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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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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리뷰입니다.  김진명 작가님의 아침의 피아노와 같이 구매했는데, 결이 비슷하고... 흐르는 감성이 비슷해요. 아침의 피아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책이었다면 애도 일기는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이후 2년간 써내려간 글입니다. 실제로 롤랑 바르트가 썼던 글들이 출간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썼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메말랐던 감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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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리뷰입니다. 

김진명 작가님의 아침의 피아노와 같이 구매했는데, 결이 비슷하고... 흐르는 감성이 비슷해요.

아침의 피아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책이었다면 애도 일기는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이후 2년간 써내려간 글입니다. 실제로 롤랑 바르트가 썼던 글들이 출간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썼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메말랐던 감성이 마구 샘솟는 느낌이에요...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0****1 2021.04.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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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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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애송이어서, 롤랑 바르트가 겪은 상실을 공감할 수 없었다.표면적인 이해만으로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책이었다.그리움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었고,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내가 가진 상황과 슬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뭐가 됐든 최대한 늦게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은거겠지요.. *성큼성큼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조심조심 읽게 됩니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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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 애송이어서, 롤랑 바르트가 겪은 상실을 공감할 수 없었다.

표면적인 이해만으로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책이었다.

그리움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었고,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내가 가진 상황과 슬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가 됐든 최대한 늦게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은거겠지요..

 

*

성큼성큼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조심조심 읽게 됩니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이 꽤 제법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옮기고 보니

 

음..

 

 

 

 

YES마니아 : 로얄 t****j 2019.07.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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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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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의 슬픔과 공허를 꾸밈없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이다. 짧은 메모들 속에는 애도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복잡한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상실은 시간이 흐른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한다. 담담한 문장일수록 감정의 무게가 더욱 크게 전해졌고, 애도란 잊는 과정이 아니라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과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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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의 슬픔과 공허를 꾸밈없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이다. 짧은 메모들 속에는 애도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복잡한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상실은 시간이 흐른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한다. 담담한 문장일수록 감정의 무게가 더욱 크게 전해졌고, 애도란 잊는 과정이 아니라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과정임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y*********4 2026.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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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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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아래에 뜬 연관 검색 결과를 보고 알게 된 책입니다. 작가가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난 이후, 쪽지에 쓴 짧은 기록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라고 하기에 바로 구매했습니다. 책을 받고 나서도 곧바로 읽지 못하고 책상에 그냥 두었다가 최근 주말에 읽어보려고 페이지를 몇장 넘겼는데 정말 눈물을 참을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애도의 기록이 나의 것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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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아래에 뜬 연관 검색 결과를 보고 알게 된 책입니다. 작가가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난 이후, 쪽지에 쓴 짧은 기록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라고 하기에 바로 구매했습니다. 책을 받고 나서도 곧바로 읽지 못하고 책상에 그냥 두었다가 최근 주말에 읽어보려고 페이지를 몇장 넘겼는데 정말 눈물을 참을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애도의 기록이 나의 것과 너무 닮아있었고 덜 예민해져있던 슬픔이 다시 돌아와서..
YES마니아 : 로얄 l******4 2022.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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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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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지성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다. 롤랑 바르트의 스테디셀러 중의 하나인데, 국내에 롤랑 바르트의 저서로 번역된 도서 중에 그나마 두껍지 않고 입문하기 좋은 단행본으론 이 책밖에 보이지 않아서(^^...)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 읽는 롤랑 바르트의 책. <1977년 11월 28일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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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지성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다. 롤랑 바르트의 스테디셀러 중의 하나인데, 국내에 롤랑 바르트의 저서로 번역된 도서 중에 그나마 두껍지 않고 입문하기 좋은 단행본으론 이 책밖에 보이지 않아서(^^...)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 읽는 롤랑 바르트의 책.

