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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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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허생은 무엇을 꿈꾸는가 -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최시한은 고등학생 주인공 시선으로 허생을 다시 그립니다. 고등학생을 청소년이라고 해도 되겠죠. 청소년은 배우기만 하는 학생이 아닙니다. 청소년은 자기 생각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주체입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생각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죠. 오죽하면 선거권이 부여되는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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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허생은 무엇을 꿈꾸는가 

-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최시한은 고등학생 주인공 시선으로 허생을 다시 그립니다. 고등학생을 청소년이라고 해도 되겠죠. 청소년은 배우기만 하는 학생이 아닙니다. 청소년은 자기 생각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주체입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생각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죠. 오죽하면 선거권이 부여되는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낮추자는 의견이 오고갈까요? 선거권은 나라 일에 참여할 권리를 주는 겁니다. 만으로 19(우리가 세는 나이로는 20세예요)가 되어야 선거권을 부여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나이가 되어야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거라고 어른들이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성인들에 비한다면 청소년(미성년)은 아직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어른들은 규정지은 것이죠.

 

최시한은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문학과지성사, 2001)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세밀하게 들여다봅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요?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 하는 말을 아무런 판단 없이 무조건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전교조 문제로 학교가 술렁입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너희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쓸데없는 관심 갖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지시를 하고(63) 교실을 나갑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지시 사항을 전하고, 배우는 사람은 그 지시 사항을 어떤 경우에도따라야 합니다. 따르지 않으면 벌칙이 가해집니다. 정학이니, 퇴학이니 하는 말들을 들어봤을 겁니다. 청소년들도 분명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학교라고 해도 됩니다)는 청소년들이 하는 생각을 자꾸만 부정하려고 합니다. 공부할 때는 공부만 하라고 강요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공부는 대체 무엇일까요?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입니다.

 

주인공은 선재입니다. 문예반 학생으로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학생입니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건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는 상황을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셈입니다. 선재와 같은 반 학생인 윤수와 동철은 청소년이 배움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줍니다. 심하게 말을 더듬어 아이들 놀림감이 되기도 하는 윤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선재와 비슷한 경우라고 하면 되겠네요. 상위 1퍼센트 학생인 동철은 자기 생각을 자꾸만 틀에 가두려고 합니다. 여기서 틀은 어른들이 규정한 틀이죠. 달리 말하면 시험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을 한다는 말입니다. 윤수도 동철도 분명 생각을 합니다. 다만 윤수는 틀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아가려 하고, 동철은 틀에 갇혀 바깥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동철과 같은 학생을 좋아합니다.

 

선재와 윤수는 국어를 가르치는 왜냐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왜냐라는 질문들을 자주 던져서 붙은 별명입니다. 왜냐 선생님은 가르침을 배움과 동등한 관계에 놓습니다.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학생은 자리에 앉아 대답을 합니다. 중간에 섣불리 학생들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미덕도 지니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선생님을 싫어하지는 않는 까닭이죠. 이런 선생님이 학교에서 문제 교사로 찍혔습니다. 전교조에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전교조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줄여서 부르는 말인 건 알고 있지요? 1989년 창립된 전교조는 창립 초기부터 선생님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회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다. 가르치는 일이 노동이 아니면 과연 무엇일까요? 사회봉사인가요?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니 봉사라고 하기는 힘들죠.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우리 사회는 스승을 받들었습니다. 사회적 추앙을 받는 선생님이 어떻게 노동자일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주장했습니다. 육체노동을 천시하던 사회 풍조가 반영된 결과인 거죠. 왜냐 선생님은 이런 편견을 넘어 전교조에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당연히 학교에서 압력이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거기다 왜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꾸만 질문하는 버릇을 강조합니다. 질문을 하면 생각을 하잖아요? 생각이 많으면 자기가 있는 자리를 벗어나 바깥으로 생각을 넓히기 마련이고요. 왜냐 선생님이 왜 전교조에 가입했겠어요? 선생님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꾸려고 그런 거 아닐까요? 가르치는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배우는 사람 또한 바뀌지 않는다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긴 건 아니었을까요?

