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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단순한 여행에세이겠지, 싶었다.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라는 제목은 왠지 그 느낌에서 감성적이고 감상적인 저자 개인의 느낌을 담은 여행 에세이라는 것을 품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러스트를 공부한 저자가 어느날 갑자기, 라는 말처럼 그렇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생활과 그녀의 일러스트가 담겨있으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나의 예상을 뒤엎은 그녀의 소풍 이야기, 영국의 시골농장에서 보낸 천국 같은 날들에 대한 기록은 내게도 소풍같은 하루를 선물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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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갱지 같은 느낌이고, 연필로 그린듯 슥슥 그린 그림이 남달라 보였던 책.
책 속에 좋았던, 감동적인 문장이 참 많았다.
런던에서 나는 숨고 싶은 동시에 드러나고 싶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드러내고 싶은 건 묻혀버리고 애써 가린 건 너무 쉽게 들춰내지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데 온 정신을 다 빼앗겨 버리고 나면, 어느 날 문득 돌아봤을 때 정작 나는 못 알아볼 정도로 닳아 있다. -<세기의 코트 환불 사건> 중에서
농장 관련한 에세이 중에 이렇게 재미난 책은 처음.
짐을 내려놓자마자 투스를 따라 농장의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구불구불한 길 끝에 숨어 있다 '까꿍peekaboo'하며 돌연 펼쳐진 농장의 모습은, 모든 것이 그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인 것 같았다. - <투스를 처음 만나러 가는 날> 중에서
공감이 가는 대목들이 참 많았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다 비슷하니까.
그동안 생각들이 걸러지지도 않은 채 이리저리 한 콘센트에 꽂혀 위험천만한 줄 알면서도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전원이 내려가버려 어쩔 수 없이 촛불을 켰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처럼, 밭일은 참 이상하리만치 행복한 노동이었다.
내게도 힘들 때마다 나를 회복시켜줄 만한 산소호흡기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스의 농장에 나도 가볼 수 있을까.
결국 그날의 기억이 나를 매번 농장으로 불렀다. 첫날의 경험 이후 농장은 나에게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숨이 찰 때마다 필요한 생명유지기... 다녀오면 어느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 -<내 청춘의 피난처를 찾다> 중에서
철학자 농부 투스. 그는 정말 지혜로웠다. 내 곁에도 이런 어른이 있었으면.
투스는 대개 설명이 장황한 사람들의 말에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안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은 잘 안 듣게 돼. 왜냐면 실제로 하는 걸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있거든!" - <진짜 농부가 되고 싶어? 워너비 농부?>중에서
이 장면에서 나는 굉장히 울컥하기도 하고, 놀랐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나의 채소를 알아보는 순간이라니! 농부들은 다 그런가?
그 요리사가 나에게 되물었다. "나를 어떻게 기억하지?"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내 채소를 알아본 것 뿐이야." 그 순간 나는 알게 됐다. 내가 눈으로 매일 인사하고 하나하나 보듬었던 그 생명들을 어느새 다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런던의 교외선을 타고 친절한 스프링 씨 도착하시다!> 중에서
도시에서의 피로는 인관관계에서 오는 게 8할일 것이다. 도시에서의 사람, 농장에서의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도시에서 살 때 나의 삶은 하나의 선 위에 있었다. 그 직선 위의 삶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상향조정되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광활한 하늘에 점 하나를 찍고 거기서 스스로를 묵묵히 울리며 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어느 접점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면 파장을 일으키며 반응하지만 애초에 같은 선 위에 있지 않았기에 그렇게 아름답게 스치고 부빌 뿐 서로를 소모하지 않는다. - <채소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우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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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골 농장에서 보낸 천국 같은 날들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하며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친구로부터 어느 농장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친구는 아는 언니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언니는 또한 그녀의 친구로부터 소개받았다고 하는 농장. 어떤 농장이길래 건너건너 이야기될 정도로 입에 오르내리는 농장일까? 농장을 다녀온 지인의 언니를 통해 들은 농장 이야기들은... "나도, 나도 가보고 싶어." 라는 말이 나오게 했고, 얼마 후 정말 농장을 방문했으며 그 일을 계기로 저자의 삶은 변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의 강은경, 영국에선 '제비'라 불리며 살았던 시간들을 겨울 / 봄 / 여름/ 가을에 걸쳐 저자의 이야기와 스케치, 농장에서의 시간들을 담고 있다. 다시 영국을 찾게 된다면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가능하면 투스의 농장에서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 선택하게 된 브라이튼은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의 도시와 농가의 절충안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친구들과 투스의 농장을 몇 번 다녀온 기억들은 '투스의 농장'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그녀의 삶에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삶에 이러한 장소, 공간은 있어야 하는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농장에서의 시간들이, 그녀가 어떤 형태로든 농장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과 투스의 넉넉함이 서울로 돌아왔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브라이튼으로 돌아왔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농장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었다. 농장에서의 사계절과 저자의 스케치로 담은 농장의 모습들은 투스의 농장을 가보지 않았지만 상상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농장에서의 시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고 그 시간들은 그녀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문제는 자신 안에 있으며 모든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답답한 마음,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은 안다. 그게 어딘지에 상관없이, 대도시는 모두가 어떤 형태의 성공과 기대를 가지고 모여드는 곳이라는 것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고, 가고 싶은 길이 있고, 되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효율적인 방향으로 계획하고, 그에 맞춰 시간과 노력과 돈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을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서의 삶은 높은 장대 위의 곡예다. 긴장을 늦추는 순간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위태로운 지경에 놓이기 너무도 쉽다. 런던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대열에 끼게 되었다는 걸 안 건 시간이 꽤 많이 흐르고 나서였다._026p. 