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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조금은 딱딱한 인문도서로만 만났던 알마 출판사에서 이렇게 말랑말랑한 제목의 책도 펴내는 줄은 몰랐다.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전남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남도의 풍경사진이 반을 차지하고 있어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이 책은 전남에 있는 아홉절터를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가장 먼저 끈 것은 바로 화순에 위치한 운주사를 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운주사는 많은 절 중에서도 내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절이다. 운주사가 처음 세상에 소개된 것은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이라고 한다. 관군에 참패한 장길산이 노비들과 숨어들면서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소설 4부에 나오는데 그 역모를 꾀하던 미륵의 땅이 바로 여기 운주사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운주사에는 고색창연한 법당이나 고승들의 부도밭 대신 산등성이 도처에 삐죽이 솟아 있는 돌부처들이나 길가 아무 데나 앉아있는 여러 모습의 부처들이 불안하고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고 한다. 그 모습들이 너무 처연하여 보는 사람들을 한없이 슬프게 만드는 사찰이라는 말을 듣고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사진으로 본 부처의 모습도 우리가 알던 황금불상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산기슭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부처를 보며, 세상살이의 숨은 이치라도 배울 겸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가서 고집스런 마음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포용성을 배우고, 나를 낮추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덕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노천에 앉아있는 부처님의 모습이나 입이 없는 불두의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이미 파불이 된 부처님도 버리지 않고 있는 곳이 운주사다. 이런 지난한 부처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운주사 절터는 버려진 폐사지가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폐사지를 찾아가는 길과 그 풍경들의 사진 역시 아름다워서 이 책 자체가 한 권의 사진첩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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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정말 편견이 무서운 듯 싶다. 폐사지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듣고서 이 책을 선택한 것도 난데, 이 책을 보자마자 지은이의 말이나 행동이 너무 감상적인 것 같아서 짜증이 났었다. 그래서 책을 한동안 못 읽고 있었는데, 웬 심경의 변화인지 다시 펴들고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과 운치있는 절터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오롯이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참 변덕이 죽 끓듯 하다. 이번 책은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 전남편」이다. 전라도는 나와는 한 번도 인연이 닿지 않아서 갈 기회가 없었던 곳이고 그런 연유로 인해 항상 가고픈 고향이다. 이렇게 책으로나마 접해보는 전남편이지만 그 풍경과 향취가 그립다. 책 표지에도 표기되었듯이, 글과 사진이 모두 지은이 이지누 씨의 작품인데, 다른 여행서와는 다르게 적재적소에 사진이 등장한다. 그런 책을 읽다가 제일 짜증났던 때가, 글로는 맛깔스럽게 묘사해놓은 부분에 대한 사진은 항상 빼먹는 책들이다. 특히 해외여행서들은 그런 경향이 다분한데, 아마도 이 책은 단순한 여행안내서나 여행기라기보다는 꼼꼼한 눈썰미가 필요한 답사기이기 때문에 달랐던 것 같다. 답사기에는 어디로 갈지 어떤 절을 먼저 이야기할지 등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 정서도 분명히 반영하겠지만, 문화유적에 대해서는 사진과 글로 꼼꼼히 기록해놓은 듯하다. 그래서 내 맘에 쏙 들었다. 앞부분에는 탑이나 부도탑, 혹은 탑의 한 부분인 귀부나 이수와 같이 아주 자그마한 유적일지라도, 그것이 그곳에 절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니 무늬나 기법까지 세세하게 묘사해놓으면 뒷장에는 어김없이 그것에 대한 사진이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향에서 문외한이 이해할 수 있는 각도를 가지고서 말이다. 진도 금골산 토굴터, 장흥 탑산사터, 벌교 징광사터, 화순 운주사터, 영암 용암사터, 영암 쌍계사터, 강진 월남사터, 곡성 당동리 절터, 무안 총지사터로 총 아홉 개의 절터를 소개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아름답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다. 자연과 항상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절이란 곳에 대해 심각한 고찰을 해본 적조차 없던 내게 이 책은 절도 사람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 살아숨쉬는 이야기가 그리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징광사터의 이야기에선 조선시대에 와서 각 절마다 종이 만드는 부역을 과도하게 강제로 시키곤 할당량을 못 채우면 돈으로 거둬가는 일들이 많이 벌어져 결국 중들이 그 부역을 이기지 못해 도망가고 폐사된 절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중들의 삶이 그리 만사형통하지는 못했을 것이란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강제 부역에 동원될 정도로 배려가 없었단 사실이 정말 놀랍고도 안타까웠다. 