 

작가는 왜냐 선생님과 허생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습니다. 허생은 조선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넘쳤던 인물입니다. 왜냐 선생님도 마찬가지죠. 허생전을 읽으면서 그는 말 속에 있는 또 다른 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겉말과 속말이 다르다는 얘기죠. 겉말이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말이라면, 속말은 독자가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말입니다. 겉말과 속말이 같을 수도 있겠지만, 독자가 작품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속말은 항상 겉말을 뛰어넘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지겨울 정도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속말을 볼 수가 없잖아요? 제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왜 질문을 싫어하겠어요? 질문은 제도 안에서 제도 바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합니다. 제도 안에 머물 사람들이 뭐 하러 질문을 하겠어요. 제도에 안주하는 선생님들은 그래서 학생들을 안에만 묶어두려 합니다. 대학에 가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얘기를 여러분도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청소년에게 대학은 이렇게 그 시절을 견디는 만병통치약이 됩니다.

 

허생은 홍길동 같은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웅답지 못해요. 용준이가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허생은 선비답지 않게 장사해서 돈을 벌고 그걸로 백성들을 돕지만, 항상 선비로서 그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정신적으로는 한 번도 선비의 자리, 양반 사대부라는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그 말입니다. 허생은 장사를 하지만 장사꾼을 경멸하고, 백성을 돕고 북벌책 같은 국가 대사를 논하지만 조정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그것을 실천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농공상을 구별하던 당시의 규범, 때가 아니면 초야에 은둔한다는 선비의 처세관에 묶여서 거기를 두고 비판하거나 도와주기만 할 뿐, 하나가 되어 함께 살고 책임지지는 않는 겁니다. 이 점이 바로 허생의 한계요 허생전을 지은 연암 박지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사회를 바로잡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양반 계층의 생각, 사대부가 쓰는 말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72)

    

박지원이 생각하지 못한 자리를 왜냐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 선생님이 박지원보다 뛰어난 인물이라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박지원이 산 시대와 왜냐 선생님이 사는 시대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중요한 건 지금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허생을 새롭게 읽는 일입니다. 허생은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이완에게 현실을 바꿀 계책을 알려줄 뿐, 실제 현실에 그 계책을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허생이 하는 말은 물론 옳습니다. 이완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임금을 설득했다면,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허생은 이완이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자 다음 날 곧바로 한양을 뜹니다. 이인(異人)으로서 풍모는 드러나지만, 현실이 변하길 바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아쉬울 수밖에 없죠. 왜냐 선생님은 바로 이 점을 허생의 한계로 지적합니다. 사대부 의식에 갇혀 있다는 말로 돌려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허생이 사대부라는 틀에 갇혀 있다면, 왜냐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틀을 과감하게 부수려고 합니다. 틀을 부수는 사람을 사회가 그냥 둘 리가 없습니다. 왜냐 선생님이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교감과 교무주임 선생님이 교문을 지킵니다. 국어 시간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누구든 너무 자기 주장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다. 모든 의사 표시는 절차를 밟아 법대로 해야지, 남이 어쩐다고 우우 거기에 쏠려서는 못쓴다.”(79~80)는 말로 상황을 정리합니다. 주인공 선재는 할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만 외칠 뿐 바깥사람들을 향해 외칠 용기는 없습니다. 네 일은 따로 있어.”(80)라는 생각을 하며 그저 속만 끓이고 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윤수를 찾습니다. 선재가 깜짝 놀라 윤수 자리를 보니 정말로 윤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창밖을 보라고 외칩니다. 땡볕이 쏟아지는 운동장 한가운데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윤수입니다. 무릎 앞에 무어라 적힌 종이가 세워져 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저 녀석이 퇴학당하고 싶어서!”라는 말을 외치며 교실을 뛰쳐나갑니다. 선재도 따라 일어섭니다. 복도를 지난 선재는 운동장 가운데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윤수가 땅바닥에 눕는 게 보입니다. 왜냐 선생님의 허생전수업은 계속되고 있다.”(81)는 말로 작가는 이 소설을 끝냅니다. 허생이라는 인물의 한계에 갇히면 허생전수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 선생님은 실천으로 허생이 머문 자리에서 한 발 더 내딛고 있습니다. 말더듬이 윤수는 무슨 생각으로 땡볕이 내리쬐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을까요? 문예부인 선재는 자기 생각을 글로 정확히 표현하고, 말로 친구들을 설득하는 능력도 상당합니다. 상위 1퍼센트인 동철은 틀에 박힌 말과 성적으로 제도 안에 숨은 아이들을 압도합니다. 이에 비하면 윤수는 글을 잘 쓰지도, 말을 잘 하지도, 그렇다고 성적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아이라는 거죠. 이 평범한 학생이 다른 특출 난 학생들을 넘어 운동장 한가운데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묵묵하게 외칩니다. 왜냐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고!