도시에 살면서도 삶은 거칠었고 마음이 힘들고 지친 가운데 찾은 그곳에서 나는 내 팔다리가 옷을 입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떻게 이런 걸 잊고 지냈지?' 하며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나는 새로운 환경과 일상에 처음 걸음마를 매우는 사람처럼 덤볐다. 몸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느라 마음과 혼란스러운 정신이 오히려 쉬고 있는 걸 느꼈다. 생각들로 과부하 되지 않게 알아서 내려가는 '두꺼비집의 고민 차단기'라도 있는 것처럼._061p. 농장은 나에게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숨이 찰 때마다 필요한 생명 유지기.... 다녀오면 어느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 _065p. 고통은 좋은 거라니... 아직은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거잖아... 아프다고, 그마저도 못 느끼면 다 죽어가도 괜찮은 줄 알고 살았을 테니, 내가 이렇게 약한 줄도 모르고 계속 살았을 테니. 통증이 없으면 죽어도 죽은 줄 모를 것이니.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좋은 거다. 통증은 죽게 하는 게 아니라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어서..._146p.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안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은 잘 안 듣게 돼. 왜냐면 실제로 하는 걸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있거든!" ... (중략)... 농부의 삶에도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것에도, 빵 같은 필수불가결한 전제가 있다. 농부가 되고 싶다면, 노동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작은 것 하나 힘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농장에 있으면서 머리가 아니라 추위에 곱은 손과 흙으로 범벅된 소매로 알게 되었다. _156~157p. 밤은 어두운 게 정상인데 우리는 밤에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빛을 쓰니까 밤도 낮처럼 살아야 한다. 끝이 없고 쉼이 없는 저녁의 이유치고는 좀 슬프다. 밤에도 공부해야 하고 일해야 하고, 필요하면 열심을 내야 한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밤에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다._197p.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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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워킹 홀리데이를 꿈 꾼 적이 있었다. 낯선 곳으로 가면 나를 좀 더 제대로 들여다보고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는 나는 실행에 옮겨보지도 못했고 그렇게 하고 싶은 걸 상상만 하다 20대를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면 암흑의 시간 같다. 첫사랑과의 5년의 교재도 실패로 끝이 났고, 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책 속으로 도피하다 20대를 보내버린 것 같다는 아쉬움은 아직도 남아있다. 좀 더 젊을 때(지금도 젊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만나는 방법을 알고 실행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왜 지금 밀려드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영국의 시골농장에서 보낸 저자의 글을 보면서 부러움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낯가림도 심하고 용기가 없어서 낯선 곳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결코 쉽게 영국으로 간 저자가 아님에도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뭔가를 실행에 옮기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환경이 바뀌는 것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기에 저자의 행보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위치가 어정쩡해서 영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곳에서 좀 더 뭔가를 찾고 싶어 공부를 하면서 시골농장에서 일을 하게 된 저자. 농촌에서 자란 나는 농사를 짓는다는 게, 혹은 농가에서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고되고 일이 많은지 익히 잘 알고 있다. 농사는 끝이 없고 일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주말이나 방학 때 농사일에 투입이 될 때면 지루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그냥 게으름 피우며 놀고 싶어 힘든 부모님 앞에서 철딱서니 없게 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농장에서 일하게 된 저자를 보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일할 수 없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나 일은 고됐지만 영국의 도시에서보다 시골에서의 삶이 훨씬 더 저자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농부의 삶에도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것에도, 빵 같은 필수불가결한 전제가 있다. 농부가 되고 싶다면, 노동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157쪽) 농장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노동을 피할 수도 없고 두려워할 틈 없이 밀려드는 일거리에 지레 겁먹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흙투성이가 되면서도 점점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농부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농사에 진정성을 부여하게 되면서 주변의 이웃이나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에 관심을 갖는 여유도 생겼고 피곤한 몸을 이끌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남겼다. 씨앗을 뿌려 수확을 하듯 저자는 영국의 농장에서 농부로써의 삶뿐만 아니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의 자양분을 꾸준히 일굴 수 있었다. 저자를 보면서 워킹 홀리데이를 꿈꾸고 좀 더 나은 나를 만들며 내 자신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던 20대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저자도 어쩌면 영국으로 건너간 게 나와 비슷한 이유였겠지만 영국 농장에서 몇 개의 계절을 보내면서 ‘내가 참으로 세상의 끝과 같이 먼 이곳에서 찾으려 했던, 특별한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결국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에(258쪽)’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어쩜 나도 그걸 몰랐기에 그냥 낯선 곳으로 떠나고만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 까란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좀 더 잘 알기 위한 시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려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귀를 기울이면>이란 애니메이션에서 언니는 왜 대학에 갔냐는 동생의 질문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찾기 위해서 대학에 갔다는 대답처럼 가만히 앉아서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기회를 만들어가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열정적으로, 때로는 무모하게 뛰어들 수 있는 게 20대라고 생각했기에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보낸 나의 20대에 미련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직 나에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30대라고 해서 늦은 것도 아니며 내 마음의 문제이지 환경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현실에 안주해버리지 않는 것. 지금은 때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 속에 무언가 하고 싶은 걸 잊지 않는 마음. 그것만으로도 내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