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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없이 세워진 쿠데타의 천국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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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국가 중에서 국왕의 힘이 가장 없던 나라였다. 그 이유가 뭘까? 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어야 할 국왕이 힘이 없어서 신하들에게 휘둘려 뜻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이성계가 명분도 없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개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려면 왕이 폭정을 펼치고 그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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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국가 중에서 국왕의 힘이 가장 없던 나라였다. 그 이유가 뭘까? 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어야 할 국왕이 힘이 없어서 신하들에게 휘둘려 뜻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이성계명분도 없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개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려면 왕이 폭정을 펼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등을 돌려야 하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하였던 이성계는 아무 잘못이 없던 군주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왕에 등극했다. 이것은 명백한 쿠데타지 결코 혁명이 아니다. 혁명이라고 불리려면 많은 백성들과 신하들이 이를 지지하고 따랐어야 했다. 그러나 실상 이성계가 나라를 세웠을 때 이를 추종하고 지지하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이 이성계를 비난했고 두문동에 들어가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던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다.

 

이를 통해 보면 조선은 정통성도 없고 명분도 없는 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세운 나라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서 조선이란 나라가 세워졌으니 국왕에게 명분과 정통성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였을까 조선의 왕들은 신하였던 사대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을 펼치면 어김없이 독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신하들의 의지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되는 웃기는 광경을 빈번하게 연출했다. 만약 이성계가 사대부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까지 많은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면 과연 조선의 왕들이 힘이 없었을까? 만약 이성계가 충분한 명분을 내세워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면 신하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자신의 자손들이 갈리는 그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역시 명분이란 이래서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조선왕들 중에서 독살설에 휘말린 왕들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사관이 남긴 실록 혹은 일기 등을 바탕으로 조선왕의 독살설이 실은 단순히 설이 아니라 진실임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설명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알력관계를 보면 저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를 비롯하여 태종 이방원 그리고 선조·영조장수를 한 것을 보더라도 유전자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헌데 적지 않은 국왕 혹은 세자들이 젊은 나이에 급서했다. 즉 유전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돌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당시의 국왕 혹은 장차 국왕이 될 자들이 갑자기 죽은 것이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음모가 있지 않고서야 좋은 것만 먹고 보약을 달고 살았던 귀하신 분들이 갑자기 세상을 뜰 리가 있겠느냐 이 말이다. 급서한 국왕의 의료를 담당했던 자들의 이상행동과 공도 없던 자들이 새로운 국왕이 등극하자마자 갑자기 공신으로 책봉되었던 정황을 살펴보면 저자가 주장한 국왕 독살설이 충분히 일리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권으로 되어 있고 각각 7장씩 총 14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문종과 단종의 독살 혐의를 받고 있는 세조 ’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세조는 우리에게 수양대군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이었던 수양대군은 원래 왕 자격이 없는 신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문종에게 아들인 단종이 있었기 때문에 문종이 갑자기 죽더라도 수양대군에겐 왕위가 돌아올 수 없었다. 만약 조선이 제대로 된 명분으로 세워졌고 왕위가 맏이에서 맏이로 이어진 국가였다면 수양대군은 결코 꿈에도 왕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양대군은 태조인 이성계가 명분도 없고 백성의 지지도 없이 무력을 통한 쿠데타로 왕이 된 것과 태종 이방원골육상잔(왕자의 난)으로 순서를 무시하고 왕이 된 것을 잘 알았기에 왕이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아버지는 셋째인데도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첫째 형인 양녕대군을 제치고 왕이 되지 않았던가!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상들이 본보기로 잘 보여줬기에 수양대군은 아버지에 이어 나라를 잘 다스렸던 문종을 어의 전순의와 짜고 독살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정통성에 따라 단종이 왕이 되었을 때 태종 이방원처럼 힘으로 윽박질러 조카에게 양위를 받아 자신이 왕이 되고 후한을 없앤다는 이유로 어린 조카 단종을 죽여 버린 것이다. 이로써 조선은 비극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하된 자가 국왕을 독살시킨 것도 모자라 새로 등극한 왕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었으니 이 또한 태조나 태종처럼 명분 없는 선례를 남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양대군의 후손들이 신하들에게 독살당하거나 폐위당한 것은 인과응보다. 수양대군은 지하에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광해군과 소현세자의 독살 혐의를 받고 있는 인조’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인조는 세조와 마찬가지로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인물 중에 하나였던 왕이다. 능양군이었던 인조가 만약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최고의 자리에서 오랑캐로 여겼던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굴욕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광해군이 그대로 왕을 하면서 계속 중립외교정책을 펼쳤더라면 청나라가 쳐들어와 조선의 백성을 학살하는 정묘호란 따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선은 나라보다는 자신들의 영달만을 추구했던 사대부들인조가 연합하여 광해군을 왕의 자리에서 몰아내는 바람에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만다. 하지만 조선은 다시 기사회생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이유는 인조의 맏아들이었던 소현세자가 청에 인질로 있으면서 동아시아의 정세를 파악했고 조선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조선의 앞날이 밝을지를 잘 터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도 없었고 정통성도 없었던 인조가 자식에게 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소현세자를 독살시키는 바람에 조선이 극동아시아의 강대국이 될 수도 있었던 기회를 잃고 만다. 어차피 죽으면 자식에게 물려줄 자리인데도 명분도 없이 강제로 빼앗은 자리를 자식에게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장차 명군이 될 수도 있었던 자식을 인조는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난 이런 인조를 조선 시대 왕 중 최악의 왕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조도 수양대군과 마찬가지로 지하에게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길 바란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경종의 독살 혐의를 받고 있는 영조’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굶겨 죽인 것으로 유명한 왕이다. 연잉군이었던 영조는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한 후 왕세제에서 왕으로 등극한다. 국왕이 죽으면 후사를 왕자가 이어야 마땅했지만 불행히도 경종은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죽었다. 조선의 상속법에 후사가 없으면 양자를 들여 뒤를 이어야 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 때 형인 정종허수아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왕세제로 있다가 즉위한 선례가 있었기에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은 이에 근거하여 정통성을 무시한 채 이방원이 취한 방법을 따라 영조를 왕위에 앉힌 것이다.