 

주인공 선재는 왜냐 선생님에게 허생이 머문 한계지점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 의견에 동의를 표하죠. 하지만 자신이 바로 허생이 머문 그 한계지점에 갇혀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합니다. 선재 마음에는 두 가지 목소리가 들어 있습니다. 담임선생님 말을 반박하고 싶은 마음과 그 일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마음입니다. 허생 또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사회와 거리를 두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잖아요? 작가는 주인공 선재를 허생이 있던 자리에, 윤수를 왜냐 선생님이 있던 자리에 놓습니다. 물론 결말은 아주 다릅니다. 선재는 교실을 뛰쳐나와 윤수가 있는 운동장으로 곧장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허생이 홀로 세상과 맞섰다면, 선재는 윤수라는 친구가 있어 이런 차이가 벌어진 거라고 봐야겠지요. 돌려 말하면 왜냐 선생님 역시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도 됩니다. 한계를 벗어나는 게 힘들지 한계를 벗어나면 모든 사람들은 동지가 되는 겁니다.

 

왜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현실에서 실천해 보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영웅이 되고, 노동자가 되고, 빨갱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수를 제외하면 누구도 왜냐 선생님 옆에 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선재처럼 학생은 공부해야 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행동을 주저했을 수도 있겠죠. 왜냐 선생님은 가르침과 배움을 한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을 동등한 관계로 본 겁니다. 윤수는 직관적으로 선생님의 이 가르침을 깨친 건 아닐까요? 선재가 딜레마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윤수는 선생님과 함께 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함께 하는 길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윤수는 선생님과 함께싸우는 길을 스스로 걸으려고 합니다. 정학이나 퇴학을 외치는 담임선생님의 말이 윤수에게는 통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작가는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자기 생각을 스스로 실천하는 시간으로 정리합니다. 허생이 미치지 못한 자리를 왜냐 선생님과 윤수가 더불어 이릅니다. 뒤늦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 선재 역시 그 길 위에 윤수와 함께 섭니다. 물론 동철이나 다른 아이들도 자기 상황에 맞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 중에는 나중에 힘을 길러 왜냐 선생님과 같은 사람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나중에라는 말이 참 가슴 아프게 와 닿네요. 지금 하지 못한 일을 시간이 흐른 나중에 할 수 있을까요? 왜냐 선생님이 나중에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오늘 못하는 일은 내일이 되어도 할 수 없습니다. 내일이 되면 또 다른 내일이 오니까요. 허생은 사대부로서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만 했습니다.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 상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자기 자리를 넘어서려고 했습니다. 사회 변화를 간절하게 원한 것이죠. 허생이 될지, 왜냐 선생님이 될지는 여러분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미래는 간절한 사람들에게만 꼭꼭 숨긴 제 마음을 보여주는 법입니다.

 

  

o*****s 2018.09.1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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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촛불을 끄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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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너무나 이상한 곳이다. 끝이 없는 경쟁, 체면차리기, 거짓말 등등.. 어른이 된 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이 더 이상 이상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는 공감을,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 속의 주인공이 지나치게 영웅시 되고,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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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너무나 이상한 곳이다. 끝이 없는 경쟁, 체면차리기, 거짓말 등등.. 어른이 된 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이 더 이상 이상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는 공감을,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 속의 주인공이 지나치게 영웅시 되고, 그것을 따라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청소년의 길이라는 생각은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그렇지만 말로 형상화 하지 못했던 새콤한 반항의 색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편.