<1977년 11월 28일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l*****e 2022.03.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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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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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이 책은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책이나 영화를 추천받는 글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댓글에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강력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구입을 했습니다. 좋은 책은 알게 된 즉시 구입하라고 배웠습니다. 네, 그럼요. 사실 대학 시절 전공에서 롤랑 바르트는 꽤나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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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이 책은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책이나 영화를 추천받는 글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댓글에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강력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구입을 했습니다. 좋은 책은 알게 된 즉시 구입하라고 배웠습니다. 네, 그럼요. 사실 대학 시절 전공에서 롤랑 바르트는 꽤나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었는데요. 이번 <애도 일기>는 그의 사상적 상아탑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글이라서 새롭고도 괴로웠습니다. 어머니를 여읜 상처와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쓰여 있더라고요. 그의 죽음을 두고 자살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글을 보는 순간 그의 죽음이 새롭게 와 닿더이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YES마니아 : 로얄 d******s 2020.06.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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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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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두살 때 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고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서로를 의지하고 살아왔기에 상실감도 컷을까,그는 어머니를 보내고 약 2년간 일기 형식의메모를 작성했다.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들에서작가의 상실감과 슬픔이 고스한히 전해진다.다른 사람이 뱉은 어떤 단어 하나에서,길에서 느끼는 풍경 속에서도작가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느끼고 슬퍼한다.이 글들은 작가의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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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두살 때 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왔기에 상실감도 컷을까,
그는 어머니를 보내고 약 2년간 일기 형식의
메모를 작성했다.

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들에서
작가의 상실감과 슬픔이 고스한히 전해진다.
다른 사람이 뱉은 어떤 단어 하나에서,
길에서 느끼는 풍경 속에서도
작가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느끼고 슬퍼한다.

이 글들은 작가의 이후 작품들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도
읽어보면 유익할듯 하다.




YES마니아 : 로얄 w****9 2018.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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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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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 앓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살아나가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애도의 과정은 중요하다. 마음으로 애도를 충분히 하고 나서야 절절한 슬픔에만 매여 있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애도의 과정은 철저하게 산 사람의 몫이고, 산 자들을 위한 과정이다. 산 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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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 앓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살아나가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애도의 과정은 중요하다. 마음으로 애도를 충분히 하고 나서야 절절한 슬픔에만 매여 있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애도의 과정은 철저하게 산 사람의 몫이고, 산 자들을 위한 과정이다. 산 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애도니까.

t********m 2020.10.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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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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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일기'가 붙은 책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개인 생활을 훔쳐보는 게 좋아서일까. 변태같지만 남의 일기를 읽는 것만큼이나 재밌는 것도 없지. 얼마전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를 읽고 이 책을 발견했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리커버를 해서 다시 나왔더라. 작가도, 역자도, 표지 디자이너도 다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마음. 제목에서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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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일기'가 붙은 책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개인 생활을 훔쳐보는 게 좋아서일까. 변태같지만 남의 일기를 읽는 것만큼이나 재밌는 것도 없지. 얼마전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를 읽고 이 책을 발견했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리커버를 해서 다시 나왔더라. 작가도, 역자도, 표지 디자이너도 다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마음. 제목에서 읽지 않아도 이미 전달되는 것만 같다.

YES마니아 : 로얄 y*****8 2020.06.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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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내용보기
애도일기 ? 롤랑 바르트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다. 어제까지 실재하던 사람이 오늘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삶의 변화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하는 어머니, 마망을 잃고 날마다 메모를 남긴다. 책으로 낼 생각은 아니었던 듯, 그 메모들은 두서 없고 때로는 의미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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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일기 ? 롤랑 바르트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다. 어제까지 실재하던 사람이 오늘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삶의 변화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하는 어머니, 마망을 잃고 날마다 메모를 남긴다. 책으로 낼 생각은 아니었던 듯, 그 메모들은 두서 없고 때로는 의미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절절한 사모곡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어령 선생이 딸을 잃고 쓴 책을 읽고는 작가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글로 담아낼 수 있어서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막상 펜을 들어도 가슴속에 가득한 심정이 마치 변비에 걸린 듯 잘 터져 나오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이 value add하는 면이 있다. 변비가 해소되듯 그래, 이런 마음이었어, 하고 공감하게 해주는 그런 면. 그러면서 서툴지만, 맘속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내는 것이 갖는 치유의 힘, 위로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책속으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다.

이 메모를 하면서, 내면의 진부함에게 나는 나 자신을 모두 주어버린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나를 바꾸어버렸다. 내가 욕망하던 것을 나는 더 이상 욕망하지 않는다.

