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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헛수고 <설국>을 읽고
피서(避書)의 계절임에도 피서(避暑)를 떠나기로 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 아닌 이한치열(以寒治熱)의 정신으로 설국열차에 몸을 실었다. 첫 장을 펴자마자 기차가 신호소에 멈춰 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서정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첫문장이다. 온데간데없는 주어 덕분에 독자가 마치 소설 속 인물이 되어 군마 현(群馬縣)과 니가타 현(新潟縣)의 접경을 잇는 시미즈(淸水) 터널을 지나 설국(雪國)에 다다른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당시 외국 번역가가 이 문장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데에 무척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바로 이어지는 문장,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에서 다시 눈길이 멈춰 섰다. 까만 밤과 하얀 눈의 대비가 얼핏 뇌리를 스치고 나더니 밤이라는 시간을 바닥이 하얀 공간으로 표현한 것에 소리 없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보다가는 한 계절로도 모자랄 만큼 배경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들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눈의 고장을 구심점으로 하여 만나고 떠나고 다시 만나기를 되풀이한다. 부모의 유산으로 소일거리 삼아 여행을 다니는 시마무라는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사는 고마코를 만나 서로 밀당을 하는 와중에 고마코의 동거인이자 유키오를 병간호하는 요코가 등장하면서 그들 사이에 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단순하게 인물간 대화 분량만 놓고 보자면 삼각관계에 초점이 맞춰지겠으나 대사 한마디 없이 시종일관 병치레만 하는 유키오를 주목할 필요도 있을 듯하다. 실질적으로 고마코, 요코와 삼각관계의 한 축이자 시마무라가 두 사람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앞서의 배경과 함께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도 작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하게 된다.
현재의 잣대로 한 세기 전에 쓰여진 외국 소설의 내용을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불륜이라는 소설의 소재가 현대의 막장드라마처럼 비춰져 불편한 이가 있을 테고, 어떤 이는 좀처럼 가닥을 잡기 어려운 스토리가, 또 다른 이는 일본 특유의 허무주의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나눈 사랑에 대하여 작품 전반에 녹아든 야스나리만의 문체와 차갑고도 따뜻한 눈꽃처럼 피어 있는 작가의 독특한 감수성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게 아닐까. 설국에 나오는 눈은 순백의 이미지로서 삶속에서 생긴 흉터들까지도 보이지 않게 덮어줄 것 같다. 또한 눈은 한없이 가볍고도 무거운 존재이기도 하므로 인생의 무게에 비유해 볼 수도 있겠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인물들이 눈의 고장에 머무는 까닭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부끄럽고 힘들었던 기억은 눈속에 고이 묻어두고 사람을 향한 애정이라는 욕구는 눈덩이처럼 계속 키워나가고 싶어서가 아닐까.
여름을 피해 찾은 소설 속 설국은 눈이 부시도록 시리고 또 한량(寒凉)한 분위기다. 이곳을 세 번 방문한 시마무라에게서는 그야말로 한량(閑良)의 기운이 느껴진다. 고마코는 그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사람이라고 애정 어린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요코는 그에게 자기를 도쿄로 데려가 달라고 청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한량과 게이샤 등 당시 사회적 신분이라는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나니 세 사람의 닮은 구석이 보인다. 서양 무용에 관한 글을 옮기거나 쓰는 시마무라와 일본의 전통 현악기 중 하나인 샤미센을 연주하는 고마코 그리고 온천장 욕탕을 청소하거나 아이를 씻기며 노래를 즐겨 부르는 요코는 모두 자의반 타의반으로 예술가의 기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 자신을 등장인물에게 투영시켜 이러한 기질을 부여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리라. 부모와 조부모를 일찍 여의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야스나리였기에 그의 삶에서 고독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시마무라를 향한 고마코의 애정을 '아름다운 헛수고'라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허무감 너머의 생명력을 떠올리기도 하고, 마치 둘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요코의 눈빛에서 어둠 너머의 빛을 발견하게 되길 기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국경의 긴 터널을 역방향으로 빠져나오면서 문득 시마무라가 눈의 고장을 찾았던 계절들을 차례대로 복기해보니 여름, 가을, 겨울순인데 봄은 그렇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시마무라의 예감과 다른 나만의 열린 결말을 상상해본다. 한 손에 설국행 기차표를 쥐어든 그의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놓여있다. 눈꽃이 지고 꽃 피는 봄에 설국에서 고마코와 요코를 다시 만나는 그의 앞모습과, 눈(雪)을 두 눈(目)에서 멀게 만드는 봄의 기운 앞에 못이긴 척 일상 속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번갈아 보이는 듯하다. 돌아오는 겨울에 다시 설국을 찾았을 때 그들은 어떤 삶을 이어가고 있을지, 또 나로 하여금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킬지 사뭇 궁금해진다. 기차에서 내리며 반대편 철로를 바라보니 설국행 기차에 탑승하는 당신이 보이는 것만 같다. 부디 그들에게 안부를 전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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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오랫만에 유독 많은 눈이 내리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제법 눈이 많이 내린다해도 사실 도시에서는 쌓인 눈을 구경하기가 쉽지않다. 모든 일상이 빠르게, 빠르게만 돌아가는 도시라는 곳은 풍성하게 내리는 눈이 땅에 내려앉을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수북히 쌓인 눈이 사람들의 일상과 시간을 멈추게 하는 곳은 이제, 사진이나 그림 또는영상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된건가 싶다. 눈조차 잠시라도 이 땅에 쌓일 틈 없이 돌아 가는 도시사람들의 생활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싶어서 문득, 서글퍼진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잠시라도 우리를 어디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다.
