파의 수장을 맡아 시아파를 결집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오스만은 강성했고 사파비 왕조는 무리해서 영토 확장을 하기보다 시아파로 개종을 촉진하며 내부를 공고히했다.

1729년 사파비 왕조가 몰락하고 이후 있었던 아프샤 왕조가 수니파 우호정책을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시아파가 된 국민들의 반발이 심했고 결국 시아파 우호 정책을 취하게 된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이란 지역은 시아파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왕조의 힘은 약했다. 사파비 왕조 이후 군부 쿠데타가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자연스레 정부의 영향력이 약해지며 변방의 이민족들은 독립을 원했다. 19세기 초 정교회를 믿는 조지아가 독립을 하려 하자 정부는 군대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정교회의 수장 러시아는 독립 운동을 지지하며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였고 두 차례의 전쟁 모두 페르시아가 패배하게 된다. 이후 페르시아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을 끌어들이는데 결과적으로 러시아, 영국 모두에게 내정 간섭을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20세기 초 페르시아는 개혁을 추진하며 영국에게 거액의 차관을 빌리게 되지만 개혁은 실패하고 차관만 늘어나며 경제가 몰락한다. 심지어는 영국에게 석유 독점 개발권을 넘겨주게 되고 페르시아 정부는 판매 이익의 16%만 받게 된다.

영국은 1차세계대전 이후 페르시아를 보호령으로 추진하려 했다. 사실상 식민지였기에 국민들의 반대가 거셌고 영국은 레자 칸을 페르시아로 보내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1921년 레자 칸은 군대를 이끌고 테헤란을 장악했고 아흐마드 샤 허락 하에 새 정부를 세운다. 레자 칸이 원했던 새 정부는 튀르키예와 같은 공화정이었으나 대중은 왕정을 더 원했다. 결국 1925년 레자 칸은 샤에 취임하게 되고 팔라비 왕조가 시작된다.

팔라비 왕조는 기본적으로 친영, 친미 세력일 수밖에 없었고 그에 대한 반발로 훗날 팔라비 왕정이 무너지는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레바논이야말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비극이다. 레반트 지역의 끝에 위치한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북부, 시리아의 서쪽에 위치해있으며 고대부터 동서 문명의교차로였다. 페니키아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알렉산더 대앙, 로마 제국에 이어 이슬람 제국이 차지한 영역이다. 종교도 복잡한데 마론파 기독교, 멜키파 기독교, 정교회, 수니파, 시아파 무슬림, 드루즈파, 유대교 등 많은 종교가 혼재되어있다.

7세기 이전에는 기독교가 대다수였고 그 중 마론파가 다수였다. 마론파는 5C 경 형성되었고 단성론을 지지하는 종파이다. 비잔틴 제국에게 탄압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라 이슬람이 부흥하고 초기 오히려 이슬람의 지배에 호의적이었던 계파이다. 이들은 기독교과 쇠퇴하자 고원 지대로 이동해 그들끼리 모여 살았다. 이들은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에게 호의적이었고 로마 가톨릭은 1736년 이들을 로마 가톨릭 산하에 편입시킨다.

이후 이 지역은 소수의 수니파 이슬람이 마론파와 결탁해 경제를 장악했다. 국민 대부분은 시아파였지만 빈민층이었다. 드루즈파는 시아파에서 이스마일파의 분파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슬람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는 종파이다. 꾸란을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루 다섯번의 기도 의무와 성지 순례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함마드를 최고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고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를 섬기는 종파이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후 시리아, 레바논 지역은 프랑스가 위임통치를 하였다. 프랑스는 중동 지역에 기독교 국가를 세우길 원했다. 원래 거대한 기독교 국가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마론파 기독교는 독립 국가를 원했고 무슬림도 기독교 국가보다 시리아와 통합을 원했다. 그래서 지금의 좁은 지역의 레바논 영토가 결정된 것이다.

