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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성경을 지식으로 아는 것 보다 삶으로 살아드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로마서 말씀으로 풀어 말씀해 줍니다. 로마서 강해같은 느낌이지만 아주 친절하게 삶으로 풀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도전을 줍니다. 저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말씀으로 도전하며 독자에게도 삶으로 영광 돌릴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더 깊이있고 친밀한 교제를 원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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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성경을 지식으로 아는 것 보다 삶으로 살아드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로마서 말씀으로 풀어 말씀해 줍니다. 로마서 강해같은 느낌이지만 아주 친절하게 삶으로 풀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도전을 줍니다. 저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말씀으로 도전하며 독자에게도 삶으로 영광 돌릴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더 깊이있고 친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c*******i 2019.02.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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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목사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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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휩쓸려 갈수 밖에 없는 세상살이 가운데또렷한 등대 역할을 하고 계시는 이찬수 목사님대형교회에서 회장놀이 하는 ㄱ독교 소리를 듣게 만드는 분들에게일침을 날리는 존재이자젊은 세대들에게 늘 안타까운 호소를 아끼지 않으시는 목사님책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기 보다는그간 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들이 잘 엮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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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휩쓸려 갈수 밖에 없는 세상살이 가운데

또렷한 등대 역할을 하고 계시는 이찬수 목사님


대형교회에서 회장놀이 하는 ㄱ독교 소리를 듣게 만드는 분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존재이자

젊은 세대들에게 늘 안타까운 호소를 아끼지 않으시는 목사님


책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기 보다는

그간 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들이 잘 엮어져 나온것이 아닌가 싶다

f*****j 2019.1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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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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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로 대거 구입했다가 ㅎ다시 구매합니다^^선물했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ㅎㅎㅎ쉽고 편안하게 쓰여졌으며...쉽지만 마음은 무거워지는...ㅠㅠㅠㅠㅠ나의 삶을 마구 찌르는..추천합니다-^^좋은책 감사합니다~~~~~선물용으로 많이 구매해도 좋은것 같아요 ㅎㅎㅎㅎ선물받은 사람들의 피드백도다들 좋아서 선물하고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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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로 대거 구입했다가 ㅎ
다시 구매합니다^^
선물했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ㅎㅎㅎ

쉽고 편안하게 쓰여졌으며...
쉽지만 마음은 무거워지는...ㅠㅠㅠㅠㅠ
나의 삶을 마구 찌르는..

추천합니다-^^
좋은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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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사람들의 피드백도
다들 좋아서 선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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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h 2019.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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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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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것은, 들보는 자기 힘으로 뺄 수 없다는 것이다.티가 우리 눈에 들어가면 바람을 ‘후’ 하고 불거나 안약을 넣거나 눈물을 흘려 뺄 수 있지만, 들보는 그렇지 않다.나의 눈에 사물을 왜곡해서 보게 만드는 들보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그 사실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내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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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것은, 들보는 자기 힘으로 뺄 수 없다는 것이다.

티가 우리 눈에 들어가면 바람을 ‘후’ 하고 불거나 안약을 넣거나 눈물을 흘려 뺄 수 있지만, 들보는 그렇지 않다.

나의 눈에 사물을 왜곡해서 보게 만드는 들보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그 사실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내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하다. 자력으로 뺄 수 없는 들보를 빼는 능력, 바로 그것이 복음이다. 그렇다면 내 힘으로는 절대로 뺄 수 없는 들보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즘 내 마음 한편에는 이사야의 탄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사 6:5)

여기 나오는 ‘그때’가 어느 때인가? 이는 앞에 나오는 이사야서 6장 1절의 상황을 받는 말이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사 6:1, 3)

이사야 선지자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탄식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경험해야 부끄러운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해야 내 힘으로 빼낼 수 없는 내 눈 속의 들보가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사님들도 그런지는 몰라도 목사인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병이 있다.

집에 가서도 계속 목사 노릇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꾸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태도가 있어 잔소리가 많다. 아이들에게는 “목사 아들이 그러면 되겠니? 목사 딸인데 옷차림이 더 단정해야 될 것 같은데?”라고 하고, 심지어 아내에게도 “목사 아내로서 이것은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랬더니 한번은 아내가 이런 불평을 했다.

“당신은 내 남편인데, 꼭 남편 같지 않고 목사님 같다.” 그 말에 마음이 찔렸지만 이렇게 응수함으로 미안한 내 마음을 감췄다. “그러면 목사가 목사 같아야지, 스님 같으면 되겠나?” 그런데 이런 식으로 늘 집에서도 목사 노릇하며 가르치기 좋아하던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이사야서 6장 말씀과 같은 깨달음이 나에게 찾아오고부터이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 말씀으로 내 안의 들보가 빠졌다.