첫 세 문장으로 순식간에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던 그 유명한 소설 "설국"이 올해는 유난히도생각나는 해였다. 너무 빠르고 힘들게 진행되는 나의 삶에서 잠시라도 시간이 멈춘듯, 고요한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 물리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힘들지만, 책의 힘이란 게 이런 데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P7? 일본 근대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으로 꼽힌다는 이 첫 세문장! 폭설로 고립되다 시피한 일본의 한 시골 마을.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두 여인과 도쿄에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주인공 시마무라. 이 세사람의 얽히고 설킨 인연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 시마무라는 도쿄에 살면서 이따금 니카타현에 사는 고마코를 보러 온다. 이번 방문길의 기차 안에서 시마무라는 우연히 요코라는 여인에게 눈길을 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소설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얼마큼 진행되었는지를 독자에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요코와 주인공과의 관계에 특별한 인연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플롯도, 스토리도 없다. 이 소설의 가치는 플롯이나 스토리, 또는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교훈 이런 것 보다는 소설 전체에 흐르는 허무한 분위기를 표현한 탁월한 문장들, 어리석은 인간의 덧없는 수고와 대비되는 아름운 풍경을 읽는 데에 있는 것 같다.그저 눈이 소리없이 세상에 내려앉듯 이 소설은 조용하고 잔잔하게 설국을 묘사하고, 그곳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곳의 삶은 결코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곳의 여성들은 여름에 입을 지지미를 지어내느라 그 겨울을 온통 베틀 앞에서 보내야 하고, 하루의 일상을 위해 손님을 대접하고 춤과 노래를 제공해야 한다. 그녀들은 한번 받은 친절함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자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다. 반면, 화려한 도시 도쿄에 사는 시마무라는 무위도식, 하는 일 없이 일상을 지낸다. 가족이 있음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도, 고마코에 대한 책임도 없다. 그럼에도 시마무라는 고마코나 요코에 비해 여유있고, 평화롭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아이러니 하다. 답이 없다. 열심히 책임감을 갖고 산다 해서 그 끝이 항상 해피엔드도 아니고, 별 노력 없이 시마무라처럼 유유자적, 무위도식하면서 살아도 인생에 큰 탈이 나는 것도 아니다. 우린 그 답을 알 수 없다. 설사 우리의 삶이 끝내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져 버린다 해도, 별다른 능력도, 재산도 없는 평범한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살아야 내는 수 밖에 다른 답을 알지 못한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 수록, 고마코의 살아 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쿄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p110?허무함에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인생. 그것이 음양의 이치든,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이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수고로 그래도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힘들게 나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때로, 가끔 고요히 쌓인 눈을 바라보기도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작은 것들을 잊지 말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날씨가 기승을 부렸던 겨울이라 해도 다가오는 봄에게는 그 자리를 내어주고, 쌓였던 눈은 녹아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 겨울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해도, 이미 지나간 겨울과는 다른 계절이고, 우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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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가장 황홀한 문장은 책의 시작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이 부분에 많은 이들이 책을 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여성에 대한 남성에 태도에 눈이 거슬려 잘 읽지 못했다. 이 시대의 대부분의 소설은 이러한 작태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도저히 외면이 안 됐다. 나는 남자다. 하지만 왜 이런 혐오를 느끼는가. 오히려 더 사무치게 느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적 지위와 성적 유리함을 결합시켜 잔인하게 파괴시켜 왔다. 지키는 것이 아닌, 누리는 것의 형태로.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이러한 소설을 읽을 때, 많은 불쾌감을 나타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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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은 50년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이다. 지금 설국을 읽는다면, 그리고 특히나 젠더 문제에 민감한 독자라면 설국은 불편한 책이 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문장에 매혹당해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글 속의 인물이나 서술 방식에 인상을 쓰게 된 적이 많았다. 사실은 몇번이나 참지 못하고 중간에 책을 덮으려고도 했었다.
