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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문학과 현실세계가 소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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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문학을 읽어야할까? 보통은 나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좋은 작품을 많이 감상해야한다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가 삶에 어떠한 매커니즘으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도 고민하게 된다. (문학작품은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것같다, 그러니까 차라리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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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문학을 읽어야할까? 보통은 나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좋은 작품을 많이 감상해야한다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가 삶에 어떠한 매커니즘으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도 고민하게 된다. (문학작품은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것같다, 그러니까 차라리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보라. 자기계발서 애호가들을 위한 좋은 대답을 고민하다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고전은 어떻게 수 세기동안 살아남았을까? 글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보르헤스의 『픽션들』은 약 300페이지의 단편소설집에서 독자들에게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픽션들』 책 표지의 그림은 네덜란드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가 그린 '그리는 손'이라는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펜을 쥔 두 개의 손은 한 장의 종이 안에서 우로보로스처럼 이어진 채 서로의 옷소매를 그리고 있다. 손목에서 펜을 쥐고있는 손으로 갈수록 묘사가 점점 세밀해지는데, 흥미로운 점은 두 손이 결국 종이 바깥으로 튀어나가면서 현실에 그림자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손'은 더 이상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현실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는 실존하는 존재가 된다. 곧 이 책의 주제의식이며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텍스트가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   몇몇 단편들은 화자가 과거의 작가가 집필한 문학작품의 가치를 평론하고 해설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화자는 유명한 작가의 고전들을 대거 인용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튼튼하게 뒷받침한다. 하지만 주석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그 고전은 현실에 실존하는 내용과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가 절묘하게 조합되어있다. 가상의 세계관이 점점 촘촘해지면서 원본과 모방의 경계마저도 흐릿해질 때, 그러면서 어떤 관념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깊이 뿌리내릴 때 가상의 세계는 점점 확장되며 현실이 된다.(<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사용되는 클리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여성으로 착각할 정도의 아름다운 백발의 남자. 초반에는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력자로 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인공의 적이 되는' 인물 조형은 <데빌맨>의 '아스카 료'라는 캐릭터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세월이 흘러도 살아남아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외에도 작가는 허구의 텍스트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역사 속에서 책이 사람과 영향력을 주고받는 방식 대해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절대적인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나만의 책을 갈망하고, 도서관 안에서 그 책을 찾아서 헤맨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책은 전부 태워버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장면은 구원을 갈망하기 위해 종교서를 읽는 사람들과,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문학이 금서로 지정되어 탄압받았던 역사적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방식의 선악의 층위를 가려내는 일은 어렵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에서 과거의 기록에서 등장하는 미로를 현실에서 실물로 재현하는 학자가 등장하는 한편, 반대로 중요한 첩보를 전달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신문에 나오게 할만한 사건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를 죽이는 스파이가 등장한다. <칼의 형상>에서는 화자가 '사망한 동지'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허구가 곁들여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을 택한다. 실제 본인은 비겁한 인물이므로 처음부터 그 사실을 밝혔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과 '가상세계'를 항상 분리해서 한쪽에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상현실에 너무 과몰입 하지 말고 현생을 살아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은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지 보여준다. 두 세계가 영향을 주고받는 사소한 순간들은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존재해왔음을 말해준다. 허구의 텍스트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왔는지 깨닫게 될 때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도 더욱 넓어지고 풍성해질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h******7 2024.08.16. 신고 공감 18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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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일1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내용보기
진중권의 저서에 많이 언급되어 있어서 뭔가 심오하고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짧을 줄이야. 첫 소설은 예상했던 만큼 어려웠다. 처음에는 연작인지 단편인지도 헷갈렸는데, 출간될 때, <픽션들>이라는 소설집 전체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과 <기교들>라는 이름으로 처음에 따로 출간되었던 것을 두개로 합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첫 작품인 <틀뢴, 우크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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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저서에 많이 언급되어 있어서 뭔가 심오하고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짧을 줄이야. 첫 소설은 예상했던 만큼 어려웠다. 처음에는 연작인지 단편인지도 헷갈렸는데, 출간될 때, <픽션들>이라는 소설집 전체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과 <기교들>라는 이름으로 처음에 따로 출간되었던 것을 두개로 합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첫 작품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는  본편이 있고 또 그 본편과 연결되는 듯이 보이는 <1947의 후기>가 또 있다. 이 두 개의 작품은 연작처럼 내용이 연결되어 있고 1947의 후기라는 제목을 갖지만, 목차상으로는 <틀뢴>에 속해있다. 아무튼 첫번째 소설은 진도가 하도 안나가서 ( 읽다가 잠에 빠지기 가장 좋은 류의 책)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는 있을까 의아했는데, <틀뢴>이 독자의 기선을 완전 제압해 놓은 후는 살짝 풀어주는 느낌으로, 그 다음부터는 읽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작품 해석의 난해성은 제쳐놓더라도, 그 짧은 소설에 실존인물들과 가상인물들의 한도 끝도 언급에서 첫번째 작품은 내용 파악조차 어려웠는데, 이 요약 불가능한 이 첫번째 소설을 억지로라도 요약해보면, 대략 존재조차 의심스러운 괴상한 사람들과 괴상한 이론들이 브리태니어 백과사전의 해적판에 몰래 숨어있으면서 수 세기에 걸쳐 세계의 지식과 관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 같다. 이게 내가 파악한 줄거리고, 다른 관점으로 정리하면 완전히 다르게 볼 수도 있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을 볼 때, 틀뢴은 17세기에 결성된 비밀 결사이고, 우크바르는 그 특정 판본의 백과사전에 실린 지명 이름으로, 실제 틀뢴의 사상이 싹트고 발전하는 국경과 역사,  언어, 문학 등이 모호한 세계다.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우나, 여기 저기서 그 환상의 세계가 조금씩 드러나고 매혹되는데, 이것이 어떻게 현실에 침투할까.


