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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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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특히 여러 권으로 된 대하소설을 읽을라치면 항상 갈등에 쌓인다. 나오는 대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완간이 된 후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완간이 되었다고 연속해서 다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각기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나는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윤홍길의 [문신]도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이미 저지르고 본 일, 전5권으로 되어 있다는 책을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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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특히 여러 권으로 된 대하소설을 읽을라치면 항상 갈등에 쌓인다. 나오는 대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완간이 된 후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완간이 되었다고 연속해서 다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각기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나는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윤홍길의 [문신]도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이미 저지르고 본 일, 5권으로 되어 있다는 책을 3권까지 출간된 것을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4,5권이 빨리 출간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가족 구성원들의 신념과 욕망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마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하소설은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많이 쓰였다. 조정래의 [아리랑]이나 박경리의 [토지]가 대표적일 것이다. 특히나 [토지]는 최참판댁의 흥망사를 중심으로 쓰였지만 최서희 개인사에 가깝다면, [문신]은 오롯이 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는 면이 [토지]와는 다르게 읽힌다.

 

 

  먼저 1권만을 읽은 상태에서 산서의 천석꾼 최명배의 가족사를 제대로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산서 최씨의 당주 노릇을 하고 있는 최명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난다. 일제의 토지조사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재산 불리기를 서슴지 않은 그는 그것이 독립운동이나 진배없다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총독부 토지 조사 사업 얘기였다. 하마터면 게도 놓치고 구럭마저 잃을 뻔했던 그 위중한 시기에 야마니시 아끼라, 아니 당시 최명배였던 그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돌볼 겨를 없이 이 논, 저 밭, 그 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더금더금 걸터들였다. (…) 그 무렵 산서 일대 땅들을 확실하게 챙겨 놓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시방 산서 사람들 거개가 동척 농장 머슴 신세로 전락해 애면글면 목숨 겨우 부지하고 지냈을 게 아닌가. 독립운동이란 게 뭐 별거이더냐.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대일본 제국에 손해 끼치는 일이라면 좌우지간 뭐든지 다 독립운동이 틀림없지 않은가.’(268)

 

 

  강제모집을 나올거라는 극비정보를 미리 듣고 최씨 겨레붙이들만 산속으로 피신시킨 최명배. 황량한 강제모집이 한바탕 산서 지역에 휘몰아친다. 굴비 두릅처럼 엮인 채 화물자동차로 끌려가는 남정들, 토끼 같고 노루 같고 소 같은 초식동물들 …… 그 곁을 따라가며 땅바닥에 엎드러지고 고꾸라지며 선지 같이 시뻘건 울음으로 남정들 발목 움켜잡거나 옷자락에 매달리는 아낙들, 지렁이 같고 쇠똥구리 같고 민달팽이 같은 미물들 ……’(37) 그들이 산서 최씨만 사람이냐고 들고 일어났을 때도 당당하게 큰소리친다. 어차피 남은 사람들은 또 먹고 살아야 하기에, 대지주 최명배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에게 동족은 거추장스러운 것이었고, 오직 재산을 불리고 그 위세를 맛보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그러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창씨개명을 하고 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식들의 입신양명 조차도 자신의 위세를 떨치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만 자식들의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다.

 

 

  독서회사건으로 약혼자를 잃고 퇴학처분을 받아 집에 와 있는 맏딸 최순금, 그녀는 변함없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온갖 구박을 이겨내며 동생과 어머니를 다독인다. 고보를 졸업했지만 입신을 바라는 아버지의 소원과는 달리 집에서 빈둥거리는 최부용, 그는 폐병에 걸려 죽기만을 기다리며 사회에, 집안에 냉소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악덕지주 야마니시 아끼라라고 부르는 사회주의자 최귀용, 산서 제일의 수재로 사회주의 제국을 꿈꾸는 최부용의 이종동생 배낙철, 그리고 최명배의 의중을 대신하는 장조카 최진용.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 그 일부가 드러난다.

 

 

  배낙철은 귀용과 함께 화적으로 가장하여 최명배의 사랑채를 털어 온갖 귀금속과 돈을 강탈해간다. 여기에 부용의 방조가 있다. 그러던 중 배낙철이 사회주의자라는 것이 알려지고 그를 잡기 위해 순사와 헌병들이 그의 집이 있는 오암리 일대에 깔린다. 순금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동척농장 관리책임자 기꾸찌. 어느 날 밤 교회에 갔다 오던 순금이 기꾸찌에게 능욕을 당하려는 찰나 천치 하인 춘풍이가 나타나 구해준다. 화적이 배낙철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최명배, 부용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는 순금,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마음은 벌써 2권으로 가있다.

 

 

 

책의 제목인 문신은 병정으로 뽑혀 전쟁터로 나갈 남정들이 고향을 떠나기 전 신체 어느 부위에 자기 가족들이 식별할 수 있는 모종의 표시를 먹으로 새겨 넣던 풍습인 부병자자(赴兵刺字)에서 왔다고 한다. 살기를 기원하며, 죽더라도 시체나마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던 풍습이다. 책에서도 강제모집 사태를 겪고나서 산서 일대에 입묵소동이 벌어졌다.
k*****1 2019.01.29. 신고 공감 1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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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의 전철을 밟는 귀용, 나약한 지식인의 비애..
"부용의 전철을 밟는 귀용, 나약한 지식인의 비애.." 내용보기
(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그렸다는 윤흥길의 [문신]은 전 5권으로 되어있다. 산서의 천석꾼 최명배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1,2권에서 최명배는 재산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최부용은 사회와 가족 모두를 냉소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최순금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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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그렸다는 윤흥길의 [문신]은 전 5권으로 되어있다. 산서의 천석꾼 최명배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1,2권에서 최명배는 재산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최부용은 사회와 가족 모두를 냉소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최순금은 신지식을 배웠지만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리고 최귀용은 이종사촌형 배낙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설픈 사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다.)

