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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 - 루트 클뤼거
"삶은 계속된다 - 루트 클뤼거" 내용보기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고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시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걸어온 세계사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비일비재 발생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여전히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 벌어진 홀로코스트는 그러한 행위가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우리를 경악케 만드는데, 과연 우리는 이 사건을 제대로
"삶은 계속된다 - 루트 클뤼거" 내용보기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고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시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걸어온 세계사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비일비재 발생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여전히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 벌어진 홀로코스트는 그러한 행위가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우리를 경악케 만드는데, 과연 우리는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라든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는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저 역사적인 사실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역사적인 소용돌이에 침몰된 개인의 존재가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분을 루트 클뤼거는 [삶은 계속된다]를 통하여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도 단순히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개인의 회고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클뤼거 역시 그러한 어려움을 이미 예상했던 것 같다. "장황한 묘사가 그런 고통을 평이한 일로 만든다. 말투에서만 뭔가 다르고 낯설고 고약한 것이 배어나올 뿐이다."라는 표현대로 그 끔찍한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클뤼거의 시선은 이 책이 기존의 글과는 다른 느낌을 예고한다. [삶은 계속된다]에서 프리모 레비에 대한 글과의 비교를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부분은 우리에게 어렵지 않게 이 책이 어떤 관점에서 서술되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해준다.

 아우슈비츠의 독일인들은 한결같이 존재 권리의 박탈, 수감자의 인간적 존재 거부, 생존 권리 거부를 목표로 권위적으로 굴었다. 프리모 레비가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서술한 것도 이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인이었고, 완성된 유럽인의 자존감을 갖고 있었으며, 정신적으로는 합리주의자에서 지리적으로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정착해서 안정된 삶을 살다가 왔다.

 - 책 속 내용 中에서 -

 

 이러한 부분은 1931년생인 저자가 십대 초반인 1942년부터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는 점과 더불어 독일어 문화권인 오스트리아 빈 출생이라는 점은 확실히 프리모 레비와는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특히 조금씩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단계에서 마주한 그 끔찍한 현실은 프리모 레비가 경험하면서 생각한 것과는 틀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삶은 계속된다]는 그동안 이 끔찍한 역사적인 사건에서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여성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꽤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클뤼거의 수용소 생활은 어머니와 이루어졌다. 이후 수용소에서 의지하면서 만난 인물들도 모두 여성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수용소에 가기 전에 홀로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도피한 상황이었기에 클뤼거의 수용소 생활 및 탈출 과정에는 오로지 여성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전쟁은 남자들 일이라 전쟁 기억도 남자들 문제요, 파시즘 자체도 찬성했든 안 했든 남자들 일이니까. 심지어 여자에겐 과거가 없다. 아니 과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여자의 과거란 태반이 섬세하지 못하고 점잖지 못하다고들 하니까.

 - p. 15 中에서 -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유약하고 민감한 남자이지만, 나에게는 절대적이면서 그릇된 권위를 지닌 사람이다. 내게 아버지는 놀라운 광채를 발하는 폭군,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에 끝내 신뢰할 수 없는 폭군이었다. 내게 아버지는 분열된 존재다. 화를 낼 때도 속을 꿰뚫어볼 수 없는가 하면, 경쾌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모든 물음에 답해주는 사람.

 - p. 41 ~ 42 中에서 -

 

 단발마의 고통 속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밟고 올랐고 그래서 남자들 시체는 늘 위에, 아이들 시체는 맨 아래에 있었다.

 - p. 43 中에서 -

 

 이 문구를 마주하는 순간 전쟁과 홀로코스트로 인하여 고통은 함께 받았지만, 그동안 여성이 입은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가스실에서 나온 인간의 무의식이 가감없이 발현된 끔찍한 장면은 애써 외면 내지는 다루지 않았던 약자에 대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점에서 [삶은 계속된다]는 단순한 수용소 문학 내지는 회고록에 그치지 않는다. 끔찍한 고통 속에 묻힌 또 다른 약자의 고통을 한 여자의 일생과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의 보호와 비호를 받는다는 오래된 관념 또는 편견을 마음 깊이 각인하고 내면화해 가장 명백한 사실을 간과한다.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건 노약자들과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들이라는 것 말이다. 나치가 여자들까지 심하게 다루지는 않으리라는 말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와 모순되었다. 말도 안 되는 가부장적 단견으로 기사도 정신 따위를 믿었단 말인가? (중략) 남자들만 반유대주의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나?

 - p. 106 中에서 -

 