모든 절의 행정이 시주로 이루어지는데 그들이 무슨 돈이 있으며, 또한 속세를 떠나 도를 닦으러 들어왔지만 오히려 속세에 이용만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유학자들의 속내가 정말 추악하게 느껴졌다. 물론 고려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불교가 변질되어 정말 추악하게 변해버린 많은 중들도 있었을 줄 상상되지만 힘없다고 아예 깔아뭉개는 짓은 정말 아니올시다다. 게다가 용암사터에서는 중들이 일개 종들처럼 절에 놀러오는 유학자들의 가마꾼 역할까지 해야 했다니 정말 끔찍하다. 오히려 먹는 것이라도 든든하게 먹고 살고 팔자 늘어지게 살아가는 유학자들은 제 발로 산에 오르면 다리에 뿔이라도 나는가 싶다. 아무리 유학자들이라도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른단 말인가. 어쨌거나 여러 사연들이 구비구비 들어가는 절터에는 항상 생동감이 넘칠 수 밖에 없다. 언제 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여염집으로 바뀐 구슬픈 사연도 있지만 분명 절터였으나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인해 절터가 아닌 절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사연도 있다. 그곳이 바로 화순 운주사터인데, 황석영 소설가의 《장길산》으로 인해 절터였지만 이제는 어엿한 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절은 이상하게도 법당이 없고 그저 중간 중간 탑들과 더러 더러 깨지고 목이 잘린 혹은 목만 남은 돌불상만 군데 군데 위치할 뿐이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본 운주사터는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었다. 부처님께 공양하러 온 절이 아니라 민중들의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장소라서 그런지 이 운주사터는 초파일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추석 5일 전후라고 한다. 그것도 신기하고 새로울 뿐이다. 절이나 절이 아닌 그런 곳이라니,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책을 보고 어디론가 가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장길산》을 읽고 운주사터로 떠나가볼까 싶다.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했던 전라도이니, 겸사겸사 기회가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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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좋은 책의 저자로 기억된 이의 신간을 읽게 되는 것은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과 《관독일기》를 통해서 알게 된 작가 이지누의 전라남도 폐사지 답사기를 유쾌한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국내 글쟁이들 가운데 폐사지의 아름다움과 옛 이야기를 기품있게 파고드는 대표적인 문인이 바로 이지누 선생이다. 허물어져 사라진 절터를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하나하나 밟아나서며 허물어짐과 비어있음의 의미를 바삐 돌아가는 거친 세상을 살아내느라 숨 쉴 겨를 조차 없는 회색빛 도시인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저자는 80년대 후반부터 구산선문 답사를 하며 불교문화를 익힌 20여년 경력의 '폐사지 박사'인 셈이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술담배를 하며 거액의 도박판을 벌인 조계종의 추악한 땡초들보다 이지누 선생처럼 폐사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적멸의 미학을 몸으로 체현해나가는 이가 진정한 구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전라남도 폐사지 9군데와 남도의 불교문화를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정신 없는 회색 도시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진도 금골산 토굴터, 장흥 탑산사터, 벌교 징광사터, 화순 운주사터, 영암 용암사터, 영암 쌍계사터, 강진 월남사터, 곡성 당동리 절터, 무안 총지사터 등이 남도의 대표적인 폐사지인데 책 군데군데 다음과 같은 예스런 멋을 지닌 문장과 더불어 100여장의 다양한 컬러 사진이 인적이 끊긴 폐사지의 정취와 기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
"맑은 새벽의 산 향기가 향공양을 올리고, 이제 막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이나 하얗게 피어나는 억새가 헌화공양을 올리니 순례자는 머리 숙여 절을 할 뿐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가파른 절벽 위가 아니라면 108배라도 마다하지 않으련만, 한 발 디디기조차 마땅찮은 것이 못내 아쉽다."(51-4쪽)
천관산의 아육왕탑이나 연대봉을 보니 내가 다녀 본 사찰들 가운데 시쳇말로 '영빨'이 대단했던 중국 장가계의 천문산사가 떠오른다. 중국 천문산의 영기가 남도 천관보살의 기운과 중첩되며 다시금 내 몸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홀로 폐사지를 답사하고 톺아보는 와중에 저자의 영혼도 맑아지고 깊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깊은 산행이나 절터 답사야말로 도시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휴식의 방도가 아닐까 싶다. 제대로 휴식하려면 이 책을 펼쳐들고 더불어 전남의 폐사지로 답사를 떠나보자. 아홉 곳의 폐사지를 일일이 눈여겨 정독해도 되지만 오히려 녹차 한 잔 마셔가며 그 때 그 때 저자를 길동무 삼아 함께 톱아보고 싶은 곳을 찾아서 읽어가는 편이 더 운치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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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어있지만 어느 곳보다 가득 채워져 있는 곳! 바로 폐사지이다.
