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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얼마나 분주한가. 게다가 이러한 목적에 곁가지처럼 덧붙여진 여러 이유와 동기들로 인해 우리의 삶은 또 얼마나 복잡한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여러 이유들, 삶에 덧입혀진 이러한 것들을 해묵은 먼지를 털듯 툭툭 털어내면 남은 인생은 조금쯤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어질러지는 집안처럼 삶을 단순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금세 무거워진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말들은 때로 생각을 어지럽히는 리듬들을 만들어서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만은 숨을 쉰단다. 유일하게 고동치며 살아 있는 기관이지. 가끔씩 아무 생각 없이 오후 내내 텔레비전을 켜놓곤 한단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소리는 방을 건너 나를 계속 쫓아와. 그런 날 밤에는 평소보다 더 불안해져서 잠들기가 어렵지. 그래도 그 소음이 없으면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있어. 반복되는 소음은 마약 같아서 한 번 익숙해지면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거든." (p.129)
수산나 타마로의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는 미국으로 떠난 손녀에게 보내는 할머니 올가의 편지들로 엮은 책이다. 1992년 11월 16일에 시작하여 12월 22일의 마지막 편지에 이르기까지 35일간 써내려간 15통의 편지는 읽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1994년 이탈리아에서 책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 45개국에 번역되어 누적 판매량 2천만 부를 돌파했다는 이 책은 죽음을 앞둔 할머니 올가의 시선으로 우리의 삶과, 사랑과, 운명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나는 사실 이 책을 읽었던 게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러나 같은 책을 두 번 읽었던 건 아니다. 한 번은 밀리언하우스에서 2009년에 출간했던 <마음가는 대로>를, 그리고 이번엔 소담출판사가 출간한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를 읽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전에 어디선가 한 번 읽었던 책이라는 걸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책에서 할머니는 혼자 남겨질 손녀를 위해 때로는 꽁꽁 숨겨두었던 자신의 비밀을 들춰내기도 하고,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어린 손녀를 떠맡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손녀와의 사랑과 갈등, 추억,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의 가르침 등 같이 있을 때 들려주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서간문이라는 따뜻한 문장 형식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무거운 짐이 되곤 하더라. 나는 꽤 오래 살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에 잘 알지." (p.27)
해가 갈수록 느슨해지는 관계와 메말라가는 가족 간의 정,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생각할 때 수산나 타마로의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심정이다. 책 한 권 읽는다고 세상이 바뀔 것까지야 없겠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고 언제나 애정 어린 관심을 주는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금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그 얼마나 살 만한 곳인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단 한 명뿐일지라도 말이다.
"너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한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어질 때마다 이걸 꼭 기억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바꾸어야 할 것은 언제나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자신에 대한 생각 없이 뭔가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단다." (p.278)
오늘은 소한.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는데 오늘만큼은 예외인 듯 봄날씨처럼 푸근하기만 하다. 한파가 물러날 때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미세먼지도 없다. 점심을 먹은 후 근처 공원을 한참 동안 거닐었다. 외출을 나온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네 편, 내 편으로 편을 갈라 서로가 서로에게 극한의 대립을 보여주는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만 없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쯤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들을 닮아서일까. 이제는 세상의 절반인 남성과,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서로를 향해 분노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삶을 복잡하게 하는 여러 이유들을 먼지를 털듯 툭툭 털어내고 싶었던 오늘, 사람들은 맑고 투명해진 날씨 하나만으로도 저렇게 행복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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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당신의 손녀에게 남기는 열다섯통의 편지 형태로 쓰인 이야기는 큰 사건이 일어나거나 변화가 몰아닥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할머니 특유의 표현으로 잠잠하게 그리고 덤덤하게 그러나 손녀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은 채로 쓰여있다. 