 

부용과 연실의 거처가 샛내 교회로 옮겨졌다. 연실은 지극정성으로 부용의 병간호에 매달리지만 부용은 자꾸 엇나가기만 한다. 연실이 모친에게 졸라 얻어낸 편지 한 통은 두 관촌댁과 진용으로 하여금 구치소에 수감된 이들을 면회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사실이 최명배를 고무하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고작 면사무소 서기나 주재소 순사, 분견대 헌병 따위 하잘것 없는 벼슬아치나 그 밑에 딸린 구실아치는 이제부터 자신의 적수가 못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야마니시 영감은 사돈댁 막강지세 등에 업은 김에 그까짓 알량꼴량한 산간벽지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을 작정이었다. 군수영감 또는 경찰서장 나리와 더불어 맞상대하고 맞담배질 하려는 꿈에 잔뜩 고부라져 있었다.’(136) 그래서 그랬을거다. 귀용이 풀려난 다음날부터 면소재지 신사 앞에서 고맙다고 굿판을 벌이고 천황폐하 만세삼창을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게다. 소문이 어떻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쳐다보든 이제 자신은 최명배가 아닌 명실상부한 야마니시 아끼라라고 믿는 것이다.

 

귀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자매지간인 두 관촌댁의 사이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경성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오암리 관촌댁이 울고 불며 세상에 대한 저주를 퍼붓자 상곡리 관촌댁이 발끈한다. 동생의 애먼 소리가 낙철과 귀용의 문제에까지 이르자 그만 그동안의 인내가 끝이 난 것이다. 자매사이의 정보다 아들에 대한 정이 더 깊은 것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인 것을..

 

귀용이 돌아온 날 저녁, 최명배를 귀용을 데리고 재각으로 간다. 그리고 칼을 주며 자진하라고 한다. 귀용이 순순히 자진하려 하자 놀란 최명배는 자신이 먼저 할 테니 뒤따라오라고 칼을 빼았는다. 그리고 자진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귀용이 말리지도 않고 뒤따라 가겠다고만 한다. 어쩔줄을 몰라 하는 사이 순금의 부탁으로 이들을 뒤따라온 진용이 달려들어 말리면서 최명배는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것도 잠시, 이제 부용과 순금 두 놈도 모자라 세 놈이 자신의 억장을 무너지게 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까마득해진다. 그래서 다음날 신사 앞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서장과 군수를 만나 금일봉을 전달하고 했는지도 모른다.

 

백상암으로 거처를 옮긴 귀용, 그는 그 옛날 부용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부용이 폐병으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자신을 비관하여 그랬다면, 귀용은 순간의 고통에 굴복하여 낙철과 동지들을 배반했다는 굴욕감에 스스로를 고통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연실의 간호로 이제 생기를 찾아가는 부용은 귀용의 그런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그럼에도 그 끝은 낙철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며 혼자 고소를 금치 못한다. 귀용은 귀용대로 그런 부용에 대해 냉소한다. 최명배는 이제 막내 덕용에게 희망을 건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그동안 내팽개쳐 둔 것을 가르치고 다듬으면 지 형들이 못한 것을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를 건다.

 

과연 이들 최씨 부자들이 가고자 하는 길은 어디일지, 그리고 그 끝은 무엇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작가가 이들을 어디로 데려 갈지는 4권과 5권이 그 답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이라는 애초의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최명배의 삶에는 분명 작가의 의도가 나타나지만 그의 아들들의 삶에서는 절박함이나 당위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 소설은 끝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k*****1 2019.02.11. 신고 공감 1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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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서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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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그렸다는 윤흥길의 [문신]은 전 5권으로 되어있다. 산서의 천석꾼 최명배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1권에서 최명배는 재산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최부용은 사회와 가족 모두를 냉소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최순금은 신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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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그렸다는 윤흥길의 [문신]은 전 5권으로 되어있다. 산서의 천석꾼 최명배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1권에서 최명배는 재산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최부용은 사회와 가족 모두를 냉소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최순금은 신지식을 배웠지만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리고 최귀용은 이종사촌형 배낙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설픈 사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다.)

 

산서 최명배의 집에 총검을 휴대한 제복들이 들이 닥친다. 집안에 있는 남정들을 모두 한곳으로 끌고 온다. 야마니시 아끼라, 아니 최명배도 패대기 처진 개구리 마냥 널 부러진다. 배낙철과 최귀용이 숨은 곳을 실토하라고 하지만 알 까닭이 없다. 부용이 환자라 제외되고 모든 남정들이 읍내 서로 연행된다. 철야로 취조를 받은 남정들은 최명배를 제외하곤 다음날 아침 모두 풀려났다. 화적에게 강도당한 일이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대주기 위한 자작극으로 생각하는 고등계순사들은 최명배를 고문하지만 최명배는 알 길이 없다. 부용은 사촌형 진용에게 만원을 임시변통하여 아버지 구명운동에 쓰자고 하고, 순금은 동척농장 관리인 기꾸찌를 찾아가지만 때 마침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로 달려간다.

