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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의 에고가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신념,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그 틀의 범주에서 독보적인 한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집념 같은 것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프랑스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꽤나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잘 구축하고 있고 색깔이 명확하다는 사견이다. 왠지 낭만성과 설렘이 가득한 사랑소설 일 거 같은 제목과 표지의 분위기와는 달리 독특한 사랑소설인 듯 아닌듯한 소설이다. 그러니까 낭만적인 듯 아닌 듯, 설렘을 주는 듯 아닌 듯. 낭만적이다고 평하기에는 덜 설레고 설렌다고 표현하기에는 건조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건조함 또한 진지한 유머러스함으로 곱게 포장되어 있어 어느 순간부터 작가의 엉뚱스러운 문체의 매력에 빠진 나를 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려면 우선적으로 이 단어를 숙지해야 한다. '델리카 delicat(형용사) 또는 델리카테스 delicatesse(여성명사)'. 프랑스어인 이 단어는 역시 프랑스소설인 이 작품 속에서 수시로 표현된다. 섬세하고 우아함을 나타내는 한편 다루기 어렵고 민감하면서 위험함 같은 상반된 뜻을 내포하고 있는 이 단어야말로 이 작품을 가장 잘 나타내는(원제가 'La delicatesse'이다.) 함축적이면서 포괄적인 단어이다. 그렇기에 소설 에서는 예를 들자면 '이 상황은 무척이나 델리카~하군요', '당신은 델리카~한 사람!' 같은 문장이 잊을만하면 등장해서 독자를 델리카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어디든 처음과 시작은 대부분 평화롭기 마련이다. 『시작은 키스』 역시 그렇다. 평화롭고 조화롭게 만나는 두 사람의 연애에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나날은 달콤한 그 자체였다. 이 평온하고 달콤한 일상에 금이 간 것은 어느 주말 낮이었다. 이들의 시간은 일요일에서 멈춰있다. 남편인 프랑수아는 영면에 들면서 멈춰 버렸고 아내였던 나탈리의 삶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정지해 버렸다. 이 둘의 중심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던 나는 크게 당황했다. 결혼하자마자 갈라놓다니! '이런 몹쓸 작가 같으니라고' 같은 단정 뒤에 도대체 누구와의 키스가 주가 되는 걸까 같은 호기심이 얄궂게도 증폭되어 갔다. 그토록 사랑하던 배우자를 잃어버린 여자의 삶의 무게는 얼마나 가혹하겠는가. 나탈리 역시 다르지 않다.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그녀의 삶은 철저히 고립되고 단절되어 간다. 오로지 워킹우먼으로서의 나탈리만 있지 여성으로서의 나탈리는 존재하지 않는듯하다. 깊은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이 으레 그렇듯 새로운 사랑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또한 철저히 배제된 삶을 살아간다. 이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미치는 크나큰 영향력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다. 흔히 한여름 폭염 같은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하게 될 때는 오로지 그 상대만 보이고 그 상대에 의해 내 삶의 결정권이 좌우된다. 사랑이, 이성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젊은 시절 잠시 잠깐 타오르는 불꽃의 한 종류일 뿐이다 라고 쉽게 단정 하면 안 된다. 이는 살아가는 내내, 특정 상대를 만나면-물론 두 눈에서 섬광이 번쩍!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하는 상대를 만났다는 전제하에-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런 경우가 그리 흔하게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데 있지만 말이다.
