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칙을 만들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소리]에서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책을 고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문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에서 일차로 고른 책들을 구해서 읽어본 다음 나름대로의 느낌을 바탕으로 [북소리]에 올릴 리뷰를 별도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레베카 스클루트의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북소리]코너의 독자 한분께서 추천해주신 조금 특별한 경우입니다. 책을 구해서 읽으면서도 개인적인 리뷰로 끝낼 것인가 [북소리]에서 같이 고민해볼 것인가를 놓고 몇 차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과학분야의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헬라(HeLa)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특히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일대기라는 점이 [북소리]의 핵심 이슈와 부합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헬라세포의 원주인 헨리에타 랙스와 그녀의 자궁경부에 생긴 종양으로부터 분리해낸 세포가 영원히 증식하도록 불멸의 존재로 만든 과학자와의 관계에서 논의되었어야 할 의학윤리 및 연구윤리 혹은 보상 등에 관한 내용은 최근 의학계의 첨예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에 같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는 1920년 8월 1일 태어난 헨리에타 랙스라는 이름의 한 흑인여성과 그녀의 종양세포로부터 유래한 헬라세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에 가족들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가 중심축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51년 1월 29일 헨리에타 랙스가 질출혈과 통증 때문에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병원의 산부인과 외래를 찾은 것을 계기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잘라낸 종양으로부터 종양세포를 분리하여 실험실의 인공적 환경에서 끊임없이 분열할 수 있는 불멸의 세포로 만들어낸 의사와 생명과학자들이 헬라세포를 두고 보인 행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전자의 비중이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헬라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종양을 제공한 환자, 즉 헨리에타 랙스의 신원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헨리에타가 남겨놓은 세포가 불멸의 존재가 되어 의학연구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헬라세포를 만들어낸 존스홉킨스를 비롯한 정부 어디에서도 가족들을 배려했다는 흔적은 없고, 오히려 이들을 이용하려는 세력들까지 등장하면서 시달림을 당하게 된 가족들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진실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저자가 특히 그녀의 딸 데버러를 중심으로 한 헨리에타의 가족들의 입장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의학, 혹은 생명과학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족사의 비중보다는 헬라세포를 추출해서 배양에 성공하게 된 과정에서 빠트리지 말았어야 할 사항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헨리에타 랙스에게 종양세포를 배양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세포배양에 성공하게 되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다던가 하는 등입니다. 뒷날 헬라세포의 활성이 지나치게 왕성한 탓에 다른 배양세포들을 오염시키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를 규명하기 위하여 가족들로부터 혈액을 채취하게 됩니다. 이때도 역시 가족들에게 충분한 설명없이 넘어간 점 등을 ‘옛날에는 다 그랬어~’라고 정리하기에 찜찜한 무엇이 남는 느낌입니다.
저는 병리학과 진단검사의학을 전공하고, 병원의 병리진단업무 또는 법의부검에 종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게 넘어오는 환자의 표본들로부터 검사에 필요한 부분을 얻어 진단을 정하고 학생교육 등의 재료 혹은 희귀한 질환 등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보관이 필요한 검체는 남기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검체는 소각하여 처리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별도로 환자의 동의를 얻은 기억은 없습니다. 아마도검체가 이를 제공한 환자의 소유라고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분자병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발전하게 되면서 환자로부터 얻은 검체를 조작하여 진단시약 혹은 연구재로를 만들어 상품화할 수 있게 되면서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소유권의 소재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북소리]에서는 한스 요나스교수님의 <기술 의학 윤리; http://blog.yes24.com/document/5292627>를 읽으면서 바로 이 문제를 공유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나스 교수님은 현대 기술이 윤리학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결과의 모호성, 적용의 강제성, 시공간적 광역성, 인간중심주의의 파괴 그리고 형이상학적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조지 가이의 실험실에서 헬라세포배양에 성공하기 이전에는 배양하는 종양세포마다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처럼 실험의 최종결과는 예상할 수 없는 모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헨리에타의 종양세포를 배양하여 불멸화하는 작업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밝혀지게 됩니다. 이처럼 현대기술이 개발된 시점과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데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헬라세포가 불멸화된 다음, 조지 가이는 이를 이용하여 의학연구를 하려는 연구자에게 대가를 받지 않고 이를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951년 미국에서 소아마비가 창궐하면서 미국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백신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이렇게 개발된 소아마비백신을 검정하기 위하여 헬라세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세포의 손상없이 배송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런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헬라세포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한 대단위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급이 가능하게 된 것이 헬라세포가 생명공학연구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요나스교수가 