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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한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41페이지)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까지 해서 몇 년을 살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도적으로 숨기지 않았으나 말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들이 많다. 몇십 년을 살아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지 않는가.
법률회사의 보조원으로 일했던 오카다 도오루는 현재 실직 상태다. 정체모를 여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으며 그의 삶이 꼬인다. 아내 구미코와 함께 기르던 고양이가 사라진지 며칠 되었고, 구미코는 가노 마르타라는 여자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골목으로 고양이를 찾으러 갔다가 열여섯 살의 가사하라 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웃집 소녀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아내가 사라지고 그의 삶은 이루 말할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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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현재의 사람으로부터 과거 제2차 세계대전의 장면들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폭력의 역사다. 오카다 도오루의 주변에 오게 된 사람은 그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있다.
오카다 도오루의 집 근처 나무에서 마치 태엽을 감는 듯 끼이이익 하는 새소리를 태엽 감는 새라 불렀다. 태엽 감는 새는 오카다 도오루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들렸다. 태엽 감는 새가 나타나지 않는 순간부터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구미코는 남자가 생겼다며 이혼해 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구미코에게 남자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던 도오루는 오래전 구미코가 임신했다가 홋카이도로 출장 간 사이에 낙태수술한 뒤부터 뭔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도오루가 싫어했던 구미코의 오빠 와타야 노보루가 어떻게든 관계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도오루가 만난 가노 마르타와 그녀의 여동생 가노 크레타 뿐만 아니라 구미코의 친척 혼다 씨 때문에 찾아온 마미야 중위 또한 자신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오카다 도오루는 다른 사람의 역사를 듣는 동시에 그들에게 어떤 치료를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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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이름이 제대로 나온 인물은 오카다 도오루와 구미코, 구미코의 오빠 와타야 노보루. 가사하라 메이, 혼다 씨, 그리고 마미야 중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별칭으로 불리게 된다. 익명의 사람이 되어 오카다 도오루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멍에서 멍으로, 우물에서 우물로. 만주의 산징이라는 도시로.
오카다 도오루의 집 골목에 위치한 목매다는 집 또한 폭력의 역사를 지녔다. 깊은 우물이 있지만 마른 우물. 우물 속에 갇힌 자. 구미코가 남자가 생겨 떠났다는 편지를 받은 후 우물로 들어가 침잠했던 도오루. 그에게 우물은 새로운 변환점이다. 과거과 현재를 잇는. 구미코가 사라진 이유를, 구미코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방황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주로 비춰주었던 그의 소설들과 달리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노몬한 전투에서 혹은 수용소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겨 죽인 소련군 보리스, 동물원에서 야구 유니폼을 입은 중국인들을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수의사, 그리고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는 수송선에 탔던 사람들을 공격했던 미국의 잠수함 등 또한 전쟁이 겪는 폭력의 역사다. 가슴속 응어리들을 풀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와 태엽 감는 새는 이 소설의 중요한 존재다. 고양이와 태엽 감는 새가 사라지며 구미코도 사라졌고, 구미코가 가진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고양이가 돌아오며 이 소설은 또다른 전환점에 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꽤 오랜만에 읽었는데 역시 천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순식간에 읽었다. 왜 하루키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25 년 전에 출간된 책임에도 하루키의 소설이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지 새삼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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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받아들고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열어본 기억이 새로울만큼 반가운 작품이다. 근작(近作)인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며 내내 먼저 읽어보았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남아있었기에 한권에 묶여 새롭게 출간되자 냉큼 구입했다. 