졸지에 미망인이 된 나탈리는 타고난 미모와 품성, 남편을 잃은 사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일 뿐이지만 남들의 눈에는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성공한 여성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그녀는 뭇 남성들의 눈에는 여전히 유혹적이기만 하다. 본인은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여인으로 남편의 기억에 기생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정말 우울 그 자체의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여러 남자를 나탈리에게 들이대는(?) 작가의 재치는 상당히 정확한 선을 긋고 있다.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두 남자를 통해 사람이 사랑에 임하는 반대되는 자세를 깔끔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고 거만하거나, 소심하고 자신감이 결여되고 엉뚱함을 겸비한 두 남자를 통해 나탈리가 처음부터 다시 사랑에 하나하나 눈떠 가는 과정을 무심한 듯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 사람에게는 무동기 행위가 다른 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는 미묘한 남녀의 사이. 이를테면 나탈리는 누군가에게 기습키스를 감행하지만 그건 그 어떤 심경의 동요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행동이었던 반면 한 남자에게는 숨이 멎는 듯한 첫 경험이었다. 누군들 이렇지 않을까? 그냥 순간적인 충동으로 저지른 이 일이 훗날 나탈리에게는 멈췄던 얼음 심장이 되었던 그것이 해동되는 나날의 연속성을 선물한다. 모든 일은 우연에서 시작된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찌 되었든 두 사람에게 달린 문제겠지만. 『시작부터 키스』라고 해서 엄한 상상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절대적으로 건전하다. 왜 누구나 어린 시절, 키스에 대한 환상이 있지 않았나. 나 같은 경우, 키스는 달콤한 것, 키스를 하면 두 눈에서 불이 번쩍이거나 하늘에서 섬광이라도 비칠 것 같았고,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는 줄 알았다. 책이나 TV 등,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말이다. 하지만 실로 경험해본 첫 키스는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그리 달콤하지도 눈에 불이 번쩍이지도 아찔하지도 않았다. 별 감흥도 없고...떨리지도 않았던 거 같기도 하고. 한마디로 무감동에 무감각이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그 상대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는 데 말이다. 아마도 키스에 대한 너무도 큰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게 문제였던 듯 하다. 달콤은 무슨.....^^ 사실 이 책은 키스에 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책이기 보다는(이런 의미에서 원제가 훨씬 이 작품과 맞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 두려워하는 한 여인과 사랑 앞에서는 너무도 소심한 한 남자가 조심스레 다가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 다비느 포앙키노스는 한 인터뷰에서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영화 <남과 여>같은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소설을 쓴 동기를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은 영화화되어 6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니 기대해 볼 만하다. 활자의 건조함 뒤에 스크린에서 오는 이들의 풋풋함과 달콤함이 어떻게 그려질지 참으로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멀게만 느끼는 그대, 사랑을 잃어버림에 방황하고 있는 그대, 사랑의 시작이 두려운 그대, 이 소설로 사랑의 예행연습을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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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델리카’ 『시작은 키스』(문학동네, 2012) 안녕하세요! 저는 스웨덴 회사에서 일하는 남자입니다. 평소 제가 썩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저한테 일어난 혼란스러운 일 때문에 사연을 보냅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에는 얼굴도 예쁘고, 능력도 좋은 여자팀장님이 있습니다. 저따위는 함부로 다가가지도 못할 경탄의 대상인 분이죠. 그러나 114호 문건을 보고하러 팀장님 사무실로 찾아간 날,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별안간 팀장님이 저에게 키스를 하고만 거예요! 그러더니 그녀는 문을 열고 저한테 그만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그 일이 있은 뒤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자꾸 머릿속에서 그녀와의 키스 장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저를 좋아하는 걸까요? 이거 그린라이트 맞나요? 과연 느닷없이 찾아온 남자의 사랑은 이루어질까? 이 사연은 다비드 포앙키노스 소설 『시작은 키스』(문학동네, 2012) 한 장면을 각색한 것이다. 