 

영조의 이복형이었던 경종은 아버지인 숙종의 뒤를 이어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권력은 신하들인 노론이 장악하고 있었고 국왕인 자신 경종에겐 힘이 없었다. ‘신축환국’을 일으킨 만큼 경종은 과단성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노론과 당색이 달랐던 이유로 노론과 영조에 의해 독살당하고 만다. 만약 경종이 당색이 다른 대비가 보낸 게장과 생감을 먹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세제였던 연잉군 즉 영조가 올린 인삼과 부자를 먹지 않았더라면 36세인 한창인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사대부들과 배다른 동생 영조에 의해 경종은 급서하고 만다.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조가 경종 독살설에 맞물려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명분과 정통성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영조도 형과 아들을 죽인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길 촉구한다.

 

나라가 세워짐에 있어서 명분과 정통성은 상당히 중요하다. 명분 없이 장악한 권력은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다. 쿠데타는 아무리 잘 포장을 해도 쿠데타일 뿐이다. 이성계가 명분이 있는 상태에서 조선을 세웠더라면, 이방원이 형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수양대군이 형인 문종과 조카인 단종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정통성에 입각해서 더 번창할 수 있었을지 모르고 극동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과거를 잘 반성해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한국민이라면 모두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d****3 2009.03.22. 신고 공감 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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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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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법률용어중에 미필적고의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왕을 죽인것이다.왕을 죽이고도 안죽인척 하는 이들, 뻔히 왕을 죽인지 알면서도 외면하는 이들, 역사에 그런적은 없다는 가르치는 이들, 그말을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잊어버린 이들. 바로 이들 모두 우리가 왕을 죽인것이다. 아니 역사를 죽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말안듣는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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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법률용어중에 미필적고의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왕을 죽인것이다.
왕을 죽이고도 안죽인척 하는 이들, 뻔히 왕을 죽인지 알면서도 외면하는 이들, 역사에 그런적은 없다는 가르치는 이들, 그말을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잊어버린 이들. 바로 이들 모두 우리가 왕을 죽인것이다. 아니 역사를 죽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말안듣는 이단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님의 <조선왕 독살사건>은 그동안 항간에 떠돌던 야담수준이라고 일축했던 조선왕들의 독살설혐의에 대해서 많은 점을 시사하는 책이다. 특히 저자의 그동안 저술행위으로 보아선 이들 정통학자들에겐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저술중에 하나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여타의 역사적 사초에 의거하여 어느 왕이 어떻게해서 독살설의 가능성이나 개연성 있었고 그래서 그동안 야사나 야담수준의 내용을 좀더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하면는 오산일 것이다. 그동안 저자의 다른 저작에서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는 사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암시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얼마전 정조대왕의 어찰이 새로이 발견되면서 이 나라의 강단학계는 또다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네들의 주장은 바로 발견된 정조어찰이 정조독살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증거이고 정조독살설은 산간시골에서 떠돌던 야담이었다고 일축했다. 정조독살설 부정함으로서 재야학계의 연구자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한바탕의 해프닝을 결론지어 졌지만 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해방된지 60년인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식민사관에 대한 그 뿌리가 대단함을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본다.