 광기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여기에 더하여 반유대주의 및 가부장적인 유대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삶은 계속된다]는 그저 수용소의 고통을 나열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서 십대의 시간을 보낸 저자의 상황은 확실히 프리모 레비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인가]가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설명하는 작품이라면 [삶은 계속된다]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고, 무시되었던 사회적 약자가 추가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을 언급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테레지엔슈타트의 수용소에서 약 2년간 생활하고 이후 크리스티안슈트타에서 노동 수용자의 삶을 살다가 결국 전쟁 막바지에 러시아의 공세로 인하여 서쪽으로 피난가던 독일인 무리에 합류하여 탈출에 성공한 그녀였기에 이 책은 수용소의 끔찍한 일상과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그녀의 회고는 이 책의 주요 대상이 바로 독일인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독일인이란 그러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울타리에 페인트 칠을 하는 것으로 대체 복무를 하던 독일 청년과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기젤라와 같은 독일의 이후 세대와의 대화는 그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심각성은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으나 그 본질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클뤼거는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클뤼거가 탈출 중에 경험했던 것처럼 그들을 도운 독일인도 있었다고 말하는 기젤라라든지 그런 통제된 경찰국가 체제 속에서 용기를 발휘하기란 어렵지 않냐라고 반문하는 독일 청년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발견할 수 있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클뤼거는 이러한 것에 대하여 대담하게 지적한다. 그러한 물타기와 어쩔 수 없었다라는 생각이 결국은 당시의 홀로코스크가 발생된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치 체제에서의 그러한 비겁함은 경멸할 이유가 없지만, 나치가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공포나 비겁함 때문에 맞서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이는 전쟁을 치뤘던 그들의 조부모 세대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기에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전쟁 이후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잠시나마 우정을 쌓은 독일인  크리스토프(실제 이름이 아니다)가 유대인 혐오는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외국인 혐오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클뤼거가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끔찍한 수용소에 대한 경험과 그 이전의 반유대주의를 경험하면서 정체성의 성립 과정에 큰 혼란을 겪은 클뤼거. 그렇기 때문에 [삶은 계속된다]는 단순히 수용소 문학에 머무르지 않는다. 탈출에 성공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독일의 괴팅텐으로 돌아와서 교수 생활을 하는 그녀의 삶은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사학자인 미국인 남편마저도 그녀의 고통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현재에도 그러한 역사적인 비극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기에 더하여 클뤼거의 여성이라는 관점에 따른 부분 역시 그간 잘 다뤄지지 않은 것들이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그 끔찍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것으로 극찬을 받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쉰들러를 제외한다면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유대인들이 없던 것 같다. 이 역시 거대한 역사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개인의 존재감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계속된다]라는 제목은 바로 이러한 피해를 받은 개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진행형의 시제로 쓰여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속의 한 줄의 글조차 허투로 지나칠 수 없다. 그 글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임을 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g*******7 2018.12.22. 신고 공감 10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이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이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내용보기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루트 클뤼거는 1988년 11월 9일 독일 괴팅겐에서 수정의 밤 기념강연을 해달라는 초대를 받는다. 그러나 그 강연을 이뤄지지 못했다. 11월 4일 연극 <돈 카를로스>를 보러 가는 도중에 무섭게 달려오는 자전거에 부딪혀 심하게 다친다. 그 강연은 1년이 연기되었고, 그 1년 후 그날은 독일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된다. 바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루트 클뤼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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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생존자 루트 클뤼거는 1988 11 9일 독일 괴팅겐에서 수정의 밤 기념강연을 해달라는 초대를 받는다그러나 그 강연을 이뤄지지 못했다. 11 4일 연극 <돈 카를로스를 보러 가는 도중에 무섭게 달려오는 자전거에 부딪혀 심하게 다친다그 강연은 1년이 연기되었고 1년 후 그날은 독일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된다바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루트 클뤼거는 그렇게 병상이 누워 있는 기간이 회상록을 쓰기 시작한다십대의 소녀로 세 군데의 강제 수용소를 거치고 살아남은 그녀가 거의 60이 다 된 시점이었다오스트리아 빈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와 부유한 공장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 딸로 태어나(‘로 태어났다는 사실그리고 그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반유대주의를 경험하면서 자라다 열 살을 갓 넘긴 시점 1942년에 어머니와 함께 수용소로 가게 된다처음에는 체코의 테레지엔슈타트다음은 아우슈비츠그리고 친위대원에게 거짓말을 하며 가까스로 강제노동소인 그로스로젠수용소로 이송된다그리고 독일의 패배가 기정사실화된 이후 죽음의 행진 와중에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여 수용소에서 빠져나오게 된다전쟁 후 독일에서 살던 어머니와 루트 클뤼거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도서관 사서로그리고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마치고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의 독문학 교수를 지낸다. - 이렇게 이 책에 적힌 그녀 삶의 궤적을 요약해보면이 책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소녀가 극적으로 살아남아 미국에서 성공하게 된성공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절대 그게 아니다그녀는 단 한번도 성공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다삶의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는 과정이 중심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의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왔는지가 중심이다그 후의 일들도 마찬가지다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즉 자의식이 충만할 대로 충만해 있는 기록이다그녀는 기억에 의존하지만철저하게 현재 시점에서 기억에 남은 그때의 일들을 평가한다그러니까 무슨 일을 겪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그리고 그것이 그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그 경험들이 자신을 어떻게 형성시켰으며그것들이 현재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은 책 표지에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이라고 소개하고 있는지그건 아니다소녀로서 그 일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며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지금 그때를 기억할 수 있는 성인으로서 기억하고 있으며홀로코스트가 아니라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완전히 객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자신은 자신을 벗어날 수 없으며그 경험을 겪지 않은 자신도 상상할 수 없다.


이 기록에서 유대인으로서 억압만이 유일하지 않다는 것은 이 책의 아주 중요한 점이다그녀는 여성으로서 억압을 동일하지는 않지만상당히 중요한 억압으로 제시한다또한 어머니와의 불화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그 지옥을 함께 헤치고 온 어머니와의 불화는 매우 뜻밖이다또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박물관에도 매우 불쾌해 한다그것을 겪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위안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그것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에 대한 시선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누가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얼마 전에 가해자 쪽에 있었으면서 자신은 가해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어느 독일인의 삶』을 읽었다그때도 불편했지만그건 분명한 대상과 방향이 있는 불편함이었다지금의 불편함은 완전히 다르다반성도 아니고그렇다고 슬픔도 아니고안타까움도 아니다그냥 불편하다그 불편함은 저자가 의도한 것이며불편하지 않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이다그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19.01.09.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은 계속된다 : 그러나 전쟁은 남았다. 분명히.
"삶은 계속된다 : 그러나 전쟁은 남았다. 분명히." 내용보기
나는 1년에 1~2권, 반드시 전쟁에 관한 기록을 읽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그것은 10대 시절 시작한 어느 날의 버릇이었다. 내가 처음 전쟁을 체험한 것은 '안네의 일기'와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지만내가 읽은 것은 아이들을 위한 안네의 일기였으므로, 오히려 소녀의 일기라는 생각에 가까웠다면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마침 그때 나는 굉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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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년에 1~2권, 반드시 전쟁에 관한 기록을 읽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그것은 10대 시절 시작한 어느 날의 버릇이었다. 