이건 병이라는 느낌

아주 자주 나를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것: 딱딱하게 굳어버린 슬픔 ? 경화증에 걸린 것처럼. 〔경화증에 걸린 슬픔은 깊이가 없어진 슬픔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표면만이 있는 슬픔 ? 아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단단하게 둘러싸서 덮고 있는 각질층들: 그런 각질층들의 커다란 덩어리들〕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제 가는 곳마다, 카페에서나, 거리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음이라는 시선으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죽어야 하는 존재들로 바라본다. ? 그런데 그 사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결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절망, 갈 곳 없는 마음, 무기력: 그래도 여전히 맥박을 멈추지 않는 건 단 하나 글쓰기에 대한 생각.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를 하고,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괴로움이 있다: 나는 아직도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하다’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괴로움. 나의 괴로움은 그러니까 이 편견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나의 슬픔이 수렴되는 것, 일반화되는 것(키르케고르)?을 나는 참을 수가 없다. 그건 마치 사람들이 나의 슬픔을 훔쳐 가버리는 것 같아서다.

오늘 적막한 일요일 아침, 울적하고 암담한 마음속에서: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는 생의 의지, 그들의 세계를 나는 견뎌낼 수가 없다

이런 말이 있다(마담 팡제라가 내게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다시 말해, 나의 울적한 마음을 글쓰기 안으로 옮겨서 자리 잡게 한다는 것.
매번 확인되는 생각이지만, 지금 내 감정의 ‘울혈 상태’를 다른 상태로 바꾸고, ‘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완화시키는 건 글쓰기뿐이다.

내가 더 잃어버릴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렇게 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 그러니까 그 누군가의 삶을 걱정스러워한다는 그 살아가는 이유를.

마망이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죽고 없다는 생각과 확인(‘완전하게’: 그 생각에 오래 머물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꾸만 하게 되는 그런 생각이 있다). 그건 정말 말 그대로 (말 그대로, 그러니까 동시적으로), 나 또한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죽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애도(지금 내가 겪고 있는 애도)의 슬픔은 래디컬하게 그러니까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길들이는 일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는 그저 남에게서 빌려온 (졸렬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철학에서 얻어낸) 것이었다면, 지금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고통스러운 건 죽음의 의식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나의 애도 때문이다.

나의 애도는 히스테리적이 아니었고, 그래서 다른 이들은 나의 슬픔을 거의 알 수가 없었다(나의 슬픔을 연극적으로 ‘마음껏 드러내 보이는 일’이 내게는 역겨웠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좀 더 히스테리를 부리는 일이, 나의 우울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세상을 거부하면서 사교적인 관계들을 모두 끊어버리는 일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러면 분명히 조금은 덜 불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애도의 슬픔을 (비참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말 것(가장 어리석은 건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다)

(물론 아주 좋은 의도들을 담고 있지만) 늘 똑같은 의견이 있다: 애도의 슬픔은 점점 익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말하자면, 시간이 다 차면 저절로 떨어지는 과일처럼 혹은 스스로 터지는 종기처럼).
그러나 내 경우 애도의 슬픔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그 어떤 진행의 과정도 거기에는 없다: 때문에 너무 이른 애도의 슬픔 같은 것도 없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애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은 급성의 나르시시즘이 뒤를 잇는다: 일단은 병으로부터, 간호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차츰 빛이 바래고, 절망감이 점점 확산되다가, 나르시시즘은 사라지고 가엾은 에고이즘, 너그러움이 없어진 에고이즘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때때로 (예컨대 어제 국립도서관에서 그랬듯) 번개처럼 나를 습격하는 상념이 있다, 마망은 영원히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어떤 검은 날갯짓(궁극적인 것의)이 내 위로 스쳐가고 나는 숨이 막혀버린다; 그러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처럼, 나는 즉각 다른 생각으로 도망쳐버린다.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마음.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기 전에 그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예수(요한복음, 11장).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거기에 있으면 울적한 한 장소를 나는 떠나왔다. 하지만 거기를 떠나온 일이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YES마니아 : 로얄 s******c 2019.03.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