저자의 의도는 바로 이러한 사관에 대한 부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중기부터 내려온 노론적인 입장에서의 역사관과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식민사관이 만나면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금까지 가져온 것이다. 이런 정통사관에서 보면 당연히 조선시대에 국왕의 독살설은 부정된다. 아니 있을 수도 없고 있었도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관을 우리는 그대로 강요당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번 <조선왕 독살사건>의 완결판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그런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강요하게 하는 그 이면을 엿볼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조선시대 국왕들의 독살의혹을 뛰어넘어 우리 한국사 전반에 걸쳐 있는 큰 숙제인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조선왕 독살사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유독 군왕의 독살설이 많은 나라가 조선이다. 조선왕조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물게 500여년을 넘게 장수한 왕조이다. 역대 군왕만 태조를 시작으로 27명이 제위에 올랐던 국가였다. 공식적인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거의 과반수에 가까운 군왕과 차기 대권주자가 독사설에 휘말려 있는 왕조 또한 세계사를 통틀어 조선왕조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과반수에 가까운 독살설 음모속에서도 500여년이라는 기간을 유지한 왕조 또한 눈을 씯고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러면에서 조선왕조는 대단히 아이러니한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정권교체의 불안정속에서도 긴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라는 의구심이 자연히 든다. 바로 이점이 군왕의 독살설과 많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말선초시대에 부패한 왕조에 대한 반동으로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뭉친 신진사대부들과 이성계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 둘은 권력창출을 위해서 이와 잇몸 같은 존재였고 상호간에 확실한 대의명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출발한 조선이라는 국가는 시작부터 왕권과 신권에 대한 상호간에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은 왕자의 난을 계기로 하여 태종의 왕권이 정도전의 신권에 판정승하게 되지만 태종의 뒤를 이은 군주에게 이러한 일련의 왕권강화조치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조선초기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등의 독살설 의혹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가장큰 시각차이는 다름 아닌 사대부는 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대부중의 제1일자로 간주했고 국왕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동상이몽을 꿈꾸면서 정치적 여건이 안정적일 때는 큰 문제가 대두되지 않았으나 약간의 흔들림(이는 사대부에서 공신으로 둔갑한 훈구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 질 경우)이 있을때는 국왕을 배제한 사대부들의 강력한 단결력을 이끌어 낸 신조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택군론에 의해 자기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게 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차기대권을 노리는 정치세력과의 결탁도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의 멸망때 까지 계속된다. 차이점이라고는 신권의 중심세력이 공신, 훈구세력에서 배제되었던 또 다른 사대부들(사림들)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중심세력의 권력이동은 많은 점에서 조선초기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된다. 사림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성리학의 기수들이었다. 성리학으로 철저히 정신무장한 그들의 대의명분은 그동안 훈구세력의 정치적 행보에 비해 많은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대의라는 큰 범주내에서 보다 확실하면서 적극적으로 왕권을 견제하였던 것이다.

 

훈구세력의 몰락이 가져다 준 정치판은 사림들의 분당과 당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이제는 대놓고 왕권에 대한 위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수많은 국왕과 차기대권주자가 독살설 이나 반정등에 휘말리게 된다. 이들은 국왕보다 같은 당파 당수의 의견을 절대시하였다. 그런 당파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절대군주까지 교체해 버릴 정도로 대범한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저자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보듯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군왕의 나라가 아니라 노론의 나라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그 어떠한 정책이나 인물(그가 비록 군왕이라고 하더라도)은 철저히 제거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면에 그들의 정신적 모태인 성리학의 왕도정치 실현이라는 대의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태조 이성계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지하에서 목놓아 후회를 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사대부들의 정치적인 힘이 클 수 밖에는 없는 태생적 구조를 가졌던 것이 국왕에 대한 많은 독살설 의혹을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독살설에 휘말린 국왕이후의 정치적인 행보를 보면 더욱더 독살설에 대한 혐의를 둘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효종의 경우 치세기간 동안 캐치플레이었던 북벌의 잔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행위나 정조의 개혁정치 역시 정조 사후의 반동정치에서 보듯이 국왕사후에 철저하게 선왕의 치세를 지우는 작업을 최우선시 했다는 점이 다름 아닌 그들의 행동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조선멸망의 근본원인이 무능한 몇몇의 군주에게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100%로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앞서 보왔듯이 조선의 군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유일하게 태종 이나 숙종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왕도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갈 수 가 없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군주로 추앙받은 세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종도 신하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정책실현에 길게는 18여년이 걸린적이 있을 정도로 신권의 힘은 대단하였던 것이다. 이를 다소 긍정적으로 보면 이러한 왕권과 신권의 줄달리기가 성립해서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단일왕조로 장수를 했던 비결중에 하나라고 하면 그나마 위안거리일 것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조선왕 독살사건>을 통해서 통찰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각론적인 역사적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정조대왕의 어찰(편지)이 발견되면서 학계와 언론은 흥분의 도나기속에 빠졌다. 그동안 재야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정조 독살설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근거가 어찰을 통해서 확인되었다고 하면서 모처럼 재야에 대한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뒤로 저자의 주장에 의해 독살설이 더욱더 힘을 얻게 되므로서 지금은 아주 조용한 때를 보내고 있다.


 

바로 이점이 아주 큰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각론적인 관점에서 부터 시작된 왜곡된 사관이 결국 한국사라는 크나큰 정체성에 대한 위기로 대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에게는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국사교과서를 봐도 알 수 있고, 한나라의 역사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국립박물관에 가봐도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다름아닌 대한민국 사학계의 정설이다. 우리가 아무리 주장해도 통설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저자는 이러한 식민사관의 잘못된 점을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지적해 왔다.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에서 부터 작게는 여인열전에 이르기 까지 그동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식민사관의 제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저작 역시 저자의 일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독도의 영유권문제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대할때면 나라전체가 들썩거린다. 그러다가 시간만 지나면 언제그랬냐듯이 조용해진다. 그러는 동안 역사왜곡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왜곡은 다름아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사에 대해서 일가견 있다는 학자들이 자국사라고 인정하지 않는 역사를 과연 세계의 그 어떤 나라가 인정해 주겠는가?