폐사지, 절터를 돌아보는 일은 무엇보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일반 여행과는 달리 폐사지 여행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 그냥 허허벌판인 폐허로 보일 수도 있고, 억겁의 세월이 켜켜이 앉은 풍요로운 곳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폐사지 여행이다.
나는 폐사지를 갈 때면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조금 먹먹하다. 호기롭게 지내던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도 다 빠지고 등허리도 구부정해진 무척이나 연로한 노인을 보는 것 같아서다. 단청으로 물들인 고운 옷은 다 헤어지고 이제는 구멍 숭숭 뚫린 누더기를 걸친 모습이랄까. 그렇게 수십 수백년동안 쌓인 세월의 무게 때문에 잠시나마 마음이 그런 모양이다.
폐사지에 남아있는 것은 기껏해야 몇 안되는 주춧돌과 다 부서진 석물들, 한 쪽에 외롭게 서있는 부도 정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금당의 위치나 규모를 어림짐작해보면 경주의 황룡사지, 양양의 선림원지처럼 전성기에는 꽤 큰 규모였겠다 싶을 때도 많다. 폐사지를 돌아보면 절이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세월의 더께가 느껴진다. 그 시간을 돌아보며 잠시 앉아있는 시간은 참으로 편안하다.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폐사지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폐허가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는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등으로 잘 알려진 이지누 작가의 폐사지 답사기 ‘전남’편이다. 많은 이들이 오래 기다린만큼 더 반가운 책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서는 영암 쌍계사터, 강진 월남사터, 곡성 당동리 절터와 화순의 운주사터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화순 운주사는 폐사지에 포함된 것이 눈에 띄면서도 그 타당성에 공감이 간다. 천불천탑 등 남은 유적은 있으되 전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는 곳, 그래서 어느 절터보다도 더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곳이 운주사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폐사지 여행은 상상력이 필요한 여행이다. 그래서 무턱대고 보다보면 그저 텅 빈 벌판을 보듯 무심하게 지나치기 일쑤다. 절집도 그렇지만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 낮에 볼 때와 밤에 볼 때 새록새록 다른 곳이 폐사지이다. 절터에 대한 사전 지식과 좋은 안내자가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순례자’라는 자신의 말처럼 폐사지 곳곳을 순례하며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저자는 절터와 마애불 등을 저자의 표현처럼 ‘톺아보는’ 시각으로 돌아보며 우리가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세세하게 짚어준다.
