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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L, 한국 교회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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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도 불편한 책을 읽었다. 근현대 한국사와 맞물린 한국 교회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그 아픔의 근간은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아픔과 부끄러움의 상반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기독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격한 감정을 비추며 야유나 조롱의 방식으로 다루었다면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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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도 불편한 책을 읽었다. 근현대 한국사와 맞물린 한국 교회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그 아픔의 근간은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아픔과 부끄러움의 상반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기독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격한 감정을 비추며 야유나 조롱의 방식으로 다루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저자가 타 종교의 신자나 무종교주의자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신학자이면서 목사였다. 나는 준엄한 심판대에 선 자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언젠가부터 한국 교회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믿건, 믿지 않건간에 말이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러이러한 행동과 사고를 할 것이라는 최소한도의 기대치가 있었다. 게다가 나라의 대통령이 두 분이나 교회 장로였다. 그러나 좀 다르려나 하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위정자 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 크리스천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나,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는 교인들의 삶의 양식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회의 병폐는 교회에서도 볼 수 있었고, 세상의 마인드와 가치관은 교회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다.

 

이런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김진호가 시도했다. 김진호는 개신교가 근대 한국 사회의 형성에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며, 개신교를 묻는 일은 한국 사회를 묻는 일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며 형성되었는지, 그 얽힘의 과정과 방식에 대한 해석을 김진호는 찬찬히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한국 개신교의 지난 역사를, 2부는 작금의 상황을, 3부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다. 

 

김진호는 한국 개신교의 특징으로 '배타성과 성공지상주의, 극우반공과 친미성'을 들고 있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개신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추적하면 금세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는 90%가 미국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졌다는 북장로회 소속이었다. 선교사들은 수많은 교육기관을 세우고 운영했으며,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교리를 신자들에게 확고히 주입시켰다. 한편 선교사들이 머무는 교회는 한국인들이 일본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피신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즉 교회가 일종의 치외법권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1907년에 있었던 평양의 대부흥운동은 조선 기독교의 원체험이 되었고, 배타주의적 신앙관을 제도화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선교사들에게 제공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신사참배로 인해 좌절감과 수치심을 맛보야 했던 기독교인에게 공산주의는 아픔과 증오를 떠넘길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 되었다. 이북에서 월남한 목사들과 신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영락교회는 극우반공의 산실 역할을 하며 한국 교회를 이끌었다. 그러나 불안전한 정국으로 인한 혼란에 채 적응도 못한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이 다가왔고, 전쟁의 상처는 너무도 깊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화 되었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심적 고통 못지않게 먹지 못하는 고통도 컸다. 교회는 이런 빈민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사람들은 신앙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경제 개발이 되면서 교회는 도시 빈민을 교회 안으로 깊숙이 들이게 된다. 1970년대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이들을 수용하면서 교세를 확장하게 되고, 미국의 대형 교회인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의 번영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당시 대형교회와 한국 정세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출현은 한국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형 교회에도 나타났다. 그 후 오랜 시간을 대형 교회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목사 1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었고, 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시민들이 교회로 대거 유입됐음에도 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대형 교회는 시대의 변화를 이끌거나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교인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데만 신경을 썼다. 해외단기 선교 프로그램의 도입과 미국에서 들여온 번영신학의 정착화, 나아가 자신들의 힘을 정치세력화하는 길에만 관심을 둔채 안주하는데 급급한 실정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인한 물신주의의 팽배 및 전지구적인 자연 재앙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도 감당못할 두려움 속에 빠져 다시 신을 찾고 있다. 이제 신의 귀환은 필수적이고도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는 부자의 신으로 전도돼 버렸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교회는 웰빙교회로 전환되어 웰빙신앙문화까지도 형성하고 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貧者는 교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게 돼 버렸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비슷한 궤도를 달리고 있고, 존립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받는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던 것은 한국 교회가 받는 지탄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추락한 교회의 위상 때문만도 아니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눈을 감고 외면하는 듯한 한국 교회의 둔감함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자리의 의미를 성찰과 반성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고 속히 탈피해야만 하는 자리로 한국 교회가 받아들이는 점 때문이었다. 번영신학이란 이름의 외피를 입은 성공지상주의와, 소비사회에서의 여유를 호혜 형식으로 지출하는 작금의 기독교적 삶이 조만간 어떤 모양의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나는 염려스럽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 미래는 없는가? 김진호는 현재 자신이 행하고 있는 교회적 양식과 삶의 방식을 통해 대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작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개별적 만남과 교제의 장을 통해 진짜 기독교적 삶을 몸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회개라는 진지한 자기 반성이 아직 한국 교회내에 없었기 때문에 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나약함, 그리고 지독하리만큼 뿌리 깊은 이기적 속성을 도려내는 교회적 방법인 회개, 즉 신앙안에서의 개혁적 태도야말로 출발점이자 궁극적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자의 아픔이 세상과 화해하며 소통할 수 있는 다리임을 깨닫게 한, 보이지 않는 신의 선물이었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신 없는 사회』 출간기념 리뷰대회 1등