그러자 아내와 아이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연약한 모습이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6장의 은혜를 받고 내 눈의 들보가 빠지자 그들을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우리 인생은 너나없이 연약한 존재이므로 상대방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그들의 약점이 보이면 예전처럼 지적하기보다는 등을 토닥이는 일이 많아졌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요즘엔 아내가 이런 농담을 건넨다. “집에서 당신은 이제 대하기 어려운 목사님 같지 않고 남편 같아졌다.” 가정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은 지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격려로 변화된다는 사실이다. 들보 낀 남편과 들보 낀 아내가 왜곡된 눈으로 서로를 향해 “가정은 이래선 안 되고, 저래선 안 돼!”라고 아무리 지적해도 가정은 변화되지 않는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가정이 제대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에게 들보가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들보는 내 힘으로 뺄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사야서 6장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내 힘으로 뺄 수 없는 들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빠질 줄 믿는다. 이것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중 발췌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로마서 2,3장을 중심으로, 성경 말씀대로 살아내는 삶의 중요성을 설파한 책이다. 이 책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간극이 컸던 유대인들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말씀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w***1 2019.08.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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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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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에 사로잡힌 인간, 특히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인생은 결국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의 문제이다.노아를 생각해보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디에다 만들었는가?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이런 노래를 배운 적이 있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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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에 사로잡힌 인간, 특히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인생은 결국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의 문제이다.

노아를 생각해보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디에다 만들었는가?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이런 노래를 배운 적이 있다.

 

노아 할아버지 배를 만든다
노아 할아버지 배를 만든다
높은 산 꼭대기에서 배를 만든다


노아 할아버지가 배를 만드는데, 강물이나 바다에 띄워야 할 배를 산꼭대기에다 만들고 있다.

“노아, 저 영감이 드디어 미쳤네. 제정신이 아니야.”

노아가 이런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겠는가? 요즘 말로 마을에서 완전히 왕따가 되지 않았을까?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겠는가? 그런데 노아는 왜 배 만드는 것을 중단하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히브리서에 나와 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히 11:7)

‘경외’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노아는 자기를 향해 비난하고 수군거리는 동네 사람들 역시 두려웠을 것이다. 내가 목회자로서 사람들 앞에 노출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얼마나 무서운 능력이 있는지 문득문득 절감하곤 한다. 그토록 무서운 것이 비판과 지적의 손가락질이다. 그러니 노아의 고통이 어땠을까?

그러나 노아가 그 고통 속에서도 방주 만드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노아는 수군거리고 비방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두려웠지만 그 일을 명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잣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새벽기도에 몇 번 참석했나, 성경을 몇 장 읽었나, 오늘 묵상을 했나 안 했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잣대가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청산유수같이 말 잘하고 설교 잘한다고 그 사람의 영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내가 하는 행동이 인격이고, 그 사람의 영성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다 되는 것인가? 잠자리에 들 때면 하나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 들려오는가? 그 경고가 너무 두려워서 내일은 더 이상 같은 죄를 짓지 못하는 일들이 우리 삶에 나타나고 있는가? 모세를 구한 산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출 1:17)

당시 애굽 왕의 명령은 절대명령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절대적인 파워를 가진 명령이었다. 산파들이 그 사실을 몰랐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기들을 살려두었는가? 권력을 가진 애굽 왕도 두렵지만, 하나님이 더 두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현실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크리스천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림으로 우리의 내면세계가 마귀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주님의 경고로 받아야 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 10:28)

이 말씀이 하루 종일 머리에 맴도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우주의 종말이 오건, 개인의 종말이 오건 얼마 안 남았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누가 100세까지 산다고 보장해주는가?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닌가?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심판자 되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그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심판하실 그분을 두려워하고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아무도 안 본다고,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내 맘에 내키는 대로 막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죄에 대한 지피지기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나를 죄악의 골짜기로 몰고 가는 악한 사탄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한 능력인지를 알고, 그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 연약한 나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백은 딱 하나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아버지, 저는 약합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내버려두면 입술이 타락하고, 그 다음에는 행위가 타락하여 짐승보다 못한 자리로까지 갈 수 있는 위험이 제게 있기에 저는 복음을 의지합니다! 저는 복음의 능력을 믿습니다.’

우리는 종잇장 같은 인생이다. 종이 한 장은 힘을 안 줘도 쉽게 찢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종이가 벽에 딱 붙어 있으면 떼어내기 정말 어렵다. 당신은 지금 굴러다니는 종잇장 같은 인생인가? 아니면 벽에 견고하게 붙어 있는 종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복음에 견고하게 붙어 있는 인생인가?

