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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위화 작가의 네 번째 장편 소설을 읽었다. 마음이 비로소 안도된다. 대개의 경우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책을 처음부터 다 읽어보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그 가수의 곡을 다 들어보는 것처럼.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나는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어도 그 작가의 책을 다 읽어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나는 예전에 브라운 아이즈라는 그룹이 <벌써 일년>이라는 노래로 1위를 하고 있을 때 그 노래가 참 좋다고 생각했지만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을 찾아볼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서 이 작가의 책을 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기대도 되고 흥분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꽤 조바심이 생기는 편이다. 왜 그러냐면 다음 책을 읽고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여행에 비유한다면 이 작가 저 작가 가리지 않고 내키는 대로 읽는 것은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걷는 여행과 같다. 반대로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서 그 작가의 책을 다 읽어보기로 결정하는 건 목적지가 있는 여행과 비슷하다. 목적지가 생기면 계획이라는 걸 세워야 한다. 어떤 사람은 안 그럴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계획을 세우는 일은 즐겁다. 실제 여행을 갈 때보다 갈 곳을 고르고 갈 곳의 순서를 정하고 경로를 만드는 일이 더 신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막상 여행을 시작했을 때 뭔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면 들떴던 높이만큼 기분이 추락한다. <제 7일>을 읽고 안도감이 들었던 것은 이 이야기에서 이승과 저승이 서로 무관한 세상이 아닌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사후 세계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는다는 건 영원히 잠을 자는 것과 비슷해서 의식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잠과 차이가 있다면 한 번 사라진 의식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정도랄까. 아마 죽으면 끝이라는 통념도 이런 생각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이 세상에서의 일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은 “만약 이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고 말했는데 그것처럼 저승이나 사후 세계, 평행 우주, 천국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무수한 세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현실이라는 공간이 전부라면 그건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낭비다. 한 손에는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 손에는 이승이 아닌 다른 세계의 존재를 상상한다는 건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모순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후 세계를 상상하는 이유는 정말로 그런 세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어느 지점에서 끝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다르게 말하면 끝이라는 개념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은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끝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개인이라는 하나의 틀에 한정했을 경우에는 존재할 수 있어도 개인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사실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제 7일>의 예를 들어볼까. 이 책에서 이승과 저승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이승과 달리 저승에는 국가도 가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파에 앉아 있는 귀빈을 제외하면 저승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국가가 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집이 철거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철거민이거나 직장이 없어 구걸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하층민들이다. 국가는 철거민들의 집을 부수고 하층민들을 지하 방공호로 밀어넣는다. 철거민과 하층민은 바로 국가가 생각하는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다양한 정체성을 중첩하게 된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느 행정구역에 속한 사람인지 누구의 자식인지 등등. 그런데 만약 국가가 버린 사람이라면 그는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잃을 것이고 시가 버린 사람이라면 그는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잃을 것이다. 나아가 가족마저 그를 버리면 그에게 남은 정체성이라고는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것밖에 없다. 만약 끝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모든 정체성이 사라지고 자기 자신만 남았을 때일 것이다. 국가도 외면하고 시도, 가족도 형제도 친구도 외면해서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어디에도 내가 속해 있지 않을 때.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끝은 찾아온다. 양페이가 죽은 것도 슈메이가 죽은 것도 우차오가 죽은 것도 그래서다. 