구덩이와 메마른 우물, 아내의 사라짐, 난징학살과 노몬한 전투와 같은 두 작품 여러 소재의 상징적 유사성을 살펴보고자하는 욕구 때문이랄 수 있다.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있음에도 몽환적인 세계를 넘나들며 삶의 내면 저 밑바닥에 침잠해있는 어떤 진실을 모색케하는 솜씨는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는 듯하다. 매일 아침 나무 위에서 끼이이익 하며 이 세상의 태엽을 감는 새, 출구 없는 골목과 방치되어 퇴락한 빈 집 마당의 날지 못하는 새의 조상(彫像), 깊디 깊은 물 없는 우물이 자신의 이미지 없음을 중얼 거리는 실직한 서른 살 남자의 왠지모를 무력(無力)과 무념(無念), 삶의 시간이 진행되지 못하고 멈춰버린 듯한 낯선 세계와 겹치면서 은폐되어 있는 길고 긴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아내 ‘구미코’와 같이 기르던 그녀의 오빠 이름을 붙인 사라진 고양이 와타야 노보루를 찾아 나서는 ‘오카다 도오루’ , 그리곤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의 열여섯 소녀 가사하라 메이, 물의 흐름을 말하며 ‘몸의 조성’이라는 기묘한 예언을 하는 가노 마르타, 크레타 자매, 인간을 밟고 서야 정상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 속에 성장한 에고이스트 와타야 노보루,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인의 관능적 전화, 중일 전쟁과 외몽골 접경 노몬한 전투의 생존자인 마미야 중위에 이르기까지 「도둑 까치」라는 표제의 1부는 거대한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다채로운 인물들을 통해 그만큼의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을 예견케 한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에 길들면, 끝내는 자신이 뭘 하는지 그것조차 모르게 된다.”는 오카다의 자조(自照)는 서른 살이고, 걸음을 멈췄으며, 자기 이미지도 잃어버린 남자가 찾아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려는 여정일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귀 밑에 시원한 향취의 낯선 향수 내음을 발산하는 아내의 원피스 지퍼를 올려주었던 날 아내는 직장에서 돌아오지 않고 이내 사라져버리고, 결혼 후 어떤 대화도 없던 처남으로부터 이혼의 권유를 받기까지 한다. 남자는 아내의 가출 이유를 알지 못한다. 2부 「예언 하는 새」는 그래서 텅 빈껍데기 같은 인생, 죽은 것처럼 멈춘 삶, 정지되어 버린 듯한 삶의 흐름을 재개할 수 있는, 살아가야 할 진정의 의미를 찾는 행로가 된다. “인생이라는 행위 속에 빛이 비추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뿐입니다. 어쩌면 불과 10여초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이 지나버리고 나면, 그리고 그 빛이 보여주는 계시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인생의 조언은 남자를 메마른 우물로 향하게 한다.
나무에 줄사다리를 풀리지 않게 묶고 어두운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간다. 반쯤 남은 우물 뚜껑 밖으로 비치는 반달의 형태를 올려보며. 도오루는 진정 찰라의 빛 속에서 삶의 이미지를 발견 할 수 있을까? 3부 「새잡이 사내」에 이르면 전희(前戲)처럼 가사하라 메이의 발칙한 행위가 소설적 긴장으로 이끈다. 비로소 로시니의 오페라 《도둑까치》와의 조우는 긴박한 진실과 의미의 굶주림으로 인도한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 ‘인생 소설’로 남겨질지도 모르겠다. “절대 늙지 않는, 결코 퇴색하지 않는 기억”이 되어줄 작품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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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년쯤 된 듯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었던 적이. 그 이후로 하루키는 세계적인 스타작가가 되었고 내는 책마다 밀리언 셀러인 것으로 알고있다. 개인적으로는 '해변의 카프카'를 가장 좋아하지만, 해외에서는 거의 압도적으로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선호한다. 아마 - 내가 알기론 하루키 문학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 일본의 과거사에대한 언급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집중되어 읽혀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3권 낱권 양장으로 케이스에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1000쪽이나 되는 거대한(?) 양장이라서 의외였다. 마치 긴 고전 소설을 양장으로 읽는듯한 느낌이랄까. 사실 이 책도 곧 고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 보다 10년전에 쓰여진 '노르웨이의 숲'은 이미 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있으니.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전 버전은 윤성원 번역이였는데 초기 하루키 번역에서 꽤 인기가 많았던 김난주씨가 이번에 다시 번역했다. 초기작의 하루키의 쿨함을 제대로 전달했던(?) 그때를 기억하며 읽어보았는데, 사실 하루키는 그 이후에 많이 달라졌고, 아마, 역자 역시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루키 전문가는 아니지만, 태엽감는새부터 아마 하루키 문학의 중기쯤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물론, 하루키는 - 마치 우디앨런이 그랬듯 - 체력이 될때까지 계속 쓸 것 같으니 중기의 시점도 바꿔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하루키 스타일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고 다시 보아도 이전의 흡입력은 여전하다. 이런 양장스타일의 재발행은 환영한다. '해변의 카프카'가 다시 나온다면, 희망사항이지만, 바로 구매할듯한데. |
![]() (빡쎈 벽돌책... 들고 사진 찍기도 힘들다.)
