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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 평전』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금강경이나 법화경 등 주요경전이 4C 무렵 인도를 떠나 천신만고 끝에 중국의 장안에 안착한 푸른 눈의 승려 <구마라집>이 주도한 역경사업의 결과물임을 세세히 알게 하는 책이다. 이것이 1600년 이상 지난 지금에도 한글판으로 우리에게 유통되고 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일전 서면 영광도서 불교코너를 돌아보는데 두껍게 3권으로 구성된 『십송률』이 보였다. 저자는 역시 <구마라집>. 지금에도 우리에게 말씀하는 듯하다.
<구마라집>의 인간사는 어쩌면 기구하다. 그의 부친과 유사한 전철을 밟는다. 불교의 승려가 되었으나 타의에 의해 혼인생활을 하게 되는, 파계승이 될 수 밖에 없다. 구자국을 점령한 <여광>의 계략으로 건강한 남녀사이의 일이 벌어지게 된다. 사족이지만 불만이다. 영험하고 오묘하기까지 한 태생과 오직 불교에 매진할 아주 우세한 여건과 천재적인 학습능력으로 고양된 <구마라집>이 비록 젊다고는 하나, 강제했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도 不淨觀은 있었을 터. 일반 대중처럼 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까? 또한 말미 후진 <요흥>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서는 자진해서 젊은 여성을 찾았다는 점에서도 아쉽다. 얼마 전 해인사 주지가 비구니와 속옷차림으로 부적절한 장소에서 노출된 일로 주지 직을 물러났다는 보도도 있었듯 속세의 유혹은 대단하다고만 알고 있을까.
인도로부터 건너온 불경을 번역한 두 거물은 <구마라집>과 <현장>이다. 두 분의 역할이 없었다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파된 불교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다. 현재 우리에게 유통되고 있는 『유마경』이 <구마라집>본과 <현장>본으로 각각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구마라집(344~413)>은 산스크리트와 한문 두 언어에 정통했고, <승조>를 비롯한 8명의 유능한 제자들의 조력으로 원문을 그대로 유지하는 직역보다 이해하기 쉬운 의역이되 일반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통속적인 문장이며 간결하여 음송하기 쉬운 문장이면서 원문의 어순을 살리고 원문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구현하였다. <현장(602~664)>은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지향하며 문장에 의심 나는 곳이 있으면 서역에서 가져온 여러 판본을 대조하면서 정확한 뜻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번역한 佛典의 수는 <현장>이 <구마라집>보다 많았지만, 뛰어난 제자는 <구마라집>이 훨씬 많았다. 산스크리트와 한문에 모두 능숙한 <구마라집>은 먼저 정확하게 옮긴 후 매끄럽게 했고, 매끄럽게 한 후에 고상하게 했다고 한다. 천부적인 재능이 없었다면 모방하는데 그쳤을 것인 만큼 오늘날 우리도 그의 글을 읽는다.
格義佛敎를 타파한 <구마라집>이야말로 당시 불교의 부흥에 엄청난 원동력이 되었다. 유교나 도교 등 중국 고유사상에서 비슷한 관념이나 용어를 차용하여 인도 불교철학을 이해하는 데엔 일부 수단은 되었으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어 般若學의 진의도달이 곤란, <구마라집>이후엔 반야학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소승불교에서 출발한 <구마라집>이 대승불교로 방향전환하면서 중국이나 우리나라까지 현재에도 대승불교로 자리매김. 지금까지 읽어온 『금강경』이 대승임을 밝히는 요체로 인용된다. 수보리가 말한 것처럼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삼천대천세계인 것이다" 즉, 인연에서 생겨나는 일체 사물은 무자성, 진정한 실유가 아니고 그저 가명의 유라고 한다. 이 책은 (p156)”대승 불교의 흥기 후 이전의 원시 불교와 부파 불교를 낮추어 부른 것이 이른 바 소송 불교라는 명칭이다”, (p157)”부처에 대한 관점에서 소승은 원시 불교의 전통을 간직하고 부처를 대지대각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불법을 펼치는 전교자로 여긴다. 반면에 대승은 부처를 신격화하고 우상화하여 부처의 신통은 크고 넓어서 그 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여긴다 소승과 대승에 관해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구마라집>의 제자 중 <승조>는 유가-도가-불가를 섭렵하는 삼단계 학문이 그 무렵 識者層의 대표케이스가 되었다. 불교의 형이상적 특성으로 "정신이 그윽함에 깃드는 방법을 기약"하는 것이 노자와 장자보다 우월한 불교는 점점 중국의 지식인을 정복했다고 하며, <승조>는 『유마경』을 읽고 “비로소 귀의할 곳을 알았다”고 하여 <구마라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유마경』을 조만간 봐야 할 당위성이다.
몇 가지 새길만한 글, -만일 복덕을 멀리하는 사람은 축생과 같아서 세 가지 일을 행하게 된다. 세 가지 일이란 색에 대한 욕심, 먹고 마시는 일, 싸움을 벌이는 일 등이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잘 달리는 말로 농사를 짓는다. -부지런히 정진해서 보리의 도를 수행하더라도 먼저 불성이 없다면 성불할 수 없을 것. -하늘은 큰 임무를 맡을 사람에게는 반드시 먼저 그의 의지를 고통에 빠뜨리고 그 몸을 수고롭게 하고 그 몸을 굶주리게 할 것이다. -옛사람의 말처럼 재화가 더해질수록 정신이 쇠약해지고, 이름이 날수록 몸이 축나는구나.
고대 중국에서 불교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역사를 보는 도서이다. 금강경을 다시 마주하고 싶고, 유마경을 읽은 후 <승조>가 가졌던 마음의 지극히 일부라도 품을 수 있길 바란다면 망상이겠지? 모두 700p 분량에 본문은 650p쯤으로 두꺼운 분량이나 열차는 충분히 스피드 있고 차창 밖 풍경도 수려한 편. 불교를 가까이 하는 분이라면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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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구마라집을 평가햇다는게 약간 반신반의하게됨 훌륭한 불교승은 철저히 파괴하는 중국의 문명이 정말 한숨이 나왓지만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고 결국 한국과 일본까지 불교를 전파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구마라집의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하엿다. 산스크리스트어 뿐만아니라 불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한자의 번역은 심오하고 그 정수를 알려주었다. 물론 불교 그 자체는 그 난해한 철학적 깊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정작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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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 평전 "연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서 피는 것과 같다. 오직 연꽃만 취하고 더러운 진흙은 취하지 말라"
구마라집은 일곱살에 출가하여 열세살에 부처님의 가사를 입고 대중 설법을 했다. 구족계를 받기도 전에 서역 곳곳에서 불경을 강(講)하고 외도들과 논쟁을 벌여 그들을 설득시켰다.
그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단 여덟 글자로 공의 핵심을 표현하며 동아시아에 대승 공 사상을 전파한 위대한 사상가이다. 구마라집을 얻기 위해서 두 번이나 전쟁을 치를 만큼 홍법의 뜻을 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