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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의 넓은 아프리카.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사하라 사막.
이 곳은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곳이다.
아시아와 서유럽, 십여개국의 문맹국을 밟았던 내게 작가의 사하라 사막 횡단은 처음부터 부럽고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읽은 지금은 충분히 만족한다.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사하라 사막 횡단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책장에서 꺼내어 보며 다시금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초조함과 흥분, 기대, 설레임등의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랑게비쉐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를 시작으로 비스크라, 와르글라, 인샬라, 타만라세트, 인구에잠 등의 낯선(나에게는 낯설지만 작가는 기자로서 비행기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도시들이고 직업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거처에 있어 도움을 받으며 여행할 수 있었다) 사막 도시를 지나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를 끝으로 여행을 마친다. 곳곳의 도시를 갈 때, 그리고 그 곳 사람들을 만나는 것.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 등은 배낭여행과 신혼여행도 배낭여행으로 간 나에겐 새록새록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그리고 곳곳에 의미있는 우화나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 기자로서의 자투리 없는 설명은 이 책의 밀도를 높여준다.
한 가지 약간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미국인으로서 식민지에 관하여 100%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사하라 사막의 여러 나라를 식민지화한 프랑스에 대한 설명이 병주고, 약주고... 어떻게 보면 본인은 제 3자 입장으로 너무 느긋하달까..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두꺼운 책이지만 작가 특유의 맛깔스러운 문체와 자연스러운 번역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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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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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땅'
'낙타와 대상이 사라졌다고 비통해 마시라!
무심한 세월 속에서 사하라의 겉모양새는 비록 변했지만 극한의 땅 ...
그 자체로서의 매력은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사막만큼 메마르고 뜨겁고 적대적인 땅이 있을까?
사막만큼 방대하고 거친 야생의 세계가 도 있을까?'
이 책의 저자 윌리엄 랑게비쉐는 기자와 비행기 조종사를 거친 사람이다.
이 독특한 이력의 작가는 대단한 도전을 한 것이다.
바로 거침없고 황량하며 외롭고 고독한 사막을 여행하는 일...과연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나는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라면 저 땅을 저 미지의 세계를 횡단 할 수 있을까?
아니...몇걸음도 못가서 풀썩~주저앉고 말 것이다.그리곤 엉엉~울어버렸겠지...
이 책의 저자가 사막을 바라보는 관점은 쿨했으며~거침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 적응하며...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사막에 내맡겼다.그 속에서 또 다른 자아를 찾았으리라~
사막을 횡단하는내내 여러 사람을 만났다.위험한 적도 있었으며
마음 깊이 감동 받는 일도 많았다.미심쩍은 호의에 의존하며 이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또 부딪혀가는 작가의 모습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막이 결코 사막만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고독하지만 아름답고 외롭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
가도가도 끝이 없는 미지의 땅...잘못 들어서면 어쩌면 영원히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의혹천지와 무서운 곳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참 따뜻했다. 외롭고 차디 찬 곳이지만...
이 작가처럼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처럼 따스하게 그 곳을 감싸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쩌면 그 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이 아닐까...싶다.
비록 슬프고 외롭기는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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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신청했을때부터 서평의 방향이 어디로 갈까는 대충 잡혔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행문(좀 더 문화적인 가치가 있으면 견문록)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둘 다 같은것은 사하라 사막을 행단하는것이고 하지만, 두 책은 전혀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같은 길을 가면서 우선 이 책을 읽으려고 하시는 분들은 일단..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를 알 고 읽기를 권합니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프랑스와 알제리의 역사를 알 고 있어야 진솔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작가의 필체가 수려하다는 느낌을 받을것 입니다. 그 다음엔. 지금까지 나온 기행문과 차원이 다른다는것입니다. 이 책은 기행문같은 소설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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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과 먼지로 범벅된 여정 특히, 저자가 가혹한 불모의 땅에 심어 가꾼 풍성한 인맥과 우여곡절 속의 다양한 경험은 당연한 부러움보다는 질투의 대상에 가깝다. 그것은 사하라인들이 병적인 게으름을 짊어지고 혹독한 날씨를 탓하며 가망 없는 전쟁에서 싸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짐작과 개탄으로 여정을 갈무리해야 하는 현실적인 안타까움마저도 예외로 남겨두고 싶은 심정이다.