에세이의 형식을 빌고는 있지만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11월부터 12얼까지 쓰여진 총 열다섯통의 편지. 이 편지를 실제로 손녀가 받았더라면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엄마가 없이 할머니가 키운 아이. 그 아이에게는 할머니가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엄마의 부재. 그것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할머니는 이 편지를 통해서 엄마의 이야기도 조금 보여준다. 아이로 하여금 엄마란 어떤 존재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게다. 엄마는 아이의 엄마였기도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어떤 딸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손녀가 몰랐던 엄마의 다른 모습들을 그려내주는 할머니. 엄마에게도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있었겠지. 엄마도 나와같은 시간이 있었겠지하면서 손녀로 하여금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셈이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니? 흘러내리지 못한 눈물은 가슴에 쌓인다고. 그것들은 점점 딱딱해져서 결국 심장을 마비시킨단다. 세탁기에 쌓인 찌꺼거기가 엔진을 망가뜨리는 것처럼.(31p) 이 부분을 읽는 순간 한편의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내이름은 김삼순>.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라고 울던 그 장면. 대사도 장면도 꽤 기억에 오래 남아있었는데 사랑이 힘들어 그렇게 내뱉었던 그녀. 그녀가 울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심장을 딱딱해져 버렸을까. 내 심장은 이미 딱딱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다고 생각될 때, 가장 깊이 절망했다고 느낄 때, 모든 것이 돌풍처럼 빠르게 변해버리거든. 모든 것이 뒤집히고, 우리 앞에 새로운 삶이 펼쳐진단다.(187p) 가장 깊이 절망했다고 느낄 때가 언제였던가. 이미 지나왔던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던가. 내게도 그런 절망의 순간의 많았다.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들. 다 풀어서 설명해 놓을 수는 없지만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든 그 순간을 견뎌왔고 지금 이 자리에 와있다. 나에게 이 삶은 새로운가 아니면 그대로인가. 이제 넌 어저면 내가 첫 편지에서 했던 말을 이해할지도 모르겠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없다는 것보다 그들과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살이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짐이 된다는 말.(248p)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다. 어쩌면 나는 그 내용보다 그 제목에 더 끌리는지도 모른다. 떠난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오직 살아있기 때문에 느껴야만 하는 슬픔. 그들에게는 아쉬움과 미련 그리고 안타까움이 슬픔과 함게 공존한다. 그러니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자. 당장 오늘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할수도. 그들과 나누지 못한 말이 앞으로도 더욱 많겠지만 가슴에 담아두고 하지 못한 말을 삼키는 것만큼 우울한 것은 없다. 표지마저도 아름답고 포근함을 안겨주는 책 한 권. 할머니가 남겨놓은 글귀들마다 눈에 들어와서 머리속에 새겨진다.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대로]라는 제목답게 내 마음가는대로 살아보려한다. 그래도 때로는 흔들리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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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끝을 예감하며 홀로 남겨질 가족이 있을 때 당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책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는 죽음을 앞둔 여든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훌쩍 떠나간 손녀에게 보내는 15편의 편지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당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겨져 슬퍼할 손녀를 향한 절절한 메시지가 장차 손녀가 돌아왔을 때 할머니 대신 손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부엌에 앉아 네가 쓰던 낡은 연습장을 펼쳤단다. 어려운 숙제를 하면서 연필 끝을 잘근잘근 깨무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구나. 유언장을 쓰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가 꺼내 볼 수 있는, 몇 년이 지나도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 한단다. 걱정 말거라. 설교하려는 것도 아니고, 널 슬프게 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난 단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 말이야. 우리가 서먹해지기 이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무거운 짐이 되곤 하더라. -p. 26~27
현대 가족의 특성 중 하나가 가족 간의 대화 부재라고 한다. 힘에 버거운 일상 스케줄 때문에 가족이 한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만나곤 하지만, 특히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살아가는 경우 아이를 보며 과거와 현재가 묻어나는 세대 간의 기록은 고스란히 겹쳐져 남겨진 자가 감당할 아픔은 엄청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청소년기 방황과 일탈행동에 그저 묵묵히 말 한마디 못하고 아이를 결정을 지켜보는 일이 할머니에겐 얼마나 큰 걱정이며 안타까움 이었을지……. 할머니는 사랑이라고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아이는 할머니의 진심을 간섭으로 잔소리로 여겼을지 모른다.