 

d*********2 2012.05.30. 신고 공감 10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 개신교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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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는 기독교를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들의 세습, 분쟁, 교회건축 뿐 아니라 부도덕한 목회자들에 대한 기사가 언론을 장식하는 것이 드물지 않은 실정인데도 개신교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은 한국 교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우리 근대사와 연관시켜서 개신교에 왜 배타성,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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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는 기독교를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들의 세습, 분쟁, 교회건축 뿐 아니라 부도덕한 목회자들에 대한 기사가 언론을 장식하는 것이 드물지 않은 실정인데도 개신교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은 한국 교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우리 근대사와 연관시켜서 개신교에 왜 배타성, 성공지상주의, 극우반공, 친미성의 네가지 특징이 생기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한국 개신교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은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청일전쟁에 이어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가난과 질병, 정치적 억압으로 절망의 나락에 있던 이들에게 일어났던 회개와 대각성 운동이다. 교회는 십자가와 성조기가 함께 걸려있는 치외법권적 영역으로 일본군들 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다니 당시의 신자들이 미국에 대해서 품은 기대와 선망은 당연한 것이었을테고, 인적 물적 자원이 없었을때 미국 교회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미션스쿨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근대사의 주역이 되었으니 친미와 친정부적 성향은 태생적 운명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가 수많은 교단과 교파로 갈라져 반목하게 된 발단은 '신사참배'이다.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망명하거나 구속된 교회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결국 대부분의 교회가 신사참배에 소극적이나마 참여하게 되었고 장로교 총회가 공식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니 우상숭배로 해석될 수 있는 신사참배는 한국교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남겼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 공산주의를 체험하고 월남한 신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로 극우 보수주의적 입장에 서게 되었다지만 신사참배로 인한 굴욕과 수치심을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심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은 비약이 아닐까 싶다.

 

   개신교가 기복적 신앙으로 비판받지만  식민통치,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지나며 겪은 극심한 고통속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생존본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성장기를 맞으면서 세계 최대의 교회인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3박자 구원론'으로 몸과 질병의 치유, 물질적 풍요, 영적 축복의 메시지를 선포하였고 당시 정부의 '잘살아보세'로 대표되는 새마을 운동과 궤를 같이 하며 폭발적으로 교인수가 증가하였다. 물질적 풍요를 영적 축복과 동일시하는 풍토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적극적, 긍정적 사고를 주장하는 '번영신학'의 형태로 생생히 살아있다. 그러나 공동체속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속에서 이제는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얼마전 감리교 교단에서 교회세습 금지법안을 제출했다는 기사가 있었고, 자발적으로 소득을 신고하고 납세의 의무를 지겠다는 목회자에 대한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소득신고를 해야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이 사회복지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재정이 넉넉한 큰 교회는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재정운영을 투명하게 하면 되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작은 교회의 목회자는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란 성경말씀이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교회가 추문에 휩싸이고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며, 기존의 대형교회들이 부족하지만 공동체의 아픔을 보듬는 일을 해왔고, 큰 교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아름다운 사역을 하는 작은 교회들이 있음은 기억하고 싶다.



y***d 2012.09.02.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민중의 시각이 아닌, 성경의 시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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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와 시각을 달리한다. 이점을 전제로 하는 것이 내 리뷰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를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신앙에 대한 견해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밝혔듯이, ‘민중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단순히 교훈이나 감동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우리나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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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와 시각을 달리한다. 이점을 전제로 하는 것이 내 리뷰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를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신앙에 대한 견해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밝혔듯이, ‘민중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단순히 교훈이나 감동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우리나라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독도는 우리 땅이지만, 일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다께시마로 보이는 것처럼, 성경은 상대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어로 쓰인 책을 영어로 해석할 수 없듯이, 성경은 성경의 정신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의 정신에 대해서는 성경에 그 예제를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의 십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 그것이다. 예수님은 10개의 개명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재해석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해석은 구약의 그것을 위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시각은 성경을 근거해 볼 때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성경을 통해 한 분 하나님과 그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의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문제의 해결책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고발하고 있는 문제들은 기독교인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하고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e****g 2013.01.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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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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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서적의 경우 베스트셀러라고 해봤자 그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서 잘 팔린다.이 책을 종교서적이라고 해야 할지 일반 사회학 서적이라고 해야 할 지 애매하다.내가 블로그에 감상평을 올릴 때는 종교적인 주제를 담은 책은 "경건서적"이란 카테고리에 넣는다.과연 이 책을 읽고 그 분류에 넣을지 "사회"코너에 넣을지 망설여지지만 난 전자를 택했다. 저자는 민중신학 연구자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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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서적의 경우 베스트셀러라고 해봤자 그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서 잘 팔린다.
이 책을 종교서적이라고 해야 할지 일반 사회학 서적이라고 해야 할 지 애매하다.
내가 블로그에 감상평을 올릴 때는 종교적인 주제를 담은 책은 "경건서적"이란 카테고리에 넣는다.
과연 이 책을 읽고 그 분류에 넣을지 "사회"코너에 넣을지 망설여지지만 난 전자를 택했다.