 

최명배가 풀려났다. 사회주의자라는 조카와 아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그를, 폭행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건한 그를, 고등계 순사인들 별도리가 없었기에 자신이 풀려난다고 믿는 최명배이다. 큰아들과 장조카가 돈 만원을 뿌렸다고 하자 입에 게거품을 문다. 취조과정에서 화적질 두목이 낙철이고, 귀용이도 한패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최명배, 유치장에서 풀려나고 시간이 흘렀지만 큰아들, 둘째아들, 장조카까지 한통으로 묶어 증오와 저주를 퍼붓는 일은 끝날 줄을 모른다. 순금은 순금대로 부용을 간호하랴, 자신이 믿는 야소신에게 기도하랴 정신이 없다.

 

최명배의 저주와 순금의 기도가 지리하게 이어진다. 최명배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라 하지만 최명배와 순금만이 등장한다. 부용이 등장하지만 매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욕망이 무엇인지 신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최명배의 증오와 저주는 욕 콘테스트를 방불케 하고, 순금의 기도와 신앙은 그녀의 욕망과 신념대신 가족을 건사하려는 봉건시대 여인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지리하게 이어지던 서사가 낙철이와 귀용이 지리산에 입산하려다 잡혀 경성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에 고비를 맞는다. 낙철엄니인 오암리 관촌댁은 그나마 있던 전답을 헐값에 처분하여 경성으로 가지만, 최명배는 귀용의 구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돈이다. 재산을 불리고 위세를 부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자식도 그에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부용이 사랑채 대들보에 목을 맨다. 마침 전주에서 찾아온 이연실과 같이 있던 순금이 부용이 방안에 없는 것을 보고 찾다가 발견한다. 부용이 목숨을 건진다.

 

순금은 부용이 전주에서 공부할 때 알았다는 연실에게 매달린다. 부용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연실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부용은 연실에게 냉담하다. 그렇게 감나뭇골에 머무는 연실을 그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부용의 애를 임신했다고 연극하며 돌아가지 않겠다는 연실, 그런 연극에 맞장구치는 순금. 그러나 부용의 냉소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 더불어 도경 경부라는 연실의 아버지와 부용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려지고, 연실의 고집을 이길 수 없었던 연실 어머니는 순금에게 연실을 부탁하며 홀로 돌아간다. 한편 연실의 아버지가 도경 경부라는 사실에 흥분을 한 최명배는 그것을 어떻게 자신에게 이용할지 고민에 빠진다. 갑자기 낙철과 귀용의 구명 방법을 알아보라며 진용을 한양으로 보낸다.

 

이제 2권이 끝났다. 5권이라 하니 아직 얘기는 많이 남았다. 그렇지만 서사는 오직 최명배와 순금의 얘기만 이어진다. 그나마 부용의 얘기는 단편적으로나마 이어지지만 낙철과 귀용의 얘기는 오직 들리는 소문에 의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이 어쩌다 쫓기는 몸이 되었는지, 어떻게 지리산 입구에서 잡혔는지 소문에 들려오니 알 뿐이다. 더 읽을까 말까 망설이게 만든다. 일단 3권은 있으니 마저 읽겠지만 4,5권은 출간된다 해도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 부용이 진용에게 부병자자 했는지를 물어본다. 진용이 왼쪽 어깨 부위에 생귀(生歸)라 입묵한 것을 보여준다. 부용은 낙철과 귀용도 도피하기 전 입묵을 했는지 걱정한다. 제목이 [문신]이기에 문신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k*****1 2019.02.05. 신고 공감 1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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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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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웅장한 소설은 페이지마다 사람들이 부딪쳐서 지껄이고 따지면서 이야기가 들끓는다. 사람들은 시대에 맞서거나 야합하거나 외면한다. 어떠한 시대에도 삶은 가지런할 수가 없는데, 이 소설은 수많은 지류와 역류를 거두면서 파행하는 강물의 흐름을 보여준다.윤흥길의 글은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생활, 그 양쪽을 끌어안으면서 이 끌어안기에서 분출하는 언어의 활력을 보여준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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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웅장한 소설은 페이지마다 사람들이 부딪쳐서 지껄이고 따지면서 이야기가 들끓는다. 사람들은 시대에 맞서거나 야합하거나 외면한다. 어떠한 시대에도 삶은 가지런할 수가 없는데, 이 소설은 수많은 지류와 역류를 거두면서 파행하는 강물의 흐름을 보여준다.