이 모호하고 이상한 세계의 국가들은 태생부터 관념적이고, 그리하여 ‘틀뢴 사람들에게 세상이란 공간 속에 물체들이 뒤섞인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연속물’이다. 틀뢴의 언어에는 명사가 없고, 동사로 이루어졌거나(남반구) 형용사로만 이루어졌다(북반구). 모든 학문은 심리학의 하위에 속해있고, 그들은 ‘우주를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정신적 과정으로 이해(p23)’한다. 이 곳에서 ‘정신적 상태는 축약이 불가’능하므로, 거기에 ‘이름을 부여하고 분류하는 행위는  왜곡과 편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지역의 언어 모두에서 왜 명사가 없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몇 안되는,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명사는 축약이고, 압축이다. MP3 포맷이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영역의 음폭을 모두 제거하여 깨끗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작디 작은 기기의 어느 작은 하드웨어가 담을 수 있는 적은 용량에 압축한 것처럼, 또 jpg와 png 같은 사진 파일이 화면에 담을 수 있는 쓸모 있는 정보들만 축약하여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것처럼. 언어(명사)는 모호하고 들쭉날쭉하고 무한한 어떤 세계를 하나의 단어로 그 복잡성을 마치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단호하게 그 단어가 오랫동안 품어온 뜻에 어긋나는 의미들을 그것을 표현하는 세계에서 제거해 버린다. 그렇다면 형용사나 동사는 다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이해하자.


틀뢴의 한 학파는 시간을 부정하고, 다른 학파는 ‘이미 모든 시간은 지나갔고 우리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에 대한 어스레한 기억 혹은 반영이며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왜곡되고 훼손되었다고 단정(p25)’하며,  또다른 학파는 ‘우리가 여기서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는 또 다른 어떤 곳에서 깨어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실상 두 사람’이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동시에 있다는 말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연상되어 소름돋는데, 작품의 알레고리보다는 뭔가 괴상하고, 신비한 걸 찾다 보니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도 생각난다. 아니나 다를까, 진중권은 틀뢴의 이러한 알레고리를 과학기술, 네트워크의 사이버 스페이스와 연결짓는 통찰을 발견했는데, 해석보다는 모호한 채로인 게 더 선호될 때가 있다. 소설 속에서 틀뢴이라는 비밀 결사가 생긴 17 혹은 18세기와 같은 시기에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과학기술이 전면에 대신하면서 가치관,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속화된 것을 주목했을 거란 건 확실하다.