(이 리뷰는 3편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한 권 읽는데 일년이 넘게 걸렸고, 리뷰는 몇 달 만에 써서.. 하핫..)
가장 두꺼운 부분이었던 3부 새 잡이 사내.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 대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태엽 감는 새에 대한 의미도 알 듯 말 듯.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해서 다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뭔가 적나라하게 일본 입장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얼룩만 남은, 고통과 상처만 남은 그 전쟁을 직접 들려준다.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어려웠다. 우리에게도 뼈 아픈 기억이라, 우리 나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피해자가 되어 가해자로서의 일본만을 생각했으니.. 전쟁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않는다.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전쟁은 분명 죄악시 되는 행위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동물원 이야기는 뭔가 이질적이다 싶었는데, 묘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아들이 말을 못하는 이유가 뭔가 납득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지만, 하루키만의 묘한 매력을 지닌 인물인 듯 하다.
도오루는 구미코에게 집착 아닌 집착한다.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끝이었고, 심지어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 더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결국 문제는 구미코의 오빠. 그랬기에 어떠한 처갓집과의 대화는 아무런 소득이 없을 수 밖에.
- 나와 장인의 대화는 한없는 평행선을 그렸고,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게 아니다. 우리가 도착한 장소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는 뜻이다. (596)
얼마나 허무할까. 아무것도 자기에게 남은 것이 없는 허무함. 그저 자신이 가진 게 없고, 신분상의 차이가 아닌 집안 내부에서 있는 문제로 구미코가 위험에 처한 느낌이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으리라. 사랑일까? 생각보다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느낌도 아니다.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 만약 내게 어떤 강점이 있다면, 그건 이제 더는 잃을 것이 없다는 점이리라, 아마도. (616)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기에, 남은 것이 없기에 도오루는 더더욱 매달릴 수 있었으리라.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도오루는 말 그대로 자신을 온전히 내던져서 구미코를 되찾으려고 한다. 정말 기묘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어렵다.
다른 여자들은 거의 나오지 않고, 가사하라 메이만 종종 등장. 그나마도 도오루에 의해 구원(?) 받은 느낌. 자기도 모르게 도오루의 힘을 받아서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 그 둘은 그게 다이다. 둘 사이에 뭔가(?) 없어서 더 좋았다. 과하게 성적으로 끌고 가는 느낌의 하루키 작품들이지만 이 둘은 담백하다. 그 느낌이 좋아서 편하게 읽었다.
- 사실은 지금 내가 여기서 이렇게 묵묵히 가발을 만들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때 아저씨의 멍에 키스를 했기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일도 있어요. (중략) 나는 여기서 내가 있을 곳을 겨우 찾을 수 있었어요. (774)
도오루 얼굴의 멍이 기묘함의 중심. 동물원 장의 얼굴 멍과 같은 멍. 그리고 뭔가 치유하는 능력? 사람을 돕는 능력(?)이 있다. 그 힘으로 돈을 상당히 벌고, 구미코를 찾기 위해 여러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도오루의 멍과 우물은 이 책 전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물 안에서 많은 일이 일어난다. 과거를 드나드는 통로이기도 하며, 도오루에게 필요한 순간들이 찾아오는 길목이 되기도 한다. 멍도 우물에서 갑자기 생긴 능력. 그 능력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가 가능해졌기에 의미심장하다. 그렇기에 우물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걸 눈치 챈 노보루는 끝까지 방해한다. 결국 모든 게 끝나고, 겨우 구미코와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우물을 통해 구미코 아닌 구미코를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노보루와 결판을 맺는..