혼돈과 무질서의 영역, 애타는 사하라
인샬라, 신의 뜻대로! "신의 뜻대로!" 그야말로 어리석은 물음에 대한 현명한 대답(愚問賢答)이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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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라고는 바닷가에 있는 백사장 이외에는 없는 이 나라에서 "사막"이라는 공간은 낯설다. 낯선 만큼의 호기심과 동경과 낭만으로 다가오는 곳이 사막이다. 유치환의 시 "생명의 서"에 표현된 사막이 그러하다. 고민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본연한 모습을 찾아가는 곳, 사막ㅡ 그런 느낌이었다.
이 책을 잡은 것은 그러한 낯섬에 대한 호기심과 낭만의 요소가 컸다. "생명의 서"의 실제 경험판을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광활한 사막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했고 실제의 사막은 달랐다.
읽으며 느낀 사막이라는 것은, "침묵하는 신(神)"이라는 느낌이었다. 혹은 분명 존재하지만 인간에게 무관심한 신(神)의 느낌이었다. 인간이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그런 것. 그 강렬함에 매료되지만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고, 또 어떤 동정도, 사랑도 받을 수 없는 그런 것. 잔인할 정도의 담담함이라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그 속을 사막의 담담함만큼이나 담담하게 여행한다. 나라면 분명 타올랐을, 사막을 여행한다는 기대나 낭만보다는 그저 그 공간만큼의 쓸쓸함과 담담함을 가지고 느리게 사막을 간다. 사막의 바람을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여행객들 그들에 대한 기록을 한다.
사막에 대한 진실된 기록, 담담한 기록. 사막과 그곳을 살아가고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탐구. 그 건조하지만 분명한 사막의 바람이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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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에디터들의 활약이 유독 눈부시다. 윌리엄 랑게비쉐는 <베니티 페어> 편집자이고 최근에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의 A.J. 제이콥스 역시나 <에스콰이어> 편집자다.
그들이 쓰는 글은 현 세대를 명징하게 반영하고 있으므로 문체에 생동감이 있고 두려움이 없으며 소통하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소통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 현장에서 내가 체험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스킬로 단단히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에디터들의 글이라 생각된다.
이 책 <사하라 사막 횡단기> 역시나 간단 명료한 제목과 더불어 살아숨쉬는 듯한 내용에 푸~욱 빠지게 되었다. 고통의 시간을 거쳐 한 사람이라는 하찮은 미물이 광활한 대지, 아니 더 거대하게는 자연이라는 단 두 글자 앞에서 겸손해지는, 지극히 거대한 스펙트럼을 바라보더라도 우리는 사하라 사막 앞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낙타 한 마리에 의지해 우리는 늘 아래로 내려다 보는 듯한 동물보다도 그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무릎 꿇게 되는데, 왜 인간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살아만 가는지...... 끝없는 반성과 성찰 속에 살고자 한다면 사하라 사막이라는 명제를 던져주고 싶다.
어렵지 않고 쉽게 사하라 사막의 한가운데를 조용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이 책!!! 100명의 여행탐험가가 있다면 그들 100명에 다 사하라 사막은 어떤 곳인지, 당신은 다녀온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여행서의 장점 중에 장점인 생생한 현장감. 그 현장감 가득한 책이기에 추천하고자 한다. 또 추천하고자 한다. 아니면 내 돈 털어서 한 권 사주고 싶다.
