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평화는 왜 오지 않을까? (강안 글, 버닝피치 그림)>을 읽었다.
미국 테네시의 낙스빌에서 살면서 체로키 인디언 마을인 ‘채타누가’를 다니던 때, 느낀 이야기를 강안이 썼다.
멕시코에서 밀입국한 프레드, 보통 경제적 궁핍과 더 나은 교육 혜택을 바라며 밀입국한다. 소아마비 형과 함께 땅굴을 지났고, 밀입국하다가 죽은 아이를 보았다. 밀입국해서 살다가 엄마는 동생을 낳은 뒤 집을 나갔고, 아버지의 밀입국과 추방, 다시 밀입국을 겪으며, 가장 아닌 가장 노릇을 하고, 아이 아닌 아이 노릇을 한다.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보트피플이 되어 미국에 온 베트남 왕족 후손 위빈, 문화의 충돌과 아버지의 술을 이겨내며 밴드를 한다.
2000년 전의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과 2000년 동안 살았다가 쫓겨난 팔레스타인 후손 모하메드, 가난 때문에 매를 맞고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식구들의 마음, 배고픔에 병든 닭을 먹고 나서 아무 탈이 없어 다행이라며 위로하는 마음,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 건너온 3대째 김정민, 왕따 중학생 선우, 필리핀에서 온 마리앤과 경은,
종교든 정치든, 우리 일상생활에서든 갈등은 무섭다. 그 갈등의 피해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등에 진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아이들은 뼈에 사무친다. 그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그래서 제목이 ‘아이들의 평화는 왜 오지 않을까?’일까? 책을 읽으며 서글펐고, 책을 덮고 오래 서글펐다. 힘 있고 부자인 사람들에게 그 해결책을 얻는 건 어려운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