저자는 민중신학 연구자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경건서적'을 찾는 독자들에게서보다 '사회학적 시각'에 관심이 있는 일반독자들의 손에 들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왜 난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일까.
한국교회는 현재 정체 혹은 쇠퇴기를 맞고 있다는 시각에 공감하는 기독교인으로서 사회학적인 시각을 읽어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이 책은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저자 나름으로 지향해가야 할 미래를 담고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담은 3부는 저자의 주장이 강하게 들어간 것이라 동의 못할 부분이 있지만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소개한 1,2부의 내용은 상당히 객관적이다.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근본주의적이고 미국주의에 편향된 보수 교단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임에도 그런 평가를 내린다.
다만, 진보적인 한신대 출신의 저자와 달리 보수적인 필자로서는 신앙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기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객관적인 사회학적 시각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고 준비하려는 이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재밌게도 책 제목은 한국어가 주는 정반대의 뉘앙스를 담은 문장이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교회에 다닌다는 뜻도 되고 교회를 떠난다는 뜻도 되는....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가는지
왜 7,80년대와 같은 교회의 부흥이 재현되지 않는지
고민하는 나와 같은 교인들은 좀 큰 거대담론적인 시각으로 저자가 제시한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2.07.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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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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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공부할때 불교나 천주교는 자주 등장한다.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받아들였고, 천주교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박해받는 신자들의 사건이 많았다. 그에반해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우리역사에서 그다지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와 개신교의 관계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가 주목받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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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공부할때 불교나 천주교는 자주 등장한다.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받아들였고, 천주교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박해받는 신자들의 사건이 많았다. 그에반해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우리역사에서 그다지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와 개신교의 관계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1904년의 러*일 전쟁때부터이다. 당시 일본군의 진군루트였던 평안도 지역에서 군대폭력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피신했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는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으므로 교회로 가면 안전을 보장받는 하나의 제국과 같은 곳이었다. 늘어나던 기독교 신자들의 집합이 정점을 그었던 사건은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이었다. 국권피탈기의 조선인들은 과거와 단절을 시도했고, 이는 자신과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배타성을 신앙으로 해석하기에 이른다.

 

 1920년대 부터는 미국인들이 세운 미션 스쿨을 중심으로 백인을 따라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일부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고, 기독교 신자가 식민지 조선사회의 엘리트로 등장한다. 염상섭이 쓴 <삼대>나 <만세전> 같은 작품들에 당시 조선인 엘리트들의 열패감과 서양문화에 대한 선망의식 그리고 기독교 문제가 잘 언급되어 있다. <삼대>의 등장인물인 조병화의 집안은 아버지가 교회의 장로이고 <만세전>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유학하다 조선으로 오는 배안에서 식민지 조선인으로 겪어야 하는 아픔과 좌절을 맛본다.

 

  2차셰계대전의 동맹국들을 공산주의 악마로 유포하면서 1930년대는 교회지도자들의 반공의식이 시작된다.  해방후 북한의 토지개혁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자산가들이 모욕을 받고 재산을 강탈당하는 수치로 기억되어 대거 신자들이 월남하게 되고 반공의식은 더 강화된다. 급기야 군사정권이 국시로 내건 반공주의는 교회의 반공주의와 맞아떨어져 반공은 일종의 '파괴적 증오심'이라는 복수의 개념으로 자리잡는다. 교회는 갈수록 정치와 유착되어 도시 시민층의 기독교 신자가 늘어나는데, 미국식 부흥집회인 빌리 그레이엄 한국전도대회는  집회의 자유가 통제되던 군사정권 시절에 행해진 이례적인 초대형 전도집회로 이는 정부의 비호와 협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반면 이들 전투적 반공주의자와는 달리 기도원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세력은 전후 몸과 정신의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하는 신자들의 열망을 빠르게 흡수하며 '치유'에 중점을 두고, 집회의 성격이 굉장히 영적열기를 넘어 발광하는 수준이된다. 이들 또한 군사정권의 성장 개발주의와 성격이 맞아떨어지고 이농민을 빠르게 신자화한다.

 

 하지만 1970년대 부터 젊은층을 중심으로 퍼진 포크송 문화는 복음성가와 새벽송의 유행으로 당시 시행되던 통행금지의 금기를 깨기 시작하고, 집단주의적인 시회분위기에 순순히 동조하지 않는 새로운 문화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거침없이 성장을 구가하던 교회는 1990년대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소비사회화의 시기로 다소 외면받는다. 시민은 권위주의 군부잔재청산이 목표였고, 절제와 자기통제가 핵심이었던 교인의 삶은, 갖고 싶은 것을 갖기위해 노력하고 그러면 실제로 갖게 된다는 사적욕망이 자리잡으며 긍정주의라는 새로운 성격을 띄게된다. 이는 실패는 곧 개인의 무능력과 과오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기다리고 있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은 곧 자본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낳는다. 대형교회들은 여전히 성장주의에만 빠져 중*상위층 중심의 공간으로 재편되고 교회는 성공한 자들 중심의 체계를 구축하며 보수화 된다. 교회의 성장 지상주의는 개신교 교파들이 양적 경쟁을 위해 신학생을 마구 늘리고, 신학생들은 안전장치 없이 생존시장에 던져져 목사직이 매매되고 교회의 폐업이 늘어나는 폐단을 낳게된다. 교인들은 더 이상 듣기만 하는 설교를 지양하고 설교를 놓고 토론하는 마당에 성장에만 치중해 질 낮은 교육을 받은 신학생들이 말의 지성과 영성의 길을 높이는 수준을 못따라가게 된 것이다. 사회는 양극화 되고, 자살률은 늘어가는 불안이 증폭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교회는 단기 선교라는 방식으로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충성도만 높이는데 신경을 쓰며 선교사들의 과대포장된 보고서만 남발했던 것이다. 