만약 우리가 언젠가 우리 모두는 끝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말은 곧 언젠가 우리 모두는 혼자가 될 거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흔히 생각하는 죽음의 공포는 생명이 다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끝에 대한 공포이며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제 7일>에서 이승과 저승의 가장 큰 차이는 저승에서는 누구도 혼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승에서는 누구나 시간이 흘러 혼자가 되는 반면 저승에서는 빈의관에 가서 영원한 안식을 얻거나 아니면 영원히 다른 사람들과 지낼 수 있다. 여기서는 국가도 시도, 가족도 형제도 없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아빠이고 그 아이는 내 아이이다. 반대로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의 엄마이고 나는 그녀의 자식이다. 요컨대 <제 7일>의 저승은 누구도 혼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곳이다. 류메이의 화장을 위해 모든 망자가 나뭇잎의 물을 떠온 것처럼, 쇼핑몰에서 죽은 일련의 타인이 가족이 된 것처럼, 리웨전 아주머니가 스물 일곱 아기의 어머니가 된 것처럼. 심지어 이곳은 서로를 살해한 원수조차 서로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화 작가는 이 책에서 집이 없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하층민들을 살해하는 이승을 비판하고 무정부주의적이고 원시공동체에 가까운 저승을 상찬하면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편을 가른 것일 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끝이 없다는 것은 이승 다음에 저승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승과 저승이 서로 무관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양페이는 어떻게 자랐는가. 그를 키운 것은 국가도 친부모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우연히 철로에서 그를 주운 젊은 철도원이었고 어머니는 철도원 친구의 부인이었다. 요컨대 십중팔구 죽을 운명이었던 양페이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무관한 타인의 호의 덕분이다. 사람에 대한 호의는 저승과 마찬가지로 이승에도 존재한다. 저승에도 재산과 권력에 따라 계급이 있듯이 이승에도 사람이 혼자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마음이 존재한다. 우차오는 이미 류메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무덤을 만들어주기 위해 신장을 팔았고 그로 인해 죽었다. 남들과 똑같이 해골이 될 류메이를 결혼식장의 신부와 같은 모습으로 영원한 안식 속에 잠들게 해준 것은 바로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우차오의 마음이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누군가를 홀로 놔두지 않고 그래서 누군가가 끝장나게 하지 않는다. <제 7일>의 서문에 위화 작가는 창세기를 인용했다. 인용한 글에 따르면 하나님은 제 7일이 되는 날 모든 것을 이루고 쉬셨다. 양페이는 첫째날에 죽었고 저승에서 보낸 7일 동안 자기를 홀로 죽도록 내버려 두었던 세상이 사실은 자기에게 삶을 선물했음을 알았다. 우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우리가 혼자라는 생각이 죽은 다음 날부터이다.
2024년 8월 25일부터 2024년 8월 26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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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허삼관 매혈기 형제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 # 읽고 나서.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는 동물이다. 미래를 준비하고, 사후 세계를 궁금해하고. 어쩌면 사후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지금의 삶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허무한 생각을 몰아내고, 인생이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 종교는 위화가 보여준 사후 7일과는 다른 사후를 이야기를 하지만, 소설을 쫓아가며 천국의 모습도 결국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는 7일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배경이 현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저마다 힘든 사연을 안고 있는 망자들. 그들의 기구한 사연은 치열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꿈을 좇아 사랑하는 남편을 버렸지만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손목을 그어야 했던 사연, 연인에게 짝퉁 아이폰을 선물 받았다며 투신자살을 결심하는 사연, 화재로 대피하는 와중에 돈을 내고 가라며 사람들을 막어 선 식당 주인, 의료 폐기물 취급을 받는 갓난아기들의 시체나, 죽었어도 윗사람들의 체면과 실적에 급급해 은폐되고 조작되며 존중받지 못하는 사연들. 그 모든 사연의 주인공들이 매장될 한평의 땅도 없어 한곳에 모여 서로를 위로한다. 일곱째 날, 양페이가 찾던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도 기다리던 아들을 만났으나, 아버지는 '이렇게 빨리 오다니'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 안에 모든 감정이 들어있는 것 같아 울컥했다. 그 모든 사연을 뒤로하고 마침내 만나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데 위안을 받는 부자가 안쓰러웠다. 어째서 살아있을 때는 그 작은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지.. 중국의 현실을 소개했지만, 같은 혹은 다른 형태로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들의 삶이 죽은 뒤에 에나 겨우 위로받는다고 하면 서글프지만, 한편으로는 삶 너머 어느 곳에선 존중받을 수 있다는데 위안을 받는다. 지금의 가난, 슬픔, 고통, 원한 모두 죽음이라는 한순간만 지나고 나면 다 사라질 거라는 위로는 지금의 삶을 계속하게 하는데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나 담담한 어조로, 아니 조금은 유머러스한 어조로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 매력적인 소설. *밑줄 첫째 날 저들이 하는 말은 문장부호조차도 믿지 않아요. 둘째 날 그녀는 미모란 여자의 통행증과 같지만 자신의 통행증은 줄곧 회사가 이용했지, 정작 자신은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신 눈빛이 나를 애도하는 것 같네.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런 기분이야. 