제기한 현대기술이 인간중심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헬라세포와 관련해서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나스교수는 전통윤리학이 언제나 인간적 선을 장려하고, 타인의 권리 내지 타인에 대한 관심의 존중, 그들에게 일어나는 불의의 개선, 그들이 느끼는 고통의 완화를 강조해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헬라세포을 사용한 실험을 했던 시험실은 물론 헬라세포를 개발한 존스홉킨스를 비롯하여 소아마비의 예방을 최우선의 보건정책으로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어디에서도 헨리에타 랙스가 의학과 공공보건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고 기리는 일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헨리에타 랙스의 가족들로부터 혈액을 채취하여 헬라세포의 진위를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일은 연구윤리에 저촉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환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사실을 비밀로 하지 못한 연구진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지 가이가 헨리에타 랙스의 종양조직으로부터 배양해낸 헬라세포는 앞으로 암정복을 위한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결국 이 세포가 누구로부터 얻은 것인가 하는 것을 밝히기 위한 언론의 열띤 취재경쟁이 헬렌 레인, 헬렌 라슨 등의 이름으로 추측되어왔던 헬라세포의 제공자가 헬리에타 랙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가족들이 언론과 개인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을 보면 환자의 비밀유지규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역시 [북소리]에서 첫 번째로 다루었던 반덕진교수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http://blog.yes24.com/document/5221981>에 적혀있는 것처럼, “내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또는 진료 과정 외에 그들의 삶에 관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비밀로 지키고 누설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환자 보호의무에 관한 조항을 위반한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반덕진교수님께서도 환자의 비밀을 어느 선까지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즉 환자의 비밀이 보호되는 것보다 공개되는 것이 사회적 편익이 큰 경우 비밀준수규정의 적용에서 예외로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헨리에타 랙스의 경우 헬라세포와의 관계는 결국 그녀의 병력이 공개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그녀의 병력이 사회적 편익을 침해하는 바가 없다 할 것이므로 그녀의 실명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분명 의학윤리규정을 위반한 사례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검체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사례 둘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털세포백혈병에 걸린 존 무어로부터 채취한 검체를 가지고 만든 Mo세포주와 단백질에 대한 특허를 획득한 UCLA의 암학자 데이비드 골드가 이를 생명공학회사에 매도하기로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무어가 골드를 상대로 자신을 기만하고 동의 없이 자신의 몸을 연구에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여 자신의 조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지만, 대법원은 무어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단 조직이 환자의 신체를 떠나는 순간 환자의 소유권도 사라지는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무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환자도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혈우병을 앓고 있던 테드 슬래빈이란 환자는 잦은 수혈로 B형간염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치의는 이 사실을 슬래빈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슬래빈은 B형간염백신을 개발하려는 제약사에 자신의 혈청을 판매하여 수입을 올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슬래빈은 B형간염을 퇴치할 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학자 바루크 블럼버그를 찾아가 자신의 혈액과 조직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여 결국은 B형간염백신의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쾌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서 같이 생각해볼 점은 요나스교수님이 제기한 환자의 기본적 특권에 관한 점입니다. 그는 치료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의사는 오직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에 국한된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들에게 사회 혹은 의학의 대리인이 될 것을 주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의사는 환자의 가족이나 동일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재의 다른 환자 혹은 고통받게 될 미래의 환자를 위한 대리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의사에게는 현재 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환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단 전염병 환자의 경우는 예외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가 헨리에타 랙스 가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까닭은 마무리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금전적 보상을 원한 가족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헨리에타 랙스가 자궁암치료를 받는 동안 태중(胎中)에 있던 딸, 데버러 랙스는 바로 어머니와 언니의 삶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헬라세포가 의학연구에 기여한 바를 고려하여 헨리에타 랙스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환자진료를 통하여 얻게 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의학계가 얻는 부수적인 이익에 대하여 윤리적 시각에서 논의가 가능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
놀랍고, 애잔하고, 감동적이 이야기.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여러분 모두 읽어주세요! 그리고 부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해주세요!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 엄마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어요!"