 

조선왕 독살사건은 이러한 역사적 왜곡에 대한 빙산의 일부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군주에 대한 위해사건은 얼마든지 있었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 해석은 하늘과 땅차이만큼 거리감이 커지는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행간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바로 그 행간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그동안 가려왔다고 하면 이는 큰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와 같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올바른 눈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관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저서임에 틀림없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조선왕 독살사건이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창공을 나는 새에게는 오른쪽날개와 왼쪽날개가 있다. 아주 단순한 논리이지만 어느 한쪽 날개로는 날수없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역사를 재단하는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한쪽 날개에 의존한 역사비행을 했다면 이제는 정말 올바른 역사비행을 해야할 때이다.

l******e 2009.04.04.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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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로 이어진 조선왕조... 조선왕조는 세계사에서도 흔하지 않게 500년 이상의 시간동안 존속해온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7명의 왕이 통치한 그 시간동안의 역사는 많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우리민족을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로 이어지게 해 주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기간 동안 조선 왕이 독살로 생을 마감한 경우가 여느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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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로 이어진 조선왕조...

조선왕조는 세계사에서도 흔하지 않게 500년 이상의 시간동안 존속해온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7명의 왕이 통치한 그 시간동안의 역사는 많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우리민족을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로 이어지게 해 주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기간 동안 조선 왕이 독살로 생을 마감한 경우가 여느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우선 들게 된다.


우리민족성과 우리문화가 만든 독살의 역사?

중국의 광서제와 저 멀리 유럽대륙 속 프랑스의 샤를 9세도 독살을 당했듯이 독살이라는 살인 방법은 세계 곳곳에서 종종 일어나는 은밀한 응징의 수단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 조선의 역사에서 왕에 대한 독살사건은 눈에 띠게 자주 등장했다. 이는 어느 세력에서 정세를 뒤엎어 권력을 새로 차지하려고 할 때, 반정을 도모할 힘과 대의명분이 부족하여 은밀히 왕의 신체에 해를 가함으로써 왕권을 전복시킨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여러 가지 시대적 정황과 개별 사건의 필연성을 제쳐두고 좀 더 큰 틀을 보고자 한다면, 나는 이러한 독살의 과거가 눈에 띄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단지 우연이 아닌 우리 한민족의 특성과 그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스턴트 정치

왕정의 국가에서 왕은 즉위를 하고 퇴위를 할 때까지 스스로의 정치를 펼치게 된다. 이 기간은 왕이 죽거나 세자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 또는 반정이 일어났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조선사에서와 같이 왕의 독살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왕이 자신의 정치를 차마 펼치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죽어 그와 상충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됨을 의미한다. 차라리 무력을 통한 반정이라면 힘의 균형에 의해 그 동안 쇠퇴하던 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력이 들어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갑작스럽고 은밀한 권력의 이동은 정치의 중심점이 쉽게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조선 왕정의 인스턴트적인 성격이 비단 조선의 정치사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의 우리나라 정치만 봐도 정당간의 정권이동에 따라 방향성이 크게 변동하기에 20, 30년간의 장기적인 정책 같은 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정권을 잡은 기간 동안 무엇이라도 이루어 내기 위해 5년, 10년짜리 단기적인 정책에 주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전통이 없는 문화?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

우리나라는 명품을 잘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못해서 그런데 유럽에서는 옷 하나를 만들고 악기 하나를 만들어도 어떤 재료를 어떻게 손질하고 어떤 도료를 사용하고 하는 등의 데이터를 남기면서 문화가 전승이 되고 전통이 만들어 진다. 반면 한국에서는 무엇이든 대부분 한 번 발생되었다가도 금방 사라지는데 전승 될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집짓는 대목장이 자도 쓰지 않고 눈짐작으로 귀신같이 가늠을 하고 뚝딱뚝딱 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다지 자랑거리가 아니다. 대목장이 죽어버리면 누구도 똑같이 그런 집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장인의 기술이 1:1로 전수받는 과정을 통해 내려오다 한 번 끊기면 그 문화는 소멸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카피문화가 발달했다. 가지고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것을 따라하는 문화가 생겼다. 전통이 없는 문화의 한계다. 그렇지만 반면에 전통에서 자유로움으로부터 얻게 되는 장점이 있으니 이 점을 확실히 이해하고 십분 활용하여 문화적 강점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가설도시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는 100년이 넘은 빵가게에서 여전히 아침마다 신선한 빵을 구워내고, 일본의 어느 초밥집에서는 4대째 같은 집에서 같은 맛의 초밥을 만든다고 한다. 전통 계승과 문화의 발전은 그런 유서 깊은 집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은 바로 100년이 넘은 집에서 100년이 넘게 집주인이 대물림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에서 4대째 초밥집을 하면 그것은 한 집안의 자랑스러운 역사요, 나아가 일본의 자랑스러운 민족 문화로 승화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4대째 김밥 장사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3대째 김밥을 말았다면 다음 세대의 자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판검사를 만들어 팔자를 고치고 말겠다는 변화에 대한 갈망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우리민족이 만들어 낸 도시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우리나라의 많은 집들과 상점과 빌딩이 임시로 지어져있는 가건물과 마찬가지의 상태이다. 임시로, 당분간만 사용할 목적으로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우리의 인스턴트 문화를 대변한다.