정말 사하라 앞에서는 나 자신을 낮추고, "인샬라"를 끝없이 외쳐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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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호기심만으로 사하라사막의 여행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는 이 책이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고 쓴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는데 그 곳을 여행한 이유가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작가의 도전을 무모하지만, 멋지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작가의 소개가 있었는데요. 이 작가는 비행기 조종사였더군요. 문득 어린왕자가 떠올랐습니다. 사막과 비행기 조종사. 이 두 단어로 어린왕자가 생각나서 살짝 낭만을 가지고 이책을 펼쳐보았습니다. 우선 이 책의 맨 첫 장에는 지도가 있는 데 작가가 밟아나간 여행 경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모르는 지명이 나왔을 때 앞의 지도를 보면서 짐작할 수 있었어요. 여기쯤 여행하는 중이구나. 이러면서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개성있고 감각적인 소제목들과 막'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에서 1.사막앞에서 입니다. 이 부분은 사막에 대한 편견을 깬 시각에서 바라보라는 작가의 말이 나오는 데, 그 말들이 하나같이 저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고, 사막이 얼마나 대단할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너무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어가서 그런지 중간 중간 약간 심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읽다보면 '사막'에 대한 내용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여행하면서 들린 도시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라든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어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데 참 드라마틱하여 씁쓸한 생각도 들고, 그 곳에 태어나서 거친 환경 속에서 사는 것이 어려워보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전설'같은 내용이 지루함을 덜어주었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사하라'라는 낯선 곳을 간접적으로라도 어떤 상황이며, 어떤 곳인지 알게 해주었지만, 이 책을 읽은 지금도 사하라 여행을 도전하는 건 굉장히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막강하고, 무언가를 잃게함으로써 교훈을 주는 사하라를 한 번 가보는 것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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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이들이 사하라를 꿈꾼다. 그러나 정작 사하라와 맞닥뜨릴 간담을 지닌 이는 많지 않다. 사하라는, 말하자면 모든 허울을 벗기는 극한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하라... 노래를 부르는 내게 남편은, 하루만 사하라에서 무서운 열기와 냉기를 견디고, 지독한 외로움, 모래 섞인 음식을 견디면 상을 주겠다고 큰소리친다. 근거 있는 큰소리이리라. 비행기 타고 휙 날아가, 에어컨 빵빵 켜진 관광버스를 타고 사하라 입구에 내려서, 단 몇 시간 광대무변을 뒹구는 것, 그게 내가 꿈꾸는 사하라의 한계일 가능성, 크다. 그럼에도 나는 사하라를 꿈꾼다. 사는 일이 팍팍해 일상을 아무리 짜 보아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느낌일 때, 오히려 더 사하라를 꿈꾼다. 거기서는 누구나 투아레그의 전사로 화할 것만 같은 낭만을 어쭙잖게 꿈꾼다.
사하라는 왜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이 아니고 꿈일까. 이 책은 그 꿈을 깨고, 또 꿈을 주는 책이다. 사하라가 사하라인들에게 척박한 현실임을 일깨우고, 외지인이 왜 사하라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없는지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러면서도 삶에서 한 번은 사하라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새로이 꾸게 한다.
이 책에서 보는 사하라는 그저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에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내전이 끊이지 않으며, 무질서와 무법이 난무하며, 가난과 체념, 죽음이 일상인 '버려진 땅, desert'이다. 그곳이 사하라가 아니었더라면, 벌써 어떤 식으로든 결론지어졌을 지루한 싸움들. 그러나 사하라이기에, 그곳의 삶은 느리고도 느리게 흘러간다. 사하라는 그 누구도 자기 위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도록 용납하지 않는 제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하라인들은 사하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하라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일 때문에, 구경하고 싶어 찾아간 사람들에게, 사하라가 지옥을 보여주는 것은 그 얄팍한 호기심과 오만에 내리는 징벌일지 모르겠다.
사하라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사하라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일 이 저자는 그야말로 사하라를 발로 걸으며 횡단해냈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그 일로 펄쩍 뛰며 사하라 간 일을 후회하는 따위의 유치함을 보이지 않는다. 잘 사는 미국의 백인이라는 사실에서 우러날 법한 어쭙잖은 우월의식도 '거의' 없고, 편한 자리를 찾아 몸을 뉠 생각 없이 그저 사하라를 건너간다. 아마, 사하라를 느끼는 진정한 태도가 아닐까 싶고, '아, 나는 안 되겠구나.'싶은 자조도 전해 준다. 사하라라는 이름은 치기 어린 구경을 용납하지 않는 곳이란 느낌. 그래도 저 사막 가운데, 장대하게 자리한 암벽화를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꿈틀거리기는 한다.