한달 째 침대에 두고도 짧은 단편 네 개 밖에 읽지 못했는데, 이 후 <알모타심으로의 접근> ,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그리고 <원형의 폐허들>은 일단 황당함에 있어서 <틀뢴...>을 따라잡지 못하므로 읽기가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훨씬 수월했다. <원형의 폐허들>이 흥미로와서, 리뷰를 쓸 수 있을 것 같기에, <원형의 폐허들>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틀뢴을 먼저 애기하다보니 길어져서 <틀뢴>에 대한 리뷰가 되어버렸다. <원형의 폐허들>은 내일 쓸 작정이다.

g******1 2018.06.08. 신고 공감 1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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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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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역시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의 일부인데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파트에 수록되어 있다.제목부터 수상하다. 메나르의 <돈키호테>라니.<돈키호테>가 내가 아는 <돈키호테>말고 다른 게 있었나? 괴짜작가에게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이번에야 말로 내 힘으로 알아내고 싶었다.화자는 ‘메나르’라는 소설가의 유고를 정리하던 중 <돈키호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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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역시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의 일부인데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파트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부터 수상하다. 메나르의 <돈키호테>라니.

<돈키호테>가 내가 아는 <돈키호테>말고 다른 게 있었나? 괴짜작가에게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이번에야 말로 내 힘으로 알아내고 싶었다.


화자는 ‘메나르’라는 소설가의 유고를 정리하던 중 <돈키호테>1부의 9장과 제22장, 그리고 1장 일부를 발견한다. ‘동명의 소설인가?’인가 싶어 꼼꼼하게 읽어봤지만,

똑 같 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돈키호테>, 17세기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 작품 말이다. 진짜, 완전,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똑 같 다.

베껴썼나? 복제했나? 아니다. 꼼꼼히 살펴보면 메나르의 <돈키호테>는 분명 그의 창작물이다.



그는 또 다른 <돈키호테>를 집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돈키호테> 그 자체였다. 그가 원작을 기계적으로 옮겨 쓰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은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의 경탄스러운 야심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작품과 모든 단어와 모든 행이 완전히 일치하는 몇 페이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p.57)


메나르는 똑같은 <돈키호테>를 쓰기 위해 300년전 작가가 지니고 있던 지식, 환경, 종교, 언어를 모두 체득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책의 제목 <픽션들>답게 그는 세르반테스의 내면을 갖추고 세르반테스의 것과 복제 수준의 <돈키호테>를 창작한다.



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같은 단어, 같은 문장도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연인에게 고백하는 ‘사랑합니다’, 늙은 부모에게 헌사하는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백색소음처럼 들려오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같은 말이지만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을 거다. 예시가 극단적이긴 하지만 똑같은 문장 ‘사랑합니다’와 똑같은 소설<돈키호테>는 결국 같은 맥락이다.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이 발화하는 주체와 상황에 따라 그 본질이 달라지듯, 똑같은 텍스트일지라도 저자와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왜 글자하나까지 똑같은 작품일까?


이 작품은 이공계 랩실분위기가 난다. 보르헤스는 소설가의 서재에서 과학자의 실험실을 만들었다.

그는 예술계의 부조리를 정확하게 파헤치기 위해 '똑같은 텍스트'라는 통제된 변수(실험 대조군)를 설정했다. 비슷할망정 똑같지 않다면 사람들은 다르게 대접받을만하다고 핑계를 댈 테니까.

결과는 어땠을까. 텍스트가 똑같으면 평가도 똑같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여전히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받는 한편 메나르의 <돈키호테>는 그 존재감조차 희미하다는 사실이 결과를 증명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이러한 문학실험을 통해 예술적 성취조차 작가의 이름값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을 투영한다.


난해한 작품을 읽고 리뷰를 남기겠다고 끙끙대는 이 상황도 마찬가지다.

어렵지만 일단 ‘보르헤스 작품이니까 내가 모르는 대단한 의미가 있겠지.’싶어 이런 저런 사유를 하고 있다.