윤흥길의 글은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생활, 그 양쪽을 끌어안으면서 이 끌어안기에서 분출하는 언어의 활력을 보여준다. 인간의 비루함이나 시대의 야만성에 대해서 쓸 때도 그의 글은 언어의 활기에 가득차 있다. 이 활기는 생활의 구체성에서 나온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y 2024.02.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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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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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의 명맥이 끊길것이란 우려속에 집필된 소설이라하는데 당초 5권으로 출간예정이었으나 우선 3권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따라서 이 3권이 마지막은 아니다. 문신이란 제목은 우리 민족의 풍습인 부병자자에 유래된 것으로 전쟁통에 나가 죽을경우 본인을 알아보게 하기 위하여 몸에 자신의 특징을 새기는 것이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름없는 일개 백성들 또한 자신의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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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의 명맥이 끊길것이란 우려속에 집필된 소설이라하는데 당초 5권으로 출간예정이었으나 우선 3권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따라서 이 3권이 마지막은 아니다. 문신이란 제목은 우리 민족의 풍습인 부병자자에 유래된 것으로 전쟁통에 나가 죽을경우 본인을 알아보게 하기 위하여 몸에 자신의 특징을 새기는 것이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름없는 일개 백성들 또한 자신의  삶의 방식이 나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일제시대건 6.25건 최근의 국제적인 전쟁통이건 간에 징용되서 죽는 사람은 힘없고 돈없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다. 군ㅇ린들조차도 정예병은 전ㅇ방에 동원되지 않는다. 전쟁통에 동원되는 병사는 늙고 병들고 어린 병사들아었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그 상황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이 소설은 고통의 민중 역사다. 

6****n 2022.12.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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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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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3[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399쪽]을 읽고 밀당이다.연실과 부용은 밀고 당기기를 한다.우여곡절 끝에 연실은 샛내교회로 거처를 옮김으로써 본격 터를 잡는다.예배당 바로 뒤, 사택 한쪽에 참새처럼 둥지 틀어 딴살림을 시작한다.목사관과 사택 사이를 진종일 오가면서 연실은 이마에 뿔 돋친 남자,부용쯤은 전혀 겁나지 않는다.머리맡 고수한 채 철부지 눈빛으로 남자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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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3[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399쪽]을 읽고

밀당이다.

연실과 부용은 밀고 당기기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연실은 샛내교회로 거처를 옮김으로써 본격 터를 잡는다.

예배당 바로 뒤, 사택 한쪽에 참새처럼 둥지 틀어 딴살림을 시작한다.

목사관과 사택 사이를 진종일 오가면서 연실은 이마에 뿔 돋친 남자,

부용쯤은 전혀 겁나지 않는다.

머리맡 고수한 채 철부지 눈빛으로 남자 얼굴 말똥말똥 들여다본다.

학창 시절, 칠월 귀뚜라미처럼 똑똑하던 연실 군이 언제부터 그저 매사에

누님만 죽자 살자 읊어대냐며 부용은 다그치지만,

평생 부용 씨 곁에 있기로 작정한 순간부터라며,

연실은 여전히 조신하게 약사발을 들어 올릴 뿐이다.

그렇다, 둘은 밀당 중이다.

그래서 부용은 지난 기억의 골골샅샅을 더듬고 따져본다.

연실의 아버지 입장에서 부용은 주제넘은 조선인 청년이니,

연실을 만나는 어리석은 실수는 죽어도 범하지 않을 것이라,

모지락스럽게 부용은 선언했었다.

그리고 이제 곁에 있는 연실에게 당시 얘기를 듣는다.

어머니한테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단다.

야심만만한 조선인 고보생이 권력을 이용해서 뭔가를 얻을 목적으로

경찰 간부 딸한테 접근했었더라, 하는 식의.

연실도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다가 약을 삼켰고, 손목을 긋고, 두 번의 자결 소동으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혼담이 오가던 무렵이었단다.

연실과 부용의 심사를 잘 짚고 있는 누님 순금의 훈수가 통하는 중이다.

”우리 부용이가 되나 못되나 함부로 내뱉는 말들을 죄다 반대로 알아듣고 반대로 해석해라. 그러면 그 맞은편 짝에 숨어있는 진심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라고 누님께서 신신당부해서다.

영감은 순금을 앞세워 연실을 찾아 나선다.

영감은 며늘아기에게, 각별허니 조심을 해야 한다고, 아들이야 내일모레

죽거나말거나 전혀 상관없다는 투로, 그저 몸조심할 것만 거듭 당부한다.

그런 시아버지를 배경으로 두게 되었으니 연실은 진지하다.

연실은 이제부터 우리 문제를 놓고도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냐며, 접때 아버님께서 혼인 날짜 받으신다던......

그 말이 한 문장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부용은 기탄없이 홍소를 터뜨린다.

“그 냥반 의뭉헌 속내를 연실씨가 몰라서 허는 소리요.

시방 탐욕으로 눈이 멀어, 상곡 어른 자신이 주인공 되는 정략혼을

획책하는 술수란 말이요.”

그렇다고 해도 “아기를 갖고 싶어요.” 작고 낮은 소리로 연실이 중얼거린다.

“방금 뭣이라 혔소?”

“아기를 갖고 싶다고요.”

방에서 썩 나가라며 부용은 당황한다.

연실이 몇 달 사이에 생판 딴사람으로 바꿔놓은 첫 번째 대상은 부용,

바로 제 남정이었다.

새 잎사귀 돋아나는 기적 같은 변화가 시방 부용에게 일어나고 있다.

또 밀당이다.

두 관촌댁이 밀고 당기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런다.

특수강도죄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배낙철과 최귀용은 종로경찰서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어 있었다.

면화를 거절당한 동생 관촌댁 처지가 워낙 기박한지라 차마 대놓고

모진 소리 건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말본새가 관촌댁 비위에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경부 나리를 사돈으로 뫼신 우리 성님이 겁나게 부럽다고, 사둔 뒷심 덕분에

죄라는 죄는 몽땅 똘똘 몰아 낙철이한테 덤터기 씌우고, 성님 아들 빼돌릴

구녁은 뻥 뚫어 놓았지않냐며 동생은 표독스럽게 노려본다.

