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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프레히트는 [전문 영역과 전문가들의 세계]라고 정의한다. 그는 동시에 지식인이 처한 작금의 상황을 꽤나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전문 지식의 양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는 고백도 뒤따른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방향 정립에 필요한 지식으로서 잃어버린 것들을 보충하는 것]이며, 철학사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새로운 철학사에 대한 프레히트의 열망은 여기에 있다. 이 책 『너 자신을 알라』에서 다루는 거대 질문들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래전부터 거듭되어 오는 것들로서, 우리가 고대와 중세 철학자들의 고민들로부터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가?] [현실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나는 내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나는 왜 도덕적이어야 할까?] [선하고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어떻게 관철되었나?] 1권 『세상을 알라』로부터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이런 질문들은, 하지만 2권 『너 자신을 알라』가 다루는 15~19세기의 400년 동안 [다른 스타일의 옷으로 갈아입고] 조금씩 성장하는 [시민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와 무게로 다가온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주문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원조 [너 자신을 알라]는 [세상을 알라]라는 정언의 완성 후에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한다는 뜻이겠지만, 이 책에서의 저 격언은 세상이란 우리가 우리의 정신에서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고 우주란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근세적 무늬의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다.
현대 철학으로의 교차점
『너 자신을 알라』에서는 쿠자누스부터 헤겔까지 서양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소개된다. 그들에 대해서 프레히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철학의 역사이면서 회가 거듭되는 연재소설과도 같다. 등장인물들의 일면은 이야기에 재미를 더한다. 라이프니츠는 [서술한 보람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적 캐릭터로 딱 잘라 묘사된다. 의회 민주주의와 삼권 분립의 아버지는 홉스가 아닌 무명의 제임스 해링턴이라는 반전도 있다. 계몽주의의 아버지 로크가 흑인과 인도인의 인권에는 무관심했다는 모순적이고 희극적인 지점이야 말로 시리아 난민과 저녁 메뉴를 동시에 걱정하는 인간 사회의 [특수 도덕]의 좋은 예시라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철학적 물음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것들이다. 좋은 삶, 정의, 자연과 우주와 인간, 신의 존재 등은 우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민의 지점이다. 따라서 철학적 발전의 교차점에서는 언제나 지난 시대의 이론과 현재의 사고로 이어지는 연결선이 그어진다. 헤겔 이후 두 번째 세기를 지나는 중인 우리 시대도 다르지 않다. 현대 철학을 다루게 될 [철학하는 철학사]의 마지막 책 『너 자신이 되어라』에서도 온몸으로 세계 전체와 씨름하는 철학자들의 고군분투가 계속될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레테르와 역사적 정체성이 부여될지는 신경도 쓰지 않을, 대신 [정신의 환상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여행]으로서의 철학에 매진하는 그들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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