세계최고의 철거기술

한국의 건물철거기술은 세계 최고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건물을 때려부수고 새로 짓다보니 도시전체가 박물관인 유럽의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철거기술이 월등하게 발달해 있다. 각종 상점들은 2,3년이 멀다하고 끝없이 물갈이가 되니 간판업계, 현수막제작업계, 인테리어업계 등이 날로 활성화 된다. 내수시장이 받쳐주니 기술이 발달하고 가격도 싸진다. 인스턴트문화 덕분에 우리만의 뛰어난 기술력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잘 만든 구두가 공장을 망하게 한다

인스턴트 문화가 성공한 예가 ‘한류’이다. 한국의 재미있고 단순한 드라마나 어렵지 않은 아이돌 스타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나 일본에서 문화적 소외집단인 서민아줌마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해하기 까다롭지 않은 수준이면서 적당히 깔끔하게 땟국물만 지웠기 때문이다. 현 상황을 잘 파악하고 대응해나가는 능력이 무조건 수준을 높이는 것보다 중요하다. 구두를 너무 잘 만들어 10년 15년씩 신게 만들면 결국 구두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할 수밖에 없다.


우리문화의 강점을 이해하자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 인스턴트 문화는 분명히 강점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유산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굳이 다른 문화와 같은 길을 좇을 필요는 없다. 열린 마음으로 세계화시대에 발돋음 할 수 있는 문화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빨리빨리 문화, 인스턴트 문화를 확실히 이해하여 고칠 건 고쳐서 힘 있는 문화로 만들어가야 한다.


<조선왕 독살사건>은 중세의 우리국가 ‘조선’의 역사를 한 발 비켜선 시각으로 섬세하면서도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객관적이면서도 생생한 문장을 통해 독살이라는 흥미로우면서 중요한 요소를 사실적으로 전달해 주기에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는 지식의 배부름은 또한 고맙다. 무엇보다 생각의 전환을 통해 조선을 넘어서 우리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가져다 준 것 같아 너무나도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h******1 2009.03.23.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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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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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면 혈연관계일텐데 권력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이 혈연관계도 끊어놓는 것일까. 천수를 다 누리고 죽은 왕도 있겠으나 '조선왕 독살사건'을 읽으면서 정적에 의해 독살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왕들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최근 드라마 '자명고'에서 무휼이 아들 호동왕자에게 한 말을 보면 권력의 비정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데 "아버지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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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면 혈연관계일텐데 권력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이 혈연관계도 끊어놓는 것일까. 천수를 다 누리고 죽은 왕도 있겠으나 '조선왕 독살사건'을 읽으면서 정적에 의해 독살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왕들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최근 드라마 '자명고'에서 무휼이 아들 호동왕자에게 한 말을 보면 권력의 비정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아들은 정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는데서 왕좌란 것이 아버지 밟고 올라서거나 때론 형제나 아들을 밟고서만이 앉을 수 있는, 아니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 왕좌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 권력의 참모습인 것을 알 수 있다.

 

왕위의 정통성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왕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논, 밭 갈며 가족들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들에 의해 이리저리 쓸려 살아가는 것이 힘 없는 백성들의 인생이지만 한평생 술과 기생을 끼고 살아간 왕족들을 보면 그저 삶이 무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드라마 '장희빈'을 즐겨보는 이유가 권력암투의 재미때문인데 일개 궁녀가 중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재미요, 아들을 낳는 것에서부터 권력의 미묘한 줄타기가 시작되는데서 시청자들은 즐거움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역사소설에 재미를 붙이면서 궁중암투가 그저 단순하게 왕이 미색을 탐하여 일어난 일이 아닌 당파에 의하거나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속에서 휩쓸려 살아간 여인네들의 한숨소리가 나의 마음까지 슬프게 만든다. 비록 구중궁궐속에서 여인네들이 참으로 치열하게 살다갔으나 그 죽음은 또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우리네 역사를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겠지만 고증을 통해 밝혀내는 것이 한계가 있어 어디까지를 사실로 보아야 할까 하는 문제가 있다. 대체적으로 '조선왕 독살사건'의 내용도 드라마에서 자주 접해 왔던 내용이라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게 하는데 드라마와 다르게 책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독자들에게 알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등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혹을 가질 뿐 확실히 독살당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역사를 쓴 이들이 승자라는 이유도 있겠고 그 갑작스러운 죽음 뒤 왕좌에 오른 왕으로 인해 사실이 은폐되기도 한다는 것이 진실을 묻어 버리게 만든다.

 

요즘 들어 드라마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된 소현세자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인종이 가장 비정한 아버지로 그려져 그 권력의 참모습에 섬뜩함마저 느끼게 되는데 이렇듯 왕좌가 피로 물들어 있다고까지 여기게 되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내가 살기 위해선 누구든 죽여야만 했던 비정한 세상속에서 왕과 사대부들의 권력다툼에 먹고 사는 것마저 힘들었던 일반 백성들의 삶이 겹쳐져 가진자의 행위가 더 무섭고 냉정하게 그려진다. 잠깐 앉아 있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왕좌에 앉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일까.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만 했다고 변명하며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역사속에 이름이 남겨진 사람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아아, 모르겠다.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 세상이 만들어지고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저 하늘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을텐데, 역사를 알아갈 수록 눈이 시려서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도 쉽지 않다.