나이가 들며 가까운 분들의 부고를 접하게 된다. 얼마 전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는데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임종을 지켰지만 목소리를 낼 기력이 없었던 어머니…….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아이에게 들려줄 편지 형식의 글이라도 있다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가족에게 전할 말을 담은 한 권의 책을 기록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가 남긴 메시지는 위로와 감동 그 이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편지 속에 묻어나는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와 불행했던 유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혼란스러웠을 시간들은 당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을 차분하게 수습하기가 어려웠을 거란 짐작을 할 뿐. 노인이 된 어머니가 들려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내 할머닌 어머니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삼 년 전에 아들, 그러니까 엄마의 오빠가 폐병으로 죽었어. 할머니는 아들이 죽은 뒤 곧바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 그 아이는 딸이었던 데다가 하필 아들이 죽었던 날짜에 태어난 거야. 그렇게 두 가지 불행한 우연 속에 태어난 내 어머니는 젖을 떼기 전에 상복부터 입어야 했단다. 아기의 요람 위에는 오빠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었어. 눈을 뜰 때마다 어머니는 자신이 오빠의 빛바랜 복사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해할 수 있겠니? 이쯤 되면 냉정하고, 바보 같은 선택 때문에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고 어떻게 그녀를 비난할 수 있겠니. 이렇게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또 어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될까 -p. 67~68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35일의 기록인 15편의 편지에는 가부장적 집안에서의 불행했던 성장의 기록이 있었고, 사랑이 없었던 나이 든 남편과의 관계가, 그러나 불현듯 찾아온 사랑을, 결코 밝히고 싶지 않았을 딸의 출생에 대한 비밀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할머니는 결코 불행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중임을 차후 손녀는 알 수 있을 이야기들로 힘겨운 시간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24년간 이 책을 접했던 수많은 엄마와 딸에게 감동과 치유가 되었던 이유는 편지에 담긴 할머니의 사랑과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불행도 진심을 능가하는 일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책에서 소소하지만 어려울수록 견고해지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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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말하셨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라고... 할머니의 말을 다 따르진 못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불가능한 것 혹은 힘든 것이 나뉠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노력은 했다. 그리고 여전히 난 노력 중이다.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조용히 불렀다.
책 속 할머니의 곁에는 손녀가 없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을 예감한 할머니는 손녀에게 글을 남기려 한다. 자신이 떠났을 때 쓸쓸함을 느낄 손녀를 위해서... 손녀가 미국으로 떠난지 두달 여가 지난 1992년 11월 20일에 글은 시작된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떠난 손녀는 할머니에게 거의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서운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그녀다. 더군다나 자신이 떠나고 난 후 손녀가 느낄 감정들이 가장 걱정스럽다. 그래서 그녀가 볼 수 있는 글을 남기기로 한다. 자신의 과거를 비롯해 감추고 있던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 손녀가 자신의 곁을 떠난 후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1992년 11월 20일부터 시작된 글은 12월 22일로 글은 끝을 맺는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진 모른다. 할머니가 손녀를 만났는지 혹은 병이 더 깊어졌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떠났을 수도 있다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더불어 할머니가 손녀를 위해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울지 마라. 물론 내가 너보다 먼저 세상을 뜨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없다고 해도, 난 네 안에서, 네 행복한 기억 안에서 살아 있을 거야. 나무랑 채소들이랑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내 안락의자에 앉을 때도 그 렇겠지. 그리고 오늘 가르쳐준 대로 네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난 저기 네 앞에서 코에 초콜릿을 묻히고 서있을 거란다."(p272)
현실의 내 곁에는 할머니가 안계시다. 글을 쓸 줄 아셨다면 우리 할머니도 나에게 이런 글을 남기셨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생겼다. 내 할머니는 형제가 많은 집에 장녀로 태어나셨다. 그래서 학교는 커녕 한글도 제대로 깨우칠 수 없었다. 다행히 읽으시긴 했지만 쓰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늘 말로 잔소리를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 잔소리가 무척 그리웠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뭐라고 하실까? 늦잠을 자면 뭐라고 하실까? 등등...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을 할머니도 내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그냥 아무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 있는 깊은 숨을 내쉬어 봐. 