내가 처음 전쟁을 체험한 것은 '안네의 일기'와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내가 읽은 것은 아이들을 위한 안네의 일기였으므로, 오히려 소녀의 일기라는 생각에 가까웠다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마침 그때 나는 굉장히 마음이 예민할 때라 - 

죽음과 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전쟁과 그로 인한 사람의 삶은

결코 영화같지 않은, 장엄한 서사도, 숭고함도 없는, 그리고 눈물이 나지도 않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꾸준히 전쟁의 기록들을 찾아 읽었다.

그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것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1년에 1~2권씩은 꼭 전쟁에 관련된 기록을 읽었다.

어떤 때는 한국전쟁이나 5.18 민주화 운동이었고, 

어떤때는 세계1차 혹은 세계 2차 대전,

때로는 아프리카의 참혹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피가 낭자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꽤 괴로웠지만 읽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왜 그런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빠른 서사라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누구나 다 선해보이지만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가늠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렇게 악랄함과 피가 낭자한 그곳에서도 사실은 일상이 있고 태평함은 존재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런 것들이 어쩌면 인간의 면면을 벗겨보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라 나는 그 책들을 묵묵히 읽어나갔을지도 모른다.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한 유대인 소녀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내용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생존한 소녀가 써내려간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도 또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었다.

(내용 자체는 이미 충분히 다른 독자들이 써주리라 생각하기에 또 충분히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기에 여기서는 뒤로 잠깐 남겨둔다.)


나는 이 작가의 문장 자체가 놀라워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시인이라 그런 것일까. 


작가의 문장은 굉장히 리드미컬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리드미컬하다라는 표현이 맞지 않다하더라고 실제로 그렇다.


예를 들면, 

첫페이지의 첫 문장은 이렇다.




'죽음이, 섹스가 아니라 죽음이 어른들의 숙덕거린 비밀,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귀기울인 비밀이었다.'


처음에 읽으면 '응?' 싶다. 그러나 우리는 금방 다시 눈을 앞으로 돌려 읽으며 이 내용을 파악한다.

차라리 시로 쓰면 더 이해가 편하다.


-

죽음이

섹스가 아니라 죽음이

어른들의 숙덕거린 비밀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귀기울인 비밀이었다.

-


멋지지 않은가. 

나는 이 첫문장을 읽고 나도 모르게 헙,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식의 문장은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계속 된다.


또 멋진 구절이 있다.

드디어 뉴욕,으로 온 그녀의 이야기의 첫 구절이다.


'이주자들의 도시란 토착민이 이주민과 어깨 너비만큼 거리를 두는 도시, 

어중이가 떠중이와 뒤섞이지 도록 신경쓰는 도시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 곧장 머릿속에는 이 도시의 느낌이 훅 떠오른다.

마치 가상현실처럼 나는 그때 그날의 뉴욕에 가 있는 것이다.

토착민이 이주민과 (멀지도 않은) 어깨 너비만큼 거리를 두는 도시다.

그런 것이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만 같다.

이렇게 살짝 비껴 보는 것, 저 너머로 그러나 띠껍게 쳐다 보는 것, 

그리고 '어중이가 떠중이와 뒤섞이지 않도록' 이라는 표현에서도 안다.

그렇게 원래 그곳의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경계하면서도 또 무시하지만 

그렇다고 쫓아내거나 혹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 그 도시의 분위기를

이 문장 하나로 온전히 나타낸다.

게다가 어중이와 떠중이라니, 그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녀의 책은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확 오는 책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 작가의 대단함이 또 한 번 발휘된다.

이 책은 독일어로 쓴 책이다.

심지어 작가는 독문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받고 독일어 교수로도 재직했다.

가해자의 언어로 쓰여지길 원했던 작가.

나는 이 복잡하지만 단호한 작가의 마음에 경이로움을 표하고 싶다.



모르겠다.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재주가, 그리고 독일어로 출판을 했던 이야기들이 

어쩌면 이 책을 판매하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이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이유에서든 이 책에 대해서 환영하고 감사한다.

그로 인해, 그날 그곳에 없었던, 그러나 그날에 대해 알고 싶은

동양의 한국에 있는 한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이 감사하다. 

이렇게 한국에서 출판되어 나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쟁 속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야기들을 읽으며 잔인하다거나 끔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전쟁이 끝나고, 그녀가 일상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그곳에 그녀의 기억과 마음에, 감정에, 전쟁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 가슴이 아프다.

한 번 생긴 그 충격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내 마음과 몸 속에 남아서

그렇게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우리 모두 다시 이 책을 찬찬히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는 이 이야기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반복된다면 이보다 더 끔찍할테니,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y*******n 2018.12.24.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회상록《삶은 계속된다》루트 클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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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의 기록이다.작가 루트 클뤼거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후에 1945년 2월 어머니와 함께 극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다.어쩌면 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네의 일기 같은 문학, 쉰들러 리스트 등의 영화, 몇 편의 다큐멘터리.그런 것들로 유대인 대학살, 강제 수용소를 안다고 생각
" 회상록《삶은 계속된다》루트 클뤼거" 내용보기

2차대전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의 기록이다.
작가 루트 클뤼거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후에 1945년 2월 어머니와 함께 극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다.

어쩌면 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네의 일기 같은 문학, 쉰들러 리스트 등의 영화, 몇 편의 다큐멘터리.
그런 것들로 유대인 대학살, 강제 수용소를 안다고 생각했다.