 

 이제 대중은 승자가 독식하고, 실패자는 가차없이 처벌하는 자본이 신 대신 다른 신을 찾게 되었다. 교회는 팽창주의적 배타적 공동체를 지양하고, '작은' 교회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웃을 포교를 하는 정복의 대상이 아닌 삶과 생각을 나누는 친구로 인식하는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게 되었고, 소통을 강조하고 교인들간의 '감성'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교회가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자기 중심적인 장소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함께하는 공존과 상생의 장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성공한 자나 일시적으로 실패한 자나 모두 축복을 받는 사회적 영성을 회복하고, 정치보다는 교인간의 대면적 관계가 중심이 되는 개방적인 교회를 기대해 본다. 교회의 집회가 상당히 떠들석하고 열광적인 이유가 정신의 치유를 갈망하는 교인들의 갈망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a*****7 2012.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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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을 잠시 접어두고, 세상속 교회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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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영성이 사회 안에서 어떤 긍정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크게 느껴본 적은 없다.  단지 종교로 인한 개인의 긍정적 사고가 사회시스템 속의 성실한 톱니바퀴로서 열심히 움직이게 하고 그럼으로서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든 '잘 굴러가는' 모습만을 자주 보았을 뿐이다.  이게 긍정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개인이라는 톱니바퀴들이 모여 작동중인 사회시스템의 모습, 그리고 굴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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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영성이 사회 안에서 어떤 긍정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크게 느껴본 적은 없다.  단지 종교로 인한 개인의 긍정적 사고가 사회시스템 속의 성실한 톱니바퀴로서 열심히 움직이게 하고 그럼으로서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든 '잘 굴러가는' 모습만을 자주 보았을 뿐이다.  이게 긍정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개인이라는 톱니바퀴들이 모여 작동중인 사회시스템의 모습, 그리고 굴러가는 방향에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과 개인간의 관계를 강조하는 종교적 영성은 사회성에 대입함에 있어 어떤 맞지않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영성을 가르치고 키우는 종교시설 - 그러니까 여기서는개신교로서의 교회 - 은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작동한다.  영성과 교회와 사회, 이 세가지의 존재적 입지는 적어도 나에게는 뭔가 딜레마스런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영성의 문제는 개인적인 특질도 가지고 있기에 일단 뒤로 미루어두고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요즘엔 교회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쏟아져 나오며 '교회사업의 위기'가 회자되고 있어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구한말 선교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종교가 사회속에서 어떻게 역할해왔으며,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교회의 모습으로 성장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현재의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왔는지를 알려면 이 책이 아주 요긴해보인다.  


  종교의 형태적 모습으로서 교회는 분명 한국사회의 역사안에서 불안과 위기로 응어리진 인민의 답답함을 안으로 품고 위로함으로서 스스로의 사회적 역할을 해 낸 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일제강점기부터 독재시대를 거쳐 90년대까지도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긍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인민들의 답답함과 응어리를 품어서 어떠한 사회적 열망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삭아내려 주기만 하던 교회는 서서히 답답함과 응어리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간다.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사회의 모습을 닮은 교회는 더이상 인민들의 의지처가 되지 못하고 자본에 의해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속에서 적응에 실패한 채 결국 비판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지금 보는 교회의 모습은 자본을 거머쥔 기업이 생존해가는 모습 그 자체이다.


  이 책이 그리는 교회에는 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사회안에서 교회의 역할만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영성의 문제는 일단 철저히 배제시킨 채, 한국근대의 역사속의 교회부터 철저히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저자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비판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리고 교회의 위기속에서 하나 둘 피어나는 작은 대안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솔직히 나는 영성의 문제에 있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어떤 영적 체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성적 사고를 가져보려 노력한 때도 있었지만 내겐 쉬운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에는 사회성이 결여된 영성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민해본다.  영성과 교회와 사회의 공존에 있어 딜레마스럽다고는 했지만, 개인의 영성과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그런 요소들이 모인 사회의 구성을 생각해보면 세가지는 반드시 딜레마를 품어서는 안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딜레마를 극복하는 일이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의 바른모습과도 일치할 것이다.

h*****1 2012.10.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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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김진호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백교회 담임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민중신학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역사의 예수'와 관련한 서적들을 많이 집필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반신학의 미소>, <예수역사학>,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 등이 있다. 책의 1부는 한국 개신교의 과거로 근대의 한국교회가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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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김진호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백교회 담임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민중신학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역사의 예수'와 관련한 서적들을 많이 집필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반신학의 미소>, <예수역사학>,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 등이 있다.


 


책의 1부는 한국 개신교의 과거로 근대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세워져 갔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2부는 한국 개신교의 현재로 한국교회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으며 마지막 3부는 한국 개신교의 내일, 즉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민중신학적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 K'와 '나가다'는 단어는 중의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선 저자인 김진호는 시민 K가 될 수도 있고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교인들 통칭하여 시민 K로 받아도 무방할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국교회'인 셈이다. 또한 '나가다'는 말은 '교회를 출석하거나 떠나다'로 해석할 수 있는 바, 한국교회의 성장과 퇴보를 일컫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간만에 제목 자체만으로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의, 요약해 주는 책을 만난 셈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종교적 성찰의 부재'에서 찾는다. 개발도상국 초창기의 한국 기독교가 국가(또는 통치자와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결탁하여 성공주의에만 몰입하여 결국 성찰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 낸 것처럼 제도권 밖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시민 종교 역시 정치권과 야합하여 이벤트적 감성에 반응하는 성찰없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한국의 근대상을 쏙 빼 닮은 개신교의 실패를 통해 이를 되돌아 보고 기성 종교를 비롯한 시민종교가 더 성찰적이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집필했다고 한다.