어떤 것에도 현혹 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p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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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을때가 다가오면 지나온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했던가? 서로 사이가 틀어져버린 손녀를 기다리며 죽음을 앞두고 손녀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이 편지들! 세대를 아울러 세상의 엄마가 딸들에게 혹은 손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엄마의 삶의 고백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했던 것과 달리 자신의 삶이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음에도 시대상황상 항거하지 못했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근대며 가슴설레어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들, 예기치 못한 소식에 절망하며 스스로는 물론 살피지 못했던 딸의 삶, 뒤늦게나마 잘해보려 애써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순간들에 대한 정말로 늦어버린 후회! 딸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손녀에게만은 제대로 전하려 애썼음에도 또다시 어긋나는 관계! 울지 마라. 물론 내가 너보다 먼저 세상을 뜨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없다고 해도, 난 네 안에서, 네 행복한 기억 안에서 살아있을 거야. 나무랑 채소들이랑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내 안락의자에 앉을 때도 그렇겠지. 그리고 오늘 가르쳐준 대로 네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난저기 네 앞에서 코에 초콜릿을 묻히고 서 있을 거란다. - p272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할머니의 이런 이야기는 책에서 종종 읽게 되는 문장이지만 새삼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어떤것에도 현혹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 p279 한사람이 오는건 하나의 도서관이 오는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실감하게 된다. 편지를 통해 너무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버린 자신의 삶과 딸의 탄생 비화 그리고 손녀와의 추억을 더듬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이야기들이 세상 모든 엄마와 딸, 여자들을 위한 이야기인것만 같다. 나 또한 손녀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어떤 비밀을 고백하게 될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니 손녀가 아니라 늘 삐그덕 대는 딸아이에게 혹 죽음을 앞두고 편지를 남긴다면 어떤 삶을 들려주고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통찰하게 된 할머니이면서 엄마였으며 딸이었던 할머니의 편지!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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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이 얼마나 좋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제약이 많아지고 주위를 의식하는 사람이 되는지라 이 제목만 봐도 딱 읽고픈 에세이로군요. 더군다나 부모가 아닌 조모가 보내는 애틋한 서신입니다. 손녀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어느덧 내겐 보석같이 다가올수 있는 내용들이거든요. 죽음을 앞둔 나이든 어른은 과연 무슨말을 남길까요. 어른이 되었다고 다 지혜가 쌓이는게 아니라는 말도 나옵니다. 맞죠. 여든살의 할머니 올가는 손녀에게 절박하지 않습니다. 그런다고 막 가르쳐들려고도 않죠. 담담히 인생을, 사랑을, 운명을 고하고 있답니다. 비록 손녀의 사춘기삶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했을 할머니의 삶이였겠지만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모습에서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여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 할때는 무척 아름답고 애잔하기까지 합니다. 할머니도 예쁜 사랑을 했을 여인이였던 적이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지 못했던 올가의 애잔함은 이책 제목처럼 <마음가은대로>해라 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올가 자신의 딸이 진짜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아는 순간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때 올가가 당한 비극은 또 슬픔으로 더해집니다. 지금 인생이 저물어가는 이 순간에 올가가 손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무엇이였을까 고민해볼 이유도 없습니다. 여자로서 반짝였던 삶을 그냥 다른 여자에게 전하고 싶었던게구나 싶어요. 그래서 이책을 펼치면 바로 사랑하는 -----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올가의 손녀가 되어 공감하고 사랑을 느껴볼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지요. <그 어떤것에도 현옥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기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올가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간 지혜를 이렇게 만나봅니다. 평생 간직했던 비밀을 이렇게 손녀에게 털어놓고 인생을 마무리하네요. 아무길에나 들어서지 말고 깊은 숨을 쉬면서 기다려보라는 올가의 말은 너무도 강하게 간직됩니다. 베스트셀러답네요. 담담한 인생의 기록이 아니라 딸과의 어긋한 관계를 풀어나가면서 손녀에게 진실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 가장 큰것을 알려주고 갑니다. 특히나 여자라면 나를 위해. 또는 딸을 위해 이책을 선택해봐도 좋을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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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언제나 혈연의 이야기는 애절하다. 스릴러나 공포물에서는 그릇된 혈연관계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 말고도 언제나 짠한 마음을 일으킨다. 때론 신파란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가족만큼 무궁무진한 스토리와 감정을 자아내는 관계도 없다. 가장 가깝고도 먼, 가장 애절하고도 삭막한 사이인 가족.