포앙키노스는 특유의 유머와 독특한 구성으로 문단에서 ‘재밌는 작가’란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만 10개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70만 부 이상 판매된 소설은 인기에 힘입어 2011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책은 한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남자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랑이 두려워진 여자의 이야기다. 갑자기 사랑하는 남편을 사고로 잃은 여자 주인공 나탈리는 고통을 잊기 위해 오로지 일에만 몰두한다. 더 이상 사랑에 빠질 수 없을 거라 스스로 단정 짓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녀의 직장상사인 샤를은 나탈리의 환심을 사기 위해 팀장으로 승진을 시켜주고 저녁도 사주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러나 영원히 사랑을 못할 것 같은 그녀에게 갑작스런 사건이 생긴다. 호감을 주는 외모도 아니며, 직장에서 존재감조차 없는 한마디로 ‘찌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하직원 마르퀴스와 키스를 하고 만 것이다. 그 뒤로 둘은 서로에 대해 점점 빠져들게 된다. 왜 나탈리는 능력 있는 사장 샤를이 아닌 말단 부하직원인 마르퀴스와 키스를 했을까? 작가는 소설의 원제 ‘La delicatesse(라 델리카테스)’에서 답을 제시한다. 프랑스어인 ‘델리카’는 아주 섬세한, 그윽한, 위험한, 취약한, 만족시키기 어려운, 까다로운 등의 뜻을 지닌다. 그렇기에 나탈리의 선택은 ‘델리카’하다. 대부분 이성적으로 능력 있는 사장을 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탈리는 부족한 마르퀴스를 선택한다. 소설에서 샤를의 사랑방식은 상사처럼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다. 자신의 사랑을 표출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는 않는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나탈리의 ‘델리카(취약함)’을 달래주기 보단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길 강요한다. “그러니까 저는 사장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저를 유혹해보려는 그 방식도요. 우리 둘 사이엔 앞으로도 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P78) 그러나 마르퀴스는 다르다. 나탈리에게 그는 편안한 세계, 그녀의 과거와 전혀 관련이 없는 존재이며, 그녀를 사랑하게 되자 행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당신이 너무 탐이나 도저히 당신 곁에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하는 남자다. 게다가 사랑을 할 때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다가가는 ‘델리카’한 남자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중략) 그녀의 머리카락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나탈리는 이 상황에서 거칠게 달려들지 않는 이 남자의 델리카테스가 감미롭게 느껴졌다.”(P274) 이렇듯 마르퀴스와 나탈리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사랑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소설의 원제목처럼 사랑은 ‘델리카’하다. 때론 갑작스런 사고처럼 위험하며, 그로인해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 그러나 느닷없는 키스처럼 설레며, 서로에게 섬세해 질 수 있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닐까. 이런 델리카한 것들을 소중히 다루고 품에 안을 때 행복한 사랑은 시작될 것이다. 소설 속 나탈리처럼 사랑을 잃고 힘들어 하는 사람, 마르퀴스처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시작은 키스』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사랑의 그린라이트를 켤 수 있을 테니까. |
문학동네 2월 이색 리뷰대회 대상 도서인 이 책 『시작은 키스』는 바로 위의 말, '델리카'로부터 시작되고, '델리카'에 관한 요소들을 사용하여 사랑과 삶에 대해 유쾌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었다. 나는 처음 알게 된 저 독특한 단어, '델리카'가 주는 느낌과 소설 속 요소들이 이루는 형태도 인상깊었지만, 몇몇 책의 장마다 마치 이 이야기들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인양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 속에서 있었던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알려준다거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삽입해놓은 것들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운명적인 첫만남과 행복 그 자체였던 프랑수아와의 영원한 이별 이후, 그 이별이 주는 여파로 인해 나탈리는 델리카한 상황에 놓인다. 즉 그녀는 '다루기 어렵고 위험한 상태(위태로운, 델리카 2의 의미)'가 되어 다른 이들로 하여금 부서지지 않게 다루어야할 것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이러한 취급에 대해 내색하지 않지만 그녀는 불만스럽게 느낀다. 그런 그녀를, 3년 만에 처음으로 '델리카'한 존재로 다루지 않는 '델리카'한 남자가 나타난다. 델리카한(의미 2와 의미 4) 남자, 마르퀴스는 특유의 세심함과 은연중에 비추는 연약함으로 나탈리를 사로잡는다.
이렇듯 줄거리 내막에 '델리카'한 요소들이 속속들이 연계되어 있었고, 흥미진진한 줄거리 속에 그 델리카들을 찾아보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소설 중간중간에 유머러스한 어조로 삶을 고스란히 건져놓은 구절들도 눈에 띄었다.
