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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적 동학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발전국가모델의 역동성 '한국의 발전 경험을 활용하자.' 개발협력 전문가로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한국이 빈곤 퇴치에 앞장서야 할 이유 뿐만 아니라, '자격'까지 부여한 표현처럼 느껴졌다. 누가 그 자격을 주었는지 조금은 불편했다. 시공간적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발전 경험을 참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모델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았다. 물론, 수십 년 만에 원조 수여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의 경제발전은 개발협력 분야에 뛰어들 충분한 배경이 된다. 동시에, 유난히 빠른 경제발전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 겪여야 했던 아픔도 적지 않다. 부모님 세대의 평가절하된 노동의 가치는 발전국가모델의 구성물 그 이상이다. 한편, 거시적인 담론으로는 실질적인 정책을 만들어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개발도상국을 공부하며 느껴왔다. 개발경제학 분야도 거대 담론 중심의 소모적 논쟁을 줄이고 프로젝트별 효과성 평가 논의로 넘어간 지 이미 수년이 되었다. 그렇게 커뮤니티, 개별 수혜자 중심의 미시적 사례에 관심을 가지던 요즘, 나의 정치학적 무지를 다시금 일깨워준 책을 만났다.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이론적 논의부터 재구성과 타 국가와의 연계성까지 다루는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재구성'이 그것이다. ... 저자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유용성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모델의 유용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존의 모델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 어떤 점이 수정·보완되어야 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을 재구성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목적이다. 이 책을 통해 혼란을 가져왔던 기존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개념적 정의를 보다 명확히 하고 신생 개도국에 대한 적용가능성을 확대함으로써 학문적 유용성과 현실적 실용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p. vi 머리말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두 가지 특징은 환경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국가 역할의 중요성이다. 발전국가모델은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핵심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모델 자체가 유연하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흔히 모델이란 정해진 것이기에 정태적이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동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 모델이 유용하다고 보고,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는 위해 모델을 재구성하여 다른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실제 책에서는 모잠비크에 모델을 연계할 수 있을지를 검토한다.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국가 중 하나인 모잠비크는 사회주의 경험이 있다. 주변 국가들과의 사회경제적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몇 년 전 모잠비크를 찾아갔을 때,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류 흔적이 도시 경관과 주민 인식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가 이 발전국가모델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모잠비크에 어떻게 적용하였는지, 그 호기심에 책장을 넘겼다. 총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 문제 제기와 연구 범위 등을 시작으로 8장 결론까지 연구보고서처럼 구성되어있다. 이론적 논의를 다루는 2장은 후발개도국의 발전모델,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에 관한 논쟁 및 핵심 요인을 짚는다. 발전국가모델의 특징으로 전략적 산업정책 상대적 자율성을 반영하는 관료집단, '연계된 자율성'의 제도적 배열 등을 제시했다. 또한 제도, 관계, 발전지향적 이념이 핵심 요인으로 하여 국가의 전략적 대응 전략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3장은 동아시아 발전국의 성장과 위기를 보고 어떤 개혁과 변화가 필요한지를 정리했다. 여기서 외부 환경과 내부의 상호작용이 성장의 주요 요인이라 보는데 냉전 시기의 우호적 통상, 지역생산네트워크, 미국 패권의 자본주의를 제시한다. 이에 대한 국가의 대응을 위해 정치경제적 동학 이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개혁방향은 신자유주의적일 수 있으나 개혁의 주도세력과 패턴은 발전국가적 유산을 지속한다고 보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발전국가냐 신자유주의국가냐의 판단보다는 그 내부적인 정치경제적 동학을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속성이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따라 국가가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p. 78 (3장) 4-5장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정치과 경제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했다. 우선 4장은 과거의 냉전이 아닌 새로운 패권 경쟁과 그 속의 국제정치질서 흐름을 짚고 넘어간다. 특히 중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을 통해 신냉전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이는 5장에는 자유주의질서 변화에 따른 경제적 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많은 경제 질서 중에서도 생산(생산 세계화와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무역(지역주의와 보호주의의 부상), 통화(미국 달러본위제의 위기), 금융(미중 금융패권경쟁) 등 4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저자가 강조했던 정치경제적 동학에 대한 긴 설명의 끝난 뒤 6장에 이르러,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를 재구성한다. 앞서 살펴본 국제질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 재구성된 모델에는 5장에서 나눈 4개 분야별 대응책을 제시한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분업에 비교우위를 가지도록 하는 정책, 수출다변화정책과 보호규제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금융기관 관리감독, 규제 완화와 강화 지점의 병존에 대한 인지와 정책 조정 등이 그것들이다. 첫째, 후발개도국이 추격하기 위해서는 외부환경의 변화를 도전과 기회의 양 측면에서 파악한 후 그 시기의 경쟁적 산업은 무엇이며 어떤 부가가치 영역에서의 생산분업이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패권국가와의 협력이 국가이익을 위해 가능한지 파악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자율성과 정부-사회세력과의 협력을 균형적으로 유지할 역량을 키워야 한다. 셋째, 후발개도국이 어느 정도 추격에 성공한 이후에도 산업발전을 위해 국가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pp. 179-180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이 다른 개도국 발전에 일반적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입장(에 담긴 이론적 요소들)이다. 