작가 클뤼거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삶은 계속된다>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앞서 얘기한 책, 영화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으로서 게토와 수용소에 끌려간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정도 아는 상황들도 많았지만, ‘당사자’의 입으로 직접 서술된 글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고통스럽고 경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독자들은 루트 클뤼거의 현재를 알고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600만명의 희생자가 있었지만 그런 비극을 가까스로 피한 생존자들도 있다.
다행히 클뤼거는 그 생존자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충격이더라도 어느 정도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 회상록은 그러한 예상과 기대를 여지없이 깨트린다.
현재 살아남아 미국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해서, 독일이 반성하고 수용소를 박물관으로 기념한다고 해서 루트 클뤼거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이 치유된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 강제 수용소는 연합국에 의해서 해방되었고 소수의 수감자들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루트 클뤼거가 보기에 이 역사가 완전히 해석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홀로코스트 (생존의) 기억이라는 것이 단일화되고 추상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작가 스스로 본 자서전을 통해 이러한 본질을 전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작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1930년대를 보냈고, 열한살에 처음 게토로 이주당했다.
두 번 더 수용소를 이동하였고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빈, 열한살, 여성, 체코의 게토와 강제수용소들. 이런 경험은 루트 클뤼거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들이다.
그런데 전후 前後의 홀로코스트 기념 문화라는 것은 각 개인들의 경험을 ‘평준화’했다.
작가의 이 평준화라는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수용소를 박물관으로 만들고, 여러 가지 물건들을 모아 기념물을 만드는 것.
이것들이 문제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루트 클뤼거는 이러한 ‘추념 문화’가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이 책이 발표된 해는 1992년이다. 이 즈음에 많은 사람들 특히 독일인들은 그래도 충분히 홀로코스트를 반성하고, 진심으로 추모하고 기념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루트 클뤼거는 자신의 고유한 과거 경험을 낱낱이 밝히면서, 독일의 그러한 모습을 비판한다.

상당 부분을 문학적인 비유법으로, 그리고 때로 시 詩로서 비판을 하는 루트 클뤼거.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법은 낯설고, 시는 더욱 난해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친절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굳이 쉽고 평이하게 서술하려고 하지 않고 비유적이고 모호하게 격렬하게 토로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어 문화권의 역사, 문학은 또 그대로 잘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분명 이 책이 상정한 일차 독자는 독일인이다. 다음은 독일계 미국인,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 다음 독자일 것이다.

번역이 부실했다면 어쩌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책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최성만 번역가의 꼼꼼한 번역은 책장을 넘기게 하는 일등공신이었다.
1930년대의 오스트리아를 이해할 수 있었고, 루트 클뤼거의 분열적인 표현들을 덕분에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 읽어도 역시 뭔가 정리는 되지 않는다. ㅠ
루트 클뤼거의 <삶은 계속된다>라는 텍스트 자체가 뭔가 정돈된 메시지를 전하려 한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홀로코스트가 단일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는 것. 이것 하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민족, 종교, 성별, 심지어 계급까지 얽혀 있었던 거대한 심연 深淵 이었다는 것.

작가는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가해자들을 악마화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에 건너와서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유대인으로 자신을 애써 포장하지도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관계, 친지들과의 불화, 독일인들과의 갈등.
어느 것 하나 숨김이 없이, 가감없이 드러낸다.
까발린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표현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책은 전반적으로 거침이 없었고, 격렬했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가 통과해 나온 홀로코스트의 실체가 어땠는지를 드러낸다.

물론 겪지 않은 사람들이 핵심을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적어도 얼마나 처절했는지, 처참했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작가가 글을 쓴 1992년. 탈출한 지 수십년이 지나 자유 세계에 살면서도, 저자는 억압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족쇄가 루트 클뤼거를 옥죄고 있었다.
<삶은 계속된다>는 사슬을 끊고 독일인들과 대화하기 위한 작가의 애끓는 외침이었다.

26년이 흐른 지금은 작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번역자를 통해서 2016년의 행보를 하나 전해들을 수 있었다.
독일이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메르켈 총리가 발표했을 때 루트 클뤼거가 찬사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 일 하나로 작가의 현재를 판가름 할 수는 없을 터다. 그래도 뭔가 아주 약간이나마 안도를 하게 된다.

홀로코스트를 증언하는 기록 문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 책
<삶은 계속된다> 였다.


【책에서】

철조망 너머 있던 사람 모두가 똑같은 건 아니었다. 강제수용소라고 모두 같은 건 아니다.
실제 현실은 사람마다 달랐다.
( 105쪽)

나중에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제일 속상했던 것은 수용소마다 가장 잔인한 이기심이 작동했으리라는 추측, 그래서 수용소에 있다 나온 자는 도덕적으로 무너진 자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내 눈에는 전부 오해고 편견이었다.
( 115쪽)

내 팔에 새겨진 점자 A-3537은 오늘날까지 선명하다. ‘A’는 높은 숫자를 뜻한다. 그 이전에 수많은 살해가 벌어졌다는 뜻이다. 그것은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재현되는 것과는 달리 ‘아우슈비츠’라는 뜻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부정확한 이야기들을 접하면 화가 난다.
무엇보다 그러한 것들은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한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기억을 일축해버리는 상상물이다.
( 146쪽)


브루노 베텔하임 같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르주아 교육을 받아 망가지지 않고 균형 있게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아우슈비츠 같은 장소에 간다면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편집증 발병 위험이 있는 강박신경증 환자들이 아우슈비츠에서 가장 먼저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사회의 질서 또는 무질서가 자신들의 망상을 따라잡은 곳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사랑처럼 인간적 특성인 이성도 우리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우슈비츠에서는 사랑도 이성도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163쪽)