세간에 잘 알려져있듯, 자연 풍광을 묘사하는 설국의 문장은 일품이다. 또한, 그 시대상/문화상을 눈앞에 보는 것처럼 그려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일상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도 문화적 특징이나 세밀한 관찰이 돋보이는 자연물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그런 묘사는 <설국> 속 인물들의 감정이나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장치로 쓰이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고 있다는 것에 있다. 설국의 주인공 남성은 유부남으로, 아내와 자식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는 상속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전국의 산을 떠돈다. 그리고 글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두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두 게이샤 여성을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한다. 곳곳의 서술에서 게이샤를 안타까워 하는 자신의 고고한 모습에 도취한 듯한 모습도 드러난다. 그는 게이샤 여성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상황을 즐기며, 그 여성과 밤을 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 욕구 충족에 의해 게이샤 여성을 찾는 반면,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올 때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나 아무런 도덕적 가책 없이 자신이 떠나올 때 아내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서술한 직후 게이샤를 찾는 등의 행위는 젠더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편하다. 이 글 곳곳에서 여성은 대상화 되고 있으며, 이 남성의 불륜이 정당화 되고 있다. 또한 그 정당화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다 사용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작가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을 도구적으로 사용한다는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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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다가 ‘설국’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제법 오래전에 읽었던 책은 역시나 책장에서 찾을 수 없었기에 결국 재구매해 기억 속에 남은 그 곳의 이야기를 다시 만났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p.7
여전히 첫 문장은 나를 매혹시킨다. 처음 읽을 적에도 이 문장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단숨에 읽어버린 ‘설국’은 한동안 혼자 여행을 떠날 적이면 가방 한구석 자리를 차지하곤 했었는데, 얼마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고 남긴 글에도 적었듯이 내게는 설레면서도 어딘가 유치함에 멋쩍은 웃음이 나는 기억이다(재미있는 것은 이번에도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 책을 읽었더랬다).
내 기억 속에는 돌아온 시마무라를 기다리고 선 고마코의 모습, 그녀의 차가운 머리카락, 그녀를 기억한 시마무라의 손가락 그리고 어딘가 현실에 있지 않는 듯 부유하는 요코의 슬픈 목소리가 이 책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 기다란 복도 끝 계산대 모퉁이, 차갑게 검은빛으로 번쩍거리는 마루 위에 옷자락을 펼치고 여자가 꼿꼿이 서 있었다. p.17
“아, 차다. 이렇게 찬 머리카락은 처음인걸” p.18
아까 손으로 만져보고 이렇게 찬 머리카락은 처음이라며 깜짝 놀란 것도 찬 공기 탓이 아니라 바로 이 머리 때문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37
그 중에서도 내게는 고마코의 차가운 머리카락이 가장 생생하게 느껴진다. 시마무라를 대하는 감정과 대비되는 그녀의 차가운 머리카락, ‘설국’의 이미지 탓인지 그녀 자체가 그 풍경 속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이 고스란히 밤의 눈을 통해 메아리쳐 오는 듯했다. p.9
그에 비해 요코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남는다. 어쩌면 그녀에 대해서는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시선과 대화를 통해 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행동은, 그리고 감정까지도 타인을 통해 전달되고 해석되어진다.
이번에 다시 책을 읽으며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목은 두 번째 만남에서 고마코가 시마무라를 배웅하는 장면이었다. 유키오가 위독하다며 고마코를 부르러 온 요코의 목소리와 고집스레 돌아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고마코의 모습도 기억에 남았으나(난 왠지 그녀가 울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혼자 기차에 올라 돌아가는 시마무라의 감정이었다.