복음을 만날 입으로만 떠드는 데 쓰지 말고, 복음이 능력임을 삶 속에서 체험하고 맛보기를 바란다. 종잇장같이 연약한 나를 얼마나 견고한 인생으로 만들어주는지, 그 복음의 능력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작동되기를, 그래서 그 복음의 감격이 회복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그래서 종잇장같이 구겨지고 찢기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앞에 그분과 더불어 찢어지지 않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중 발췌

 

그리스도인들의 큰 착각 가운데 하나가 안다는 인식 그 자체가 신앙의 핵심을 붙잡은 것으로 인식한다는데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에서의 안다는 것은 인식 그 자체를 의미하는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것까지를 뜻한다. 그럼에도 인식한다는 것에 안주하기만 할뿐, 삶을 살아내는 수고를 하지 않기에 타인을 향한 정죄와 비판을 쉽게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신앙을 거스르는 것이며 기만하는 것이다. 이찬수 목사는 이러한 그릇한 신앙의 현실을 비판하고 본질로 돌아가 성육신 신앙을 살아갈 것을 강권하고 있다.

k*****9 2019.0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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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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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서 내쫓아버린 인간의 불경건이 얼마나 불의하고 악한 죄악들을 양산해내는지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 1장 24절부터 언급되는 성적인 타락, 동성애 문제를 필두로 29절부터 열거되는 수많은 죄악의 양상을 보라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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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서 내쫓아버린 인간의 불경건이 얼마나 불의하고 악한 죄악들을 양산해내는지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 1장 24절부터 언급되는 성적인 타락, 동성애 문제를 필두로 29절부터 열거되는 수많은 죄악의 양상을 보라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29-31)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것이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 엄청나게 많은 죄악을 낳게 되었다’라고 한 줄로 기록하면 될 텐데, 바울은 왜 이렇게 길게 여러 가지 죄악을 열거하고 있을까? 그저 한마디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서 내쫓은 인생은 전방위적으로 이런 무서운 죄악의 열매들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이것을 ‘전적 타락’이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은 선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상대적으로 선해 보이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 보여도 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하나도 없다 바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로마서 1장인데, 죄의 결과물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던 바울이 급기야 로마서 1장의 결론을 어떻게 내리는가?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32) 바울이 내린 결론이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는 일말의 희망도 없다 우리는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 절망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32절의 선언이다 로마서 1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다가 문득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에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많은 사람이 〈감기〉나 〈연가시〉 같은 영화를 떠올리며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이런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는 대부분 몇 가지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첫째로 영화 초중반부까지는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는 그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아도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거나 한 번 감염되면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하는 무서운 병인 것을 강조하는 것이 첫번째 패턴이다 또 하나의 패턴은 고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는데 치료할 백신이 없단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다가 점점 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영화 상영 내내 이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공통점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치고 너무 싱겁게 끝난다는 것이다 보통 영화가 끝나기 한 10분 정도 남겨놓고 갑자기 주인공이 그 불가능하다던 백신을 발견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치료하고는 끝난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때로는 허탈할 때가 있다 너무 맥없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앞부분에서 그렇게까지 바이러스의 독성과 잔혹성과 치사율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바이러스의 강한 독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주인공이 발견하거나 개발하게 될 백신의 위력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1장도 마찬가지다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치명적인 죄를 열거하며 “이제 어떤 희망도 없다 완전히 망했다 우리는 죽었다”라고 선포한 것은 죄의 강력한 권세와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게 아니다 그 뒤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그 복음의 백신이 강력한 죄악과 완전한 절망을 깨뜨리는 강력한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로 절망하고 있는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 같은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가? 꼭 기억하라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복음의 백신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어떤 절망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라 복음의 백신으로 치유되고 회복된 사람들의 감격에 찬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깊은 절망에서 건져냄을 받아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내가 바로 그런 증인 중 한 사람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괴롭고 아팠던 순간이 많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견뎌낼 힘을 얻었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이처럼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죄의 치명적인 독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읽으며 하나님이 베푸신 무한한 은혜의 능력과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야 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사형을 선포하는 32절 말씀이 로마서 1장의 결론같지만, 사실은 중반부에 나와 있는 16,17절 말씀이 그 결론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이것이 로마서 1장의 결론이자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분명히 절망에 빠져 “이젠 끝이야! 이젠 죽음이야”라고 절규했는데, 그런 나를 포근히 안아서 안전한 은혜의 포구로 인도해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복음이다 이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맛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중 발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단순한 지적 동의 또는 앎 자체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 내지는 앎으로 신앙 곧 삶을 살아감을 대체하고자 함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 책은 아는 것 자체보다 신앙으로 삶을 살아감의 중요성과 이유를 성경적으로 풀어주고 있다

YES마니아 : 골드 l******g 2018.1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