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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공간,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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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청산도라는 섬을 찾았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래 이제는 제법 관광지의 분위기를 풍기게 된 섬이었지만, 여전히 그 흔한 편의점 하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섬의 모습은 도시와 달랐다.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들어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섬 청산도. 지금이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만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과거에는 그 곳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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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청산도라는 섬을 찾았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래 이제는 제법 관광지의 분위기를 풍기게 된 섬이었지만, 여전히 그 흔한 편의점 하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섬의 모습은 도시와 달랐다.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들어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섬 청산도. 지금이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만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과거에는 그 곳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친 풍랑에 배가 흔들릴 때마다 생과 사를 오갔을 것이고, 육지에 닿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를 저어도 완도라는 또 다른 섬에 닻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여전히 섬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련한 감상을 일으키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나 동양 사회에만 국한된 바가 아니었다. 서양 역시 섬에 대해서는 모호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기억하는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토마스 모어다. 그는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들 것만 같은 이상 세계를 일컬어 유토피아로 칭했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극소수의 법률로 만사가 순조롭게 운영되고, 덕이 존중되는 나라로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풍부히 갖고 있는 나라’다. 현실에서 많은 시도 끝에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공산주의 사회를 상상해보게 된다. 대체 이런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정확히 어디라는 말을 모어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을 중심으로 유럽 각국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호기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물론 그 곳에는 원주민들이 기거하고 있다. 이 원주민들은 나름의 질서 체계를 갖춘 채 자신들의 생을 영위하고 있었으나, 백인들의 눈에는 그들이 미개해보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은 쉽게 닿을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제 멋대로 상상해도 자신의 상상과 실재간의 간극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이가 드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섬이 반란의 요충지(?)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는 했었다. 교통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며, 위정자의 권력이 국토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조선이 실시한 공도정책은 섬을 보다 더 미지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무릉도, 요도, 삼봉도 등. 갖가지 이름으로 불린 공간들이 정확히 어디인지, 아니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마저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알려지지 않았고, 적의 침투가 용이하지 않은 섬은 모종의 반역을 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축복의 공간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섬은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지위를 보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택한 율도국이 섬이었으며, 무능한 양반 허생이 건설한 이상향도 섬이었다. 하지만 성공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것인 듯했다. 서북민 차별에 항거했던 홍경래의 움직임은 실패했다. 반란이 반란인 것은 성공치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섬에 기반한 세력이라 하여도 기득권 무너뜨리기는 결코 쉽지가 못했다. 고립된 공간에서 그들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전국의 지지로 이어지기가 쉬울 리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서양 사회는 아틀란티스를 꿈꿨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이 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섬이다 대륙이다 논쟁에서부터 현생 인류 못지않은 문명을 이루었으나 자연재해 등으로 철저히 파괴되었을 뿐이라는 이야기까지. 아틀란티스 신화는 여전히 불명확하기에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현실이 버거울수록 아마 아틀란티스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은 커질 것이다. 닿을 수는 없다고 하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토피아는 우리와 같은 세계에 공존한다. 그렇기에 타임머신이라는 상상 속 산물에 의존해 과거나 미래로의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유토피아에 적합한 것처럼 여겨지던 섬이 고립의 공간이었듯이 유토피아도 동떨어진 공간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한다 말할 수 없고 노력을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의 이상성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결코 그 곳에 도달치 못해야만 한다. 역설적이다. 이 역설에 눈을 뜨는 순간 내 삶의 무게가 더욱 육중하게 느껴진다. 벗어날 수가 없다. 현실에서 벗어나도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는 존재치 않는다. 당신의 관념이 빚어낸 그 공간이 잠시나마 당신의 삶에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면, 부디 만족할지어다. 그게 지금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이니 말이다.

 

이달의 사락 q*****2 2013.1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