 


한국의 보수적인 교파와 교단의 교회들은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일종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발생했던 초대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비견하여 평가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닮은꼴'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김진호는 평양대부흥운동을 미국주의 종교의 탄생으로 본다. 그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지 분할 협정과 관련하여 가장 극단적인 근본주의 신앙 배경을 가진 미국의 선교사들이 평안도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고 1900년대 당시 러일전쟁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던 상태에서 저들의 폭력을 피해 자신들의 몸을 의탁할 곳을 원했는데 그곳이 바로 미국영토나 진배없는 - 조지 풀턴은 이를 가리켜 '제국 속의 제국'이라 표현했다(p. 41) - 교회였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단군신화에서 곰이 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시간이 흐른 뒤에 인간으로 환골탈퇴한 것처럼 마치 개화기의 민중이 교회라는 공간을 통하여 일제에 억압당하던 피지배 계층으로서의 '조센징'이 아닌 미국적 근대성을 정체성으로 삼은 '근대적 시민'으로 체질 변경을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개신교가 큰 오점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바로 '신사참배'이다. 당시 한국 개신교의 주류 세력들 대부분이 신사참배에 소극적으로나마 동참했고 그 중 일부는 이를 주동했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개신교에 트라우마로 남았는데 광복 이후 전시동원체제가 되자 신사참배로 말미암은 대중적 수치심을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로 재빨리 상쇄시켜 버렸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세력이 '반공', '빨갱이'라는 단어와 매우 친밀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가장 대표적인 교회는 이북의 신앙 공동체가 월남하여 세운 것이라 볼 수 있는 서울에 있는 '영락교회'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신학적 보수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보수 집단이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딱 좋은 토양이 된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6.25동란이 끝나고 한국 개신교 내에서 새롭게 시작된 운동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기도원 운동'이다. 서양의 수도원과 달리 한국의 기도원은 영적 열기로 뜨거운 곳이다. 일제의 수탈과 공산주의의 침략 전쟁을 겪었던 개신교 세대들이 핍폐해진 정신과 육체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삼은 유일한 곳이 바로 기도원이었기에 그 속에서는 입신, 방언, 예언, 환상, 치유 등 각종 엑스터시 상태의 은사 체험이 가능했다. 그리고 박태선과 같은 구원파 이단들이 이때 모두 생겨나게 됐다. 그런데 이것을 기존의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 온 교파가 있었다. 바로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이다. 이들은 월남자 교회와 약간 다른 양상을 띠었다. 순복음교회는 고통받고 있는 민중에게 '3박자구원'을 제시했다. 즉 몸과 정신을 치유한 신은 물질적 풍요도 허락한다는 내용인데 이 중심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축복이 있다. 이들 역시도 월남자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보수성을 띠고 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월남자교회이든 순복음교회이든 박정희 군사정권이 표방했던 '발전동원체제'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들이 발생했다. 즉 반공을 향한 증오심을 발전의 동력원으로 삼았고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잘 사는 것'은 기도원 운동의 양상에서 나타났던 물질적 풍요의 욕구를 기반으로 했다. 현재 한국 개신교에는 여러 교파가 있지만 신학이론과 교회 정치 체계를 떠나서 신앙적 분위기만 따져 본다고 했을 때 대부분 순복음과 다를 게 없다. 그만큼 순복음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괄목할 만한 일이었고 이는 모든 교파와 교단이 부러워할 만한 대상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교회의 부흥 이면에 숨겨져 있었던, 잘 알지 못했거나 일부러 외면했던 결정적인 결함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개발독재와 결탁하고 번영신학에 경도된 한국의 개신교는 태생적으로 대형교회를 지향점으로 하는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 한국 개신교의 교세는 상승에서 하락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저자가 꼽은 이유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책의 저변에 흐르는 주된 담론인 한국 개신교의 태생적 한계가 있고 둘째,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 채 오히려 사회와 격리되어 정체된 듯한 인상을 주는 '고립된 성'과 같은 교회의 모습 때문이고 셋째, 민주화와 맞물려 기존의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성장한 개인이 교회와 성도를 낡은 근대의 유물 정도로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넷째는 교회 자체의 문제 때문이다. 개신교 연합체들이 자본주의 방식을 따르고 골통 보수 단체로 전락하였다. 지교회는 각자가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전쟁터와 같은 시장주의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 안에서 사역하는 목사들이 서로 경쟁하고 자기 교회 중심적이고 부패하고 타락하여 설교에 소홀히 하며 성적으로 문란하며 여전히 성장주의 신화를 따른다. 그 와중에 상처받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교회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한다. 그리고 대신 그 자리에 시민종교가 들어서게 됐다.