시몬 베유는 거의 모든 오락문학을 미심쩍게 여겼다. 오락문학에서는 대개 선이 지루하고 악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현실과 정반대다. 어쩌면 선을 쉽게 통속화하는 남성보다 여성이 선에 대해 더 많이 알 것이다.
시몬 베유는 선이란 그 자체 말고는 마땅한 이유도 없고 다른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었다.
( p.168)


수용소 바깥 자유 속에 있었던 자는 범죄자들만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고 쉽게 생각하고 그에 대해 많이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면 강제수용소에서 범죄를 배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다시금 강제수용소는 그렇게 끔찍하지 않았다는 확신, 그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가 바로 그곳을 견뎌낸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집요한 확신, 역시 널리 퍼져 있는 그 확신과 모순 관계에 있다.
이렇게 그들은 죽은 자들에게는 명예를 주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 245쪽)


이처럼 다듬어놓은 옛 경악의 잔재는 감상적인 기분으로 잘못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잔재는 대상을 그저 표면적으로만 환기하고 감정의 자아도취로 끌고 가지 않느냐는 말이다.
(p.379)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서 책을 제공받아서 작성되었습니다.)

b********5 2018.12.13.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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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삶은 계속된다 _ 담담한 '루트 클뤼거'의 이야기
"책 :: 삶은 계속된다 _ 담담한 '루트 클뤼거'의 이야기" 내용보기
수용소 공간을 당시 모습 그대로 묘사하려 드는 건 어리석다. 그러나 우리 시대와 수용소 시대 사이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 또한 불합리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온, 아무도 읽으려 들지 않았던 책들에서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우리 생각을 바꾼 그 책들 때문에라도 지금 수용소들에 대한 이야기하면서 마치 내가 최초의 인
"책 :: 삶은 계속된다 _ 담담한 '루트 클뤼거'의 이야기" 내용보기

수용소 공간을 당시 모습 그대로 묘사하려 드는 건 어리석다. 그러나 우리 시대와 수용소 시대 사이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 또한 불합리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온, 아무도 읽으려 들지 않았던 책들에서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우리 생각을 바꾼 그 책들 때문에라도 지금 수용소들에 대한 이야기하면서 마치 내가 최초의 인물인 듯, 아무도 이야기한 적 없는 듯 읽고 있는 사람 모두 그것에 대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지 않은 듯, 이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나 심미적으로나 통속물로 착취되지 않은 듯 이야기할 수 없다. _ 『삶은 계속된다』, 100쪽

 

 

누군가 말한다. 홀로코스트의 때 기억만을 기록하는 건 어리석다고. 그리고 홀로코스트 때와 지금 사이의 간극을 무시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덧붙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역사와 그 역사 가운데에 서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 부족함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기록한 책과 누군가는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 누군가의 이름, 바로 루트 클뤼거다. 그녀가 기록한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은 얼마나 특별할까. 아니, 어떻게 다를까. 사실 별로 특별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자신의 자서전을 쓰듯 기록한 『삶은 계속된다』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홀로코스트를 겪기 전과 겪으며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이 중심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의 변화를 기록했다.

 

자신의 기억이 절대적이라고도, 홀로코스트의 전부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가장 정확한 기억들이야말로 허위에 이르도록 유혹한다. 그 기억들은 기억 아닌 그 무엇에도 응하지 않으니까. 또 판단력을 기르고 지식을 쌓으면서 구축한 생각에 기억 자신을 맞세워 가두고, 그리하여 비교 가능한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못하게 하니까."라고 말한 그녀는 기억이란 개인의 삶 속에서 다르게 자리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삶은 계속된다』는 유대인이며, 여성이었기 때문에 마주했던 일에 대하여 말한다. 이 기록은 빈, 수용소에서, 독일에서(탈출하며 겪었던 일, 해방을 맞이하고 겪었던 일) 그리고 미국에서 있었던 일로 나누어 설명한다. 공간에 따라, 그 공간에 있었던 나와 지금의 나가 교차되듯 기록한 글은 섬세하다. 어린 소녀로 수용소에 생활하며 느꼈던 공동체 의식, 의사였던 아버지에 대하여 또래 집단에게 우월하기 말하고 싶었던 심리, 평생을 함께 했던 어머니에 대한 마음 등에 대하여 불편할 정도로 솔직하게 썼다.

 

그녀의 기록은 친절하지 않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둔 글이 아니고 자신에게 집중한 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 체계를 글로 옮긴 듯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며 답을 했다. 유대인을 위한 글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밝힌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 섣불리 공감하거나, 동일시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러분은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런 동일시를 하지 않으면 더 좋겠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에게 '낯선 종류'의 인간으로 비친다면 나는 그것도 (내키지는 않지만) 받아들이려 한다. 내가 이런 사악한 말을 해서 여러분을 화나게 했다면 사과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 속에서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길 원한다. 자신의 생각에 젖어들거나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한 발짝 멀리서 떨어져서 최소한 갖추어야 할 태도로 (논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폭력으로 뿌리 뽑힌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또는 무엇을 바랐는지 묻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기 바란다. _ 『삶은 계속된다』, 202쪽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사람에 대하여 그 이전부터 삶과 그 이후의 삶을 분리한 채 바라본다.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참극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묻어난 폭력성을 간과한다. 루트 클뤼거는 이 두 가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공론화하고자 했다. 인류가 얼마나 참혹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를 말하기 보다, 일평생 고통에서 자유할 수없이 삶을 계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감히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비극(굶주림, 억압, 차별, 고정관념 속에 갇히는 모든 일)과 함께 죽음에서 멀어지는 삶의 기록이었다. 『삶은 계속된다』는. 그녀는 참혹한 일을 겪었고, 이후에 또 다른 어려움이 이어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고 싶었고,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거대한 폭력에 의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없는 와중에도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 의지가 그녀의 '시' 속에 담겨 있다.