피를 나누고 살을 쪼갠 친동기간에 이 무신 불목이고, 이 무신 추접인고!

그것은 시국, 바로 그 시국이란 놈 탓이었다.

경성 행보에 팔소매 걷어붙이고 부조의 손길 자청한 귀인은 이연실, 바로

그 며느리였다.

연실은 딸 만나려는 일념으로 먼 길 마다 않고 산서 땅 밟곤 하는

친정어머니 붙들고 읍소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종로경찰서에 잘 아는 경찰관이 있어, 장문의 소개장을 써주었고,

그 연줄 덕분에 형무소까지 선이 닿아 귀용에게 편의를 봐주게끔 조처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밀당이다.

이젠 영감과 그의 둘째 아들 귀용이다.

목숨을 걸고 심각한 밀고 당기기를 한다.

징역 일 년 육 개월에 집행유예 삼 년을 언도 받고, 천하에 둘도 없는

패륜 자식 귀용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소자가 고만 죽을 죄를 졌습니다. 아버님!“

땅바닥에 이맛전 퍽퍽 찧어대면서 귀용은 약간 어눌한 입놀림이다.

잠시 잠간 정신 가닥 놓치고 기함해 있던 영감은 죄 많은 소자 운운하던

귀용을 데리고 재각으로 간다.

가문에다 똥칠하고 조상 신위 욕 뵌 대역무도를 니놈이 용서받는 질은

딱 자진이라며 영감은 담배칼을 던진다.

재각 마룻바닥에 툭 떨어지는 담배칼을 든 귀용은

”아버님, 자진 행위는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아버님은 악착같이, 모쪼록

본때 있게 살아남으셔서 부귀영화 양껏 다 누리십시오.“

그리 유언 비슷한 악담을 퍼붓는다.

마침내 맨살이 뽀얗게 드러나는 순간, 정말 실행에 옮길까 두려워 영감은

칼을 뺏는다.

그리고 영감이 칼자루 움켜쥐고 칼끝을 자신에게 겨눈다.

온몸을 사무 부들부들 떨며, 불효자 눈치를 살핀다.

귀용은 귀용대로, 아버님 소원대로 조상 신위 지켜보시는 요 자리에서

당장 죽어드리겠다며 칼을 뺏으려 위태하게 대든다.

못된 버르장머리 개조할 요량으로 심사숙고 끝에 실행을 서두른 거사였지만

진용이 나타나 담배칼을 잽싸게 채간다.

천우신조로 볼썽사나운 불상사 없이 일장 활극은 징 치고 막을 내린다.

옳거니! 본사 나한테는 두 아들이 아니라 세 아들이 있었지.

아직은 중학생에 불과 하지만 덕용이란 보화가 남아 있었구나, 영감에게는.


[뒷이야기]

감나무골.

산서가 아닌, 전주 감나무골은 아파트 분양으로 떠들썩하다.

분양권 전매제한이 없어서 불법 거래 등의 우려가 크다는 뉴스다.

소설의 배경 감나무골도 여전히 떠들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감나무골일까? 감나뭇골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이-시옷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순우리말 또는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 가운데

앞말이 모음으로 끝날 때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따위에

받치어 적는다고 하니 감나무골이 맞지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2024.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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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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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2[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408쪽]을 읽고 걱정이다.서럽도록 곱디고운,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운 놀빛을, 사랑채 마루 끝에오도카니 앉아 눈을 함빡 빼앗기고 있는 순금의 처지가 그렇다.치렁치렁 펼쳐진 저녁놀 자락에 휘휘친친 감겨 있는 하늘을 일삼아우러르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란다.앞으로 제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서만 싶어서다.경성 하숙집에서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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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2[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408쪽]을 읽고

걱정이다.

서럽도록 곱디고운,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운 놀빛을, 사랑채 마루 끝에

오도카니 앉아 눈을 함빡 빼앗기고 있는 순금의 처지가 그렇다.

치렁치렁 펼쳐진 저녁놀 자락에 휘휘친친 감겨 있는 하늘을 일삼아

우러르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앞으로 제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서만 싶어서다.

경성 하숙집에서 행방을 감추었다는 낙철과 귀용이가 시방 어디로 숨었을

것 같냐는 얘기를 부용과 나누면서는 걱정만 앞선다.

관촌댁도 걱정이다.

제 동생 살릴 방도 찾기 위해 보리깜부기같이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밤마을 나서기로 작정한 맏아들이 가상하면서도 걱정이다.

아니더라.

최명배 영감은, 산송장맨치로 깔딱깔딱 연명허느니 차라리 일찌가니 칵 자진

허라는 모진 말을, 어찌 그리 모질게 하는지.

그러나 호각 소리와 고함 소리와 구둣발 소리와 함께 고등계 형사들이

들이닥치고, 낙철과 귀용을 어디 숨겼는지 자백하라고 다그친다.

각혈하는 부용을 빼고 모든 남정들 손과 손에 포승을 지워 끌고 간다.

고등계 취조실에서 최명배 영감이 맨 처음 맞닥뜨린 날벼락은 낙철과

귀용의 은신처를 이실직고하라는 엄포였다.