위트 넘치는 표현과 생동감 가득한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고, 그리고 한편으로 나에게는 소설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책이었다. 아울러 깊은 인상을 남긴 그의 여덟번째 소설, 이 『시작은 키스』 를 통해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이후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었다하니 소설 원작과는 다른 어떠한 재미를 주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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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에서 선물로 받은 책이다. 언제 무슨 일로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책 정리 중에 읽어버렸다.>
연애,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 눈이 마주치고, 설레고, 이 사람과의 인연이 시작되려나 어쩌려나 고민하고 따지고 재고 하는 그 모든 일의 시작. 결말이 어떻게 될지라도 일단 시작해 보자고 들어서는 만남,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착각과 갈등과 오해와 인정들.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불확실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무난한 연애소설이었다. 3각 4각으로 얽히고 꼬인 그런 연애 말고, 출생의 비밀 어쩌고 하는 그런 연애 말고, 나무랄 것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남녀가 어떤 마음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들어가는가를 보여 주는 소설. 하기야 이런 것도 이 세상에 똑같은 과정을 겪는 쌍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개별 존재인 인간들이 다 다른 만큼 그들 둘이 만나 빚는 만남의 빛깔 또한 세상 천지에 단 하나뿐이겠지. 물론 어느 사소한 사건들이야 남들처럼 비슷하게 겹치기도 하고 통하기도 하겠지만.
연애의 법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것 또한 법률은 아닌 것이고, 나름 그 사회의 질서처럼 관습처럼 지켜져 오던 것일 텐데, 이를 테면 짝이 있는 사람은 넘겨다 보지 않는다거나, 나이 차이를 고려한다거나, 친족 관계에 유의한다거나 하는 등 그가 속한 사회의 상식 선 안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지켜주는 것. 물론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있어 늘 문제가 발생하고 우리네 삶이 좀더 다채로워지기도 하겠지만.
일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요즘 들기 시작한다. 미국 드라마 NCIS의 깁스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3번의 결혼에서 결국 실패하고 마는데, 사랑도 너무 치열한 것보다는 적당한 게 더 건강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금방금방 마음이 식고 변하는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간주해 주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 만남의 떨림, 긴장, 조바심, 시도할 것인가 단념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무수한 선택 사항들. 그리고 그에 따른 무수히 다른 빛깔 때문에 여전히 연애 소설은 우리 곁에 살아 남아 있으리라. 연애는 더 이상 귀찮고 연애 소설은 여전히 재미있는 내 이중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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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시작은 키스' 원어는 '라 델리카테스'다. 델리카테스는 명사로, 아주 섬세한, 세련된, 그윽한, 다루기 어려운, 예민한, 세심한 상태을 일컫는 말이다. 델리카테스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이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델리카테스는 책 속 여기저기에 델리카테스하게 그려져 있다. 나탈리라는 이름의 한 여자. 프랑수아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프랑수아는 상대방이 어떤 음료를 시킬지 무척 델리카하게 생각한다. 나탈리가 주문한 살구주스는 나탈리와 프랑수아의 간격을 무척 가깝게 좁혀놓는다. 그녀는 프랑수아를 남편으로 맞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던 중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나탈리에게 운동하러 다녀오겠다며 나간 프랑수아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프랑수아의 사고를 전화로 들은 나탈리는 읽던 소설에 책갈피를 끼워 두고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 이후, 그녀의 인생은 두 시점으로 나뉜다. 책갈피를 중심으로, 프랑수아가 살아있을 때 읽었던 페이지와 프랑수아가 떠난 후 읽을 페이지로. 나탈리는 프랑수아의 죽음 이후 그 어떤 생각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만큼 일에 빠진다. 광적으로 몰두한다. 그런 그녀에게 두 남자가 다가온다. 한 남자는 회사의 대표인 샤를로 샤를은 그녀가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순간부터 호감을 갖는다. 나탈리가 프랑수아를 잃자 샤를은 제 이성을 통제하지 못한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매우 설득력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굉장히 델리카하지 못한 사람이다. 또 다른 한 명은 마르퀴스로, 나탈리의 부하 직원이다. 마르퀴스가 나탈리에게 문건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러 그녀의 방에 들어서자 그녀는 그 누구도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키스를 마르퀴스에게 한다. 키스를 시작으로, 마르퀴스와 나탈리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겉으로 봤을 땐 그 어느 하나 뛰어난 구석이 없는 마르퀴스는 나탈리에겐 아주 델리카한 사람이고 나탈리는 그 델리카테스에 만족해한다. 이 책은 델리카테스란 바로 이거야! 