만약 똑같은 텍스트지만 이름 없는 작가의 글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읽기를 포기했을 거다.

‘무슨 글이 이래? 논리도 안 맞고, 비문투성이구만.’ 하면서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s*****e 2026.05.22.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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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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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픽션들> 중에서화자는 어느날 친구와 문학에 관해 논쟁 하던 중 특별한 백과사전에서만 나오는 '우크바르'라는 나라와, 신비로운 행성 '틀뢴'의 존재를 알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나라 우크바르와 그 나라의 문학속에 등장하는 행성, 틀뢴. 그곳은 지구와는 모든 물리 법칙과 철학이 다른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지구와 다른 점은 관념이 지배하는 행성이라는 거다.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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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픽션들> 중에서


화자는 어느날 친구와 문학에 관해 논쟁 하던 중 특별한 백과사전에서만 나오는 '우크바르'라는 나라와, 신비로운 행성 '틀뢴'의 존재를 알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나라 우크바르와 그 나라의 문학속에 등장하는 행성, 틀뢴. 그곳은 지구와는 모든 물리 법칙과 철학이 다른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지구와 다른 점은 관념이 지배하는 행성이라는 거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단다.

생경한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게 된 화자가 우크바르와 틀뢴을 찾아 헤매지만 세상 어느 곳에도 그런 나라는 없었다.


이 ‘멋진 신세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천재의 주도하에 천문학자, 생물학자, 기술자, 형이상학자, 시인, 화학자, 대수학자, 윤리학자, 화가, 기하학자 등으로 구성된 비밀 결사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이 갖가지 학문들에는 수많은 달인들이 있지만,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은 거의 없고, 자신이 상상한 것을 치밀하고 체계적인 계획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적다. 그 계획은 지극히 방대해서 필자 개개인의 공헌도는 정말로 미미하다. 처음에 틀뢴은 단순한 하나의 카오스, 그러니까 무책임한 상상의 방종과 같은 행위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코스모스이고, 아직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은밀한 법칙들이 이미 명확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 행성에 있는 국가들은 태생부터 관념적이다. 그들의 언어와 언어로부터 파생된 것들(종교, 문학, 형이상학)은 관념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 틀뢴 사람들에게 세상이란 공간 속에 물체들이 뒤섞인 것이 아니다.

(p.20~21)


모든 게 관념이라고? 작가는 12진법 수학, 역사, 지리학까지 완벽하게 논리적인,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창조해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부터인가 지구에 틀뢴의 물건이 하나, 둘 나타나고 이어 어느 연구자가 도서관에서 틀뢴행성의 정보를 담은 <틀뢴백과사전>을 발견한다. (책에선 물건이 먼저 언급되지만 실제로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틀뢴의 성질과 틀뢴과의 접촉은 이 세상을 붕괴시켰다. 틀뢴의 엄밀함에 현혹된 인류는 그것이 천사들의 엄밀함이 아니라 체스 대가들의 엄밀함이라는 것을 잊고, 또다시 잊어버리는 중이다. 이미 학교에는 틀뢴의 ‘원시적 언어’(추측적인)가 침투했다. 이미 틀뢴의 조화로운 역사(감동적인 일화들로 가득한)를 가르치는 수업은 내가 어릴 적에 지배했던 역사를 지워 버렸다.

...

세계는 틀뢴이 될 것이다.

(p.39)


인류는 점점 틀뢴의 역사와 언어에 매료되어 그곳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한편 지구의 진짜 언어와 역사, 철학 등등 모든 것을 망각한다.



인간은 왜 지구의 역사, 질서를 버리고 틀뢴의 규칙을 받아들였을까?



틀뢴의 백과사전이 지구를 침범할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진짜여서가 아니라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완전하지 않다. 실제 내가 사는 집이지만 부엌의 숟가락이나 서랍 속 면봉 개수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틀뢴의 세상은 다르다. 틀뢴은 모든 질문에 정답을 제시한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낸다는 틀뢴의 세계는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을 쫓아낸다는 옛이야기 <옹고집전>을 닮았다. 설화 속에서 가짜는 진짜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가짜를 진짜로 믿지 않았던가.