레바논은 급격히 서구화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오스만 붕괴 후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역이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중 독립을 약속받고 1944년 국민협약에 기초해 독립 국가를 선언한다. 이 당시 특이한 체제를 도입하는데 인구 총조사에 의거해 인구 다수를 차지한 마론파에서 대통령을 차지하고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에서 차지하기로 결정했다. 국회 의석도 기독교와 무슬림이 6:5 비율로 가져가기로 하였다. 이는 인구 변화를 염두해두지 않은 결정이었다. 심지어는 프랑스에서 기독교 국가를 만들고 싶어해 인구 총조사 시 마론파 인구를 많게 조사하기도 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는 이후 내전의 원인이 된다. 가장 서구화되었고 중동 최고의 교육 시설과 최고의 관광지라 불리던 레바논의 황금기는 1970년대까지였다. 마론파와 소수의 수니파에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 국민들은 국빈층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 전체의 지도자를 원했다. 그는 레바논의 무슬림에게 무기를 지원했고 반란을 부추겼다. 레바논 정부는 미국에 원조를 요청했고 반란 진압 과정에서 4000명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진다. 1967년 6일전쟁 이후 거주지가 사라진 팔레스타인에서 난민이 대거 몰려들고 1970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을 몰아내려다 실패한 후 레바논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이러한 결과 마론파의 인구수 우위가 깨지고, 치안도 매우 불안한 상황이 된다.

현재 레바논은 정치적 입지를 잃어버리면 위태로운 마론파와 이 상황을 전복하고 싶은 이슬람의 갈등이 계속 되고 있다. 그 결과 시아파에 뿌리를 둔 헤즈볼라 등 각 종파별 무장집단이 계속 생겨나며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책에서 감명깊게 읽었지만 설명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정말 너무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중동 공부를 하다보면 분명 다시 볼 상황이기도 하고 그나마 중동 근현대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서이다. 서구 제국주의 이전 가장 융성한 나라였던 오스만 제국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너무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중동에서 가장 뼈아픈 문제 중 하나인 시리아 내전도 설명하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을 설명하려면 아랍 민족주의와 이스라엘 건국, 아랍-이스라엘 전쟁부터 설명해야 전체적인 틀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대해서도 설명이 빠져있다. 이집트는 실제 인종 상 아랍인이 아닐테지만(아마) 스스로 아랍인이라 칭하고 있고 아랍에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다. 실제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전부 연관된 나라이고 그 시기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 민족주의를 얘기하며 아랍 전역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랍 민족주의와 현재의 갈등까지 이야기가 이어져야하기에 빠졌다.

게다가 지금 중동 지역에서 가장 억압받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쿠르드족에 대한 내용도 빠졌다. 쿠르드족은 나중에 따로 다뤄 제대로 얘기해보고 싶어서이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얘기가 빠진다면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중동 역사에 대해 전무한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지금은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읽는데 한 달도 더 걸린 듯 한데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보니 각 챕터를 읽을 때마다 책보다 배경지식 공부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져 그런 듯 하다. 하지만 마냥 자살테러집단이라고만 여겼던 중동에 대해 한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하다. 다음엔 중동의 역사부터 현대사까지 다시 한번 훑고 지나가고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r*********9 2026.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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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왜 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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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로 서구 중심의 역사만 배워온터라 중동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저 뉴스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식만 들으면서 원래 그런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이슬람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중동지역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들이 왜 숱한 전쟁을 치르는지에 대해 얘기하듯이 설명하고 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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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로 서구 중심의 역사만 배워온터라 중동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저 뉴스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식만 들으면서 원래 그런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이슬람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중동지역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들이 왜 숱한 전쟁을 치르는지에 대해 얘기하듯이 설명하고 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a 2024.06.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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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해소해 주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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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궁금했던 것들이 모두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무척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이슬람의 탄생부터 아랍과 이슬람의 관계,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리, 지금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갈등의 원인 등 평소 궁금했던 것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에는 부족하겠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뉴스를 보고 충분히 사태의 배경을 알 만큼의 지식은 제공하고 있다. 또 글이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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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궁금했던 것들이 모두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무척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이슬람의 탄생부터 아랍과 이슬람의 관계,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리, 지금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갈등의 원인 등 평소 궁금했던 것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에는 부족하겠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뉴스를 보고 충분히 사태의 배경을 알 만큼의 지식은 제공하고 있다. 또 글이 쉽게 쓰여져 있고 가독성도 좋아서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과거 역사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았다. 초기 이슬람국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상세히 서술하고 이후 통일된 우마이야나 아바스 제국은 간략하게 넘어가고 다시 19세기 이후의 일들을 또 다시 상세히 설명하는 방식인데 완급조절이 좋았다. 최근 정세를 설명하는데 소홀했다면 다소 실망했을텐데 배분이 아주 좋았다.