수산나 타마로의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는 가족관계 중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에 집중한다. 모녀의 관계였다면 서로에게 바라는 마음, 조금 더 찐한 애증이 드러나겠지만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는 보다 헌신적이고 의존적이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모든 걸 주려고 하고, 손녀는 모든 걸 놓고 기댈 수 있다. 책에 나오는 할머니 올가와 손녀에게 전해주는 메세지에서 더욱 따듯한 마음이 느껴진다. 책은 죽음을 앞둔 할머니 올가가 손녀에게 남기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한다. 35일 동안 쓴 총 열다섯 통의 편지 본 취지는 혼자 남을 손녀에게 남기는 마지막 안부다. 유언장이 아닌 손녀가 오래 두고 꺼내볼 수 있는 편지다. 몇 년이 흘러도 편지를 보며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다정한 말투로 여자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편지를 받아보는 건 한 명의 손녀뿐만 아니다. 올가가 남긴 편지는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 모든 여자에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할머니로서 손녀를 바라봤던 추억을 회상할 뿐만 아니라, 올가가 여성으로 살면서 억압받았던 현실과 좌절,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지혜와 아쉬움 모두 편지에 담아낸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할 손녀를 위해, 자신과 같은 실패와 좌절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은 여러 가지로 확장된다. 여성의 이야기부터 이미 살아본 인생 선배로서의 이야기, 이 모든 게 책을 더욱 빛내고 있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 또한 충만하다. 추운 겨울에 잘 어울리는 따뜻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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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는 1994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당시 유럽은 엄청난 경제 위기에 빠져 있었고, 이탈리아 역시 물가 폭등과 실업률 급증으로 국가 부도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이 책은 이탈리아 사람들을, 그리고 유럽사람들을 토닥토닥 위로해주었다고 합니다. 2018년, 지금 대한민국은 시간을 되돌린듯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무개념 인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면서 타인을 물건처럼 함부로 대하는 무례한 인간들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가정은 무너지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유독 마음을 위로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그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80대 할머니가 멀리 미국에 가 있는 손녀딸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죽고나서 혼자 손녀딸을 키웠는데, 한 번도 딸에 대한 이야기를 손녀딸에게 해준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는 마냥 밝고 예뻤던 손녀딸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할머니의 모든 것이 못마땅한지 반항했고 냉소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결국에는 미국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어느날 정원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죽을 고비를 넘긴 할머니는 자신의 상태를 손녀딸에게 알려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습니다. 할머니의 선택은 알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나중에라도 텅 빈 집을 마주하게 될 손녀딸을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합니다. 그러나 편지는 유언장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쓴 편지는 오로지 손녀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손녀딸이 꺼내 볼 수 있는 편지. 그래서 할머니는 편지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현재 그리고 과거의 삶들을 하나씩 꺼내어 들려줍니다. "넌 지금 행복하니?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것뿐이야." (40p)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집니다. 이 세상에 아무런 이유나 조건 없이 나를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며 나의 행복을 바라는 한사람이 있다는 건.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토록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 손녀딸은 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걸까요.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어긋났을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모마리아 승천 축일날 밤, 바다 위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갔던 일 생각나니? ... 내 어머니의 삶, 할머니의 삶,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여자들의 삶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그런 거란다. 하늘 높이 올라가지도 못하고 낮은 데서 칙 하며 꺼져버리는 불꽃." (69p) 편지가 아니었다면 손녀딸은 아마도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마지막 이야기를 남깁니다.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279p) 어쩌면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칙 꺼져버리는 불꽃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들에게 밤하늘 빛나는 별처럼 어두워진 마음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길을 잃지 말라고, 이제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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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위로가 많이 필요한 요즘이에요. 일터나 지인들간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이 도서의 제목을 보자마자 제 마음의 공허함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해줄 것으로 기대가 들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느낌이 들 때,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많이 힘들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줄 것같은 기대감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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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대로>는 총 15편의 편지로 가족관계안의 진실, 불화, 이해, 사랑 등을 다루고 있어, 많은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외로움으로 다져진 성장기, 나이든 남편과의 아무런 감정 없는 결혼 생활, 결혼 후 생각치 않았던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 그렇게 태어난 딸의 출생의 비밀, 그와 얽혀 있는 관계들, 딸의 비극적인 죽음과 관련된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15편의 편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녀가 진실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15편의 편지 용기를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부드러운 문장들과 내면 심리들이 많아 여성들이 읽어본다면 더욱 공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편지들의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고통을 피하게 해주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그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고, 서로 의지 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렇게 관계로부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기를 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대로>를 읽으며서 다시 한 번 내 삶을 재정비하는 기회를 갖을 수 있었고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받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을 누군가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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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주고 싶은 삶의 진실,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읽는 내내 마음의 울림을 주는 책이였다. 처음에는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외할머니가 외손녀에게 쓴 편지였다. 그래서인지 더 애잔하고 더 애틋했다.
나는 지금 부엌에 앉아 네가 쓰던 낡은 연습장을 펼쳤단다. 유언장을 쓰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가 꺼내 볼 수 있는, 몇 년이 지나도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 한단다.
네 엄마, 너를 임신하게 된 과정, 네 엄마의 죽음, 난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너에게 말해주지 않았었지. 넌 그런 내 침묵을 증오했어. 할머니는 그 일들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중요한 일조차도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 일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네 엄마는 내 딸이기도 하단다. 그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 해본 적이 있어도 넌 말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었을 테지.