랙스 가족들이 전단지를 뿌리면 외친 말입니다.
어느 날 랙스 가족에게 걸려온 전화. "20년 전 땅에 묻은 엄마가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엄마의 몸은 5천만 톤, 지구 3바퀴 반을 돌 만큼 불어났다." 이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이건 실화다.
엄마, 죽은 엄마는 담배농장에서 일하던 가난한 아낙네였고, 자궁경부암이 급하게 진행되어 4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 엄마가 살아있다니.
엄마의 존재는 '헬라세포'
인간의 세포는 생성과 동시에 증식을 하고, 퇴화기간을 거쳐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세포가 자라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퇴화를 반복한다.
|
|
의사인 나도 헬라세포라는 단어는 종종 들어보았다. 임상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교과서나 논문에서 종종 들어보았던 이름은 그저 여러 다양한 실험대상세포 중 한 종류로서만 인식되었다. 과학은, 이제까지 이루어져 온 토대를 당연하고 가벼운 현재의 결과로 인식하고 미래의 숙제에 너무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숙제에 치중하는 과학의 입장에서 과거는, 잠시 머리를 식힐만한 잔잔한 이야기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종종 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헬라세포의 과거이야기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헬라세포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의학적 생물학적 숙제를 해결하려 골몰하는 현재에, 그 유명한 헬라세포는 과연 어떻게 태어났고 이제껏 어떤 역사를 만들어왔는가를 돌아보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냥 머리식힐만한 잔잔한 이야기는 아니다. 헬라세포의 역사 안에서,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또는 도의적이거나 합법적인 문제의식을 들추어보는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헬라세포의 탄생에서부터 이제까지의 역사엔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지닌다. 첫째는 헬라세포의 모체인 헨리에타 랙스가 흑인이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의 문제가 불거지고, 두번째는 헬라세포라는 인체조직을 사용함에 있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합의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의 관점은 사실 수많은 인식들이 형성된 상태의 현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여전히 보편적인 삶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이는 헨리에타 랙스일가의 모습에서 문제는 더욱 부각되어진다. 모든 것이 인종차별적 구조안에서 이루어졌던 시대에 병원안에서 흑인들에 대한 대우란 그닥 다르지 않은 상황과 인체조직을 사용함에 있어 윤리도덕적 문제의식이 희박했던 시대의 상황은 헨리에타 랙스의 암조직을 채취하고 활용하는 데에 있어 의료인으로 하여금 어떤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며 인체조직 활용에 대한 윤리도덕적인 그리고 법적인 인식은 체계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헬라세포는 여전히 광범위한 실험에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이런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현재 우리의 판단의 틀이 법적인 테두리안에서 이루어지며 안게 될 이러저러한 복잡한 부담들과 다툼들에 대한 두려움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헬라세포는 단지, 도의적인 인식과 기념차원에서 머물러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헬라세포의 존재를 알게 된 랙스일가는 현재의 삶이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맘은 더욱 복잡해졌고 헬라세포의 과거를 알아내려는 이들의 접촉에 무척 귀찮아하기까지 한다. 헬라세포가 증식하게 두면 다시 엄마로 재생하는 거 아니냐 말할 정도로 그리 지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은 그닥 행복해보이지 않는 미국의 흑인하층민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헬라세포 자체이던, 헨리에타 랙스의 자녀들의 삶의 모습이던 어느것 하나 쉽게 법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를 따지지 못한다. 어느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제는 인식틀의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로 남아버린 헬라세포의 문제는 단지 우리에게 어떤 자각을 끊임없이 요구할 뿐이다. 여전히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중요하여 널리 활용되지만, 그에 대한 윤리도덕적인 문제는 논외로 남은 헬라세포의 이야기는 아쉽지만 딱 그 지점에서의 딜레마로 마무리된다. |
|
