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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가인 크리스 레만이 집필한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은 미국내 대부분의 부를 가진 상위 1%에 불과한 부자들이 어떻게 사회를 조종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부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지 철저하게 파헤치고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책이다. 스마트폰의 혁명으로 대표되는 아이콘인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성공가도를 통해 ‘손안의 세계’를 구현하면 열광적인 신도(?)들을 만들어 낸 애플社와 스티브 잡스의 그늘에 도사린 중국 하청업체 팍스콘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자들의 고통은 외면하는 애플과 그런 고통속에 탄생한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진실임을 각인시키는 수많은 행태들, 가진 자의 범죄행위와 가난한 자의 동일한 범죄행위에 대한 법원의 법적 징벌은 법앞에 평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진 자에게 훨씬 관대함을 아끼지 않는다. 언론 또한 가진 자들의 부를 통해 연명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와 가진 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언론을 운영함으로서 나타나는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여론 호도와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99% 대중의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다. 부의 전횡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프로 스포츠세계에서도 돈의 개입은 언제든지 공정한 경쟁과 페어플레이를 통해 승부를 결정짓는 스포츠를 타락시킨다. 일례로 들어보자.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미국의 오노에게 강탈당한 김동성 선수의 불행은 바로 세계 빙상연맹을 좌지우지 하는 미국과 미국의 부의 힘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었다. 결국 김연아선수의 금메달이 되긴 했지만 라이벌 깜도 아닌 아사다 마오가 계속 자신의 실력 이상의 점수를 받았던 것은 국제피겨연맹의 재정적 지원을 도맡아하는 일본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연아선수는 피해 갔지만 결국 다른 선수들은 이러한 검은 지원 속에 은메달을 딴 아사다마오의 희생양들이 되었음은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미국내 부자들의 원맨쇼(?)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감춰진 이면을 들춰내는 저자의 필력은 이 책 한권 속에만 국한되지 않는 강렬한 사회고발의 메스임에 분명하다. 영어 원제 역시 이 책을 소개하는 매체들에서는 ‘부자 족속들’로 표현하지만 저자의 속뜻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거의 육두문자에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부자 XX들’.... 이렇게 사회 전방위적 금권을 휘두르는 부자들이 만드는 세상의 불평등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를 야기시킨 이들을 살리기 위해 피해를 입었던 국민들의 세금이 사용된다는 불편한 진실... 비단 미국만의 현실이 아님을 대부분의 독자들도 깨달을 것이다. 바로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도 쌍둥이처럼 똑같기 때문이다. 오직 경쟁만을 주장하지만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달리는 것이 아닌 불공평한 질주 속에 부자들은 99%의 서민들에게 패배를 받아들이고 운명으로 깨닫기를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은 이미 수십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득한 추억이 되었기에 부의 세습과 부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 자식들이 사회 고위층을 차지하게 된다. 이처럼 계층의 고착화는 정치적 민주주의 속에(물론 이러한 성과도 현 정부들어 철저하게 파괴되고 만다. 탈레반이 세계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굴을 허물어 뜨린것과 뭔 차이가 있을까?) 간과되어 온 경제적 민주주의가 정말로 시급한 사안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기에 이 책을 보는 우리는 미국의 세태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함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대주의에 빠져 오늘도 미국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숭배하는 부자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하긴 미국의 시장지향의 경제체제가 만들어 낸 괴물은 공공시스템마저도 독점을 통해 부자들에게 부를 안겨다 주는 실버라도가 아니겠는가? 지하철 9호선은 그 시발점이었지만 박원순 시장에게 통렬한 카운터펀치를 얻어맞고 잠시 실신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를 가져갈 컨셉들은 도처에 널렸다. 의료 민영화도 그렇고 인천공항 지분매각도 대기하고 있다. 그야말로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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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비판과 경멸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이라는 표현에 내가 처음 생각한 추세나 운동, 관습이 대체로 반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연히 시작된 칼럼의 시야를 넓혀 미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좀 더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14쪽, 서문 중)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역시 그랬다.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이라는 제목 속에 이미 누구나 다 알고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한마디로 쿨하게 폭로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하려던 방법대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믿을수 있냐며, 가능한한 최대로 깐족거리고 있지만, 역시 미국의 정치와 경제적상황이고,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과 사건들로 저자의 비아냥어린 조소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나로서는 머릿속이 최대한으로 꼬이는 경험을 제대로 한 책이다. 그런 중에도 아이패드와 같은 초현대적 기기들을 소유할 수 있는 부류로 분류되기 위해 분투하는 싸구려 영혼들의 가련한 분투기와, 자본의 세계에서 고통받는 대중을 어리버리한 채로 사로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악용되고 있는 프로 스포츠계의 활약상 등은 국가상황을 초월해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거기에 영광스럽게도 우리의 노태우 전 대통령과,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의 이름이 부패한 인물로 떡하니 인쇄되어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으니, 저자의 맹렬한 사회 비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나에게 제대로 충격이기도 했다. 부자들이 다 해먹는 세상에서 교육 또한 다르지 않다. 자본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고이는 것이다. 교육은 경제적 차별의 동력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자본이 흐르지 않도록 막는 제방 역할 역시 수행하고 있다. 이또한 '리틀 아메리카'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결국, 세계는 국가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 대 빈자로 분류되고 있다라고 봐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들의 세계에는 역시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맞지 않을까. 아니 국가가 이미 부자들이 취할 수 있는 이익에 부합하는 유용한 수단으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는 것이 맞지 않을까.