난 어머니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 어머니는 항상 겉으로 완벽해 보이려 애쓰느라 안절부절못했지. 그 거짓된 '완벽함' 때문에 난 늘 내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여겨졌고, 고독해졌단다. 나도 처음엔 어머니처럼 완벽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괴상하고 비참했지. 노력할수록 더 불편해졌어.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기 경멸에 빠지고 그게 분노로 이어지지.
나이가 들어서야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구나. 네 나이 때에는 아무도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 모든 일들이 자기 의지대로 된다고 믿으니까. 마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혼자 닦아나가는 일꾼처럼 스스로를 생각하는 거지. 먼 훗날에야 길은 원래부터 있었고, 누군가 나를 위해 흔적까지 남겨두었다는 걸 알게 된 테지. 우리에게 남은 건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임을 말이다.
울지 마라. 물론 내가 너보다 먼저 세상을 뜨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없다고 해도, 난 네 안에서, 네 행복한 기억 안에서 살아있을 거야. 나무랑 채소들이랑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내 안락의자에 앉을 때도 그렇겠지. 그리고 오늘 가르쳐준 대로 네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난 저기 네 앞에서 코에 초콜릿을 묻히고 서 있을 거란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 지 모를 때, 그냥 아무 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 있는 깊은 숨을 내쉬어 봐. 어떤 것에도 현혹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엄마를 대신해 손녀를 키운 외할머니는 손녀를 미국에 보내게 된다. 미국에 가는 당일 둘은 정다운 말 한마디 못 건네고 사이가 안 좋은 상태로 손녀를 보내게 되는데 그렇게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 손녀에게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멀리 미국에 간 손녀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혹여 자신이 죽은 뒤에 손녀가 오면 이 편지들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편지에는 할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녀의 사랑부터 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그녀는 손녀에게 할머니이기 이전에 엄마였고 여자였다. 35일간 쓴 15통의 편지를 쭉 읽고나니 눈물이 났다. 그녀의 인생도 참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으며 성장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나이 많은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딸에 관한 출생의 비밀과 그리고 딸의 죽음까지. 그녀도 참 힘든 삶이었다.그렇게 그녀는 딸에 관련된 비밀을 펴지에 털어놓게 된다. 손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편지 곳곳에 감정이 묻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1년에 한 두번 명절 때밖에 찾아뵙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들 중 한 분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와 내 동생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그렇게 기다렸었다. 우리에게는 방학이란 단순히 집에서 노는 것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방학하는 날이면 방학동안 할 숙제를 바리바리 싸들고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집에 갔다. 부모님은 하루이틀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시고 우리 자매는 개학 일주일 전까지 외가집에 머물며 지냈다. 시골에 지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새벽을 알리는 꼬끼오 소리에 눈을 뜨면 외양간에 있는 소들에게도 마당에 있는 백구와 황구에게도 뒷마당 닭장 안에 있는 닭들과 병아리들에게도 굿모닝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씩 외할머니를 따라 이웃집 할머니들과 뒷산으로 아침 산책을 하며 다람쥐를 심심치않게 보면서 숲 속의 상쾌한 공기를 마셨다. 마당 한 켠에 큰 자두나무에서 자두 하나씩 물고 산책을 마쳤다.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우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줬었다. 외삼촌은 우리가 시골에 오고 난 다음 날이면 큰 마대 자루에 과자 몇 십 봉지를 사와 두고두고 먹으라며 방 한 켠에 놔두었다. 꼭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외할머니는 어디 나갈때면 우리를 데리고 다니셨고 항상 맛깔나는 음식들을 차려주셨다. 시골에 있을 때면 집청소는 우리가 도맡아 했었는데 집에서는 당연하게 했었던 일인데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하는 행동도 예쁘다며 고마워하셨다.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정말 좋았다. 외할머니와 함께 만두도 빚어서 만두국을 끓여먹고 오이소박이도 만들고 떡도 빚고. 그렇게 날이 깜깜해지면 외할머니는 별구경하라며 마당에 큰 돗자리를 깔아주셨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돈으로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수만 개, 수억 개의 별들이 촘촘하게 줄을 지어 반짝반짝거려 분명 깜깜한 밤인데도 환하기만 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드니 여기서 충분히 만끽하고 가라는 외할머니의 마음이 수억개의 별들보다 더 밝고 밝아 참 따뜻했다. 해가 바뀌기 전 오랜만에 편지 한 통을 써야겠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