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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숲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예전에는 숲을 보아도 숲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 숲에 들어가보고 싶어 진다. 그리고 하늘이 보이는지, 아니면 어떤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지, 나무 밑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지에 관심이 간다. 그만큼 정신없이 살아오다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건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집 근처에 대숲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는 난리가 나곤했다. 당시에는 그 소리가 무섭기도 하였는데 고향을 떠나고 나서는 간혹 그 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숲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던 것은 아마 먹고사는 문제가 그만큼 절실했던 까닭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 [숲과 상상력]은 우리나라에 있는 25개의 숲에 대해 그 유래와 경치를 적은 산문집이다. 숲은 나무와 나무의 만남의 장소이고, 그런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경쟁속에서도 상생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저자, 그는 전국의 숲을 찾아 길을 나섰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찾아본 숲 중에서 뜻 깊은 곳을 선택하여 책에 소개하고 있다. 마음을 중시하는 불교와 관련된 숲, 신화 혹은 설화가 탄생한 숲,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의 숲 등 그가 소개하고 있는 숲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숲임에도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아마 숲을 보면서도 그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 하나하나를 보고, 그 나무들을 인간의 눈이 아닌 나무와 숲의 눈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마음을 중시하는 불교와 관련된 사찰과 숲에서는 평창 월정사와 부안 내소사의 전나무 숲, 보은 법주사의 오리 숲, 합천 해인사와 영천 은해사의 소나무 숲, 장성 백양사의 비자나무 숲을 소개하고 있다. 한번쯤 가본 사찰도 있지만 숲을 바라보면서도 숲을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모두가 생소하게 다가온다. 법주사의 오리 숲은 일주문에서 법주사에 이르는 오리길에 갈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해서 오리 숲이라고 불린다 한다. 갈참나무와 부도 밭 앞의 잎갈 나무처럼 잎 떨어지는 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지고 난 후에도 진가를 발휘한다고 그는 말한다. 나무는 잎이 달려있어 우리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지만, 잎이 떨어지고 난 나무들을 볼 때의 느낌 또한 새로운 것임을 나무를 기르면서 알게 되었다. 앙상한 가지들을 볼 때면 치열했던 삶의 흔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혹한의 추위를 이기려는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은해사 입구에는 느티나무와 굴참나무 가지가 서로 다가가 기대어 얽힌 연리지가 있다고 한다. 서로에게 서로를 기댈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나무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다.
역사를 간직한 숲은 경주의 계림이나 원주 성황림처럼 신화 혹은 설화와 관련된 숲, 화성의 융건릉이나 종묘처럼 조선시대 왕과 왕비를 만나는 숲, 제주도 정물자연휴양림이나 경주 삼릉의 소나무 숲처럼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숲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500-800년된 비자나무 2800여그루가 자란다는 천연자생수림 군락인 제주도 비자림에 마음이 쏠린다. 사진으로 보는 모습이지만 문득 내가 그 숲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나무는 무어가 힘이든 지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있다. 그럼에도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은해사 입구의 연리지를 보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기대어 살 수도 없지만, 혹 그럼 기댐을 받아줄 수 있는 마음마저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함양 상림은 최치원이 위천의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숲이라고 한다. 숲이 조성된 지 1000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하니, 숲을 조성한 사람이나 그 숲을 지켜온 사람들 모두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져 어느덧 자연문화유산이 된 숲으로는 장성의 편백 숲, 울산 태화강의 대나무 숲, 화순의 숲정이, 남원의 서어나무 숲, 덕유산 자연휴양림 내의 독일가문비 숲 등을 소개하고 있다. 모두가 조성한 사람들의 지독한 나무사랑으로 인해 만들어진 숲들이다. 특히 담양 죽녹원의 대나무 숲이 산에서 만나는 대숲이라면 태화강 대나무 숲은 강가에서 만나는 대숲이다. 일제시대 홍수로 논밭이 사라지자 일본인들이 심기 시작했다는 태화강 대숲은 십리길에 펼쳐져 있다고 한다. 시에서 주택단지로 개발하려는 것을 시민들의 힘으로 막아내고 지켜왔다는 대나무 숲을 보면서 어릴 적 집 뒤에 있었던 대숲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끔 집 뒤의 산에 오르면 우거진 숲을 보게 된다. 지금은 잎들이 모두 떨어져 길을 알 수 없게 덮고 있지만 소나무나 전나무의 잎들은 푸르기만 하다. 힘이 다했는지 넘어진 나무들이 곳곳에 보이기도 하지만 저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어떤 나무는 똑바로, 또 어떤 나무는 주위의 나무를 피해 굽어진 채로 서있지만 힘든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색하는 것과 내색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단순히 성격이 아니라 삶에 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나무는 어떤 상황에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삶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원망은 사라진다.’(86쪽) 숲을 보면서, 숲 속의 나무를 보면서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써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함을 아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잎들이 다시 돋아나고 숲 속에 햇살이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면 나무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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