두 번째 날벼락은 배낙철 일당에게 건네준 금품의 액수와 물목을 소상히

토설하라는 겁박이었다.

핏줄이다.

그 천륜은 부용에게 어르신을 빼낼 궁리를 하게 한다.

쌈짓돈 헐어서는 어림도 없는 일, 사촌형에게 현찰 만 원을 만들자고 한다.

부용은 아버지 신체 일부와도 같은 그 피눈물 나는 돈을 뚝 떼어, 왜놈들

아가리에 갖다 바칠 생각을 하다니, 다른 한편으론 통쾌한 기분이 든다.

영감은 초주검 되어 달구지 위에 얹힌 채 닷새 만에 집에 돌아온다.

퍼붓는 욕지거리 대상은 폭행과 고문을 자행한 고등계 형사들이 아니다.

소유권도 없는 주제에 주인하고 사전에 일언반사 상의도 없이 남의 재물

멋대로 저당 잡히고 거금 만 원을 끌어다 제멋대로 처지른 노점 귀신

큰아들이다.

그야말로 행악질을 서슴없이 저질러 버린 큰아들은 가장 괘씸한 원수다.

달라진다.

달라진 순금의 위상은 아버지가 유치장에서 풀려나 귀가한 뒤로도 여전하다.

어찌 된 셈판인지 누님은 상처 입은 호랑이 꼴로 성질이 더욱 광포해져

돌아온 아버지한테 겁먹는 기색을 전연 안 보인다.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아버지 앞에 고개 빳빳이 쳐든 채 낱낱이 입바른

소리만 골라 또박또박 주워섬긴다.

놀라운 변화는 신앙생활에도 나타난다.

목사 부인을 비롯한 신자들과 함께 수시로 집회를 갖는 눈치다.

꿈같다.

부용이 눈을 감자마자 전주역 근처 오거리에 자리한 책방 풍경이 펼쳐진다.

똘스또이의 부활復活을 겨냥하고 팔을 길게 뻗는 순간, 거의 동시에 같은

목표물을 향해 다른 각도에서 다가드는 누군가의 손이 얼핏 눈에 들어온다.

명문 여고보 교복 차림이다.

책을 얼른 뽑아 들어서는 ”똘스또이 선생 복활을 찾고 계셨습니까?“라는

부용의 말은 여학생 입에서 웃음소리가 쿡쿡 새어 나오게 한다.

그때의 여학생 연실이 등장한다.

감나뭇골로 부용을 찾아와서는 집으로 가자는 순금에게,

연실은 다만 그 분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단지 그것만 알고 싶다고,

그러고 곧바로 전주로 돌아갈 작정으로 왔다고 한다.

”위중허다마다요. 폐결핵 삼기를 지나고 있어요.“라는 순금의 말에

연실의 입에서 또다시 외마디 부르짖음이 터져 나온다.

최부용이란 인간을 잘 알기 때문에, 편지를 받고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이제는 저를 더 괴롭히지 말라고, 큰 울음을 왁작 터뜨리기 시작한다.

또 달라진다.

연실을 부용이 머리맡에 가차이 앉혀두고 병구완을 맽기기로 피차간에

합의가 있었다는 순금의 말에, 영감은,

”전주 시악시를 당장 쫓아내거라! 산서에서 내 눈에 안 띄게코롬 멀찌막이

내쫓아뿔란 말이여!“ 라고 호령한다.

하지만 요번 일만은 아버님 말씀에 불복할 작정이라고,

요번 일만은 제 생각대로 그냥 밀고 나갈 작정이라고,

저 혼자 끝까장 다 책임을 지겠다는 순금의 말이 맞선다.

긴 담뱃대 높이 추켜들고 딸년 시선하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순간,

영감은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운을 느끼면서 온몸을 흠칫 떤다.

더구나 최명배 영감도 전주 시악시 부친 되시는 분이 도경에서 경부 나리로

근무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연실양 아버님 직업 문제로 두 사람 틈새가 벌어지는 바람에 부용이가

절교를 선언했다고 들었고만요.“라는 순금의 말에

”내 집에 찾어 오신 귀한 손님을, 당장 이씨 집안 규수를, 우리 집으로

뫼셔 들이거라.“ 그리 태도가 달라진다.

이제 부용은, 아니 이연실은 영감한테는 제풀에 굴러든 복덩어리다.

부자지간 천륜마저 거지반 끊기다시피 했던 큰아들 아니던가.

바로 그놈이 두엄자리 앉았다 꿩 줍듯 시악시 하나 방짜로 낚아챔으로써

전혀 예기치 못한 대목에서 기상천외의 효행을 아비 면전에 불쑥 들이대는

게 아닌가.

인연이다.

이연실 모친이 가네무라 순사를 앞세워 감나뭇골에 온다.

아이를 가졌다는 연실의 연극은 부용의 고함 한 마디로 금세 무너진다.

부용은 고보생 시절에 경부 나리하고 주고받았던 약속,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말을 잘 전해 달라면서 어서 따님 잡아끌고 떠나시라 채근한다.

속이고 농간 부린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 연실은 격렬하게 오열한다.

순금이 나선다.

”잉태허지도 않은 얘기를 가졌다고 생판 거짓을 고헌 따님이나, 당장 델꼬

떠나라고 행패를 부린 제 동생이나 말은 달라도 뜻은 같을 것입니다.