최종적으로 김진호는 성찰이 사라진 사회 속에서 개신교가 진정한 종교로 다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작음'을 추구하는 교회에 둔다. 대형교회가 되지 못해서 작은 그런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목적 자체를 작은 것에 두어서 성장주의가 가져왔던 교회의 거짓된 모습과 결별하고 교회의 이웃을 돌보는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그런 규모와 시스템을 가진 교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작은 교회는 탈권위주의적이고 담임목사나 장로의 임기를 제한한다. 또한 합리적 운영과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는 바, 기성 교회들은 할 수도 없는 여러가지 실험과 시도가 가능한 그런 교회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또 다른 대안 하나는 민중 신학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중 신학은 해방 신학과는 다르다(어쩌면 저자는 '맞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 관점이자 내 해석이다). 주류 교회들로부터 배척됐던 사람들을 향한 다가섦, 전쟁 직후 시작된 초창기 기도원 운동의 전통(성령 안에서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며 하나가 되는 것)이 폐허 속에서 민중의 삶을 정상궤도로 끌어 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과 같이 '밑바닥 살림 운동'이 다시 한 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밑바닥 인생들이 교회의 중심에 서고 그들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될 때 그들의 고통 속에 함께 하는 신을 재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내용의 요체이다. 이상은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내 말로 풀어서 쓰거나 했다. 책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요약하고 어떤 내용이 있는지 기술해 놓음으로써 차후 관련 내용을 찾아볼 필요가 있을 때 참고하기 위함이다.




내가 신학을 한 곳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수원의 한 학교인데 보수적 신앙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는 교단과 관련이 깊다(물론 나는 그 교단 소속 목사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시각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평양대부흥운동을 러일전쟁으로 해석한 부분도 마뜩잖은데(설령 그런 부분이 있다손치더라도) 개신교가 한국에 전해질 초창기의 신학적 배경을 '극단적인 근본주의'로 한정지은 것도 마음 편하지가 않다. 그렇다면 보수주의 신학을 공부한 목사의 입장에서 김진호 목사의 신학을 '극단적인 자유주의'라고 할 때 어쩌면 그분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기 마련이다. '1'이 극단적인 자유주의이고 '10'이 극단적 근본주의라고 한다면 나는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 신학이 아직까지는 대체로 '6-7'에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물론 최근에 들어와서 '7-8'이나 '9'로 옮겨가는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진호 목사는 '3-4'정도 된다고 할 수 있겠고 그의 시각에서 '7-8'은 '10'이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게 단정짓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타자화가 심화되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말했던 저자의 입장에서도 타교단 신학을 그렇게 몰아세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실 문제다.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개신교의 부흥과 쇠퇴를 논한 책을 제대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흥미진진했다. "아, 이렇게도 해석하는구나.", "이런 관점도 가능하겠구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수주의 신학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어떤 사건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자세이다. 그것은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너무 쉽게 환원주의에 빠져 든다. "기-승-전-하나님"으로 결론을 맺지 않으면 성이 안 풀리는 게 보수주의의 단점이다.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이 답에서 빠지면 무슨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여긴다. 늘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알지만 정작 사람들 사이에서 또는 세상 권력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은 모순임에 틀림없다. 그런 차원에서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는 보수주의 신학을 한 신학생이나 목사들이 한 번 쯤은 반드시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신학을 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시민K 교회를 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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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시사인 구독지에 2012년 한해 발간된 책을 추천하는 별간지가 있어 읽어보다 이 책을 알게되었다. 나꼼수 멤버로 유명한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교수가 추천하는 책이었다. 예전에도 욕쟁이 예수라는 책을 트위터에 추천했길래읽어 보니 주류시선이 아닌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예수님, 개신교에 대한 내용으로 괜찮았었다. 그런 이력이 있다보니 이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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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시사인 구독지에 2012년 한해 발간된 책을 추천하는 별간지가 있어 읽어보다 이 책을 알게되었다. 

나꼼수 멤버로 유명한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교수가 추천하는 책이었다. 예전에도 욕쟁이 예수라는 책을 트위터에 추천했길래