y*****6 2011.01.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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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을 넘어서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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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 이 말은 조선 22대 왕 정조(正朝)가 침전에 달았던 편액(扁額)이었다. 조선 왕조에 있어 어느 누구보다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왕이 바로 정조다. 정조는 이름에 걸맞게 바른 정치를 위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중에서도 탕평책을 빼놓을 수 없다. 자나 깨나 그 편액을 바라볼 정도였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정조의 꿈은 실현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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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

이 말은 조선 22대 왕 정조(正朝)가 침전에 달았던 편액(扁額)이었다. 조선 왕조에 있어 어느 누구보다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왕이 바로 정조다. 정조는 이름에 걸맞게 바른 정치를 위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중에서도 탕평책을 빼놓을 수 없다. 자나 깨나 그 편액을 바라볼 정도였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정조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재위 24년 개혁 군주는 끝내 비운의 죽임을 당했다. 죽음의 원인은 종기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두통이 많이 있을 때는 등 쪽에서도 열기가 많이 올라오니 이는 다 가슴의 화기(火氣)” 때문이었다. 생부였던 사도세자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뒤주 속에 갇혀 죽었으니 그 원통함은 화병(火病)의 굴레였다.

 

그동안 정조의 병사(病死)는 역사적 사실로 여겨졌다. 우리의 제도권 교육은『조선왕조실록』을 자신들만의 믿음으로 강력하게 다룰 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원인의 등급화라는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원인의 등급화란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어느 일련의 원인들 혹은 또 다른 일련의 원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은 독살이라는 문제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독살의 가능성에 대해 분명하게 이렇다 저렇다 입장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살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이덕일의『조선 왕 독살 사건』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TV나 대중매체에서 대단한 흥밋거리로 오해받을 수 있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조선 왕들의 급서를 파헤치고 있다. 이미 대중적 역사서의 새로운 지평을 펼친 저자의 탄탄한 글쓰기는 우리들에게 진짜 역사란 무엇인가를 거듭 생각하게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조선왕조실록』에 가려진 조선 왕들의 죽음의 이면이나 허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조선 왕 독살설에 대해 회의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조선 왕은 어떤 존재였을까? 조선 왕조는 5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태조 이성계에서부터 마지막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다스렸다.『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들의 재위 기간이 조선 8대 예종처럼 적게는 1년 1개월이고 조선 14대 선조처럼 많게는 40년이다. 그런데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게임에 휘말릴 때 왕들은 의문의 죽음 즉, 급서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것이 저자에게 이 책의 결정적인 모티프였다. 저자는 급서의 현장을 꼼꼼하게 두루 살피면서 숨겨진 역사를 구원하고 있다. 그는 조선 왕 3명 중 1명이 독살되었다고 자신의 논리를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성찰은 날렵하면서도 진지하다. 이 책을 읽고 독살의 가능성에 대해 비평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는 독살 프리즘을 제시하면서 이를 똑바로 바라봐야 했다. 더불어 독살이다, 아니다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는 역사에 대한 묵직한 반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독살 프리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문종 독살설이며 다른 하나는 정조 독살설이다. 문종 독살설은 문종-단종-세조로 이어지는 골육상쟁의 왕위 쟁탈전의 희생양이었다. 반면에 영조와 노론에 의해 사도세자의 비극을 겪은 정조는 이에 맞서 남인을 등용하면서 개혁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 이후 곧바로 정경왕후와 노론의 집권 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남인을 철저하게 복수했다. 이른바 정조 독살설은 당파 쟁탈전의 희생양이었다.

 

이러한 조선 왕 독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권력의 탄생에 주목하고 있는 저자의 시각은 정치적 희생자로 구체화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조선의 국왕이 일본의 천황과 중국의 황제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측면을 보여주면서 객관적으로 지배층의 비정상적인 정치 행위를 드러나게 했다.

 

저자는 조선 국왕들의 탄생과 몰락을 추적하면서 조선의 국왕은 일본의 천황처럼 허수아비가 아니라 중국의 황제처럼 절대권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 국왕의 절대권이라는 것이 이론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실제에 있어서 조선의 국왕은 신하들의 끊임없는 전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중국의 황제는 신하들에게 무조건적인 숭배와 충성의 대상이었으나 조선의 국왕은 조건부 충성의 대상이었다. 결국 조선 왕조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신하(臣下)였다.

 