[인상깊은구절]
각자의 촛불을 끄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다.
r***a 2002.12.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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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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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불현듯 중학교 때의 담임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중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은,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우는 문제아들은 사실은 누구보다도 여린 심성의 소유자일런지도 모른다고 하셨다.꿋꿋하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는 모범생들처럼 요령있게 사회에 적응하기엔 그들은 너무나도 착하고 연약했던 것이다. 몇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담임선생님의 그 말씀이 새삼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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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불현듯 중학교 때의 담임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중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은,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우는 문제아들은 사실은 누구보다도 여린 심성의 소유자일런지도 모른다고 하셨다.꿋꿋하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는 모범생들처럼 요령있게 사회에 적응하기엔 그들은 너무나도 착하고 연약했던 것이다. 몇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담임선생님의 그 말씀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에 나오는 선재나 윤수는 쟈크 프뢰베르의 '열등생'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예민하고 여린 심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학교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들처럼 요령있게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무시당하면서 살아가는 따라지 인생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삶을 진지하게 생각할 줄 알았던 조금은 '별난' 아이들이었다. '왜'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쇠사슬처럼 그들을 구속하고 있었고, 그런 답답함을 견디어 내지 못한 선재는 결국 학교를 떠나고 만다. 모범생이었던 나처럼 '어쨌든 대학은 가고 봐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웃으며 무심히 살아가기엔 너무나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별나고 남들보다 적응력이 뒤떨어지기에 소외당하는 외로운 사람들을 배려해주기는커녕 그들을 이해해보려고도 하지 않는 매정한 사회는 과연 언제까지 평화로울 수 있을까.
c*****t 2002.12.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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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듣지 못하는 경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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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 선생님은 내가 졸업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지금은 숙명여대로 가신 분이다.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수업은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연수에 오셔서 강의를 하신다기에 그 분의 저서를 찾아 읽고 있다. 그 중에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읽었다. 두 소설은 연작소설이다. <허생전…>은 대학 다닐 때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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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 선생님은 내가 졸업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지금은 숙명여대로 가신 분이다.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수업은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연수에 오셔서 강의를 하신다기에 그 분의 저서를 찾아 읽고 있다. 그 중에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읽었다. 두 소설은 연작소설이다. <허생전…>은 대학 다닐 때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고, 날카로운 소설이었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는 윤수와 선재가 나온다. 윤수는 말을 더듬고 내성적이고 병약하다. 선재는 그런 윤수를 관찰하며 글을 곧잘 쓰고 일기를 매일 쓴다. ‘왜냐 선생’도 나오는데 국어교사이고 전교조 가입 문제로 관리자와 갈등을 겪다가 학교에서 쫓겨나는 인물이다.

왜냐 선생의 국어 시간에 「허생전」을 다루면서 아이들은 허생의 행동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 중 윤수는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서 허생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해석을 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해석이라 선재는 선뜻 인정하지 않으며, 윤수 자신의 처지를 허생에 비춰 드러낸 것이라 짐작한다.

7월 10일. 왜냐 선생은 전교조 가입 문제로 수업에 들어오지 못한다. 선생님의 행동에 대해 아이들이 언쟁을 벌인다. 윤수가 선재를 따로 불러내 이런 말을 한다.

윤수는 흥분해서 심하게 더듬거렸다. 걔의 말을 주워 모으면 이렇다. 왜냐 선생은 결국 쫓겨날 거다. 허생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을 거다. 자기 편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너는 물론 왜냐 선생 편이지? 그렇다면 너는 왜 동철이와 싸우지 않느냐. 어서 돌아가서 동철이녀석의 주장을 꺾어라. 너처럼 글도 잘 쓰고 말도 술술 하는 애가 안 한다면 누가 하겠냐.

병약하고 여리게만 보였던 윤수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왜냐 선생이 두 번째 허생전 시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교단을 떠난 뒤 윤수가 행동한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날카롭게 말했다.