우리 둘이 서로를 애도하는 것 같아." 셋째 날 아버지가 스물한 살 때 갑자기 아버지 삶으로 뛰어든 나는 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장악해버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땅히 누려야 했던 행복은 아버지 삶에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온갖 고생을 참고 견디며 나를 길러낸 그 아버지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플랫폼에 내버린 것이다. 저녁에 가게 문을 닫은 뒤 우리 부자는 한 침대에 끼여 잤다. 나는 매일 밤 아버지의 한숨과 신음 소리를 들었다. 한숨은 내 앞길 때문이었고, 신음은 아버지의 병고 때문이었다. 넷째 날 "왜 저기 서 있대요?" "자살하려고요" "왜 자살하는데요?" "살기 싫대요" "왜 살기 싫대요?" "젠장, 그런 건 뭐 하러 물어요? 요즘 살기 싫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정적 속을 걸었다. 정적의 이름은 죽음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기억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세상의 기억이고, 뒤엉킨 과거이며, 허무이자 진실이었다. 나는 옆에 있는 쓸쓸한 표정의 여자가 소리 없이 걷는 것을 느끼면서 떠나간 세계가 자아내는 서글픔에 탄식했다. 다섯째 날 나도 웃었다. 10여 년 전 두 사람이 6개월 차이로 이곳에 왔을 때, 두 사람의 원한은 생사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원한은 저지당한 채 그 떠나간 세계에 남았다. "왜 죽은 뒤에 오히려 영원히 사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그는 공허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죽은 뒤에 안식의 땅으로 가야 합니까? 내 물음에 그가 웃는 듯하더니 말했다. "모르겠소." "왜 스스로를 재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건 규칙이라오." "묘지가 있는 사람은 안식을 얻지만 묘지가 없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어떤 게 더 좋습니까?" 내가 물었다. "모르겠소." 하얀 옷을 입은 아줌마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그 뒤로 스물일곱 명의 아기들이 줄지어 기어갔다. 햇빛이 케케묵은 노란색이었다. 그들이 떠들썩한 도시를 통과해 고요 속으로 들어가자 은회색 달빛이 맞아주었다. 그들은 고요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일곱째 날 그곳에 가서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그곳이 추운지, 더운지 아무도 모르지요. 만일 날이 춥고 땅이 얼어 있으면 어떡해요. 유비무환이잖아요. "이렇게 빨리 오다니." "아버지, 여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여기서 매일 너를 그리워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정말 몰랐구나." "아버지, 이제 또 함께예요."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 "저곳은 어떤 곳인가요?" 그가 물었다.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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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인생, 형제를 읽고 제7일을 접하면서 위화 특유의 색깔을 다시 느낀다. 인간 사회의 밑바닥에서 부조화에 시달리며 이용되고 버려지면서도 서로를 끌어안는 이들을 바라 보는 작가의 따뜻한 눈길과 날이 선 분노와 넘치는 위트에 우리는 눈물 흘리고 껄껄 웃고 분노하고 그리고 사랑을 느낀다. 이전 작품과 달리 사후세계라는 비현실적이고 현대 중국이라는 익숙치 않은 배경 설정이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의 비극과 그 안에서 도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 삶의 에너지들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
| 위하 작가님의 제7일을 읽었어요. 주인공 양페이가 죽은 후 7일 동안 사후 세계를 여행하며, 생전에 만난 사람들과 다시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현대 중국 사회의 문제들도 함께 담겨 있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답니다. 조금 무겁지만 의미 있게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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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븐틴 덕질에 빠져있는 중학생 딸이 고르는 책들이 하나같이 세븐틴 오빠들이 추천해 준 책들이네요. 영 책을 요즘 안 읽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세븐틴 멤버들이 양질의 책을 추천해 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책 역시 세븐틴 멤버와 방탄소년단 멤버가 추천해서 아이가 사 달라고 해서 구입합니다. 워낙에 베스트셀러인데다가 내용이나 구성이 보증되어 있는 책이라 아이가 재미있게 읽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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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이상하지만.. 주인공이 죽은 후 살아낸 7일을 그려낸 소설이다. 위화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처음 이 주인공의 처지는 현실적이게 딱하고 안타깝고 가여웠다. 죽었는데 날 거둬줄 사람이 없으니 돌아서 나와야해, 사망 후 추가로 살게 된 7일 중 첫날부터 말년의 숨에 누린 상상의 홍복으로 이상형과 결혼했나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눈물나는 방식으로 이혼을 하게 되질 않나 둘째날이고 셋째날이고 눈앞이 깜깜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데 뭔가 보면 볼수록 현 시대에 현실감 있는 얘기들 같아서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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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양페이가 사고로 죽게 되면서 이승과 저승사이의 공간(영면 전까지)에서 7일 동안 만나는 또 다른사람들과 죽은 후 회상하는 현실에서의 인연,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또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등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입니다.