저자의 위와 같은 주장은 독특하고 흥미로운 탓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조선 왕 독살 사건은 근거 없는 일방적인 자기주장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그릇된 정보와 억측으로 조선 왕조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역사의 문외한이 나로서도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권력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상상이 아닌 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일찍이 러셀이 권력이란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힘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조선 왕 독살은 정의로운 (?) 효과를 내는 데 있어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의구심이 갈수록 많아지자 조선 왕조에는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해 좀처럼 화끈거리는 얼굴을 삭일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정조 어찰(임금의 편지)가 일부 공개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번 정조 어찰의 당사자는 정조와 노론의 영수 심환지였다. 정조가 개혁군주였다면 심환지는 정조 독살설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서로 라이벌이었던 그들이 파격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조선 왕 독살 사건의 화약고였던 정조 독살설이 발등의 불이 되었다. 심환지를 옹호하는 쪽은 심환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몰두했다. 반면에 정조를 옹호하는 이덕일은 그래도 뒤집을 수 없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심환지와의 각별한 관계는 통치를 위한 방편으로 봐야지, 독살설을 뒤집을 증거로 삼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어느 때보다 지금 역사의 뒤안길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조선 왕 독살 사건』은 좋은 길라잡이다. 그동안 우리는 조선 왕들의 치세와 과오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린 탓에 좋은 왕, 나쁜 왕이라는 잣대로 기억해야 했다. 하지만 제목에 나와 있듯 저자는 조선 왕 독살 사건의 전후를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왕의 자리는 바늘방석이었고 고독했다. 결과적으로 독살이라는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강한 만큼 조선 왕들은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렸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조선 왕들은 슬프다. 조선 왕들이 아무 말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었다고 해서 독살의 진실마저 무덤 속으로 파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반성하지 않는 역사에 대해 저자의 혜안은 놀라울 만큼이나 진솔하다. 물론 역사는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눈높이에 초점을 맞춘 저자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며 조선 왕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그의 독살 프리즘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래서 인지『전쟁에 반대하다』를 통해 미국의 양심을 호소하면서도 “나는 역사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발견하려 애씁니다.”라고 말했던 하워드 진의 목소리나『조선 왕 독살 사건』을 통해 독살의 부정적인 면을 모두 밝히면서도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라는 이덕일의 목소리가 서로 겹쳐 들렸다.

p******0 2009.03.23. 신고 공감 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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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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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개정증보판이 나오기 전에 읽었던 구판이 80쇄가 넘었던 책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선왕이 독살당해 죽은 일에 이토록 관심이 많다니 꽤 놀랐습니다. 그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저자는 2005년 ‘조선 왕 독살사건(구판)’ 출간 이후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다수의 인물이 독살되었다는 3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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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개정증보판이 나오기 전에 읽었던 구판이 80쇄가 넘었던 책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선왕이 독살당해 죽은 일에 이토록 관심이 많다니 꽤 놀랐습니다.

그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저자는 2005조선 왕 독살사건(구판)’ 출간 이후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다수의 인물이 독살되었다는 3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서 조선 왕 독살사건의 개정증보판을 출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충효의 나라로 기억되고 있는 조선이지만, 저자는 조선 왕 3명 중 1명이 신하들에 의한 독살설에 휩싸이고 많은 왕손들이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에 저자는 문종의 의문사를 파헤치다가 국왕 독살이 조선 500년사를 꿰뚫는 키워드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개정증보판 1권에서 가장 호기심을 가지게 된 인물은 추노’, ‘최강칠우등의 소재로 이미 다루어진 바 있는 소현세자였습니다. 소현세자가 죽었을 당시의 실록 기록을 보면 독살설이 유력하게 제기될만한 상황입니다. 앞뒤 전후를 보아도 그렇고... 보는 내내 위의 드라마들이 오버랩되며 내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5 2013.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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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 조선왕 독살사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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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한가람연구소장이란 이름만으로 재야사학, 비주류라고 인식되는 경향이 많다. 이책 두권은 yes 24 행사기간에 구매하였다. 물론 왕에 대한 독살설의 제기가 끌고오는 파문은 크다. 그렇다고 합리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시대상황을 기록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것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세의 입장에서 또 독자로서 또 다른 진실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얹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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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한가람연구소장이란 이름만으로 재야사학, 비주류라고 인식되는 경향이 많다.


이책 두권은 yes 24 행사기간에 구매하였다. 물론 왕에 대한 독살설의 제기가 끌고오는 파문은 크다. 그렇다고 합리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시대상황을 기록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것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세의 입장에서 또 독자로서 또 다른 진실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얹혀지기도한다.


이책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건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안다고 하지만, 스스로 찾아 읽은 역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가 고증과 논리를 제기하기 위해서 실록 및 다른 많은 사료를 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의문에 같이 물음표를 하나 더 찍어준다고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여유가 되면 우리가 이해했던 조선과 실록등의 통한 왕의 모습과의 간격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고 본다. 

k***i 2012.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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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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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려는 뜻은 군주 혼자만의 뜻으로만 이루어질수는 없다. 그 꿈은 가족에 의해, 때론 함께 뜻을 했던 대신들에 의해 좌절되기 했다.  조선은 건국부터 쿠데타라는 형태로 시작되었기에 늘 왕위에 대한 불안을 가질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 계속 발생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왕의 야먕과 불안은 조선시대에만 국한된것은 아닌것 같으며, 책을 읽는 내내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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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려는 뜻은 군주 혼자만의 뜻으로만 이루어질수는 없다. 그 꿈은 가족에 의해, 때론 함께 뜻을 했던 대신들에 의해 좌절되기 했다. 

 조선은 건국부터 쿠데타라는 형태로 시작되었기에 늘 왕위에 대한 불안을 가질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 계속 발생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왕의 야먕과 불안은 조선시대에만 국한된것은 아닌것 같으며, 책을 읽는 내내 많은 사람들이 떠올려졌다. 현대 정치에서도 그렇고, 현대 사회생활안에서도 똑같이 쿠데타를 꿈꾸며, 정치를 하는 형태가 떠올려졌다. 