HeLa 세포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는 대학원 시절 쯤에 들었던 것 같다. 그 때의 느낌을 반추해보면 솔직하게 우려스러웠다. 조금 잘못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런 연구를 위한 조직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해야한다면 아마도 연구가 참 힘들어질 것 같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난 연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지금도 나는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인체에서 나오는 이런 연구 자체의 목적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 나온 부산물에 대해서까지 댓가를 지불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연구를 위한 것이라면 다른 것들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은 절대로 안된다는 생각 쯤은 갖고 있다는 얘기다. 여전히 논쟁 중이고, 이에 관련해서 기관마다 연구자마다, 그리고 생명윤리학자며 법학자며 상당히 의견 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보다는 사람을,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나온 조직을 그저 도구로서만 바라보는 시각은 많이 사라진 것도 분명한 일이다. 그런 계기가 된 것이 바로 HeLa 세포이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바로 그 HeLa 세포와 그 세포의 주인인 한 흑인 여인, 그리고 가족의 얘기다. 헨리에타 랙스는 30대 초반에 자궁경부암으로 죽었다. 그러나 그의 암세포로부터 떼어낸 조직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실험실에서 불멸의 세포로 존재하였고, 수많은 의학 및 생물학 연구에 쓰였다. 그런 죽지 않는 조직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직접 사람에게 실험하기 전에 어떤 약품이나 환경의 변화 등이 사람 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기 위해서 이런 사람의 세포에 먼저 실험을 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세포는 불멸이 아니다. 어느 정도만 분열하고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주로는 텔로미어라고 하는 염색체 말단 부위의 길이가 짧아져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헨리에타 랙스로부터 온 HeLa 세포는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분열하고,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세포였다. 그래서 전세계로 퍼져나가 의학 발전의 모든 것을 테스트받았고, 지켜보았다. 말하자면 영웅과도 같은 세포였다.
그러나 얘기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세포를 떼어낼 때 의사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동의도 받지 않았고, 나중에도 그런 얘기를 가족에게 하지 않았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가족들의 불행한 삶이 그 세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세포와 관련해서 고통받았다는 것은 분명해보이고 또 그들의 위로받고 정당하게 칭송받아야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연구자들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진보를 위한 위한 대상일 뿐이었다. 레베카 스클루트는 그녀의 집요함으로 랙스가의 사람들을 찾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냈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어렴풋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과연 의학 발전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 따위는, 개인의 삶 따위는 폐기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도 존중하면서도 충분히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 책을 근거로 오프라 윈프리가 영화로 제작한다고 한다. 영화 소재로 충분한 내용이다. 만약 나오면 보고 싶다. 궁금하다. 물론 헨리에타 랙스와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당한 부당함이 중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게 더 팔릴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불만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삶과 HeLa 세포는 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드는 한 가지 아쉬움은, 과학적인 얘기가 좀더 깊게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HeLa를 가지고 이뤄낸 과학적 성과가 그저 목록 수준으로, 좀 더 나아갔다면 그저 초록 수준으로 다뤄지고 있다. HeLa와 HeLa를 가지고 이뤄낸 과학의 위대함에 대해서 좀 더 깊게 다룬다면 과학적으로 더 유익하고, 내용적으로는 감동적인 얘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적고 보니 전적으로 나의 관점인 것 같기도 하다.) (2012. 5) |
|