“박윤수는 어디 갔지?”

나는 소스라치며 살펴보았다. 윤수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어디가 아파 양호실에 갔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누군가가 말했다. 선생님, 저기 저게…….

창밖을 보았다. 땡볕이 쏟아지는 누우런 운동장 한가운데에 누가 홀로 주저앉아 있었다. 윤수였다. 무릎 앞에 무어라 적힌 종이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그 종이에 적힌 말은 보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렸다.

자리에 앉아라. 앉아! 저, 저 녀석이 퇴학당하고 싶어서!

선생님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온몸의 움직임을 또렷이 느끼면서 복도를 지나, 운동장 가운데로 뛰기 시작했다. 윤수가 땅바닥에 누워 버리는 게 보였다. 내가 업으러 가는지 업히러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 선생의 「허생전」 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윤수가 들고 잇던 종이는 아마도 왜냐 선생의 복직을 요구하는 내용일 것이다. ‘왜냐’라는 물음으로 학생들의 개성적이도 주체적인 생각을 끌어냈던 선생님, 뜻을 이루기 위해 행동했던 선생님을 위해 작고 연약한 아이가 시위를 한다. 놀라운 반전이었고, 윤수가 더 큰 일을 벌일까봐 걱정하는 선재와 마찬가지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윤수가 시위 주동자로 찍혀 처벌을 받은 뒤 대입 시험이 다가오는 겨울의 이야기다. 윤수는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 것 같다. 전쟁하듯 경쟁하는 사회 에,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윤수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학칙을 어겨서 또 벌을 받고, 촛불을 켜고 진지하게 진행하던 ‘기원의 밤’을 무산시켰다.

지금도 대입 시험을 향해, 물질적 안정을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마라톤 선수들 같은 우리에게 던진 윤수의 말 ‘모두 승리하면 누가 패배합니까? 자기 촛불을 꺼! 그러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습니다.’은 무슨 의미일까. 도무지 사람 같지 않은 그 경쟁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사람의 진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말이다. 윤수는 말을 더듬는 사람으로 나오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이라도 기존 질서에 맞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듣지 않는 세상에서 더듬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윤수는 ‘누가 누구의 마음을 알 수 있지?’라고 물었다. 각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마음을 짐작하고 정해버린다. 이것은 무한경쟁 사회의 문제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르르 달려갔다가 수도 없이 패배자가 되어 쓰러지거나 헛된 승리에 취해 살아간다. 혹은 허생처럼 어디론가 떠난다. 왜냐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각자 자기 마음대로 걷고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닦여진 길로 가고 있다. 우리는 때로 그 길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새 길을 닦아야 한다. 

윤수는 새 길을 닦고 있다. 선재는 그런 윤수를 관찰하면서 갈등한다. 안락함과 단단한 질서가 있는 길과 내 마음이 사는 길이지만 미치광이의 길 사이에서 말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재고 재고 또 재는 선재를 닮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진심이 무엇인지, 사회의 진심은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멍청이는 되지 말자.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읽고 나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도 윤수 같은 이가 있겠구나 싶어서 아끼고 격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수에게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셨다면 윤수가 그렇게 외롭고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애벌레들이 맹목적으로 하늘로 기어오르던 장면이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하다.