그리고 발전국가모델의 관점에서 주요 환경변화와 대응을 네 가지로 요약하였다. (1)산업 간 구분보다 가치사슬 구분의 중요성 증대,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경쟁, 중국의 보호무역 등에 대응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의 우위 학보를 위한 혁신 정책, (2)신냉전시기(미국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급부상)에 대응한 다양한 국가/지역 간 무역 네트워크 활용, (3)신브레턴우즈 체제(또는 미국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질서)와 이에 대한 회의 속에서의 환율·통화 갈등에 대처하는 지역적 통화협력과 환율안정, (4)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내부적 제도역걍강화와 외부적 협력네트워크 등이 그것들이다. 상대적으로 느린 경제발전을 경험하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동아시아 국가별 발전 동력의 일반적 함의에 대한 논의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 책 역시 그런 논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아프리카 동남부 해안에 있는 모잠비크를 동아프리카 발전국가모델과 연계하여 본다는 것이 독특하다. 그러나 그대로 모델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며 다음과 같이 거센크론의 주장을 인용한다. 거센크론의 논의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어차피 후발국가는 선발국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선발국가로부터 기술도입과 국가개입의 역할을 통하여 특정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big push)할 수 있다. 또 한편 다른 국가의 과거 성공적인 산업전략패턴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산업의 육성방식과 패턴은 그 사회의 내부적인 제도적 특징, 국가기업 관계 등에 따라 달라진다. 후발국가들의 경제적 후진성의 독특성을 잘 이해해야 선발국가들의 성공적 정책을 잘 적용해 볼 수 있다. p. 191 이 책은 단순히 새로운 국제질서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을 단순히 모잠비크에 적용하자고 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 모잠비크가 겪은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선, 저자는 모잠비크가 1992년 내전 종식 후 진행된 정치적 민주화, 2000년 이후의 빠른 경제성장률,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등을 배경으로 하여 동아프리카 발전국가모델과 연계될 가능성을 보았다. 이어, 모잠비크는 국유화와 민영화 과정을 통해 정부 권력을 강화하였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일괄적인 선호가 있었지만, 정부는 해외의 다국적기업과 협력하여 국내 기업의 자생적 발전을 이끌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특징을 일부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 차이를 분석하여 제시한 정책적 제언은 국내기업 육성 및 연계산업 발전과 국가 관료 자율성을 위한 정치개혁이다.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핵심적 요인은 '후진성의 이점'을 활용한 국가의 주도적 역할에 있다. 다시 말해 대외적 환경의 도전과 기회에 적절히 적응했던 내부적 역량이 그것이다. 후발개도국들이 '후진성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내외적 환경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p. 224 이 책을 통해 관계와 스케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첫째,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특징 중 하나인 국가의 시장 개입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기에 중요했다. IMF 이전과 이후, 모델의 재구성을 제안하는 오늘날까지 글로벌 금융시장과 환율, 가치사슬, 무역과 투자에 관한 정책들이 발전국가모델의 쟁점이었다.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 비해 강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부 개입(제조업을 통한 수출주도, 국제시장에서의 비교우위 확보, 전략산업 육성과 해외투자 유인 등) 역시 주로 관계 조정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국가가 매 순간 담쌓기와 허물기 사이에 서 있다. 이처럼 대외지향적 문제의 규명과 대응은 국가 간 관계에 달려있다.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도 '변화하는 환경 속의 관계 변화', 즉 변화에 대응한 변화가 아닌가. 둘째, 정부 개입과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은 기본적으로 거시지역 또는 국가 스케일에서 필요한 논의이다. '발전 경험'에는 세계, 거시지역, 국가, 지역, 도시, 개별 사람과 아이디어 등 다양한 스케일에서 발전에 미치는 영향들이 혼합되어 있다. 과학기술, 혁신, 노동력, 창조계급 등 경제발전을 위한 중요한 몇 개의 핵심 변수가 있지만 이들은 여러 스케일에 복잡하게 작용한다. 이 책은 그 스케일 중 '동아시아' 스케일의 논의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이는 다른 스케일과 연계하여 논의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동아시아 발전국가모델의 특징 중 하나가 '거시지역적 스케일에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자 간의 조절을 통한 발전 정책 마련'이라면, 다른 개도국에 적용할 가능성은 커진다. 국가 스케일의 정교한 정책이 그 국가에 적합하고 건강한 거버넌스 구축으로 이어진다면 경제 발전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다. ... 세계화시대 다양한 영역에서의 도전이 변화하고 급증함에 따라 국가의 역할은 새롭게 재구성될 필요성이 있다. 다시 말해 세계화시대 국가의역할은 후발개도국의 경우에만 적용되기보다는 다양한 발전 단계에 있는 모든 국가의 경우에도 적용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대표적 경우는 웨이드의 논의(Wade 2010)와 블록의 논의(Block 2008)를 들 수 있다. 블록은 유럽과 미국이 정부가 새로운 기술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이 공통적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발전구각적 정책을 숨겨(hidden) 왔는데, 이는 미국의 시장근본주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발전 국가적 정책은 사실 사회민주적·기독교 민주주의적 정책의 유산과 잘 맞아 떨어졌다. p. 237 이 책은 발전국가모델에 관한 핵심적인 특징과 구체적인 사례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물론 모잠비크 사례에서 제시한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동아시아 모델의 재구성만큼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다른 대륙의 개발도상국에 적용하여 모델의 확산 가능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는 국가와 시장, 원조와 비원조로 갈라 세워 비교하는 논쟁이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세계, 대륙, 국가, 지역 스케일에 따라 경제 발전에 어떤 요소들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어떤 구조와 체계를 형성해야 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발전 동력이었던 제조업이나 금융업이 활성화에는 중앙 정부의 계획도 있지만, 이웃 국가 또는 다른 대륙의 국가들과의 협력, 투자, 무역 관계는 물론 낮은 임금으로 일했던 사람들도 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국가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았고 국경은 여전히 높다. 영역성과 관계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개발협력 분야에서 정교하고 세부적으로 설계된 효과성 평가, 그 평가를 통한 점진적 개선(또는 폐기)에 공감한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의미 있는 다양한 스케일의 논의도 지지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