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인의 후예』가 판본이 바뀌면서 아주 새로운 소설이 되었다는 사실을, 현대의 독자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황순원의 소설 『카인의 후예』의 서로 다른 판본을 비교해 보면, 시대가 소설에 영향을 끼친 흥미로운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1953년 <문예> 지에 연재된 소설의 첫부분과 비교해 볼 때. 1981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단행본의 첫부분에는 등장인물들이 겪게 될 갈등이 무엇에서 연유하는 것인지가 좀 더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박훈은 도섭영감과 지주 - 작인의 관계이며 동시에 사위 - 장인의 관계이다. 그리고 소설 속의 당대 사회는 해방 후, 토지개혁이 이루어질 즈음이다. 1953년은 우리 사회의 계급적 갈등이 폭발한 한국전쟁이 겨우 중단된 해여서, 토지개혁 같은 민감한 소재를 전면에 드러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이 분단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4 19 혁명이라는 현실적 조건의 산물이듯이, 소설은 현실을 인식하고 반응하면서, 그 자체는 하나의 '움직이는 것'으로,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판본을 대조해 가며 읽는 것도 소설을 읽는 비판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문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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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카인의 후예>는, 해방 직후를 살아간 황순원이 굳이 '카인'이라는 성경 속의 인물로 소설을 썼다는 게 큰 자극으로 다가 와, 제목을 듣는 순간부터 주목 대상 1호였다.
그렇게 관심을 가져서 읽은 책이었으나, 어느날 문득 책장에 꽃힌 책으로 시선이 갔을 땐 도무지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하여 다시 책을 집은 순간까지만 해도, 몇 문장 읽으면 줄거리가 주욱 떠오를 테고 그게 곧 책을 덮는 시점일꺼라 예상했다.
이 책엔 두개의 소설을 함께 실렸는데, 두 작품 모두 작가가 의도한 대로,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반영한 사실주의적 소설이다. 그동안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까맣게 잊을 수 있었는지.
책 읽기를 마친 지금, 황순원은 또 다른 '조정래'-누구의 표현처럼 남한의 조정래, 북한의 황순원 하는 느낌이다. 또한 주의를 끌었던 제목 <카인의 후예>는, 광복 후의 토지개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풀어가며 자연히 농부에 초점이 맞춰져 제목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
| 전쟁. 우리가 살아 숨쉬는 지금 이순간에도 이 지구상 어느 한구석에는 얼마나 많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참상보다도 정말로 무서운 것은 전쟁이 가진 그 맹목성과 이유 없음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너무도 사소하고 즉흥적이지만 그 결과는 전혀 예측할 수 없을만큼 크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 평화유지라는 명목을 뒤집어쓴 나토군의 무차별 폭격이 발칸 반도를 뒤집어놓았고 그 폭격 아래 사람들의 목숨이 하루살이와 별다를 것 없이 스러져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무엇을 지키기 위한 전쟁인가. 6·25를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6·25는 가치 있는 것일까. 6. 25는 엄연히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런 말을 써도 된다면)이었다.<카인의 후예="">는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이 파괴되는 서글픈 현실에 대한 소설이다. 어릴적 코끝 찡하게 읽었던「소나기」의 그것처럼 그 형식과 문체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해서 소설이라기보다 하나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카인의 후예="">에는 화려한 문체와 수식어구도 없고 소설적 재미를 이루는 특정한 장치들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카인의 후예』를 좋은 소설로 만드는 힘이다. 작가는 덤덤한 어조로 한 시대를 이야기한다. 한 시대를 휩쓸어간 이데올로기의 광풍, 그 광풍 속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카인의 후예="">를 이루는 모든 인물들-박훈, 오작녀, 도섭 영감, 삼득이는 빨간 선 파란 선의 구분 없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한 마을에서 한 둥지를 이루며 살던, 너, 나없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신분관계로 얽혀있었지만 그 관계 역시 도리상, 인정상의 관계였고 그들의 관계를 규정짓는 것은 문서나 법적 제도가 아니라 생활 공동체의 전통과 따뜻한 인간애와 정이었다. 그런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실체없는 이데올로기, 신념없는 껍데기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들의 전통은 파괴되었고 그들이 날 때부터 끈끈하게 맺어오던 인간관계도 파괴되었다. 네거 내거 구분 없던 그들에게 적의와 분노를 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한번 광포해진 인간성은 끝을 보고야 만다. 그릇된 이데올로기의 발현은 곧 광포한 인간성들이 쌓이고 쌓인 창고같은 곳, 폭발물이 감춰진 공간이며 전쟁은 곧 도화선에 불을 붙인 계기이자 폭발이었다.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은 그 전쟁의 광포한 불꽃놀음에 휘말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 천사의 얼굴이 악마의 얼굴로 변하는 것을 본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정신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들었던 낫과 쟁기를 내려놓지만 이미 그 낫과 쟁기에는 피가 묻어있다. 사람들은, 발작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때서야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피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그 피의 힘으로 사람들은 죽어가는 사람의 뒤에서 고무신을 훔치고 삽을 훔칠 수 있는 것이다.카인의>카인의>카인의> |
| [카인의 후예(1954)]는 대표적인 전후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주의 아들로 야학을 세워 아이를 가르치던 박훈은 공산치하에서 인민위원장이 된 자기집 마름이었던 도섭 영감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와중에서 그의 딸 오작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훈의 야학이 감시를 당하고 지주 출신들은 눈에 보이게 탄압을 받게 될 뿐 아니라 도섭 영감은 공산당의 압잡이가 되어서 이성을 잃게 된다.결국 훈은 도섭 영감을 죽이려 하지만 오작녀의 동생인 상득의 만류로 오작녀와 같이 남하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1950년대 한국 전쟁의 비극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나 이념에 휩싸여 인간성 말살이라는 극한까지 다다를 수 밖에 없었던 분단의 비극을 문제시한다. 더군다나 전쟁의 경험을 통해 휴머니즘의 문제를 정면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세계 문학의 보편성에 합류하게 되는 한국문학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현재에도 좌우이념으로 대립을 이루는 민족 현실에서, 이러한 이념을 극복할 휴머니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