저자는 폐사지의 텅 빈 벌판을 그의 시각으로 가득 채워넣었다. 책을 읽다보면 동트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오래도록 그 곳에 머물며 절터와 함께 숨쉬고 대화하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 또한 부족한 경험이긴 하지만, 깜깜한 어둠속에 동이 터오기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마애불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지 간간이 경험할 때가 있다. 저자는 애정을 가지고 오래도록 머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꼼꼼히 알려준다. 그래서 그동안 듬성듬성 보고 지나쳤던 곳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후속으로 이어질 ‘전북’편과 ‘경주’편 등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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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년 한 11월쯤 그런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어느 특정 분야에 관한 서적은 국내 저자의 것을 절대 참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대단히 무리한 단언이며, 인정하고 싶든 그렇지 않든 국내 문화계의 수준이 꽤나 높아진 현실을 볼 때, 특정 분야고 뭐고 함부로 제외시킬 수 있는 사정이 이젠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지누 선생의 이 책은, 어느 분야에 포함시키건, 또 무슨 저작을 그 대조군으로 삼건 간에, 어떤 독자의 기준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좀처럼 보기 드문 '퍼펙트 북'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책은 그 전달하려는 내용을 단순히 활자 일변의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그림과 직접 찍은 사진 등을 잘도 활용하여 이른바 '소통'에 성공하는 일이 많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진정 작가의 입장에서 독자와 교감할 수 있는 모든 수완을 최대한 동원함에 전혀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상품으로서나 문화 미디엄으로서나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본디 '글'로 말하는(말하는?) 책 본분에서 다소 벗어나, 보충의 재료로 텍스트의 (행여 있을 수 있는) 빈틈을 메꾼 데 능한, 그저 '영리하고 스마트할' 뿐인 책을 에둘러 치켜 주는 말 정도로 받아들일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그 실린 도판을 모조리 제거하고, 그 적힌 문자만 고스란히 따서 읽어도 독자의 두뇌와 영혼을 충분히 살찌울 수 있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완벽한 책이다. 근래 이런 책을 처음 접한다 느낌이 들 만큼, 그 내용과 형식의 알참에 흐뭇한 충격을 받았다. 내용은 상품 소개란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기술적인 사항을 반복하지는 않겠다. 책의 제목을 이루는 구절은 진각국사 혜심의 선시(禪詩)에서 따 왔는데, 이 혜심은 국사책에도 나오는 송광사 주지를 지낸 고려 중기의 고승이며, 항몽 투쟁이 한창이던 고종 대까지 활약한 분이다. '국사'는 예컨대 문종의 아들 의천(대각국사)처럼 생전에 받은 칭호는 아니고, 입적 후에 왕으로부터 내려진 것이다. 莫與心爲伴 無心心自安 若將心作伴 動卽被心謾 우리가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우는 내용 중에, 以 A 爲 B 용법이 있다. A로 B를 삼는다는 뜻이다. 기구의 저 與~爲~ 도 그와 통하는 용법으로, 마음으로 동반자(伴)를 삼는다는 뜻이다. 맨 앞의 莫(막)은, 싸잡아 후치어구 일체를 금지하는 의미이다. 결구의 해석이 어려울까? 動은 앞에 주어가 생략되어 있으니 바로 心이다. "네가 짝하기라도 한 그 마음이 혹여라도 동하면, 이는 너라는 존재가 곧(卽) (네) 마음에 의해 속임을 당하는 바 됨이라. " 헤석을 하면 이렇게 풀린다. 하긴 본디 불가의 가르침이, 마음과 아(我) 일체가 공(空)이라 깨우친 바 있거늘, 긴 말이 무에 필요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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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에 대한 설레임으로 마음이 들썩들썩했다. 나는 불자도 아니고, 사찰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것도 아닌데 왠지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는 괜한 설레임이 생겨버린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문화의 근간이 되는 사적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그 흥을 더해가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얼마전에 국가에서 종교재단에 지원하는 보조액이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한 것보다 불교의 지원금액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정부의 어리석은 셈법에 격한 반응을 보였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사찰들에 대한 지원은 종교적인 지원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으로 봐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어리석은 셈법에 흥분을 하다가 문득 나 자신은 문화적인 측면으로 우리의 옛 사찰문화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버렸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은 더욱 반가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교계를 비롯한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민간설화는 모두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마저도 모두 기문이나 문집과 같은 것에 기록되어 있다해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버릴 것인가. 그렇게 신화나 설화를 하나씩 잃어버린 우리들은 도대체 얼마나 무미건조한 지경에서 살아갈 것인가. 신화나 설화는 꿈이며 상상의 출발점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와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그 내용을 증거할 만한 바위나 나무와 같은 자연물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조는 언제나 지난 시간에서 시작해 현재로 이어진다. 곧, '옛날에'로 시작해 '지금도'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56)