하루키 작품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종종 자연스럽게 읽다가도 읭? 하고 나를 돌아본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나, 스토리 라인은 언제나 좋아서 잘 읽다가도 종종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보면, 아직 소설을 소설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구나 싶다. 어쨌든, 흥미롭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읽어 보고 싶기도 하다.
가사하라 메이는 자신의 길을 찾아 잘 산다. 그게 부러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은 아니지만, 찾는 과정이니까) 죽은 남자 친구에 대한 생각도 잘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모두 도오루의 도움이다.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걸 우리가 귀인을 만난 것이라 하지 않겠는가
- 나는 그저, 이 일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려고 할 뿐입니다. 가발을 만들 때는 가발을 만드는 일만 생각해요.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정말 온몸에 축축하게 땀이 밸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751)
소설 외 이야기로, 자신의 길을 찾은, 자신과 만날 수 있게 된 사람은 그 시간에 충실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아주 진지하고 아주 충실히, 아주 성실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가사하라 메이. 그런 그녀가 좀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면서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노보루를 도와주는 (이라고 하기엔 더러운 일을 대신하는) 우시카와는 힘든 인생을 살아서 그런지, 여러가지 삶에 대한 지혜를 얻은 듯 하다.
- 저는 사상 자체는 믿을 수 있어도, 그 사상과 대의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과 조직은 이미 믿을 수 없었습니다. (911)
그는 외형으로도, 성격으로도, 행동으로도 불결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인간 부류이다. 하지만 그가 노보루를 떠난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그는 귀신 같은 레이더로 친하게 지내선 안 될 인간으로 봤고, 노보루를 떠난 뒤 우연히 마주친 도오루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준다. 사상 자체를 믿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과 조직은 믿을 수 없다고. 이는 종교에도 해당될 것이다.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이었다.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갖고 사는 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걸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따라갈 건 전혀 아니다.
마지막 리뷰를 쓰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하나 하나 짚을 만한 요소들이 너무 많고, 발제를 한다면 무수한 질문이 나올 것 같은 책인데. 잘 읽고 잘 고민해보고, 잘 알아본다면 깊은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장시간에 걸쳐서 읽고, 너무 시간이 지난 뒤에 독후감을 쓰고 있는 중이라 이야기가 겉 핥기는커녕 책 표지만 구경한 듯하여 아쉽다. 추후 다시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 보고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책의 진가는 책을 온전히 취할 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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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야지 했던게 벌써 2년 전이다. 어두운 곳에 머물던 감상 이라는 것들이 여기저기 부유하다 분해된 듯한 기분이 들 때 쯤 숙제처럼 생각하지 않기로 타협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다시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3월말 제주도를 찾아 일부러 책을 잡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읽혀서 놀랐다. 놀랐다고 말하는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하고 돌아와 느긋하게 책을 읽을 사정이 아님에도 어쨌든 패턴이 돌아왔다는 점은 긍정적인 것 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날 이상이 걸렸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표하기 한참 전에 출판된 내용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지영씨가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맨발로 글목을 돌다'를 읽었을 때, 소설이라는 장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어색했고, 문학적 표현이나 다양한 수사에 대한 계몽의 취지가 느껴져 지극히 주관적으로 불편하였던 기억이 있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하루키가 은유하는 내용이나 소재로 활용하는 문학적 수사들이 작가 스스로 무언가 세속적 지향(그 스스로의 문학적 성과)을 드러내는 듯하다고 느껴져 어색함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작품에서도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이야기 흐름은 복선과 복선의 해제(또는 유인)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캐릭터 들로 하여금 어차피 정해져 있는대로의 프로그래밍 된 삶을 전제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숙명적 당위를 전복시키도록 하는 메세지를 흩뿌려 역설적 서사구조를 복잡하게 얽혀 놓았다. 