둘이서 절대로 갈러설 수 없다는, 갈러서지 않겄다는 생각이 틀림없을

겁니다.“ 그리 간절하게 나선다.

순금의 말을 들은 연실의 모친도,

”이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인데, 부모된 입장으로 더 고집을 피워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제가 좋아서 선택한 제 인생이니 저 가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두는 편이 모두에게 낫겠다.“며 허위허위 길을 잡아 나선다.


[뒷이야기]

무엇보다도 관촌댁이 이해하기 지난한 점은,

산서 제일 대지주를 아버지로 둔 아들이 사회주의 둠벙 속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리는, 바로 그 대목이었다.

세상에 지천으로 널리고 깔린 사상들 가운데

하필이면 왜 사회주의를 골라잡았단 말인가.

관촌댁 안에 들어앉은 사상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으로 못다

꼽을 지경이었다.

본존불사상에 미륵불사상, 동학사상에 서학사상,

한울님사상에 옥황상제사상, 공맹사상에 노장사상,

주역사상에 토정비결사상, 풍수지리사상에 정감록사상 등속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2024.03.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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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병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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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1[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408쪽]을 읽고 부병자자.병정으로 뽑혀 전쟁터로 나갈 남정들이 고향 떠나기 전, 신체 어느부위에 자기 가족들이 식별할 수 있는 모종의 표지를 먹물로 새겨넣던그 풍습이 부병자자赴兵刺字, 즉 문신이다.제목 ‘문신’은 178쪽 부용과 귀용의 대화 속에서 등장한다.산서山西라는 지명이 가장 먼저 가슴으로 들어섰다.혹시 내 고향 장수군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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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1[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408쪽]을 읽고

부병자자.

병정으로 뽑혀 전쟁터로 나갈 남정들이 고향 떠나기 전, 신체 어느

부위에 자기 가족들이 식별할 수 있는 모종의 표지를 먹물로 새겨넣던

그 풍습이 부병자자赴兵刺字, 즉 문신이다.

제목 ‘문신’은 178쪽 부용과 귀용의 대화 속에서 등장한다.

산서山西라는 지명이 가장 먼저 가슴으로 들어섰다.

혹시 내 고향 장수군의 산서인가 싶어서다.

오래전부터 산서 사람들 사이에는 최명배를 적당히 높일 경우

‘상곡 그 어르신’이라 호칭하였다.

아내는 관촌댁이고 아들 부용, 귀용, 덕용과 딸 순금을 두었다.

최명배에겐 산서 최문 종중과 천석꾼 땅덩이만이 오로지 그의 관심사다.

장차 힘없는 이웃들이 겪게 될 끔찍한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애시당초 이 세상에 태어날 적부텀 지놈들 스스로 짊어지고 나온 팔자소관

인 것을 낸들 어쩌란 말이냐면서.

모집이라는,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걱정거리라고는

오로지 농사 한 가지뿐이었다.

열 놈이건 스무 놈이건 간에 자기하고 사돈의 팔촌도 안 되는 남남지간

붙들려 가는 일이야 최명배가 전혀 걱정할 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맏아들 부용과 외동딸 순금에게는 독립이니 뭐니

하는 허깨비(?)들이, 부친 최명배 몰래,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족보나 땅문서 같은 실물로.

부용은 뇌짐(폐결핵)을 앓고 있고, 최명배에게 뇌짐은 천하의 몹쓸 병이다.

장차 치료비 몽땅 떠안을 아비한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그 무시무시한

재앙을 무단히 집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제 한 목숨뿐 아니라 식구들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인데, 그놈 어느 구석 예쁘고 기특한 대목

있다고 생살 진배없는 재물 뭉떵뭉떵 떼어 약값으로 꼬라박는단 말인가.

부용은 경성 유학 생활을 하며 동생 귀용이 점점 엉뚱한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심증을 오래전부터 굳혀왔다.

뜨겁고도 끈끈한 일탈의 유혹을 채워 넣는 장본인은 보나마나 배낙철이

분명하고, 유혹의 입김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이다.

최명배의 생각은 이렇다.

토지조사사업을 할 무렵 산서 일대 땅들을 확실하게 챙겨놓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산서 사람들 거개가 동척농장 머슴 신세로 전락해 목숨

겨우 부지하고 지냈을 게 아닌가.

독립운동이란 게 뭐 별것이더냐.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대일본제국에 손해 끼치는 일이라면 좌우지간

뭐든지 다 독립운동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 상곡 어르신이 놓은 헛기침 두어 방에 의해 긴급 소집된 문중회의.

창씨개명에 대해 논해야 하는 자리다.

귀용의 의견은 이렇다.

어떤 집안에서는 창씨 문제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국 이누꼬로

작명했다며,

“이누꼬란 견자, 그러니까 개자식이란 뜻이지요. 말하자면 제 목숨하고

맞바꿔서 조상님들을 남의 나라에다 팔아먹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자조자학이 담긴 창씨인 셈이지요.”

아버지의 의견이다.

“최씨 가문 후손으로 태어나서 조상 신위 앞에다 우리가 바칠 수 있는,

기중 실팍허고도 생색나는 효도가 달리 또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여.

후제까장 두고두고 우리 최씨 가문에 대가 끊치는 일 없게코롬 악착같이

살아남는 일, 바로 고것이 일등 효도고 우듬지 후손 도리여.”