막연한 설레임으로 시작한 책읽기와 책을 통한 간접 답사는 기대 이상으로 더 좋았다. 그것은 아마 불교의 종교적 전승뿐만 아니라 민간설화와 신화가 뒤엉켜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이야기와 우리 강산이 한데 어우러지는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전남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의 폐사지를 가본적이 없다. 섬에서 태어나 자라고 뭍으로 나간다해도 유명관광지를 찾아다니고 오랜 옛 문화를 찾을때도 성당을 먼저 찾아다닌데다 가끔이라도 여행을 다니던 시절에는 사찰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구나 유명한 사찰도 많이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폐사지는 모두 낯설기만 하고 그래서 또 무척 새로운데 그중에 낯익은 곳이 한군데 있다. 오래전에 친구가 다녀온 후 블로그에 사진과 기행문을 남겼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언젠가 한번 꼭 가봐야겠다 생각했던 곳이 바로 화순 운주사이다. 더구나 그곳은 소설 장길산의 무대가 되었다는 곳이니 더욱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운주사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절터가 잔폐의 쓸쓸함에 휩싸여 고독함을 자아내건만 운주사에서는 비록 목이 부러진 석불이 나뒹굴지라도 잔폐라거나 고독 그리고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려지지 않는다.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꿈지럭거리는 것이 아니라 기세등등하게 말이다."(150)
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또 다른 묘미는 단순한 폐사지에 대한 답사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절터에서 가질 수 있는 궁금증에 대해 자분자분 이야기 나누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상상과 현실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의 뒤에는 반드시 언젠가는 나도 꼭 그곳에 가서 체험을 해 보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는데 이번은 그러한 마음이 갑절로 생겨난다. 그 설레이는 마음에 엉덩이도 덩달아 들썩이며 한층 더 들뜨게 되는 건 그의 글에 더해져 가만히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들 때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절터, 쓸쓸하면서도 평화로움이 깃들여있는 곳이면서 또한 여염집의 흔적으로 민초들의 생활력을 새겨보게 되는,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세상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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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라… 온전한 절도 채 둘러보지 못한 내게 폐사는 조금은 낯설은 세계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인적드문 폐사는 어떤 곳일까? 그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밀려오는 궁금증과 함께 제목이 이끄는 마력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폐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폐사도 한때 우리 조상들이 일가를 이루며 번성했던 소중한 장소였음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폐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사진과 함께 전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어 밥을 먹고 살았다던 저자의 글은 정말 사진만 찍던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사찰 이야기다보니 스님들의 법명이 어려워 일일이 구분하기가 힘든 부분은 있었지만, 불교 신자들이라면 아마도 이미 훤히 꿰고들 계실만한 이름들이지 싶다. 이번 전라남도편에서는 총 9개의 폐사지를 소개하고 있다. 진도를 비롯한 보성, 강진, 영암, 화순, 곡성, 무안까지 읽고나면 가보지도 않고서 이미 전라남도를 한번 쭉~ 훑고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단순히 사진에 대한 설명이나 짧은 느낌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고 정성을 들여 폐사지 하나하나 답사 하기를 여러 번 한 끝에 비로소 그곳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곳에서 느낀 바를 이야기 한다. 아울러 그 시대를 살다간 선조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소개해 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절절한 사연들이 많은 그런곳이 지금은 어떠한 처지에 놓였는지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비록 지금은 폐사지가 되어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만 기억되어지는 곳이 되어 버렸지만, 그곳에서 스님들이 세우고 주장했던 학문은 불교만이 제일이라는 설법이 아니라, 불교나 유교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며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종교만을 인정하고 다른 종교는 이교도라 비난하고 탄압하는 서양의 종교들과는 그 뜻이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넓었다. 새삼 불교의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산길이나 들길, 밭길 어디쯤이 그 옛날에는 커다란 대웅전이 있었고, 불상이 있었으며, 스님들이 매일 불경을 외던 곳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잠깐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책 속에 소개된 절터 중에 가장 마음이 간 곳은 영암 용암사터와 화순 운주사터였다. 운주사는 직접 가본곳이라 더 정이 가는 곳이었고, 용암사터는 가보지 못해 너무나 가보고 싶은 장소 1순위로 급상승했다. 산을 오르다 갑작스레 막딱뜨린 풍경에 저자마저도 경탄의 신음이 절로 흘러 나왔다던, 산중 깊은 곳에서 헌화공양을 받고 있는 용암사지 삼층석탑의 모습! 사진을 보고있는 나도 너무나 아름다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직접 본 저자의 감동은 더 말해 무엇하랴! 