읽어 보니 주류시선이 아닌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예수님, 개신교에 대한 내용으로 괜찮았었다. 그런 이력이 있다보니 이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올해 첫 구매책이 되었다. 이 책은 근대 우리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객관적으로 돌아봄으로써 현재 기독교의 문제점을 재조명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내가 주목하여 본점은 교회의 정치세력화와 성장주의, 배타주의에 대한 문제점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교회의 정치세력화, 우경화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교회가 강압적인 신사 참배의 굴욕을 겪게 되면서 이에 대한 증오심을 반공주의로 펼쳐내게 되고, 이북교회들이 공산주의를 피해 월남하면서 더욱 심화 되었다. 특히 이북의 개신교도들은 공산주의들에 의해 강제로 재산을 몰수당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다보니 더 증오심이 커질수 밖에 없었다. 당시 기독교 교인의 숫자는 1%에 미치지 않았으나 그들의 철저한 반공주의적 이념과 이승만 정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큰 영향력이 있는 종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러면서 교회의 정치 세력화가 시작되었고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서 개신교가 지나칠 정도로 반공적이고 우익적인 모습을 보이는 메카니즘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대선과정에서 불거졌던 몇몇 목사들의 극우적인 발언들, 어떤 목사가 운영한 정치 여론 형성을 위한 소위 십알단(= 나꼼수가 지칭한 '십자가 알바단')등을 바라보면 더 이상 기독교는 순수한 신앙을 가진 종교가 아닌 이익 집단화되어 지속적으로 세상을 향해 큰 목소리를 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세력이다. 다수의 목회자와 신자들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권력에 붙어 있는 마치 기생충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을때 그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사로잡고 넘겨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하셔다 '독사의 자식들아' 위에 언급한 욕쟁이 예수라는 책에 따르면 "뱀새끼들아"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의 새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목회자들에게 비판의 눈길을 돌리기라도 한다면 교회 내에서 정죄를 당하게 되니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들에 실망하여 실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두번째로 주목하여 본 점은 이후 60~70년대에는 이른바 군사정부의 개발정책에 따른 사회와 맞물려 기복주의적 신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교회의 성장주의의 시작이 여기서 시작된다. 순복음 교회가 성장주의의 대표격인 교회라 할 수 있겠다. 50년대 천막교회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5~60만의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순복음 교회의 성장을 지켜본 다른 교회들 역시 대형 교회를 목표로 성장에만 목표를 두고 다른 교회들과 경쟁하듯 지금껏 달려왔다. 하지만 최근에 이런 성장 주의에도 불구하고 1995년 이후 기독교인 수는 마이너스 성장에 그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우후죽순 생겨난 교회들로 인해 교회숫자는 많아졌지만 그 교회를 채울 신자의 수는 늘어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여 자립하지 못하는 미자립교회의 경우 목회자는 빚만 잔득지게 되고 문을 닫는 경우도 발생하고 신축교회를 짓는 경우 막대한 은행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부도사태까지 나는 경우도 발생된다. 그런가 하면 각 교단에서 성장주의에 따라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했지만 이 분들이 갈 곳이 없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형교회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형교회의 경우 교회 세습의 문제도 최근에 많이 붉어지고 있으며 투명하지 않은 재정문제 등 교회 내부문제 등도 많이 발생되고 있다. 이렇듯 성장주의 및 기복신앙만 강조하다 보니 성장하지 못한 교회, 복 받지 봇한 성도는 실패자로 인식되는 시스템 속에 갇혀있는 것도 큰 문제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왜 기독교가 현재 시점 대한민국에서 외면 받고 있는 종교인가에 대해서도 접근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상 다른 종교와는 달리 배타적인 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유일신이 보내준 구원자(예수)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교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를 통해서(=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이렇다 보니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게 되고, 무례히 행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된다.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한 목사가 사찰에 방화를 저질렀다든지,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논란, 단군상 훼손 및 파괴 등과 같은 사건들과 같은 사건 등이 있다. 그리고 공공장소나 지하철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시는 분들도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게 한다. 그리고 각종 포탈과 신문에 목회자들의 부정과 불륜, 사고 등이 심심잖게 눈에 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교회가 당당하게 설자리를 잃어가게 되고 지탄의 대상이 되며 심지어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을 숨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러한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작은 교회이다. 여기서 작은 교회란 교인들간 소통을 위한 매개장치가 필요한지에 따라 틀려진다고 말한다. 보통 중대형 교회의 경우 성별, 거주지별, 연령별등 모임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그것을 통해 소통을 하다보니 권위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하지만 작은 교회의 경우 이런 매개장치 없이도 소통이 가능한 경우이다. 이 말은 전임 사역자와 교인들간 대면적 관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탈 권위주의적 요소가 많이 적용되어 있고 의사 결정과정에서 감성에 의한 친밀감이 깊어져 감성 공론장의 역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배에 대한 서로 간 나눔과 비판이 있어 단순히 듣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 느낌으로 확장되어 적용될 수 있어 설교가 교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런 가운데 교인들간 화합과 목회자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 지기 때문에 교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의 경우도 위의 세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당시 목회자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가지게 되어 한동안 방황을 많이 했었고 지금은 여기에서 말하는 '작은교회' 와 비슷한 곳에서 아주 안정적으로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교회생활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눈여겨볼 중 한가지로 현재의 교파가 나뉘게 된점을 간략하게 나마 소개해준데 있다. 합동, 통합, 고려. 성결, 감리 등 한국 교회는 많은 교파로 나뉘어 있어 정말 헷갈릴 정도다. 나는 처음에 고려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이 곳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목회자들로 구성된 교파이다. 그렇다 보니 나름 자부심이 필요이상으로 강하고 보수적인 면을 띈다. 통합과 합동은 WCC (세계기독교협의회)에 대한 가입에 대한 찬,반대로 나뉘게 된다. 교리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념의 문제로 인한 분열이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사실확인 및 배경 설명 등을 통해 그 동안 알지 못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정보들을 알려 주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서문에 작가의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나는 처음 이 의미가 from church(교회에서) 의 의미로 받아드렸다. 교회를 박차고 나가는 느낌?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to church (교회로) 로 받아드려진다. 

 

"책의 제목인 '시민K 교회를 나가다'는 중의적이다. '시민K'는 근대 한국 사회의 형성의 산물이고 동시에 형성의 주역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교회의 성도가 되었거나 교회에 호의적인 존재가 되었다. 또한 교회로 부터 떠나거나 교회에 대한 친근감을 철회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교회를 나가다' 는 말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교회로 부터 떠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발췌- 

i****g 2013.01.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행복한 교회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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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마도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처음 간 교회 풍경은 신기하면서도 따뜻했다. 몇몇 친구를 제외하고 아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몇 년 후 다른 곳에서 살았고 학교에 다녔다.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했다. 내가 J를 초대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예정인원보다 많아 어머니가 당황해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음식을 먹고 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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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마도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처음 간 교회 풍경은 신기하면서도 따뜻했다. 몇몇 친구를 제외하고 아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몇 년 후 다른 곳에서 살았고 학교에 다녔다.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했다. 내가 J를 초대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예정인원보다 많아 어머니가 당황해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음식을 먹고 놀던 중 J가 일어나며 교회 갈 시간이라며 다 같이 교회에 가자고 말했다. 처음 간 교회 풍경이 떠올랐다.