부용이 중재한다.

“귀용이랑 잠깐 상의를 했습니다. 우리 가문은 야마요시로 창씨 허는

것이 기중 무난허겄다고, 형제간에 일찌감치 합의를 봐뒀습니다.”

상곡 어르신이

“어이, 최명배, 허고 불르는 것보담은 야마요시 메이바이, 요로코롬 불르는

편이 휘낀 더 입에도 보드랍고 귀에도 착착 갬기는 것들 않으요?”

항렬이 높은 새터 어른은

“여부가 있겄는가! 암먼, 그렇고말고! 우리 족질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

옛적에 펄써 내지인이 되고도 자 가웃은 남어돌만침 큰 인물 아니든가!”

그러나 ‘야마요시 메이바이‘로의 창씨개명은 접수를 거부당하고, 결국

최명배는 야마니시 아끼라로 개명한다.

부용은 이종 동생 낙철을 만난다.

오늘 자정 영감 사랑채에 강도단이 들 예정이라고, 미리 대문 빗장을 살짝

뽑아두라는 게 낙철의 얘기다.

이게 영감한테 갱생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며.

고민하던 부용은 귀용에게, 족자로 가려진 대청마루 쪽 벽면을 살펴보라고

은밀하게 귀띔한다.

결국 벽 속에 꽁꽁 숨어 있던 비밀 상자가 멱살잡이로 끌려나오자

야마니시는 마침내 절망의 끝을 보고야 만다.

비밀 상자 내부는 빳빳한 고액권 지폐 뭉치와 더불어 진귀한 금은보패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순전한 24금짜리, 그것도 냥쭝으로 헤아리는 금송아지에 금거북이, 금지환에

옥지환, 흑진주에 백진주, 금강석에 녹주석, 단백석에 강옥석, 산호에 호박,

자수정에 연수정, 황수정에 홍수정서껀 갖가지 금은보패가 상자 안에

흔전만전 넘쳐날 지경이었다.

챙길 만한 재물 웬만큼 챙기고 나서 화적패는 바람처럼 종적을 감춰버린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야마니시 아끼라는 완전히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처신하기 시작했다.

바깥세상 향해서는 피천 한 닢 강도당한 사실 없노라고 딱 잡아떼었다.

집안 쪽 향해서는 마누라를 비롯한 가솔들을 달달 볶아먹곤 했다.

부용은 누님 순금에게

“악질 반동지주 야마니시 아끼라를 단죄하는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차제에 아예 끝장을 내뿌리는 적극적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애당초 낙철이

계획이었지요. 그런디 귀용이가 그 계획을 끝까장 반대혔고, 저 역시

극구 말렸지요. 차라리 낙철이 계획대로 그냥 모르는 척 내비뒀드라면

얼매나 좋을 뻔혔는가, 허는 생각이 요즈막에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부용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순금의 가슴을 조각조각 자디잘게 저미는데,

둘의 얘기를 섭섭이네가 듣고 만다.


[뒷이야기]

일제가 1939년 국민징용령을 발동했고 3년 후,

윤흥길 작가는 194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8년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장마, 완장, 황혼의 집, 윤흥길의 전주 이야기 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문신’ 집필부터 탈고까지 이십오 년,

자그마치 원고지 6500매의 방대한 분량의 대작으로,

올해 비로소 완간되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2024.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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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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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길 50년 필생의 역작이라는 말이 아쉽지 않게 재밌게 봤습니다., 특히 3권이 한 번에 나온데서 고맙네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인지라 나였으면 그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되었네요. 다음 권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지만 그 전에 다시 읽어 보려고 합니다. 10권 예상이라니 기대 되기도 하고 기다림이 힘들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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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홍길 50년 필생의 역작이라는 말이 아쉽지 않게 재밌게 봤습니다., 특히 3권이 한 번에 나온데서 고맙네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인지라 나였으면 그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되었네요. 다음 권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지만 그 전에 다시 읽어 보려고 합니다. 10권 예상이라니 기대 되기도 하고 기다림이 힘들긴 하네요.!!

c*****9 2019.1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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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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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황국화과정과 창씨개명 당시 굴곡된 시기에 한 가족을 통하여 불행한 시대를 거쳐간 인간 군상들에 대하여 쓴 소설이다. 한국 문학사에 있어서 일제시대는 상당히 많은 문학작품을 배출해낼수 있는 시기다. 식민지가 꼭 외세에 의하여만 조성되는 것이 아니고 피식민지 자체의 모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은 아직도 남북이 분단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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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황국화과정과 창씨개명 당시 굴곡된 시기에 한 가족을 통하여 불행한 시대를 거쳐간 인간 군상들에 대하여 쓴 소설이다. 한국 문학사에 있어서 일제시대는 상당히 많은 문학작품을 배출해낼수 있는 시기다. 식민지가 꼭 외세에 의하여만 조성되는 것이 아니고 피식민지 자체의 모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은 아직도 남북이 분단된 상태이고 남한은 절대적으로 미국의 영향하에 있는 나라다. 정치 군사 외교뿐만 아니라 경제분여 심지어는 사회문화 변동도 조치ㅏ도 미국을 따라가고 있고 이제는 완전히 미국의 모습을 거의 닮은 나라가 되었다. 일제시기에 오늘날 시기가 그렇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6****n 2022.12.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