때마침 계유정변을 배경으로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로맨스의 흐름에 좌우되지 않게 잘 볼수있는 것도 이 책 덕분이었던것같다. 
지루해 질 수 있는 부분을 흥미진지하게 읽은걸 고마워할수도 없는 안타까운 역사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자료를 찾아보며 읽은 책이고, 더 많은 책을 읽게 만들어준다.  






 

v****e 2011.09.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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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사건 1,2]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하나다.
"[조선왕 독살사건 1,2]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하나다." 내용보기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는 역사학자 E.H 카가 말한 너무도 유명한 역사의 정의이다. 오랜만에 역사서를 읽은 후 제일 먼저 생각난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처음 [조선왕 독살사건]이라는 책을 집어든 건 제목자체가 주는 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숨겨진 미스테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가벼운 흥미를 충족시켜보
"[조선왕 독살사건 1,2]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하나다." 내용보기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는 역사학자 E.H 카가 말한 너무도 유명한 역사의 정의이다.

오랜만에 역사서를 읽은 후 제일 먼저 생각난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처음 [조선왕 독살사건]이라는 책을 집어든 건 제목자체가 주는 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숨겨진 미스테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가벼운 흥미를 충족시켜보고자 첫 장을 펼쳤는데 1권의 첫 장 문종의 이야기부터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 책대로라면 조선왕 3명중 1명은 독살을 당했다는 무시무시한 과거를 만나게 된다.

크고 작은 당쟁과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유교사상을 근본으로 한민족의 뿌리를 굳건히 이어온 조선왕조 시대에 왕이 독살되었다는 주장을 처음에는 믿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수많은 왕들이 이루어 놓은 위대한 업적만을 인지해온 나의 편협한 역사지식이 그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수 백 년간 이어진 왕조사에 독살당한 왕이 한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된다는 것에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 자연히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충분하게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우리민족이 실제로 만들어온 역사를 말하는 자리이니 만큼, 저자가 실증적 사료만을 들이대며 ‘이것 보시오. 여기 이렇게 써 있지 않소? 혹은 여기 증거가 있소’ 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했다면 그냥 역사교과서를 대하듯 아무런 감흥도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저러한 사건들이 있었고, 결국 왕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이런 방법으로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인과관계에서 나타나고, 이는 후에 기록된 실록에서 나온 구절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왕이 죽은 후에 실행된 처사를 보아도 명백하다.....라는 식으로 왕의 독살설에 대해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실질적 사료는 물론, 논리적인 설명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래서 에이, 이건 말도 안돼!라며 책을 덮어버리기는커녕,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거려지기도 했다.

 

한 나라의 왕이 몇 몇 신하들의 주도하에 무참히 살해당한 것도 놀랍지만 그런 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왕의 사후에 주요 관직을 차지하고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되풀이 되는 모습에서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를 대하는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정치와 권력 사이에서 누군가는 권력자로 등극하고, 누군가는 무참하게 희생되는 이런 모습들. 현재에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렇다면 왜 유독 조선왕조에서는 이렇게 수많은 왕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는가? 이는 아마도 정당성이 결여된 조선시대의 건국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당시 고려사회는 정치적으로 왕권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대내외적으로도 불안하고 어지러운 상황이었기에 새로운 왕조의 출현이 당연히 기대되었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여러 여건이 맞물려 이성계가 고려를 없애고 새로운 조선을 세웠지만 문제는 정당성과 명분이 결여된 왕권의 탄생은 그러한 원죄가 평생 따라다닐 수 밖에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강력한 왕권을 위해 자신과 동조하지 않는 신하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졌고, 이러한 음울한 기운이 왕조를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이어져 결국 왕의 목숨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킬 수 있는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은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책이었다. 예전에 나온 책을 읽어보지 못해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를 찾아보니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인물들의 독살설이 더해졌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내용이 더 보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초, 정조와 심환지 사이의 비밀편지가 공개되면서 독살설이 맞다! 아니다!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져 이에 대한 결론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다만, 독살설이라는 하나의 코드에만 온갖 포커스가 맞추어져 자칫하면 흥밋거리로만 전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만의 안타까움이 생겼다. 여론이 무서운 이유는 쉽게 대중을 선동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호도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기사의 선정적인 제목만 보아도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차치하고 역사학파들 사이의 대립이나 싸움으로만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역사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연구하고 밝혀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런 새로운 역사를 만나는 우리의 목적과 마음가짐이 흥미위주의 야사정도로 전락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역사학자 E.H 카도 자신의 저서에서 역사는 과거의 현재의 대화를 넘어서, 과거의 사건들과 우리들 앞에 앞으로 나타날 미래의 목적들과의 대화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은 물론, 중요하고 타당한 것을 골라내는 역사가의 선택도 새로운 목표가 점차 나타남에 따라서 진화되어 나간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바로 이 글이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목적을 제시해 주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나는 과정을 계속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즐거운 과정이 될 수 도 있겠고, 때로는 마음 아프고, 어두운 과정이 될 수 도 있다.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 수 도 있고 지금까지 진실로 알아온 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진실은 하나이다.

그 진실을 끊임없이 파헤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이 이 [조선 왕 족살사건]인 만큼,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고 싶은 모든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s*****m 2009.03.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