 

 

친애하는 여성 독자여, 여기 이 책과 같은 책들은 서평에서 종종 '감동적'이라고 칭해진다. 그런 표현은 안성맞춤이다. 아니, 아첨이다. 내 회고록에 대해 서평을 쓰며 그렇게 표현한 누군가는 여기까지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_ 『삶은 계속된다』, 251-252쪽

 

 

감동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기보다 담담함이었고, 제목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이 이어져 나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외침이었다. 생존자로 삶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간다는 진솔한 그녀의 이야기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찌르는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책을 빠르게 읽는 내가 오랫동안 『삶은 계속된다』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g*****9 2018.12.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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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홀로코스트 기억과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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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읽으면서 이 책은 지금까지의 많은 홀로코스트 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한다고 느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자의 달관이거나 비관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그건 정답이 아니다.저자는 유대인을, 그리고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두지만 희생자의 위치에 두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피해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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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읽으면서 이 책은 지금까지의 많은 홀로코스트 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한다고 느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자의 달관이거나 비관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그건 정답이 아니다.


저자는 유대인을, 그리고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두지만 희생자의 위치에 두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피해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저 어떤 범죄의 피해를 당한 것일 뿐 가치 중립적이다. 희생자만이 숭고한 선함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저자 루트 클뤼거는 핍박받는 민족이라 선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거부한다. 가스실에서 죽어간 이들이 숭고한 인간 정신의 희생자로 불리는 것은 후대의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어린 눈에 비친 유대인 어른들의 모습은 때론 비겁하고 무기력하며 사악하기까지 했다.


또한 가해자로서의 독일인에 대해서도 신랄하다. 특히 전후세대들이 홀로코스트의 본질을 미화하는 태도에 대해 '늦게 태어난 은총'이라는 쇼파에 앉아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기존의 홀로코스트 문학(영화 및 텍스트를 포함하여)과 이 책이 다르게 읽혀야 하는 이유다.


단발마의 고통 속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밟고 올랐고 그래서 남자들 시체는 늘 위에, 아이들 시체는 맨 아래에 있었다. (P.43)


자기나라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희생자들을 높이 치켜세웠던 울타리칠 젊은이들과는 반대로 기젤라에게는 일어난 모든 일을 자신의 제한된 표상세계에 정리해넣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모든 전쟁 체험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독일의 양심이라는 유일무이한 공통분모로 녹여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P.108)


루트 클뤼거는 1931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유대인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유년의 기억이 시작될 즈음에 이미 반유대주의가 팽배하고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분리가 일상화되어 있었다. 바로 빈에서의 그 기억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두들 쉬쉬하면서 전쟁을, 죽음을 이야기하는 숨 막히는 공기들. 폐쇄되는 학교와 전학, 들어갈 수 없는 극장. 무엇보다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녀 역시 11살의 어린 나이에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로 끌려간다.


나는 사회규범의 대부분을 (내가 알고 있는 규범은 결코 적지 않고 나는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자랐다)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아이들을 보호한 젊은 사회주의자들과 시오니스트들에게서 배웠다. 아이들을 보낼 때까지 또는 자신들이 이송될 때까지 아이들을 보호했던 그들에게. (P.130)


그 후 아유슈비츠 비르케나우를 거쳐 크리스티안슈타트 노동수용소로 이송된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독일의 패색이 점점 깊어져가는 1945년 2월 '죽음의 행군'도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출한다. 독일 피난민들 속에 숨어 독일인 행세를 하며 살아남는다.


그녀는 극한 상황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승리라는 포장지를 거부한다. 탈출에 성공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로또 맞은 것일 뿐이며 그것은 통계 법칙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희망이 자신을 구한 것도 아니고 삶이 아름다워서 그런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희망을 품는 것은 의무였다.

희망이 삶을 지탱해 준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희망은 기실 불안의 이면이니 삶을 지탱해 주는 건 불안일지도 모른다.

절망만이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들고 희망은 비겁하게 만든다. (P.133)


책은 수용소 탈출 이후의 삶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독일과 뉴욕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얘기하면서 저자 자신에게 유년의 기억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독자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데는 망설여진다. 누구나 유년의 기억은 그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그걸 모두 트라우마라고 부르지 않듯이 그녀도 그저 그녀의 이후 삶을 살았고 기록했을 뿐이다. 그래서 삶은 계속되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어린아이였다. 무엇보다 여자였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야 한다. 그녀가 표방했다기보다는 그 자신이 여성이기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여성주의가 책 곳곳에 있다. 그녀의 삶은 어머니를 비롯하여 대부분 여성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우정을 끈끈이 이어오는 대상도 네 명의 여성이다. 책에서 비중 있게 나오는 남성은 아버지와 의부 오빠 그리고 독일에서 만난 크리스토프 정도이다.


전쟁은 남자들 일이라 전쟁 기억도 남자들 문제요, 파시즘 자체도 찬성했든 안 했든 남자들 일이니까. 심지어 여자에겐 과거가 없다. 아니, 과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여자의 과거란 태반이 섬세하지 못하고 점잖지 못하다고들 하니까. (P.15)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의 보호와 비호를 받는다는 오래된 관념 또는 편견을 마음 깊이 각인하고 내면화해 가장 명백한 사실을 간과한다.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건 노약자들과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들이라는 것 말이다. 나치가 여자들까지 심하게 다루지는 않으리라는 말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와 모순되었다. 말도 안 되는 가부장적 단견으로 기사도 정신 따위를 믿었단 말인가? (P106)


거봐, 시몬은 더 나은 세상에서 태어났더라면 곧바로 조종사가 됐을 거야. 걔는 원래 그걸 좋아했으니까. 나는 애널리즈에게 말했다. 당시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더러운 세상이라서 그러지 못한 거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P.319-320)


그녀는 자신을 희생자로 동정하지도 말고, 생존자로 치켜세우지도 말라고 단호히 얘기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강인함을 인정해달라고 말하는 듯도 하다. 이 책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그녀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우리는 이 책을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한다. 시대에 잠식당한 자가 쓴 홀로코스트 문학으로, 상처받은 한 인간의 고백록으로, 그리고 날카로운 여성주의 증언집으로 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g******e 2018.12.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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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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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가장 어린 유대인 루트 클뤼거.그녀가 세상에 꺼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말이다.그녀의 어린시절은 유대인이 공원 벤치에 앉는 것이 금지된 시대였다.영화관에도 갈 수 없었고 베이커리에도 갈 수 없었다.어린 시절 그녀의 기억은 학대와 굶주림만 가득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수용소에 갇혀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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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가장 어린 유대인 루트 클뤼거.