책을 읽기 전에 중동문제하면 종교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종교가 지금 중동지역 갈등의 원인이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교뿐 아니라 각 국가의 정치체제, 민족구성, 외세의 영향, 경제문제 등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종교, 종파가 달라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릴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민족국가를 받아들이고 다른나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다른나라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재의 상황만 보고 나의 도덕적가치를 드리대며 비난했던 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그 안에 같은 문화와 역사, 언어를 공유하고 인종마저도 동일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던 것에 비해 현재 중동의 나라들은 종교가 먼저 생기고 느슨하게 관리해온 큰 제국 아래서 종교나 인종이 비슷한 무리끼리 각기 모여 살았기 때문에 국가에대한 정체성 없다는 점이 달랐던 것이다.

오스만제국 몰락이후 국경선이 정해진 과정을 보면 영국과 프랑스에게 욕을 한사발 퍼붓고 싶을 때가 많다. 영국이 국경을 나눌 때 최소한 오스만제국에서 사용했던 행정구역을 참고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런데 책을 한참을 읽다보니 지금 미국이 하고 있는 행태도 과거 영국이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씁쓸...)

중동은 테러를 일으키는 위험한 지역, 민족이야 라는 생각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이 이렇게 싸우게 된것은 불과 최근 100년의 이야기다. 사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유럽이야 말로 항상 전쟁을 치뤘던 지역이 아닌가? 우연히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하필 유럽이 전쟁을 쉬고 있는 짧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억지로 묶인 국가라도 공통의 문화나 정체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100년, 아니 몇 백년이 지나야 될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전에 전쟁이 나서 분리가 되거나 혹은 그들이 원하는 아랍제국이 세워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록 영국과 프랑스가 일으킨 문제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미국이 들어가봐야 이라크처럼 해결되는 일은 없다. 중동지역 국민들이 스스로 깨닫고 해결해야겠지...그 해답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서만 찾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j*****2 2023.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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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역사에 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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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있고 중동전쟁이라 함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들의 전쟁을 뜻합니다. 하지만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된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죠. 각 국가들의 내전은 물론, 세계 강대국들의 중동참전 및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까지 중동에게 있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며 책을 읽었습니다. 이슬람교는 유대교,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알라 라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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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있고 중동전쟁이라 함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들의 전쟁을 뜻합니다. 하지만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된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죠. 각 국가들의 내전은 물론, 세계 강대국들의 중동참전 및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까지 중동에게 있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며 책을 읽었습니다.

이슬람교는 유대교,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알라 라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입니다. 근데 그 종교에서 시작된 정체성이 시아파와 수니파라는 두개의 정체성으로 나뉘고 이는 중동이 분쟁을 일으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죠.