라고 명확하게 보여주진 않는다. 허나 마르퀴스가 나탈리에게 키스하기 전 그녀의 의사를 묻는다든지 페즈 사탕 케이스를 선물하는 등의 모습은 두 사람의 관계가 델리카테스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이 델리카테스는 사람 간의 관계 안에서 계산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는 없는 듯 하다. 굉장한 우연이 델리카테스 위에 얹어져야 완벽한 효과를 보인다. 그러니 델리카테스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연애할 때 상대방과 밀당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상대방이 받아줘야 가능한 법이다. 델리카테스도 밀당과 같다. 상대방이 이 델리카테스와 어울리는 사람이어야 하며 델리카테스를 주고 받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만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가 말하고픈 사랑과 사랑 안의 델리카테스는 아무나와 쉽게 경험할 수 없으며 특별한 인연 위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아니었을까. 당신 곁에 있는 그 사람에게서 델리카테스가 느껴진다면, 그 사람이 당신의 인연일 것이라는 말 또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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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소설에 ost가 있다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를...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게 만든 소설 한 편이다. 봄이 왔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나는 사계절 중 유독 봄에 설레인다. 공기에, 벚꽃에, 사람에, 그리고 봄바람에.....난 참 단순한 인간이다. 추우면 움츠리고 날씨 좋으면 활짝 피는. 기온이 20도에 오르면 나는 조증이 슬슬 발발한다. 아!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얘기하는데 난 심각한 조울증 환자다. 좋게 말하면 기분파이고 나쁘게 말하면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다. 뭐 이런 것쯤은 봄이라면 다 용서가 된다. 온몸의 연애세포들이 벌떡 일어나는 봄이니까-
헌팅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다. 헌팅을 해본 사람, 안 해본 사람, 그리고 당해본 사람과 당해보지 않은 사람. 이렇게 네부류로 나눠볼까? 나는 어디에 해당될까? 솔직히 말하면 헌팅을 해보기도 하고 당해보기도 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콕 찝어 등 한가운데를 찔렀을 때, 그 야릇한 감정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시작은 키스>에서는 우연한 헌팅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지나친 남과 여. 이대로 지나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가 사랑을 얻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뒤돌아볼만한 외모를 지닌 사랑스런 여인. 그리고 여자에게 수줍어하는 귀여운 남자. 이 둘의 사랑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하다. 사랑의 마지막 종점인 결혼을 하고 여느 부부처럼 살아가는 어느 날이다. 집에서 빈둥빈둥 책을 읽는 그녀에게 그는 잠시 운동을 하겠다며 집을 나선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운동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만 것이다. 그 순간, 그녀가 보던 책 321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놓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은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녀의 사랑하는 마음까지 같이 죽어버린 것처럼...그녀에게 사랑이란 감정따위는 유무의 존재가 아니라 인생사전에는 아예 지워진 메모리었다. 모든 걸 잊기위해 열심히 일만 했다. 주위의 유혹에도 전혀 감정이란 감정은 없는 사람처럼 차가웠다. 그런데 그녀의 감정을 '똑똑'하고 두두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다름아닌 자신의 회사에서 아무 존재감도 없었던 자신의 부하 직원. 그 직원은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을까?
'321페이지에서, 그가 죽었다. 책을 다시 펴들고 남편의 죽음으로 중단된 독서를 계속할 수 있을까?_p46
뭐든 시작은 어렵다. 할까 말까하다 지나치는 기회는 인생을 통틀어 수십만 정도 될까? 그에 수반하는 후회하는 횟수 또한 비등하겠지.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는 것보다 여주인공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미친짓이라도 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이건 소설이고 현실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소설의 여주인공은 아주 미인이니 통했을까?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절반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예상 못한 상황에 닥칠 때 기분이 묘해진다. 나쁜 경험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도 우린 사랑을 찾아 다닌다. 이미 애인이 있든 없든,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모두 사랑에 목말라 할 것이다. 마약보다 중독적이고 딸기보다 달콤하고 롤러코스터보다 떨리는 그 느낌. 벌써 내 가슴에 봄이 피었다.....시작은 키스로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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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키스! -30대도 봄봄봄
30대의 연애는 그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서로 많이 겪어본 상태에서, 잠깐의 설렘과 탐색전이 지난 뒤, 수순을 밟아가는 그런 연애. 그럼에도 '봄', 만끽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남녀의 봄, 봄, 봄을 이야기한다.