1996년에 저자가 쓴, 꽤 오래된 이야기다. 10년이 더 지난 셈. 어디나 경찰, 군인이 나그네를 세워, 하루나 이틀을 잡아두고 뇌물을 받고서야 보내주는 모습인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좀 더 최근의, 사진이 보태진 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내용으로 보아 당시에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듯하기는 하다. 그냥, 그처럼 긍지 높다는 약탈자, 지금은 더러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한 투아레그 족의 모습이 하도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보며 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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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행을 간다. 휴가와 방학을 맞아 어디로든 떠난다. 이젠 어디로 가서 무얼 할지 고민할 정도로 여행은 대중적이다.
동남아의 무더운 해변에 해먹을 치고 누워 휴양을 즐기는 신혼부부도 있다. 유럽으로 아름다운 건축물 기행을 떠나는 배낭여행족도 있다. 쇠똥냄새 나는 인도의 갠지스강에 몸을 적시는 수행자도 있다. 마우스만 몇 번 딸깍거려 구글어스로 미 대륙의 광활한 땅을 내려다보는 '방콕 여행자'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막에 내동댕이치는 로맨티스트도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묵묵히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낙타, 아스라이 펼쳐진 거대한 모래 언덕들... 기자인 윌리엄 랑게비쉐가 사하라를 여행한 것은 순전히 그가 로맨티스트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검은 대륙을 정복하고자 했던 서구 문명은 끝내 아프리카를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인 사하라는 아름다우면서도 매혹적이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로맨틱한 짝사랑의 상대다.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를 길들이고 뱀과 대화를 나누는 낭만적인 장소로 등장하는 사막처럼.
하지만 저자가 사막에서 본 풍경은 이런 낭만과는 다르다. 사막은 겉멋이 들어 무작정 찾아온 이방인들을 다소 거칠게 대한다. 관광객들은 제멋대로 불어대는 모래 바람에 쉽게 길을 잃는다. 덫처럼 놓인 모래 구덩이에 차가 빠져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고립된 여행자는 물을 마시기 위해 자동차의 냉각수를 마시고, 갈증을 없애기 위해 종국에는 가솔린까지 들이켠다.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저자는 그저 '가솔린마시기'라고 당연한 현상인 듯 말하며 이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그의 글에는 여행기라면 응당 등장할 법인 흔한 사진 한장, 서문 한줄조차 없다. 그렇지만 판단하려 하지 않고 가슴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사막을 향해 한발짝 내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 생활을 통해 기른 균형 감각때문일까, 사하라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남다르다. 사하라인과 피부를 맞대며 친밀하게 지내면서도 내내 객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한때 사막을 주름잡던 투아레그족이 피지배자가 되어 받는 가혹한 탄압과 차별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억압받는 투아레그족들이 갖고 있는 우월감과 그들만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역차별을 그는 솔직하게 드러낸다.
사하라를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는 자원봉사자와 이방인 사업가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냉정한 사막의 현실을 부각시키지만, 그 스스로도 사막에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방관자으로서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나귀의 주둥이가 하얘진 이유, 꾀많은 어린 양이 자칼을 농락한 이야기 등 사하라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우화를 통해 사막인들의 지혜와 문화를 엿보기도 한다.
유목민은 어디를 떠돌든 늘 첫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투아레그 속담처럼 저자도 여행을 마치고 나면 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여행의 목적이 있겠지만, 어쩌면 떠돌다 보니 집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 여행자와 유목민의 공통점은 아닐까.
여행의 막바지에 이를 때쯤이면 고단한 여행도 무기력해지는 것이 느껴지긴 하지만, 사막을 꿈꾼다면 론리 플래닛에 앞서 이 책을 우선 읽어볼 것을 권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