j*****4 2008.01.15.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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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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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역시..국어시간에 알게되서 읽게 되었지요.. 수업도 수업이자만은 저희 국어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였어요.. 책표지에서는..약간 딱딱한 수능공부를..위한 책같이 보였지만 읽기 시작한 후부터는..그것은 저의 오판이였음을 인정하고야 말았음닷.. 이책을 다읽고 난후 저는..너무 기뻤읍니다..이런책이 있었다는것이..이런책을 읽을수 있다는것이..무엇이 이렇게 까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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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역시..국어시간에 알게되서 읽게 되었지요.. 수업도 수업이자만은 저희 국어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였어요.. 책표지에서는..약간 딱딱한 수능공부를..위한 책같이 보였지만 읽기 시작한 후부터는..그것은 저의 오판이였음을 인정하고야 말았음닷.. 이책을 다읽고 난후 저는..너무 기뻤읍니다..이런책이 있었다는것이..이런책을 읽을수 있다는것이..무엇이 이렇게 까지 저에게 감동을 주었느냐는..(물론 저의 주관적임 느낌이니깐요..) 제가 이책을 읽었을때는 이책의 주인공 윤수, 선재와 같은 나이또래였음닷.. 같은 또래의 주인공에서부터 느끼는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또 이들의 생각속에서 아름다운 우정 그리고 아름다운 반항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이책에서 약간은 (어떻게 보면 )삐뚤어진 주인공들에게서 또한 대리만족을 얻었나봅니다..아 정리가 안돼네여^^;; 벌써 이책을 읽은지도..2년이 넘어가니깐요.. 오늘...바로 책꽃이로 가서 다시 한번..읽어봐야겠네요.. 혹시 나는 이제 더이상 이책에서 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그런 애가 되버린건 아닌지..확인도..해볼겸..
h*****1 2001.1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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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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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정쩡한 틈에서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짐승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니 짐승들도 그렇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육장에서 길들여진 짐승이라면 몰라도 산 속을 누비며 살고 있는 짐승들이라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우리의 청소년들은 사육장에서 길들여진 짐승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고, 자야하고...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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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정쩡한 틈에서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짐승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니 짐승들도 그렇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육장에서 길들여진 짐승이라면 몰라도 산 속을 누비며 살고 있는 짐승들이라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우리의 청소년들은 사육장에서 길들여진 짐승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고, 자야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만일 그 제도를 거부하면 인생의 낙오자라는 꼬리표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방황, 우정, 제도권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결국 그러한 과정이 성인이 되어가는 진통의 시간임을 말하고 있다. 청소년기 때 자신의 삶에 대해, 세계에 대해,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들의 방황과 고독을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바라본다면 청소년들도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그 짐승의 시간들을 좀더 여유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s****o 2003.03.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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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여진 길을 마다하는 아이들의 새로운 길 닦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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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휩싸고 있는 '구름 그림자'는 짙고 공고합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옭죄어 오로지 한 길, 입시에서의 승리와 세속적 출세의 미망(迷妄)으로만 몰아넣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는 대열 속에서는 눈뜨고 있는 일처럼 고역이 없을 것입니다. 제정신인 아이들은 자연 좌절의 비탄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른들에 의해 닦여 아이들에게 주어진 그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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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휩싸고 있는 '구름 그림자'는 짙고 공고합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옭죄어 오로지 한 길, 입시에서의 승리와 세속적 출세의 미망(迷妄)으로만 몰아넣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는 대열 속에서는 눈뜨고 있는 일처럼 고역이 없을 것입니다. 제정신인 아이들은 자연 좌절의 비탄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른들에 의해 닦여 아이들에게 주어진 그 길이 인간성을 좀먹고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어찌 정상적인 심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이들은 이러한 구조와 상황하에서 좌절하고 굴복만 하는 게 아닙니다. 선재는 선재대로 윤수도 그만의 방식으로 다른 아이들도 모두 아름다운 방황을 하며 그들 나름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것이 비록 어설픈 축제 기획이건 일탈적 복장과 파격적 행동 등 정선되지 않은 거친 시도이건 기존의 체제에 순응만 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나가고자 하는 일단의 시험적 모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시도하는 이러한 새 길 닦기는 어른들의 시선이 든든한 배후가 되어주어야만 합니다. 몰이해와 비정함 속에서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너그러워야 합니다. 부모들과 선생님들은 기다려 주어야만 합니다. 그들의 비상구 찾기마저 봉쇄해버린다면 아름다운 아이들을 모두 사지(死地)로 내몰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름의 다양한 노선으로 미래를 열어 나가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있고 사회가 유기적인 것이 되려면 말입니다. 아름다운 아이들의 새 길 찾기가 울림을 얻고 새 길을 닦아 나가는 데 어른들의 이해와 함께 작은 결실이라도 거둘 수 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조그만 결단이나마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각자 자기 마음대로 걷고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이미 닦여진 길을 가고 있다. 우리는 때로 그 길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새 길을 닦아야 한다. /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서 허생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버렸다.