저자가 헌화공양을 받고 있다고 표현할만큼 탑을 둘러싸고 있는 진달래는 주위 풍경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사진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게 했다. 월출산의 높고 큰 바위에 마치 떠있는 것처럼 조각된 마애불은 또 어떤가! 저자의 엉덩이가 들썩일만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엉덩이도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올 가을에는 월출산에 꼭 한번 가볼 생각이다. 저자는 이번 전남편을 시작으로 전국의 폐사지 답사기 편찬을 준비중이라 한다. 전북편, 충청도편, 경기도편, 강원도편, 경주편까지 아직 나올 답사기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부자가 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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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 새벽에 맑은 공기를 맡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느낌, 그 속에 사람은 없고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고 앞서간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 느껴질 때, 그런 느낌을 받으며 자신을 보며 앞서간 사람들의 삶을 고민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 없이 세상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듯한 느낌. 한 마디로 조용하고 한적한 산길을 혼자 걷고 마음도 몸도 모두 깨끗해진 듯 한 느낌을 받은 책이다. 그렇게 저자는 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눈을 돌리지 않는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역사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 지냈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남도 수도에서 멀고 먼 곳으로 여겨진 그 곳에서 그렇게 사람들이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수행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자신을 정갈하게 하며, 세상사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자연과 역사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기도 한다. 그 장소가 아름답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곳에 깃들어 살았던 사람들조차 아름답지 않았던 곳은 없다. (6쪽) 지금은 그렇게 버려진 것처럼 놓여있고 아무도 찾지 않지만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지금도 그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 느끼는 저자의 모습에서 경건함 혹은 수행하는 모습을 찾기도 한다. 내가 죽은 후 화장을 하여 나의 뼈를 흩는 자는 백대의 원수가 될 것이니, 바라건대 이 작은 생각을 가련하게 여겨서 내 몸을 물가나 수풀 아래에 두어 새와 짐승들이 마음대로 먹게 하시오. 그리되면 이 몸을 잘 보시한 공덕이니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엎드려 빕니다. 여러 큰 도반들은 내 이 짓을 괴이하다 여기지 말고 이 못난 생각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다비하지 말기를 바라고 또 크게 바랍니다. (88쪽) 침굉선사의 유계라고 합니다. 절도 없고 그 분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 절터를 찾은 저자의 눈으로 이 유계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등바등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고 욕심이 넘쳐 도를 넘어선 사람들에게 주는 무언가의 따끔함을 찾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는 것인지 저자의 폐사지 여행은 그렇게 계속 이어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찾기도 하고 절터의 역사를 찾아가기도 하며 자신을 찾기도 합니다. 무엇에게로 가면 미처 그를 제대로 만나기도 전에 내 속의 일천하고 알량한 미술사가 앞질러 현학적인 잣대를 들이대곤 하던 버릇 말이다. 더구나 석조 유물과 같은 것들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았던 적도 있으니, 어찌 그것을 순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그것은 대상을 부분으로 만나느냐 혹은 전체로 만나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다. (185쪽) 폐사지를 찾아다니는 사람에게도 그저 한 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사람을 보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그렇게 폐사지를 돌며 사람의 모습을 찾고 자신을 찾고 배우고 반성하고 성찰합니다. 그 한적함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 것이 아마도 그렇게 저자가 폐사지를 찾는 이유가 아닐까요. 운주사는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운주사를 찾는 사람들 또한 스스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 높낮이가 없으며 넓이가 없는 점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운주사라는 점과 사람이라는 점이 만나면 높이는 여전하되 그 넓이는 무변광대해진다. (176쪽)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 같이 하나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을 찾는 것 같습니다. 찬란한 유적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함이 그렇게 살아있는 것도 아니지만 폐사지라는 곳에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하나 봅니다. 어쩌면 우리 일상에도 그렇게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저자를 따라서 산길을 오르고 산 길을 올라서 맑은 풍경을 보고 감탄하며 자연의 풍광에서 자신의 모습을 조금 찾고 온 것 같습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좋아하다 보니 어쩌면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마음이 조금 맑아진 듯 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책은 맑은 이슬 머금은 오래된 석상을 보여주며 맑은 정신과 상쾌한 느낌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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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하면 ‘아름다운 남도길’ 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나 역시 남도 사람이기 때문일까?