기차가 움직이자마자 대합실 유리가 빛나고 고마코의 얼굴은 그 빛 속에 확 타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눈 온 아침의 거울 속에서와 똑같은 새빨간 뺨이었다. 시마무라에게는 또 한번 현실과의 이별을 알리는 색이었다. p.75
시마무라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더욱 여자와 헤어지고 가는 길임을 실감했다. p.77
이렇게나 쓸쓸한 장면이었던가? 시마무라 역시 고마코와의 헤어짐에 이런 감정을 가졌던 건가, 새삼 그의 상실감이 느껴져 나 역시 조금 놀랐다.
한 권의 책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 맞아, 이장면이었지..하며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는가 하면, 새롭게 눈에 띄는 장면들도 있었다.
여전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다 알지는 못하겠다. 고마코와 요코, 그리고 시마무라의 시선과 감정을 모두 따라가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책장을 펼치면 한껏 그들의 이야기에, 온통 하얀 그 곳에 몰입하게 된다. 내가 눈의 고장에 서 있는 기분이 되어 쓸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 시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붙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후략)..p.10
흰 눈 빛에 가옥의 낮은 지붕들이 한층 낮아 보이고, 마을은 고즈넉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p.15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이보다 더한 탁상공론이 없고 거의 천국의 시(詩)에 가깝다. p.25
“힘들어요. 당신은 이제 도쿄로 돌아가세요. 힘들어요” 하고 고마코는 고다쓰 위에 얼굴을 묻었다. p.70 그러곤 목소리를 가라앉혀, “슬퍼요. 제가 바보예요. 내일 그만 돌아가세요” p.89 “안되겠어요. 힘드니까 돌아가줘요” p.126 ‘울었어요. 집에 돌아가서도 울었어요. 헤어지는 게 무서워요. 하지만 어서 가버려요. 그 말 듣고 울었던 걸 잊진 않을테니까’ p.144 *고마코가 이렇게 계속 시마무라에게 돌아가라 말했구나..이번에 읽으며 눈에 들어오던 대사들이었다.
고마코의 전부가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코에게는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p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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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를 버린 소설은 무엇으로 버티는가. 설국은 이에 답한다. 미문과 분위기라고. 설국은 무엇을 말하는 소설인가. 이 소설은 이에 답한다. 헛수고와 허무라고. 그러니까 이 소설을 통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문학이 서사를 추동하는 것은 헛수고라고 웅변하는 듯 하다. 대신 미문과 분위기를 원동력 삼아 문학은 철도처럼 달려나갈 수 있다고 믿는듯 하다. 어제 쌓인 눈처럼 미문과 온천에서 일렁이는 아지랭이 같이 몽롱한 분위기로 그득한 책. 그나마 남아 있던 현실감을 캐릭터로 지우기도 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다시 열어보게 만드는, 모던 클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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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감각파운동 #눈 #철도 #고드름 #나비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마코에게 다가가려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로부터 요코를 받아 안으려는 사내들에 떼밀려 휘청거렸다. 발에 힘을 주며 올라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함께 설국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사람마다 이 책에서 느끼는 감정이 정말 달랐다. 주인공들의 언어에서 느껴지는 미묘함 때문일까???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언어들이 이 책의 매력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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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들은 눈 올 때마다 읽는다는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일본어: 川端 康成かわばた やすなり, 1899년 6월 14일 ~ 1972년 4월 16일)는 일본의 소설가다. 오사카부 오사카시 기타구의 차화정(此花町, 지금의 덴진바시 부근)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함께 『분게이지다이(文藝時代)』를 창간하여 당시 유럽의 허무주의, 미래파, 표현주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문학 유파였던 신감각파(新感覺派)의 대표적 작가로서 활약하였다.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 『설국』, 『천 마리의 종이학(千羽鶴)』, 『산소리(山の音)』, 『잠든 미녀(眠れる美女)』, 『고도(古都) 』 등 죽음이나 유전 속 '일본미(日本美)'를 표현한 작품을 발표했고, 1968년(쇼와 43년)에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2년(쇼와 47년)에 만 72세(향년74세)로 사망하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대표작품 설국, 다들 눈올 때 한 번씩 만나보도록 하자. 그 유명한 첫 문장이 있는 설국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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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있는 서적들을 즐겨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작가의 설국이라는 서적을 구매 및 주문을 해서 보게 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작가의 설국이라는 이 책에서 작가의 필력이 돋보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책을 가끔 꺼내어 읽어 보고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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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이다. 시마무라와 게이샤인 고마코, 요코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은 줄거리보다는 문체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짧아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