a*****7 2002.12.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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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교육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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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의 순수한 모임을 보며 불순한 모임이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만든 어른들의 불신은 실로 충격이었다. 쉽게 단정짓고 의심하는 썩은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선재's 누나와 윤수의 부모님을 보며 어른들의 '대학은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느낄 수 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여러 번 생각해 보았을 때 나 또한 그런 강박관념 안에서 놀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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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의 순수한 모임을 보며 불순한 모임이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만든 어른들의 불신은 실로 충격이었다. 쉽게 단정짓고 의심하는 썩은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선재's 누나와 윤수의 부모님을 보며 어른들의 '대학은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느낄 수 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여러 번 생각해 보았을 때 나 또한 그런 강박관념 안에서 놀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 교육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책이었다. 이 리뷰를 작성하는 나 또한 학생이기에 '현주소'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이젠 여기를 떠나야겠고, 그 행동으로써 내 뜻을 밝혀야겠다. 나는 무슨 거창한 영광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와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 지내고 싶다. 느끼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솔직하고 소박한 사람들, 눈치만 보고 말만 떠벌이지 않는, 위선과 거짓의 탈을 쓰고 살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이해받으며 하고픈 일과 공부를 하고 싶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돌이나 나무를 구하여 그들의 모습을 만들고 싶다. 나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따라 활동하다 하루가 저물면 흡족한 피곤에 젖어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아아, 이런 소망이 어째 이리도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정말 답답하다.
d*******e 2002.08.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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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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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끝없이 헤쳐나가야 할 길의 목적지는 대학입학이 아닌가 싶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선재는 나와 다름없는 학생이지만 고2로써 수능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위주 그리고 성적위주로 돌아가는 세상.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공부하는 사람들. 자신의 꿈을 망각한채 공부하게 만든이는 세상, 그리고 어른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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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끝없이 헤쳐나가야 할 길의 목적지는 대학입학이 아닌가 싶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선재는 나와 다름없는 학생이지만 고2로써 수능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위주 그리고 성적위주로 돌아가는 세상.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공부하는 사람들. 자신의 꿈을 망각한채 공부하게 만든이는 세상, 그리고 어른들이 아닌가 싶다. 그 어른들 속의 한명인 선재의 누나. 그리고 선재의 친구 윤수. 그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소위 '문제아'라 칭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감정을 표현해내는것 뿐일 것이다. 청소년기는 많은 색깔과 모양을 낼 수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하나의 색깔만을 나타내길 원하는 사람들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 적응하지 못하는 윤수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다소 지겨운 책의 구성이였지만, 읽다보면 학생으로써 수긍이 가는 점이 많아서,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멋진책이였다.
s*****6 2002.08.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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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지내온 사람이라면 한 구절쯤 공감이 갈테죠.
"10대를 지내온 사람이라면 한 구절쯤 공감이 갈테죠."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끄덕거렸죠. 제가 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선재는 생각이 많은 아이입니다. 선재의 생각이 엉뚱해 보이고 반항스럽게 보일 때도 있지만, 10대를 지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읽으면서 그래 맞아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 책은 꼭 한국판 ''죽은 시인의 사회''같다는 생각이 들었는
"10대를 지내온 사람이라면 한 구절쯤 공감이 갈테죠."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끄덕거렸죠. 제가 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선재는 생각이 많은 아이입니다. 선재의 생각이 엉뚱해 보이고 반항스럽게 보일 때도 있지만, 10대를 지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읽으면서 그래 맞아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 책은 꼭 한국판 ''죽은 시인의 사회''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혁신적인 선생님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학생들이 축제를 열려다가 학교 당국에 걸리는 것도 그렇고요. 다만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고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모습에 주목하는 반면 이 책에서는 학생들의 고민과 고뇌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선생님은 다만 외부인일 뿐이죠. 중학생이 읽기엔 약간 무겁고요.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난 외계인인가봐, 하고 고민하는 학생들도 한 번 읽어보세요. 나 같은 친구들이 또 있네 하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b******7 2006.01.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