인간의 역사와 같이하는 "진실"에 대한 접근과 증명, 진실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행태주의의 배격, 실증적 접근과 그렇지 않은 추론과 당위라는 것이 혼재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연계되도록 구성하여, 우리는 무엇을 신뢰하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는 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자신이 신뢰하는 선과 정의를 위해 직접 투쟁하는 오카다와 이를 응원하는 가시하라 메이의 관계는 어쩌면 불확신성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도, 자연론적 인과관계에 항거하거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독립성과 개별성이 어지간히도 바라는 "정의" 혹은 "옳음"을 지향하는 모순적이면서도 불순한 내면을 표창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카다가 행한 진실에 닿는 일정한 행위는 그 영향으로서 그 스스로 미처 이행하지 못한 영역의 과업까지 마무리한다. 마치 온 인류가 그것을 바라는 기도를 해 누군가 염원에 응답하는 것 같다. 심지어 오카다가 해방시키고자 했던 쿠미코는 그 스스로 반사회적 행위를 인식하면서고 과업의 완결을 위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과오에 대한 반성, 제국주의 체제의 근간으로서 배타적 민족주의가 가져온 폐해로서 비인간화에 대한 우려를 은유로 활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예루살램 문학상을 수상한 하루키가 "만약 여기에 견고하고 높은 장벽과 그 장벽에 부딪혀 깨진 계란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그 계란 편에 설 것입니다." , "우리가 승리와 비슷한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 희망은 자신과 타인의 영혼이 절대 존엄하며 어떤 것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그 영혼과 함께하는 따뜻함으로부터 올 것입니다."라고 당돌하게 이야기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이야기 전부를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과 갈등 구도로 대치시킬수 없다. 인간사회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본질적인 선과 일관된 선의 가능성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순간과 상황에서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개념도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주의적인 접근을 거부하고 당위적인 선과 진실에 가 닿으려는 의지와 노력이 "인간"에게 숙명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가만히 않아서 그것을 취할 수 없다는 경고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이해하여야 한다.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려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빼놓지 않는다. '희망'이라는 것 처럼 말랑말랑하고, 희뿌연 느낌의 어휘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싶지는 않지만, 하루키가 얘기하고 싶어한 두 글자를 지워내기는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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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조금 호불호가 갈려서 상실의 시대는 불호였고, 1q84는 반반이었으며, 최근작인 기사단장 죽이기는 호였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경우는 최신작이 아니라 예전의 작품이 새로운 개정판으로 나온 거였는데, 3권으로 살까 한권짜리로 살까 고민하다 합본으로샀는데, 생각보다 읽기에 불편함이 없어서 만족스러웠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찾기위해 만나게 된 신비로운 여자. 그리고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내. 그리고 얼굴에 갑자기 생겨난 멍자국까지. 신비로운 일들의 연속이다.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언제나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어서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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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의 책중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다른 출판사의 버전으로 이미 읽었지만 다시 구매합니다.. 왜냐!!! 무라카미하루키가 직접 교정을 봤고... 번역이 김난주이기 때문입니다... 김난주번역가님의 번역 완전 좋아합니다... 왠지 전버전보다 더 잘 읽히는 듯합니다.... 하루키 좋아하시는 분들 강추입니다 1권의 무지무지하게 잔인했던 장면이 생각나긴 하지만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좀 긴장되지만 그래도 잼있는 책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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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구미코가 출근한 어느 오후 이름 모를 여자로부터 받은 낯선 전화,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의 실종. 얼마 전 일을 그만둔 오카다는 그 낯선 전화와 더 이상 울지 않는 태엽 감는 새, 그리고 집을 나간 고양이를 통해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한 단서를 구한다. 오카다는 아내를 찾아 나선 여정길에 만난 신비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어지며 점점 더 기묘한 세계로 한 걸음 다가간다. 