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처음 이 책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고( 인터넷을 통한 광고가 없으면 새 책이 나왔는지 알지도 못할 뻔한 현실) 비록 폐사지이기는 하지만, 참 아름다운 남도의 답사길 정도로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선택하였다. <대구에서 태어난 작가 이지누는 우리 문화를 섬세하게 톺아보는 관찰자이자 기록자다. 길 위에서 만나는 순정한 풍경과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문화들을 이십 년 넘게 글과 함께 영상매체로 기록하고 있으며, 1994년부터는 금기시되었던 휴전선 일대의 문화기행을 주도하며 만들어진 '우리땅밟기'라는 문화답사 단체를 이끌고 있다. 여러 잡지나 신문의 사진편집위원과 편집인 그리고 논설위원을 거쳤으며 지금은 오로지 스스로의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 동안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강원도, 경상도편」, 「잃어버린 풍경1-서울에서 한라까지」, 「잃어버린 풍경2-백두산을 찾아서」, 「이지누의 집 이야기」와 「관독일기」와 같은 책들을 냈다.> - 출처: 네이버
나는 이지누라는 작가를 2000년의 초반, <디새집> 이라는 잡지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책은 ‘한국의 내셔널지오그라피’라는 평을 받을 만큼 훌륭한 책이었다. 이번 책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지만, 전체적으로 그가 펴낸 책들을 둘러보니 우리 역사, 특히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라는 제목을 보고 상상했던 것은 이 책이 폐사지 답사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고, 실체를 바라보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도의 아홉 군데 폐사지를 찾아 딛는 그의 발자국과, 그의 시선, 그의 마음결을 따라 책을 읽어가며, 이러한 제목을 붙인 까닭이 무엇일까? 찾아보고자 행간의 의미를 살피는데도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 답은 그냥 포기했다.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굳이 생각하여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 가는대로, 발길 가는대로 흘러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이 자연인 것이다. 나는 크고 화려한 사찰들보다 작고 아담한 사찰들이 훨씬 더 정겹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 책속에 소개된 천관산은 어려서 어느 바위 밑에 기도하러 갔던 기억이 있어 잊히지 않는 나름대로 강렬한 산이다. 지금은, 그 산 속에 자리한 수많은 불교적인 이야기들이 이지누를 통해 술술 들려오는 것이 또한 강렬하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아주 해박한 불교적인 지식이 담겨있고, 그렇다고 해서 식자의 권위가 묻어있지도 않고, 민중적이며(대중적이라고 할까?), 지극히 사적이기도 하다. 그냥 지나치고 말 수 있는 곳들도 그의 시선을 통해 참 아름다운 풍경으로 찍히우고, 그의 손끝을 통해 맛깔스런 이야기들로 새겨져 나온다. 특히 4장의 화순 운주사 터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작가에게 ‘운주사는 여전히 절이 아닌 절터’라고 하는 이 곳. 사찰순례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부분을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운주사 터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였으니, 자신있게 권하는 것이다. ‘그대,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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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하는 저자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지 궁금해지고는 한다. 한국문화를 섬세한 눈으로 돌아보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는 이 책의 저자는 일견 아마추어를 표방하지만 마치 프로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전라남도에 위치한 아홉 군데 폐사지를 둘러보며 느낀 감정과 함께 그곳에 깃들인 역사를 반추하고 있다. 그들 중 스스로 빼어난 풍광을 뽐내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가슴 아플 정도로 피폐한 모습인 곳들도 있어서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암자터가 세 곳이나 굴속에 있다는 진도 금골산 토굴터, 아육왕이 부처님 열반 후에 8만 4000기의 탑을 세웠는데, 그 중 우리나라에 세워진 탑 하나가 있다는 장흥 탑산사터, 이미 폐찰된 절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 있다는 화순 운주사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사진들과 글들은 참으로 순박하면서도 맛깔스럽다. 특히 톺아보다, 고졸함, 웅숭깊다, 엄벙덤벙 같은 단어들을 적재적소에 쓰고 있으며, 다양한 불교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종이 부역이 힘들어 승려들이 절을 떠났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사찰에 할당된 양을 채우지 못했을 때는 돈으로 물어내야 할 때도 있었고, 종이부역을 탕감해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비석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운주사의 부처들 중 입이 새겨지지 않은 부처들이 많다면서 그게 운주사 터에 대한 이야기가 글로 남겨진 게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절터를 순례하는 까닭 중 하나가 동살이 비치는 순간에 대한 지독한 연정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절터의 매력 중 하나는 절터마다 궁금증이 난무하고 다시 찾을 때마다 그것이 하나씩 풀려간다는 것이라 한다. 나도 그런 절터 순례를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