당장 이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 “줄거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십중팔구는 내용을 잊었거나 읽고도 뭔 말인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AI는 어떨까? 책을 읽은 적도 없으면서 어떤 독자보다도 정확한 답을 알려 줄 것이다.



읽기가 왜 이렇게 힘들까?


보르헤스는 언어의 마술사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마술사가 마술을 부릴 때 그것이 눈속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 속일지도 짐작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또 속는다. 보르헤스는 책을 그렇게 썼다.

어떻게든 줄거리라도 파악하려고 애를 써 봐도 천재작가는 평범하게 쓰는 건 싫증이 났는지 중요하지도 않은 가짜 정보들을 진지하게 나열하며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솔직히 리뷰를 쓰는 이 순간조차 작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옳게 이해한 것인지,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확언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쓰면서도 자꾸 꼬이는데, 이 글이 엉성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보르헤스가 일부러 이해할 수 없게 썼으니, 읽는 나도 문장의 미로에 빠져 길을 헤맬 수밖에 없지 않은가.






YES마니아 : 로얄 s*****e 2026.05.2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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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보르헤스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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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픽션들’은 소설에서 하나의 혁명으로 취급된다.왜 그런지는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의식의 흐름이나 초현실주의처럼 새로운 소설의 문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는 ‘지식조합형’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으며 그 의미에서는 ‘주관적 세계의 인식’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
"21세기에 보르헤스를 읽다." 내용보기

보르헤스의 ‘픽션들’은 소설에서 하나의 혁명으로 취급된다.

왜 그런지는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의식의 흐름이나 초현실주의처럼 새로운 소설의 문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는 ‘지식조합형’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으며 그 의미에서는 ‘주관적 세계의 인식’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다만 그 어려움에 읽는 내내 굉장히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그런 독자들에게는 해설을 먼저 보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r*******0 2018.01.1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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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미로를 헤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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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읽고별로 두껍지도 않은 단편집에 한 달째 매달려있다.얄팍한 두께만 보고 만만하게 시작했지만 읽을수록 한줄, 한줄이 고역이다.이번에 리뷰할 단편은 《픽션들》 중 첫 챕터의 제목이기도 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다.10장이 채 되지 않는 분량의 액자소설이지만 어디까지가 액자 밖이고 안인지조차 모호해서시작부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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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읽고


별로 두껍지도 않은 단편집에 한 달째 매달려있다.

얄팍한 두께만 보고 만만하게 시작했지만 읽을수록 한줄, 한줄이 고역이다.

이번에 리뷰할 단편은 《픽션들》 중 첫 챕터의 제목이기도 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다.

10장이 채 되지 않는 분량의 액자소설이지만 어디까지가 액자 밖이고 안인지조차 모호해서

시작부터 제자리를 맴돌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중국인 영문학자이자 교수인 유춘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스파이로 활동하던 중국인 유춘은 아일랜드 출신 영국군인 리처드 매든에게 발각된다. 체포되기 직전 간신히 추격자을 따돌린 그는 중국학 학자인 스티븐 앨버트 박사를 암살하러 애그로시브로 간다. 앨버트박사에 대한 사적인 원한은 없다. 하지만 그의 사망소식이 독일군에게 어느 도시에 대한 공격신호로 읽힐 테니, 스파이인 유춘은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앨버트박사의 저택은, 처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중국학자인 앨버트가 유춘의 증조부인 추이펀의 책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완벽하게 구현해 놓고 있었다. 그곳에서 유춘은 정원의 창조주 앨버트박사와 영적으로 교감한다. 앨버트와 함께 무한히 다른 시간의 차원들속에서 유영하는 유춘. 그러나 문득 집근처에서 자신을 추격하는 매든을 발견하고 자신의 임무를 자각하고는 서둘러 앨버트를 살해하고 체포된다.



“...그런 대부분의 시간 속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간 속에서 당신은 존재하지만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시간 속에서 저는 존재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다른 시간의 경우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하기도 합니다...”

