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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역사적으로 보수지배의 사회였다. 그리고 진보의 적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 내부의 균열이었다. 요즘 진보의 정치적 섹터인 통합진보당의 일파만파를 지켜보면서 사이비 진보가 진보적 자유주의자에게 끼치는 해독이 얼마나 극심한지 통탄하게 된다. 진보가 정성껏 쑨 죽에 쥐똥을 뿌리는 그런 짓들을 당권파와 그 꼭두각시들이 저지르고 있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이 2002년에 비판한 한국형 보수의 음란한 판타지에는 군복을 입은 냉전수구세력 같은 보수뿐 아니라 사이비 진보개혁 진영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자각을 10년이 지난 오늘날에서야 뒤늦게나마 하게 된다. 이택광은 당시 한국형 보수주의자들의 지배적 문화를 '음란한 판타지'로 정의했는데, 여기서 '음란' 혹은 '외설'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향음이나 성접대, 뇌물과 같은 속물적 사건보다도 한국문화가 사회의 현실이나 모순을 은폐한 채 이를 비판하는사람들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물리적 리얼리티가 완전히 소거된 도착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의 담론이 내재하고 있는 현실 모순의 지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담론 자체의 주관적 입장보다는 그 특정한 담론을 생산해낸 현실이라는 거푸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원했다."(9쪽) 가령 반미를 외쳤던 운동세대가 자식들의 미국 시민권을 위해서 원정출산을 일삼고, 사교육 비판을 구실로 일류대학 교수가 자식들을 값비싼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미국 사립학교에 유학보내는 경우가 모두 그런 '현실 모순의 지세'를 구축하는 낱개의 사건들일 것이다. 이택광의 인식론적 노선에 굳이 꼬리표를 붙인다면 '비판적 실재론'이 아닐까 싶다. 정치적으로는 '중도좌파' 에 해당하지 않을까? 진보좌파의 스펙트럼 논쟁을 떠나서 그가 문화비평을 ‘모든 보수주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간주하는 데서 우리는 정치적 노선에 구애받지 않는 그만의 비판적 상상력의 고갱이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특정 지식인의 사상적 입장을 단지 "특정 리얼리티의 효과일 뿐"이라고 단정짓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가 거창한 현실효과 혹은 진리효과를 이렇게 폄하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입장의 '화이부동'을 강조하고 다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임을 알지만 이는 자칫하면 늑대와 양의 관계가 단지 특정 리얼리티의 효과로 국한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또한 학구들이 논문에서나 사용하는 '재현의 위기'를 정치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문화비평에 사용하는 것 자체가 그리 먹히는 전략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서구학자들이 강조하는 재현의 위기가 지닌 실제적인 정치적 함의나 영향력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아탑에서 그 아무리 목청껏 '재현의 위기' 운운해도 비정규직 노동자와 백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저 한심한 수사학에 지나지 않을 테니깐. 오히려 재현의 위기라는 모티프도 소위 사회의 1%에게만 유독 와닿는 주술적인 만트라가 아닐까 싶다. 가령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나 <돈의 맛>에서 재현한 대한민국 최상류층 모습들이 그런 재현의 위기라는 수사학에 더 걸맞는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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