때는 2005년경. 배아줄기세포로 세계 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하고 있었던 황우석 박사의 연구팀에 암초(?)가 등장했다.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조작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추앙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난자 기증 의사를 밝히고 황 교수의 조기 복귀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수의대 건물 앞부터 교수의 집무실까지 진달래꽃을 깔아놓는 등의 행위가 언론에 연일 비추어졌다. 불치병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과 지금도 매년 이맘때면 거세어지는 노벨상수상자 배출 욕구 등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국익의 문제 등. 이 문제에 얽힌 내용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기대 심리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연구를 둘러싼 윤리적인 논쟁이다. 인간의 힘을 인간 스스로가 제어하는 게 과연 가능하고 또 필요한지가 바로 그것인데, 아직 정답으로 여겨지는 묘안은 존재치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을 뿐. 여기 ‘헨리에타 랙스’라는 이름의 여인이 있다. 미국 남부의 담배농장에서 담배농사를 짓던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사망한 것은 1951년, 고약한 자궁경부암이 사인(死因)이었다. 다섯 아이를 둔 삼십 대 초반의 여인에게 죽음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엄마를 잃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그리하여 시간이 흐릿하게 만들 기억 따위를 아이들은 전혀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하였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들의 삶은 헨리에타 랙스로 인해 180도 달라지고야 만다. 그녀가 사망한 지 60년도 더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그녀와 관련된 아무것도 놓치지 못하고 있다. 이젠 고인이 된 데버러는 생전 열 가지도 넘는 약을 복용하며 스스로를 지탱했다. 헨리에타가 암에 걸렸을 당시 아직 뱃속에 있었던 제카리아는 평생 가슴속에 분노를 간직한 채 살았다. 무려 10년을 매달린 집필 과정을 통해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헨리에타 랙스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암 세포인 헬라세포가 인류에 수없이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아니했던 그 이야기를 말이다. 모든 것을 지금의 관점에서 해결하려 들어서는 물론 아니 된다. 기준이라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으로부터 불과 60년 전인 1960년대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1960년엔 검은 피부를 지닌 이들은 정해진 병원에만 가야 했다. 그리 하여 그녀가 찾은 곳은 존스 홉킨스 병원이었다. 병원 치료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닿지 않는 이들을 위해 설립된 곳이지만, 당시 존스 홉킨스에 대한 소문은 끔찍했다. 아이들은 하늘이 어두워지면 더 이상 나돌아 다녀서는 안 되었으니, 병원에서 흑인을 납치해 각종 실험을 자행한다는 말이 떠돌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성인이었고 자궁암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헨리에타로선 그와 같은 말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머지않아 그녀를 사망에 이르게 할 암 세포는 일종의 숙주 역할을 했을 헨리에타의 몸이 사라진 이후에도 살아남아 그녀를 기만했다. 그리 된 데에는 그녀의 동의 없이 조직을 채취하고 배양한 이들 탓이 컸다. 과학자들은 이를 획기적으로 여겼다. 그녀의 세포는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각종 연구에 사용되었다. 헬라세포가 아니었더라면 밝혀지기 힘들었을 비밀들이 속속들이 파헤쳐졌다. 즉, 오늘날의 의학은 적지 않은 부분 헨리에타에게 빚을 졌다. 그렇지만 일찍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들은 기본적인 의료보험의 혜택조차 누리지 못했다. 심지어 가족을 이용해 돈벌이를 해보려 접근하는 못된 이들도 존재했다. 저자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했던 그들의 첫 모습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피는 물보다 진했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으로서는 이해조차 쉽지 않았을 세포를 현미경을 통해 바라보던 데버러의 모습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리움이다. 불과 네 살에 제 어미를 잃은 데버러는 마치 잃어버린 퍼즐의 한 조각을 찾았다는 듯 그 세포를 대했다. 등을 두드리며 고맙다는 말을 한 제카리아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 이는 날카롭기 짝이 없던 거구의 남자가 좀처럼 행하지 않던 ‘기적’과도 같은 행위였다.
헬라는 여전히 실험실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세포주이다. 무한한 생명력으로 다른 배양세포를 오염시키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헬라세포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치는 않는다. 컬럼비아 대학의 빈센트 라카니엘로 교수는 “헬라세포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지 않는가! 하지만 옳은 결과가 과정까지 정당화 시켜주지는 않는다. 만약 헨리에타가 흑인 아닌 백인이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죽음을 피할 순 없었더라도 제 세포가 연구에 사용되고, 더 나아가 무한증식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일에 동의했을까? ‘저능아’로 진단받고 흑인 정신병원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그녀의 첫째 딸 엘시 랙스의 삶도 달라지진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