(p.126)


이 작품 하나에 그토록 오래 매달렸던 이유는 ‘시간의 레이어’라는 수수께끼 때문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여러번.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앨버트박사가 구현했다는 추이펀의 정원이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추이펀의 시대를 부활시킨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유춘은 앨버트의 저택에서 조상의 이상을 구현한 정원을 현재 시점에서 발견한 게 아니라 아예 그 시대로 드라마 속 주인공이 타임슬립 하듯 가버린 것 같다. 그렇게 유춘은 과거의 시공간을 경험하고 감동한다. 하지만 비록 잠시 과거의 정원을 쇼룸처럼 체험한다 하더라도 그의 내면은 증조부의 시대가 아니라 철저히 20세기의 시스템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정원의 창조주인 앨버트박사를 경외하면서도 죽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창조주가 사라진 추이펀의 정원은 물리적으로 소멸했지만 유춘의 기억에선 그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한 말이다.


시간은 흔히 하나의 거대한 직선으로 인식된다. 쏜살처럼, 혹은 흐르는 강물처럼. 인간은 그 흐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제각각의 밀도로 시간을 편집한다.

유춘은 왜 앨버트를 죽여야 했을까? 그가 창조한 정원에 머문다면 두 사람 모두 행복했을텐데.

비극은 유춘이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비록 그 정원이 아름답고 오래 머물고 싶은 시간과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의 내면 의식은 과거가 아닌 20세기에 종속되어있었다. 잠시 아름다운 정원에서 과거를 추억할 수는 있어도 20세기 인간이 19세기를 살수는 없지 않겠는가.


“스티븐 앨버트 박사님 댁에 가세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른 아이가 말했다.

“박사님 댁은 여기서 멀여요. 그렇지만 저 길을 따라 왼쪽으로 가다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왼쪽으로 돌면 절대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p.116)


읽으면서 흠칫했다.

‘왼쪽으로 왼쪽으로 가다보면 결국 중심으로 향할 테고, 꼼짝없이 덫이구나!’

이 단편엔 거울이 언급되지 않지만 보르헤스는 거울이란 개념으로 세상을 은유하곤 한다.

거울 속에선 사물이 똑같이 반복되고 왼쪽, 오른쪽이 무의미하다. 오른쪽으로만 돌아도 결국 같은 목적지에 갈 텐데 아직 미숙한 아이는 왼쪽만을 고집한다.


얼마 전에 치러진 선거를 보며 이 대목이 떠올랐다. 선거는 우리에게 선택지(오솔길)를 제시하지만, 사실 그 모든 길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설계된 것일 뿐이다. (이게 진짜 민주주의인지도 헷갈리지만) 선택할 기회를 준다지만 내가 받은 투표용지엔 1번과 2번밖에 없었다. 마치 메뉴가 두 개뿐인 식당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투표했다고 믿지만, 선거는 마치 솜씨 없는 식당에서 두 가지 메뉴를 보고 음식을 고르는 행위와 닮았다. 제공되는 음식은 오직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뭘 골라도 뻔한 맛이겠지만 둘 중 하나를 먹거나, 싫으면 굶어야 한다.


그런데도 유춘이 앨버트를 죽이고 자신의 행동을 대의를 위함이라고 합리화하듯, 대중 또한 자신이 속한 진영의 승리(임무)를 위해 타인을 혐오하거나 비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왜 먹을 게 찌개밖에 없을까?’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대신, 배고픈 대중은 찌개 냄새에 혹해 서로를 공격한다.



큰일이다. 보르헤스의 미로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여기가 길인가 보다 하고 하루 종일 열심히 걸었는데, 다음 날 보면 또 다른 쪽에 신작로가 보인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올해가 저물도록 책 한권도 제대로 못 읽어낼 듯하다.