양페이는 기차 화장실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친어머니가 기절하면서 화장실구멍으로 빠져버리죠. 그렇게 버려진 것 같이 보이는 양페이를 양진바오가 거두어 키우게 됩니다. 친아버지 이상의 사랑으로 양페이를 키우다가 그는 병에걸려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 직감하고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않아 떠나게 됩니다. 그는 떠나기 전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P135
양페이가 이승과 저승사이에서 아버지를 찾아다니며 또 다른 인연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슴 아프게도 그들은 이승에서 양페이와의 인연이 있던 사람들인데요.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가 다르지만 이승에서 가난과 불평등한 사회의 희생자들이라고 할까요? 양페이는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서 가게와 집을 다 팔고 나서 지하촌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을 때 만난 커플 중 여자 유메이를 만납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가난한 거 싫어. 지긋지긋해. 아이폰3가 나왔을 때 동생은 받로 사더라. 아이폰 3S가나오니까 바로바꾸고 . 작년도 또 아이폰 4로 바꾸더니 지금은 아이폰4S 야. 내가 쓰는 이 후진 휴대폰은 2백 위안이라고 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을걸.”P159
그녀는 몸을 팔아서라도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접대업소를 나가겠다고 남자친구와 싸우면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남자친구에게 저런 허락을 받으려 하는게 말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둘은 만두 하나 사먹을 돈 조차 없어서 음식을 구걸합니다. 극도의 가난은 한사람의 생각을 왜곡하는지도 모릅니다. 밥도 먹을 수 없는데 무슨 아이폰이냐고 생각 할 수도 있죠. 평범하고 배부른 사람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새로운 아이폰이 나올 때 마다 바꿀 수 있다는 건 이미 의식주에 관한 가난 따위는 애초에 없는 행복한 상태라고 보는 것일 지도 모르죠.
“걔가 나를 속여서 그랬어요. 진짜 아이폰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가짜였던거죠. 차라리 아무것도 안줬다면 나도 화내지 않았을거에요. 하지만 속이는건 안 되죠. 신문에서 헛소리한 거예요. 또 뭐라고 했어요?”P170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짝퉁아이폰을 선물 받은 며칠 뒤 도시의 한 빌딩에서 자살합니다. 자극적인 뉴스거리를 좋아하는 대중에게 신문사들은 앞다투어 자극적인 기사를 냅니다. 짝퉁아이폰을 선물 받고 상심해서 죽는다는 만큼 자극적인 소재는 없는 거죠. 그녀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억울해 합니다. 이승과 저승사이에 머무르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하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살려달라고 하지 않아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단지 남아있는 사람의 걱정, 자신의 오해에 대한 미안함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울 뿐입니다.
“...저는 울었어요. 정말 슬프게 울었어요. 그한테 화가 나서 운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너무 불공평해서 울었어요....”P289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을 위화는 덤덤한 말투로 서민들의 삶을 글에 녹여냅니다. 사실은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작가가 나왔을까 하는 놀라움과 또 위화라는 작가를 가진 중국이 부럽기도 합니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의 사연들은 중국현실과 너무 닮아있어요.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문학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현실이 부정적 현실이든 미래지향적 현실이든지요. 이것은 마치 문학의 잔잔하지만 강한 힘 이라고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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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된 주인공에게 7일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 7일간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던 인물들과 다시 마주하고, 그들과의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뭉클하면서도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부조리한 현실 사회를 비판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좋은 기회에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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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본, 혹은 겪을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고 또 독자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중국 사회상을 담으면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각각의 등장인물이 왜 이렇게 행동해야만 했는지 당위성을 부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쉴틈없게 읽게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제7일. 다음은 허삼관 매혈기로 가보겠다. |
| 간결한 문체로 격렬함없이 담백하게 잘 읽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책이 손에서 안놓아집니다 중국 근현대사의 문제점들이 각 인물들의 삶속에 드러나는데 이것이 중국만의 문제는 아닌듯해요 사람사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낯설지않은 문제들인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