이 둘의 만남은 누군가 누구에게 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연애는 타이밍이고 운명이고 노력이다.
봄, 벚꽃놀이도, 소풍도 어쩐지 진부해져버린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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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이 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낯선 작가, 이름도 긴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솔깃한 이끌림과 친구의 추천으로 손에 들긴 했지만, 절대! 프랑스 영화는 보지 않겠다는 다짐의 영향인지 며칠 동안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육식동물이 채식을 결심하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멀뚱히 앉아 있다가 손에 들고는 순식간에 끝까지 읽어버렸거든요. 연애소설에 등장할 법한 슬픈 사연의 여자와 소심한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나탈리(나탈리라는 이름의 여자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알 수 없는 작가의 주가 달려 있습니다)는 길을 걷다 낯선 남자에게서 데이트 신청을 받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랑수아. 그의 용기 덕분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려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됩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조깅하러 나갔던 프랑수아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탈리는 혼자 남겨집니다. 예기치 못한 남편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나탈리는 자신은 평생 남편 없는 생을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프랑수아가 살아 있을 때 앞부분을 읽었던 책을 다시 읽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지만, 감정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일만을 생각하며 감정이나 사생활 등은 지운 듯 살아가죠. 물론 매력적인 그녀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닫힌 그녀에게는 모두 지나가는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생명은 그녀의 닫힌 마음도 차츰 녹여갑니다. 어느 날,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못한 일이 또 발생하게 됩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나탈리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온 부하직원 마르퀴스에게 키스를 하게 되죠. 전광석화와도 같은 단 한 번의 키스가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습니다. 평소 나탈리를 흠모했던 마르퀴스는 이 한 번의 키스로 나탈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나탈리 역시 남편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죠. 여기서 그냥 사랑이 이루어지면 평범한 로맨스였겠지만, 이건 프랑스 소설입니다. 로맨스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죠. 이들의 연애가 성립될 것처럼 보이는 순간, 마르퀴스의 소심함이 태클을 걸어옵니다. 과거의 아픔이 되살아나 지금의 사랑에서 뒷걸음치게 된 겁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이미 싹을 틔워버렸으니! 두 사람의 감정기복 외에도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 방해물로 등장하지만 이미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이상, 사랑 전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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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키스 ? 발랄한 연애를 다루는 이야기겠지.. 프랑스 영화 ? 아... 또 뭔가 나랑은 코드가 안맞겠구나. ( 좀 지루...)
이런 정도의 생각으로 보게 된 시작은 키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난 내 자신과 내 사랑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 주인공( 역시 이름은 기억안남.. 나탈리? 였을거다)이 너무 갑작스럽게 처음부터 키스를 하며 사라에 빠지는데 '처음부터 키스라니...'라는 왠지 모를 심리적 거부감( 질투 아닐까?)이 있지만 우리도 다 그렇게 우연히.. 사랑을 시작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난 그녀의 삶에 들어갔다.
그리고 일과 행복을 함께 누리는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남편이 죽는다. 뭐 이건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것보다 몇백배 가슴 후려파고 몸과 마음을 공황상태로 이끄는 것이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이별은 찾아오고. 그 이별을 미친듯 아파하며 극복하고 .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나탈리를 보며..내 지난 20대와 현재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못생긴 마르퀴즈.를 사랑하게 된다. 그 마르퀴즈는 못생겼지만, 그리고 능력도 별볼일 없는 남자지만. 나탈리의 과거와 현재.. 그 모든 모습을 받아드리며 사랑하는 통 큰 남자.. 그 사람을 보며 .. 나도 내 신랑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드려야지....(과연 ㅠ) 라는 결심을 했다.
: 어찌보면 진부하고 평범한 소설이다. 하지만 상투적이지 않고, 축축 쳐지거나 , 일부러 상큼 발랄하게 말하려하지 않았다. 그것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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