YES마니아 : 로얄 s*****e 2026.06.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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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가 만들어낸 무한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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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하려 한다.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진리를 향하고 있는지, 결국 어디에 도달하는지. 이러한 방식으로 『픽션들』을 읽는다면 독자는 금세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 자체가 보르헤스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픽션들』 속 이야기들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끊임없이 흐린다. 존재하지 않는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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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하려 한다.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진리를 향하고 있는지, 결국 어디에 도달하는지. 이러한 방식으로 『픽션들』을 읽는다면 독자는 금세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 자체가 보르헤스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픽션들』 속 이야기들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끊임없이 흐린다. 존재하지 않는 문헌과 가상의 작가가 실제처럼 등장하고, 현실처럼 보이는 설정은 어느 순간 허구로 미끄러진다. 그 과정에서 ‘사실’이라는 개념은 점점 무의미해진다.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 역시 하나의 구성물일 뿐이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보르헤스를 읽으며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세계와 자기 존재에 대한 강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 책 안에는 어떠한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진리로 수렴하려는 시도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해석 대신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고, 하나의 길 대신 끝없이 분기되는 사유의 갈래들만이 놓여 있다. 읽는 동안 우리는 무엇도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 속에서 떠오르는 다양한 상상들을 마주하며, 바로 그 가능성 자체가 보르헤스 문학의 힘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각 단편의 스토리나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라가기보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방식을 바라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각각의 이야기는 결론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생각을 증식시키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읽기를 통해 얻으려 했던 이해는 흔들리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인식들은 과감히 균열을 만든다. 


『픽션들』은 끝없이 변주되는 질문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후 많은 작가들이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아 문학의 새로운 출구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문학은 이 세계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무수한 가능성 위에 서 있는 존재임을 마주하게 한다. 보르헤스가 설계한 이 주도면밀한 미로는 나라는 존재 자체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깊은 균열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흥미로운 경험 앞에서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보르헤스 #픽션들 #호르헤루이스보르헤스 #고전읽기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7 2026.04.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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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명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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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은 단순히 단편소설집이 아니다 이 책은 ‘이야기’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질문이자, 언어와 현실, 지식과 무한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다. 보르헤스는 짧고 간결한 이야기 속에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를 담아낸다 때로는 도서관을, 때로는 거울을, 또는 가상의 책과 저자를 통해, 그는 독자에게 수수께끼 같은 세계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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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은 단순히 단편소설집이 아니다
 이 책은 ‘이야기’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질문이자, 언어와 현실, 지식과 무한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다. 보르헤스는 짧고 간결한 이야기 속에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를 담아낸다
 때로는 도서관을, 때로는 거울을, 또는 가상의 책과 저자를 통해, 그는 독자에게 수수께끼 같은 세계를 건넨다
q***********y 2025.04.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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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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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영화를 감명깊게 감상한 이후에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영화 속 도서관 장면이 보르헤스의 책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작품이 바로 픽션들이었고, 보르헤스의 책이 워낙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우선 그의 강연이나 인터뷰를 다룬 책을 읽은 이후 구매하게 되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잘 알려진 마르케스의 작품들 '백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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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영화를 감명깊게 감상한 이후에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영화 속 도서관 장면이 보르헤스의 책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작품이 바로 픽션들이었고, 보르헤스의 책이 워낙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우선 그의 강연이나 인터뷰를 다룬 책을 읽은 이후 구매하게 되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잘 알려진 마르케스의 작품들 '백년의 고독' 이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와는 다른 종류인 것 같다. 마르케스의 작품들은 재미있게 읽어나갔지만, 보르헤스는 아무래도 장벽이 조금 높다. 그래도 그의 책이 읽는 것이 즐겁다, 그가 만들어낸 풍부하고 풍성한 세계를 더 알아가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g*******1 2019.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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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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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언급되는 보르헤스! 책은 구입했는데 다 읽지 못하고 대표작인 <바벨의 도서관> 을 먼저 읽었습니다. 무한수의 육각형 진열실은 시간으로 해석되었고 책장 속은 책들은 개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108쪽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내가 쓰는 언어를 이해한다고 확신하는가'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단편소설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우주를, 인생을 어떻게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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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언급되는 보르헤스! 책은 구입했는데 다 읽지 못하고 대표작인 <바벨의 도서관> 을 먼저 읽었습니다. 무한수의 육각형 진열실은 시간으로 해석되었고 책장 속은 책들은 개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108쪽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내가 쓰는 언어를 이해한다고 확신하는가'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단편소설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우주를, 인생을 어떻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와닿았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d*******g 2026.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