이 책을 읽으며 중동 역사 자체에 집중을 해야할까 아니면 중동을 지금까지 있게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해야할까 생각을 하다 복잡하게 정체성에 대한 철학까지 고민하며 책을 읽기엔 머리가 아파 그냥 중동 역사와 그들의 관계만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기간이 어언 2주 정도 질질 끌면서 마무리를 못하고 있었는데 그 동안 들었던 생각은 중동의 분쟁은 중동의 지정학적 중요성 및 정체성에서 아랍권력의 헤게모니를 누가 가져오느냐... 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vs 아랍 연합국

이란 vs 이라크

이란 vs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vs 예맨

등등...

그렇게 생각해보니 시아파와 수니파의 정체성을 넘어 왕정 국가 vs 공화국 의 권력 싸움과 종파갈등, 부족갈등, 국제 관계 들이 지금의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 중동은 그들만의 싸움이 아닌 미국과 러시아 등 전 세계 패권국들의 정치 전쟁터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중동의 이해가 더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을 하는데 왜 다른 국가들이 싫어하고 반대를 하지?

왜 빈살만과 푸틴은 하이파이브를 하고 빈살만은 바이든을 왜 싫어할까?

각 나라들의 내전은 왜 끝나지 않는걸까?

등 수 많은 질문들이 그들의 싸움에서 파생되어 나오지만 결국 귀결되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중동은 석유라는 중요한 이유도 있구요.

사실 아직 흐릿합니다. 한 권으로 중동과 세계의 정치관계를 파악하기에 너무나도 부족하기에 앞으로 지속적으로 기사와 책을 읽으며 정보를 얻으려합니다. 정말 재밌게 읽은 중동의 관한 첫번째 책 이었습니다.

c*******s 2023.04.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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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아랍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이 한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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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2” 를 읽으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중동국가 중 이란,중동에 있으면서 아랍인 사우디아라비아그리고 이슬람..중동과 이슬람교 아랍이란 단어를 들으면석유자원으로 매우 부유하며이슬람 극단주의자, 근본주의자로 과격하고테러는 앞뒤 안가리고 자행하는서양세력을 증오(?) 하는 나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이슬람 창시와 역사적 흐름오스만 제국, 터키 공화국이스라
"중동과 아랍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이 한권으로" 내용보기
“지리의 힘2” 를 읽으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중동국가 중 이란,
중동에 있으면서 아랍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슬람..

중동과 이슬람교 아랍이란 단어를 들으면
석유자원으로 매우 부유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자, 근본주의자로 과격하고
테러는 앞뒤 안가리고 자행하는
서양세력을 증오(?) 하는 나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슬람 창시와 역사적 흐름
오스만 제국, 터키 공화국
이스라엘의 건국 등
복잡 다단한, 그리고 흐릿했던 중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늦었지만, 중동전쟁, 시리아 난민에 대한 역사적 흐름
이스라엘의 건국과 국제정세 등
복잡한 내용들을 책으로 잘 구성해 놓은 것 같다.

일단 이 책하나로 큰 줄기를 잡고,
또 다른책을 찾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손이 안닿아 긁지 못했던 곳을
남의 손으로 시원하게 긁은 느낌이다.
YES마니아 : 골드 s****y 2022.07.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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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중동은 왜 싸우는가..라는 책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중동...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역이죠~~ ㅠㅠ 이번 아프가니스탄 점령 사태를 보며, 더더욱 중동의 전쟁사에 관심이 생겼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동에 얽힌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중동에서 빼먹을 수 없는 이슬람 문화 등등이 얽혀 어떻게 중동이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는지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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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중동은 왜 싸우는가..라는 책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중동...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역이죠~~ ㅠㅠ

이번 아프가니스탄 점령 사태를 보며, 더더욱 중동의 전쟁사에 관심이 생겼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동에 얽힌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중동에서 빼먹을 수 없는 이슬람 문화 등등이 얽혀 어떻게 중동이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중동사를 전공하시거나, 중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 책은 굉장히 유용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비슷한 다른 서적을 더 읽어보고 싶어요~~^^

YES마니아 : 로얄 h********8 2021.09.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