돈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돈은 사랑만큼 중요합니다. 돈은 닫힌 문을 열어줍니다. 돈을 존경할 필요가 있어요.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설치 미술가, 데미언 허스트. 104쪽 헉! 소리가 나도록 천박한 논리임에도, 최소한의 교양을 갖은 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임에도 특별히 반발할 만한 말이 없다. 가히 놀라운 통찰이랄 수 있을 정도다. 돈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고, 도덕적 가치를 가리고, 결국 스스로의 양심을 가린다. 정확히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인 것이다.
에세이별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큰 맥락에서 돈이면 다되는 세상이고, 돈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안되는 세상이라는 것쯤은 이해했다. 또한, 이 책이 빈자들의 말초신경을 최대한 자극해 보자는 의도로 씌여진 것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다만, 나에게는 자양강장제와 같은 효과보다는 돈의 힘 앞에 무력해지는 경험을 또한번 하게 한 책이다. 그야말로 신분상승을 꿈꾸면서 공정을 이야기하는 가련한 열망을 가진, 싸구려 영혼이고 싶지 않은 나에게는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밀가루와 같은 책이었다. 냉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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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심상치 않다. 한편으론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론 인정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만 노력을 더하면 언제든지 중산층에서 부유층으로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그런 단계.
하지만 책에서는 기존의 부유층들이 새로운 사람들이 부유층으로 진입하는 걸 막는다고 한다. 1%의 부유층, 그리고 99%는 가난할 수 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그 이유에 대해 26가지로 나누어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그 중에 제일 공감가는 대목은 다섯 번째로 나오는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었다.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신분 상승을 보장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한다. 가계 소득을 기준으로 하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경우 소득 수준 상위 20퍼센 트에 진입할 가능성이 5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증가하는 반면, 하위 20퍼센트에 속하는 가구의 자녀 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을 경우 약 절반이 신분 상승에 실패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빈곤층은 신분 상승을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데, 턱없이 높은 대학 등록금은 많은 학생들이 학자금 융자를 받음으로 인해 졸업하자마자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교육 체계는 상류층에 특권을 주는 방향으로 치우쳐 있으며 심지어 대학을 사회단체가 아니라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 대학은 학생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사회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이용하여 쉽게 돈을 벌려고 한단다.
한 대학의 학생 수가 42만명이 넘고 강사 수는 2만 명이 넘으며 비용절감을 위해 시간 강사의 비중이 95퍼센트 이상이라고 하니 그저 미국 대학이라면 무조건 좋아만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대학은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을 모집한 후에 비싼 등록금을 요구하고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 한다고 한다. 결국 대학이 영리 사업체로 전락하는 것이다.
대학 뿐이 아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 '서바이버', '아메리칸 아이돌', 특히 '메간은 백만장자를 원해'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싸구려 영혼들의 가련한 열망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메간은 백만장자를 원해'라는 프로그램에서 백만장자 라이언 젠킨스는 프로그램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를 살해해 쓰레기통에 유기한 살해용의자로 지목되었고, 경찰을 피해 도주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책에서 나오는 부자들만을 위한 세상의 편의는 나같은 서민에게는 상당히 거북하고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느끼게 했다.
한 마디로 희망보다는 절망을 안겨주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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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소외시킨 99%에 해당하는 비주류의 한 사람으로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타이틀에 나도 모르게 비난과 조소로 동참하고 싶어졌다. 비록 먼 나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계급 사회의 이야기 이지만 우리나라 또한 1%을 위해 나라가 존재하는 것처럼 변해가는 것을 99%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고 독자 또한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에 꼭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님을 실감했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레만 작가는 하느님 조차도 우리가 부자 이길 원한다며 그럴듯한 허상으로 간난한 자들을 등쳐먹는 부자들을 향해 비아냥거린다. 심지어는 “부자라는 족속들”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으면서 부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미국의 헌법, 도시 개발 정책 등에 대하여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믿을 수 있나요?’라는 투로 조소 섞인 깐족거림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법원의 법조차도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부자들에게는 관대 하면서 서민들에게는 냉혹하게 적용되어지는 미국사회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작가로써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없을 수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부자들만의 세상은 아니지 아니한가? 서민들도 사람답게 누리며 살아야 하는 세상에 부자들의 꼼수로 인해 가난한자는 더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움을 지나 화가 날 때도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의 열등의식이라 하여도 좋다. 하지만 꼭 신분상승이 아니어도 노력하여 땀 흘린 만큼 부에 가까워 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다. 우리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뿌리 박혀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계급의식으로 부자들 앞에서 기죽고, 손해 보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노력한 만큼 보상 받을 수 있는 세상 이길 간절히 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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