 

책의 제목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는 중의적이다. ‘시민 K’는 근대 한국 사회 형성의 산물이고 동시에 형성의 주역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교회의 성도가 되었거나 교회의 호의적인 존재가 되었다. 또한 교회로부터 떠나거나 교회에 대한 친근감을 철회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교회를 나가다’는 말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교회로부터 떠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와 개신교의 접속 양식으로 표현되었다.(8-9쪽)

 

1년 반 정도 다녔고 그것도 아주 열심히 다녔다. J를 비롯한 교인들의 행동과 교회의 태도 중 몇 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부반장이었던 J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방위성금과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지 않았는데 교회 헌금은 열심히 냈다. J의 아버지는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데 교회 내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놀러 간 J의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좋았다. 종교가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돈을 꼬박 챙겨주었기에 헌금을 내는데 무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예배하는 사이 헌금 바구니 돌리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형 교회를 짓고 있어서 헌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목사의 말도 이해할 수 없었고 연말에 J가 모든 상을 휩쓰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곳은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이해하기엔 불가한 세계였다. 나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는 한국 사회에서의 개신교의 역사와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살펴본 책이다. 한국 개신교는 배타주의와 성공(성장)지상주의, 극우 반공과 친미의 요소가 시대사와 얽혀 형성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전쟁 이후 한국 교회의 성장은 ‘한국 근대 국가 형성기의 전투적 반공주의 기조 속에서 국가와 교회가 서로 긴밀하게 연동하면서 성장을 이룩한 경우’라고 보았다. 다른 종교들이 현상을 유지하거나 증가한 것에 비해 개신교를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근대화 속의 시민 K는 병을 치료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기 위해 교회를 나갔으나 민주화를 겪으며 행복과 자기실현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교회를 세운 이들)의 꿈은 신자를 늘려 사회적 세력으로 부상하고 권력을 얻는 것이었다. 성공지상주의는 이웃을 적으로 만들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국의 개신교는 실패한 자들의 종교가 아니라 성공한 자들의 종교가 되었고 그것은 시민 K가 교회를 나가는, 떠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둔 것은 일말의 기대 때문이다. 절망의 시대, 희망을 주었던 개신교가 뼈아픈 자기반성을 통해 거듭나기를,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종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보단 좋지 않은 이야기가 기사화되는 세상이지만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밝지 않다. 개신교에 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작음’을 추구하는 신앙 운동과 타자성을 신앙화하려는 끈질긴 노력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그것은 작은 교회를 통해 제대로 정치하는 것, ‘교회적 신앙을 사회적 영성화’하는 것이다. 솔직히 회의가 든다.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많이 가진 자들은 그것을 지키는 것과 더 많이 갖는 것 외에 다른 것엔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그들의 종교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자신들의 신이 외면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교회가 빈부의 차 없이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회 속에서 교회가 제 역할을 하는 것, 교회라는 공간을 통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진정 신이 바라시는 일일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2.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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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K, 교회를 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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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기독교가 지탄을 받으며 공공의 짐이 되어 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 책을 통해 기독교가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이 책은 크게 한국 개신교의 어제, 한국 개신교의 오늘, 한국 개신교의 내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개신교의 어제는 기독교가 한국에 자리 잡게 된 모습을 역사적 흐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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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기독교가 지탄을 받으며 공공의 짐이 되어 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 책을 통해 기독교가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이 책은 크게 한국 개신교의 어제, 한국 개신교의 오늘, 한국 개신교의 내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개신교의 어제는 기독교가 한국에 자리 잡게 된 모습을 역사적 흐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개신교의 오늘은 오늘날 개신교의 마이너스 성장, 설교의 실태,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성장지상주의의 문제점 등을 통해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대형교회가 지역공동체를 포용하지 못하는 모습과 재정 관련의 문제 등을 읽게 되었을 때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정말로 기독교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가?” 라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본을 보여주어야 할 대형교회가 본을 보여주지 못하는 현재의 모습을 보며,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에 앞서 기독교인 개개인들의 회개가 정작 필요한 시점이 아닌 가 싶다.

한국 개신교의 내일에서는 대안교회로서 작은 교회의 관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작은 교회란 사이즈의 차원보다는 감성 공존장(emotional public sphere)의 역할을 하며, 탈권위주의적 조직과 운영을 추구하는 교회라 할 수 있다. 작은 교회는 설교나눔, 공동축도 등으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 무엇보다도 이웃을 친구이자 동료로 여기는 수평적 관계를 맺으려는 것은 바람직한 교회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질문은 “정작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였다. 신학적인 배경이 적어 읽는 부분이 많이 어려웠고 마음을 무겁게 해서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김진호의 지적처럼 목회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교회와 교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은 공감한다. 기독교인 개개인이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닮아가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기독교가 지탄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독교의 모습을 안팎으로 보려는 이들에게, 특히 목회자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성찰과 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a*****i 2012.04.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