언제나 하루키는 인간의 존엄과 사랑, 탐미적 의미가 아닌 본질적 의미로서의 성에 대해 그리고 이어지는 상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독 째인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다시 접하며 과연 하루키가 말하는 것이 상실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상실이란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또는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진다는 의미의 단어다. 그러나 하루키의 수많은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그것이 과연 상실이 맞을까 하는 깊은 의문이 든다. 마치 그것은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상실되거나 소실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그리움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현실 세계와 우물로 이어진 비현실 세계, 그리고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 속 무대인 과거(전쟁이 한참이던 신징), 세 가지의 세계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서 ‘태엽 감는 새’는 각 세계 간의 연결 고리이며 그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모든 이야기들이 수수께끼의 꼬리를 물고 캐릭터와 사건이 작은 연결 고리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오카다와 손님들은 얼굴의 멍으로 연결되고 다시 오카다의 얼굴 멍자국은 시나몬의 할아버지와 이어져 있다. 시나몬의 할아버지와 마미야 중위는 신징이라는 도시로 연결된다. 마미야 중위와 점쟁이 혼다씨는 만주와 몽골 국경에서 행한 특수 임무로 이어지고, 오카다와 구미코는 혼다씨를 와타야 집안에서 소개받았다. 그리고 오카다와 마미야 중위는 우물로 이어진다. 마미야 중위의 우물은 몽골에 있고, 오카다의 우물은 저택의 마당에 있다. 과거에 이곳에는 중국 파견군의 지휘관이 살았다. 모든 것은 고리처럼 이어져 있고, 그 고리의 중심에는 태평양전쟁 전의 만주가 있고, 중국 대륙이 있고, 1939년의 노몬한 전투가 있다. (p.825 참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라진 아내 구미코를 찾는 오카다의 여정길에 마주한 역사가 행한 가장 잔악한 소비였던 전쟁의 오류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를,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모두가 실타래처럼 이어진 관계와 관계에서 오는 상실을 그리고 사랑과 본질적 의미의 성에 대해 문학이란 매체를 통해 깊이 다루고 있다. 1300페이지가 넘는 이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를 좀 더 짧게 접하고 싶다면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빵가게 재습격』에 나오는 단편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을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다. 다만 일본 소설에 알러지가 있거나 하루키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하루키 문학이 정점에 달하기 위한 시작점이었던 이 소설을 반드시 읽어보기 바란다. 하루키 문학의 갈래를 보았을 때 하루키는 『양을 좇는 모험』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조금씩 창조하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거쳐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집필 이후로 완전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2000년대 이후 작품인 『해변의 카프카』,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장편 소설들이 모두 『태엽 감는 새 연대기』와 세계관을 조금씩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 달과 우물, 양 또는 양 사나이,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거나 그 사이 얼굴 없는 남자를 만나는 등의 일들은 오직 하루키 문학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하루키 식 오컬트와 초현실주의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무려 하루키의 손길로 직접 다듬은 이 개정본은 번역 또한 역자 김난주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완전판이니 하루키스트들은 물론 팬인 아닌 분들께도 권하는 현시대 최고의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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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에 빠지고 부터 끊임 없는 하루키 소설.. 이번에 새롭게 개정되어 나왔다고 해서 다시 구매해서 읽어보았지만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어요 다른 책들도 이런식으로 나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큰거 한권짜리 가지고 다니고 읽는기분도 나고 재미도 있더라구요 표지도 맘에 들고 오히려 한권 분량이 빠졌다고 하지만 전혀 그런걸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잘 읽었어요!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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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 연대기>가 반갑습니다. 합본으로 만나는 새 표지로 시작해서 처음 만나는 것 같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읽게 됩니다. 갖고 있는 책이지만 어찌 안 살 수가 있겠어요. 게다가 역자가 감난주님라니!!! 기쁜 마음으로 바로 구매했습니다. 민음사 Yes24 감사합니다 배송도 빨랐고 한권으로 되어있어서 갖고다니기 편했습니다 물론 무겁긴 합니다 매우 만족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