그녀가 세상에 꺼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말이다.

그녀의 어린시절은 유대인이 공원 벤치에 앉는 것이 금지된 시대였다.

영화관에도 갈 수 없었고 베이커리에도 갈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기억은 학대와 굶주림만 가득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수용소에 갇혀 살아야 했고,

몸에는 수인번호를 새겨야 했으며 죽은 사람들로 가득찬 트럭을 마주해야 했다.

이 어린 소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유대인의 핏줄이라는 것 말고는..

참담한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 한장 넘기기가 힘들었다.

끔찍하고 참담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도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경험한 역사가 아니기에 함부로 입에 담을 수는 없지만

아마 그녀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힘들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현실에서도 그녀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날의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한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물로 남겨졌다.

인간이 인간을 잔인하게 학대했던 시절.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될 때면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다.

특히 여성이기에 당해야만 했던 성적 착취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나게 된다.

우리는 그런 그녀들에게 용서라는 단어를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뼛속까지 사무치는 그녀들의 고통과 원망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쉽게 용서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건 아닐까.

끊임없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책의 원제 <Weiter Leben>는 '계속 살아가다', '(기억속에) 살아남다', '(정신이) 계승되다'의 뜻을 담고 있다.

그녀의 고백은 앞으로도 계속되어 독자들의 가슴속에 큰 울림을 남길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0 2018.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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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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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역사나 전쟁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내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인생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서였다. 평범하게 살았던 유대인 부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면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다룬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가스실로 향하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 앞에서 장난치며 멀어져가는 모습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 내용보기


세계사의 역사나 전쟁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내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인생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서였다. 평범하게 살았던 유대인 부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면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다룬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가스실로 향하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 앞에서 장난치며 멀어져가는 모습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 충격 이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 책은 나치 지배 시절 어린 시절을 수용소에서 보내고 가까스로 생존하여 탈출한 유대인 여성 루트 클뤼거의 자전문학이다. 루트 클뤼거는 의사인 아버지와 공장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중산층 가문의 자식이다. 성장기에 나치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면서 유대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시작되었고 열 한살의 나이로 수용소로 압송된다. 최근에 출간된 책은 아니라, 초판이 1992년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오기까지 26년이 걸렸다. 출간 당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수많은 문학상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문학을 연구한 저자 루튀 클뤼거가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다보면, 문학에 대한 그녀의 지성과 인간 존재의 사유에 대한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은 총 4부로 나뉜다. 1부는 루트 클뤼거가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된 유대인 차별과 가족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부에서는 열한 살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끌려가게 된 수용소 생활이 담겨있다. 체코의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절멸수용소 아우슈비츠를 걸쳐 그로스로젠수용소의 부속인 크리스티안슈타트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다른 수용소로 이동하던 중 극적으로 탈출하게 된다. 3부에서는 가까스로 탈출한 그녀가 독일 피난민들 사이에 섞이게 되면서 당시 겪어야 했던 상황을 담고 있다. 4부는 어머니와 함께 건너간 미국에서 시작한 일과 공부, 결혼생활 등의 본격적인 행보를 그리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은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고, 읽는 내내 어린 소녀의 눈에 펼쳐진 그 광경에서 지극한 공포의 고독과 극한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수용소에 수감되기 이전에 나치의 유대인 차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빵집에 걸려있던 간판, 시커먼 터널을 지나가는 전차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손에 쥐어준 오렌지, 옷에 별을 달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열등인간으로 구분하게 해야했던 일, 압송되는 기차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자신과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가는 기차에 손을 마구 흔드는 어떤 소년의 모습하며, 인간이라는 모든 권리와 인격이 없는 암흑의 시대의 모습은 너무나도 비참했다.


여러가지 생각도 교차했다. 현재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홀로코스트를 추모하기 위해 수용소들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독일인의 반성 태도를 높이 여기며,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하고 억압된 사람들을 추모한다. 만약 내가 루트 클뤼거와 같은 삶을 겪었더라면 그들을 용서를 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상황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과 탈출할 용기를 지닐 수 있었을까, 살아남은 내가 말도 안되게 당연히 누렸어야 할 자유를 다시 만끽할 수 있었을 때 생존자로써 다시 산다는 것에 대해 무엇을 해야할지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쟁과 학살, 그리고 홀로코스트 사건에 못지 않은 우리의 과거 상처에 대해 나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s 2018.12.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001. [유대인 소녀의 아우슈츠비츠 경험담] 삶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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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소녀의 회고록‘페미니즘’ 시각에서 아우슈비츠 경험을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삶은 계속 된다. 루트 클뤼거. 문학동네. 2018년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치에 대한 책을 여럿 읽었다. 한나 아보트의 책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문학동네의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사실 당첨되고 한참 뒤에 당첨 안내 글을 본 터라 별 기대 없이 주소 등록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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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소녀의 회고록
‘페미니즘’ 시각에서 아우슈비츠 경험을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삶은 계속 된다. 루트 클뤼거. 문학동네.

 2018년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치에 대한 책을 여럿 읽었다. 한나 아보트의 책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문학동네의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사실 당첨되고 한참 뒤에 당첨 안내 글을 본 터라 별 기대 없이 주소 등록을 했는데, 의외로 책을 보내 주었다.

 이 책, 정말 오래 읽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며칠에 걸쳐 읽었다. 편한 책이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다룬 만화 ‘쥐’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웠으니까. 하물며 그녀는, 10대 초반의 소녀였다. 성인이 겪는 아우슈비츠와, 소녀가 겪는 아우슈비츠는 분명 다를 터였다. 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상상 이상으로 힘겨웠다.

 중학생 때일까 고등학생 때일까. 아버지 책장에서 731부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을 삽으로 찍고, 삽으로 때려 죽이고, 차에 매단 채 차를 달리게 하는 등의 묘사가 적나라하게 책 곳곳에서 펼쳐졌다. 개 먹이를 먹이고, 개의 뒤에서 달리게 하는 모습이 가장 경한 묘사였다고 하면, 이 책에 나오는 참상이 어땠는지 조금은 실감이 날까.
 처음에는 그 모든 일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그 책에 나오는 묘사에만 집중했다. 인간의 존엄성조차 유지되지 않는 살벌한 공간. 하지만 그 이야기는 어느새 흥미본위로 흘러가버렸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타인의 슬픔은, 타인의 불행은, 그걸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는 어느새 흥밋거리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 이야기를, 루트 클뤼거도 하고 있었다.

 어떨까. 나는 정말로 아우슈비츠를 겪은 유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집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불행을, ‘즐기기 위해’ 이 책을 집었을까. 이 책이 읽기 불편했던 건, 그녀가 겪은 불행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 곳곳에 나오는, 타인의 불행을 함부로 재단하고, 타인의 불행을 함부로 평가하며, 나와 타인을 분리한 채 타인의 불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분노에 나조차도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느 쪽일까. 이 책을 덮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겪고, 그도 모자라 아우슈비츠까지 끌려간 소녀. 운이 좋아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수용소로 이송되어 다행히 탈출에 성공했다. 미군정 하에서 그럭저럭 인간답게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한 뒤, 교육을 받아 교수까지 된 루트 클뤼거.
 10대 소녀의 아우슈비츠 경험이라니. 이런 기분으로 읽는다면 아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표피만 건드릴 뿐 깊숙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을 즐기고 싶다면 실망스러울 책.
  대신 그녀가 당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썼던 시. 그리고 그 일들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 유대인. 여자, 이민자라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읽는 보람은 있을지도.
 이 책이 당신의 시야를 넓히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골드 t*******s 2019.0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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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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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루트 클뤼거/문학/회상록  안네의 일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리고 이 작품을 알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어린 유대인 소녀의 아픈 잔상이 뇌리에 꽂힌 것만으로도 우울함이 밀려들 지경인데, 이 과거의 아픈 흔적을 글로 담아낼 수 있는 용기 그 자체에 공감할 수 있는 독서 시간이었다.  '내게 아버지는 놀라운 광채를 발하는 폭군,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에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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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루트 클뤼거/문학/회상록

 

 

안네의 일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리고 이 작품을 알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어린 유대인 소녀의 아픈 잔상이 뇌리에 꽂힌 것만으로도 우울함이 밀려들 지경인데, 이 과거의 아픈 흔적을 글로 담아낼 수 있는 용기 그 자체에 공감할 수 있는 독서 시간이었다.

 

'내게 아버지는 놀라운 광채를 발하는 폭군,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에 끝내 신뢰할 수 없는 폭군이었다.'

 

 

아버지라는 존재, 좀 더 어려운 역사적 시기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큰 버팀목이 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아버지라기보다 타인에게 비춰지는 대중화 된 모습으로 형상화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닮은 소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이별이 더욱 애잔해 주인공인 그녀에게 아버지란 이름은 희비극적 이미지로 투영되는 건 아닌지.그 아버지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며 책 읽기를 진행했다. 결국은 아버지와의 작별,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그 당시 슬픔이란 여운이 저자이자 주인공인 이 작품의 내용에 서려 있다.현실적으로 어둡고 상막했기에 조금은 무거운 책 읽기.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홀로코스트'의 악몽일 것이다.

 

 

어머니와의 수용소에서 삶, 그 역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작가의 섬세하고 묵직한 필치로 쓰여진 작품같다.

거기서 만나게 된 사람들. 어머니의 의붓딸이자 양언니로 찾아오는 디타와의 관계는 수용소에서의 삶에 또 다른 영향력을 미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불안을 떠 안고 사는 유대인들. 그리고 주인공 클뤼거와 그녀의 가족들의 운명. '홀로코스트'란 악명 높은 존재가 기억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위해 박물관화 되어가는 것에 저자를 비롯해 이 책의 옮긴이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당연히 유대인이 겪은 죽음의 공포와 희생을 추억하는 의미에서 기념관 혹은 박물관의 탄생은 긍정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이 그저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단편적인 의미만을 서술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에 저자를 비롯해 독자인 나 또한 반대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으로 느끼고 아파하며 그들의 잃어버린 세월 혹은 희생의 값어치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법을 터득해보자. 저자 또한 자전거 사고를 겪으며 인식의 전환을 얻어, 자신이 십대 시절 잊고 싶었던 아픈 기억을 회상하듯 열정을 다해 이러한 회상록을 완성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진심이 어린 시선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 빠져들며 경건함을 유지하는 것이 이 책을 존중하고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의도와 상징성을 이해하는 묘미가 될 것임을 확신해본다.

삶에 부여 된 지속성과 더불어 숭고한 희생의 의미는 고결함이란 결과적 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u****i 2018.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